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유학 현실 | 🇳🇱 네덜란드 유학생에서 자퇴생으로 :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권태기 (나의 유학 일기) 설명 참고:) 96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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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대학교의 학부비용은 약 €6,000 ~ €12,000, 평균 €9,000 (약 1200만원) 으로 연간 학부비용이 2500만원 ~ 3000만원 정도인 영국대학교와 비교해 굉장히 저렴한 편이며 파운데이션 과정부터 총 학부기간이 포함되어 처음 비자신청시 총 4년 혹은 5년 기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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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상 속에서는 자퇴하게 된 이유뿐만 아니라, 저의 이야기도 조금 했어요.
영상이 길기도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처음부터가 아닌 7분 정도부터 보셔도 무방해요~
그리고 1.5배랑 2배속으로도 영상을 봤는데 속도가 괜찮더라고요! 지루한 거 싫어하시거나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배속을 높여서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한국어를 거의 안 써서인지 약간 한국말을 하는 게 어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점은 미리 양해 부탁드릴게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제 근황을 전해보자면, 지금 현재 저는 자퇴한 후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한국에 온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네요. ENFP 이자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제가 한국에 온 이후로 어째 더 우울해지고, 멘탈이 더 약해지고, 사람을 만나는 게 이제는 거부감이 들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집에 콕 박혀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요. 21세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사람마다 그 깊이만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원래도 심했던 우울증이 한국에 오고 나서 그 깊이가 더 깊어진 것 같아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요.
거의 3년간 꿈 꿔오고 오랜 시간 나만의 환상 속 네덜란드에 취해 그곳에서 허우적거린 터라 막상 와서 직접 지내보니 막 그렇게 좋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삶과는 잘 맞았어요. 제가 자퇴하게끔 만든 가장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학교’ 였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부터, 그리고 믿었던 교사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친한 친구들 마저도 그런 차별을 경험하는 모습을 본 이래로, 청렴하고 학생 관리를 잘해주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독서를 통해 더 알게 된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교육체계는 비슷했고, 학생들이 행복한 곳이라길래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냥 믿고 싶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학업을 마치기를 희망했고,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취업을 해서 먼 얘기지만, 가정을 꾸리는 꿈도 꿨어요. 하지만, 제가 학교 선택을 잘못한 걸까요? 주변 친구들에게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면 객관적인 의견을 주고 충고를 해주는데, 대부분 “학교가 너랑 맞지 않았던 것 같아. 네덜란드랑은 정말 잘 맞는 것 같은데… 네덜란드에 있는 다른 학교에 지원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권유를 해줘서 답을 하려고 막상 생각해보니 이제는 제가 그렇게 간절하게 네덜란드의 교육을 바라지도 않는 것 같더라고요. 생각하기도 전에 의심이 들고 대답하기 머뭇거려 하는 제 자신을 보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모든 짐을 다 가지고 가서 눌어붙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크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이제 그다지 설레지가 않고, 감흥도 없네요…
사실 이 영상은 제가 이번 4월과 7월에도 같은 주제로 (네덜란드와의 권태기) 촬영을 해봤는데, 영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더 늦기 전에 다시 최종적으로 찍고 올려요. 저는 2월 즈음부터 이미 자퇴 혹은 휴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학교에 크게 실망한 것도 없지 않아 있고, 그냥 헤이그 대학교가 대학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희망 직업과 학과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요. 그러다가 코로나19 이후로 심각한 인종차별이라기보단 작은 인종차별과 캣 콜링을 경험했어요. 또한, 안 그래도 제 기준에서 무책임하고 직업윤리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학교 관계자들은 더 무책임 해졌고, 학생들에게 덜 신경을 써주는 것 같더라고요. 팬데믹 이후로 우울증을 겪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학교에 본인들이 처한 상황을 길게 설명해도 돌아오는 답은 \”이해할 수 있어.\”라는 식의 짧은 답이었어요.
저도 제 경험을 토대로 mental health, depression, racism을 언급해서 주저리주저리 길게 글을 적어 메일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싸-했어요. 학비를 단순히 수업을 위해서만 내는 게 아닌 학교 내의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고 상담을 받는 그런 부수적인 요소를 포함해서 낸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부수적인 것들도 제겐 영 별로였고, 수업도 케바케지만 몇몇 수업이 정말 학비를 내기 아까울 정도로 수업의 질이 떨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 외에도 한국 계 더치 학생이 무차별로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니 두렵고 내가 이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과연 네덜란드가 유학을 할 만한 가치가 있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라는 생각이 들며 혼란스럽더라고요. 이토록 바래왔던 네덜란드였지만 제게는 자꾸 안 좋은 점만 보이는 것 같아서 제 자신에게도, 그리고 제가 사랑했던/사랑하는 네덜란드에게도 속상하고 실망스럽더라고요. 저는 정말 오랜 시간 꿈꿔왔던 곳인지라 그 어느 누구보다 더 과민반응을 하고 실망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영상 속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마다 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학과마다 다르게 평가되는 부분이라, 헤이그 대학교에 만족하고 별 불만 없이 다니고 있는 학생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학생들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고요. 그리고 이번 영상에서 너무 답답한 나머지, 제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본 거랍니다. (저는 저와 다른 관점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존중해요!)
이 결정에 대해서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실망감에 휩싸여 이젠 학교 생각만 해도 오버해서 말하면 역겨워서 2월에 당장 자퇴를 하고 뜨고 싶었지만, 그 감정을 꾹 눌러 버텼고, 4월에는 팬데믹 이후로… 다시 한번 자퇴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때도 여태껏 잘하고 버텨온 제 자신을 보며 참았고, 8-9월에 짐 정리 목적으로 돌아간 네덜란드에서 두 달간 지내면서 정말 여러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고심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자퇴를 하고 제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특히 경제적인 부분)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의 교육을 받는 게 답이라고 생각을 해서 자퇴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했어요. 후회는 아직도 하고 있다만, 저는 아직도 제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누군가는 제 선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멘탈이 약하다고 흉을 볼 수도 있으나, 제게는 자퇴 또한 제 유학 일기장에는 한 줄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기에 이렇게 영상을 올려요~
그리고 아마…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유학이 결코 전부가 아니란 메시지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대중매체를 통해 비친 유학의 모습은 단순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다고 생각해요. 직접 경험해보면 제가 영상 속에서 말한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라는 말에 공감하고, 이 말의 온도를 체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찌 됐든, 저는 네덜란드에서 유학하실 예정이시거나 이미 하고 계신 분들을 응원해요:)
긴 글 읽어주시고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상 제 땡깡이었습니다-
(+이런 진심어리고 따뜻한 댓글들 보면 저 눈물나요…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행복해요)
#네덜란드유학 #네덜란드유학생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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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네덜란드 유학 현실

