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의 가치 | 노동의 가치 15287 좋은 평가 이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노동 의 가치 – 노동의 가치“?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you.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you.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K-Doomer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4,576회 및 좋아요 200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노동 의 가치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노동의 가치 – 노동 의 가치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doomer

노동 의 가치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노동가치론 – 나무위키:대문

물론 개론에서 배우긴 한다. 주류경제학에서 널리 인정받는 한계효용학적 관점에서 보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한계효용에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4/8/2022

View: 6088

노동의 가치와 그 함의들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가치는 또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관리되는 하나의 생산 요소로 간주되었다. 노동자는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12/5/2022

View: 4463

노동의 가치 : 일하는 기쁨, 내 인생의 성공 드라마 – 자유기업원

『노동의 가치』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노동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동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보다 더 나은 삶을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cfe.org

Date Published: 10/19/2021

View: 5044

[지금, 여기]노동의 가치 – 경향신문

노동의 가치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지만, 경제적 자유를 위해 사람들이 근면하게 일하는 사회가 더 부유하고 …

+ 여기를 클릭

Source: m.khan.co.kr

Date Published: 7/3/2021

View: 7642

[오피니언] 가치 있는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 희망제작소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국내에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라는 이름의 저서가 번역?출간돼 알려진 독일의 프리랜서 작가 토마스 바셰크는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makehope.org

Date Published: 3/19/2022

View: 6308

노동력의 가치(value of labour power) – [노동자의 책 : 마르크스 …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물품의 생산과 또 그에 따른 재생산을 위해서 투입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자본론》, 제Ⅰ권, 제 6장)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laborsbook.org

Date Published: 11/15/2021

View: 1600

노동가치 – Vita Activa 개념사 08>

노동가치는 말 그대로 ‘노동이 가치 있다’ 혹은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 앞의 ‘노동이 가치 있다’와 뒤의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9/16/2021

View: 6644

노동 가치의 왜곡 – 전북일보

노동의 가치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있다. 자산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변동성이 높은 자산들이 큰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jjan.kr

Date Published: 11/17/2022

View: 2329

6# 자본주의의 속성과 노동의 가치 – 브런치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의 임금 가치를 자본가에게 온전히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분업체계 하에서의 노동은 단순노동이므로 얼마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

+ 여기를 클릭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4/2022

View: 1968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노동 의 가치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노동의 가치.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
노동의 가치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노동 의 가치

  • Author: K-Doomer
  • Views: 조회수 4,576회
  • Likes: 좋아요 200개
  • Date Published: 2021. 4.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PdZpP-dwTQ

노동의 가치와 그 함의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이라는 의미는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시기를 거치면서, 노동은 하늘의 소명으로 간주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가치는 또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관리되는 하나의 생산 요소로 간주되었다. 노동자는 스스로 노동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에 예속된 존재에 불과했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또 어떠한가? 다양한 직업군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노동자들 또한 엄연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많은 업적들과 노력은 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와 비례하지 않다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 논문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일의 존엄성과 가치는 그 일의 직업군과 상관없이 사회에서 중요한 기여도를 가진다고 말한다.

What are the implications of labor in today’s Korean society? What is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mind when we hear the word work? The meaning of work has traditionally had a negative connotation. But through the Protestant period, labor was regarded as a heavenly calling. As we entered a capitalist society, the value of labor began to fall again. In capitalist society, workers were regarded as a factor of production managed by capital. Rather than becoming the subject of labor on their own, the worker was merely a subordinate to capital. What about our perception of workers in modern society? In a society where various occupational groups live in harmony, workers are also proudly working hard as members of the society. However, the reality today is that the many achievements and efforts they contribute to society are not proportional to fair treatment in this society. Above all, this thesis talks about the value of labor. And this thesis says that the dignity and value of work has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society regardless of the occupational group of the work.

