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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 대순회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교무부 김의성.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良心)이고,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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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ebzine.daesoon.org

Date Published: 1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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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상식 넘어서기 – Learning Times

우선, 성선설(性善說)은 맹자(孟子)가 주장한 도덕설의 중심이념이다.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善)하며,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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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ltimes.kr

Date Published: 1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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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성악설…善·惡 본성, 모두 타고나지 않아 – 중기이코노미

그렇게 된 이유는 순자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해 유가의 이단자처럼 낙인찍힌 데 반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주자가 성리학에서 펼치는 인성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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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unggi.co.kr

Date Published: 5/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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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 네이버 블로그

성선설과 성악설 … 오래 전부터 크게 두 가지 본성으로 구분했다. …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이 그것이다. … 네 가지 마음을 천부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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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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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설(性惡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선설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하다고 보는 맹자의 학설. 성거짓없는 말의 실행 또는 『논어』의 충(忠)과 신(信)처럼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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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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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그리고 성악설 – 미주 한국일보

… 성선설이나 인간의 본성은 악하나 인위(도덕적인 가르침) 의 덕분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순자의 성악설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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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oreatimes.com

Date Published: 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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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 브런치

악에서 선을 만드는 교육 |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중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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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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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악설 성선설

  • Author: 지식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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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3.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Nl4m9_uwO0

성선설·성악설…善·惡 본성, 모두 타고나지 않아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공자가 유가학파를 설립하고 맹자가 뒤를 이어 발전시켰다 해서, 그들의 사상을 한데 아울러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한다. 그렇지만 송(宋)나라 이전까지 유가학파에서, 맹자보다 더 확고한 영향력을 가졌던 이는 순자(荀子)다. 송나라 때 주자(朱子)가 『맹자』를 유가의 주요 저작인 사서(四書)에 편입하면서 형세가 역전됐다.

그렇게 된 이유는 순자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해 유가의 이단자처럼 낙인찍힌 데 반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주자가 성리학에서 펼치는 인성론에 적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 심(忄)’자와 ‘날 생(生)’자가 합쳐진 인간의 성(性), 즉 인간의 타고난 마음에 대해 공자는 어떤 견해를 폈을까?

일찍이 공자는 『논어』 「양화(陽貨)」편에서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게 타고나지만, 후천적인 습관이 서로 달라지게 한다.(性相近也, 習相遠也.)”했는데, 이 말만 봐서는 공자의 인성론이 성선설인지 성악설인지 분명하지 않다. 선하고 악한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했고, 후천적 환경에 의해 인간의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공자의 인성론은 성악설에 가깝다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평소 공자가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인간은 어질고 의롭다고 한 말들을 종합하면, 그래도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자의 입장을 따른 이가 맹자이다.

오늘날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지만, 사찰뿐만 아니라 번화한 거리나 상점에서 사람들이 신상(神像)에 돈을 시주하며 복을 기원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맹자의 성선설이나 순자의 성악설 모두, 인간이 선하거나 악한 본성이 그저 타고났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맹자는 인간이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한 실마리인 사단(四端)을 타고났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가운데 선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렇듯 타고난 선한 실마리를 잃어버리거나 놓쳐버렸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므로 학습을 통해 타고난 착한 실마리를 잘 넓히고 확충해야만, 인간이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맹자의 가르침이다.

순자의 성악설도 인간 모두가 나면서부터 무조건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악한 본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주변 환경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될 뿐이라 했다. 그러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주변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열심히 학습해 선한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한 것이 성악설의 요점이다.

인간 본성이 악(惡)하다고 한 의미, 우리는 흔히 서양의 악마(惡魔)와 같은 뜻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순자가 말한 악하다는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마음의 상태라고 봐야한다. 맹자나 순자가 똑같이 열심히 학습하고 노력해서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니,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같다. 다만 맹자가 인간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현실적으로 봤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국 서안(西安) 지역에는 ‘����미엔’이라는 국수가 먹거리로 유명하다. 우리의 칼국수보다 훨씬 넓은 면 가닥으로 끓인 것인데, ‘����미엔’ 글자 안에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선한 사람도 있는데, 순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한 것일까? 순자는 그의 책 「성악(性惡)」편에서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만, 그가 선한 것은 일부러 한 것이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라고 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보이는 것을 ‘위(僞)’라했는데, 이 글자는 오늘날 흔히 ‘거짓’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하지만 순자는 위(僞)자를 ‘사람[亻]이 한다[爲]’, 일부러 무엇인가 가장한다는 의미로 파악했다. 사람들 가운데 선한 이들이 있는 것은 착한 본성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가장한 것으로, 악해지려는 타고난 본성을 제어하려는 이들의 의지가 선하게 드러난 것일 뿐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렇듯 악해지는 이유에 대해 순자는 「성악(性惡)」편에서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로운 것을 좋아한다. 이것을 따르면 그 때문에 싸우고 빼앗는 일이 생기고 서로 사양하는 것이 없어진다.(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而辭讓亡焉.)”고 설명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 이유는 인간이 이익(利益)을 탐해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때문이란 말이다. 순자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사회 갈등의 대부분은 사회 구성원 간 이익을 둘러싼 다툼이다. 이미 이익이나 권력을 많이 가진 기득권자들과 그것을 공평하게 나눠야한다는 이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인 듯하다.

