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역 역사 | 별 거 다 파는 한국! 우린 무역으로 먹고 산다!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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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貿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으로 발전하여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지역간 … 우리 민족의 역사는 전통사회, 개화기, 민족항일기 및 광복 이후의 시기로 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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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9/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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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의 역사 – 해양교육포털

서론-한국무역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1장 선사 및 초기국가시대(고조선·부여·삼한 시기)의 무역. 1. 선사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교역·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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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lovesea.or.kr

Date Published: 3/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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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무역 – 나무위키:대문

그에 비하여 일본은 22.3%였고 미국은 18.7%였다. 수출 대국들인 중국과 독일도 각각 45%, 74.8%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민국에서 수출이 10억원 증가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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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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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의 역사 – 영광도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각 시대별 무역사 전공자들에 의한 한국무역사 서술로 무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종합정리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선사시대 및 초기국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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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kbook.com

Date Published: 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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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의 역사 – YES24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의 무역을 규명한다우리민족의 해상활동과 무역을 포함한 대외 진출에 관한 사료를 정리해 제작한 책으로 우리 역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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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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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성장사 #32. 무역 강국 대한민국, 과제도 많아

2011년 12월 5일, 한국 무역은 수출 5151억 달러, 수입 4860억 달러로 무역 규모(수출+수입) 1조 달러를 돌파했어요. 이를 기념하는 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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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conoi.com

Date Published: 3/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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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을 바꾼 것들 ①] 수출

한국 수출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 1980년대 한국 무역의 성과는 86년에 기록한 역사상 최초의 무역 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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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orea.kr

Date Published: 7/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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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무역정책 – 국가기록원

「한국수출입은행법」, 1969.7.10 「수출자유지역설치법」, 1969.12 「종합무역상사제도」, 1975.4 「산업설비수출촉진법」, 1978 「대외무역법」, 1986.12.31(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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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chives.go.kr

Date Published: 8/6/2021

View: 6691

한국 무역의 역사(양장본 HardCover)최광식 – 교보문고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의 무역을 규명한다 | 『한국 무역의 역사』는 우리나라 무역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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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7/14/2022

View: 3314

대한민국의 무역수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본 도표는 달러를 기준으로 했다. 목차. 1 교역조건의 변동; 2 수출상품의 구조; 3 수입상품의 구조; 4 지역별 무역구조와 무역수지; 5 무역수지 도표; 6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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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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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다 파는 한국! 우린 무역으로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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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국 무역 역사

  • Author: 지식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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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2.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ldYHMhKhXrA

① 수출입의 추이:1990년대 들어 수출은 1990년대 초 인건비 상승, 엔저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어 증가율이 둔화되었으나, 1994년부터는 엔고 등에 힘입어 다시 큰 폭의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수출은 1990년의 650억 달러에서 1995년에는 1,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1,25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나, 세계 제12위의 수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그 결과 세계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우리 나라의 비중도 같은 기간 동안 1.96%에서 2.5%로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1996년 이후에는 엔저와 주요 수출품목의 가격하락으로 수출증가율은 크게 둔화되었다. 수입도 1990년대 들어 수출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1990년의 698억 달러에서 1995년에는 1351억 달러로 연평균 14%씩 증가하였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제11위의 시장으로 부상하였으며, 세계 시장에서의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 1995년의 경우에는 2.7%의 점유율을 기록하였다. 1996년에도 수입은 전년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지만 수입개방에 따른 소비증가 등으로 인해 수출보다 더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었다.

그 결과 무역수지도 1990년대 초반에는 적자가 감소추세를 보였으나, 중반 이후에는 적자가 크게 증가하여 1996년에는 사상 최대인 206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적자의 확대는 수출면에서 1994년 이후 본격화된 엔화가치의 하락, 반도체·석유화학·철강 등 주요소재의 국제가격 하락, 세계 교역둔화현상 등으로 수출증가율이 크게 둔화된 것에 기인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환율변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일본의 엔화가 강세였던 1994년∼1995년에는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던 반면, 엔화가 약세 또는 정체상태였던 1990년 초반, 1996년부터 우리 나라의 수출이 크게 둔화된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산업구조가 일부 품목에 편중되어 있고, 수출품의 고급화가 미흡하여 후발개도국과의 경쟁심화 등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수입측면에서는 1990년대 이후 크게 진전된 시장개방의 확대 등으로 수입이 증가하고, 1996년의 경우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 따른 수입부담의 증가도 무역수지 적자에 크게 기여하였다.

② 상품별 무역구조:우리 나라 수출은 1990년 이후 공산품의 비중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산품 중 중화학공업제품의 비중이 크게 높아져 왔다. 경공업제품의 수출은 1990년대에 들어선 이후 비교적 낮은 증가율을 보인 반면, 중화학제품의 수출은 두 자리 숫자의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1990년 중화학제품의 수출은 총 수출의 56.5%에서 1995년에는 72.6%로 크게 늘어난 반면 경공업제품의 비중은 같은 기간중 38.5%에서 22.5%로 크게 감소하였다.

이는 경공업제품이 1990년대 들어 높은 임금상승, 고금리 등에 따른 수출단가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어 수출이 둔화된 반면, 중화학공업제품의 경우는 철강·석유화학·전자부품 등이 막대한 공급능력을 확보한 가운데 경기호조로 수출이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가공단계별로는 오랫동안 수출을 주도해 온 조립가공형 최종완제품의 수출이 둔화됨에 따라 수출비중이 1990년의 57.2%에서 1995년에는 46.4%로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중간투입재의 수출은 반도체·철강·직물 등의 수출호조에 힘입어 같은 기간중 그 비중이 37.8%에서 49.2%로 크게 신장되어 최종완제품의 비중을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수출구조의 변화로 인해 주요 수출상품의 구성도 크게 변하여 1990년 수출 주종상품인 의류·신발·철강판의 순위 및 비중이 매년 하락하고 있는 반면,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이 주력상품으로 부상하였다.

