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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인식론과 윤리학은 물론 미학에 있어서도 근대적 관점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심미적 체험의 독특한 특성을 설명함과 동시에, 심미적 판단이 지닌 보편적 타당성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죠. 그는 자신의 미학을 설명하기 위해 ‘반성적 판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성적 판단이란 우연한 사실로부터 새로운 보편자로 나아가는 판단을 말합니다. 그 반대에는 보편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특수한 사실로 나아가는 ‘규정적 판단’이 존재하는데요. 이는 개념, 원리, 모델, 표 등 먼저 주어져 있는 보편자를 통해 사실이나 개체 같은 특수자를 규정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판단을 업으로 삼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판사를 들 수 있습니다. 판사가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법을 잘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자신이 아는 법률적 지식을 근거로 소송에 올라온 특수한 사안을 판정해야 하죠. 우리는 이를 규정적 판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때때로 판사는 기존의 법률적 상식으로는 판정하기 어려운 사건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것은 물론, 그 법률의 전제부터 다시 돌아보게 되는 건데요. 이때 판사는 섣부른 판정을 자제하고 도대체 법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등을 묻는 반성적 상황에 빠지게 되죠. 그리고 이 상황은 그 사안에 부합하는 원리나 개념을 발견할 때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이처럼 기존의 원리에 완강히 저항하는 개별자의 주위를 맴돌며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원리를 모색하는 판단을 우리는 ‘반성적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칸트가 아름다움을 말하며 ‘반성적 판단’이라는 개념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칸트가 기존의 원리로 쉽게 재단되는 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칸트의 미학에 있어 가장 큰 아름다움은 ‘통념을 깨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기존의 문법을 깨뜨리고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법을 창조해 내는 것이며, 끊임 없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설명할 새로운 원리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미적 체험은 규정적 판단보다는 반성적 판단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죠.
칸트는 심미적 판단의 주요 특징을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합니다. 우선 첫 번째는 ‘질’입니다. 심미적 판단에 수반되는 쾌감을 가리키며, 칸트는 이를 ‘무관심한 만족감’이라 부르죠. 무관심한 만족감은 인식능력들 사이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영혼이 느끼게 되는 생동감입니다. 선악이나 진위의 구별, 유용성 등에 대한 관심이 모두 배제되어 있으며, 정신과 신체의 통일체로서 향유하는 제3의 쾌감이죠.
두 번째는 ‘관계’입니다. 심미적 판단의 대상에서 성립하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가리키며, 칸트는 이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 부르죠. 가령 여름날의 꽃밭을 생각해 보죠. 꽃밭에는 수많은 종류의 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색과 향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어떤 활력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죠. 사람들은 그 조화로운 통일성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구심점이나 의도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조화로움은 찾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신비의 장막 속으로 숨어들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양’과 ‘양태’입니다. 각각의 심미적 판단이 지니는 보편적 타당성을 가리키는데요. 칸트는 이를 통해 이론적 보편성이나 윤리적 보편성과 구별되는 심미적 보편성이 있음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보편성을 양의 계기에서는 ‘개념 없는 보편성’으로, 양태의 계기에서는 ‘개념 없는 필연성’으로 명명합니다.
칸트의 미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숭고’의 체험이 가지는 의미를 해석한 것이죠. 칸트는 “단적으로 큰 것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포착할 수 없을만큼 압도적인 크기에 대한 체험, 그것이 바로 숭고의 체험이라는 것이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 마치 온 세상을 삼킬 것처럼 폭풍우 치는 바다를 보며 우리는 숭고를 경험합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속 방랑자가 느끼는 감정이 이런 숭고의 감정이 아닐까 싶네요.
