출애굽기 4장 24절 | [성경난해구절]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가요?_십보라의 피남편(출애굽기 4장 24-26절)등불교회 황병훈 목사 설교_2020년 2월 29일 새벽설교내용 상위 141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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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장 24-26절]24.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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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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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24~26절 해설…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 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 דָּמִ֛ים אַתָּ֖ה לִֽי׃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본문 주해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יְהִ֥י בַדֶּ֖רֶךְ בַּמָּלֹ֑ון וַיִּפְגְּשֵׁ֣הוּ יְהוָ֔ה וַיְבַקֵּ֖שׁ הֲמִיתֹֽו׃

모세는 길을 가는 중이었다. 그가 가는 길은 어디였는가? 4:18~23절에서 이미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집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고 있었다. 20절에 보면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이드로의 집에서 온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길을 행히다가 숙소( בַּמָּלֹ֑ון )에 머물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숙소는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일반적인 숙소, 또는 여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 광야생활에 익숙한 모세는 천막을 갖고 다녔을 것이다. 지금 온 가족과 함께 동행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하다. 그러므로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쉬어가기 위해서 텐트를 치고, 유숙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만다.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죽이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가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다는 것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추정해 볼 수 있다. 셉투아긴타(70d인경)에서는 이 부분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를 만났다”고 표현한다. 즉 하나님이 육신으로 현현하셔서 모세를 만나셨고, 그의 손으로 모세를 죽이고자 붙드셨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애굽에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시기도 하셨다.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를 갑자기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원문성경에서는 24절에 모세라는 말도 없고, 명확하게 목적어가 없다는 사실과 23절에서 하나님께서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내보내기를 거절함으로 그의 장자를 죽이시겠다고 했던 것과 연관하여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모세의 첫째 아들, 게르솜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말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애굽으로 행할 때에 게르솜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할례 받기를 거절했을 수도 있다. 당시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아들의 이름이고, 그는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모세의 장인이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다면, 그는 미디안의 전통을 따랐을 것이다. 미디안인은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마친가지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13세가 될 때에 할례를 행했다. 모세는 이드로의 집에 머물렀기에 아마도 그런 전통에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게르솜은 13세가 되었을 때에 그것을 거절하므로 할례를 받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겠다고 하신 것처럼 불순종의 아들 게르솜을 죽이고자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고대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죽이고자 했던 사람은 그의 첫째 아들인 게르솜이 아니고, 모세 자신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 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 דָּמִ֛ים אַתָּ֖ה לִֽי׃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을까? 그것은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분명히 조금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자 부르셨고, 그 명령을 받아 애굽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본문에서 몇가지 단서를 찾아보자면 “모세가 길을 가다가 유숙하게 된 것”이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부지런히 사명을 향해 가야 하는데, 온 가족을 데리고 무슨 여행하듯이 천천히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분통이 터져서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억측이다. 모세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단순히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모세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합류해서 그들 전체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또 모든 가족, 그리고 가축을 함께 거느리고 가는 상황에서 쉼없이 애굽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길에 유숙하기도 해야 했다. 그러므로 길을 행하다가 숙소에 머문 것이 원인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둘째 단서는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그것을 멈추신 까닭이 있는데, 거기에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25~26절의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고자 했을 때, 그의 아내, 십보라는 즉시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었다. 그렇다면 24절과 25절의 행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너는 왜 네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모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은 게르솜(나그네라는 뜻)이고,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이다. 모세가 길을 떠날 때에는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20절). 그런데 본문에서는 한 아들( בְּנָ֔הּ )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학자는 게르솜에게는 이전에 할례를 행했지만, 둘째 아들 엘리에셀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것같다고 한다.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렸고, 완전히 미디안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이 물론 일리가 있지만, 본문을 지나치게 깊이 해석한 것으로 보여진다. 본문 어디에서도 그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모세의 아들들 중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할례를 통해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하도록 하셨다.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백성중에 끊쳐질 것이라고 하셨다. 언약적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할례르 행해야 했다. 심지어 종들까지도 할례를 행하게 했다. 그리고 난지 8일이 되면 무조건 할례를 행해야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어떤 이유 때문에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는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소홀히 한 것이며, 언약백성의 계보를 잇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 대수겠는가? 그냥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면 될 것을 죽이려고 하시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어떤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그 어떤 사명보다도 앞섬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네게 주어진 사명이 아무리 막중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적 명령을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다. 이 광경을 본 십보라는 즉시 돌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포피를 베었다. 날카로운 돌칼로 포피를 베는 것은 일반적으로 할례를 행하는 방식이었고, 십보라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그의 발에 갖다 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로다.” 라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발( לְרַגְלָ֑יו )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이 발을 소개하면서 사람의 발, 신인동형체로서의 하나님의 발 그리고 천사들 중에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인 스랍의 발 등을 나타낼 때에 사용하곤 했다. 그렇다면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그것을 “발 앞에” 던졌다고 하는데, 어디로 던진 것인가? 어떤 사람은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형상을 입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발 앞에 던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분명히 답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십보라가 양피를 베어 던지면서 했던 말이 그 해석의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십보라는 “당신은 내게 진실로 피남편입니다.” 라고 했다. 모세는 그냥 남편이다. 진짜 남편이다. 그러면 모세를 향해서는 “당신은 내 남편입니다.” 이래야 한다. 그런데 “피 남편”( חֲתַן־ דָּמִ֛ים )이라고 한다. 십보라는 지금 다른 존재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조금 풀어 설명하자면 “피로 이루어진 남편”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모세와 십보라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적 관점에서 부부로 하나됨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언약적 관계의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기에 남편이라는 단어가 사위에게도, 남편에게도 사용되는 넓은 의미인 것을 볼 때 이것은 한편으로 남편의 친족인 남자들에게도 사용되는 것을 여겨진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음으로 언약적 관계를 소홀히 여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면서, “왜 할례를 행치 않았느냐?”고 하시는 것을 보면서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급히 행하며, “남편인 모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가지 가능성 중에 어떤 것을 취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후자의 추론을 따르는 것이 더욱 합당치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언급된 “발” 앞에서 “발”은 모세의 발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모세를 찾아오셔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발 앞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같다. 더우기 십보라는 “당신은 내게 피 남편입니다.”라고 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당신을….”이라고 모세를 부른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모세를 죽이려고 하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십보라는 이런 일련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셔서는 안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남편이고, 지금 모세를 죽이고자 하는 자는 자신에게 피 남편이며, 모세와 하나님은 언약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십보라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언약을 지켰음을 선언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놓아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붙드셨으나 놓아주셨다. 심판의 손을 거두신 것이다. 26절에서는 “피 남편” 이라고 외칠 수 있게 된 근거가 “할례” 때문이라고 한다. 십보라는 미디안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그녀가 모세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모세는 이미 할례를 받은 사람이었으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다. 십보라는 모세와 결혼한 것으로 자동적으로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녀의 할례라는 중대한 과제가 있었다. 그것이 있을 때에 비로소 언약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기는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이루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방민족과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의식이었다.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창세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헷족속에게 강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것을 통분히 여겼다. 그리고는 헷족속에게 자기들의 가족과 통혼하려면 할례를 행해야 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할례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길이라는 이야기이다. 십보라는 아들의 할례를 행함으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온 가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해설

