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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상은 프로필 과거 결혼 – 인명사전

결국 연예계를 떠나 유학을 떠나게 되었어요. 이상은은 현재 결혼하지 않은 미혼으로 남편은 없는 상태입니다. 원래 12살 연하의 띠동갑 남자친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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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ictionarypeople.tistory.com

Date Published: 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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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이상은 ‘담다디’ 이후 나이·결혼·근황 ‘관심’

[내외경제TV] 김지연 기자=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이상은에 대한 프로필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상은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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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bntv.co.kr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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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상은 나이 결혼 남편 남자친구 키 학력 고향 몸무게 …

이상은 결혼 하지 않은 미혼이다.가수 이상은이 “12살 연하 남친이 있었다”고 고백했다.이상은은 지난 12일 방송한 MBC ‘놀러와’에 출연해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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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8/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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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결혼 루머와 근황

이상은의 인생 살아가는 법 이상은: “그리고 “39세가 되니, 앞으로 40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10대 막바지에 찾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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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omance.longlove1.kr

Date Published: 5/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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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가수) – 나무위키:대문

특히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 된 이상은의 앨범 2장 …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미술은 첫사랑 같고, 음악은 결혼한 상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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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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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디 가수 이상은 나이 결혼 안한 근황

1988년도에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차지했던 담다디 그리고 그 곡을 부른 주인공 가수 이상은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아이돌 전성시대라 점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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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osohani.tistory.com

Date Published: 9/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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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호텔 이상은 게스트로 출연 !! 가수 이상은 나이 키 이상은 …

가수 이상은 나이 키 이상은 담다디 이상은 리즈 시절 가수 이상은 결혼은 아직~ … 그동안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원조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은 음악적 영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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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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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은 ‘담다디’ 이상은 “왜 싱글인가” 묻자 | 중앙일보

[사진=박종근 기자] “따라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가수 이상은을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랬다. 단순히 “연예인을 보고 싶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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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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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이상은 “담다디를 버리고 30년, 나를 지켰죠” – 한국일보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20>데뷔 30년 뮤지션 이상은 – … 지금은 커서 결혼도 했겠네요. 라디오 방송 진행할 때는 작가가 친해진 뒤에 그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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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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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상은 결혼 남편 이상형 동성애 남자 루머 찌라시? 동성애 소문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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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상 은 결혼

  • Author: St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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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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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상은 프로필 과거 결혼

가수 이상은 프로필 나이 과거 결혼

가수 이상은은 새롭게 시작하는 MBC 프로그램 ‘강변가요제 : 레전드’에 출연을 한다는 소식입니다. 이상은은 과거 1988년 ‘강변가요제 9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오랜만에 방송에서 이상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요. 오늘은 가수 이상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 이상은 프로필 정보와 나이 과거 고향 학력 결혼 남편 노래 인스타 근황 키 등 다양한 정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은 프로필 정보

이상은 프로필 정보를 살펴보면 1970년 3월 12일생으로 올해 나이 52세 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출생이고 키 178cm, 몸무게 55kg, 혈액형 O형이라고 하네요. 학력사항 서울 재동초등학교 – 덕성여자중학교 – 창덕여자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 영국 런던 첼시 칼리지 오브 아츠 졸업이라고 합니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하게 되었으며 소속사는 ‘브리즈뮤직’입니다.

이상은은 1988년, 만 18살 나이에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고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2년 후 아이돌 스타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을 떠돌며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 변하게 되었고 해외 활동도 하였다고 하네요. 주로 인디에서 활동하며 음악 이외에도 미술, 여행 작가, 라디오 DJ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올해 데뷔 33년차로 정규 앨범만 15장인데 3집부터는 모두 자작곡이라고 하는군요. 이상은은 아이돌 스타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아티스트로 등극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쏟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상은 과거

이상은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예술쪽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미술과 만화, 문예, 연극은 물론 학교 행사 때마다 앞에 나가 춤추며 노래하는 끼 많은 아이였고, 공부 또한 잘 하는 그야말로 엄친딸이었다고 하네요. 창덕여고 시절 학교명물로 하이틴 잡지에도 소개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1986 서울 아시안 매스 게임에 참가했는데 당시 연습 대기 시간에 학교별 장기자랑이 있었을 때도 잠실야구장을 들었다놨다 한걸로 유명했고 고3때는 학교 규정상 고3 출연은 안된다는 룰마저 깨버리고 MBC TV ‘젊은은 가득히’라는 청소년 프로에도 출연하면서 인기도 많고 유명했었다고 합니다.

이상은의 부모님도 본인도 미대에 가기를 원해, 서울대 미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화실도 다니던 고3 시절, 갑자기 화실비를 못 낼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진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예체능계 중에 실기를 많이 안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 입학원서 쓰기 1달 전, 과감히 미대 지망에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로 바꾸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어차피 노래나 연극 등 무대에 대한 꿈도 있었기에 강하게 밀어 붙였다고 하는군요. 당시 한양대 연영과는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성적이 나쁘면 쳐다도 못 보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귀한 외동딸이 고상한 미술가가 되길 바랬지만 뜬금없이 가수가 되는걸 보고 한동안 어이없어 하셨다고 하네요.

▶이상은 결혼 남편

이상은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1학년 당시 ‘제 9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과 선배가 만들어 준 ‘담다디’라는 노래로 대상을 차지하며 혜성처럼 가요계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으로 각종 상과 광고 뿐만 아니라 라디오DJ, 쇼프로 MC, 예능, 연기 등 엄청 불려다니며 소비되기 시작했죠. 결국 연예계를 떠나 유학을 떠나게 되었어요. 이상은은 현재 결혼하지 않은 미혼으로 남편은 없는 상태입니다. 원래 12살 연하의 띠동갑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상은은 남자친구 존재를 공개했지만 결국 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하였죠. 오랜만에 방송에 근황 소식을 전하게 된 이상은인데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활발한 활동 이어가는 이상은이 되기를 응원해 보겠습니다.

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이상은 ‘담다디’ 이후 나이·결혼·근황 ‘관심’

사진=스페이스 공감

[내외경제TV] 김지연 기자=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이상은에 대한 프로필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상은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가요계를 데뷔했다.

특히 6집 ‘공무도하가’ 앨범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10위에 올랐는데, 이는 10위권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뮤지션이다.

11집과 12집으로 각각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여자)부문 수상도 하였다. 또한, 다양한 실험으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진 뮤지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음악 이외에도 글, 그림 등 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라디오DJ 등 방송 경력도 화려하다.

하지만 아이돌 스타로서의 회의감을 느끼고 유학을 떠난 이상은은 해외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다.

이상은은 현재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으로 과거 12살 연하의 띠동갑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결국 이별을 한 바 있다.

현재까지도 이상은의 노래가 회자가 되면서 90년대 발라드 여자 가수 노래방 인기차트는 물론 여자 노래방 노래 추천에서 상위권으로 꼽히기도 한다.

가수 이상은 나이 결혼 남편 남자친구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종교 데뷔 소속사 자녀 인스타 근황 프로필 노래 드라마 영화 출연작 리즈 젊은시절