노동의 가치 : 일하는 기쁨, 내 인생의 성공 드라마

빠르게 변하는 노동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동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성취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생산성이 낮았던 노예제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노동을 강제로 분담받았던 사회주의 국가의 근로환경과 삶의 질이 낮았던 것을 보면 ‘자유노동’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출판사 서평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 것인가

시장경제의 기본 개념부터 체제, 원리, 정부, 개방, 복지, 노동, 기업, 기업가정신, 환경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10가지 핵심 요소들을 각 권으로 다루고 있는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책으로 `노동’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노동의 가치』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노동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동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성취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생산성이 낮았던 노예제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노동을 강제로 분담받았던 사회주의 국가의 근로환경과 삶의 질이 낮았던 것을 보면 `자유노동’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노예제를 몰아내고 인간을 자유로운 세상으로 이끈 건 “어느 자애로운 사상가의 인도주의가 아닌 자유시장의 원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였다”라고 말한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녀시대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이란 흥미로운 주제를 던지며,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는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의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즉,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잘못된 명제이며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노동 자체가 아닌 이를 소비하는 소비자와 시장이라는 것이다.

일자리를 둘러싼 지금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현안에 대해서도 다룬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됨으로써 해당 일자리가 아예 사라져버리거나, 청년 인턴제가 청년 실업에 대한 임시적인 미봉책에 그치지 못한 점 등을 살피며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에 따른 시장임을 주장한다. 또한, GM, 포드 등 완고해보였던 미국의 자동차 왕국이 한순간에 무너진 사례를 들며 임금과 고용이 유연해야만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며 일자리 또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달라진 노동의 모습도 포착한다.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근대의 육체노동은 점점 사라졌고, 단순노동이 사라진 자리에 지식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봇 기자’의 등장은 과학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일의 방식과 장소, 시간 등 노동의 패러다임은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변할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21세기에 부를 얻는 사람은 결국 지식, 아이디어,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또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서는 급변하는 노동의 패러다임에 유연하게 적응한 사람, 부단한 자기 계발로 자신의 경쟁력을 갖춘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노동은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드는 인생의 중요한 동반자”라며, “자신의 일과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목차

● 제1장 노동의 친구, 자본

링컨은 왜 노예를 해방할 수밖에 없었나?/헨리 포드의 800달러짜리 자동차/무엇이 노동자를 이롭게 할까?

● 제2장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질까?

우등상의 자격/소녀시대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월급이 오르면 소득이 높아질까?/집안일에 월급을 준다면?

● 제3장 임금과 고용은 유연할수록 좋다

누가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했나?/금추와 월급봉투/강성 노조에 발목 잡힌 미국의 자동차 산업/

지식창조 시대의 노동/일자리는 누가 결정할까?/청년 고용을 늘리기 위하여

● 제4장 사람이 경쟁력이다

한국이 자원 빈국이라고요?/흑사병과 르네상스/일하는 노년에 대하여/개인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K리그의 외국인 노동자

● 제5장 지식사회의 `꾼’

《LA타임즈》의 기사 쓰는 로봇 기자/지식과 경험이 자본이 되는 시대/우주인에서 1인 기업가로

● 제6장 노동의 품격

노동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과정이다/무의미한 스펙 경쟁은 이제 그만!/〈대장금〉 의녀의 신분은 무엇이었을까?/잘하는 일 vs 좋아하는 일/인생을 산다면 오프라 윈프리처럼/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지금, 여기]노동의 가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지만, 경제적 자유를 위해 사람들이 근면하게 일하는 사회가 더 부유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주장이야말로 국부론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사회 발전을 이끈 것은 근면·성실하게 일하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피땀이라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삶을 일구고, 나아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시대정신처럼 이어졌다.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1890년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유럽에 떠돌던 유령의 이름이 공산주의였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 떠도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한 유령은 재테크라는 이름이 아닐까. 투자하세요,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입니다! 부동산, 주식, 심지어 가상통화까지! 일해서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며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노동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묘한 기대감이 생긴다.

부동산은 어느 때보다도 비싸게 고공행진 중이며, 주식시장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가상통화는 어떤가? 도박 저리 가라 할 만큼 엄청난 폭으로 수익률이 널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1세기 일확천금의 환상은 미국 서부시대의 골드러시를 방불케 할 만큼 자극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실한 노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일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나마 노동과 자산의 상관관계를 보장해주던 적금은 어떨까. “이자는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는 케인스의 주장처럼 제로금리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적금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고 느낀다. 케인스는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이야기했으나, 21세기에는 노동자들이 안락사 직전에 몰려 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자. 적금을 쌓고 자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노동자들의 노동은 자연물로부터 상품 가치가 있는 재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재화는 각자의 욕망과 맞물려 수요와 공급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곧 시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체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상품도 없다. 억만금의 화폐가 있다 한들 화폐로 쌀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도 임금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집값과 자동화로 서서히 줄어드는 일자리, 나이가 들며 여기저기 아파오는 몸. 그럼에도 노후조차 대비할 수 없는 불안한 삶밖에 남지 않은 이들에게 노동은 그저 고통일 뿐이다. 하물며 청년실업률과 노인빈곤율이 모두 극도로 높은 지금, 근면·성실을 외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돈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누리는 것들은 누군가의 노동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건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