모세가 애굽으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 한 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약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게 되고,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고, 힘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모세를 죽이려는 하나님을 보면서 십보라는 즉시 하나님의 언약적 명령을 수행한다. 그리고 자신과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길 것임을 선언한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살리셨고, 그의 가정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사용되게 하셨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약백성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언약적 축복을 누리게 해야 하며, 이 일에 모든 가족은 다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명 보다 먼저 언약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 4장 24-26절(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연6)

# 십보라(Zipporah) ​

‘십볼’(‘작은 새’라는 뜻)의 여성형.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또는 르우엘)의 딸로서 모세의 아내(출 2:21). 게르솜과 엘리에셀의 어머니(출 2:22; 18:3-4). 모세가 소명을 받고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자, 십보라가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여 위기를 모면했다(출 4:20-26). 그후 십보라의 행적은 정확지 않으나 아마 모세와 함께 애굽으로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십보라가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고, 출애굽 후 르비딤에서 아버지 이드로와 두 아들을 대동하고 모세와 재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출 18:1-7).

# 돌칼(a flint knife) ​

돌로 만든 칼. 매우 단단하여 부싯돌로 사용된 돌이다. 또한 깨진 부분은 매우 날카로워 칼이나 낫, 송곳, 도끼로 사용되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아들에게(출 4:25),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베풀 때 사용했다(수 5:2-3). 개역한글판은 ‘차돌’(출 4:25).​

# 피 남편(bridegroom of blood) ​

문자적으로는 ‘피를 흘려서 얻은 남편’이란 뜻인데, 아들의 할례를 통해(피를 흘림으로써) 남편 모세가 죽임을 모면했다는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오던 중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모세를 죽이려 할 때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면서 남편에게 사용했던 호칭이다(출 4:25).

# 할례(circumcision) ​

남성 음경의 포피를 절제하는 의식. 하나님과 아브라함(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선민 이스라엘 전체) 사이에 체결된 언약의 증표로서 제정된 의식이다(창 17:10-14).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복종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모든 남자아이에게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식이 집행되었으며(창 17:12; 레 12:3) 특히 할례의 중요성 때문에 안식일에도 허용되었다(요 7:22-23). 그리고 외국인이든 나그네든 개종한 자는 할례를 통해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출 12:48). 하지만 비록 혈통상 이스라엘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언약 공동체에서 끊어졌다(창 17:14).

물론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 생활 동안 계속해서 행진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었으므로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할례를 행할 수 없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곧바로 여호수아 주도로 할례 예식이 이뤄졌다(수 5:2-5). 할례 의식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되(창 21:4), 주로 그 집안의 가장(家長)에 의해 실시되었으며(창 17:23), 간혹 모친의 손에 의해 행해지기도 했다(출 4:25). 히브리인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 곧 무할례자를 심히 경멸하여 그들과의 교제를 일절 단절하였다(삿 14:3; 15:18; 삼상 14:6; 사 52:1).

한편, 신약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를 믿는 믿음 안에서 율법이 정한 한시적인 제도인 할례의 종결(폐지)이 선언되었다(행 15:5-29; 롬 3:30; 4:9-11; 고전 7:18-19; 갈 2:3-4; 5:2-11; 6:12; 엡 2:11, 15; 골 2:11; 3:11). 물론 초대교회 당시 과도기적 상황에서 방편상 할례가 행해지기도 했지만(행 16:3), 구원과 관련된 할례의 효력은 철저히 부인되었다(고전 7:18-19).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고 오직 믿음뿐이요(갈 5:6), 오직 예수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아야 할 뿐임을 강조했다(갈 6:15).

따라서 할례를 육체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갈 6:13), 할례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행 15:1), 그리고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라고 생각하는 것(롬 2:28) 등을 삼갈 것을 명하고 있다. 대신 참된 할례는 마음 가죽을 베는 것(렘 4:4) 곧 마음에 하는 것으로서(신 10:16; 롬 2:29)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할례(그리스도로 인해 거듭나고 구원받음)라 할 수 있다(갈 5:2; 골 2:11).