영화/맛집/연애 가수 이상은 나이 결혼 남편 남자친구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종교 데뷔 소속사 자녀 인스타 근황 프로필 노래 드라마 영화 출연작 리즈 젊은시절 idujh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https://youwin0427.tistory.com/654 이상은 나이 가수 결혼 남편 남자친구 고향 가족 종교 노래 리즈 ​ 가수 이상은 프로필 이상은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종교 데뷔 소속사 이름 이상은 (李尙恩, Lee Sang Eun, I Sangeun, Lee-Tzsche) 출생 1970년 3월 12일 (50세) 서울특별시 은평구1 불광.. youwin0427.tistory.com ​ 가수 이상은 프로필 이상은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종교 데뷔 소속사 이름 이상은 (李尙恩, Lee Sang Eun, I Sangeun, Lee-Tzsche) 출생 1970년 3월 12일 (50세) 서울특별시 은평구1 불광동 국적 대한민국 본관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신체 178cm2, 55kg, O형 가족 무남독녀 학력 서울재동초등학교 (졸업) 덕성여자중학교 (졸업) 창덕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영국 런던 첼시 칼리지 오브 아츠 종교 개신교 소속사 브리즈뮤직 (대표) 데뷔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 〈담다디〉 이상은 가수 출생 1970년 3월 12일, 서울특별시 신체 178cm, 55kg 소속사 브리즈뮤직 학력 프랫인스티튜트 미술 데뷔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담다디’ 관련정보 네이버지식백과 –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네이버온스테이지 –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노래들, 이상은 사이트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포스트 출생: 1970년 3월 12일 (50세), 서울특별시 키: 178cm 본명: Lee Sang-eun 앨범: 공무도하가, 사랑할거야, 더딘하루, 외롭고 웃긴 가게 출생 1970년 3월 12일 (50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 장르 어덜트 컨템포러리 외 다양 활동 시기 1988년 ~ 현재 가족 무남독녀 종교 개신교 소속사 브리즈뮤직 학력 서울재동초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창덕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1988-1990) Pratt Institute, Fine Arts, New York (1992-1994) Chelsea College, Fine Arts, London (2000-2001) ​ ​ 대한민국의 가수.1988년, 만 18세라는 대학생 나이에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지만, 2년 후 아이돌 스타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유학을 떠난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을 떠돌며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 변모하였고, ‘Lee-tzsche (리채, リーチェ)’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도 하였다. 특히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 된 이상은의 앨범 2장 중, 6집 <공무도하가> 앨범이 10위에 오르며 100대 명반의 10위권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 뮤지션이 되었다.5 11집과 12집으로 각각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여자)부문 수상을 하였다. 주로 인디씬에서 활동하며 음악 이외에도 미술, 여행 작가, 라디오 DJ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왔고, 2019년 10월에 EP앨범 를 발표하였다. 대표곡으로는 ‘담다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할거야’, ‘언젠가는’, ‘공무도하가’, ‘새’, ‘어기여디어라’, ‘비밀의 화원’, ‘둥글게’, ‘삶은 여행’ 등이 있다. ​ ​ 가수 이상은 노래 앨범 음반 ​ 발표 앨범 정규 음반 1989년 01월 : 1집 《Happy Birthday》 1989년 12월 : 2집 《사랑할거야》 1991년 11월 : 3집 《더딘하루》 – 뉴욕 유학중작업 (3집부터 자작곡 / 아이돌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포지션을 변경) 1992년 06월 : 4집 《BEGIN》 – 뉴욕 1993년 01월 : 5집 《LEE SANG EUN》 – 뉴욕 1995년 07월 : 6집 《공무도하가》 – 일본 활동 (이때부터 한국엔 라이센스형태로 역수입됨) 1997년 03월 : 7집 《외롭고 웃긴 가게》 1997년 12월 : 8집 《Lee-Tzsche》 :전곡 영어앨범 / 일본에만 발매되었다가 한국엔 2000년에 수입됨 1999년 03월 : 9집 《Asian Prescription》 – 일본 2001년 02월 : 10집 《Endless Lay》 – 일본 2003년 03월 : 11집 《신비체험》 2005년 06월 : 12집 《Romantopia》15 2007년 10월 : 13집 《The Third Place》 2010년 03월 : 14집 《We Are Made Of Stardust》 2014년 02월 : 15집 《LuLu》 비정규 음반 1988. 08. : 《제9회 MBC 강변가요제 앨범》 대상곡 담다디 1989. 12. : 《크리스마스 캐롤앨범》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1990. 04. : 《동요앨범》 까치소리 동동동 (김흥국도 참여 / 당시 이앨범으로 문화부장관 표창 수상) 1992. 05. : 《이상은 베스트앨범》 (1,2집곡들) – 지구레코드 1997. 11. : 싱글 〈Actually, Finally〉 – 도시바EMI 일본 1998. 08. : 싱글 〈Ogiyodiora〉 -도시바EMI 일본 1998. 09. : 영화 《간밧떼 이키맛쇼이》 OST 《Give it all》 – (한국인 최초 일본영화음악담당) 도시바EMI 일본 1999. 02. : 싱글 〈A Path〉 – 도시바EMI 일본 2000. 10. : 《Lee-tzsche 베스트》 (1991~1999곡들) – 도시바EMI 일본 2000. 10. : 영화 ‘봉자’ OST 《She Wanted》 2002. 03. : 스튜디오 라이브앨범 《Asian Breeze》16 -도시바EMI 일본 2007. 08. : 디지털 앨범 《Out of Space》 2011. 08. : 디지털 스페셜 앨범 《Bliss》 2012. 02. : 디지털 싱글 〈안녕, 좋은하루〉 2019. 10. : EP 앨범 《fLoW》 참여 음반 1991.01. – MBC 축하의 노래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1996.07. – 강산에 3집 《별뜻없이, 자유새》 1997.04. – 어어부 프로젝트 1집 《녹색병원》 1997.09. – 황보령 1집 《탈진》 1997.09. – 도시락특공대 《Hold me, 즉흥퍼포먼스 2》 – 자작곡 1997.11. – 영화 《꽃을 든 남자》 OST 《당신 생각에》 1997.12. – 원일 ‘아수라’ 달빛항해 – 몽금포타령 1998.10. – 김동섭 Oz Aurora 몽 夢 1999.05. – 한대수 1975 고무신 서울~ 1997 후쿠오카 라이브 (코러스) 2000.04. – 도시락특공대 2집 《Actually, Finally》 – 자작곡 2000.06. – 어어부밴드 3집 《중국인 자매》 2001.10. – CB-MASS 2집 《흔적》 2001.11. – 2001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라이브 《사막》 – 자작곡 2002.08. – 김수철 POP & ROCK 《보고 싶은 너》 2004.02. – 달파란 & 병준 모조소년 1집 《To The Moon》 2004.06. – 영화 《인어공주》 OST 《To Mother》 2005.02. – 한대수 라이브 《2001 Live At Olympic Fencing Stadium》(코러스) 2005.09. – 2005 국악축전 공식음악 Dancing Goddess – 자작곡 2009.06. – MBC 《음악여행》 라라라 Live 《매일 그대와》 2011.01. – MBC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OST 《Falling》 2012.08. – 이야기해주세요 《성녀》 – 자작곡 2013.11. – MBC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 OST 《정읍사》 2015.04. – 한대수 40주년 트리뷰트 앨범 ‘Rebirth’ 《One day 나 혼자, 하루 아침》 2016.11. –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5》 OST 《꿈을 따라가》 – 자작곡 ​ ​ 이상은 책 저서 발행 저서 《푸른 달팽이의 달빛무대 & SOUL》- (2004.04 소담출판사 발행) – 시집 《이상은 ART & PLAY – 예술가가 되는 법》 – (2007.05 M&K 발행) 《삶은 여행》(이상은 in 베를린) – (2008.03 북노마드 발행)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보헤미안 이상은 스페인 여행기) – (2008.11 EBS지식채널 발행) 《뉴욕에서》(문화관찰자 이상은의 뉴욕이야기) – (2010.08 스테이지팩토리 발행) 《London Voice》(삶은여행, 두번째 이야기) – (2011.01 북노마드 발행) 《젊은 날의 선택》 – 이상은 외 11인 공저 – (2004.07 정음 발행) 《인생기출문제집》- 이상은 외 20인 공저 – (2009.10 북하우스 발행) 《사랑 풍경》- 이상은 외 16인 공저 – (2012.09 섬앤섬 발행) 담다디 대학가요제 베스트 · 2005년 언젠가는 Darkness · 1993년 산사람 이상은 7080 낭만속의 라이브 통기타 1,2 · 2016년 사랑해 사랑해 이상은 1집(Happy Birthday/글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89년 이상은) · 1989년 비밀의 화원 신비체험 · 2003년 들국화 1 더딘하루 · 1991년 삶은 여행 The 3rd Place · 2007년 그대 떠난후 사랑할꺼야 사랑할꺼야 · 1990년 Ogiyodiora Endless Lay · 2001년 새 공무도하가 · 1995년 어기여 디어라 외롭고 웃긴 가게 · 1997년 그 이름 이상은 1집(백년인생/성산 일출봉/청춘은 대박) · 2015년 삼도천 공무도하가 · 1995년 공무도하가 공무도하가 · 1995년 넌 아름다워 fLoW · 2019년 정읍사 Pop Instrumental Version 제왕의 딸, 수백향 Pt.1 Original Television Soundtrack · 2013년 Happy Birthday 이상은 1집(Happy Birthday/글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89년 이상은) · 1989년 Eardo Green tea Party Endless Lay · 2001년 둥글게 Romantopia · 2005년 일상 노마드 fLoW · 2019년 라임그린 시폰스카프 Romantopia · 2005년 사랑으로 이상은 7080 낭만속의 라이브 통기타 1,2 · 2016년 너무 오래 더딘하루 · 1991년 너와 함께 있는 이유 BEGIN · 1992년 좁은 문 The 3rd Place · 2007년 더딘 하루 더딘하루 · 1991년 Mysterium 신비체험 · 2003년 혼자 있는 건 벽 Darkness · 1993년 정읍사 Pop Version 제왕의 딸, 수백향 Pt.1 Original Television Soundtrack · 2013년 ​ 이상은 드라마 영화 광고 출연작 ​ 방송 활동 DJ & MC 1988년 MBC FM4U 《FM은 내친구》 DJ 1989년 KBS TV 《젊음의 행진》 MC (with 이정현) 1989년 CBS 라디오 《우리들의 이야기》 청소년대상 토크쇼 MC 1990년 MBC FM4U 《밤의 디스크쇼》 DJ – 이상은 밤디 로고송 1993년 KBS 제2FM 《FM 인기가요》 DJ (with 조규찬) 1996년 EBS 라디오 《음악의 세계》 DJ 1996년 KMTV 《세계 유행 음악- 라 스텔라 스텔라》 MC 2002년 KBS 제2FM 《사랑해요 FM》 DJ 2009년 EBS 라디오 《세계음악기행》 DJ 2010년 MBC FM4U 《이상은의 골든디스크》 DJ (2010. 4. ~ 2012. 10.) 2011년 G1 강원민방 ‘내일의 빛 콘서트’ 4주간의 음악여행 MC CF 1988년 – 해태 보리텐 CF (음료) 2편 1988년 ~ 1990년 – 해태 부라보콘 CF 2편 1990년 – 동원참치 CF 1993년 – 해태 찡오야 CF (과자) 2008년 – 알리카페 CF (커피) 드라마 1989년 – MBC 추석특집극 《사랑은 구름을 비로 내리고》 출연: 오지명, 이휘향, 최수종, 이상은 — 출연영상 2013년 – MBC 수목 미니시리즈 《남자가 사랑할 때》 출연: 송승헌, 신세경 / 특별출연 (켈리 조 역할) 교양 2003년 – EBS TV 《삼색토크 여자》 고정패널 2004년 – KBS 1TV 아테네올림픽특집 〈영혼의 자유를 노래하는 사람들〉 – 가수 이상은의 그리스 음악 2004년 – KBS 1TV 《그곳에 가고싶다》 – 길 위에 머문 시간 (경북 영주편) 2008년 – EBS TV 세계테마기행 〈보헤미안 이상은의 스페인기행〉 4부작 2009년 – KBS 1TV 《한밤의 문화산책》 리포터 2011년 – KBS 2TV 밴드오디션 프로그램 《TOP밴드》 특별심사위원 2012년 – KBS 1TV KBS 스페셜 다큐 〈런던, 재탄생!〉 2013년 – KBS 1TV 《문화 책갈피》 프레젠터 2019년 – EBS TV 특집다큐 광화문 광장, 도시의 심장을 바꾸다 내레이션 2009년 4월 – 광주 MBC TV 다큐 〈베를린의 신데렐라 ‘세오’〉 2009년 5월 – KBS 1TV 《수요기획》 〈예지가 인도로 간 까닭은〉 2009년 5월 – EBS TV 다큐멘터리 《리얼실험 프로젝트 X》 〈시민의 힘〉 2부작 2010년 7월 – MBC LIFE ‘행복의 지도 – 라다크: 오래된 미래의 행복’편 2011년 6월 – tvN스페셜 〈스마트폰 연애시대〉 2부작 다큐 2013년 2월 – JTBC 심리치유 프로젝트 <위험한 마음> 2018년 2월 – EBS TV <다큐프라임> 개띠열전 2부 – 그것만이 내 세상 70년 개띠 외 다수 ​ 영화 《담다디》 (1989. 