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자 | 강진에서 세계로 나간 화려했던 고려청자 역사 속으로 “Kbs 스페셜 – 고려청자 비색의 유혹” (Kbs 091004 방송) 최근 답변 1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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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 고려청자 비색의 유혹”

중국이 만든 청화자기는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400년간 세계 최고의 무역상품이었다. 그 청화자기 안에 고려 상감청자의 문양이 숨어있다. 이는 元과 明의 황제들이 고려 상감청자를 특히 좋아해 초기 청화자기에 상감청자 문양을 그려 넣도록 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와 중국의 청화자기를 비교를 통해 고려청자가 중국 청화자기 탄생의 근간이 되는 과정을 확인해 본다.

#고려청자 #중국청화자기 #상감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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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세기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장식디자인 비교 연구

고려청자는 중국청자에 영향을 받아 제작 및 소성기술을 습득한 이후 독자적인. 청자 발전의 절정기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상감기법이라는 독자적인 장식기법을 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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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reascience.kr

Date Published: 7/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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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빛깔의 원리와 중국 청자 분류 – 네이버 블로그

중국 청자는 남방 청자와 북방 청자로 나누고 우선 원시청자를 이어 받은 남방 청자로부터 중국 청자는 시작하는데 월요, 장사요, 용천요 이렇게 세 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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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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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靑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 나라 청자와 흡사한 중국청자는 월주요와 여관요청자인데 월주청자는 유약의 투명도가 약하고 갈색을 약간 머금은 올리브그린(olive green)색을 띠며 여관요청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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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7/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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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앞바다서 건진 중국 청자 공개 | 중앙일보

비췻빛 푸른 기운이 신비로운 비색청자. 한국에서는 주로 비색(翡色)으로, 중국에서는 비색(秘色)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같은 비색청자라도 한국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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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5/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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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고려의 색, 청자의 빛 – 우리역사넷

실제로 10세기경의 중국 가마에서는 초벌을 하지 않고 성형된 기물에 유약을 씌워 한 번에 구워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국내에 전해진 번조기술은 바로 이렇게 한 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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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ntents.history.go.kr

Date Published: 1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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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세계로 나간 화려했던 고려청자 역사 속으로 “KBS 스페셜 - 고려청자 비색의 유혹” (KBS 091004 방송)
강진에서 세계로 나간 화려했던 고려청자 역사 속으로 “KBS 스페셜 – 고려청자 비색의 유혹” (KBS 091004 방송)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중국 청자

  • Author: K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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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7.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EBDIQAkOKM

청자 빛깔의 원리와 중국 청자 분류

청자의 고운 빛, 매우 매력적이다.

청자를 비롯한 도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세계로 수출되었는데, 특히 푸른 빛을 띄는 청자는 흰색을 좋아하는 몽고족 원나라가 백자에다가, 그 시기 한족을 억누르기 위해 전적으로 받아들인 이슬람인들이 코발트 청색 색소를 가져와 이것으로 최초로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는 가장 선호하는 자기의 형태였다.

중국 한족들의 송나라 시기 사대부들은 오래전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그 시기의 그릇이었던 청동기의 빛깔을 선호하여 청자를 꾸준히 개발하게 된다.

아래 노란색이 중국의 자기의 역사로 가장 오래되었다. (첨부화일로 더 큰 사진 첨부)

이러한 청자의 푸른 빛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청자가 실크로드나 바닷길을 통해 전세계로 고가에 팔려나갔을때 이를 모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나오는데, 1000도 이상으로 굽는 온도를 높이지 못하여 만들어진 토기나 도기에 청색 물감을 겉에 칠한 것들이 중국 청자를 구입했던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도저히 중국 청자와 비교될수 없는 것들이었다.

청자의 푸른 빛은 흙의 색도 아니요, 안료의 색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바로 유약이나 태토에 포함된 철분 성분이 굽는 소성과정에서 고열을 받아 만들어낸 색인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유약에 약 1~3%의 산화제이철(Fe2O3)이 포함되면 이것이 1200도 이상의 열을 받아 발색을 하게 되는데 산소가 충분한 조건하에서는 황색 등 붉은 색 톤을 띄고, 산소가 부족한 조건하에서는 푸른 빛을 띄게 된다.