주식시장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가상통화로 사람들의 피땀 어린 소득이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노동으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이전 시대의 격언처럼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확천금 없이는 늘 불안에 시달려야만 한다. 성실히 일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일 안 하며 살고 싶어. 노동자들의 자조 섞인 이 한탄의 이면에는 일생을 근면·성실하게 일해도 막막한 미래가 기다리는, 희망 없는 현실을 드러낸다.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마는 적어도 근면·성실한 인간이 희망을 잃지 않을 만큼의 부는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후한 보수는 인구 증가를 장려하면서 보통 사람의 근면을 증대시킨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1편 8장에 나오는 문구이다. 불안하고 높은 리스크의 투자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노동이 점점 소외되는 세상은 보통 사람이 성실히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하고, 근면·성실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지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오피니언] 가치 있는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국내에 이라는 이름의 저서가 번역?출간돼 알려진 독일의 프리랜서 작가 토마스 바셰크는 이와 같은 말로 “좋은 삶, 진정한 삶은 노동 바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지만 노동은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한 면을 지니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에 집착하지 않는 좋은 노동”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노동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도 책 에서 칸트의 통찰을 인용해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훨씬 큰 만족을 얻을 것”이라며 “노동은 사람에게 힘이 솟구치게 한다”고 했다. 이런 전제 하에서 스벤젠은 노동의 미래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노동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런 관점은 노동시간을 줄여 나가서 노동자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최근의 보편적 인식과는 방향이 다르다. 자본주의를 붕괴시킴으로써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려 했던 마르크스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노동을 삶과 분리시켜 노동의 바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노동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노동 자체를 ‘좋은 노동’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인데, 이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 번째 질문은 ‘좋은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이며, 두 번째 질문은 ‘좋은 노동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려 할 때 어려운 점은, 좋은 노동을 명확히 정의하거나 도식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똑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직무를 담당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노동이란 일자리 자체의 특성뿐 아니라 노동을 대하는 노동자들의 태도와 능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많이 받는 직장에서 일하면 만족감이 올라갈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 에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안정적 급여를 받는 증권회사 간부였던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 외곽의 허름한 호텔로 무작정 가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물에 빠진 사람은 헤엄을 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물론 노동을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당연히 노동은 생계수단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좋은 노동이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고용안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적정한 급여와 해고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안정성은 좋은 노동의 기본적 조건일 뿐이다.

좋은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 신념을 표현하고 스스로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가 고립된 주체로가 아니라 사회적관계속에 노동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노동은 자신의 노동 결과물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요약하면 좋은 노동이란 노동을 통해 안정된 생계를 보장받고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가지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여를 통해 주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노동 3권은 좋은 노동의 필수 조건

이제 두 번째 질문인 ‘좋은 노동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좋은 노동을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을 대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개인의 마음가짐과 노력만으로 나쁜 노동을 좋은 노동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알베르토 카뮈의 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아무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 해도 거기서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결국 무의미하고 지루한 노동을 보다 인간적인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컨베이어 작업속도, 직무순환구조, 교육훈련기회 등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 통제 하의, 고도로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하에서 개별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좋은 노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힘이 필요하다. 노동3권이 좋은 노동을 위한 필수 조건인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 상 노동3권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법원과 정부는 노동3권 행사의 목적인 노동조건을 임금, 복리후생 등 ‘경제적 이익’으로 제한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반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영리의료화 반대,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보도 투쟁 등은 모두 좋은 노동을 목적으로 한 노동3권의 행사라 할 수 있는데도 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자신의 노동이 이윤추구나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공공선에 기여함으로써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홈플러스가 직원들에게 고객 1인당 100원씩 수수료를 주는 조건으로 경품추첨행사에 가능한 많은 고객들이 응모하도록 독려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 조합에서 ‘개인정보유출’을 이유로 사측의 지시를 거부한 것도 좋은 노동을 위한 모범적 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법은 공동선을 위한 노동3권은 인정하지 않고 ‘밥그릇 투쟁’만을 허용한다. 노동3권을 생존의 권리로 제한하면서 사실상 노동자들을 임금노예로 가두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합법적인 투쟁은 ‘밥그릇 투쟁’이라고 욕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나쁜 노동을 만들어 낼 때 노동자들은 이를 좋은 노동으로 바꿔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 노동 3권은 ‘밥그릇 지키는 권리’를 넘어 ‘좋은 노동을 위한 권리’로 재정립돼야 한다.