(출처 : 라이프성경사전)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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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 명하셨다. 그 명령에 따라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자기 아들의 할례를 행해서 그 양피를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심을 그쳤다. 이것은 출애굽기 4장 24절부터 26절까지 기록된 내용이다. 필자는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했을까? 어떻게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할례를 행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모세의 두 아들 중 누구의 할례를 행하였을까?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사명은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 즉 할례(남자 성기의 귀두 부분 표피를 베어냄) 받은 백성(창17:9-14)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굽으로 향했지만 정작 자기 아들들도 다 할례를 행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3:5)”, 교회 감독/장로/집사들의 필수 요건이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딤전3:2-3,12)라고 말씀해 준다. 모세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직 자신의 자녀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하였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이에 대한 답은 십보라가 누구의 할례를 행했는가를 알게 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모세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 게르솜(뜻: 이방에서 객이됨)과 둘째 엘리에셀(뜻: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심)이다(출18:3-4). 출애굽기 4장 25절은 십보라가 차돌을 취해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Cut off her son’s foreskin)’라고 단수(한 아들)로 되어 있다.만약 미디안에서 두 아들들의 할례를 전혀 행하지 않았다면 어찌 십보라가 모세가 죽어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할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전혀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행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십보라는 이미 할례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할례 행하는 것을 보았던 경험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어떤 이는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세가 둘째는 할례를 했지만 굳이 첫째만은 행치 못했어야 할만한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 아들이 다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가정한다면 아직 둘째는 할례 받지 않은 상태이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던 것을 멈추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절반만 해도 다 한 것으로 봐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필자는 분명히 둘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본다. 출애굽기 2장 21-22절을 자세히 보면 모세가 미디안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삼아 게르솜을 낳았다고만 기록돼 있다. 둘째 아들을 가졌다는 내용이 없다. 그리고 곧바로 23절에서 “여러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 ”라고 말해주며, 24절부터 4장 17절까지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는 사건을 기록해 준다. 그리고 4장 18-20절에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고 자기 아내와 아들들(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떠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첫 아들을 사명을 받기 전에 낳았고, 둘째 아들은 그 후 가진 아이이다. 그러므로 첫째와 둘째 사이의 나이 차이는 많음을 알 수 있다.모세가 미디안에서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첫 아들을 낳고 8일만에 할례를 행했다. 그런데 십보라는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모세가 게르솜에게 행하는 것을 보고 아주 질겁을 했다. 갓난아이의 성기의 끝 부분의 살을 베었기에 그 아이의 피는 낭자했고 아프다고 우는 것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십보라는 속으로 ‘이것이 끝이다. 둘째 아이부터는 절대로 그런 고통을 주지 않고 절대로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것이다. ‘여자(아내)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십보라가 아들을 가진 엄마가 된 후부터 모세의 가정에서도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영향력은 강해져 갔다. 세월이 지난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는데 아내가 둘째 아들을 뒤늦게 갖게 됐다. 모세가 80세에 가까워 가는 때에 둘째를 낳았던 것이다. 모세는 둘째 아들도 할례를 행하려 했지만 십보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됐고 결국 할례를 행하지 못한체 애굽으로 떠나게 됐다.하나님은 자기 아들들에게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한 모세를 할례를 다 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죽이시려 하셨다. 모세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십보라는 자신이 둘째 아들의 할례를 완강히 반대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즉시 둘째의 할례를 행했다.이 사건 이후에 모세는 그 가족을 미디안 처가 집으로 돌려보냈다(출18:2). 모세의 사명은 많은 위험과 고통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향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가라고 명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처자들을 다 데리고 가라 말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출4:18)”라고 말하여 허락을 받는다. 모세가 좋은 일로 간다하니 장인이 반대할 리도 없으며, 자기 처자도 함께 간다고 졸랐던 것이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인간적인 정에 끌리어 처자를 다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은 그냥 둘 수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 특히 지도자(Leader)들은 필히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딤전5:5)고 성경과 본 사건은 가르쳐준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명령에 어느 누구, 특히 아내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야 산을 향해 떠났다.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지도자의 자질에 필요한 것이다.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사람을 죽이려고도 하여(물론 절대 죽이시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고난(건강/물질/정신)을 당하게 하신다. 이는 그 사람을 더욱 겸손(Humble)하고 정직(Honest)하고 강건(Healty)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게 되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혹시 본 기사에 의문이 있으신 분은 [email protected] 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4장 25절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성경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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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세 번의 줄다리기 끝에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하지만 애굽으로 출발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하신다는 성경의 구절이 있습니다. 이 때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아들 게르솜의 할례를 행함으로써, 모세를 죽음에서 건져 냅니다.

그 과정에서 십보라가 했던 말이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출 4:25)입니다. 이 말에 대한 성경 사전의 설명을 읽어 보았습니다.

피 남편(BRIDEGROOM OF BLOOD (חֲתַן דָּמִים, chathan damim, 하탄 따밈).

출애굽기 4장 24절-26절에는 모세의 아들 할례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논쟁이 되고 있으나, 이 부분은 죄를 인정함으로 피치 못하게 생기는 피의 희생과 관련이 있어나 혹은 연대감을 상징하는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24절-26절, 개역개정성경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개요

출애굽기 4장 24절-26절은 모세의 생명에 대한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한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야훼의 동기, 모세에 대한 부르심 그리고 십보라의 반응 등에 대한 궁금증들이 제기됩니다.

이 이야기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후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중에 나타납니다. 모세는 장인의 허락과 야훼께서 안전을 약해 주심을 의지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40년 간 살았던 미디안의 집을 떠납니다. 이 여정에 들어서면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과 함께 숙소에 머물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십보라는 부싯돌을 사용하여 아들에게 할례를 급하게 행하고 모세의 “발”(생식기에 대한 완곡한 표현)을 포피로 만진 다음, 모세를 “피 남편”(출 4:25)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야훼께서는 모세를 내버려 두셨고, 십보라는 다시 모세를 향하여 “할례에 의한 피 남편”이라고 외칩니다(출 4:26).

어원학

출애굽기 4장 24절-26절이 가지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신랑”(חָתָן, 하탄)이라는 단어는 “피”(דָּמִים, 따밈)와 짝을 이루어 청년이 결혼을 준비할 때 행하는 할례 행위를 암시합니다. 하지만, “신랑”에 사용되는 단어는 “결혼”을 의미하는

아람어와 우가릿어의 단어 또는 “결혼을 통한 보호”를 의미하는 아카드어와 련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이 단어가 “결혼과 관련된 하나”를가리킨다는 것을 암시하면서도 종종 “신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Howell, “Firstborn Son,” 65).