철분 Fe는 2가 (Fe2+) 와 3가(Fe3+)가 있는데 3가철이 산소와 염을 이룬 형태가 아래 그림과 같은 붉은색의 산화제이철(Fe2O3, Ferric Oxide)이다. 산소는 항상 2가를 띄기 때문에 3가의 철과 조합을 이루려면 철:산소=2:3 비율이 되어야만 한다.

노천에서 구덩이를 파고 산소 공급이 충분한 산화염 상태에서 굽는 선사시대의 토기 등이 붉은 계통의 색을 띄는 것은 바로 이 산화제이철이 그대로 남아 붉은색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천 대신 밀폐된 가마속에서 불을 때면 산소가 없는 조건하에서 굽게 되는데 이는 땔감이 그을음이 많이 생기는 불완전 연소가 되고 재가 다 타버리기 전에 다시 땔감을 또 넣어 계속 불완전 연소를 유지하는데 CO2 대신 일산화탄소인 CO가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CO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1000도 이상의 고온 상태에서 태토나 유약안에 함유되어 있던 위 구조식인 산화제이철에서 산소 원자를 한 개 빼앗아 CO가 CO2가 되어 안정화 하려한다. 그럼 2:3 비율의 산화제이철(Fe2O3)이 Fe2O2, 즉 두 분자의 FeO (산화제일철, Ferrous Oxide)가 되버린다. 산화제일철 구조는 철:산소=1:1 비율로 아래와 같다.

이 산화제일철의 색이 바로 푸른색이다.

산소를 부족하게 유지하면 아래와 같은 화학반응이 생기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푸른 빛은 유약에 의해 나오게 되므로 유약이 두꺼울수록 발색이 좋아져 두껍게 발라줘야 한다.

만약 진한 푸른색을 원한다고 3%이상의 산화제이철을 함유하게 하면 FeO로 다 안만들어져 (환원화가 전부 안되어) 남은 산화제이철에 의해 붉은색이 돌게 되거나, 과포화된 철 입자가 겉에 남아 검은색으로 변하게 되므로, 산화제이철 농도를 진하게 하면 오답이고 유약을 두텁게 해야 한다.

나뭇재 유약을 쓰면 그 안의 다양한 성분들이 색을 그윽하게 하며, 특히 인산은 유약속에 기포를 만들게 하여 빛의 산란 효과를 가져와 청명한 색을 돌게 한다.

중국은 이처럼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색을 만들어왔기에 전 세계로 고가에 팔려나갈 수 있었다.

그럼 중국 청자의 종류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2017년 6~8월에 열렸던 ‘청자의 길’의 내용으로 정리한다.

중국 청자는 남방 청자와 북방 청자로 나누고 우선 원시청자를 이어 받은 남방 청자로부터 중국 청자는 시작하는데 월요, 장사요, 용천요 이렇게 세 군데 지역이 남방 청자의 대표적 산지이다.

그 중에서도 청자의 첫 주인공은 월요 청자였다.

당나라 멸망시 북쪽에서 남으로 당삼채 도공들이 내려와 청자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장사요이다.

드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청자인, 옥과 같이 고운 청자가 용천요이다.

이제는 북방 청자이다.

화려한 문양의 요주요, 가마가 부린 예술인 균요, 청자의 절정인 여요, 이렇게 남방 청자와 같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균요는 그릇을 굽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인 요변 현상이 특징이다.

여요는 호수에 비친 청명한 하늘 빛으로 송대 청자의 높은 수준을 말하는, 청자 빛깔의 최고봉인데 우리나라 고려청자도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

많은 여요 청자들은 대만 고궁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12세기 전반기는 고려청자 중에서도 순청자가 가장 세련되는 시기였다. 청자의 색은 처음부터 환원번조로 시작되었으며, 이미 11세기에는 완벽한 환원번조로 독특한 청자색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2세기 전반기는 그 절정기로서 이 때 청자의 모습은 17대 인종왕릉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자과형화병(靑磁瓜形花甁) 등 일괄유물로 대표된다.

1123년(인종 1) 북송 휘종의 사행의 일원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 “근년 이래 제작이 공교(工巧)하며 색택(色澤)이 더욱 아름답다.”라고 한 것이나, 북송말경으로 생각되는 태평노인(太平老人)의 기록인 『수중금 袖中錦』에 “고려청자의 비색이 천하제일”이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반실투성(半失透性)의 빙렬(氷裂)이 거의 없는 우수한 비색 유약을 완성하였다(1차비색 완성).