2. 개봉) 감독: 김응천 / 출연: 이상은, 민규, 최재성 《굿모닝 대통령》 (1989. 7. 개봉) 감독: 이규형 / 출연: 이상은, 허준호, 김세준 — 편집영상 1997년 –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 음악(선곡작업) 1998년 – 일본영화 《がんばっていきまっしょい(Give it all)》 음악감독 2000년 – 영화 《봉자》 음악감독 2004년 – 단편 애니메이션 ‘Africa a.F.r.i.c.A’ 음악감독 (2004. 도쿄 애니메이션 페어 그랑프리 수상)– 아프리카 아프리카 OST 2008년 – 제2회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CinDi 2008’) 공식 트레일러 연출 2009년 –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 – 에코 프렌즈 위촉 / 트레일러 영상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 출연 ​ ​ 이상은(李尙恩, 1970년 3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여성 대중가수이자 아티스트이다.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 <담다디>로 데뷔한 아이돌 스타였으나, 유학 후 지금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인정 받고 있다. 특히 6집 《공무도하가》앨범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1 중 10위에 올랐는데, 이는 10위권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뮤지션이다. 11집과 12집으로 각각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여자)부문 수상도 하였다. 또한, 다양한 실험으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진 뮤지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음악 이외에도 글, 그림 등 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라디오DJ 등 방송 경력도 화려하다. 여행광에 영어, 일본어도 능통하고, ‘Lee-tzsche (리채,リ-チェ)’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도 하였다. 방송보다는 라이브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 2월 정규음반 15집을 발표했다. 3집부터는 거의 다 자작곡이다. 대표곡으로는 〈담다디〉, 〈사랑해 사랑해〉, 〈언젠가는〉, 〈새〉, 〈어기여디어라〉, 〈비밀의 화원〉, 〈삶은 여행〉 등이 있다. 2019년 10월 EP앨범 《fLoW》를 발표했다. ​ ​ 178cm 큰키에 중성적인 스타일, 만 18세의 한양대 연극영화과 새내기였던 이상은은 1988년 여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3로 대상을 차지한 후, 곧바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가수 활동 외에도 각종 예능프로, 드라마, 영화, CF, 라디오DJ, 쇼프로MC 등 한동안 만능엔터테이너 아이돌 컨셉으로 활동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지나친 대중의 관심과 쇼비지니스의 횡포는 그녀를 쉬이 지치게 만들었고, 성대결절이란 악조건 속에서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사랑할거야〉4가 히트를 하지만,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그렇지 않아도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는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그녀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가수 데뷔 후에도 늘상 입버릇 처럼 말해 왔던 미술 공부를 위해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1990년 가을 그렇게 이상은은 인기절정의 순간, 훌쩍 한국을 떠난다. ​ ​ 처음엔 가까운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1991년 그녀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로 학교를 결정하고, 입학준비를 하는 동안 음악활동의 전환점이 되는 3집앨범 《더딘하루》를 만들어 발표 한다. 지난시절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이 앨범에서 그녀는 제작 전과정을 직접 주도하면서 진정한 음악인으로서의 자세에 눈을 뜨게 된다. 미국 유학 중에도 음악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계속 되어 그녀는 곧 새로운 실험에 착수 한다. 국내 최초의 힙합 앨범이라 할 수 있는 하우스풍의 4집 《Begin》을 발표한 것. 이 앨범은 양희은의 소개로 알게된 흑인음악 프로듀서 김홍순과의 공동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다양한 표현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 ​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을 거쳐 대중들과의 접속을 다시 시도한 앨범이 바로 ‘언젠가는’5이 수록된 5집이었고, 역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이즈음 이상은은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재일교포 저널리스트 강신자씨와 인연이 되어 일본 아티스트(와다 이즈미6, 다케다 하지무7)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데, 5집이후 2년뒤 발표된 6집은 그들과의 본격적인 합작품이다. 바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중 하나로 꼽히는 6집 《공무도하가》8. 이 앨범에서 그녀는 앨범 수록곡이기도 한 〈보헤미안〉처럼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앨범 가득 담아냈으며 이 앨범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 국내에는 라이센스로 들어와 소개됐다. 1997년, 그녀의 또 한장의 명반이 발표 된다. 그녀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7집 《외롭고 웃긴 가게》9. 이 앨범에서 그녀는 자신이 바랬던 ‘내면을 그린 추상화 같은 음악’을 완성한다. 그녀의 새로운 음악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이 앨범을 통해 그녀는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진정한 뮤지션으로 다시 한번 태어나게 되었다. ​ ​ 한편, 그녀는 전곡 영어앨범 8집을 내면서 ‘이상은’이라는 이름 대신 ‘리채(Lee-Tzsche)’라는 생소한 이름을 갖고 우리에게 돌아온다. ‘Lee-Tzsche(리채,リ-チェ)’라는 이름은 외국에서 활동이 많아지면서 쉽게 부를수 있는 영어 이름이 필요해 만든 것으로, ‘리’와 ‘채’는 부모님의 성씨에서 한 자씩 딴 것. 영어 표기의 ‘tzsche’는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의 이름 일부를 차용했다고 한다. 그간 이상은은 영국의 유명 레코드사인 버진(Virgin)사와 음반계약을 맺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해 있었다. 일본에서 발매된 8, 9, 10집 역시 도시바EMI에서 나온것으로 국내에는 라이센스로 소개 됐다. 또한 한국 음악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영화 ‘화이팅 에츠코(がんばっていきまっしょい)’의 영화음악을 맡아 ‘어기여디어라’ 영어버전인 〈Ogiyodiora〉10가 주제곡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이 곡을 포함한 이상은의 OST앨범 《Give it all》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상은은 일본에서 활동 하면서도 일본어로 노래부르지 않았고, 대중적인 인기를 목적으로 활동한 것이 아닌 라이브 공연 위주로 순전히 음악성만으로 인정을 받아 활동해 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2000년도에는 다시 영국으로 미술유학을 떠나기도 하였다. ​ ​ 일본 활동을 마치고 귀국 후 이상은은 자신이 있던 주류 음악계로 가지 않고 주로 인디씬에서 활동 한다. 소규모 공연을 계속하는 한편, 여행작가로, 라디오 DJ로, 미술과 음악, 영화, 사진 등 서로 다른 예술 영역을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왔고,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 해왔다. 꾸준히 발표된 이상은의 앨범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실험과 사색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으며, 때문에 그녀의 음악을 처음 접한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아이돌 댄스가수로 시작해, 서정적인 발라드, 포크, 재즈, 록 장르를 선보이기도 하고, 동양적 색채를 표방하며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철학적인 음악도 선보였다. 실험적인 사운드를 즐기는 몽상가에서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 달콤한 예술가가 되더니, 돌연 파격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여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최근에는 빈티지한 사운드로 다시 한번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는 등, 자기발전을 위한 그녀의 오랜 여정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 ​ 2009년에 ‘Breeze Music (브리즈뮤직)’이라는 인디레이블을 만들어 14집 앨범부터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발매 하고 있으며, 2014년 2월, 4년 만의 신작인 15집 《lulu》11에서 그녀는 모든 수록곡의 작사·작곡뿐 아니라 편곡과 녹음, 사운드메이킹, 믹싱 등 앨범작업 일체를 홈레코딩으로 홀로 다 해내는 또 다른 도전을 이뤄냈다. ​ ​ 2015년 7월에는 전통예술을 중시하고 대중가수에게는 문턱이 높은 곳으로 알려진 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단독 공연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갖춘 아티스트로 평가 받는 이상은은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기존 자신의 레퍼토리를 국악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전통음악에 대해 많은 공부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이상은은 이를 새앨범 작업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12 월간객석 10월호 인터뷰에 의하면 16집 앨범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13 2019년 10월 5년 만의 신작 EP앨범 《fLoW》를 발표했다. ​ ​ 가수 이상은 결혼 남편 남자친구 열애설 연애 이상은 자녀 자식 아이 아기 ​ 이상은 결혼 하지 않은 미혼이다.가수 이상은이 “12살 연하 남친이 있었다”고 고백했다.이상은은 지난 12일 방송한 MBC ‘놀러와’에 출연해 12년 연하의 전 남자친구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이상은은 “그 남자를 처음 봤을 때 비록 어린 친구지만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사귈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그 남자가 ‘나는 누나가 없으면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귀었다”고 털어놨다. ​ 이상은 리즈 과거사진 리즈 젊은시절 ​ 이상은 근황 ​ 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들이 ‘열린음악회’에 출연한다.20일 방송되는 KBS1 ‘열린음악회’에서는 지난 8일 녹화한 무대를 공개한다. 김원준, 이승훈, 추가열, 하이디, 이범학, 양준일, 이상은 등이 출연한다. ​ ​ 먼저 김원준이 히트곡 ‘Show’로 무대를 연다. 이승훈이 ‘비오는 거리’를, 추가열이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부르는 데 이어 이승훈과 추가열이 함께 ‘일어나’를 열창한다. ​ 하이디는 ‘진이’로 흥을 돋우며 이범학은 ‘이별 아닌 이별’을 들려준다. 이범학과 하이디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무대를 꾸민다. ​ ​ 전성기를 맞고 있는 양준일은 ‘리베카’와 ‘Dance With Me 아가씨’ 그리고 ‘Rocking Roll Again’ 무대를 펼친다.이상은이 ‘언젠가는’과 ‘넌 아름다워’로 특유의 음색을 들려준 후에는 김원준이 다시 등장해 ‘세상은 나에게’와 ‘모두 잠든후에’로 ‘열린음악회’의 문을 닫는다. ​ ​ 이상은 인스타그램 주소 ​ https://www.instagram.com/leesangeun.official/ ​ ​ 인쇄