출애굽기 4장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피”라는 단어는 할례의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여기에서처럼 복수형(주, 단수는 “땀”(דם), 복수는 “따밈”(דמים))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혈흔(Propp, “That Bloody Bridegroom,” 496 n. 10)을 더 정확하게 지칭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초기의 해석과 할례의 의미

대부분의 고대 자료들에는, 출애굽기 4장 24절-26절을 할례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고, 할례의 목적을 희생, 법 준수, 또는 언약을 공유한 친족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70인경과 아람어 타르굼은 모두 출애굽기 4장에서 할례 행위를 제사의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역본은 모세를 공격한 존재가 야훼가 아니라 죽음의 천사 또는 파괴자로 구분 짓고 있습니다. 이 두 번역본은 모세가 17장 9절-14절의 명령대로 모세가 아들의 홀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번역본들에서는, 십보라가 천사의 발치에 엎드려, 모세를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한 제물로써 아들의 피 굳은 포피를 바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피 남편”은 없으며, 대신 “할례의 대리 제물이 아니었다면 남편의 피가 흘렀을 것”(Vermes, “Baptism,” 310–11, 317–18)이라고 번역합니다.

초기 랍비 문한에서, 많은 해설자들은 모세가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못한 결과 때문에 모세의 생명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고 해설을 하며, 타르굼의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랍비들에게 있어서 모세가 죽게 된다는 것은 배교적인 행위가 되므로, 결과적으로 모세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 받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 준수의 회복이 강조되며, 모세는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피 남편”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권위 있는 랍비 집단(시므온 벤 가말리엘이나 이븐 에즈라와 같은 랍비들)은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한 아이가 야훼께서 죽이려고 찾으시는 사람이며 할례의식에 의해 구원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견해에서 볼 때, 할례를 받은 아이는 “피의 신랑”으로 불리는 아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피로써 당신은 나의 남편이 된다”라고 해석합니다.

피 남편의 정체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이 이야기가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초기의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의 주장들은 “피 남편”이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 세 가지의 가능성을 제공해 줍니다. 그것들은, 모세, 모세의 아들 혹은 야훼/야훼의 대리자 입니다.

모세

다수의 학자들은 모세를 “피 남편”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 역시 모세가 어떤 행동을 함으써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어떤 이들은 모세의 죄를,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의 죄가 곧 해결될 것을 확신하면서 모세를 “피 남편”이라고 부릅니다(Ashby, “Bloody Bridegroom,” 204). 벨하우젠(Wellhausen)은 모세의 죄가 결혼 전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십보라는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할례를 행함으로써, 모세를 “피의 신랑”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십보라의 행동을 통하여 모세는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Childs, Exodus, 97; Houtman, “Exodus 4:24–26,” 93). 프로프(Propp)는 모세의 죄를 출애굽기 2장 12절에 기록된 애굽인 살해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피”가 복수형인 ‘따밈'(דָּמִים)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프로프는 모세가 피 흘린 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십보라는 모세를 아들의 표피에 묻은 피로 만지면서, 아들의 포피를 통하여 아버지를 “피로써 정화”시켰습니다. 벨하우젠과 프로프 둘 다 이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서 받는 할례를 유아기에 받는 할례로 개념을 전환시키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Propp, Exodus 1–18, 237; Propp, “That Bloody Bridegroom,” 496 n. 10, 504–6, 510–11).

모세의 아들

이 견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아들이 야훼의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출 4:23)라고 전하라고 지시하셨으므로, 이 사건을 출애굽기 11장 5절에 일어난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들은 유월절 양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십보라가 모세의 발에 포피의 피를 묻힌 것은, 출애굽기 12장 7절에 나타난 바와 같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묻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하웰(Howell)은 “피 남편”(하탄 따밈, חֲתַן דָּמִים)이라는 구절을 사용한 것이 “피로써 맺은 친족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합니다. 할례의 피를 통하여 모세의 아들은 이제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과 친족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Howell, “Firstborn Son,” 69–73; Kosmala, “Bloody Husband,” 14–16).

야훼

로빈슨(Robinson)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한 장면과 관련을 지어서, 야곱의 씨름이나 본문의 내용 모두 중요한 여정을 출발하면서 영웅에게 “위험”한 일이 생겨난다고 해석합니다((Robinson, “Zipporah,” 451–52). 헤이즈(Hays)는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야훼를 향한 여행이라고 주장하며 로빈슨의 생각을 더욱 확장해 나갑니다. 헤이즈에게 있어서, 십보라의 행동은 야훼와 그녀 자신의 가족과의 친분을 상징하는 피의 의식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피 남편”이라는 말은 곧 “당신은 피로써 맺은 나의 친척입니다”라는 뜻으로 야훼께 십보라가 선언했다는 것입니다(Hays, “ ‘Lest Ye Perish,’ ” 52–54).

MELANIE S. BAFFES

Baffes, M. S. (2016). Bridegroom of Blood. In J. D. Barry, D. Bomar, D. R. Brown, R. Klippenstein, D. Mangum, C. Sinclair Wolcott, … W. Widder (Eds.), The Lexham Bible Dictionary. Bellingham, WA: Lexham Press.

십보라가 말한 “피 남편”이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와 정확한 의미는 우리에게 잊혀진 상태입니다. 이후에 이 구절은 때때로 할례자들에게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데이비스(Davies)는 본 절에서 중요한 내용은 “할례의 필요성”이지, 할례가 “언제” 혹은 “누구”에게 행해졌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잘 말하고 있습니다.

Cole, R. A. (1973). Vol. 2: Exodu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86). Nottingham, England: Inter-Va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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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의 피 남편 입니다” (출 4:24-26)

출애굽기 4:24-26

–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

❖ 본문 개역개정 –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직역 – 길을 가던중 묵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셨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 하셨다 십보라가 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의 표피를 잘라냈다 그 후, 그의 다리를 만지고서는 말했다 “당신은 나의 피 남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그녀 가 말했다. (당신은) “할례 때문에 피남편” (입니다)

이 본문은 이해하기 힘든 본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읽으면 더욱 곤란해지는데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히브리어 본문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문들 1. 왜 갑자기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

2. 십보라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4. 하탄 다밈 (חתן דמים)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피 남편” 인가?