숭고의 체험은 불쾌의 감정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숭고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거대함 앞에서, 자신의 유한성과 무의미를 경험함으로써 불쾌감에 빠져드는 건데요.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토대로 이를 어떤 신성한 것의 간접적 현시, 무한한 도덕적 사명의 암시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식능력들은 자신의 잠재력으로 돌아가 다시 일어서게 되죠. 조화의 논리에 한정된 아름다움의 미학과 달리, 부조화와 추함, 죽음, 무의미 등를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칸트의 숭고의 미학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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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칸트] – 브런치
“무관심한 관심에서 미적인 것은 탄생한다.” | 칸트의 《판단력비판》은 미학 aesthetics을 가능하게 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칸트 미학의 핵심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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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미학 – YES24
칸트 미학은 고전 미학의 정점이자 독일 낭만주의부터 포스트모던 미학까지 후대 미학 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 책은 특히 칸트 미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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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미학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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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미학에서의 형식 개념에 대한 고찰 ‘ ‘
크로포드 칸트 미학 이론 김문환 옮김 서광사. 쪽. 쪽 참조. W. ,. ,. ,. , 1995, 139 , 196 . 11) 강영선 외 철학대사전 교육출판공사. 형식 과 형상 참조. ,. ,. ,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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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미학 I: 미의 분석론 – [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칸트 미학 I: 미의 분석론. 동경 TOKYO 2014. 12. 14. 12:12. 『순수 이성 비판』이 교조주의적인 합리론도 회의주의적인 경험론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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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미학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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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칸트 미학
- Author: 인문학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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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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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칸트]
칸트의 《판단력비판》은 미학 aesthetics을 가능하게 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칸트 미학의 핵심은 ‘무관심’의 관조라는 생각에 달려 있다. ‘무관심’하게 보지 못한다면, 아름다움의 영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본다는 것이 멍청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아름다운 여인을 주시하다가 다른 일체의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정신 상태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판단력비판》에서 칸트가 다루는 미적인 대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종류이다. 첫째가 바로 단순한 아름다움, 즉 ‘미 Das schöne, the beautiful’이고 둘째가 곧 ‘숭고 Das Erhabene’이다.
“미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자연까지도 관심을 떠나서 사랑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고, 반면 숭고는 그것이 비록 우리의 관심에 거슬릴지라도 존중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킨다.”
《판단력비판》에 등장하는 칸트의 발언인데 우선 먼저 ‘미’, 즉 단순한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도록 하자.
취향 Geschmack, taste은 어떤 대상이나 표상 방식을 일체의 관심을 떠나 만족이나 불만족에 의해서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와 같은 판단에 의해 가능한) 만족의 대상은 아름답다고 말해진다. 《판단력비판》
칸트에 따르면 미적인 취향은 “일체의 관심을 떠나서 만족이나 불만족에 의해 판단하는 능력” 이다. 무관심하게 보았을 때 만약 어떤 대상이 만족을 준다면, 그 대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지 않고 우리에게 불만족을 준다면, 그 대상은 결코 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큼한 사과를 묘사하고 있는 정물화를 보았을 때, 배고픈 사람은 자신에게 식욕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이어서 그는 상큼한 사과가 아름답게 묘사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이것은 무관심한 만족감이 아니다. 무관심한 만족이라면 식욕과 같은 다른 관심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이 점에서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이야말로 가장 칸트적인 예술가였다고 할 수 있다. 변기를 〈샘 Fountain〉 (1917)이란 이름으로 전시했던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 변기를 무관심하게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아름다움이나 혹은 추함이라는 미적인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스스로가 미를 느낄 수 없는, 그래서 전시회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여러분이 변기 그림을 보고 예술품이라기 보다 역겨운 감정만을 느꼈다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미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식 능력, 즉 무관심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뒤샹의 그림은 반문하는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무관심이 우리의 내면에서 자연적으로 생기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미술관에 전시된 변기나 혹은 상큼한 사과를 무관심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일상적 관심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이미 교육받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 점에서 미를 가능하게 하는 무관심은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 학습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칸트는 무관심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숭고의 느낌이다. 숭고의 느낌은 무관심이란 것이 우리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이나 사건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강제될 때 발생하는 미적 감정 이다. 칸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지 않고 순전히 어떤 대상을 포착할 때 우리 내부에 숭고의 감정을 일깨우는 것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우리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물론 반목적적이며, 우리의 현시 능력에 대해서는 부적합하고, 상상력에 대해서는 흡사 난폭한 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문에 더욱더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판단력비판》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가 뒤엉켜 보일 정도의 엄청난 폭풍우와 직면할 때가 있다. 혹은 숲으로 우거진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거대한 폭포를 목격하게 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무관심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런 압도적인 광경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일체의 생각이나 관심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타자적 경험에 빠진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은 뒤엎어버릴 것 같은 폭풍우, 혹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거대한 폭포 앞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생각과 상상력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느끼는 순간이다. 한마디로 생각했던 것, 혹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풍경이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그저 입 만 벙긋 벌린 채 망연자실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무관심의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바로 이때 우리가 느끼는 미적인 감정이 바로 ‘숭고’의 감정이다.
칸트 미학
출판사 리뷰
미적 관조 속에서 찾은 ‘자유로운 유희’의 미학!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나, 미(美) 앞에서 오로지 자유로워라!!