비색 유약의 완성과 더불어 기형·문양·번조수법 등에 남아 있던 중국의 영향이 거의 사라지고 자연에서 소재를 얻은 독창적인 형태와 문양이 고려적으로 변형, 발전되며 독특한 세련을 보인다.

이와 같은 청자의 세련은 12세기 중엽까지는 또 다른 의미의 진전을 보여 유약은 반실투성에서 조금씩 더 밝아지고(2차비색 완성), 새롭게 구상된 음각·양각·투각문양 등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고려사』 세가 의종 11년(1157)조에 보이는 청자와(靑磁瓦)의 기록과,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에 산재한 청자와편(靑磁瓦片)을 반출하는 요지에서 증명이 된다.

이 당전마을의 청자와편을 반출하는 요지에서 출토되는 파편의 유약은 인종릉에서 출토되는 일괄유물인 1차비색 완성기(12세기 전반)의 것보다 유색이 조금 더 밝아졌으며 기형과 문양이 고려적으로 좀더 완숙한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또 획기적인 시문방법으로 고려자기에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였다. 상감 완성과 때를 맞추어 상감을 여러 가지로 응용한 것, 또는 상감기법 외의 다른 여러 방법으로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철채상감·철채백퇴화·철유·철유상감·철유백퇴화문 등)이 싹텄을 뿐 아니라 이러한 여러 가지 기법이 완숙한 상태에 도달하였다.

1159년(의종 13)에 죽은 문공유(文公裕)의 지석(誌石)과 함께 출토된 청자상감보상당초문완(靑磁象嵌寶相唐草文盌)은 유약이 맑고 투명하며, 상감의 기법과 문양의 포치(布置) 등이 매우 발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공유묘 출토 대접을 만든 시기는 유약·기형·문양과 문양의 포치·번조수법 등이 가장 아름답고, 고려자기의 기준이 되는 그릇들을 만든 때였다.

청자유약은 기포가 적고 비색이 밝아져서 문양이 잘 보이게 되고 빙렬이 있는 것이 많아진다. 기형은 선이 더욱 유려해지면서도 유연하여 그 시대양식을 확실하게 지니게 된다.

문양은 사실적 문양을 약간 도식화(圖式化)하고 양식화(樣式化)하였지만, 자연의 향기를 지녔으며, 그 시대양식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있고, 부위마다 적합한 문양을 개발하였다.

대접의 경우 각 문양의 포치·구성은 먼저 주문양(主文樣)과 종속문양(從屬文樣)이 있어 그릇의 넓은 중앙·중심부위에 주문양을 배치하고 구연부(口緣部)나 안쪽바닥 굽언저리 등 주문양 상하에 종속문양을 배치한다. 주문양은 사실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공예의장의 성격으로 양식화되지만, 회화적이고 여백을 많이 살려 자연이 지니는 맛을 잃지 않는다.

종속문양은 동일 패턴이 반복되는 공예의장이지만, 주문양에 비하여 매우 좁은 공간에 시문되어 주문양의 상하여백을 마무리해 주고 안정감을 주는 구실을 하여, 전반적인 문양은 회화성을 갖춘 공예의장이나 그릇과 일체가 되어 상호 보완하는 입장에 있다.

이 시대는 문화적으로 매우 세련된 시기여서 비색·기형·문양뿐 아니라 그릇의 굽다리를 어떻게 깎느냐, 또 구울 때 굽다리에 어떻게 하여 눈 자국이 작게 남느냐 하는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예의 검토, 실험되고 있다.

따라서 굽다리는 대체로 작게 하고, 매병류 등의 큰 그릇은 안다리굽이 많고, 보통 병류나 주전자 등의 그릇은 굽이 조그마하고 낮으며 큰 것은 내화토(耐火土) 모래비짐눈으로 번조하고, 일반 그릇(작은 것)은 규사(硅砂)눈을 받쳐 구워 굽이 작고 예쁘며 규사눈 자국이 작고 희게 보여 그릇의 바닥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제작하고 있음을 본다.