  • Author: heeju so bubbly
  • Views: 조회수 21,1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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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1.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Owi6tSoS5eI

네덜란드의 민낯

민낯

: 화장을 하지 않은 본디 그대로의 얼굴

결혼 후 가장 큰 변화는 와이프의 꾸민 모습을 좀처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 전 연애할 때는 항상 꾸민 모습만 봤다. ‘나 오늘 쌩얼이야’라고 말한 날도, 얼굴을 어루만질 때면 BB크림의 흔적은 적어도 느껴졌다. 꾸민 모습 그대로 아쉽게 들여보내고 나면 다음 날도 어김없이 한층 더 꾸민 모습으로 우린 만났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정반대다. 집에 돌아오면 꾸민 모든 것을 지워야 한다. 집에서 주로 보는 우리는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 생활하다 오히려 각자 밖으로 향하는 그때에 꾸미고 나간다. 그리고는 익숙해진다. 꾸미지 않은 모습도 사랑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어쩌면 민낯이 예쁜 와이프를 만난 복일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에는.

‘여행’이 ‘연애’라면 ‘살아보는 것’은 ‘결혼’,

민낯을 보게 되는 것!

나는 그래서 ‘여행’은 ‘연애’와 같다고 본다. 몇 주에서 몇 달간의 만남엔 꾸밈이 한가득하다. 여행지는 그곳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좋은 곳으로만 안내하고, 여행자는 좋은 것만 보고 자랑할 것들을 보따리에 담느라 눈에는 콩깍지가 두텁다. 당최 실망할 겨를이 없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살아보기 전이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살아보면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이란 같이 사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여행’이 아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결혼’한 것에 비유될 수도 있겠다. 그리곤 마찬가지로 민낯을 보게 된다. 콩깍지가 사라지고 보이게 되는 민낯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년간 달리 살아온 두 존재가 가까워지는데 필요한 시간. 환상이 거두어지며 나타난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게 되는 그 순간에.

살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네덜란드는 물론 살기 좋은 곳이다. 수많은 나라 중에, 그것도 유럽 그중에서도 네덜란드에서 주재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어디서나 통하는 영어, 오픈 마인드의 사람들 그리고 펼쳐지는 아늑한 자연경관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삶의 질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직 상승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보이는 민낯에서 오는 어리둥절함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 네덜란드의 민낯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1. Direct해도 너무나 Direct 한 사람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은 한국 사람으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이질감’이자 네덜란드의 ‘민낯’이 아닐까 한다.