이상은 결혼 루머와 근황

* 이상은의 인생 살아가는 법

이상은: “그리고 “39세가 되니, 앞으로 40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10대 막바지에 찾았던 그곳(뉴욕)에 가서 다시금 내면을 채워 보고 싶었어요.”

이상은: “기나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인생으로 너무 멀리 보면 힘이 빠지니까 십년씩 끊어서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리고 (십년 안에서) 목표를 정하는 거죠.”

이상은: “그리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서 자기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무척 좋아요. 사실 (인생에서 아쉬운 점들중에는) 내가 못해 봐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이상은: “물론 본인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괴룁기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게 되죠.”

이상은은 아티스트로써 손색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또 현재도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으로 그런 큰 업적을 쌓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가수 이상은 사진

* 가수 이상은의 의외의 모습, 자본론

게다가 이상은은 유명한 독서광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자본론’에 대한 책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죠.

강상구 작가의 (레디앙미디어)

이상은 추천사의 한 구절

–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아야겠다는 사람에게 좋은 길라잡이

– 책장을 덮은 다음에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하나의 벽돌이 되어 버린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의미있게 바꾸고, 또한 본인 인생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싶어질 것이다.

평소에도 이상은이 작사와 작곡을 하고, 또한 책도 많이 읽으면서, 시간을 허투로 버리지 않는 것 같네요.

* 가수 이상은 결혼하지 않은 이유

마지막으로 이상은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가수 이상은 남편은 루머임).

원래 12살 연하의 띠동갑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상은이 남자친구의 존재를 쿨하게 공개하기도 했죠.

다만, 결국엔 이별을 하게 되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네요.

가수 이상은 남친 결별 이유

. .이상은: “남친과 이별한 이유는 취향이 달라서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생각이 달라졌죠. 사실 그 친구는 지금도 클럽에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저는 그렇지 않게 됐거든요.”

결국 과거에 이상은도 클럽을 좋아할 때는 둘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이상은 역시 나이를 먹게 되면서 취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결국 이것이 이상은 남친과의 결별 이유가 되었네요.

이상은: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어요. 아직은 결혼보다 연애가 좋거든요. 그리고 결혼은 연애와는 달리, 여러가지 준비가 많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아직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이상은처럼 음악과 책을 중심으로 이런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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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호텔 이상은 게스트로 출연 !! 가수 이상은 나이 키 이상은 담다디 이상은 리즈 시절 가수 이상은 결혼은 아직~

tvN 새 예능프로그램 ‘달팽이 호텔’이 오는 30일 첫방송을 알린 가운데 가수 이상은을 비롯 게스트로 송소희, 노회찬, 김재화,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출연을 예고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달팽이 호텔’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계각층의 셀럽들이 산골짜기 작은 호텔에서 여행을 통해 만나는 과정을 담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예능 대부 이경규가 총지배인을 맡고 성시경, 김민정이 호텔리어로 합류해 게스트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선사하는 세상에 하나 뿐인 호텔을 운영한다고 하네요~

그동안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원조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은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달팽이 호텔’에 출연했다고 전해졌는데 데뷔 30년만에 처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한 이상은은 마치 집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투숙객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며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닌 소탈한 ‘인간 이상은’의 모습으로 매력을 뽐내 관심을 모았다는 후문입니다.

데뷔 30여년만에 ‘달팽이 호텔’을 통해 처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 가수 이상은은 1970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49살이며 키는 178cm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989년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열린 제 9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연해 ‘담다리’로 대상을 수상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상은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꽤 큰 키와 보이시한 외모, 그리고 걸크러시한 목소리로 주목을 모았는데 당시 이상은이 했던 멜빵 청바지와 청자켓은 여학생들의 패션잇템이 되어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리즈 시절 가수 활동 외에도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CF, 라디오 DJ, 쇼프로 MC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던 이상은은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는 연예계 생활과 성대결절로 어려움을 느끼며 1990년 무렵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에서 지난 시절 그토록 하고 싶었던 미술공부는 물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본명 대신 ‘리채(Lee-Tzsche)’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귀국 후 이상은은 자신이 있던 주류 음악계로 가지 않고 주로 인디씬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소규모 공연을 계속하는 한편, 여행작가로, 라디오 DJ로, 미술과 음악, 영화, 사진 등 서로 다른 예술 영역을 가로질러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오고 있으며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습니다. 이상은이 발표한 6집 앨범 ‘공무도하가’와 7집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는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선정돼 주목을 모으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상은은 결혼적령기를 넘은 나이와 40대 임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활기 넘치는 모습에 종종 결혼을 하지 않았나 오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상은은 아직 미혼으로 과거 아직 싱글인 이유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음악 하는 게 너무너무 좋다. 15집, 16집 계속 작업을 할 거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내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 내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먼저 나를 찾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고 하네요~

또한 이상은은 ‘담다디’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떠났을 것이냐는 질문에 “담다디가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반대로 ‘담다디’는 넘어서야 할 짐과 고민을 동시에 부여했다”며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반짝 가수로 끝났을 것이다. 일상처럼, 취미처럼, 그렇게 오래토록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힘들긴 해도 이렇게 계속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음악은 제 천직이 아닌가 싶네요”라며 속마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한편 가수 이상은이 오랜만에 방송 출연을 예고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달팽이 호텔’은 오는 30일 첫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50분에 tvN에서 방송될 예정입니다.