‘미학’(Aesthetica)이라는 용어는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 1714~1762)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지만, 미학이 처음으로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그 기반을 다진 것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서였다. 『순수 이성 비판』, 『실천 이성 비판』에 이어지는 3대 ‘비판’서의 마지막 권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미(美)를 진리, 도덕과 동위에 놓음으로써 학문으로서의 미학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크리스티안 헬무트 벤첼(Christian Helmut Wenzel)의 『칸트 미학: 『판단력 비판』의 주요 개념들과 문제들』(An Introduction to Kant’s Aesthetics: Core Concepts and Problems)은 그런 칸트의 미학을 원 텍스트인 『판단력 비판』에 입각해 상세히 해설한 책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영미권 칸트 연구의 권위자 헨리 E. 앨리슨(Henri E. Allison)도 말하듯, 『판단력 비판』은 “전설적일 정도로 난해”하고 “초보자에게는 거의 접근하기조차 두려운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칸트 미학의 핵심을 담은 『판단력 비판』은 그저 미학이라는 한 분야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두 ‘비판’서의 문제 틀을 계승하고 또 개념들을 공유함으로써 ‘비판’ 철학의 완결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 때문에 칸트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유의 용어법 및 앞선 ‘비판’서들과의 관계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해진다. 저자 벤첼이 특히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도 이것이다. “이 책[『칸트 미학』]은 …… 제1『비판』에 대한 선행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으며, 그런 지식이 요구되는 몇몇의 절들에서는 내가 직접 그것을 제공하고자 했다”(17쪽)는 그의 말처럼, 칸트 미학의 “주요 개념들과 문제들”이 칸트 철학 전체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충실한 안내가 제공된다. 특히 ?부록?의 “용어 해설”은 칸트 사상 전반을 이해하는 데 내비게이션으로서도 유용할 것이다. 또한 이런 주제들이 으레 갖기 마련인 복잡한 이론적 논쟁의 역사는 최소화되어 독자들이 길게 에두르거나 헤매지 않고 칸트 미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원하는 독자라면 각 절(節)의 끝에 덧붙여진 “추천할 만한 읽을거리”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단순한 서지정보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서지와의 관계, 저자의 논평도 충실하다).
칸트 미학은 이후 실러, 괴테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독일 관념론과 독일 낭만주의의 흐름도 칸트 미학과의 긴밀한 연관성 하에 전개되었다. 나아가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 역시 칸트 미학을 깊이 연구하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굳이 칸트를 참조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면면을 더 나열하지 않아도 그가 현재진행형의 철학자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칸트 미학에 대한 입문서나 연구서가 태부족한 국내 도서 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그리고 최근 칸트가 직접 저술한 ‘비판’ 철학의 입문서 『형이상학 서설』(통칭 『프롤레고메나』)이 번역 출간되는 등 칸트 읽기의 제반 환경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책 『칸트 미학』의 출간은 국내 칸트 미학 이해의 물꼬 트기로 이어질 것이 기대된다.
왜 칸트의 ‘미학’을 읽어야 하는가? : 반(反)엘리트주의의 미학
우리가 아무리 뭉크와 그의 상징주의에 대해, 또는 바흐와 그의 푸가의 구조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러한 앎이 예술 작품을 올바로 또는 정확히 감상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이 예술의 산물이 마치 한갓된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렇게 임의의 규칙들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있는 모종의 합목적성을 위한 여지가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자유가 없이는, 오로지 규칙만 있을 뿐 미를 위한 여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5~206쪽)
공연장을 나서면서, 혹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마주하고서, 우리는 자연히 자신이 느낀 무언가를 다른 이도 느꼈을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동행한 이와 감상을 공유하며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고, 열띤 토론을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 자신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는지 의심스럽고, 심지어는 감상을 달리하는 사람에 의해 교양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기분이 상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이 느낌이 단지 내 주관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어떤 객관적 규칙·규범이 있어서 ‘제대로’ 된 감상법은 그것에 의거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사실 이런 일상 속 매순간의 의문이야말로 ‘미학’이 성립하게 된 동기일 것이다.