네덜란드 남자와 결혼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조 섞인 예를 들어 설명해준다. 만약 한국에서 여자가 “여보, 나 힘들어. 회사 그만둘까 봐.”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그래, 까짓 거 그만둬!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는 정말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선한 것은 ‘힘드니 어서 날 위로해줘’라는 의미가 더욱더 크게 내포된 것이고, 또 남자는 정말 와이프가 그만둘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큰 소리로 허풍 아닌 허풍을 치는 것이 한국인의 전형이다. 하지만 더치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할라치면 더치 남자는 “무슨 소리야, 우리 모기지론이 얼마 남았고 지금 당장은 우리가 같이 일해야 하는 때야.”라고 말할 거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겠지만 이러한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온다는 것은 그네들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나 또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처음엔 상처 아닌 상처를 받곤 했다. 예를 들어, “이 일 좀 도와줄래”라고 정중히 부탁을 해도 “No! I have no time!” 또는 “No, I have to go home!”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신명 나게 함께 일하던 친구들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은 더욱더 크다. 한국 사람이라면, 안되더라도 에둘러 표현하거나 마지못해 도와줬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보면 더치식의 Direct 한 화법이 간결하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인지라 받는 상처는 남다르다. 우리 부서의 한 한국인 여대생 인턴은 더치 남자와 연애를 하며 단점을 직설적으로 지적받는 것 때문에 연애가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같이 살아야 한다면 맞춰가야 할 문제일 테다. 그들의 직설법은 악의적인 것이 아니니까.

2. 외골수 기질

맞다고 판단되면 뒤도 안 돌아보는 기질이 때론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이러한 성향은 장점과 단점을 극명하게 가지고 있다. 맞는 것에 대한 확신과 행동은 올곧음을 대변하지만, 다르게 보면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를 느낀 몇 가지 예가 있는데, 어느 날은 출장 후 공항 택시에 올라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중에 택시 기사가 잠시 길을 잃었고, 게다가 일방통행 길로 잘못 접어들게 되었다. 저기 앞에서 버스가 마주 오고 있었고 버스는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일방통행으로 접어든 차가 잘못했더라도 이를 바로 잡을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 버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자신은 맞는 길을 간다는 무언의 확신이자 경고였다. 택시기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약 30킬로의 속도로 후진을 했다. 말이 30킬로지 후진 30킬로의 체감 속도(라 쓰고 체감 공포라 말하고 싶다.)는 부가티를 타고 300킬로를 달리는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도로에서도 자신의 길이 맞고 우선일 경우는 웬만해선 좌우를 살피지 않는다. 아무리 우선권이 있더라도 좌우를 둘러보고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전거 또한 자전거 도로에 우선권이 있다면 그저 직진이다. 차들이 실수로 아슬하게 지나가더라도. 이러한 길에서도 주위를 살피지 않고 양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거나 휴대폰을 하며 지나가는 젊은이들도 많다. 자전거 우선 도로라는 이유만으로.

한 번은 차로 후진을 하는데, 미처 자전거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자전거는 후진하는 나를 분명 봤다. 이럴 경우 자전거가 후진하는 차를 좀 피해서 가줄 수 있지만 그 자전거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해서 거의 아슬아슬하게 부딪칠뻔했고, 나는 뒤늦게 발견해 급정거를 했다. 차보다는 자전거가 우선이라는 확신에 찬 직진이었던 것이다.

3. 아이들 앞에서 피우는 맞담배, 그리고.

이미지 출처: www.dailymail.co.uk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네의 동경을 받는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행복이 우선하더라도 때로는 그것이 지나칠 경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기도 한다. 물론,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노천카페에서 식사를 할 때 옆에서 불어오는 담배 연기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연기에 아이들이 기침을 해도 그저 끝까지 담배를 태운다. 심지어는 유모차를 끌거나 그들의 어린 자녀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부부가 맞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너무나 이해하기가 힘들어 네덜란드 회사 친한 동료에게 물어보니 모든 사람이 이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러는 이유는 그 부모들도 담배를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즉,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둔 대답. 이건 주재 생활이 끝나는 그 날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참고로 하나 더. 주위 테이블에서 식사 중에 코를 팽하고 푸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엔 왜 이리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까 생각을 했는데 유럽에서는 앨러지가 만연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수용해주는 정도가 높다. 해서 코를 푸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코를 풀지 않고 들이마시는 것이 더 큰 실례라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식사를 하다 ‘팽’하는 소리를 들으면 흠칫할 수밖에 없다.

4. 친절함 속에 있는 특유의 불친절함

이미지 출처: www.ondernemeninontwikkelingslanden.nl

무엇이든 과하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된다. 한국의 서비스업이 갑과 을의 관계로 얼룩져 과한 부분이 있다면 네덜란드는 그에 비해 너무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취지는 무조건 올바르다. 네덜란드에서는 서빙을 하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든 무시받지 않고 직업의 귀천이 느껴지지 않으며, 그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행복권을 추구하는 모습은 배워 마땅하다. 하지만 때론 개인의 편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손님을 잊기도 하고, 무엇을 요청하려면 인상을 쓰며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선 뒤늦게 응대하는 모습은 썩 유쾌하진 않다. 물론,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에 비해서는 그나마 사람들이 나이스하고 친절한 편이긴 하다.