주요 수출상품의 수출비중은 1990년대 들어 전기전자·자동차·섬유·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주력상품의 수출증가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1995년의 7대 수출품목의 수출비중은 총 수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이 특정품목에 크게 편중될 경우 국제가격의 하락과 같은 대내외 여건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최근의 반도체·석유화학·철강재 가격의 하락으로 수출이 크게 하락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수입은 재화형태별 수입구조의 변동을 보면 1990년대 들어 원자재의 수입비중이 감소하는 반면, 자본재의 수입은 늘어나고 있다. 1990∼1995년 원자재의 수입비중은 총 수입의 53.6%에서 50%로 감소하였으나, 자본재의 경우는 같은 기간중 35.5%에서 39.8%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자본재의 수입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생산공정의 기계화 또는 자동화로 관련 설비의 수입이 늘어나고 또한 부품 또는 소재산업의 미발달로 자본재 수요증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공단계별 수입은 기초 원자재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원유가격의 안정으로 비중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간투입재는 부품 및 소재의 국산화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최종완성재의 경우도 수입자유화와 해외투자에 따른 역수입 등으로 인해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수입상품의 구성내용을 보면 10대 수입상품의 경우, 원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총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의 9.1%에서 1995년에는 8%로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재와 소재 및 부품의 높은 수입의존도를 반영하여 기계류, 반도체의 수입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석유화학제품·철강제품 등도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10대 수입품목이 총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의 경우 40%에 달하고 있다.

③ 시장별 무역구조:지역별 수출을 보면 1990년에 들어서 선진국에 대한 수출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는 반면 아시아, 중국 등 개도국에 대한 수출은 크게 늘어나, 1995년에는 개도국에 대한 수출비중이 선진국의 비중을 상회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개도국에 대한 수출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아시아 개도국의 수입수요 증가와 수출시장 다변화 노력 등에 힙입어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선진국에 대한 수출은 수출상품의 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중저가 제품의 경우에도 중국, 동남아 등 개도국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잃어가고 있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10대 수출대상국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1990년에는 북미·유럽 지역이 5개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1995년에는 3개국으로 감소한 반면, 아시아지역은 같은 기간중 5개에서 7개국으로 증가하였다.

10대 수출대상국은 1995년의 경우 미국·일본·홍콩·중국·싱가포르·독일·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영국의 순이며, 이들 10개국에 대한 수출비중은 69%로 1990년의 73%에 비해 낮아지고 있어 수출시장이 다변화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지역별 수입구조를 보면 1990년 이후 대선진국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 1995년에는 67.7%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도국에서의 수입은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출구조의 변화는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수출선 다변화전략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보다는 지역주의 확산에 따른 역내간 교역 증가, 후발개도국의 고도성장에 따른 수입수요 증가, 선진국 시장의 경쟁 격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지역별 무역수지는 개도국과의 수출증가 및 수입감소, 선진국과의 수입증가 및 수출감소가 반영되어 커다란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즉, 동남아·동구·중남미 등 대개도국과의 무역에서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나,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의 무역에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대 무역적자 대상국인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1996년의 경우 적자의 증가추세가 다소 둔화되었으나 15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으며, 미국과는 무역적자가 크게 증가하여 116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EU와의 무역에서도 무역적자가 60억 달러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한국무역의 역사

출판사 리뷰

학계에서 최초로 시도된 한국 무역의 변천사

우리 민족의 해상활동과 무역을 선사와 초기국가시대,

삼국 및 남북국시대, 고려, 조선, 근?현대 등 통시대적으로 규명하다.

각 시대별 전공자의 집필로 전문성을 갖춘 최초의 한국무역의 역사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여는 새로운 키워드는 ‘바다’이고,

그 ‘바다’에는 우리 민족의 오랜 해양문화의 전통이 함께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동북아시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현 시점에서

과거 한민족에 의해 행해졌던 무역의 역사는

해양문화의 전통과 해외진출의 좌표를 제시해준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자연환경이 서로 다른 인류에게 ‘교역’은 필수였고, 그 교역을 통해 얼마나 부를 갖추어 나갔느냐가 한 나라의, 한 민족의 생존을 좌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 이래 고대-고려-조선-근대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중국, 일본 등의 여러 나라와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비록 교역상대국은 서양에 비해 제한되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관련 종사자들이 천민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부존자원이 빈곤했던 우리로서는 외국과의 교역은 생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교역’, 넓게는 무역에 대해 그동안은 무역학적인 입장이나 해양학적인 입장 등 특정 시각에 치우친 개설서들만 있어 한국의 무역에 관한 종합적인 검토가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각 시대별 무역사 전공자들에 의한 한국무역사 서술로 무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종합정리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선사시대 및 초기국가의 교역

우리나라에서 대외교역이 나타나는 시기는 고조선시대로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에 국가를 형성한 위만조선이 최초일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위만조선의 국가 성립에 전쟁과 교역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한군현이 설치된 기원전 1세기대에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중국 문물의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교역루트로는 연안항로와 육상루트가 있었고, 연안항로로는 철 등의 물품이, 육상루트로는 위세품 등의 물품이 이동했다. 또한 부여, 삼한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는 ‘철’을 통한 교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남해안 지역에 무역의 거점인 무역항이 형성되기도 했다. 특히 삼한의 ‘철’은 동아시아 세계의 세력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삼국 및 남북국시대의 무역

초기국가들이 멸망해가고 새로운 세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교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가장 강력했던 고구려가 대외정벌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무역’이란 것을 통해 세력을 확대해 나가려는 나라는 백제였다. 이후 백제는 중국대륙,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해양거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백제 주도의 국제교역망은 고구려의 반격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반면 신라는 동해안 제해권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지증왕대에는 이사부에 의해 우산국을 정복함으로써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며 발전해갔다.