5.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 아이들의 할례 전통과 어떻게 연관성이 있는가?

1. 그리스어 역본 (LXX)은 어떻게 이해를 했는가?

히브리어 본문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번역하였던 기원전 3세기의 번역자들도 마찬가지 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본문을 어떻게 번역했을까요?

Ἐγένετο δὲ ἐν τῇ ὁδῷ ἐν τῷ καταλύματι συνήντησεν αὐτῷ ἄγγελος κυρίου καὶ ἐζήτει αὐτὸν ἀποκτεῖναι. καὶ λαβοῦσα Σεπφωρα ψῆφον περιέτεμεν τὴν ἀκροβυστίαν τοῦ υἱοῦ αὐτῆς καὶ προσέπεσεν πρὸς τοὺς πόδας καὶ εἶπεν Ἔστη τὸ αἷμα τῆς περιτομῆς τοῦ παιδίου μου. καὶ ἀπῆλθεν ἀπ᾿ αὐτοῦ, διότι εἶπεν Ἔστη τὸ αἷμα τῆς περιτομῆς τοῦ παιδίου μου. 길을 가던 중 묵고 있을 때에, 주님의 천사가 모세를 만나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십보라가 돌을 집어들고서는 아들의 표피를 할례하였습니다. 그녀가 그 표피를 천사의 다리 앞에 내려놓고서는 말했습니다. “내 아들의 할례의 피가 멎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 아들의 할례의 피가 멎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LXX에서는 갑자기 공격한 이가 여호와가 아니라, “주님의 천사”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십보라의 역할 역시 조금 다릅니다. 십보라는 “내 아들의 할례의 피가 멈추었습니다” 라며 마치 예식에서 하는 말처럼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말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버메스 (Vermes) 라는 학자는 이것이 일종의 제의식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십보라가 피를 흘리게 하여서 모세의 생명을 건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LXX의 번역에서는 하나님의 천사가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고, 십보라는 모세의 아들을 할례하였다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 LXX가 설명하는 것들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모세

4. 하탄 다밈 (חתן דמים)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피 남편” 인가? 내 아들의 피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된 남편

이 LXX는 번역된 이래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의 세계에서 널리 읽혀지는 성서의 대표적인 역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대인들의 미드라쉬에도 많은 영향들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문제는, 모세의 아들 뿐 아니라, 모세 역시 할례를 받지 않았는데 왜 모세는 할례를 받지 않은 채로 두고 아들만 할례를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합니다.

2. 유대인들의 미드라쉬 (메킬타, 출애굽기 랍바)는 어떻게 설명을 하나?

미드라쉬에서는 LXX의 번역을 좀 더 확장시켰습니다. 유대교의 문헌, “미드라쉬 탄후마”에서는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할례가 된 채로 태어났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세 뿐 아니라, 아담, 셋, 노아, 야곱, 요셉, 그리고 욥. 이렇게 일곱명이 유대교 문헌에서 할례가 된 채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전설같은 이야기이지만, 유대인들은 이렇게 성서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LXX가 가지는 문제점을 보완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갑자기 공격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모세가 아들이 태어난 지 팔일 째에 할례를 시켜야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탈굼 옹켈로스나 탈굼 네오피티에서는 모세의 장인인 할례하는 것을 만류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모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어찌되었든, 유대인들의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례를 하지 않았던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었던 셈입니다.

❖ 랍비 문학들에서 설명하는 것들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모세

4. 하탄 다밈 (חתן דמים)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피 남편” 인가? 내 아들의 피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된 남편

5.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 아이들의 할례 전통과 어떻게 연관성이 있는가? 유대교의 할례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유대인들의 성서해석은 이미 후대에 만들어진 유대교의 율법을 준거로 삼아서 성서를 해설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들을 말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만, 유대인들의 이 해석은 후대에 기독교의 성서 이해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많은 초기 기독교 성서학자들은 창세기 17장 10절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그 후손들과 세운 언약에 대한 이행” 이라는 주제로 이 구절을 해석합니다.

3. 벨하우젠은 어떻게 설명하였나?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현대적인 성서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벨하우젠은 결혼 적령기 즈음에 행해지던 할례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년기로 그 시기가 바뀌어진 원인론적인 이야기를 출애굽기에서 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모세는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모세 대신에 그의 아들이 할례를 받음으로 모세의 죽음이 면해졌다는 것이지요. 벨하우젠의 설명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면이 있어서 많은 구약학자들의 벨하우젠의 견해를 수용합니다.

❖ 벨하우젠이 설명하는 것들 1. 왜 갑자기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 모세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모세

5.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 아이들의 할례 전통과 어떻게 연관성이 있는가? 그동안은 결혼 적령기에 할례가 행해졌지만, 출애굽 이후로는 유년기하게 되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아들의 할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세는 할례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도를 십보라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중에 장년이 되어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은 할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러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장정들에게 행한 할례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늘 모든 이론에는 헛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4. 전설에 근거를 둔 구전전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민속학적인 견해

마이어 (E. Meyer), 그레스만 (H. Gressmann)과 같은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하나의 전설처럼 풀이를 합니다. 지금도 이런 관습을 지키는 부족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전문적인 용어로 jus primae noctis 라고 하는데요. 결혼 첫날 밤에 신랑을 대신해서 보다 권위있는 사람이 신부와 첫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방에서는 지역의 신의 권위를 빌어서 jus primae noctis를 행하는데요. jus primae noctis는 미디안의 전통이란 겁니다. 십보라는 그 전통을 알고 있었고, 십보라가 모세의 포피를 잘라서 그 지역 신의 (옷으로 덮혀지지 않은) 다리에 그 포피와 흐르는 피를 대고서는 “당신이 나의 피남편 입니다”라고 말하며 속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십보라의 지혜가 모세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의 문제점은 분명히 성경에는 “십보라의 아들”의 포피를 자른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그 설명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민속학을 근거로 설명하는 학자들의 견해 1. 왜 갑자기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 하나님이 아니라, 미디안 지역의 신이며 모세가 jus primae noctis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2. 십보라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는 이미 이런 지역의 전통을 알고 있었다.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모세