노동 3권이 ‘시민권’이어야 하는 이유

고대 그리스시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덕을 획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시민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정치적 활동을 위해 여가를 누리는 사이 일은 노예들에게 맡겨졌다.

근대 시민민주주의에서도 시민은 부르주아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노동자들은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사상가 루소의 통찰을 빌리자면 노동자들은 투표하는 날 하루만 시민으로 살 뿐이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되돌아간다. 형식상 신분질서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공공토론에서 배제돼 있으면서 실질적인 시민권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자신에게도 책임은 있다. 스스로 노동을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공동체의 이익에 무관심하게 살아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현대 대중사회는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도구적 이성의 위험성을 강조한 마르쿠제(1898~1979)역시 노동자들이 오로지 자동차, 요리도구 상품 속에서만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면서 ‘일차원적 존재’로 퇴락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이 기술적 표준화, 자동화에 따라 점점 획일화되고 노동자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데만 빠져 있으면서 공동체의 윤리나 도덕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노동을 위해서 앞에서 말한 정당한 대가, 자아실현의 기회도 주어져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익활동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좋은 노동에 대한 요구는 시민적 권리이기도 하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들뢰즈는 “자본주의가 이익을 위한 데모는 견디어 낼 수 있지만 욕망을 위한 데모는 전혀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의 욕망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바깥세계로 끊임없이 발산하게 만드는 ‘생산’의 동력이다.

인간은 본래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많은 ‘가치 있는 노동’을 욕망한다. 가치 있는 노동은 생산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과 관계 맺고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럴 때 노동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 3권’인 동시에 ‘시민권’인 권리다. 이 권리가 보장될 때 노동자들은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주에서 풀려나 ‘시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노동’, ‘좋은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강진구 | 경향신문 논설위원(공인노무사)

노동력의 가치(value of labour power)

마르크스주의 | 인물 | 정치경제학 | 미학 | 철학 | 한국현대사회운동 | 한국사회주의운동가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 의견바로가기 [노동력의 가치] (value of labour power)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물품의 생산과 또 그에 따른 재생산을 위해서 투입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자본론》, 제Ⅰ권, 제 6장). 그러나 그러한 특수한 상품의 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라는,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이의도 없고, 또 확실히 조리에 맞는 이 진술에는 많은 문제가 은폐되어 있다. 그러한 문제 가운데 일부는 마르크스에 의해서도 인정되었지만, 그 가운데 또 어떤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선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새로 보충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일련의 사용가치는 단지 최소한의 육체적 유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인식했다. 육체적 요구는 수행된 노동의 유형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또 기후나 그 밖의 다른 지리적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변화의 정도는 사회적 차이점에 기인하는 요소들에 의해서 축소된다. 그러므로 노동자계급의 요구는 “대부분 한 국가에 의해서 성취된 문명 수준에 의존한다. 특히, 그것은 자유로운 노동자계급이 형성된 상황과, 그에 따른 관습과 기대수준에 의존한다”(앞의 책). 따라서 임금이 최저생활 수준 이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노동-노동의 가치, 노동의 시장가격, 즉 임금은 그들의 육체적 존재를 변화시키며, 따라서 자연적으로 결정된다-에 대한 초과 수요라는 유리한 상황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리카르도나 맬더스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 그 자체를 결정하는 데는 “역사적이고 도덕적 요소”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임금이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한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의 “가사노동 논쟁”(→가사노동)에서 표면화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즉,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모든 노동시간이 그 가치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필요노동의 실질적 부분은 상품의 형태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시장에서 가치평가되지 않고서 가정에서 소비되는 사용가치를 직접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이 가사노동이다. 만약 이러한 노동이 노동력의 가치 속에 포함된다면, 이것은 항상 노동력의 보충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 이상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노동자는 그러한 “잉여”임금을 지불받을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대부분은 그것을 주부를 대신한 일종의 이전된 지불로 보고 있지만(Seccombe, 1974), 이 모든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도 같이, 가치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노동을 가치법칙에 종속되는 상품생산 노동에 결합시키는 비현실성으로 인해서 실패하였다(Gardner, Himmelweit and Mackintosh, 1974). 상품생산 노동과 상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교환은 후자를 전자와 구별할 수 없게 만들며, 또 이들에게 각기 포함된 서로 다른 특수한 생산관계를 인식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그에 따른 재생산 등을 위해서 필요한 상품생산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 투여되는 모든 다른 노동은 마땅히 필요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노동자가 가진 상품에 대한 수요가 확립된 배경을 형성하는 역사적-도덕적 요소의 부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론 노동력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이러한 다른 역할은 단지 가사노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타의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 노동에도 적용된다. 유통과정에서의 노동-예를 들면 광고-은 노동력의 가치에 포함되지 않는다-그것이 노동력의 가치가 결정되는 배후조건의 일부를 이루고는 있지만.