신라와 발해로 대표되는 남북국시대에는 중국이 교역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과 다른 여러 나라와 민족을 연결시켜주던 역할을 하던 것이 조공이었다. 조공은 동아시아지역 내에서 동아시아 무역망을 형성시켰으며, 사무역의 확대를 촉진시켰다.

사무역은 신라, 당,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의 정치적 혼란과 조선술, 항해술의 발달, 해상세력의 성장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장보고에 의한 청해진 설치는 사무역 발달의 결정적 요인이었으며, 중국과 일본에 재당신라인 사회와 재일신라인 사회를 만들어 신라를 연결한 일련의 네트워크 건설은 신라가 동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기였다.

고려시대의 무역

고려시대의 무역 형태는 국가 간의 공식 외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조공무역’과 순수한 상인 사이의 교역인 ‘호시’가 보편적이었으나 불법적인 밀무역도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중국을 지배한 민족에 따라 무역도 여러 가지 양상을 띠게 되었다.

우선 송나라와의 무역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송나라의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요나 금나라의 위협 속에서도 외교를 열려고 노력했으며, 송나라와의 무역에서 불교 경전 및 유교 서적, 대성악 등이 전래되었다. 양국 간의 무역은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외형적으로는 민간 교역처럼 보였지만, 고려에서 방물을 바치고 회사품 형식으로 물품을 받아가는 공무역이었다.

요나라와의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외교무역이었다. 사신을 보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고려에서 보내는 예물과 요에서 주는 회사품이 늘어났으며 그와 부수되는 사행무역이 많아지게 되었다.

요를 멸망시킨 ?나라는 고려를 종주국으로 섬기던 여진족에서 비롯되었는데, 세력을 키워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까지 물리치자 고려에 조공을 요구하였으며, 이후 100여 년간 사대외교가 지속되었다. 금과의 관계는 요나라의 사례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무역은 몽골 제국이 동아시아지역을 정복하는 13세기를 전후로 양상이 달라졌다.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 무역은 사무역이 배제된 국가 또는 왕실 중심의 무역이었다면, 원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됨에 따라 국가 간에 이루어졌던 무역의 양상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정치적 영향력은 외교에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교에 참여한 사신들이 별도로 무역에 참여하여 큰 이익을 얻기도 했다. 또한 국경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면서 일반 무역도 증가했다. 대표적인 수출품은 모시, 인삼, 말 등이었고, 수입품으로는 각종 장신구, 직물류, 놀이기구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무역

조선시대는 유학의 영향으로 상업활동을 통한 자본의 집적과 경제변동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다. 해외무역은 ‘사대교린’이라는 정치외교체제에 부수된 활동으로 ‘적자무역’ 혹은 ‘사치품무역’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중국 및 일본을 잇는 무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18세기 조선의 상인들이 새로운 상품인 홍삼을 생산하면서 대외무역이 활발해졌다. 인삼재배와 홍삼가공, 판로의 확대는 조선 상업계가 상업자본의 단계를 벗어나 산업자본의 단계로 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개항기에 이르러 시장이 다변화하는 등 조선의 무역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개항기의 무역

개항기 조선의 무역액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불평등조약체제를 바탕으로 한 무역구조는 농산물을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는 형태였지만, 양적 성장을 통해 교역조건이 개선되면서 식민지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 조선의 수출품은 미곡과 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지만, ‘금’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조선에서 유출된 금은 일본의 금본위제 확립에 기초를 만들기도 했다. 반면 수입품으로는 섬유제품, 그 중에서도 면제품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뿐만 아니라 석유의 수입, 성냥, 술, 염료, 담배, 목재, 밀가루 등의 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일제강점기의 무역

일제는 한국병합 이후 처음부터 조선을 경제적으로 확고하게 장악할 수 없었다. 국제정치적인 변화와 일본 내부의 정치적, 경제적인 상황,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통치차원에서 이루어진 ‘특별관세정책’이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세동화정책 시기’ ‘무역진흥정책 시기’, ‘무역통제정책 시기’ ‘특별관세정책 시기’ 등 식민지 경제정책의 변화를 거쳤지만, 조선의 무역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식민지무역구조가 확립되는 시기, 또는 수탈구조가 확립된 시기에는 무역규모가 가장 정체적이었다.

한국경제 성장사 #32. 무역 강국 대한민국, 과제도 많아

1962년 한국의 세계 무역 순위는 65위. 50여년 뒤인 2011년에는 세계 9위의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어요. 그만큼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졌어요. 그러나 풀어야 할 문제도 많이 생겨났어요.

2011년, 무역 1조 달러 돌파

12월 5일은 무역의 날이에요. 2011년 12월 5일, 한국 무역은 수출 5,151억 달러, 수입 4,860억 달러로 무역 규모(수출+수입) 1조 달러를 돌파했어요. 이를 기념하는 날이죠. 한국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이룬 나라입니다. 네덜란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는 모두 우리보다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성과예요.

▣ 한국 무역 규모의 변화

[자료] 한국무역협회

한국은 어떻게 짧은 시간에 무역 강국이 됐을까요? 국내 시장이 너무 좁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이 꼭 필요하다고 목표를 정했고, 이를 밀고 나갔기 때문이에요.

