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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당나라의 문화가 이웃 나라에 전파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당나라가 이웃 나라에 전파한 문화는 한자와 유교, 율령과 불교, 도교이다.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21/2022
View: 3427
동아시아 – 나무위키:대문
동아시아(East Asia)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등이 속해 있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지역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몽골을 동아시아 문화권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11/2022
View: 4774
‘동아시아 문화권’을 한눈에 넣는 고대사 연구 – 한겨레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이성시 지음, 이병호·김은진 옮김 l 삼인 l 3만7000원 재일한국인 역사학자 이성시(70) 일본 와…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0/18/2021
View: 1753
동아시아 문화권 – 네이버 블로그
(1)동아시아 문화권이란? 고대 중국 문화에 뿌리를 둔 문화권으로서 중국, 일본, 한국의 역사에 집중이 되는데, 이들 나라들의 고급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9/2022
View: 3151
[베트남 바로 알기③] ‘아세안’ 국가면서 동아시아 문화권
동아시아 문화권은 유형무형의 문화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요소는 율령과 유교, 한자, 불교다. 이들 요소는 발생 시기나 체계화된 …
Source: kor.theasian.asia
Date Published: 6/16/2021
View: 434
동아시아 상호 이해를 위한 문화 다양성 교육의 시론적 연구
유교, 한자, 벼농사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102`-. 김다원. Page 4. 안에서 발달한 생활문화는 상이성을 보여주고 있음이. 현실이다.
Source: www.kgeography.or.kr
Date Published: 3/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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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아시아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아시아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동아시아(영어: East Asia)[1] 또는 동북아시아(영어: Northeast Asia)는 아시아의 동부 지역을 지칭하는 지리적,[1] 문화적[2] 명칭이다. 총 면적은 11,839,074km2로 전체 대륙의 15%를 차지한다.
동아시아의 국가들 [ 편집 ]
동아시아에는 다음의 국가가 있다.
교통 [ 편집 ]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고속국도 제1호선인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하여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등의 도로가 있다. 대한민국에는 3,000km의 철도 및 광역전철, 지하철 등이 있다. 도로에 비해서는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서울특별시 등 수도권의 광역전철망이 가장 광대하며, 그 외에도 광역시에는 지하철이 설치, 운행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전쟁으로 파괴된 철도노선의 복구작업과 새로운 철도노선 건설에 대한 계획이 정력적으로 추진되었다. 1957년 이후로는 중국·소련 기술진의 협력에 의하여 소련·몽골·베트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과의 국제선 건설도 진행되었다. 러시아의 울란우데-울란바토르-알렌을 잇는 지닝(중국어: 集宁)철도가 몽골과 러시아·중국을 연결해서 관통하고 있는 외에 초이발산 철도가 시베리아 철도와 접속되어 있다.[3] 또한 쿤밍 ~ 하노이 사이 등 베트남에 이르는 노선은 베트남 전쟁 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북한에서는 1961년부터의 7개년계획으로 철도노선의 신설, 광궤화(廣軌化), 전화(電化), 디젤화가 진행되었으나, 아직도 수송력 부족현상은 해소되지 않아 계속적으로 철도 노선 증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러시아 양국과의 국제선은 조중국경철도연합위원회(朝中國境鐵道聯合委員會)·조소국경철도협동위원회 관리하에 운영되고 있다. 근대적 육상 교통의 발달이 뒤진 아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상 교통이 하는 역할이 크다. 하천은 예로부터 가장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고 경제적 동맥이 되어 왔으며, 특히 장강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부터 중국에서 남선북마(南船北馬)라 일컬은 것은 창 강 수계가 차지하는 경제적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수나라 때부터 화중의 농산물을 화북으로 운송할 목적으로 건설된 대운하는 현재 국부적으로 이용될 뿐, 남북간의 물자 수송은 경한선·진포선 등의 철도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 [ 편집 ]
당나라의 문화가 이웃 나라에 전파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당나라가 이웃 나라에 전파한 문화는 한자와 유교, 율령과 불교, 도교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공통 요소는 다음과 같다.