지금은 대철학자로 누구나 그 이름을 알지만, 사실 칸트는 그리 드넓은 견문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평생 동부 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 주변을 떠난 적 없는 칸트는 세계를 유람하며 음악과 미술에 대한 감식력을 키운 교양인의 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미학 이론도 예술에 대한 감식안을 내세우는 엘리트주의 미학과 궤를 달리한다. 그는 ‘미’를 위한 여지는 감상자가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정보나 규범에 대한 지식을 확보함으로써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가진 대상으로서 작품을 파악할 때, ‘무관심’한 미적 관조 속에서 작품을 바라볼 때 마련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일견 아리송한 표현이지만 ‘목적 없는 합목적성’은 미적 대상에는 어떤 다른 목적에도 복속되지 않고 오로지 미적 향유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으로, ‘무관심성’은 여하한 관심(개인적·도덕적 이해득실에 대한 고려)으로부터 자유롭게 ‘미에서의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이 두 개념은 ‘취미 판단의 네 계기’에 속하며 1~4장이 각각의 ‘계기’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칸트는 선행자인 바움가르텐의 미학(그리고 기존 미학 전통)과 대결하며 자신의 미학 체계를 세웠다. 특히 미에 대한 판단인 ‘취미 판단’을 미숙한 ‘인식 판단’처럼 취급한 데에 반기를 들었다. 취미 판단이 인식 판단으로부터 독립되지 않고서는 ‘미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고, ‘바판’의 칼끝을 두 판단의 사이에 겨눔으로써 “미감적 판단의 문제들, 즉 어떤 자연 대상이나 예술이 아름답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와 정당화”(12쪽)에 주안점을 두는 수용자 중심의 미학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적 관조는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이지 지식을 얻는 수단은 아니며, 이러한 상태에서의 감상자와 대상 사이의 상호 작용을 ‘자유로운 유희’라고 이름 붙였다.
칸트 미학의 쟁점과 미래
벤첼의 『칸트 미학』은 단지 칸트의 개념들을 추수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론이 생산된 맥락을 차근차근 일러 주며 논의를 전개한다. 객관적 기준이 있다고도, 그렇다고 또 그저 주관적이고 개인적 취향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미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칸트는 신중한 태도로 양 극단을 피해 가려 했다. 저자 벤첼 또한 마찬가지의 신중함으로 칸트 미학의 주요 지점들을 남김없이 다루는 가운데, 책의 말미에서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인상적인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인장(印章)을 남기기도 한다.
추(醜)도 어엿한 미학의 주제일까?
그중 하나는 추의 문제이다. 저자는 “칸트의 미학은 추를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절에서, 비록 『판단력 비판』이 직접 추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것을 포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부정적(negative) 취미 판단’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직결되며, 흔히 ‘불쾌’라고 하는 감정이 ‘부정적 쾌’로서 다시 인식될 수 있음을, ‘자유롭고 조화로운’ 유희가 아닌 ‘자유롭지만 조화롭지 않은’ 유희도 존재함을 뜻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저자는 다른 문헌에서 ‘추’와 ‘부정적’인 것에 대해 논평한 것을 종합해 제시하는 한편, 보들레르의 시나 보스(Hieronymus Bosch)의 그림을 예로 들며 “추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설득해 보인다.
뉴턴은 천재가 아니라고?
또 한 가지, 천재의 문제도 흥미롭다. 칸트는 천재를 생득적인 자질이자 ‘자연미’를 ‘예술미’로 옮기는 능력, 동시에 취미 판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는 능력으로서 정의한다(사실 ‘천재’ 개념은 칸트 미학이 미를 단순한 즐거움의 영역이 아닌 ‘도덕성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독특한 관점으로 밀어 올리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칸트는 이 ‘천재’ 정의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상당히 놀라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멈추고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천재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사람마다 목록의 세부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자, 그 목록 안에는 십중팔구 뉴턴의 이름쯤은 들어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칸트는 한 저작에서 직접 뉴턴을 언급하며, 그의 업적은 경탄스럽지만 어디까지나 학습의 결과이지 천재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학 박사 학위 소지자이기도 한) 벤첼은 “수학에 미와 천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절을 통해 이 칸트의 주장에 반론을 펼친다. 칸트는 수학이 이미 구비된 ‘규칙들’에 의거하는 학문이라 보고 천재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벤첼은 칸트 이후 수학 연구의 발전과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 수학에도 창조적인 자유의 영역이 존재함을 (다소간의 재치와 함께) 입증해 보인다.
이렇게 벤첼의 독창적 주장을 담은 부분까지 읽기를 마친 독자라면, 이제 이 책과 더불어 오늘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미학적 토론들을 좀 더 본격적으로 음미하거나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칸트의 미학
칸트의 미학
칸트의 미학은 근대 미학의 핵심을 긋는다. 그의 미학은 이율배반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취미 판단의 문제에서 출발하는데, 여기서 이율배반이란, 서로 모순되는 두 명제가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주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이율배반을 사자성어라고 알고계신 분이 많으신데, 이건 칸트가 만든 용어이다. 취미 판단이란, 미적(美的) 판단 양식의 하나로서, 미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취미라고 보는 입장에서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거나 미적으로 쾌감을 준다고 단정하는 일을 이른다. 칸트는, 미적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율배반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정명제 : 미적 취미판단은 개념에 근거하지 않는다.(주관적 취미).