자기 자체를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물론 청자(백자도 같음)의 비색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미 9세기부터 사용하던 갑(匣·匣鉢 : 개비)을 발전시켜 갑발의 내화도를 훨씬 높여 갑이 일그러지는 것 등을 방지하고 갑도 만드는 등 크게 발전하였다.

신안 앞바다서 건진 중국 청자 공개

비췻빛 푸른 기운이 신비로운 비색청자. 한국에서는 주로 비색(翡色)으로, 중국에서는 비색(秘色)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같은 비색청자라도 한국과 중국의 청자는 다소 차이가 난다.

중국 청자를 대표하는 ‘롱취안(龍泉)청자’는 고려청자보다 유약을 두텁게 바른다. 도자기 표면이 불투명하고, 문양이 없는 게 특징이다. 유약을 얇고 투명하게 발라 도자기에 새긴 문양이 비쳐보이는 고려청자와 어렵지 않게 구분된다. 또 유약이 두터운 중국청자가 고려청자보다 녹색이 훨씬 진한 편이다.

롱취안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서남부 일대를 가리킨다. 북송 때부터 남송을 거처 원.명.청 때까지 청자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원대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으로 수출돼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오늘날 영어로 청자를 부르는 ‘셀라돈(celadon)’도 바로 이 롱취안 청자에서 유래했다. 1976년 전남 신안군 해저에서 건져 올린 중국 도자기의 60%도 롱취안 청자다.

‘롱취안 청자 테마전’이 28일 시작, 내년 5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서 열린다. 신안 유적지에서 나온 도자기 42점이 공개된다. 한국 수중고고학의 새 장을 연 신안선 발굴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유사.차이점 등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신안선은 원래 중국에서 일본으로 각종 물건을 싣고 가다가 침몰한 배였다.

전시에는 봉황(鳳凰)과 어룡(魚龍) 무늬의 귀 장식을 붙인 ‘청자어룡식화병(靑磁魚龍飾花甁)’, 도자기 입 주위에 대롱형 작은 입을 5개 붙인 ‘다섯 대롱병(靑磁五管甁)’, 다리가 셋 달린 청동향로를 본떠 만든 ‘청자삼족향로(靑磁三足香爐)’ 등이 나온다. 특히 형태가 단정하면서도 근엄하고, 유약의 색채 또한 깊은 호수의 빛을 연상시키는 ‘청자어룡식화병’은 롱취안 청자의 백미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다섯 대롱병’도 중국 남송 후기의 양식을 지닌 몇 점 안 되는 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박정호 기자

이종민

“푸른빛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진하다.” 『순자(荀子)』의 「권학(勸學)」 편에 등장하는 이 말은 고려청자의 우수성과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용어이다. 고려청자의 발생은 분명 중국 오대 월주요의 기술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으나 고려청자는 어느 순간 중국청자를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우수성은 크게 비색(翡色)의 구현과 세련된 조형을 발전시켜간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청자의 색조가 유달리 푸른빛을 발한 것은 초벌을 하고 소형가마에서 노련하게 불 조절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청자 발생기인 10세기경, 중국으로부터 국내에 전해진 청자기술 속에는 태토의 선별, 성형방식, 각종 도구, 시유기술, 가마쌓기 등 모든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증거는 전축요의 발굴 조사 결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전축요에는 자기를 구울 때 초벌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기된 결과물인 초벌 파편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즉, 전축요에서는 초벌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초벌은 성형한 후 건조된 기물을 700∼800도에서 구워내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때 미리 파손품을 확인하여 걸러 내고 유약통에 담가두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유약의 두께를 달리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자 제작 초창기에 이러한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품이 가마터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초벌 과정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청자완 파편 및 초벌구이 파편 청자완 파편 및 초벌구이 파편