다만 대한민국과 몽골은 예외가 몇가지 존재하는데, 한자와 한문을 대채적으로 쓰지 않고, 유교나 성리학의 법칙만 지키고, 불교신자가 개신교 신자보다 적으며, 율령이 아예 없는등 대한민국과 몽골은 예외가 몇가지 존재한다.
자연 [ 편집 ]
동아시아에는 한강, 낙동강, 압록강, 두만강, 영산강, 황하, 쑹화강, 랴오허, 장강 등의 강이 있다. 산맥은 소싱안링산맥, 대싱안링산맥, 칭바이산맥, 태백산맥 등의 산맥이 있으며, 호수는 둥팅, 판양, 차오후, 소양호, 대청호 등이 있다.
중국 북쪽은 산맥이 줄을지으며, 남부에는 평지가 있다. 한국은 평지가 거의 없으며 70%정도가 산지 지역이고, 일본은 홋가이도 내륙과 규슈 내륙 그리고 혼슈 중부는 산지가 있고 나머지는 해류의 흐름으로 평지가 있는편이다. 몽골과 중국은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을 끼고 있어 그쪽은 발달이 덜된 편이다.
기후 [ 편집 ]
주로 온대성 기후를 띠며 러시아의 극동지방은 한대성 기후가 주로 나타난다. 베트남, 필리핀 등의 지역은 열대성 고온다습 기후가 나타난다.
언어 [ 편집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어,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어와 여러 소수민족의 언어(티베트어, 위구르어 등), 중화민국에서는 중국어, 타이완어를 주로 사용한다. 일본은 일본어, 몽골에서는 몽골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외에도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소수), 독일어(소수), 러시아어, 힌디어, 벵골어등이 제2언어 또는 이민자들이 사용한다.
= 화폐 [ 편집 ]
원(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엔(일본)
위안(중화인민공화국)
신 대만 달러(중화민국)
투그릭(몽골)
파타카(마카오)
홍콩 달러(홍콩)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동아시아 문화권’을 한눈에 넣는 고대사 연구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
이성시 지음, 이병호·김은진 옮김 l 삼인 l 3만7000원
재일한국인 역사학자 이성시(70)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는 동아시아 고대사 영역에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민족사’에 대한 근대적인 욕망을 해체하고 ‘동아시아 문화권’이란 관점을 구축하는 데 힘써온 학자다. (2001) 등의 대표작과 한반도 목간 연구의 성과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이성시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1998년에 썼던 가 번역 출간됐다. 지은이가 줄곧 천착해온 고대 동아시아 지역 여러 민족의 이동과 국가 형성 과정의 역동성에 대한 전체적인 틀이 정밀한 실증 연구와 함께 이 책에 담겨 있다.
재일한국인 역사학자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 노형석 기자 [email protected]
지은이는 “권역의 형성이라는 시점을 통해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편다. 핵심 사건은 한나라의 낙랑군 설치다. 한무제는 기원전 108년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에 낙랑군 등 4군을 설치했는데, 기존 ‘일국사’ 관점에서 낙랑군은 민족 형성을 억압하고 독자적인 발전을 저해한 요소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광역사’의 관점에서는 “이와 동시에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이 압도적인 격차가 있는 고도의 중국 문명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면서 이를 수용해가는 ‘문명화’의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낙랑군에서 비롯한 중국 문명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동아시아 지역의 ‘문명화’, 대표적으로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걸쳐 동아시아 3국(신라·발해·일본)에서 ‘율령국가’ 체제가 수립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1990년대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된 <논어> 죽간의 사진. 전한시대 원제 때 작성된 호구부와 같은 공문서도 함께 발굴돼, 무덤의 주인은 낙랑군부 소속의 관리로 추정된다. 죽간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위·아래·중간 부분에 끈으로 묶어서 썼던 흔적이 남아 있어, 중국 허베이 정주한묘에서 출토된 기원전 55년께 만들어진 <논어> 죽간과 같은 계통의 판본으로 여겨진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제공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다양한 민족 집단의 이동 양상과 국가 형성 과정에서의 상호 작용이다. 예컨대 고구려는 “연(燕)과의 대립·항쟁 속에서 부여계 유이민과 중국 망명자를 수용하거나 낙랑·대방 유민을 포섭해서 그들을 왕권 아래 조직함으로써 4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왕권의 비약적인 신장을 이루었고, 고대국가 형성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평양 지역으로 남진한 고구려는 한반도 지역의 다른 여러 소국들에 압박을 주었고, 이는 백제와 신라, 더 나아가 발해와 왜의 국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풀이다.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일각에선 “한국 고대의 내재적인 전개를 경시한다”는 식의 비판도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고대사의 역동감은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런 관계 속에서 한국사의 개성적인 특징을 간파할 수 있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mail protected]
동아시아 문화권
1.동아시아 문화권의 특징과 형성 과정
(1)동아시아 문화권이란?