의료서비스 및 병원도 마찬가지다. 진단서를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기 전에 지정된 홈닥터를 찾아 가는데, 그리 성심성의 껏 보질 않는다. 어느 한국 주재원 부인은 증상을 말하고 아픔을 호소했지만 ‘마음의 문제’라는 진단을 받고 돌아갔다. 하지만 계속되는 통증에 한국 병원을 방문한 후 갑상선 암을 선고받고 치료를 받고 오기도 했다. 부임 해엔 첫째 녀석이 장난을 치다 뒷 머리가 약 3센티 찢어진 일이 있었는데 피가 뚝뚝 흐르는 채로 1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끝내는 꿰매지 않고 소독약만 바르고 끝났던 경험. 그리고 둘째 녀석이 다리를 다쳐 응급실로 향했을 때 저녁 근무자가 별로 없어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3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5. 젠틀하지만 때론 특이한 운전 습관

네덜란드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매우 젠틀한 편이다. 경적을 울리는 일도 드물고 자전거나 사람에 대한 양보는 젠틀함의 전형이다. 고속도로 최고 속도도 130킬로이고, 평균 100킬로 그리고 마을이나 골목은 30~50킬로이니 그리 과격할 일도 없다. 다만, 1차선을 잠시라도 달리면 꽁무니에 붙어 위협을 가하는 차들이 꽤 있다. 추월 차선이기에 속도를 내서 추월을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달려온다. 오른쪽으로 빠져 주고 싶어도 옆의 차들 때문에 그러지 못할 때가 있는데 평소 젠틀해 보이는 그들도 재촉을 할 때면 참 다르게 보인다.

더불어 방향 지시등을 켰을 때 한국의 경우는 뒤차가 더 빨리 달려오곤 하는데, 이 곳은 방향 지시등을 킨 차가 마치 우선인 것처럼 들어온다. 심지어 방향 지시등을 켜면 뒤에서 오는 차들이 다른 차선으로 피해주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앞에 공간이 없는데도 방향지시등을 켜고 바로 들어와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고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은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상향 등은 양보의 의미라는 것이다. 절대 시비 거는 것이 아니니 내려서 멱살 잡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6. 혼탕 사우나 문화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 다니게 된 Gym에서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 후 가게 된 사우나는 남녀 혼탕이었다. 처음엔 적응이 당최 되질 않았지만 요즘은 적응이 되어 아무 일 없다는 듯 함께 사우나와 탕을 오간다. 혼탕에 대한 기원을 찾거나 네덜란드 동료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답을 얻진 못했지만 로마 시대의 욕탕 문화와 남녀 몸에 대한 존중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네덜란드 대부분의 사우나는 이처럼 혼탕이며, 남자 탈의실에도 락커 키를 고치러 여자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기도 하고 마라톤이나 머드 행사를 마친 곳에서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남녀 각자 속옷부터 전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남자인 나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와이프는 아직도 혼탕을 사용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적응되어 당당하게 사용하게 된 나도, 만약 탕 안에서 동양 여성분을 만난다면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7.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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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면 난리 날 일이다. 자전거 앞, 뒤 위태롭게 아이들을 태우고 다닌다. 심지어는 짐짝과 같이 특이한 모양의 짐칸에 아이들을 여러 명 태우고 달린다. 언젠간 한 어머니가 스쿠터를 운전하는데 아이가 핸들과 어머니 사이에 서서 달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아마 중국에서 찍힌 사진이라면 ‘대륙의 어머니’라며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암스테르담 운하를 거니는 크고 작은 배를 봐도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힌 모습은 극소수다. 물론, 어려서부터 수영에 익숙한 이유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법으로도 금지되거나 개념 없는 부모로 낙인찍힐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유로와 보이는 부분은 분명히 있고 어쩌면 한국이 과하게 ‘안전’을 부르짖는 것일 수 있으나 이 또한 어느 정도의 문화 차이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과함과 부족함의 차이. 그 사이에서 찾아야 하는 ‘중용’의 법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일지도.

8. 그 외 다양한 모습

세일과 공짜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네덜란드 친구들은 흥이 참 많다. 그래서 클럽 문화도 활성화되었고, 왕의 날이나 게이 퍼레이드와 같은 축제가 열리면 온 나라가 음악과 춤으로 들썩 거린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약간은 Up 되어 보이는 친구들과 일하는 것은 매우 재밌다. 일상에서 유머가 오가고 그것은 활력소로 돌아온다. 다만, 회사라는 곳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분위기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보이는 그 ‘흥’은 때론 부담스럽다. 또한 절망하는 사람 옆에서 보이는 ‘흥’은 때론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네덜란드 사람들은 Chatting을 너무나 좋아한다. 날씨 좋은 날이면 야외에 사람들이 한가득 서서 한 손에 와인이나 맥주를 들고 서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한다. 그 웅성거림이 커지고 커져 지나가던 내 고개를 돌아보게 할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유쾌하고 인사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모든 것이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 한 번은 스타벅스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앞에 손님과 바리스타가 어쩌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둘의 유쾌한 대화는 뒤 10명의 손님들이 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참 후에야 깨닫고 미안하다던 앞사람은 민망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검소하고 실용적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할인과 공짜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Korting (Discount)’, ‘Gratis (Free)’ 라는 단어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주재원으로서 장사를 해야 하는 나는 그래서 어려움이 많다. 사람들은 제품은 최상위 것을 원하지만 가격은 최저가를 원한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 대비 ASP (Average Selling Price)가 다른 나라 대비 매우 낮다. 반대로 제품의 스펙은 다른 나라 대비 높다. 그래서 장사와 사업을 하는 많은 기업이나 개인에겐 그리 쉽지 않은 시장으로 분류된다.