실제로 10세기경의 중국 가마에서는 초벌을 하지 않고 성형된 기물에 유약을 씌워 한 번에 구워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국내에 전해진 번조기술은 바로 이렇게 한 번의 과정을 통해 자기를 완전히 굽는 단벌 번조방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유약을 입힐 때 기물을 오랫동안 유약통 속에 담가두면 그릇이 녹아버리므로 시유 과정은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나라 중서부 지역 전축요에서는 얇은 유약층을 가진 자기들이 생산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형 가마들은 불조절이 용이하지 못하고 환원이 쉽게 걸리지 않아 청자의 색조는 올리브그린(olive green)색을 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1세기에 요업의 중심이 서남부 해안 지역으로 옮겨진 이후 강진 지역에서는 초벌기술이 시도되기 시작하였다. 강진 용운리, 삼흥리 일대의 발굴조사에서는 해무리굽완을 비롯하여 각종 그릇 파편에 초벌편이 섞여 있어 이 과정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고려청자는 유약의 두께가 두꺼워졌으며 진초록빛을 띠는 고려비색(高麗翡色)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10m 내외의 작은 소형 토축요를 사용한 강진에서 양질의 청자가 생산된 것은 이 가마가 불 조절이 용이하고 환원이 잘 걸리는 시설이었음을 말해준다. 옥빛에 가까운 고려청자의 제작은 이렇듯 초벌기술의 활용과 불 조절이 쉬운 소형 가마를 이용한 결과였다. 이러한 전통은 12세기를 거쳐 13세기 전반까지도 지속되면서 고려청자의 유색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중기의 비색청자 〈청자음각운룡문매병〉 고려 중기의 비색청자 〈청자음각운룡문매병〉

우아한 청자색의 확보는 고려청자의 위상을 당대 최고의 수준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시의 제작 상황을 이해하게 해주는 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중국청자를 최고로 알고 있었던 중국인들에 의해 기록되어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청자술병[陶尊]을 언급하면서 “도기의 푸른빛을 고려인들은 비색이라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기술이 정교해지고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고 하였고, 청자향로에 대하여는 “산예출향(狻猊出香) 역시 비색이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라고 하였다. 또 송대의 문인 태평노인(太平 老人)의 『수중금(袖重錦)』 천하제일조에는 정요(定窯)백자와 더불어 고려비색이 당대 청자의 최고였음을 기록하고 있어 중국인들에게 고려청자의 유색이 얼마나 인상 깊은 것이었는가를 잘 알게 해준다.

11세기부터 색조가 아름다워진 고려청자는 유색에서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릇의 기벽은 얇게 성형하고 정리하여 크기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주며, 굽 밑에는 작은 규석 조각을 받쳐 구움으로써 완성한 이후 굽 하단부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높은 완성도를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예는 17대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소문과형병(靑磁素文瓜形甁)>과 일괄 유물에서 확인된다. 이 유물들은 비색에 대한 격조와 세련된 비례, 금속기를 자기로 번안한 노련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고려청자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새로운 중국 도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광종 13년(962) 북송과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고려는 성종 12년(993) 거란의 1차 침입 직후 송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요나라와 국교를 맺었다. 북송과 외교관계가 재개된 것은 문종 25년(1071)의 일로 약 80년 동안 송과는 공식적인 접촉이 없었으며 이 시기에 요나라와의 문화적 접촉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02) 李鍾玟, 앞의 글, 2002, p.20∼24.

인종(仁宗) 장릉(長陵) 출토 청자 일괄품 인종(仁宗) 장릉(長陵) 출토 청자 일괄품

인종(仁宗) 장릉(長陵) 출토 청자 일괄품 중 참외형병 인종(仁宗) 장릉(長陵) 출토 청자 일괄품 중 참외형병

청자 생산의 경향은 11세기 후반경 송과의 국교가 다시 시작되면서 일변하기 시작한 듯하다. 오랜 기간 동안 송문화의 변화 양상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고려에서는 11세기 후반경 이후 공식·비공식적 절차를 통해 새로운 중국 문화를 왕성하게 받아들였으며 이 과정에 도자문화도 예외일 수 없었다.

청자음각연당초문호 청자음각연당초문호

획기적인 변화는 기종, 기형, 문양 소재, 시문기법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다완 중심의 제작 경향은 다양한 반상용 생활용기와 음주용기, 건축부재, 제기, 악기, 장신구, 종교용품 등으로 넓어져 도자기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하는 시점에 들어서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시문기법과 문양 소재의 영향은 11세기 후반 이후 정착된 비색만큼이나 고려청자를 우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으며 청자 생산의 양적 확대에도 기여하였다.