1977년 100억 달러, 1995년 1,000억 달러를 넘어선 수출은 2010년 11월 세계 8번째로 5,000억 달러를 웃도는 기록을 세웠죠. 수출 대상 국가도 1970년 137개에서 2012년 232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났어요. 수출 품목도 1970년 섬유, 합판, 가발에서 반도체, 선박, 자동차, 휴대전화, 정보통신 제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바뀌었어요.

지나치게 높은 무역의존도

무역 규모가 성장한 건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어요. 이 또한 차근차근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유럽의 무역 강국인 네덜란드나 독일은 무역의존도가 우리보다 높아요. 그러나 두 나라는 유럽연합(EU)에 속해 하나의 경제통합체를 이뤄서 무역의존도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보다 훨씬 약해요. 무역의존도가 너무 높은 나라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 문제가 생겨 수출에 타격을 받으면, 나라 경제가 바로 충격을 받아요. 지난밤 일어난 해외 경제 뉴스가 다음 날 아침 우리나라 주식, 외환시장에 어김없이 영향을 주는 것처럼 말이죠.

무역의존도 한 나라의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국내총생산(GDP)* 에서 수출과 수입의 합이 얼마나 되는지 비율로 나타낸 것. 이 비율이 높을수록 나라 경제에서 수출과 수입에 의존한다는 뜻이에요.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계속 높아지다가 2013년에는 수출과 수입을 합한 금액이 국내총생산보다 커져서 무역의존도 100%를 넘기기도 했어요. 2020년에는 69%까지 낮아졌지만, 아직도 높은 수준입니다.

▣ 2020년 주요 나라 무역의존도(%)

세계 평균 54 프랑스 58 미국 23 이탈리아 55 독일 81 영국 56 중국 35 네덜란드 145 일본 31 한국 69

[자료] Trade(% of GDP) 세계은행

대기업 중심 수출, ‘고용 없는 성장’ 문제로

수출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너무 큰 것도 문제로 꼽혀요. 1980년대까지는 수출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더 생기고, 소득과 소비가 증가해서 경제성장으로 이어졌어요. 그러나 수출 증가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런 효과는 점차 줄었어요. 대기업이 부품을 국내 중소기업에서 사다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한다면 좋을 텐데, 국내 대기업은 수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입품을 더 많이 사용했어요. 대기업 수출이 잘 되도 그 효과가 퍼지지 않게 된 거예요. 수출품의 포장, 운송, 보관 등도 자신들이 투자한 곳에서 기계화, 자동화로 처리하고 있어요. 기계화된 작업장은 사람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 수출이 늘어도 일자리가 더는 생기지 않게 되었죠.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문제. 이것을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불러요.

★ 어경 문해력 쑥쑥! 무역 수출과 수입의 합. 다른 나라에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수출, 외국 제품을 들여오는 수입을 합해서 무역이라고 한다. 수출을 많이 하면 미국 달러가 국내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며, 그만큼 국제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위상 개인, 상품, 국가의 위치가 다른 것과 비교해 어느 위치, 수준인지 나타내는 것. 경제가 성장할수록 국가와 국민의 위상이 높아진다.

부가가치 어떤 상품을 생산한 금액에서 생산을 위해 다른 곳에서 사들인 원자재 등 각종 비용을 뺀 것. 부가가치가 높을수록(고부가가치) 더 많은 이윤을 얻는다는 뜻.

국내총생산(GDP) 한 나라에서 1년 동안 생산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수량을 곱해 모두 합한 것. 예를 들어 A 나라에서 자동차 10대(가격 10), 반도체 10개(가격 5), 빵 5개(가격 2)를 생산했다면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은 자동차 100(10대 X 가격 10), 반도체 50, 빵 10으로 모두 160이 된다.

어린이 경제신문 1154호

[한국인의 삶을 바꾼 것들 ①] 수출

광복 60년을 맞았다. 그동안 끊임없는 아픔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우리 민족. 60년 성상(星霜) 동안 산업화·민주화를 이룬 우리는 21세기 들어 마침내 세계 중심국가로 자리잡으며 선진국과 어깨를 견주어 나가고 있다. 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질곡의 현대사를 헤쳐 나온 한국인들의 의식과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대사건’들을 반추해 본다.

김·가발·철강·조선·자동차·반도체 등은 60년대이후 우리 수출을 이끌어온 주력 제품들이다. 이를 기반으로 21세기 들어 한국은 IT강국으로 부상했다.

(자료제공:코리아플러스)