환상이 사라지면 현실을 만나게 되고, 꾸밈을 지우면 민낯을 보게 된다. 콩깍지가 없어지면 온전한 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사랑일지 모른다. 그리고 ‘사랑’이란 호감과 애정 그리고 실망과 증오 등의 전체를 망라하는 포괄적인 단어이자 개념이란 생각이 든다. 여행할 때, 연애할 때 알지 못했던 진정한 모습과 민낯과의 만남은 그래서 또다시 설레고, 더욱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래서 난 네덜란드가 좋다. 와이프를 사랑한다. 알아가고 이해해 가는 것들이 아직도 많으니까.

[저서 모음]

네덜란드에 온 지 만 3년. 꿈 속을 살다.

지금 네덜란드의 디벤터(Deventer)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저는 테라스가 있는 유럽식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현재 다니는 현지 회사에서는 Business Development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인은 당연하게도 저 하나 뿐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저 하나 뿐이지만

각종 대륙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과 더치인들이

한 마음으로 잘 어우러져 근무하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회사에서 진행했던 Wine tasting event

네덜란드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터키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오피스에요.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열린 오피스 갈라파티

제가 한국에서 늘 바라던 대로 여기서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아직 학비대출을 열심히 갚는 중이라서 크게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 받으면

대출 갚고, 방세 내고, 장 봐서 맛있는 요리 매번 해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돼요.

지난 2년간 여행다닌 곳만 해도 프랑스,벨기에,포르투갈,독일 등등이 있구요

올해 상반기만 해도 도미니카공화국과 스페인 여행이 잡혀 있어요. 출장을 포함하면 독일도 포함되구요.

이렇게 써놓으니 평범한 제 일상도

뭔가 되게 행복하고 많이 이룬 것처럼 들리네요.

아니면 집에 돈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외국에 나와 자리잡게 된 사람처럼 보이거나요.

그런데 약 2.5년 전만해도

저는 유럽생활을 꿈꾸기만 하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회사원이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이유없이 인생의 큰 로망이었던 유럽생활을 이래저래 꿈꿔보다가도

각종 대안을 찾아보다보면 엄두도 나지 않아 마음 접기만을 몇 년을 했더랬지요.

그래서 2017년의 저는

월급도 200만원이 겨우 넘는 소기업 회사원에

남들보다 취업이 많이 늦어 경력도 마땅찮고

솔로로 산지는 몇 년이 훌쩍 넘어

매일 퇴근길이 마음이 허하고 외로우면서도

딱히 다른 일상의 대안이 없는 그런 나날을 지내고 있었어요.

그 넓디 넓은 서울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어찌나 부대끼던지…

그 마음을 달래느라

책도 정말 많이 읽고 (온라인 서점 상위 1% 구매자였답니다)

부업도 많이 하고 (번역에 과외에…투잡 쓰리잡을 뛰었어요 평일주말 가리지않고)

쇼핑도 많이 하고 (허한만큼 돈이 나가더라구요. 지나가다 지른 옷과 화장품들이 얼마였는지)

술도 많이 마시고 (제 인생 흑역사는 이 시기에 다 생성..)

그 당시에는 자취방에서 잠들기 전

항상 시크릿 까페의 경험담들을 보며 잠드는게 낙이었던 것 같아요.

말도 안되는 다양한 서프라이즈들을

시크릿으로 이루었다는 경험담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제 현실의 갑갑함이 사라지고

저에게도 희망이 생길 것만 같았거든요.

그럴 때면 항상 유럽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을 그리곤 했었지요.

막상 그 서울에서 해외취업까지의 길이 전혀 답이 안 보이는 아득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러다 17년 여름,

1년 MBA 과정 후 해외취업의 길을 알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나 MBA라는 게…일단 어마어마한 학비로 원체 악명이 높잖아요.

그런데 저의 그 당시 상황이라하면

거의 한달 벌어 한달 쓰고 먹던 터라 제대로 된 저축도 거의 없던 상황,

부모님은 퇴직하신 후라 저에게 딱히 자금적으로 도와주실 형편이 안되고

이미 제 나이 서른이 넘어 부모님들은 어련히 제가 좀 더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라시는 상태에서

감히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해외유학, 그것도 제일 비싸다는 MBA 유학을 입에 올릴 엄두조차 안나는 그런 상황이었이죠.