고대 중국 문화에 뿌리를 둔 문화권으로서 중국, 일본, 한국의 역사에 집중이 되는데, 이들 나라들의 고급문화와 문자의 기본 체계는 주로 고대 중국에 기원을 둔다. 이 문화권은 한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당제국의 출현으로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 배경으로는 정치·군사면에서 당과 주변 각국간의 긴밀한 정치 문화적 유대 관계의 촉진을 들 수 있다. 즉, 당제국의 영토적 확대와 6도호부의 설치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이 직접 당나라와 정치·군사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책봉 체제에 의한 조공 관계로 긴밀한 문화적 교류 관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중국 문화의 확산에 의한 공통성의 형성이란 주객의 관계가 성립되지만, 그들의 개별성도 강하였다. 주변 여러 나라는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선택과 동시에 독자적인 민족 문화의 창조도 병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문화권의 존재에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2) 동아시아 문화권의 특징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된 요소는 한자, 유교, 불교, 율령체제 등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자는 원래 중국의 문자로, 일찍부터 주변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사용된다. 한국, 일본은 어계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뜻 글이 가지는 장점 때문에 용이하게 이용할 수가 있었다. 유교는 한대의 국교화 과정을 통하여 중국 사회의 정통 이념으로 되자, 한자와 더불어 주변 여러 나라에 확산되어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 이념이자 사회 규범의 기본으로 존중되었다. 불교의 경우, 그 의식과 교리가 중국화된 불교가 다시 주변에 전파되어 중국과 신앙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또 율령체제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관료체제는 물론, 토지, 군사, 조세 등 여러 제도의 전범으로 한국, 일본, 월남 등의 국가 체제 형성에 크게 작용하였다.
유교
한대에 발달하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잠시 그 위력을 잃다가 북방 왕조의 유교주의에 기본을 둔 한화 정책으로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수와 당제국 역시 유교주의에 바탕을 둔 중앙 집권적 황제 지배체제를 지향하고 율령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불교
인도의 종교는 중국인에게 친밀한 개념이나 관념들과 명백하게 대립하였다. 중국 문명에 대한 불교의 도전은 19세기에 서양 문화가 제기했던 것보다도 더 직접적인 것이었으며, 불교의 수용은 중국인이 현대 이전에 외국으로부터 빌려 쓴 것 가운데서는 가장 의미가 큰 것이었다. 불교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연결해 주는 주요한 고리였지만, 인도와 중국의 대조적인 역사로 인해 이들 두 세계의 정신적·심리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이적(夷狄)들을 새롭고 보다 위대한 중화 제국으로 편입시켰듯이, 중국인들은 점차 불교를 흡수하여 그 문화적 내용을 풍요롭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적 가치에 대한 불교의 도전을 중화시키기도 하였다.
인도인들이 철학적 사색을 좋아한 결과 수많은 사상적 학파가 발생하였으며,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관행으로 인해 다양한 철학적 경향들이 몇 개의 종파로 조직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현장에 의해 전래된 법상종 같은 몇몇 종파들은 인도로부터 직접 이식되어 온 것이었으나, 중국에서 가장 번창하였던 종파들은 중국적 사고에 뿌리를 둔 요소들을 강조하였다. 지의(智顗)에 의해 개창된 천태종이 바로 이러한 종파의 하나였다. 천태종의 융성은 절충과 타협을 즐겨하고 분류에 능숙한, 전형적으로 중국적인 요소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주문(呪文)이나 마술적 경문같은 것들을 강조한 진언종(眞言宗)이나 신앙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정토종(淨土宗)도 역시 중국적 사고에 뿌리를 둔 종파였다.