마흔 넘은 ‘담다디’ 이상은 “왜 싱글인가” 묻자

[사진=박종근 기자]

“따라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가수 이상은을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랬다. 단순히 “연예인을 보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노래가 좋고, 음악이 좋고, 거기에 깔린 예술혼이 좋다는 팬들의 ‘우회적인 고백’이었다.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 이상은(42)을 만났다. 1m78㎝, 껑충한 키였다. 인사를 건넸다. “올해가 데뷔한 지 꼬박 25주년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는 싱긋이 웃었다. 그 웃음 뒤로 ‘여러 이상은’이 떠올랐다. 담다디, 공무도하가, 화가 지망생, 라디오 DJ, 지금껏 정규앨범 14집을 낸 아티스트 등. 그래서 딱 하나의 이상은만 묻진 않았다. 이리저리 색깔을 바꾸며 달려온 ‘이상은의 진화’를 물었다. “따라가면 안 돼?”라는 팬들의 고백에, 그 또한 고백으로 답했다.

장소 협찬= 클로리스 홍대점

●‘담다디’에서 ‘아티스트’로 진화했다. 가수 이상은의 날개는 뭔가.

“내겐 극단적으로 다른 두 날개가 있다. 한쪽 날개는 보헤미안이다. 예술만 추구하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힐링(healing·치유)에도 관심이 많다. 또 하나는 무척 현실적인 날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실질적으로 돈이 되고, 외국에 나가 유명 음반사와 일을 하는 거다. 내 안에는 그런 두 날개가 함께 있다.”

●지난해 말 이틀간 열린 콘서트의 주제가 하루는 ‘필링(Feeling)’, 또 하루는 ‘힐링(Healing)’이었다. 왜 감정과 치유인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불렀다.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TV와 라디오, 여기저기서 나를 불렀다. 그때 한 여자아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비싼 명품 선물을 내게 줬다. 유치원생인 딸아이가 자폐 증세가 있는데, ‘담다디’를 듣고 밝아지고 좋아졌다고 했다. 나중에는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는 것까지 봤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음악에 치유 기능이 있다는 걸.”

●길을 일러 주는 ‘등대’가 됐나.

“고2 때부터 그룹 들국화와 한영애 음악을 좋아했다. 그 반대편에는 ‘가요톱 10’(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있었다. ‘담다디’를 불렀을 때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사방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정신이 없었다. 너무 바빴다.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이걸 선택하고, 저걸 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길을 가라고 일러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다 보니 내가 ‘가요톱 10’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더라.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원하는 길과 다르다는 걸.”

●길을 잃었을 때 힘들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과 FM 라디오 심야방송의 DJ를 하는 것, 둘 사이의 차이를 그때는 몰랐다. 힘들었다. 길을 찾는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줄은.”

그래서 이상은은 음악을 접기로 했다. 인기는 올라갔지만 오히려 “마모되고 소모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89년 도망치듯이 미국 뉴욕으로 떠난 이유다. “음악을 포기했다. 대신 미술을 택했다.” 사실 그의 부모도 미대에 가길 바랐다. 그런데 ‘담다디’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니까 부모는 어이없어 했다. 뉴욕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래도 허전했다. 뒤늦게 알았다. 미술도 그에겐 음악을 위한 도구였다. 이상은은 뉴욕에서 일본으로 갔다. 다시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10년간 머물렀다.

●일본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나.

“나는 왜 노래를 하는가? 거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했고, 어릴 적부터 물었다. ‘나는 왜 노래를 하지?’ 늘 그 물음을 던졌다. 인기도 좋고, 잘나가는 것도 좋다. 그런데 뭔가 의미가 있어야 했다. 그 의미가 뭘까. 그걸 찾고 싶었다.”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어릴 적부터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하다. 조용한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도 잦다. 그래서일까. 그의 눈은 예민하다. 타인의 감정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했다.

●일본에선 멘토를 만났나.

“그렇다. 앨범 ‘공무도하가’의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다. 그는 세계적 록그룹인 핑크 플로이드 공연에서 조명을 맡을 만큼 실력자다. 그가 조언해 줬다. ‘상은이는 레코딩할 때 외국에 나가서 해라.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라. 예술가는 환경이 참 중요하다. 환경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내겐 그 말이 큰 도움이 됐다.”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됐나.

“음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줬으니까. 창작-재충전-창작-재충전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휴식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노하우를 배웠다.”

●휴식과 재충전, 결국 사색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사색이 필요한 거다.”

●무엇에 대한 사색인가.

“나의 감정에 대해 사색하는 거다. 나도 많이 우울해 봤다. 그 때문에 가슴 아플 때도 많았다.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생길 때마다 나는 노래로 정리한다. 노래로 정리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내겐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치유의 과정을 설명하면.

“누구나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리면 일단

앓는다. 앓는 것은 똑같다. 다만 나는 앓은 뒤 보고서를 쓴다. 그 보고서가 바로 내 음악이다. 다시 말해 ‘이상은의 삶에 대한 보고서’다. 그러니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동시에 나의 인생 보고서를 읽는 거다.”

●보고서에는 주로 무엇이 담기나.

“상처와 아픔이란 주제다. 앓은 흔적이 담기는 거다. 실제 내가 겪은 이야기, 내가 아팠던 이야기를 할 때 팬들로부터 더 많은 피드백이 오더라. 관념적으로 대충 그렇겠지 하는 얘기 말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실질적인 이야기를 담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왜 쉽지 않나.

“나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상처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관통하는 통찰의 눈도 있어야 한다. 아픔을 겪을 때도 ‘아! 그렇구나’ 하고 뭔가를 깨쳐야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아픔과 상처가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된다.”

●평소 내성적인가. ‘담다디 이상은’은 꽤 외향적으로 보였는데.

“무지 내성적이다.”

한동안 ‘이상은=담다디’의 등식이 성립했다. 그에게 ‘담다디’는 어떤 의미일까. “음악성을 열렬히 추구하던 시기에는 데뷔곡 ‘담다디’가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감당이 안 됐다. 그런데 돌아보면 ‘담다디’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하면 ‘담다디’가 참 고맙다.”

●올해가 데뷔 25주년이다. 가수 이상은은 40대다. 돌아보면 어떤가.

“20대는 승부욕에 불탔다. 내가 한 일들과 싸우느라 고생한 시간이었다. 내 음악을 뛰어넘고 싶었다. 일종의 기록 경신을 꿈꿨다. 30대에는 ‘기록’이나 ‘앨범 판매량’ 같은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소박해지는 30대였다.”

●그럼, 40대의 이상은은.

“갈수록 ‘어른들 말씀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께서 늘 ‘보편성, 보편성’ 하셨는데, 이젠 내 것에 그 보편성을 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보편성’이란 말이 요즘 나의 키워드다. 그건 인기를 위한 ‘대중성’과는 다른 거다. 이상은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이의 가슴을 적시는 보편성. 그게 40대 이상은의 숙제다. 준비 중인 15집 앨범도 그런 맥락에서 하고 있다.”

●보편성을 어떻게 섞나.

“가령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라. 배우 조니 뎁이 나온다. 그는 해적이란 보편성을 띠지만 조니 뎁만의 색깔이 있다. 나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이상은의 지문이 묻어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보편적인 음악 말이다.”

●50대 혹은 60대가 됐을 때 ‘이상은의 음악’이 어떠하길 바라나.

“‘작가 느낌이 물씬 난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될까?”라고 포석을 먼저 깔았다. 이상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궁금하다. 왜 싱글(미혼)인가?” 의외로 그는 편하게 답했다.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음악 하는 게 너무너무 좋다. 15집, 16집 계속 작업을 할 거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내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 내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먼저 나를 찾고 싶다.”

●나를 찾는다는 게 뭔가.

“내 노래를 찾고, 내 음악을 찾는 거다.” 가수 이상은의 나침반은 분명했다. 필링과 힐링. 그 사이에 난 오솔길을 그는 이미 가고 있었다. 노래로 발자국을 남기면서 말이다.

이상은

1970년생이다. 재동초등-덕성여중-창덕여고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스타가 됐다. 이후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보헤미안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노래에는 일상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6집 앨범 ‘공무도하가’와 7집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는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선정됐다. 현재 라디오 방송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를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하니 말랑한 게 좋아져 ‘톡식’보단 ‘브로큰 발렌타인’ … ”

지난해 연말 방송사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톱(TOP) 밴드’에서 이상은은 특별심사위원을 맡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심사위원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긴 어렵다. 과연 그는 누구를 지지했을까. 인터뷰에서 물었다. 이상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나는 ‘브로큰 발렌타인’이 좋았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2008년 아시안 비트 그랜드파이널에서 대상을 받은 실력파 밴드였다. 16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톡식’과 맞붙었다.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평했던 이 대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은 졌다. ‘톡식’은 개성이 넘쳤고, ‘브로큰 발렌타인’은 안정감과 무게감이 있었다.

이상은은 “내가 20대나 30대였다면 ‘톡식’을 좋아했을 거다. 그런데 40대가 되고, 아침 라디오 방송(이상은의 골든디스크, 오전 11시~낮 12시 91.9MHz)을 진행하다 보니까 취향이 달라지더라. 지금은 좀 더 보편적이고 말랑말랑한 게 좋다. 나도 이젠 어른이 되려나 보다.”