4. 하탄 다밈 (חתן דמים)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피 남편” 인가? jus primae noctis로 맺어진 남편

5. 민속학에 근거를 둔 설명에 대해서 수정 보완하는 학자들의 견해

코스말라 (H. Kosmala), 그리고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학자들인 모르겐스턴 (Morgenstern)과 포러 (Fohrer)는 민속학적인 이야기를 좀 더 보충했습니다. 4번의 견해 같은 경우에는 성경과 부딛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십보라가 자기 아들의 포피를 잘랐다고 분명히 성경에는 기록되었는데, 왜 모세의 포피를 자른 것으로 설명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4번의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 본문과 jus primae noctis를 연결하려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 위의 세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장자를 보호하기 위한 할례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앞에서 장자의 죽음을 파라오에게 전한 모세의 이야기와 교집합이 생기기 때문에 좀더 전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디안의 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고 이들은 전제합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아들의 포피를 잘라 피를 흘리는 할례를 했다는 것이고, “하탄 다밈”이라는 말의 뜻은 “피흘리는 할례를 행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4번이나, 5번이나 모두가 액막이라는 고대 서아시아 및 고대 사회의 문화와 풍습에 근거한 의견이지만, 이 견해가 4번의 견해보다는 좀다 성서 본문을 잘 반영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이 견해의 문제점은 이런 액막이를 미디안 전통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어 본문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문들 1. 왜 갑자기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 죽일려고 했던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그 아들이다

2. 십보라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미디안의 전통이기 때문에 십보라가 당연히 알고 있었다.

3.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던 이는 누구인가? 모세인가? 모세의 아들인가? 모세의 아들

4. 하탄 다밈 (חתן דמים)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피 남편” 인가? 피 흘리는 할례를 행한 사람

결국 이 이야기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성서라는 것이 정답이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들 중에서 이렇게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이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문서를 나눈다거나, 편집시기를 나누는 것인데요. 사실 이런 방법들은 학자들이 적용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굳이 본문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이, 성과 수, 그리고 사용되어지는 용어나, 내용의 반복과 불일치를 나누어 놓고 퍼즐 맞추듯이 조립만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목사님들께서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커다란 이야기의 구조에서 이 이야기를 이해하시던가, 아니면 작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좋은 대안을 만드시는 것을 저는 더 추천을 합니다.

◯ 이 정리는 B. S. Childs, The Book of Exodus — A Critical, Theological Commentary (OTL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74), 95-98 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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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Husband

출애굽기 4장 24절 – 31절 – 연약한 자이지만 주의 복음을 통해 은혜를 알고 온전함에 대한 소망으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2021년 4월 14일 묵상 본문 : 출애굽기 4장 24절 – 31절 – 연약한 자이지만 주의 복음을 통해 은혜를 알고 온전함에 대한 소망으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은혜가운데 하루를 시작하며 묵상의 자로 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휴식이 피로를 풀고 새 힘을 얻게 하는 것처럼 주의 양식을 먹는 교제의 시간은 영적인 힘을 얻고 주의 뜻에 순종하게 만드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생명의 양식을 먹고 주 안에서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마음과 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마음을 채우게 하시고 주와 함께 함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은혜 가운데 믿음의 삶을 살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27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28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본문 해설

모세가 애굽으로 향하던 가운데 길을 가다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 그를 죽이려고 하시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모세가 자신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위한 일에 모세가 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모세에게 이야기하셨으나 모세가 이를 거부하고 듣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모세는 할례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징계하시는 모습을 본 십보라는 돌칼을 가져다가 그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의 발에 갖다 대면서 피를 흘림을 통해 죽을 남편을 새롭게 얻은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해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유월절 사건을 보여주고 있으며 언약의 피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여기서 할례를 받은 아들은 복수가 아닌 단수로써 둘째 아들 엘리에셀로 추정한다.

또한 포피를 베는 행위는 고대 셈족에게 행해진 일종의 성인의식이었기에 당시 풍습을 따라 엘리에셀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지 않고 성인이 되었을 때 하려고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의 포피를 베고 그 포피와 피를 모세의 발에 댐으로써 하나님은 모세를 놓아주셨고 이 일을 통해 십보라와 두 아들은 모세와 동행하지 않고 미디안으로 돌아간다.(출18:2~4)

모세는 홀로 애굽으로 향했으며 하나님은 아론에게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이하도록 말씀하셨고 아론은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재회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분부하신 모든 말씀과 명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려주고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였고 백성들은 그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모세를 징계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그 의미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려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출애굽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구원하시는 과정을 의미하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의 피흘림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단순히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세를 죽일 듯이 달려든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에서 벗어나는 일은 언약의 피를 흘림을 통해 주어지는 것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언약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할례를 통해 흘려진 피가 모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된 것처럼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인해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만든다.

또한 이는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복음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약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약속된 복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보여주고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을 성취하셔서 참 길을 여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심을 보여주신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통해 성경을 바라보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복음이 드러나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을 성취하시는 모습은 언약의 신실성과 온전한 성취를 드러낸다.

모세가 아론을 만나는 과정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으며 이스라엘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믿고 하나님을 경배한 것도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다.

말씀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창세전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친히 성취하시고 이제 재림의 언약의 성취도 동일하게 성취하실 것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주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의 종들을 부르시고 택한 자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일,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만드신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장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연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순종의 자리로 나아간 것처럼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 연합하게 하시고 순종으로 나아가게 만드신다.

물론 이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고 큰 고난의 과정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고 연합하여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신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일을 제시하며 고난이 있고 핍박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 일에 성도들이 믿음으로 동참하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그 일을 이루도록 독려한다.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7~11)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면서 그 일에 주의 백성들을 동참시키신다.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고 맛보게 하시고 온전한 열매에 대한 소망을 주신다.