중국 불교에서 가장 의미가 큰 종파는 선종이었다. 선종의 기원은 명상과 직관을 역시 강조하였던 도가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바가 많았을 것이다. 선종의 반학문적·반문자적 성향은 순수하게 도가적인 것이었다.
율령
중국의 율령은 진과 한제국 이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오다가 결국 당에 의해 율령국가의 지배체제가 완성되었다.
일본의 경우 7세기 중기 다이카개신에 의하여 당의 율령제도를 받아들여 7세기말에는 완비되어 율령국가를 이루었다.
한자
한자는 언어가 서로 다른 아시아 각국에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기본요소를 전파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자는 일반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특성으로 인하여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귀족층의 문자가 되어 계층간의 심각한 문화적 차별성을 발생시켰다. 그리하여 한자를 소화한 민족은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으나 그러지 못한 민족은 그들의 문화도 소멸해 갔다.
(3)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 과정
은·주시대
이 시대에는 아직 동아시아 문화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은·주 시대에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 화이사상과 봉건제가 나타났다.
춘추·전국시 대
사회적인 격변과 제자백가의 사상적 발전으로 중국 주변의 민족이 중국 문화의 자극을 받아 정치, 사회, 문화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나라는 요동 방면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일본도 수도작 재배가 시작되고 청동기가 도입되면서 죠몬 문화에서 야요이 문화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한자, 율령, 불교, 유교와 같은 요소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한의 중국 통 일
유교주의를 표방하고 있었기에 주변 국가에 대해 왕이나 후(候)의 작위를 수여하고 정치적인 관계를 갖기 시작하였다. 조선왕, 남월왕, 여월왕이 그 예로 동아시아세계 형성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한 대에 동아시아 세계가 성립이 되었으며 직접적인 배경으로 유교주의의 통치 체제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전한 무제에 의한 유교의 관학화로 유교적인 황제권이 덕치주의를 표방하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화이사상과 봉건사상이 이상화된 형태로 정치 사상에 반영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왕조와 주변 이민족 국가의 관계가 책봉 체제, 조공 관계로 정착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정치적인 구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한 무제에 의한 동방 정복이나 남방의 지배로 그 지역 주민들에게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문화 발달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일본의 경우는 한의 직접적인 지배는 받지는 않았으나 기원 후 3세기의 왜의 소국 분립 상태가 계속되고 왜국 대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야마다국의 여와 히미꼬의 세력이 컸는데 이것은 일본 고대의 정치사회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 문화의 영향이 그 계기를 마련하여 준 것이다.
이렇게 한 제국의 등장과 동아시아 세계는 서서히 정치 문화적인 공통점을 갖게 되면서 동아시아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문화의 국 제 성
당문화는 동아시아의 각지에 전파, 보급되어 발해, 신라, 일본을 비롯하여 몽고와 돌궐, 위글, 티벳의 토번, 운남의 남조 등이 당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 각국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번영함으로써 당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 발전시켰다.
강남의 한족 왕조(송,제,양,진)와 화북의 유목 민족 왕조(5호 16국)가 서로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다시 중국을 통일한 수·당대에는 전에 없던 대영토와 세력권을 형성하여 문화가 다른 주변의 여러 민족과 직접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또 이 두 왕조의 지배 세력들은 대부분 북중국 출신의 신흥 세력으로 문화적인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 당인들은 장안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외국인의 여행과 상업 활동에 개방하여 당문화의 국제성을 실증하였다. 당은 화북 지방의 북아시아 제민족의 제도 및 문화와 강남 지방 한민족의 귀족 사회 문화를 융합하고 그 위에 인도, 이란, 이슬람, 그리스 등 서방의 제문화를 수용하여 국제색이 풍부한 문화를 출현시켰다.