이상은은 아침 라디오 방송을 2년간 진행하면서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밤늦게 아이들과 놀고 그러면 안 되죠”라고 건네는 농담 너머에서 언뜻 ‘익어가는 이상은’이 보였다. 라디오 방송 진행은 여러모로 그를 바꾸었다. “구구절절한 온갖 사연이 내게 온다. ‘이번에 또 고시에 낙방했어요’ ‘양품점에 손님이 안 들어와요’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등 내용도 다양하다. 절반은 ‘이상은씨 좋아해요’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는 게 힘들어요’다. 그럼 격언집 같은 걸 읽기도 하면서 ‘힘내세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라고 얘기해 준다. 나는 그런 게 좋다. 방송과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상은의 얘기는 다시 ‘치유’로 돌아갔다. “남의 말을 빌리기보다 내가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들을 노랫말에 녹이고 싶다. 그럴 때 치유력이 더 커지는 법이니까. 결국 노래 가사는 경험에서 나온다. 그러니 내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중은 3년이면 바뀝니다 중요한 건 ‘계속 가는 것’이죠”

“‘나가수’에 나갈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상은은 “나는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그는 가수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얘기했다. “앨범을 내면 대중이 좋아하는 곡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 좋아하고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아이돌그룹·걸그룹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열광은 3년마다 계속 바뀐다. 거기에 연연하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계속 가는 것’이다. 계속 가려면 매니어 팬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팬은 중요하다.”

이상은은 ‘계속 가는 자’의 심정을 말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 것에 겁을 먹는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없어진 걸 보지 말고, 내게 있는 걸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달라지더라. 40대가 됐을 때 나에게 남은 것들을 소중하게 끌어안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게 남은 걸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더 소중해지더라.” 그는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본에선 10년씩 내다보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다.”

[삶도] 이상은 “담다디를 버리고 30년, 나를 지켰죠”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20>데뷔 30년 뮤지션 이상은

고3 소녀에게 어두운 밤, 강당은 구원이었다. 쳇바퀴 같은 입시 준비에 숨이 막힐 때마다 창문을 넘어 그곳에 들어갔다. 혼자만의 무대에서 그는 휘트니 휴스턴도 되고 마돈나도 되었다. ‘아, 시원하다!’ 바다의 청량감, 가슴이 탁 트이는 해방감을 그때 맛봤다.

‘담다디’로 대학 1학년 때 오른 아이돌의 자리. 열여덟에게 한국의 ‘스타 시스템’은 감옥이었다. ‘못해요’가 허용되지 않는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다. 학교의 강당 같은 ‘산소호흡기’도 없었다. 노래는 더 이상 행복이 아니었다.

‘번아웃, 과부하, 방전, 트라우마.’ ‘담다디의 시절’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이러하니, 이상은(48)이 인기 절정의 때 훌쩍 떠난 이유가 짐작됐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옥죄는 시스템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기보다, 그는 다 버리고 사는 길을 택했다.

이미 ‘글로 배운’ 인기의 허망함도 선택을 부추겼다. “고등학교 때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그룹 ‘아하(A-Ha)’가 이런 말을 했죠. 인기란, 바늘을 들고 있는 사람들 위에서 풍선을 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덕분에 인기의 위험한 이면을 알고 있었어요.”

탈출구 뉴욕에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거기서 진짜 가고 싶은 길을 찾았다. 그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가수가 아닌, 실험하고 창작하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강당의 무대에서 홀로 노래를 부를 때의 시원함을 다시 느꼈다.

데뷔 이래 이상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나를 잃고 인기를 얻는 건 그에게 무의미했다.

“자기를 지킬 수 없을 때 번아웃이 오는 거잖아요. 그럴 땐 떠나야 자기를 발견할 수 있죠. 어렸을 때 ‘담다디 (시절)’ 같은 개고생을 하면 누구라도 일찌감치 철학자가 돼요. 하하.”

인기라는 걸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뮤지션 이상은의 길은 강변가요제 대상이라는 출발점부터 줄곧 내리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접 만들기 시작한 3집부터 15집까지 그는 제법 크고 탄탄한 존재의 집을 쌓았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든 이들은 그의 음악으로 위로받고 위안을 얻었다. ‘마음의 여행’은 그의 음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솔직한 내 얘기를 담았기 때문에 공감을 주는 것 아닐까요? 내 음악의 주제는 늘 ‘치유’예요. 사람들이 듣고 마음의 상처가 낫기를 바라면서 만들죠. 번아웃이 왔을 때, 제가 음악으로 치유받았듯.”

데뷔 30년, 어떻게 이상은은 대중예술이라는 생존의 경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말괄량이 삐삐’와 같은 차림과 눈빛으로, 그가 껑충껑충 걸어 들어왔다.

◇“우리도 팬질 30년”… 함께 여행으로 자축

-여기 홍대에 아직도 사나요?

“네, 18년 간 한 집에서 살고 있죠. ‘홍대 터줏대감’이에요. 어느 새 홍대 인디신(Indie Scene)의 대모가 돼 있더라고요. (웃음)”

-홍대 분위기가 그만큼 잘 맞는 거겠죠?

“새로운 트렌드나 문화가 어떤지 바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평범한 주택가는 답답하게 느껴지죠. 오래 살다 보니 집이 정말 피부처럼 편하기도 하고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데 걔들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어요.”

-올해가 데뷔 30주년이 되는 해예요. 그런데 조용히 보낸 것 같아요.

“30주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올해는 좀 멈춰서 그간의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있었던 일을 점검도 해보자는 뜻에서 제 자신을 좀 내려놓고 살았어요. 실은 그간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이상은은 그간 2년에 한번씩은 정규 앨범을 내왔다. 그런데 2014년 2월, 15집 ‘lulu’(루루)를 발표한 이후 쉼표를 오래 찍는 중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했을 텐데, (같은 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탄핵 사태까지 겪으면서 그 전처럼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살 상황이 아니었어요. 생각할 것도 많았고요. 나름대로 치유하는 시간을 보냈죠.”

-많은 이들이 기념 음반을 내기도 하는데요.

“저는 팬들과 여행을 다녀왔죠! 팬클럽에서 올해가 딱 되니까 그러는 거예요. ‘언니만 30년이 아니에요. 우리도 30주년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를 기념해야겠어요!’ 그러더니 기념 여행을 기획하더라고요. 저도 그 틈에 끼어서 3월에 3박 4일간 팬들과 태국에 다녀왔죠.”

-팬들과 해외여행이라니, 대단하네요.

“제 팬들이 좀 극성스럽긴 하죠. 하하. 또 제가 팬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공연하면 뒤풀이를 팬들과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여러 가지로 잡음이 날 수도 있는 행사잖아요. 30여명이 해외여행을 가는 거니까. 그런데 철저하게 팬클럽에서 기획해서, 저는 그저 들러리로 따라갔다 온 느낌이랄까요. 가보니까 ‘아, 이런 게 내가 할 수 있는 팬 서비스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면 성덕이다. 30년 ‘팬질’ 끝에 우상과 함께 해외여행이라니. 한국에서부터 준비해간 ‘30주년 기념’ 플래카드 같은 건 약과였다. 팬들은 현지 카페를 빌려 ‘깜짝 콘서트’까지 기획했다.

-팬들과 보낸 3박 4일은 어땠나요?

“제가 한국에만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중간중간 외국도 많이 나가고 일본 활동도 했잖아요. 또 사라졌다가 들고 온 음악은 어렵고… (미소) 그러니 팬으로서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이번 여행으로 팬들에게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문은 어찌나 많던지요. 하하. 팬들에게 저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했죠. 그런 시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저도 아주 좋았고, 후기를 보니 팬들도 정말 행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극성스런” 팬들은 ‘2차’까지 추진했다. 그의 데뷔날인 8월 6일 제주에서 작은 음악회를 연 것이다. 1988년 강변가요제가 열렸던 날이다.

-팬의 입장에서, 팬의 역사 30년을 들을 기회였겠네요.

“팬들이 정말 각양각색 각계각층이에요. (음악)업계의 룰을 따지자면, 팬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보통인데 벽을 허물고 인간적인 스킨십을 할 기회가 생기니 정말 행복해하더라고요. 팬들이 자신들의 30년 성장을 자축하고 기념하는 게 저에게도 의미가 깊었어요. 데뷔 초에는 팬들에게 엄청난 거리감을 느꼈었죠. 학교도 안가고 공연 보러 오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혼내기도 하고요. 지금은 서로 고민 상담도 하는 ‘어른 대 어른’의 관계가 됐죠.”

◇야자시간, 강당을 ‘노래방’으로 만든 소녀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어릴 때야 하고 싶은 게 많잖아요. 저도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한 시절이 있었고 흘러 흘러 가수가 됐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림을 해보려고 (미대) 준비도 했죠. 어우, 그런데 저하고는 안 맞더라고요! 석고상 하나 그리려면 5시간 정도 앉아 있어야 하거든요. 정말 답답했죠. 그런데 억지로 참고 애를 쓰며 그림을 그렸죠. 하루는 그게 폭발했어요. 화실에서 ‘너무 재미없다.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을 부추겼죠. ‘얘들아, 선생님도 없으니까 우리 아이스바 사다 먹으면서 놀자!’ 제가 탁자에 올라가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했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은 막 재미있다고 박수를 쳤죠. 그런데 그게 좋더라고요. 그때 알게 된 게 있어요.”