고려청자의 발전에 기여한 기법 중 대표적 사례로는 음각기법이 있다. 가장 손쉽게 적용할 수 있던 이 방법은 북송시기에 유행한 월주요와 같은 중국 남방도자의 영향을 받아 가는 음각과 굵은 음각을 활용한 사례가 남아 있다. 발, 대접, 접시나 매병과 같은 기종에서 볼 수 있는 연판문, 앵무문, 모란절지문, 국당초문, 용문 등은 월주요를 비롯한 음각기법이 중심을 이루었던 중국 제품의 사례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새로운 기법과 문양은 당시의 정세로 볼 때 북방 지역 도자의 영향이 강하여 화북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 고려청자에 나타났다. 그 중 하나로는 철화(흑화)기법과 퇴화(백화)기법이 해당된다. 중국의 경우 철화기법은 자주요(磁州窯)를 중 심으로 한 북방 지역과 서촌요(西村窯) 같은 남방 지역의 여러 가마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11세기 말경부터 12세기에 걸쳐 북방과 연관성 있는 요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북방도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는 조각기법이 중심인 표현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철화와 퇴화기법은 그리는 기법으로서 조각기법과는 다른 문양 소재가 묘사되어 있다. 소재는 철화기법의 경우 반구장경병, 장고, 매병 등에 간략한 당초문이나 초화문을 넣었고, 퇴화기법으로는 접시나 잔 등에 국화를 점으로 묘사한 예가 많다.103) 국내의 철화청자에 대한 영향문제에서 중국 남방과의 관련가능성을 제기한 논고는 다음의 글이 참고가 된다. 張南原, 「高麗時代 鐵畵瓷器의 成立과 展開」, 『美術史論壇』 18, pp.58∼60.

청자철화화훼문매병 청자철화화훼문매병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압출양각기법의 수용을 들 수 있다. 중국 북방의 요주요(耀州窯)에서 시작된 압출양각기법은 틀을 이용하여 문양과 형태를 찍어내는 방법으로, 규격화된 그릇 제작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생산량 증가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정교하고 복잡한 문양을 기계적인 작업방식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이 방법은 주로 완, 발, 접시와 같은 벌어진 그릇들에서 적용되었다. 고려청자에 시문된 문양으로는 모란문, 모란당초문, 연당초문, 포도문, 화엽문, 운학문, 국화문, 국당초문, 포도동자문 등이 있다. 이러한 압출양각기법의 시도는 북방 지역의 도자문화가 국내에 많이 수용되는 11세기 말경부터 시작된 듯하며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13세기 중반경까지 왕성하게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104) 張南原, 「高麗 中期 壓出陽刻 靑瓷의 性格」, 『美術史學硏究』 242·243, 2004, pp.95∼120.

청자사자뚜껑 삼족향로 청자사자뚜껑 삼족향로

청자양각보상당초문완 청자양각보상당초문완

한편, 고려청자에는 다양한 기법뿐 아니라 북송대의 관요와 요나라 도자에 의한 조형적 영향도 눈에 띈다. 흔히 상형(像形)청자로 인식되어 있는 각종 인물상과 거북, 기린, 사자, 해룡, 원숭이, 오리 등의 동물상과 석류, 복숭아와 같은 식물상 등이 고려 중기에 주자(注子)나 향로, 연적 등으로 형상화되어 만들어졌다. 요나라 지역의 항와요(缸瓦窯), 강관둔요(江官屯窯), 용천무요(龍泉務窯)와 같은 가마에서 제작된 상형도자와 금속기들, 북송의 여요(汝窯)에서 만들어진 각종 상형 자기류는 조형적 측면에서 고려 중기에 형성된 상형자기류의 원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고도로 숙련된 틀 작업의 정수를 잘 보여주며 조형과 아이디어는 중국 북방문화에서 차용하였으나 결과는 그것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105) 李鍾玟, 「高麗靑磁 龍 裝飾의 樣式的 系譜와 編年」, 『역사와 담론』 53, 2009, pp.321∼359.

이 밖에 안료가 번지는 제약이 있었던 산화동을 적절히 활용한 진사청자(辰砂靑磁)와 여러 태토를 포개어 성형한 후 마무리한 연리문(練理文)자기의 제작, 까다로운 기술임에도 노련하게 구사한 투각기법(透刻技法) 등은 고려 중기에 중국 기술을 고려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고려 중기의 청자는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기술과 조형을 수용하였지만 중국 자기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미감을 형성시켜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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