이와 같은 당의 국제성은 주변국의 정치 및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도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일본은 견수사, 견당사를 수시로 보내어 중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7세기에는 당의 율령 체제를 기본으로 한 타이카 개신을 이루었다. 신라, 발해, 베트남도 당과 유학생 교류, 무역 활동 등을 통해 접촉이 빈번해지자 곧 율령 체제를 받아들여 정치 제도를 비롯한 각종 국가 통치 구조 형성에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라이샤워 외, 동양문화사, 1991.> <민석홍 외, 세계문화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8.>
(4) 유교자본주의론
1.序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儒敎 文化圈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아시아의 일본을 위시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은 눈부시게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제 발전의 原動力은 무엇인가?
이러한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대하여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은 호프하인츠, 샘슨, 베버 등의 서양 학자들이다. 이들은 동아시아 사회의 경제 발전의 要因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동양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儒敎를 관련시켰는데 이로써 나타난 이론이 儒敎資本主義이다. 여기에, 문화적, 경제적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던 동양의 학자들까지 가세하여 이 유교자본주의의 연구에 열을 올리게 됨으로써 여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유교자본주의의 논의와 관련하여 막스 베버의 思想을 담고 있는 그의 저서 [유교와 도교]를 빼 놓을 수 없다. 먼저 막스 베버의 저서에 담겨져 있는 그의 동양 사회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비판과 검토를 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유교자본주의 이론의 분석에 있어 妥當한 方法이라고 생각한다.
2.막스 베버의 理論
베버 이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 서양의 문화, 특히 현대 자본주의,특히 현대 자본주의의 배후에 있는 정신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서양의 ‘이성적 자본주의’의 발생을 야기한 여러 가지 貨幣 制度, 理性的 法律 體系등을 탐구하는 데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연구한 후에 그것들이 현대 자본주의를 낳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中國이나 印度에서도 이러한 조건은 없지 않으나 여기에서 資本主義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베버는 기독교, 특히 칼뱅교와 자본주의의 유관성을 발견하였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교의가 근로와 절약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소명 아래서 이루어지는 勞動이 神聖한 것임을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 정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기독교윤리가 직접 자본주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문화의 어떤 성격이 자본주의 경제의 정신과 附合되며 자본주의의 出現이라는 사실은 원시 기독교윤리가 일찍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는 것이 베버의 생각이다.
이러한 기독교윤리에 대한 베버의 이론은 유가윤리와 경제발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버의 이론 속에서 기독교 윤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체계가 되기 때문이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였는가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지 않았는가에 더욱 더 관심을 둔다. 베버는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은 원인이 儒家倫理 및 道家의 가치체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중국문화와 현대화가 서로 부합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국문화가 중국의 현대화에 장애가 되었다는 견해였다.
과연 그러했을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問題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베버의 유가윤리관을 세밀히 考察할 필요가 있다.
베버의 ‘중국의 종교’의 중심 주제는 중국에서 왜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았는가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다. 첫째로 베버는 전통적 중국의 物質的 要素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화폐 제도,시장, 길드. 가산제국가와 관료정치, 친족조직, 법률 등의 중국 사회체계의 구체적 요소들을 분석한다.
화폐와 도시는 서양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베버는 중국이 유효한 화폐제도를 건립하지 못하였으며 그것은 대규모의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힘으로 作用하였다고 認識하였다. 또한 중국의 도시에는 정치, 군사적 자주권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길드는 비록 조직의 自主性은 있었더라도 그 권익이 법률로 보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자유와 합작적인 조직 형태가 출현될 수 없었다. 이 점 역시 자본주의 발전에 불리한 요소라고 베버는 지적한다.
베버는 또한 중국의 친족 조직도 중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생각했다. 즉 親族 組織으로 말미암아 이성적인 경제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인을 위하여 광범위한 경제적 또는 기타 여러 가지 수요를 제공하는 친족조직의 존재는 개인주의의 발생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중국에서의 전국적인 官僚組織은 자본주의 발전에 有利하기도 하고 不利하기도 하였다. 황제와 관료집단이 부담하고 있었던 종교적 기능은 교회가 독립적이고 강력한 단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였고 그에 따라 세속적 권력 구성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없었으며 새로운 사회경제의 창조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재능에 기초한 관료정치는 진실로 관료화의 이성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의 집중형태는 정치력을 방대한 제국의 변방에까지 침투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그에 따라 지방에서는 유력한 정치적, 법률적 질서를 건립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울 수 없었다. 관리와 지방세력과의 결합을 금지 혹은 방지함으로써 관리들의 孤立을 가져왔으며 그것은 지방 行政事務의 효과적인 관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군자는 어는 한 곳에 한정되지 않는다’의 유가의 관념은 관료정치가 전업화되는 것을 막았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의 효능을 약화시켰다.