-뭔가요?

“너무 애를 쓰면서, 고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건 자기 길이 아니라는 거요.”

-무슨 뜻이지요?

“노력하고 있다면 답을 못 찾은 것이고, 답을 찾았다면 노력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림을 그리는 나는 늘 엄청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통을 참아가며 하고 있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는 다들 땀 흘려 애를 써서 이루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저도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생각했는데, 발산하는 게 저한테는 훨씬 즐거운 일이었어요.”

고3 들어 그는 결국 진로를 바꿨다. 예ㆍ체능계이면서도 실기를 보지 않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야자(야간자율학습) 같은 시간에 틈이 날 때마다 노래 연습을 했어요. 강당에 들어가서. 혼자 휘트니 휴스턴, 듀란듀란, 컬처 클럽, 마돈나의 노래를 불렀죠. 엄청 시원한 거예요. 노래 부르는 일이 되게 힘이 되더라고요. 강당 안의 오래된 건물 냄새도 무척 좋았죠. 제가 (서울) 창덕여고를 나왔는데 강당이 무척 고풍스러웠거든요. (이듬해) 강변가요제 나갈 때에는 그러니까 사실 어느 정도 보컬 연습이 돼 있었던 셈이죠. 하하.”

-얼마나 불렀어요?

“거의 매일요! 10분이든, 30분이든. 못 견딜 때 가서 답답함을 노래로 풀었어요. 강당이 제 개인 노래방이었던 거죠! (웃음)”

-강변가요제에 나간 계기는 뭐예요?

“대학에 입학한 직후엔 정신이 없었어요. 적응하느라고. 그러다 5월쯤 복학생 선배가 ‘강변가요제 나갈 애들 있으면 연락해라’ 하더라고요. 취미로 작곡을 했던 선배였거든요. 서너 명이 ‘저요’, ‘저요’ 하더라고요. 저는 고민하다가, 나중에야 용기를 내서 찾아갔더니 ‘야, 어떡하냐. 발라드는 다 나갔다’ 하더라고요. 그때는 ‘발라드의 시대’였거든요. 하나 남은 게 ‘담다디’였어요.”

-처음 들었을 때 어땠어요?

“원래는 굉장히 느린 곡이었어요. 미완성의 느낌인. 그래서 선배한테 이걸 좀 빠르게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당시 팝을 많이 들었던 때라서, 팝 음악처럼 편곡해보자는 거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저만 강변가요제 본선에 진출을 한 거예요.”

그 시절 TV 속의 이상은은 전복(顚覆) 그 자체였다. 남성 출연자들을 압도하는 키(178㎝)에 쇼트커트, 하이톱 운동화를 신은 그는 탬버린을 들고 무대를 휘저었다.

-강변가요제 무대에 섰을 때 어땠는지 기억 나나요?

“맨날 강당에서 혼자 부르다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니까 일단 기도를 엄청나게 많이 했죠. 너무 무서워서.”

-무서웠다니… 떨리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던데.

“아유… 일단 가요제 전에 노래 연습을 엄청 많이 했죠. 그리고 세뇌했죠. 연기를 하는 거라고. 고등학교 때 음악 잡지를 많이 읽었는데, 마돈나님이 이렇게 얘기한 구절이 있었어요. ‘노래는 3분 연기다.’ 나도 연기를 한 거죠.”

-쇼트커트 머리에 그렇게 길다란 여성 가수는 거의 처음이었어요.

“아, 그때 머리! 그거 집 앞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놔서 ‘으악, 이거 뭐냐. 이러고는 (가요제에) 못 나간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숱이 많은데 너무 곱슬거리기까지 해서 무스로 막 눌렀더니 더 뜨고… 결국 하는 수 없이 그 머리로 나간 거죠. 일부러 띄운 게 아니에요. 하하. 거기다 그 (흰) 바지는 체육복이었어요. 의상이 별 게 없었으니까요. 옷도, 머리도 지금 생각하면 엉망진창이었죠!”

-그런데 자유분방해 보여서 좋았어요.

“무대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불렀어요. 무대에 오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엄청 좋아해서 속으로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어요.”

-대중의 반응을 처음 직면한 거죠.

“네, 혼자 강당에서 노래 부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죠. 무대에서 저를 보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저도 신기했어요.”

강변가요제 현장에서 이상은을 바라보는 관중의 모습은 지금 봐도 ‘저런 별종이 다 있나’ 하는 것 같다. TV로 보는 시청자들도 다르지 않았을 거다. 심지어 당시 사회를 봤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수상 소감에 이어 “카메라를 향해서 한 사람만 불러보라”고 권하자, 이상은은 “마이클 잭슨~!”이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아직도 유명한 일화다.

-그때 왜 마이클 잭슨을 불렀어요?

“중2 때부터 광팬이었어요. 한 번 만나보는 게 꿈이었죠. 그 때는 미국 가는 것, 거기다 마이클 잭슨을 만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거든요. ‘이제 상 탔으니까 마이클 잭슨을 만날 수 있겠구나’ 오로지 그 생각만 한 거죠. ‘기다려라, 내가 간다’ 이런 뜻으로 불렀어요. 물론 그 이후에도 못 만났죠. (웃음)”

◇‘담다디’의 성공이 준 번아웃… 훌쩍 유학길에

-수상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죠?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공적으로는 성공했는데 사적으로는 불행한 경우였죠. 나를 돌볼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어요. 공적인 데에 다 써버려서. 그 시절에는 (신인이) 거절하면 건방지다고 하던 때였으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번아웃 된 거죠.”

-그 시절이 삶에 준 건 뭔가요?

“청춘이란 원래 ‘내가 원하는 게 이걸까’, ‘내가 가는 이 길이 맞을까’, ‘아니라면 어딜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의 연속이잖아요. 그래서 청춘이 불안한 거죠. 그 때 선택한 ‘일’(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일부로 놓고서 나는 뭘 배웠나를 생각해봤죠. 그것이 나에게 준 교훈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고 무척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한때는 엄청 싫어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했죠.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그 시기가 실은 내 원동력이었다는 거예요. 그 일이 너무 싫으니 반대급부로 진짜 내 길, 강당에서 노래 부를 때처럼 시원하게 뻥 뚫린 느낌을 주는 길을 찾아가게 된 거죠.”

-그래서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거군요.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에 와있더라고요. 한 달 동안 코피를 흘렸어요. 그간 몸에 피로가 그렇게 쌓여있던 거죠. 그 시절 그림이 오래된 친구처럼 위로가 돼주더라고요. 쉬는 마음으로 미대(프랫 인스티튜트)에 갔거든요. 그런데 뉴욕에서 새로운 음악들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AFKN에서는 나오지 않던 것들이었죠. ‘도대체 이건 뭐냐’ 싶을 정도로 제겐 어마어마한 신세계였어요. 수잔 베가나 트레이시 채프먼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에 감동을 받았죠. 가사가 영문학적 가치를 인정 받아 책으로도 출간 된 레너드 코헨, 흑인 노예의 역사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밥 말리도 있었죠. ‘이거다!’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시 음악이 하고 싶어졌죠.”

불과 스무 살이었지만, 이상은은 대중 앞에 서본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이 이거라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루저’처럼 보이잖아요. (웃음) 세상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럼 나는 답변해줘야 하니까. 이제 겨우 (진짜를) 알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자기 손으로 만든 첫 앨범인 3집(‘더딘 하루’)을 들고 이상은은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때 ‘왕따’ 같은 기분을 느꼈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제가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 갭(차이)이 생긴 거죠. 정말 반응이 썰렁, 아니 냉혹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상당히 단련이 됐지만. (웃음)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싶어서 의기소침했던 시절이었죠.”

◇다 버리니 보인 싱어송라이터의 길

침체될 뻔한 그가 다시 용기를 갖게 해준 이가 강신자씨다. ‘가장 보통의 재일한국인’으로 꽤 알려진 재일교포 작가다.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사와 관련된 책을 집필 중이던 강씨가 이상은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강씨와의 만남이 일본 진출의 계기가 될 줄이야.

“언니(강신자)가 제 음악을 일본으로 갖고 가서 친구 가게에 틀어놨는데 팬이 생겼다는 거예요. 언니가 살던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은 (한국,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원래 새로운 문화에 개방적인 곳이죠. (일종의 문화교류 운동인) ‘크로스비트아시아’라는 활동도 벌어지고 있었고요. 나중에는 구마모토현에서 작은 공연까지 하게 됐는데, 불이 붙더라고요. 현장에서 팔던 앨범 시디(CD)가 ‘완판’되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강변가요제라는 대형 무대로 데뷔한 ‘아이돌 출신’이었지만, 일본에서 그는 작은 무대부터 시작하는 ‘인디 가수’가 될 수 있었다.