마르크스가 인식한 또 다른 문제는, 노동력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노동자는 저마다 하루 하루의 생활속에서 자신들의 노동력이 재생산되도록 해야만 한다. 둘째, 노동자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결국 자본주의사회가 계속 존속할 수 있기 위해서 다른 젊은 노동자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에 포함된 노동시간은 새로운 세대를 부양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대체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가족). 따라서 가정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단위라는 뜻에서 논의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것은 자신의 개인적 노동력을 판매하는 개별노동자에게 임금이 지불되는 실제의 임금노동 체계는 관계가 멀어질 것이다. 이 둘은 가족이 단지 한 명의 임금 취득자를 포함할 때만 똑같은 것으로 된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시민계급의 이상이었으며, 노동다계급이 이것을 위해서 투쟁을 해야만 하였다. 이 이상은 결코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적 필연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임금결정 이론의 근거를 이루는 합당한 기초도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의 실제를 특징짓는 가족관계에서 평등성의 결핍은 자본가적 고용주와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과 남성과 여성 사이의 투쟁의 무대를 제공하였으니(Humphreys, 1977;Barrett and Mclntosh, 1980), 이것은 단지 평균치를 둘러싼 변동의 문제로 처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가 “노동력의 가치 총량의 변화를 결정하는 모든 요소-노동자의 자연적-역사적 발전에서 기본적 생활 필수품의 가격과 정도, 노동자 훈련 비용, 여성과 어린이의 노동에 의해서 수행된 부분, 노동생산성과 그것의 크기 및 강도 등-“(《자본론》, 제Ⅰ권, 제22장)에 관한 목록을 작성할 때 이 문제를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상품의 특수한 본질, 즉 노동력에 의해서 일어나는 가치결정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분석을 가하지 않았다. 만약 생산된(produced)이라고 하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라면, 노동력은 자본주의 생산 밖에서, 그것을 판매하는 사람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단위에 의해서 생산된다. 그러므로 노동력은 만약 상품이 정확한 표현이라면, 그 상품의 교환가치가 확실히 그 생산자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거나 또 전혀 아무런 목적도 아니라는 점에서 어떤 다른 상품과도 다르다. 노동력과 노동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만약 이것이 자본에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또한 노동자계급의 가족과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가치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관련자료]

Barrett M. and McIntosh M. 1980: ‘The Family Wage’.

Gardiner, J., Himmelweit S. and Mackintosh M. 1975: ‘Women’s Domestic Labour’.

Humphreys, J. 1977: ‘Class Struggle and the Persisitence of the Working Class Family’.

Seccombe, W. 1974: ‘The Housewife and her Labour under Capitalism’.

■ 인접어

노동과정

노동과정(勞動過程)

노동관계 법령(勞動關係 法令)

노동귀족(勞動貴族)

노동력

노동력의 가치

노동력의 가치

노동문제(勞動問題)

노동법(勞動法)

노동시간(勞動時間)

노동예비군

뒤로 ■ 의견

-말머리선택- 문제제기 이의 보충 기타 로그인 하신 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노동 가치의 왜곡