지난해 10월 대한민국의 수출 2,000억 달러 달성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 감격적인 날, 한 경제계 인사는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우리 국민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1964년 1억 달러 수출고를 달성한 이래 꼭 40년 만에 2,000배 증가한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역사는 경이의 역사였지만 그 쾌속항진은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수출 규모 세계 순위는 1964년 기준 83위에서 10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수출 대상국은 41개국에서 229개국으로 늘었다. 무역업체 수도 600여 개에서 9만5,000여 개로 160배 증가했으며 연평균 수출신장률은 21.3%로 나타나 20대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다. 드라마와 같은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우리의 무역액은 남미국가의 무역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다.그러나 모든 영광의 역사 배후에는 역경과 고난이 있다. 해방 직후 무역 실적은 참담했다. 일본 산업계와의 단절은 상품시장의 손실, 남북한 산업의존관계의 단절 등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수출 산업은 전멸 상태였다.1946년 수출은 불과 350만 달러였고 47년, 48년에는 전통적인 농산물 수출로 2,000만 달러대를 각각 기록하다 49년에는 세계적인 경기 후퇴로 1,000만 달러대로 감소했으며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나마도 힘든 지경이었다. 53년 텅스텐 등 전략적 광물에 대한 수요가 증대해 수출이 3,900만 달러로 다시 급증했지만 50년대 내내 우리의 수출은 매년 2,000만 달러대에 머물렀다.한국 수출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내세웠던 ‘경제개발을 통한 빈곤 퇴치’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많은 가치들이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매몰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60년대 수출 증가는 연평균 40%에 육박하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었다’는 서구 언론의 말이 여기서 나왔다.1970년대는 수출진흥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중대한 산업구조의 개편이 이뤄졌다.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이에 따른 수출품목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72년부터 76년까지 진행된 3차 5개년계획 당시의 수출증가율은 48.5%로 화려한 성장을 거듭했지만 근로자 계층의 피와 땀과 눈물은 그 화려함 속에 묻혔다. 폭압은 고통스러웠지만 규율과 능률을 낳았고, 능률은 경제적 부를, 경제적 부는 다시 경제력의 격차를 유발했다.어쨌든 1970년대는 수출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겨졌던 시대였다. 당초 목표치 24.3%의 거의 2배의 수출증가를 달성하면서 70년대 당시 정권이 제시한 신기루, 100억 달러 수출 목표는 3년이나 앞당겨 달성됐다.1980년대는 개방화의 시대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른바 ‘3저(低) 효과’에 힘입은 장기 호황과 수출 증대가 지속됐고, 이는 군사정권의 일각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아이러니로 작용했다. ‘봐라! 잘 풀리고 있지 않으냐’는 정권의 호언장담이 불안한 시국을 무마하는 당의정(糖衣錠) 역할을 했다.1980년대 한국 무역의 성과는 86년에 기록한 역사상 최초의 무역 흑자였다. 31억 달러의 무역 흑자는 아시안 게임, 올림픽 유치와 맞물려 한국 중산층의 활력과 자신감 제고의 계기가 됐다.하지만 1990년대는 한국 수출의 시련기였다. 저임금을 베이스로 한 수출 드라이브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연대와 항의에 직면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글로벌한 시장경제 체제가 가속화되면서 해외에서 직접 생산활동을 전개할 자본재 수출 방향으로 일대 전환이 이뤄졌다.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90년대 이후부터다. 1997년에 찾아온 외환위기로 인해 구조개혁이라는 날카로운 메스가 환부를 절개했다. 2000년부터 이전 단계로의 회복이 시작됐고 무역수지도 1998년 390억 달러 흑자를 기록, 이후 7년째 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수출상품 구성에서 반도체·컴퓨터 등 소위 고부가가치 정보기술(IT) 관련 제품의 비중이 현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출대상국에도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수출 1위 지역이었던 미국이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는 이변이 나타났다.2000년대 수출 산업의 리더는 반도체다. 작년 200억 달러를 돌파해 총 수출액의 10%를 차지했다. 휴대전화 등 무선통신 기기도 효자 종목 중 하나다. 반도체에 거의 필적하는 성과로 수출 제2위 품목으로 성장했다. 자동차·컴퓨터·선박도 모두 100억 달러가 넘는 수출로 저력을 과시했고 석유제품·철강판·합성수지·영상기기 등도 많게는 매년 50% 이상의 수출 신장세를 유지하며 한국 10대 수출 품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정부와 기업의 노력과 꿈은 계속된다. 이제 세계 8대 무역대국으로 나아간다는 게 정부가 세운 비전이다. 올해 산업자원부의 업무계획에서는 2008년 4,000억 달러 수출목표를 잡고 있을 정도다.정부는 이를 위해 ▷경제성장률 5% 유지 ▷물가상승률 3% ▷환율 2% 절상 ▷인구증가율 0.5% 등 ‘선진한국’ 목표를 위해 전력투구할 계획이다.하지만 구체적인 과제도 산적해 있다. 특정품목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완화하고 일류상품의 지속적인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서비스 수출의 확대가 과제로 대두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 체결 확대 등의 문제가 통상외교의 현안이다. 나아가 수출을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을 높이고 환경을 보존하며 지구촌 전체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이상(理想)이 있다.

「무역법」, 1957.12.31

「수출조합법」, 1961.9.9

「수출장려 보조금 교부에 관한 임시조치법」, 1961.9

「수출진흥법」, 1962.3

「대한무역진흥공사법」, 1962.4.24

「수출검사법」, 1962.10.4

「수출관광공사법」, 1962.4.24

「군납촉진을 위한 임시조치법」, 1962.1.6

「무역거래법」, 1967.1.16

「수출보험법」, 1968.12.31

「한국수출입은행법」, 1969.7.10

「수출자유지역설치법」, 1969.12

「종합무역상사제도」, 1975.4

「산업설비수출촉진법」, 1978

「대외무역법」, 1986.12.31(제정), 1987.7.1(발효)

가. 해방~1950년대

해방~1950년대의 기간은 무역관리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초보적인 정책수단을 채택한 무역관리 정책의 모색기라고 평가된다. 당시 국내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각종 물자를 수입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 하에서 어떤 물자든 수입을 하게 되면 큰 이익을 남겼고 모든 사업가들이 수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 중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상품을 수입하거나 밀수 등과 같이 불법적으로 거래하려는 수요가 컸다. 수출면에서도 국내에서 물자가 부족하고 국내 산업에 필수적인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수출해서 더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정부는 이른바 ‘공정한 무역’을 보장하고 정부의 전체 경제정책에 적합한 수준으로 수출입을 관리하는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해방 직후 한국 무역은 한국정부의 관리가 아니라 미군정의 관리 하에 이루어졌다. 미군정의 관리가 끝난 이후 한국정부는 1947년 제정된 군정법령에 의거해 무역을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었으나, 정치적 혼란과 전쟁을 겪는 가운데 이러한 법령들은 실효성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상공부에서 발표한 고시와 공고가 무역을 관리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법적 근거가 없고 상황이 변화하면 다시 새로운 고시․공고 등으로 조치 자체가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정부가 자주적으로 무역을 관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정한 법률은 1957년 12월에 공포된 「무역법」이었다. 이 무역법 역시 기본적으로 무역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으나, 다만 법적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그 이전에 있었던 무역제도 자체의 혼란을 막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나. 1960년대