“적지만 내가 나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서서히 생겼죠. 5집 때는 한 대기업에서 홍보ㆍ마케팅 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메인 스트림(주류)과 접합할 기회였죠. 처음엔 고민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받아들였어요. 내가 곡을 만드니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생긴 거죠. 내가 쓴 가사와 멜로디를 지킬 수 있다면, 포장을 화려하게 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나온 음반이 ‘언젠가는’이에요.”

‘언젠가는’으로, ‘달라진 이상은’이 확실하게 대중에 각인됐다. 이후에도 신대륙 탐험에 나선 듯 발표하는 음반마다 실험이었다. 6집 ‘공무도하가’(1995년)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명반으로 꼽힌다. 타이틀곡인 ‘공무도하가’는 같은 이름의 고대가요를 가사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가락을 입힌, 전에 없던 대중가요다. 스물 다섯에 이런 곡을 썼다. 이 앨범은 평론가, 기자, PD, 애호가들이 만든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0위에 꼽히기도 했다. 10위 안에 든 여성 뮤지션은 그가 유일하다. 한 편으로는 일본 활동의 영역도 점차 넓어졌다.

-이상은씨 노래는 가사가 특히 좋아요. 어떻게 쓰나요?

“제일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에요. 저는 보통 가사를 써놓고 그 가사가 잘 흘러가게 곡을 붙이거든요. 글이 먼저여야 멜로디가 나와요. 그러니 곡을 만들 때 하고 싶은 말이 탄탄하게 있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갈수록 힘들어져요. 점점 신중해지기도 하고요. 15집(2014년)을 낸 이후에 (다음 음반을 내기까지) 그래서 길어지나 봐요.”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예전엔 억지로 많이 읽었죠. 남들한테 노출이 되는 직업이니, 부끄럽기 싫어서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흘러가듯이, 시원하게 하자고 마음 먹죠.”

-지금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종종 나오는 ‘언젠가는’에 이런 구절이 있죠.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그 가사 썼을 때가 겨우 스무 살 무렵 아니에요?

“‘담다디’같은 개고생을 하다 보면 누구라도 철학자가 돼요! (웃음) 번아웃이 준 거죠. 체력과 정신의 한계를 뚫고 지나 탈진된 상태에서 보이는 세계가 있죠.”

-가사의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제가 여행을 좋아해요. 떠나야 가사가 나와요. 왜냐하면, 자기가 있는 장소를 떠나야 자기를 발견하게 되거든요. 여기에는 내가 없어요. 이상하죠. 나는 여기 있는 사람인데, 왜 떠나야 보이는가.”

◇“번아웃은 나를 지킬 수 없다는 신호”

불현듯 그는 최근 하와이관광청과 함께한 프로젝트 얘기를 꺼냈다. 사연을 보낸 신청자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해 하와이 여행 기회를 선물하는 행사였다. 이상은도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런데 한 여성 신청자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녀를 딱 보니, 벌써 넋이 나갔더라고요. 왜 힘드냐고 물으니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0년 가까이 회사만 다녔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러면서 ‘번아웃이 왔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서른 중반 밖에 안 됐는데. ‘왜 사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놀라서 물었어요. ‘자살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그럴 기력도 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거의 만장일치로 그녀에게 여행을 보내주기로 했죠. 사람 하나 살렸다 싶었어요.”

-정말 그렇겠네요.

“자기를 지킬 수 없을 때 번아웃이 오는 거니까요. 저는 번아웃이 왔다는 말만 들으면 ‘아, 저 사람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안절부절 해요. 그 상태가 어떤 건지 아니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아니까요. 여기선 우리가 연기를 하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사회적인 역할, 가정에서 역할이 있으니까. 해외에 나가면, 한 30년은 젊어진 느낌이 들어요. 그 기분이 사람을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어 주겠어요? 그게 힐링이고, 치유지요.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서 ‘아,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왔어’ 하는 거죠.”

-이상은씨 음악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치유예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실제 제 음악을 듣고 마음의 상처가 나았다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간증’이죠. (웃음) ‘담다디’ 때부터 있었어요. 미국에서 살다가 네 살 때 한국으로 왔는데,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자폐증에 걸린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TV에서 제가 ‘담다디’를 부르는 걸 보고 나았다는 거예요. 아이 어머니가 선물을 싸 들고 고맙다면서 찾아온 적이 있죠. 지금은 커서 결혼도 했겠네요. 라디오 방송 진행할 때는 작가가 친해진 뒤에 그러더라고요. 유산으로 심각한 우울증이 왔는데 그때 ‘비밀의 화원’(2003년)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실제 9집 앨범 제목이 ‘Asian Prescription’(아시아 처방ㆍ1999년)이기도 했죠.

“맞아요. 3, 4집 때만해도 그런 생각은 할 겨를이 없이 공부하고 곡 쓰고 제작하기에 급급했죠.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저도 세상에게 받은 상처를 음악을 만들면서 치유했더라고요. 90년대에 일본에서 제 공연을 본 한 노부부가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표현이 있었죠. 오늘 이 공연을 보면서 우리가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엄청 기뻤어요. 그때 깨달았죠. 내 음악으로 사람들이 치유가 됐으면 해서 음악을 한다는 걸. 거기다 ‘10년, 20년 후에 들어도 촌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 생각만 하면서 음악을 해요.”

-‘사람들이 왜 내 음악에 치유받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아픔이나 상처를 겪어본 사람이 남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솔직한 내 얘기를 하니까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거겠죠. 아까 말한 ‘비밀의 화원’도 우울증을 겪던 후배를 응원하려고 만든 곡이거든요.”

간증이 잇따랐다는 ‘비밀의 화원’ 가사는 이렇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내 음악의 대주제는 ‘치유’

그는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무대에도 섰다. 2016년 8월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서 열린 ‘기억과 약속의 방’ 문화제다. 세월호 참사 1,000일에 즈음해서 열린 추모 문화제에도 참여했다. 거기서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의 ‘언젠가는’을 불렀다.

-세월호 참사는 이상은씨에게도 큰 충격이었겠죠.

“대한민국 전체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니었을까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단원고 문화제는… ‘아, 정말 내가 왜 갔을까’ 싶을 정도로 슬픈 무대였어요. 유족들이 누군가 참사의 진상을 덮으려고 한다며 농성을 했잖아요. 이게 말이 되나 싶었죠. 이들이 뭘 잘못했기에…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나. 너무 화가 나고 슬펐어요. 게다가 제가 노래 부르기 전에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순서가 있었는데, 정말 눈 앞이 (눈물로) 캄캄해졌죠. ‘언젠가는’이,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얘기거든요. 내 노래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 아이들의 부모님 앞에서 불렀죠.”

-국정농단 정국 때 탄핵 촛불집회 무대에도 섰죠.

“제게 정치는 너무 어려운 주제예요.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서 얘기를 하자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문화ㆍ예술계도 함께 바뀌어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죠.”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얘기군요.

“쇼크에, 쇼크에, 쇼크를 받았죠.”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보헤미안의 삶이 자유로운 건 장점이지만, 외로움도 있을 법한데요.

“그게 왜 없는지 저도 신기해요. 한때 너무너무 외로워서 고뇌하고 힘든 적도 있었죠. 지금은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나라가 어수선했기 때문일까요? 나 자신이 행복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 우울할 시간이 없다, 재미있게 살자는 거죠.”

-자신에게 음악이란 뭔가요?

“음악을 하지 않았어도 저는 존재했겠지만, 사람들은 세상에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겠죠?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음악이죠. 그래서 그만큼 책임감도 더 느끼게 되고요. 거기다 내 음악이 치유의 힘까지 있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해봐야죠. (미소)”

-아티스트 이상은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도가 있다면 뭘까요.

“제가 제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동심인 거 같아요.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동심이 없어지는 순간, 감수성도 소통 능력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는 공부하면 안 된다. 놀아라’ 이렇게 키우셨어요. 아이들이랑 해질 때까지 삼청공원에서 뛰놀다 집에 갔죠. 6학년 때 (반에서) 70명 중에 68등으로 졸업했어요. ‘어, 꼴찌는 아니네’ 했죠. 하하. 그 기억이 제 원동력이에요. 동심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죠.”

-음악은 언제까지 할 건가요.

“동심이 남아 있을 때까지! 노래할 수 있는 것, 시를 쓸 수 있는 것… 그건 내 안에 어린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죠. 모든 예술가는 다 그럴 거예요.”

그가 지금까지 낸 15개의 음반은, 그래서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사랑도, 이별도, 좌절도, 도전도, 여행도, 신비도, 용기도, 희망도 있었다. 그의 얘기와 역사는, 나의 것이기도 해서 우리는 위로받았을 거다.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뮤지션이 한 명쯤 있어서, 그가 자신을 잃지 않고 30년이나 노래해주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거뜬할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아파하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날아가는 우린 아름다워.’(‘인생은 아름다워’ㆍ2014년)

김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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