제가 MBA준비한다는 말도 하기 부끄러운 상황이었어요.

MBA라고 하면 보통 경력 좋고 모아둔 돈도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커리어 점프를 위해 투자 겸 진행하는 엄청 포부높은 꿈인데

저는 포부야 크긴 했지만, 경력도 별로에 모아둔 돈도 없는 상태에서

거의 도피성 유학을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오롯이 해외취업을 위해 진행하는 도피유학 말이죠.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는 인생 마지막 기회다 라는 마음으로 무조건 밀어붙였고…

어렴풋한 소망을 확고한 결심으로 바꾼지 6개월만에 전 출국을 했어요.

그리고 이제 네덜란드에 온지 3년차에 접어 들었네요.

준비 과정 속에서 중간에 포기할 기회야 너무나도 많았죠.

갑자기 몸도 많이 아파서 회사를 자주 결근해야 하는 상황까지 와서 GMAT 등 MBA 준비가 어려워지기도 했고,

은행에서 대출 승인이 안나기도 하고,

고이율인 대신 대출 승인이 웬만하면 난다는 해외 학비대출도 거절당하고,

뭐 그냥 하늘에서 저 외국 나가지 말라고 발목잡는 느낌이었어요.

사주를 봐도 이미 외국나가긴 늦은 타이밍이다, 더 일찍 나갔다면 참 잘풀렸을거다…이런 말만 듣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포기할 타이밍이 정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인지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또 의외의 도움과 응원들을 받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답니다.

요즘도 하루하루, 이미 제 일상이 된 작은 네덜란드 마을을 걷다보면

그 아름다운 풍경과 제 심적인 안정감에

‘아 내가 그리도 바라던 나의 꿈 안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저희 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아침 모습. 너무 이쁘죠?

이런 평화롭고 안정된 유럽에서 여유롭게 커피한잔하는 저의 모습이

제가 늘 바라던 저의 ‘시크릿’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사실 아직

시크릿을 믿는다는 말만 해도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사는 사람마냥 현실감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쉬운 것 같아요.

저도 사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시크릿 얘기는 안해요.

그리고 이게 평가의 관점에 달린 거긴 한데

사실 ‘시크릿이 안 이뤄졌다’ 라고 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긴 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MBA 졸업 후 제 연봉을 6만 유로 이상 받겠다고 시크릿했었고

회사도 제가 정말 가고싶던 대기업을 들어가는 걸로 시크릿 했었는데

그건 안 이루어졌거든요.

그러면 사실 전 시크릿 욕할 수 있잖아요.

제가 바라던 특정 조건과 항목이 성취된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시크릿은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큰 그림으로 봤을 때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게

제일 비슷한 요지인 것 같아요.

전 제가 바라던 회사나 연봉은 아직 이루질 못했지만

그 외에 제가 바라던 부분들

-나이스한 직장동료들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상사

-엄청 인터내셔널한 근무환경

-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일할 수 있는 업무

-성장 가능성이 큰 업무와 포지션

-출장을 많이 다닐 수 있는 업무

등등에 있어서는 다 이루었거든요.

무엇보다 회사 외적인 부분에서

위에 기술한 저의 생활터전 (유럽, 마음이 잘맞는 동반자, 창이 큰 아파트 등등)이 제가 어렴풋이 그리던 모습대로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제 꿈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니

지금 이 장면을 ‘결과물’로 단순하게 말하기도 어렵구요.

그러나 약 3년 전의 제 모습과 지금 제 모습을 보면

저는 자신있게 제가 제 꿈에 많이 가까워져 있고 제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러기까지의 과정들은 단순히 자기 전 상상만으로는 당연히 안되는 것 같구요,

그러한 상상이 모이고 모여, 어느 순간 엄청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바뀌게 됐을 때

결과물을 가져오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제 여정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제가 좀 더 많이 이루고 나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었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유럽에서 정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커리어적으로 인정받았을 때 말이에요.

그래야 저의 이야기도 더 설득력이 있고 울림이 있을 테니까요.

그냥 지금부터 제 거취와 여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제 글을 보았을 때

좀 더 생생하고 힘이 되는 글이 될 것 같아서요.

모두들 각자 자기 나름의 꿈과 소망을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잖아요.

그게 한국이 되었든 외국이 되었든.

인터넷을 하다보면, 주변과 이야기 하다보면,

그 꿈과 소망을 지키기가 훨씬 어렵고 세상에 회의적이기가 쉬워지는 것 같지만

저도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쓴 희망적인 글 하나로 또 힘을 내고 달려나갔듯이

저의 경험과 기록,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저의 좌충우돌 정착기가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듯한 응원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서른 중반,

그런데 지금 이십대 초반과 같은 처지에서

유럽에서 다시 시작하고 일구어 나가야 하거든요.

그 일련의 과정들을 여기에 다 세세히 기록해 놓을게요.

같이 화이팅해요.