송민각 호남주류 대표 전주시 완산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그토록 기다렸던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 소식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거리두기 완화 이후 몰려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나, 부족한 일손과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인건비로 달리기도 전에 지쳐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완주군 3공단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경영하는 대표자 B씨는 오늘도 한국을 떠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구직사이트에 몇 차례 들어가 봤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구인난은 왜 심각해지고 있을까? 노동의 가치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있다. 자산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변동성이 높은 자산들이 큰 폭으로 요동치다 보니 한 방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즉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자산을 갖기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투자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노동의 가치마저 잃어버리고 오로지 한 방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노동이 재산 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의 참된 가치는 노동 환경 속에서의 사회화 과정을 통한 사회성과 인격의 성장이다. 노동이 결여된 일부 과도한 투기 행위들로 하여금 일확천금의 환상을 좇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인지 우려스럽다. 플랫폼 배달업체로 인력이 몰리고 있어 구인난은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SNS통해서 ‘일당 수십만 원을 벌었다’라는 배달 인증 글이 유행할 정도로 배달 아르바이트에 관심이 높다. 플랫폼 배당업체에 종사하는 인력들은 유연한 근무환경과 높은 급여로 모두가 선호하고 있는 직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배달업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고 원할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장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수익 배달업이 유지될 것인가? 코로나 이후 새롭게 변화된 산업에서 플랫폼 배달업은 새로운 변화를 겪을 것이고 단기간 유연하게 근무하는 노동자는 언제든지 일이 끊기게 될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새고있는 정부지원금이 문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국가 및 지자체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권장하고 나아가 기업의 안정적인 고용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사업들이 고용시장의 숨통을 틔워준다. 하지만 정부의 궁극적인 사업 목적과는 다르게 일부 청년층은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혜택을 받기 위한 일명 ‘꼼수’를 부리고 있다. 업(業)을 통한 생산과 그로 인한 세금으로 정부지원금이 운영되는 순환구조를 망가트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정부와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노동은 삶의 필연적인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로 한국을 떠난 외국인노동자가 줄어들며 노동시장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농가, 공장 등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려는 경쟁까지 생겨나면서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인건비가 올라가고 있다. 농촌과 공장뿐만 아니라 유통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자 발급의 문을 더 열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외국인노동자의 입국과 채용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못하면 모든 생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부상하고 있으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여도 노동이 없는 가치는 허구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땀 흘려 얻은 작은 결실이 주는 가치가 우연히 얻어진 행운 이상의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노동과 함께 직업에 대한 일을 배워야 한다. 노동의 가치가 중시되는 건전한 사회를 창출한다는 기본 개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열악하고 어려웠던 환경에서도 꿋꿋이 노력했던 노동의 가치가 없었다면 불가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민각 호남주류 대표

송민각 호남주류 대표

전주시 완산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그토록 기다렸던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 소식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거리두기 완화 이후 몰려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나, 부족한 일손과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인건비로 달리기도 전에 지쳐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완주군 3공단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경영하는 대표자 B씨는 오늘도 한국을 떠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구직사이트에 몇 차례 들어가 봤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구인난은 왜 심각해지고 있을까? 노동의 가치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있다.

자산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변동성이 높은 자산들이 큰 폭으로 요동치다 보니 한 방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즉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자산을 갖기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투자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노동의 가치마저 잃어버리고 오로지 한 방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노동이 재산 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의 참된 가치는 노동 환경 속에서의 사회화 과정을 통한 사회성과 인격의 성장이다. 노동이 결여된 일부 과도한 투기 행위들로 하여금 일확천금의 환상을 좇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인지 우려스럽다.