구약의 백성들도 그 은혜와 열매를 맛보고 온전함에 대한 소망을 가졌으며 신약의 성도들도 동일하게 복음으로 은혜와 열매를 맛보고 온전함에 대한 소망으로 재림을 기대하게 하셨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도록 인도하신다.

나의 삶에, 그리고 성도들의 삶에 이런 은혜가 충만하고 온전함에 대한 소망으로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며 영적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는 모습이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연약함을 온전함으로 바꾸시는 능력을 알게 하십니다.

모세가 가진 연약함,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던 모습을 바꾸시고 언약을 따라 행하시며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손길을 발견합니다.

또한 나의 연약함,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주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로 삼으시며 주의 언약을 기대하도록 만드시는 놀라운 능력을 깨닫습니다.

그 은혜를 날마다 발견하게 하시고 주의 복음의 성취를 소망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의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시고 그것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모든 일정에서 주님을 깨닫는 은혜를 허락해주시고 주와 함께 길을 걸으며 주의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날마다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고 온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창주 목사] 피 남편 (출 4:24-26)

▲ 김 창 주 목사

본문은 구약의 본문 중 가장 골치 아픈 구절이다. 현재 기록이 워낙 고어체적이고 내용마저 지나치게 단순해서 독해하기 어려운 문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부르시며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고 명하신다(출 3:10). 모세의 사양과 거절에도 하나님은 아론과 지팡이를 주어 애굽의 바로에게 보낸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자요 지팡이는 바로에게 이적을 보여줄 것이다. 모세는 내키지 않지만 큰 일을 완수하려고 길을 떠났고 한 숙소에 머문 동안에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신지라.’

독일성서공회의 해설은 솔직한 편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보내고는 하나님 몸소 그를 죽이려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구절을 수수께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의 경험과 이해로 헤아릴 수 없는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어떤 것을 거듭해서 행하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나 야곱의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기사처럼 말이다(창 22:2; 32:22-32). 마치 삶(live)을 거꾸로 쓰면 악(evil)이 되듯 하나님의 명령에도 언제든지 악마의 계략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한 말씀이다(민 22:20). 그렇다고 이 구절을 어렵다고 단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과연 유대교에서는 어떻게 풀고 있는지 랍비들의 입장을 들여다보자. 사실 여호와가 모세를 죽이려한 단서는 26절의 ‘할례’(물라)에서 찾을 수 있다. 모세의 아들 ‘엘리에젤’은 제 때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할례는 본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며 영원한 약속이다(창 17:9-14). 따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한다(창 17:12). 그러나 모세는 여행 중이어서 숙소를 찾느라 할례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랍비들은 ‘숙소’(말론)와 ‘할례’에 주목한다. ‘말론’은 할례의 ‘물라’와 비슷한 발음 때문에 둘 사이의 어떤 암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모세는 여행 중 숙소를 찾느라 아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할 할례를 놓쳤다.

여호수아 본문은 세 차례나 ‘광야 길에서’를 강조하며 출타 중에는 할례를 받지 않은 사실을 강조한다(4, 5, 7절). 카수토는 여행 중에 할례가 유예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이동하는 중에 할례를 행하면 상처가 덧나거나 질병에 노출되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로 인해 나중에 예외적인 규정을 두었을 것이다. 예컨대 여호수아 5장은 여행 중에는 태어나고 팔일 만에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규정을 제시한다(수 5:2-7).

따라서 모세는 아들의 할례와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서 유예될 수 있는 경우를 선택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동 중에 ‘엘리에젤’에게 할례를 베푼다면 적어도 사흘 동안 그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삼일을 허비한다면 애굽으로 떠나라는 사명 완수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모세의 고민을 드러내는 주석이다. 당연히 모세는 여행 중 할례의 유보를 인지하고 그들의 숙소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언제까지 할례를 유예할 수 없는 법! 거처를 찾았다면 곧장 그의 언약 의무인 할례를 아들에게 시행해야 옳았다. 그렇지만 모세는 그러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십보라는 여행 중 할례가 면제되는지 알고 있었다. 막상 모세가 죽게 되자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아들의 포피를 잘라 모세의 발에 갖다 대고 ‘당신은 나의 피 남편이다’고 선언한다. ‘피 남편’은 하탄 담밈이다. 사실 동사 ‘하탄’은 ‘포피를 자르다’는 뜻이고, 재귀동사로는 ‘사위/며느리, 또는 시아버지/장인을 삼다’가 된다. 모세가 아들의 할례를 통하여 십보라의 ‘피 남편’이 된 것이다. 포피를 자르는 할례는 제의적인 관례로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포피를 자르는 사람(십보라)과 대상(엘리에젤), 결국 남편(모세)과 연대와 결속, 그리고 일치와 교감의 강화에 있다. 아들의 포피를 자르는 할례의식은 단지 제의적 행위로 그치지 않고 양자가 내면의 깊은 일체성을 갖게 하려는 신앙의식의 발로이다.

한신대 구약학

모세를 죽이려 한 신…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안다고 하지 말라

#동족 히브리인 노예들을

이집트서 구하라는 소명 준 후

돌연 하나님은 왜 죽이려 했을까

#모세가 할례를 안 받아서?

구약성서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

신은 이해 아닌 믿음의 대상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숙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출애굽기 4:24)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에게 벌어졌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집트에서 핍박받던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어 탈출시킨 지도자였는데, 그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직전, 모세에게는 그런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사실 그의 일생에 닥쳤던 죽을 고비가 한 번만이 아니었다. 크게 세 번이 있었는데, 처음 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 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인의 아이로 태어났는데, 왕이 히브리 노예가 낳은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차마 죽이지 못하고 키우다가 결국 갈대상자에 넣어 강에 띄워버렸다. 마침 이집트 공주가 목욕하다 발견하였고, 모세는 왕궁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지만 이 고비를 넘긴 후 역설적으로 노예에서 왕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인생반전이다.