네덜란드대학을 가는 이유, 졸업 후 취업전망은? [KII글로벌스쿨]

네덜란드대학을 가는 이유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년전만 하더라도 네덜란드의 대학정보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저희 KII학생들도 하나둘씩 가기 시작해서 어느덧 델프트공대 1명, 아인트호벤 공대 1명, 틸버그대학에 1명 이렇게 3명이 재학 중에 있네요. 그리고 올해 델프트공대 2명, 에라스무스 1명이 합격소식을 전해줬습니다.

네덜란드대학유학은 아직은 그래도 초창기로서 제대로 알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졸업 후 어떻다더라 하는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정말일까, 아니면 거품일까! 이에 대한 것도 고려를 해 봐야 합니다.

우선 주요대학들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QS2020년 세계대학순위, 50위 델프트공대, 64위 암스테르담대학, 102위 아인트호벤공대, 114위 그로닝언대학, 118위 레이든대학, 120위 위트레흐트대학, 125위 와그닝겐대학, 183위 에라스무스대학, 186위 트벤테대학. 세계 200위 안에 9개의 대학이 들어 있습니다.

잠시 짬을 내서 한국의 대학수는 몇개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7위 서울대, 41위 카이스트, 83위 고려대, 87위 포항공대, 95위 성균관대, 104위 연세대, 150위 한양대. 이렇게 7개교가 들어있습니다.

대충봐도 네덜란드가 더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번엔 세부학과순위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델프트공대부터 살펴보면, 건축학, 토목공학 세계 2위 (네덜란드어 진행), 기계, 우주공학 관련 세계 5위 (영어진행) 등 세계 탑클래스의 이과계열의 학과가 운영 중 입니다.

암스테르담대학을 살펴보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 세계 1위 (영어진행), 사회학 세계 10위 (영어진행), 세계 15위 심리학 (영어진행) 등 이외에도 상당수 학과들이 20위, 30위 권에 모여 있습니다.

잠시 또 짬을 내서 한국의 제1 대학인 서울대의 학과순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회정책 행정학 세계 14위, 현대언어 17위, 재료과학 21위, 화학, 스포츠관련학 22위, 기계공학 23위… (내가 왜 보내지도 않는 서울대 학과순위를 계속 나열해야 하는지….) 아무튼 한국의 서울대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합니다……..만, 유럽의 소국인 네덜란드의 대학들이 굉장히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레이든대학도 고전, 고대역사 세계 6위, 고고학 9위 등 다수의 학과가 10위, 20위 안에 포진되어 있으며, 와그닝겐 대학은 농업관련 매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환경학 2위 등 다수의 학과가 세계 최정상 순위에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대학은 경영학관련 세계 17위, 그리고 졸업생 평균 연봉이 1억정도가 되는 굉장히 파워풀한 대학입니다.

네덜란드대학에 진학을 할때 유의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기초지식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전형적으로 네덜란드대학교 입학은 쉽습니다. 대부분의 학과가 마감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정원을 만들어 일부학과에서는 경쟁에 밀리면 불합격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과들이 아주 최소기준의 자격요건만 충족하면 쉽게 입학을 하는 구조 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입학을 해서 과연 세계 1위, 10위 등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졸업률 입니다. 이과계열로 볼때 보통 평균 졸업률은 30~40%. 그것도 3년제의 네덜란드대학을 4년 이내에 졸업하는 비율 입니다.

1학년이 끝난 후 강제퇴학을 당합니다.

그나마 문과계열은 그래도 낫습니다. 이과계열은 커트라인만 맞춰서 들어가면 거의 100프로 퇴학당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문과계열 역시 비즈니스, 경제 계열은 튼튼한 수학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업내내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겁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공부를 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대학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결과를 낳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과가 영어로 개설이 되어 있는 것도 국제화에서 큰 점수가 되기도 합니다.

졸업 후 많은 학생들이 석사로 진학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단지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닌,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의 대학구조가 3년제이며, 석사과정은 속성으로 1년 안에 졸업을 하는 구조로 유럽지역에서 구직활동을 하는데 석사들이 흔한 이유가 바로 이런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석사로 진학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학사자격으로 취업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비전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네덜란드 대학의 진학 추세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그런만큼 자신의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더욱 이름이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해야 할 것 입니다.

앞으로 네덜란드대학도 경쟁이 치열해 지지 않을까…

[네덜란드 취업] 다섯번째 – 2차 최종 면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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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면접결과는 다음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초고속 ㅇㅈ)

follow-up conversation을 잡는 메일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ㅠ.ㅠ)

이번에도 역시 ‘너가 만날 사람은 누구와 누구다’라고 알려줌

보아하니 HR을 담당하는 사람, 그리고 지사장으로 추정되는 본사 director와의 면접…잘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conversation이라고 하지, interview라는 용어는 잘 안쓰더라.)

이번에는 나의 1차 면접관이었던 junior로부터 팁을 얻고자, linkedin으로 연락을 했다.