중국사회의 예법은 경제 발전에 가장 분명한 부정적 영향력을 끼쳤다고 베버는 보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모두 형식적 법률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산제국가로서의 중국에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베버는 중국의 법규를 법률적이지 않은 윤리적 규범으로 생각하였는데 그것의 부분적 원인은 과대한 親族組織의 勢力과 직업적 법률인의 부족이었다. 이리하여 중국의 윤리적 법률은 이성화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고 베버는 생각했다
하지만 베버 자신이 전통 중국에는 자본주의 발전에 불리한 요소들만 존재한다고만은 하지 않는다. 그 또한 전통 중국에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를 들면 신분의 계승이 없었고 ,이주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었으며, 교육의 자유와 무역에 대한 법률적 제한이 없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요소들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즉 純全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하나의 확실한 공업자본주의가 이미 발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베버는 중국의 자본주의 미발생의 원인을 물질적 내지는 사회 구조적 요소 이외에서 찾으려고 했다. 곧 그는 정신적 요소에서 그 原因을 찾으려고 했고, 중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가윤리에서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하였다. 베버는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체계가 결여되어 있었던 원인을 중국 사회의 주도적인 가치체계, 곧 유가 윤리에 돌린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고취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는 데 반하여 동양의 유교 윤리는 그것을 고취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베버가 보기에 유가윤리는 現世主義的인 것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인 기초도 존재하지 아니하고 인간관계 이외에는 어떠한 엄숙한 관계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우주와 인간의 관계는 화해적이고 평형적인 요소가 存在했다. 우주와 인간사회의 질서를 보는 유학자들의 시각에는 강렬한 현세적 낙관주의가 內在해 있으며 인간은 선한 존재이므로 원죄의 관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완전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제반 요소들은 기독교 윤리와 그 실상에 있어서 판이한 것이다. 이로부터 동양 사회의 자본주의 미발생을 추출해 내는 것이 베버의 이론이다.
3.막스 베버의 理論에 對한 批判
유교 자본주의론자들은 유교의 사상요소 중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을 추종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막스 베버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가하게 된다. 유교 자본주의론자들은 경제 정책이나 경제 활동상에서 西洋의 것과 다르게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을 유교적 사상요소와 결부시키는 방식을 사용하여 베버를 비판한다.
유교 자본주의론자 중 두유명의 見解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동아시아 제 3공업문명권의 기업관리 방식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곧 구미 기업은 개인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 기본은 오직 利益追求인 반면에 동아시아 지역의 기업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자기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이익을 아주 좋은 것으로 여기므로 구체적으로 종신고용제에 의해 서로 끊을 수 없는 끈으로 묶여 불경기를 잘 견뎌 나아간다고 역설한다.
또한 김일곤은 그의 저서 ‘동아시아의 경제발전과 유교문화’라는 글에서 現存하는 국가 중 경제적으로 안정된 독일과 일본의 공통점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는 특징에 착안하여 경제문제의 궁극점에는 공동체 의식과 같은 문화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고 보면서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의 불균등한 발전도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다. 곧 그는 한국과 일본의 기축 문화로서 유교 사상의 질서원리를 군주중심의 집권체제, 충효일치의 인간관계, 농본주의 경제관, 평화주의의 傾向과 교육의 중시 등으로 요약하고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유교의 이러한 사상과 윤리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어서 사회질서의 경직화를 惹起시켰고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外來文化가 수입되면서 유교는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죽지 않은 채 각각 나름대로 근대화에 적용되었다고 본다.