반명제 : 미적 취미판단은 개념에 근거 한다.(보편타당성).
이러한 이율배반의 문제는, ‘미적인 것은 정의될 수 있는 확정적인 개념들과는 동일시 될 수 없기 때문에 취미판단의 개념성은 불확정적.’이라는 명제로 해결된다. 왜냐하면 칸트는 논리적 인식과 미적 인식을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적관념과 이성관념은 어느 한 쪽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고 보았고, 고로 논리적, 보편적 사고로 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보았다. 이는, 우리가 예술의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사물들은 주관적 사고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대상을 단지 자신의 대상으로서만 즉, 현상으로서만 인식할 뿐, ‘물 자체’로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제한적인 것이고, 고로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대상의 본질적인 미는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것은 칸트 미학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비록 인간의 인식능력으로서는 자연과 그 물자체에 관한 보편적인 미는 인식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보편적인, 미는 우리 인식 바깥에 있는 자연에는 포함된 것이므로, 칸트는 자연미를 중시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미라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인가? 칸트는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미 개념은 우리의 취미판단(미적 판단)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보았다. 즉, 선천적으로 주관이 지닌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취미(감정을 통해 미를 판단하는 능력)의 원리를 밝혀내고, 그 원리의 보편타당성에 대해서 정당화 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라고 인식하는 대상 자체는 보편타당한 미가 아니지만, 그것을 판단하게끔 하는 틀인 취미는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고, 그 원리를 밝히고자 한 것이 칸트 미학의 핵심인 것이다.
그는 취미 판단의 논리적 계기를 성질, 양, 관계, 양태로 나누고, 이것에 따라 미를 정한다고 보았다. 미적 판단의 첫 번째 성질의 계기는 미적 대상과 관계하는 주관의 미적 태도에 의한 감정의 성질이며, 이는 무관심적 만족감이라는 미적 감정이다. 두 번째 양의 계기는 미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의 근거는 바로, ‘우리 인식능력의 특성’으로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조화 속의 놀이’임을 밝혀낸다. 이것은 바로 미적 감정을 가능하게 하는 미적 판단의 주관적인 선험적 조건이며, 또한 대상에 대한 규정적 인식이 아닌, 비규정적인 인식을 동반한다. 세 번째 관계의 계기는 바로 주관의 심의 상태와 미적 대상과의 관계를 나타내며, 이는 주관적 합목적성이라고 표현된다. 또한 이러한 관계를 성립하게 하는 근거는 바로 대상의 형식에 있다고 보았다. 대상의 미적 형식을 여기서 칸트는 ‘목적없는 합목적성’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미적 형식이 지닌 ‘목적’이란 개념에 규정되지 않지만, ‘다양 중의 통일’이라는 합목적인 질서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상의 형식은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놀이 속의 조화를 일으켜 감정을 통한 미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양상의 계기에서는 미적 판단의 보편타당한 필연적인 조건으로서 공통감을 가정한다. 공통감은 감정을 통한 미적 판단의 보편적인 전달을 위해 일종의 이념으로서 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미의 분석론의 결과로서, 인간 누구에게 선천적으로 미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취미능력으로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놀이를 발견하였으며, 이러한 심의능력의 놀이에 의해 일어나는 만족은 바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란 대상의 미적 형상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미적 판단의 연역론적 과제는 미적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인 주관적 합목적성의 원리를 정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미적 판단의 원리, 즉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놀이가 일어나게 하는 대상의 형식이 지닌 ‘목적 없는 합 목적성’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칸트는 <미적 판단의 영역론>에서 자연미가 지닌 의미를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이 갖는 자연미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 관심으로부터 해독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인간이 도덕적 궁극목적인 최고선을 추구한다면, 자연히 자연미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자연에 대한 감탄은 자연이 마치 누군가 창조한 예술처럼 보이는 것에서 비롯되며, 도덕적 감정과 흡사한 정서적 기분을 동반하는데, 이때 자연은 우연이 아닌 마치 의도적인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미적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의 미적 형태를 통해 우리의 내부의 도덕적 이념은 상상력과의 놀이를 통해 미적 이념을 표상한다. 