친절한 답변

장차 senior이자, colleague가 될 이 분은 나에게 아주 기꺼이 본인의 면접 경험을 상세히 얘기해주었다.

simulation analysis 기능을 수행하는 직원으로서의 technical한 질문보다는, 좀 더 personal level의 질문

이를테면:

– 왜 네덜란드인지, 왜 이 회사인지?

– 다른 value/culture일텐데, 어떤 부분에서 맞다고 생각하는지?

– 맞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 조정해나가고 싶은지?

– 네덜란드어(더치)를 배울 생각이 있는지?

또한 덧붙이기를, interview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대화를 나누다가 온 것에 가까웠다고도 얘기해주었다.

면접일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 동안 떨리는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2년전 나름의 큰 인생 결심, 유학이라는 여정을 출발한 뒤에

정말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새롭고, 흥미롭고, 어렵고, 기쁘고, 괴롭고, 슬프고, 즐거웠던 순간들…

그 많은 시간 끝에 드디어

도착하기로 예정된 항구가

지평선 너머에 보일듯 말듯하는 것 같았다.

짤은 내가 좋아하는 제이슨본이 나폴리 항구에 도착하는 짤

이 순간까지 잘 풀린다면, 일단 첫번째 목표점에는 도달한다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받을만한 여러가지 예상질문을 생각해보았다.

“대체 왜 이 사람이 한국에서 살다가 여기 네덜란드로 와서, 하필이면 우리 회사로 오게 되었을까?”

이게 가장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년 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왜 떠나기로 결심했을까?

드디어 면접 당일. 시간에 맞춰 건물에 도착했고, 회사로 들어가서 안내해주는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기대했던대로 중점적으로 요구받은 것은,

We want to know your story.

(당연히 궁금하겠지…이 먼데까지 와서 뭐하는지)

1. 한국에서는 무슨 교육을 받고,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2. 대체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와있게 된건지 – 왜 유학? 왜 네덜란드? 왜 우리 회사? – 등등

한국에 있을 때 얻은 작은 깨달음, 성찰들의 순간을 빼곡히 기록해두었던 것이 1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어렸을 적 생각했던 나의 이상과

사회에 나와 현실에서 느꼈던 한계는

2번 이야기로 자연스러운 전환을 유도해냈다.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어떤 부족함을

네덜란드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찾던걸 찾았다고 본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그 뒤에 대략 1시간 반정도 진행된 얘기의 대부분은 이런 것들이었다.

– 여기 뭐가 좋고 뭐가 싫으니?

– 우리가 일하는 방식,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어디까지나 알고 있니?

– 너의 배경과는 상당히 다를텐데, 어떻게 적응할 계획이니? 예를들면: 여기서는 상사와 생각이 다르면 그냥 대놓고 “그건 아냐!”라고 얘기하는데, 그리고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 너 그럴 수 있겠니? 당연히 가능ㅇㅇ

– 여기에 몇년이나 살 계획이니?

– 우리는 외국인 직원들도 (적어도 점심시간에 오가는) 얘기를 어느정도 알아듣길 바란다. 더치 배울꺼니?

– (심지어) 자녀를 더치스쿨에 보낼지, 인터네셔널에 보낼지도 ㅋㅋ

아마 몇년 잠깐 살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typical expat인지 아닌지가

외국인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중요하겠지.

다행히 나는 가족 (특히 아이)이 모두 여기에 있어서

나의 향후 계획 (몇년살지, 더치배울지 등등)을

무척 확신이 강한 어조로 얘기할 수 있었다.

“지원자의 노고와 정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답을 주는게 원칙이다.

결과를 알기까지 일주일이 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말과 함께, 최종 면접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와이프와 함께 라면먹고 있다가

급 전화를 받았고 (여기서는 합격얘기를 꼭 전화로 해주더라 ㅎㅎ)

축하한다면서,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오오미 눈물이….) 그리고 job offer letter는 수일내에 보내준다고!

(여기서부터는 TMI)

언급한 그 수일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서 약간 초조하고 ㄸ줄이 좀 탔다. 그래서 그 순간을 못 참고 메일을 보내보았다.

그랬더니, 아 오늘 줄테니 좀만 기다려라는 아래의 메일이 (오전) 바로 왔다. 하지만…

오전에 보내줄게~라고 한뒤에 오후에 미안하다면서 좀만 기다려달라는 친절한 메일…

나의 ㄸ줄을 조금 완화시켜주는 메일이었다.

그래서 재촉을 한게 좀 결례가 아닌가싶어서

“내가 재촉하려던건 아니다. 혹시 이게 convention이 아니라면 미안하다.”고 했더니,

“Haha, no worries!”라며 너가 받게 될 offer는 얼마든지 valid하다라고 해줌 (감사합니다 ㅋㅋ)

그리고 드디어 받았다!

이후에 몇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대부분 연봉에 관한), 약간의 조정 뒤에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런저런 내용이 담긴 계약서

TMI였으니 여기서 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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