1960년대는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관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정비한 무역관리 정책의 정비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60년대 들어 비로소 수출진흥을 위한 다양한 법률들이 제정되었다. 먼저 1961년 9월에 「수출조합법」이 제정되어 수출조합의 설립, 관리, 해산 등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하였다. 동 법은 수출에 있어서 과당경쟁 및 수출질서 교란행위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수출조합제도를 도입한 법인데, 구체적으로 수출조합은 수출업자들의 공동이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각종 사업(해외선전, 시장조사, 수출검사, 융자알선 등)을 추진하며, 나아가 수출업자들을 대표하여 수출품의 공동 또는 위탁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출조합법」 역시 아직 무역의 관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수출조합이 수출은 증진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각종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무역진흥의 기능을 도입한 데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역시 1961년 9월에 「수출장려 보조금 교부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실효성이 없던 기존 수출장려 보조금과 수출시장 개척비 지원제도를 체계화하고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 법이야 말로 우리 정부가 본격적으로 수출을 진흥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당시의 궁핍한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규정대로 새로운 시장이나 새로운 상품을 수출하기만 하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은 획기적인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62년 3월에 한국 정부는 마침내 수출진흥 자체를 목표로 하는 법률인 「수출진흥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을 제정한 것은 1962년부터 실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출이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각종 조치들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밖에도 이 기간 중에 새로 제정된 무역관련 법률은 「수출조합법」(1961.9.9), 「대한무역진흥공사법」(1962.4.24), 「수출검사법」(1962.10.4), 「수출관광공사법」(1962.4.24), 「군납촉진을 위한 임시조치법」(1962.1.6), 「무역거래법」(1967.1.16) 등이 있다. 이중 특히 「무역거래법」은 「무역법」, 「수출진흥법」, 「수출장려 보조금 교부에 관한 임시조치법」 등 종래 복잡다기했던 무역관계 법률이 통합 정비된 무역기본법이었다. 이 「무역거래법」은 오늘날의 「대외무역법」의 전신으로 무역거래와 관련된 모든 지원과 관리를 위한 제도들의 법적 근거로서 우리나라 상역제도의 뿌리가 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 1970년대

1970년대는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관리하는 각종 제도와 정책이 본격 시행된 무역관리 정책의 정착기라고 평가된다. 이 기간 중 무역관리정책의 특징은 수출진흥체제의 강화, 수출진흥의 내실화, 통상외교의 추진, 수입관리 정비 등의 시책이 시행되었던 점이다. 이러한 무역관리정책이 시행되었던 것은 장기 경제개발계획 에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간은 제3차,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기간이었고 이 개발계획에서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 기간 동안 수출증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매년 수출목표가 책정되었으며,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국내외 경제적 배경 하에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무역관련 법률이 새로 제정 공포되거나 정비되었고 수출확대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관계 법률이 제정 공포되었으며 매년 무역정책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무역시책이 적극 시행되었다. 이 기간 중 새로 제정 공포된 대표적인 무역관련 법률은 「수출보험법」(1968.12.31), 「한국수출입은행법」(1969.7.10) 등이다. 그리고 수출확대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마련된 법률과 제도로서는 「수출자유지역설치법」(1969.12), 「종합무역상사제도」(1975.4), 「산업설비수출촉진법」(1978) 등을 들 수 있다.

라. 1980년대

1980년대는 무역관리 정책의 강화와 선진화의 기반이 마련된 시기로 특징지어 진다. 이 기간 중 무역관리정책의 특징은 수출기반의 확충, 수출지원 체제의 개편, 통상외교의 강화, 수입자유화의 추진 등의 시책이 시행되었던 점이다. 이러한 무역관리정책이 시행되었던 것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수출증대가 불가피했으며, 한편 국제무역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에는 특히 중공업제품의 수출전략화를 통한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요청되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에 따른 세계경기침체로 말미암아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하였고, 선진국은 한국 수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국내산업의 체질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선진국의 요청에 따라 수입자유화의 확대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무역거래법」에 의한 무역의 관리제도가 가지는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우선 무역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비해 모든 무역거래를 관리하는 관점에서 제정된 「무역거래법」은 무역거래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주는 규제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1980년대 적극적으로 수입자유화가 추진되었고 그에 따라 급격한 수입증대가 예상되어 수입급증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부터 종래의 「무역거래법」을 대체한 새로운 법 제정의 준비과정을 거쳐 1986년 12월 「대외무역법」이 제정되기 이르렀다. 이 「대외무역법」은 지금까지 무역거래와 관련되는 모든 사항, 정부의 무역진흥계획의 수립, 각종 무역진흥제도와 조직의 근거 등을 규정하는 법률로서 우리나라 상역제도의 기본법으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 1990년대