플랫폼 배달업체로 인력이 몰리고 있어 구인난은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SNS통해서 ‘일당 수십만 원을 벌었다’라는 배달 인증 글이 유행할 정도로 배달 아르바이트에 관심이 높다. 플랫폼 배당업체에 종사하는 인력들은 유연한 근무환경과 높은 급여로 모두가 선호하고 있는 직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배달업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고 원할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장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수익 배달업이 유지될 것인가? 코로나 이후 새롭게 변화된 산업에서 플랫폼 배달업은 새로운 변화를 겪을 것이고 단기간 유연하게 근무하는 노동자는 언제든지 일이 끊기게 될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새고있는 정부지원금이 문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국가 및 지자체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권장하고 나아가 기업의 안정적인 고용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사업들이 고용시장의 숨통을 틔워준다. 하지만 정부의 궁극적인 사업 목적과는 다르게 일부 청년층은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혜택을 받기 위한 일명 ‘꼼수’를 부리고 있다. 업(業)을 통한 생산과 그로 인한 세금으로 정부지원금이 운영되는 순환구조를 망가트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정부와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노동은 삶의 필연적인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로 한국을 떠난 외국인노동자가 줄어들며 노동시장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농가, 공장 등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려는 경쟁까지 생겨나면서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인건비가 올라가고 있다. 농촌과 공장뿐만 아니라 유통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자 발급의 문을 더 열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외국인노동자의 입국과 채용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못하면 모든 생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부상하고 있으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여도 노동이 없는 가치는 허구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땀 흘려 얻은 작은 결실이 주는 가치가 우연히 얻어진 행운 이상의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노동과 함께 직업에 대한 일을 배워야 한다. 노동의 가치가 중시되는 건전한 사회를 창출한다는 기본 개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열악하고 어려웠던 환경에서도 꿋꿋이 노력했던 노동의 가치가 없었다면 불가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민각 호남주류 대표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 자본주의의 속성과 노동의 가치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마치고 나면 일을 해야 하며 일을 하는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내가 직접 회사를 세우고 경영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만든 회사에 취업을 하는 방법이다. 보통은 취업의 형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므로 대부분 노동자가 되며 노동자라고 해서 꼭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일을 하는 직업만을 말하지는 않으며 회사의 오너가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취업을 하고 노동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사장이라는 상하관계에 놓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장을 달리는 고용주, 경영자, 사용자라고도 하며 노동자에 대한 고용 권한을 가지므로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는 자연히 지배관계가 형성된다.

시대가 변할지라도 인류가 살아가는 근본 양식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식량, 의복, 주거 등의 생필품과 다양한 편의품을 필요로 하며 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재료, 도구, 시설 등의 자본과 이를 취급해 생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동력이 있어야만 한다.

자본과 노동력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이 둘은 평등관계가 아닌 종속관계로 존재한다. 노동자는 자본에 속해 노동을 통해 생산에 기여하지만 발생한 생산물은 자본을 소유한 이가 모두 가져가며 노동자는 정해진 임금만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생산관계는 각 시대마다 계급관계를 형성해왔다. 노예제도 안에서 노예는 주체성과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주인이 소유한 하나의 생산수단으로 취급되었다. 주인이 소유한 생산기반 안에서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창출하지만 생산물의 전부와 노예 그 자신과 자식들까지도 주인의 소유물이 된다. 봉건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지라는 생산기반을 소유한 영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산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대부분은 영주가 가져가고 일부만을 농노가 가질 수 있었다.

봉건제 이후 등장한 자본주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갖고 자신의 노동력을 원하는 곳에 팔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노예와 영노에 비해 자유로워졌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진정한 자유라 말할 순 없으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을 소유한 이들을 자본가라 부르며 여기서 말한 자본이란 기업을 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는 노동의 지위와 가치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대량생산을 위해 분업화된 생산 환경을 만든다. 한 명의 노동자가 혼자서 바늘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하루 동안 만들 수 있는 바늘의 개수는 20개에 불과하지만 생산 공정을 18단계로 나누고 18명의 노동자가 바늘을 생산하면 하루 4만 개의 바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바로 분업의 효율성이다. 하지만 분업체계 하에서는 개인의 전문성과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인정되지 않는다. 재료 및 도구와 같은 자본을 활용하여 상품이나 재화를 오로지 혼자서 만들어내는 고도의 숙련된 노동자들을 장인(匠人)이라 한다. 장인에게 자본은 그저 생산수단일 뿐이지만 반대로 자본주의 분업체계 하에서는 자본에 종속되어 하나의 생산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의 임금 가치를 자본가에게 온전히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분업체계 하에서의 노동은 단순노동이므로 얼마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이익을 노리는 곳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자본가는 끝임 없이 이익을 좇고 그들이 이익을 노리는 곳에서만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계속해서 이익이 창출되어야만 자본가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본가가 이익을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대비할 때 나의 필요성과 노동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금융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소득창출을 가능케 하며 이렇게 발생한 소득을 불로소득이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금융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은 기업에 속해 임금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와 같은 금융에 기대를 건다. 금융은 생필품이나 편의품 등을 생산하는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부가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 그렇다고 금융이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융은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은행에서 받는 대출도 소득의 한 형태다. 다만 노동이 아닌 불로소득이기에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는데 기여함으로 경제순환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통화량을 늘려 인플레이션과 같은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므로 대출과 소비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면 개인의 파산은 물론 언젠간 거품이 꺼지고 경제공황을 야기하게 된다.