이것은 바로 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미의 의미가, 미적 이념의 표상이라는 상징적인 방법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의 내부의 도덕적 이념이 자연의 형태를 통해 일종의 ‘암호’처럼 형상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 내부에서 일깨워지는 도덕적인 세계창조주로서의 이념이 미적 형태를 통해 선사하는 자연의 회의로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개별적인 자연의 대상을 통해 도덕적 이념을 형상적으로 전달하는 미적 이념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윤리와 연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적 이념의 표현으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놀이를 일으켜, 미적 판단과 더불어, 무한한 비규정적 인식들, 즉 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미적 세계에 대한 상징적 인식내용은 바로 도덕적 이념의 상상력에 의해 자연의 개별대상을 통해 감성화된 미적 이념 그 자체인 것이다. 미적 이념은 유한한 인간의 세계와의 자기관련성에 대한 미적인 인식내용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본(vorbild)로 하여 예술에 대한 창조행위가 일어난다고 본 것이 칸트 미학이다. 칸트는 자연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천재에게 선사하고, 이 천재, 즉 예술가에 의해 드러난 것이 곧 예술이 된다. 천재는 자연미에서 예술을 미에로 이행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하는 자을 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취미판단의 공통적인 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기술에 의한 자연미와, 천재의 재능에 의한 예술미는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 왜 천재의 능력을 통해 전개된 예술론이 미적 판단의 연역에 속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칸트가 정의내린 예술미에 대한 정의를 살펴 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칸트에 있어서 예술은 자연처럼 보일 때 아름답고, 이러한 예술미는 선천적인 자연의 총아인, 천재의 재능에 의해여 부여된 규칙에 근거한다. 이러한 천재의 천부적인 재능은 바로 미적 이념을 표상하여,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예술작품의 규칙, 즉 형식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예술 작품의 규칙은 바로 미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작품 자체가 지닌 합목적적인 형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이 부여된 예술작품은 미적 판단력의 적합한 사용을 위한 범례를 제공한다. 여기서 칸트는 예술작품에 규칙을 부여하는 천재의 심의능력을 정신(geist)라 일컫고, 이는 미적 이념을 현시하는 능력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칸트는 미적 이념을 이성 이념이 상징적인 방법으로 감성화된, “상상력의 표상으로서 수많은 것을 사고하게 되지만, 어떠한 특정한 사고와 개념에 전혀 적합치 않고, 결국 어떠한 언어로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천재에 의해 창조된 예술작품의 목적은 바로 자연을 소재로 도덕적 이념이 감성화된 미적 이념의 표현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천재가 지닌 미적인 정신능력은 바로 이러한 미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예술작품의 형식을 창조한다. 칸트는 <미적 판단의 연역론>에서, 예술미이든 자연미이든 “아름다움은 미적 이념의 표현”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를 근거로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하는데, “자연의 호의로서”의 자연의 아름다움은 바로 도덕적 이념이 형상화된 미적 이념으로 표현된다. 천제는 바로 이러한 미적 이념의 표현으로서 직관된 자연의 암호를, 자신의 천재적인 정신능력으로 읽어내어, 예술 작품 속에 현시한다고 보았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보편적으로 고정된 미는 없고, 미는 오성의 놀음에 의해 개인별로 만들어진 것이다.(기존의 보편적인 미<플라톤적인>)에 대한 부정. 이는 바움가르텐을 계승한 것)
2. 미라는 것 자체는 개별적인 것이되, 그것을 만드는 이성의 틀은 보편적인 것.
3. 기존의 보편적 미관에서 벗어나, 작가 각각의, 독자 각각의 미관을 인정. 이로써, 보편적 미술의 시대가 끝나게 됨.
출처 : 네이버까페 ‘서양철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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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한 과목으로 들어도 모자란 칸트를 미학 과목에서 다른 미학론과 같이 들었으니 ㅠㅠ
칸트 미학 I: 미의 분석론
『순수 이성 비판』이 교조주의적인 합리론도 회의주의적인 경험론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철학적 기획이었듯 『판단력 비판』역시 합리주의적 미학과 경험주의적 미학의 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합리주의적 미학에 따르면 아름다움beauty은 대상의 기하학적 속성들에 의해 결정되는 대상 자체의 성질이다.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도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칸트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장미가 아름답다는 판단은 모종의 원칙들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다. 한편 경험주의적 미학은 아름다움이 주관적 만족gratification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칸트의 생각은 다르다. 어떤 표상이 아름답다는 판단은 주체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으로 단순히 판단 주체가 느낀 쾌락sensation에 대해 보고하기 위한 게 아니다.