모세가 겪은 세 번의 죽을 고비

두 번째 죽을 고비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집트 사람 하나를 때려죽이고서 찾아왔다. 모세의 성격을 우울증이라고 분석한다. 왕자이니 자긍심이 꽤 높았을 것 같지만, 그에게는 예외였다. 아마도 자라면서 꽤 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자신은 이집트 사람일까 히브리 사람일까, 진정 왕자인지 사실 노예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왕궁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 혈족인 히브리 노예를 학대하던 이집트 사람 하나를 쳤다. 싸움도 해본 사람이 하지, 왕자로 곱게 자란 터라 그만 어설프게 주먹을 휘두르고 살인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했다. 히브리 노예 편을 든 것이다. 그러나 정작 히브리인들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집트인을 죽였으니 자신들도 죽이려 하냐며 모세를 내친 것이다. 이집트 왕마저도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는다. 정체성을 찾고 싶었으나, 있던 정체성마저 완전히 상실해 버린다. 그는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결정적인 전환이 찾아온다. 도망가 살면서 처량하게 양떼를 몰다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 친족 히브리 노예를 이끌어 내라는, 어마어마한 소명을 부여한다. 모세는 신을 만나 잃었던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게 된다. 이집트의 왕자도 살인자도 아닌,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구원자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니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보였다. 하나님은 진정 다 아는 듯 했다. 자기가 히브리 노예에서 이집트의 왕자가 된 것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인생역전이 아니었다. 훗날 자신의 친족을 노예생활에서 구출하기 위한 이타적 섭리였다. 미디안 땅에서 무료하게 몇 십 년 동안 양떼를 이끌었던 것도, 훗날 이 곳에서 양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목자가 될 예시며 훈련이었던 것이다. 한 때 사람을 쳐 죽였다는 자괴감마저도, 이제는 한 민족을 살려내야 한다는 소명감을 더 크게 타오르게 하였다.

세 번 죽을 고비의 의미

모세의 인생 이야기는 종교적 정경에 담긴 교훈이기도 하다. 그의 첫 죽을 고비를 생각해보자. 인생에 그냥 ‘주어진’ 위기였다. 이 세상에 자신의 출생 조건을 결정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어나 보니 검은 피부에 19세기 미국에 태어나기도 하고, 눈을 떠보니 입에 흙수저를 물고 21세기 한국서 태어나 있기도 하다.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인생의 조건은 운명처럼 주어질 뿐이다. 모세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든지 넘어야 할 인생의 첫 고비이다.

두 번째 죽을 고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위기이기에 어쩌면 첫 번째 것보다 더 큰 고비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박탈당할 위기다. 고비를 넘겨도 자살 충돌이 일어날 만한 뼈아픈 일이다. 이 또한 어느 누구에게든지 닥칠 수 있는 고비다. 극과 극은 만나는 것인지, 그러다가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고는 인생 전체를 신의 섭리로 깨닫는다.

세 번째 위기는 정말 곤란하다. 신을 만나 인생의 새로운 청사진까지 받아서 새롭게 출발하려 하는데, 그만 그 신이 자신을 죽이려 든 것이다. 위대한 사명을 받고 실전에 돌입 할 준비를 하던 때였다. 미디안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가 왕년에 이집트서 왕자였는데’ 하면서, 멀리 떠나기 전 가족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황당한 일인지.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숙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지고 제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4:24-26)

가장 논란 많은 세 번째 위기

구약성서 전공자들이 뽑는 성서의 가장 미스터리한 본문이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민망하게도 모세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죽임을 당할 뻔 했다. 아내가 차마 남편의 것은 건들지 못하고 애꿎은 아이의 것을 베어다가 어설프게 얹어 놓은 것인데, 모세는 목숨을 구한다. 지난 2,000년간 어느 누구도 만족할 만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했다.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겨두라는 계시 일 수도.

신을 만나 인생의 근본적인 전환을 맞고, 하나님이 부여한 소명에 전체 인생을 걸었던 자에게 벌어진 위기가 바로 이 세 번째 고비다. 두 차례나 인생의 큰 고비를 넘어 보았으니, 이제 인생에 대해 뭔가 한 마디 할 수 있을 법한 인생의 대선배에게 벌어진 일이다. 마치 그 입 다물라는 하늘의 경고인지. 크게 진땀 빼고 나서, 모세는 그의 인생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구원’이라는 성서의 가장 핵심적 신학을 각인시킨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그 이야기는 성경의 ‘출애굽기’ 혹은 ‘탈출기’(Exodus)에 담겨있는데, 읽는 것이 싫으시면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이집트의 왕자’를 보시면 된다.

유독 하나님은 모세를 모질게 다루었다. 세 차례 죽을 고비도 그렇지만, 험한 노예들을 이끌고 사막에서 40년간 지내게 하셨다. 징그러울 정도로 말을 듣지 않는 백성이었으며, 결국 노예근성을 벗지 못한 탈출노예 1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다 죽는다. 참으로 황망한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은 정작 모세는 들여보내지 않고 죽음을 맞게 하셨다. 그 땅에 들어갈 축복을 누릴 자가 단 한 명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모세이어야 할 텐데 말이다. 백성들 앞에서 성질 한 번 부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고 ‘지도자’ 모세는 탈락하였다. 의외로 모세는 자기의 마지막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을 한 번 크게 겪어서였을까?

하나님의 일, 알지 못한다

성서의 전도서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혹 지혜 있는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정말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8:17)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마지막으로 깨달았던 바가 있다면 바로 이 사실이 아니었을까? “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알지 못한다.”(11:5)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은 이렇다 저렇다 쉽게 단정 짓는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 이해 속에 파악되는 순간 더 이상 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신으로 존재하려면, 인간 이해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인간이 노력하여 신을 규정할수록 그 신은 더 작아질 뿐이다. 초월과 신비가 없다면 그 신은 신이 아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늘 자기 이해의 영역 밖에 계셨던 분이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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