1990년대는 무역관리체제의 국제화와 선진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된 시기이다. 1980년대 중반 3저 현상에 힘입어 수출이 급신장하였으나, 1990년 이후에는 무역적자가 재현되고 주요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마저 급락하는 등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수출둔화는 단순한 대외적 여건에 기인하기보다는 수출경쟁력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의 취약성에서 비롯되었다. 즉, 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한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초래하였으나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마케팅 능력, 품질개발 등 비가격경쟁력의 제고로 보완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쌍무적 통상압력에 의하여 국내시장 개방압력이 높아진 반면에 지역주의의 확산은 주요 시장에 대한 진출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수출의 내실화 및 수출능력의 지속적 확장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출산업 설비능력 확충, 수출상품의 품질경쟁력 강화, 수출채산성 확보, 수출관련 지원제도 개선 등의 조치가 시행되었다. 수출관련 지원제도 개선조치로서는 섬유쿼터 운용의 합리화, 수출자율규제 운영의 내실화, 연불수출 금융지원 강화, 수출보험제도 개선 등의 시책이 시행되었다. 수입의 실질적 확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1989~1991년 수입자유화계획의 수립 등 수입자유화 조치가 확대되었고 통합공고상 수입관리제도 개선, 수출입별도공고상의 수입제도 개선, 수입선다변화제도 개편 등 수입관리제도의 개선조치가 취해졌다.

무역의 지역별 균형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대미 무역흑자 관리, 대일 무역역조 개선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선진 무역체제의 구축을 도모하기 위하여 산업피해 구제제도 확립, 2000년대 한국무역의 전망과 장기 정책방향 설정, 무역업무 전산화 추진, 전략물자 수출 통제제도 도입 조치가 시행되었다.

1990년의 무역정책의 기본 방향은 수출경쟁력 보강을 통한 수출신장 도모, 무역확대 기반 확충 및 무역구조 고도화, 수입개방 효율적 추진, 무역제도 선진화 등에 두었다. 수출경쟁력 보강을 통한 수출신장을 위하여 수출경쟁력을 보강하고 수출 공급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시책이 시행되었다.

바. 2000년대

2000년대에는 세계 무역량이 세계적인 시장개방과 자본이동의 확대, 기술확산에 따른 산업 내 무역의 확대 등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FTA를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통합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내 무역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중국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투자의 급증과 생산력의 확대에 힘입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과 무역증가율을 이어갔다. 한국 또한 지리적 인접성과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저임금과 시장확보를 위한 대중국 투자가 급증하는 동시에 중국의 공업화와 수출에 필요한 원부자재, 부품․소재를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이 호조를 이어갔다.

이러한 세계무역의 기조 속에 한국은 수출주도형 고도경제성장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수출촉진정책이 광범위하게 시행하였다. 대외적인 통상여건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수출지원제도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해왔는데,WTO 출범 이후 자유무역뿐 아니라 공정무역이 강조되면서 직접적인 가격보조에 해당하는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2000년대 한국의 무역지원제도는 수출금융 지원, 해외시장조사 및 해외마케팅 지원, 인터넷 마케팅 지원, 정보제공 및 수출 컨설팅 지원, 디자인 지원과 무역교육 등 WTO 규범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무역의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 무역의 역사(양장본 HardCover)

상품상세정보 ISBN 9788936810030 ( 8936810030 ) 쪽수 608쪽 크기 160 * 235 * 35 mm /963g 판형알림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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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역의 역사』는 우리나라 무역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사 및 초기국가시대부터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의 무역형태와 변화 등을 소개한다.

목차

서론- 한국무역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1장 선사 및 초기국가시대 (고조선, 부여, 삼한 시기)의 무역

2장 삼국시대의 무역

3장 남북국시대의 무역

4장 고려시대의 무역

5장 조선시개의 무역

6장 개항기의 무역

7장 일제하의 무역

결론-한국무역사의 전개와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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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표는 달러를 기준으로 했다.

교역조건의 변동 [ 편집 ]

우선 한국의 수입상품과 수출시장의 가격동향은 수입가격지수에 대한 수출가격지수의 비율인 교역조건의 동향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표」-1에서 1991∼1996년의 교역조건의 변동추이를 보면 1991년을 100으로 보면 수출단가와 수입단가의 비율면에서 순상품 교역조건이 1991년 98.2%에서 1993년 102.5, 1994년 103.7로 수입가격보다 수출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교역조건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1996년에는 순상품 교역조건이 87.7로 1995년보다 낮아졌다. 순상품 교역조건의 상승은 수출단가보다 수입단가가 점차 낮아지는, 다시 말하면 교역 조건이 유리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수출입액의 변동은 수량과 가격의 복합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과 수량의 변동을 감안한 소득 교역조건, 즉 1단위의 수출소득을 가지고 취득할 수 있는 수입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측정하는 소득 교역조건지수를 가지고 파악한다. 이 지수는 1990년을 100으로 할 때, 1991년 59.6, 1993년에는 72.0으로 다시 1996년에는 105.0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교역조건이 이와 같이 유리해지고 있는 것은 한국의 수출구조가 그간 1차산품 중심에서 공산품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한 데 연유한다 할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공산품은 1차산품보다 소득탄력성이 크며, 가격의 안정도가 높기 때문에 교역조건면에서는 언제나 1차산품보다 유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공산품 위주의 수출구조의 변천은 점진적인 교역조건의 개선에 기본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수출상품의 구조 [ 편집 ]

대한민국 수출의 상품별 구조를 보면 1960년대 이후에 진행된 공업화의 영향을 받아 농산물 및 광산물 등 제1차산품의 비중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이에 반해 공산품의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여 수출 구조가 개선되었다. 총수출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2년의 28.6%에서 계속 감소하여 84년에는 불과 1.7%였으며 수산물의 경우도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년의 19.2%에서 84년에는 3.0%가 되어 동기간 중 16.2%나 감소하였다. 광산물의 경우에도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년의 24.5%에서 84년에는 0.3%로 크게 줄었다. 반면 공산품의 경우에는 1962년의 27.7%에서 77년에는 87.5%로, 84년에는 95.0%로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후 공산품이 수출 상품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공산품의 수출구조를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제품으로 구분하여 보면 1960년대에는 경공업제품의 증가율이 현저하였으나 1971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중화학제품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즉 총수출에서 경공업제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2년의 22.1%에서 1971년에는 72.0%까지 계속 확대되었으나, 그 후 점차 축소되어 1991년 35.5%, 1995년에는 22.5%로 대폭 감소했으며, 중화학제품은 1971년 14.1%, 1985년 57.0%로 점차 확대되어 1995년에는 72.6%를 기록했다.