칸트가 보기에 미적 판단은 주관적subjective이면서도 보편적universal이어야 한다. 먼저 이 주관성이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는 판단이 인지적cognitive하지 않다는 점에서 성립한다. 대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개념concept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미적 판단은 보편적 동의를 요구한다. 미적 판단은 경험주의 미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보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senses은 쾌적한agreeable 것에 관심을 갖고, 이성reason은 도덕적으로 옳은morally right 것 – 선good – 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보니 쾌적함을 좇는 경향심inclination이나 도덕적 옳음을 좇는 존경심respect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까지나 감각과 이성의 관심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미taste는 감각이나 이성과 달리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서 그것을 좇도록 부추기는 것이 없기 때문에 취미 판단은 자유롭다. 이론적인 그리고 실천적인 관심에서 벗어난 취미 판단은 그래서 관조적contemplative 태도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종류의 쾌pleasure가 호의favor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어떻게 주관적이라는 취미 판단이 동시에 보편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그 근거가 없다면 주관적 취미 판단은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근거란 것이 개념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 순간 취미 판단은 주관성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그것을 “인식 일반cognition in general의 가능성을 위한 주관적 조건들의 유희interplay”에서 찾는다. 이게 무슨 말일까? 일단 지식은 보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성립 가능하기 위해 만족되어야 할 인지적 조건들 – 직관intuition에 주어진 것들을 조합하는 능력인 상상력imagination과 그것을 다시 개념을 통해 조합하는 능력인 지성understanding – 역시 보편적으로 소통가능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표상은 다름 아닌 이들 인식 일반의 조건 – 상상력과 지성 – 사이의 유희를 일으킨다. (물론 여기에 개념을 동원하는 특정한 인지적 판단은 없다.) 보편적으로 소통가능한 느낌 – 공통감각sensus communis – 을 전제presuppose하기 위한 선험적a priori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근거에 도달한 것은 물론 경험적 관찰empirical observation을 통한 것이 아니다. 선험적 논증transcendental argument에 의한 연역deduction이다. 여기서 미적 판단이 어떻게 필연적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공통감각을 전제할 때 우리는 우연적 사실들의 관찰에 의존하지 않는다. 공통감각을 전제할 합당한 이유는 인식 일반의 보편적 소통 가능성이 제공해준다. 그리고 이 보편적 소통 가능성의 조건이 필연적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물론 이 필연성은 개념으로부터 도출해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칸트는 미적 판단이 “논리적인 의미에서 필연적인apodictic” 것이 아니며 “보편적 규칙의 일례example”로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만 실례적exemplary이라 불릴 수 있다.” 더욱이 공통감각은 우리가 전제한 비규정적 규범으로써 다만 우리가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의존하는 어떤 가정presumption이 이것을 증명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공통감각이 내포하는 것은 당위이다. “(…) 우리의 판단이 모든 사람들과 일치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합치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 따라서 공통감은 (…) 단지 하나의 순전한 이상적 규범이다.”
Fine art must be free art in a double sense: it must be free in the sense of not being a mercenary occupation and hence a kind of labor, whose magnitude can be judged, exacted or paid for according to a certain standard; but fine art must also be free in the sense that, though the mind is occupying itself, yet it feels satisfied and aroused (independently of any pay) without looking to some other purpose.