순자는 그렇듯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예(禮)를 통해 절제해야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오늘날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보다도 훨씬 강한 강제수단인 법(法)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을 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부만이 이익과 권력을 누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다. 순자가 말한 것처럼 이익에 탐닉하는 인간 본성을 예를 통해 스스로 절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선설과 성악설

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이 본래의 타고난 성품은 다양하지만

오래 전부터 크게 두 가지 본성으로 구분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이 그것이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덕성(德性)을 높일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을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는데,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좋은 것도 한두 번 사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선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선은 타고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한 것이다.

성악설과 성선설의 어느 쪽이 맞는가?

성경은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따를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26.27)

선하신 하느님을 닮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면 성선설이 맞다.

그러나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타고나면서 죄를 짓고 출생했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이 맞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도 로마서에서 육체를 지닌 인간의 나약성을 고백한다.

“형제 여러분,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로마 7,18-20)

선을 바라면서 악을 행하는 것은 인간 본성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으니,

육을 지닌 인간은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죄로부터 나약한 인간을 구해준 분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지은 죄를 깨끗이 씻고 인류를 악에서 구해주셨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4-25)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악설의 지배를 받았겠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성선설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시대의 징조이다.

그런데 우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의 징조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는가?

예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시대의 징조이다.

만일 우리를 고소한 자가 있다고 하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고소한 자와 재판관에게로 갔을까?

우리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왜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쓰지 않는가?

화해와 용서는 예수님이 보여준 시대의 징조인데

왜 서로가 재판을 받고 서로가 서로를 감옥에 가두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루카 12,59)

우리가 용서와 화해로 마지막 원수 한 사람까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그러면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을 추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다.

아담의 원죄로 우리는 그 본성을 잃었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 본성을 되찾았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용서와 화해로 하느님의 본성을 세상에 드러내야겠다.

10월 25일(금) 오전 9시에 주간회의를 했다.

나와 원장수녀, 전교수녀와 사도회장이 참석했고,

지난 일정과 금주 일정을 살펴본 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토의했다.

2020년 달력(280부), 사목수첩(35권), 다이어리(30부) 신청 확인을 사도회장님이 했고,

성체조배회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하는 것을 주보에 싣기로 했으며,

교중미사 전에 신자들에게 화답송을 연습시키기로 했고,

전교수녀님은 해설자 2명을 섭외했다.

사무실 열쇠를 교체하고 본당 승합차 열쇠를 복사하고,

금일 사도회장이 사무장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으며,

자판기 수익금 중에서 사도회에 10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사회복지기금으로 하고,

추수감사헌금, 젓갈판매수익금, 성물방수익금 100만원 등도 사회복지기금으로 하며,

각 구역별, 각 공소별로 가난한 이웃을 추천받아 연말에 사회복지분과에서 돕기로 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지 않으면 교회의 모습을 잃기 때문이다.

10시 10분쯤 성당으로 들어가 성체조배를 하고 아침기도를 바쳤다.

고해성사는 3명이 보았고,

11시 순례자미사에는 41명이 참석했다.

개별 순례자들만 있기에 순례자 헌금을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순례자들의 미사예물은 많았다.

예약된 순례자들이 없어 오후에는 여유 있게 쉬기도 하고,

사목일기를 쓰고 주간회의록을 정리하고 TV도 보았다.

순례자가 없으니 이렇게 편한 걸.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대립되는 이론이다.

맹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악을 거부하고 선을 실행하려는 마음씨를, 즉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순자는 이와 정반대로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생(生)의 충동이 일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이러한 측면이 성장하여 서로 쟁탈하는 싸움이 일어나고 사회적 혼란이 생긴다. 여기서 도덕 질서가 파괴되는 것이라고 보았으므로 이를 가리켜 인성이 악하다고 규정지은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인성(人性)은 사람의 마음씨를 의미하고 선악(善惡)은 도덕적 가치를 의미한다. 순자가 말하는 인성은 욕망을 의미하고 선악은 사회적 치란(治亂)을 의미한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선한 방향으로 그것을 교정(矯正)할 수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을 일러서 ‘위(僞)’를 쌓는 일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위’는 우리가 일상 말하는 거짓이라는 뜻의 허위(虛僞)가 아니고 ‘인위(人爲)’를 가리킨 것이다. 인위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욕망과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개념이다. 바로 인간의 능동적인 작위(作爲)를 의미한다.