필자는 땀 흘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손에 쥐는 노동의 대가만이 진정한 소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을 통한 소득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에 있다. 수억이나 되는 집을 한 채 마련하려면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으로는 수십 년이 걸린다는 언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해야만 이 상황이 바뀌는 것일까.

이는 생산기반인 자본의 속성이 변해야만 이 상황도 바뀔 수 있다. 즉 기업의 변화만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와 같이 공장에서 일을 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전부이던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아이디어가 이윤을 만들어내는 지식산업사회다. 과거엔 노동가치가 상품의 생산량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평가기준으로 했다면 지식산업사회에서는 3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바로 <노동 정도, 매출, 미래가치>이다. 노동 정도는 시간, 신체, 감정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과거엔 이 가운데 노동시간만이 노동의 가치로 여겨졌다. 노동시간의 연장은 흔히 잔업 또는 초과근무라고 하는데 정해진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만 할당된 일이 많아 야근을 하는 경우나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이다. 이는 초과수당이라는 형태로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함이 마땅하다.

더불어 이제는 신체 노동과 감정노동도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체 노동은 뜨거운 용광로에서 일을 하는 제철 생산직이나 건설노동자 등이 대표적인데 일 자체가 신체적으로 고되고 위험하기에 그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여 임금을 정해야 한다. 감정노동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비례한다. 흔히 고객이라는 대상을 상대하는 직업군으로 텔레마케터, 관광업 등 서비스직 종사자들이다. 우리는 종종 극심한 감정노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에 빠졌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얼마나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지를 방증하는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 역시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매출은 상품의 판매를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직업군을 말하는데 이에는 영업직, 판매직이 속한다.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면서 곧바로 이익을 발생시키는 이 직업군에 속한 이들은 매출액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업이나 판매를 하더라도 계획 수립과 판매행위의 과정을 거치므로 노동시간을 들이게 되며 그 과정에서 거래대상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더해진다. 이 모두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어야 한다.

미래가치는 머지않아 소속된 조직의 가치를 높여 막대한 명예와 부를 창출하는 가치 노동을 말한다. 이에는 전략기획이나 마케팅 그리고 학교 교사와 같은 직업군이 속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 교사는 수익창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훗날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백년대계를 짊어지기에 엄청난 미래가치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미래가치만 아니라 개성 넘치고 다양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오는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는 곧 감정노동이며 더욱이 교권이 떨어진 현재이기에 교사에게는 이러한 노동 정도도 평가에 더해져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예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엔 수많은 직업이 있으므로 폭넓게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함께 공부하고 뛰어노는 주변의 친구들이 시간이 흘러 배움을 마치고 사회의 일원이 되면 저마다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와 내가 갑을관계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사회는 냉정하다. 생존을 위해 만나는 사회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평가와 거래가 주를 이룬다. 내가 상대에게 내보일 밑천이 없으면 평가절하 되고 밑천이 없기에 거래할 기회도 잃게 된다. 이른바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밑천을 만들고 싶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명확히 세우고 지금부터 실천해야 한다. 수없이 많이 들어왔겠지만 학생의 신분에서 가장 빨리 밑천을 만드는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면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임금도 많이 받는다. 차라리 회사를 세워 고용주가 되고 싶은가. 회사를 만드는 것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세우려 해도 사업의 내용보다도 그 사람의 학력과 학벌을 따지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해서 회사를 세우더라도 직원들의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와 계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려면 사람을 다루는 능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방법들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에는 지나온 과거의 성공사례와 문제점이 모두 나와 있다. 성공모델의 단점을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매일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고 있음에도 학업을 멀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앞으로 고용주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 모르지만 고용주가 된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이는 곧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자 생산성 향상으로 결국 고용주에게도 이로운 일이 됨을 잊어선 안 된다. 반대로 취업을 통해 노동자가 된다면 회사에 기여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하며 이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노동 의 가치

다음은 Bing에서 노동 의 가치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노동의 가치

  • Doomer
  • K-Doomer
  • 두머
  • K-두머
  • wojak
  • korean doomer
  • 노동의 가치
  • 내집마련
  • 부동산

노동의 #가치


YouTube에서 노동 의 가치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의 가치 | 노동 의 가치,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