칸트의 미학은 대상에 대한 미적 판단뿐만 아니라 예술 창작에 대해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만약에 예술 창작을 규정하는 규칙이 없다면 어떻게 창작 행위를 쾌적함을 좇는 행위나 도덕적 옳음을 좇는 행위와 구별할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칸트 자신도 “아름다움에 관한 학science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창작품에 선행하는 규칙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재성genius에 대한 논의가 등장한다. 천재성이란 간단히 말해 창작을 하기 위한 재능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느 재능과는 달라서 천재는 그 어떤 규칙에 의해서도 규제받지 않으며 스스로 창작을 위한 규칙을 세운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창작을 위한 규칙은 천재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학이 천재를 밀어내고서 그 규칙을 세우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싸구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나라 이름 200개 외우고 이런 건 천재가 아니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규칙을 스스로 세우는 천재들이라면 예술의 기능은 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이 규칙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도 하는걸까? 칸트는 이른바 순수 예술과 참여 예술 사이의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다. 다만 그는 우리가 대상의 목적purpose을 표상하지 않은 채로 그것을 지각할 때 바로 그 대상의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purposiveness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망치를 지각할 때 곧장 그것의 목적을 표상하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망치가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때문에 망치가 아름답다는 판단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가 들판에 떼로 피어 있는 장미를 볼 때 우리는 도무지 그 장미의 목적을 표상할 수가 없다. 왜 하필이면 장미들이 이곳에 이렇게 많이 피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빨간색인지, 왜 이런 달콤한 향을 풍기는지를 표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as if 이 장미들의 배후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목적의 내용은 여전히 표상할 수 없다. 우리가 장미에게서 합목적성의 형식만을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먼저 이 초월적 주체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한다. 시간과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주체말이다. 이 주체가 갖는다는 공통감각이란 것도 결국 미적 판단의 가능성의 조건들이라는 무시간적인 불변자들timeless invariants에 근거해 전제된 것이었다. 우연적 욕망으로부터 미적 판단을 분리시켜 놓은 것은 어찌보면 칸트 미학의 기여라면 기여이지만, 미적 판단과 창작의 가능성의 조건들이 항상 이런 것들이었고 또 이런 것들일 것이라는 식의 생각에 문제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가령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미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은 판단을 내리는 현실의 개인들과 판단의 대상이 되는 지금의 표상들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본다. 시간과 역사 속의 이 개인들이 없는 한 미적 판단은 고사하고 그 어떤 종류의 판단도 불가능할 것이다. 판단 주체와 표상들의 역사성은 판단의 가능성의 조건들이 결코 불변적인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다. (사실 이런 식의 비판은 헤겔이 앞서 제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칸트는 주체로 미학의 객관성을 대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아있는 객관성이란 것도 기실 주체를 통해 근거지어진 것이었다. 아도르노는 칸트 미학의 탈역사성만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기실 그가 칸트 미학에서 발견한 문제는 ‘초월적’ 주체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월적 ‘주체’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칸트는 예술 작품을 “오로지 작품을 관조하거나 창작하는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보았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칸트는 예술 작품이 그 자체 내에 진리 내용truth-content을 품고 있을 가능성을 간과했다. 어쩌면 칸트는 그 자신이 비판했던 경험주의적 미학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도르노는 예술 작품에 내재하는 인지적 요소가 결코 창작자의 의도나 관객의 감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칸트는 바로 이 인지적 요소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도르노가 합리주의 미학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순전히 객관적인 것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아도르노에게 예술 작품이란 그저 주체에 의해 평가되고 인식되는 무기력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 작품은 그 자체 내에 주관적 계기를 품고 있다. 바로 작품이 인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리뷰 텍스트
Immanuel Kant, Critique of the Power of Judgment, ed. Paul Guyer, trans. Paul Guyer and Eric Matthew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p. 89-127 (Analytic of the Beautiful)
Simon Jarvis, “Art, Truth and Ideology,” in Adorno: A Critical Introduction (New York: Routledge, 1998): 90-123 (Chapter 4)
김상현:칸트 미학 입문 : 『판단력 비판』 읽기
강좌정보
서양철학에서 하나의 학문의 대상으로서 미 또는 예술이 다루어진 것은 사실상 칸트의 『판단력 비판』덕분이다. 칸트의 미학은 고전주의 미학을 대표하면서도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예고한다. 고전주의의 미 개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우리들의 미적 감수성을 단지 감수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칸트는 미(美)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책 이름은 「판단력 비판」인걸까?
표제어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굉장히 많은 함축을 가지고 있다.
고대인(플라톤)에게 미는 idea(존재하는 것)이다. 신이나 천사, 인간, 지우개 등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미도 나와는 별도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특기, 칸트)에 와서 이러한 미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된다.
미는 주관적인 것으로써,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의 판단이나 정서의 문제가 된다.
즉, 칸트에게 있어 ‘미’란 ‘존재자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결과물’일 뿐이다.
따라서 고대인이 ‘미’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고 하는 반면(고대인 또한 미가 쾌감을 주는 것은 부정하지 않음), 근대인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쾌감과 관련하여 나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을 아름답다고 정의하며, 이런 쾌감에 근거한 판단을 취미 판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미를 분석 하는 것은 취미판단을 분석하는 것이다.
칸트 미학을 공부하기 위해 알아야할 수 많은 개념 원리 !
김상현의 명쾌하고 종합적인 강의 하나로 OK~
김상현 교수는 칸트 미학을 공부하기 위해 알아야할 수많은 개념 원리들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에 등장하는 철학 이론까지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자세하게 분석한 다음 넘어간다. 혼자 머리 아프게 끙끙거렸던 칸트의 이론을 좀더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강의의 장점!
칸트 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상현과 함께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어렵고 험난하지만 넘고 나면 커다란 길이 열리는 칸트 철학 입문.
김상현과 함께 하는 이 강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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