선천적 인간의 본성을 후천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다 발휘할 수만 있다면 범인(凡人)도 역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밖으로부터 작용을 가해 인성을 교정하는 작업을 교육이라고 하였다. 순자는 교육의 수단으로 우리의 이상적 지도자 선왕(先王)이 제정한 예의(禮義)와 사법(師法)을 들고 있다. 예의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표준이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하고 맹자는 인과 의(義)를 강조하였다. 이는 모두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발하는 요소이고 천명(天命)에 통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순자의 예와 의는 외재적(外在的)인 규정이다. 우리의 사회적 집단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강제된 것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외재적인 규정에 의해 인간을 규제하고 성정(性情)의 방향을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여기서 예와 의는 법률과 근사한 뜻을 가진다고 하겠다.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이론에 영향을 준 바가 크다.

유가(儒家)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 근거를 ‘천(天)’에 두고 천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도가(道家)는 ‘무위자연(無爲自然)’할 것을 주장해 인간의 지혜와 일체의 작위를 물리치고 자연의 질서에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자연의 법칙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그 법칙성을 설명하려고 들지는 아니하였다.

순자는 도가의 자연관을 받아들여 유가의 천도관(天道觀)을 극복, 변질시켰다. 천(天)이 바로 자연이라고 이해하고 초자연적 존재인 천명을 부정하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고 도가가 주장하는 무위자연을 역시 거부하였다.

여기에서 순자는 천의 역할과 인(人)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자연을 자연으로 파악하고 그 자연을 인간에게 봉사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자연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간의 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 인간의 자각적(自覺的)인 능력을 크게 자부(自負)하였다.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자연 개조의 욕구를 개인에게 적용시킨 논리가 바로 성악설이다.

다시 말해서 성악설은 인간의 자연한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악의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고 선왕이 제정한 예의를 가지고 이를 교정하자는 의욕의 표현이었다.

성선설과 성악설

성선설 (性善說) 과 성악설 (性惡說) 중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의 얼굴에서 악마를 상상할 수 있는가?

난 맹자의 성선설 과 순자의 성악설 중 전자를 맹신해 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윤리 수업 시간에 순자보다는 맹자가 더 비중 있게 다뤄졌었기 때문일까? 선생님도 맹자를 강조했지 순자는 존재감이 미약했다.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출제빈도에 맞춰진 주입 식 교육 이 오랜 시간 우리의 뇌를 지배한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은 바뀌었다.

물론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경험한 것도 있겠지만 최근에 읽었던 책 [아버지라면 유대인처럼],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믿고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교육방식은 악에서 태어난 아이를 교육을 통해 선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을 악으로 몰아세우는 게 조금은 비약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게 죄’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나온 존재는 죄를 범하기 쉽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부모와 학교를 통한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

악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무섭고 흉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 악마는 하 수 일 뿐이다. 진정한 고수는 선한 모습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한국인은 외면과 내면을 동일시하는 관습적인 오류를 범한다. 외모와 지위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화려하고 권위 있는 모습만 추종하고 열광한다. 그것이 나의 내면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

웃으면서 뺨 떼리는 사람을 생각해 봤는가? 그런 사람은 무섭다. 화를 내며 폭력을 행사하면 감정표현이 솔직한 인간이지만 감정표현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정신이상이거나 악마이다. 이런 성향 을 보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웃으면서 다가와 다른 아이를 밀치고 부모의 얼굴을 때린다. 모르고 하는 행동 이겠지만 제재가 없으면 뇌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그럼 진짜 악마가 될지도 모른다. 그냥 놔둘 것인가?

악마는 사회화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고 고귀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무시하고 깨뜨리는 자들이다. 인간 사회는 수많은 규범이 존재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부터 각 사회문화별로 규정한 규범 그리고 사회법까지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사회화되어 간다. 사회적인 약속을 어기는 자는 사회에서 존재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심할 경우 사회와 격리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사람 인(人)의 글자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형상이듯이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녀 교육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주변에 자녀 교육을 두고 다투는 집안을 많이 목격한다. 취학 전 아동은 엄마와 아빠를 롤모델로 세상을 학습한다.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제 학교는 더 이상 학생에게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다. 힘들게 얻은 교사 자리를 학생 인성을 바로 잡으려다 내 밥그릇까지 날려버릴 용기를 가진 교사는 그리 많지 않다. 선생님한테 뺨 맞던 시절에서 이젠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뺨 맞는 시대가 되었다. 성적지상주의 한국에서 교사는 그저 성적관리 공무원 으 로 전락하였다.

이제 아이의 인성은 전적으로 부모로부터 완성되는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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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설vs성선설! #/ #💀인간의 #본성은 #어느 #쪽일까? #(feat. #이스터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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