이상에서 볼 때 유교 자본주의론자들은 우선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경제나 기업관리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이끌어 낸 뒤, 이것을 儒敎的 要素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러한 유교 자본주의론자들은 베버가 준열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儒敎資本主義論者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좀 지나치다 할 것이다. 베버의 이론을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나누어서 각각의 부분에 대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하고 배척할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5) 동아시아론
요란한「구호」…빈약한「성찰」…
「21세기, 동양의 시대」. 동양의 부활을 알리는 깃발이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서양문명의 시대가 가고 동양문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낙관론이다. 당사자인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동양문화 동양사상의 신비에 매료돼 동양을 알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동양적, 동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일반인의관심뿐 아니라 「21세기 동양사상」을 주제로 한 학계의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른바 동양 동아시아(중심)론. 과연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서양문명의 위기에서 그 사상적 문화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서양문명의 탈출구를 동양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로 서구의 근대적 이성, 이분법적 세계관(서구는 중심이고 동양은 주변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확산되면서 동양으로 시선이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서구중심의 동양관을 비판하고 동양적 시각에서 동양을 보려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물론 중요한 배경이다. 동양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살려 서양의 신화에 함몰됐던 동양을 복권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정치적 경제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냉전 종식,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동양의 실력회복, 특히 동아시아가 세계사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현상은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핵심은 바로 동아시아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최근엔 중국까지 동아시아국가가 자본주의에 성공하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성장을 가져온 「신비스런 정신적 힘」이 과연 무엇인지그것을 탐색하는 작업이 동양 동아시아론의 한 축인 셈이다. 이 점에서 동양중심론은 동아시아론으로 좁혀도 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자연 생명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동양의 노장사상이 물질문명으로 야기된 생태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동아시아론을 부추기고 있다.
80년대말~90년대 들어 활발해진 국내의 동양 동아시아론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21세기 세계사를 주도할 가능성에 대한 논의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핵심이 빠진 공허한 동어 반복같은 인상이다. 한국의 유교 불교 도교가 왜 경쟁력을 갖는지, 어떻게 21세기 현실에 적용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없다. 「21세기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 같은 결론만이 나부낄 뿐.
따라서 비판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상상」 「전통과현대」 등 계간문예학술지들은 최근 동아시아론에 대해 냉정하고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들의 첫번째 지적. 동아시아 논의가 과연 우리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것인가. 경제적 탈출구를 찾으려고 미국이 퍼뜨린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시대」라는 말에 우리가 너무 쉽게 현혹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라고 촉구한다. 아울러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나 오리엔탈리즘조차도 동양을 제대로 보려는 시도라기보다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극히 전술적인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둘째, 우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려는 욕망이 앞서다보니 동양 동아시아 찬양의 「자기최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공동체윤리, 대립보다는 조화, 가족주의 혈연주의 등이 모두 동아시아에만 있다는 착각에 빠져선 안된다. 우리가 자칫 동아시아라는 또하나의 신비를 만들어 스스로 그 안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덕 상지대교수(철학)는 『서구의 기술문명 자연과학을 무시해선 안된다. 이미 떠난 기술과학의 버스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셋째, 동아시아를 말하면서도 실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에만 국한시켜 또다른 제국주의를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서구의 지배론을 벗어나려 하면서도 새로운 지배론을 꾸미는 모순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넷째, 중국과 일본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부족. 그들이 과연 동아시아의 평등한 국제질서를 추구할 것인가.
다섯째, 동아시아의 공통점, 즉 동아시아적인 것의 실체도 명확하지 않다. 유교와 한자문화권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지극히 피상적이고 낭만적인 논의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유교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최근의 주장도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물론 이 논의가 우리에게 긍정적 계기와 힘을 준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학술 문학예술 등의 분야에서 서구적 시각을 극복, 동양적인 의미를 찾기 위한 작업이 한창인 것도 동아시아론에 힘입은 바 크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 이제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재서 이화여대교수(중문학)는 『문제제기의 단계를 넘어 유교 등과 같은 동양사상이 실생활에서 어떤 활용가치가 있는지, 어떤 힘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생활은 서구적인데 이론만 동양적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관념적 주관적인 이론의 성찬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논의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동아시아논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거품같은 오리엔탈리즘의 함정마저 극복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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