한국의 수출상품수는 1962년에 겨우 70여개 품목에 불과했으나 77년에는 기술집약적인 일부 특수상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품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10대 수출상품의 변화 추이를 보면 1975년에는 섬유류 (36.2%), 전자제품 (8.9%), 철강제품(4.6%), 합판(4.1%), 신발류(3.8%), 원양어류(3.6%), 선박(2.7%), 금속제품(2.4%), 석유제품(1.9%), 합성수지제품(1.7%)으로 이들 10 대 수출상품이 총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9%였다. 그러나 1994년에는 전자기기 (32.8%), 섬유류(18.0%), 화공품(6.2%), 철강제품(5.8%), 자동차(5.6%), 선박(5.1%), 일반기계(4.4%), 신발(1.9%), 플라스틱제품(1.8%), 유류제품(1.7%) 순으로 수출상품이 바뀌었다. 또한 이들 10대 상품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3.4%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상품의 구조 [ 편집 ]

1960년대에 한국의 수출이 크게 신장했다고는 하나, 이 기간에 수입도 급격히 증가하여 무역수지의 역조는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경제개발에 따른 개발수요의 급속한 팽창에 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률을 목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막대한 시설재(施設財)와 원자재(原資材)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국민총생산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1962년의 16.9%에서 76년에는 39.6%에 달하여 급격한 수입의 증가를 나타냈다.우선 1956∼61년과 1962∼76년간의 수입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경우 0.2%에 불과했던 것이 후자에 와서는 24.8%로 크게 증가되었다. 이러한 수입상품규모 중 자본재의 수입구성비는 1962년의 26%에서 1976년에는 28%로, 원자재의 구성비는 59%에서 61%로 각각 증가한 반면 소비재의 수입구성비는 15%에서 11%로 떨어지고 있다. 원자재와 자본재의 수입이 수입구성비면에서 1960년대를 통하여 80%∼90%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후 고도성장과 더불어 1995년 기준으로 한국의 수입 총액은 1,351억 1,9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데 1991∼95년간 연평균 수입증가율은 13.5%로 나타났다.용도별 수입구조를 보면 내수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이후 하락추세에 있던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수출용 수입의 비중이 1990년대 들어서는 1993년 이후 수출증가와 설비투자의 활성화에 따라 다소 상승했다. 수출용 수입의 비중은 1991년 30.3%, 1995년 33.0%를 기록하고 있으며, 내수용 수입은 1991년 69.7%에서 1995년 67.0%로 다소 감소했다. 품목별 수입구조는 자본재 수입비중이 1991년 36.9%에서 1995년 39.6%로 높아졌다. 소비재 수입은 1995년 기준으로 10.3%로 아직 낮으나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소비재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재 수입의 주요동기는 국내 생산량 부족(곡류, 육류, 생선 등), 국산품의 경쟁력 저하(의류, 신발, 가구, 중·저가의 가전제품 등), 고급품 수요(고급화장품, 자동차, 가전제품 등)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최근 들어 국산품의 경쟁력 저하, 고급품 수요 등의 동기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표〕- 2 용도별·품목별 수입구조 추이

(단위:%)

비 중 연평균증가율 1991 1992 1993 1994 1995 1990∼93 1993∼95 1991∼95 전산업 100.0 100.0 100.0 100.0 100,0 6.3 27.0 13.5 내수용

수출용 69.7

30.3 68.6

31.4 66.8

33.2 68.3

31.7 67.0

33.0 5.7

7.5 27.2

26.5 12.4

15.9 원자재

자본재

소비재 53.2

36.9

9.9 52.1

37.4

10.5 53.0

36.5

10.5 49.8

39.5

10.7 50.0

39.6

10.3 5.7

6.3

9.2 23.3

32.3

26.2 11.7

15.5

14.7

자료:한국은행, 『국제수지』, 각 연도

지역별 무역구조와 무역수지 [ 편집 ]

1960년대의 수출 및 수입은 대상지역을 크게 확대시켰다. 우선 1962년 당시의 수출대상국가는 겨우 33개국에 불과하였으나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교역상대국이 되었다.그러나 한국의 수출입은 아직도 일부 특정지역에 편중되고 있는 현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1962년 대(對) 일본수출 비중은 42.8%나 되었으며, 1985년에는 15.0%로 대폭 감소되었으나 1995년에도 13.6%이다. 한편 미국의 그것은 1962년 21.9%에서 1970년 47.3%로 확대되었으며 그 후 점차 감소하여 1991년 25.8%, 1995년 19.3%로 감소하였다. 일본 및 미국에 대한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에는 75.6%까지 달했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EC제국·아프리카 등지에 대한 수출시장 다변화 노력으로 1990년에는 49.2%로 크게 개선되었으며, 1996년 28.9%로 수출시장 다변화 시책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및 일본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수입의 경우 더욱 현저하다. 미국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1962년에 52.2%,1976년 22.4%, 1991년 23.2%였으며, 1995년에는 22.5%를 기록하고 있다.한편 일본의 경우는 1962년에 25.9%, 1976년에 35.3%, 1991년 25.9%, 1995년에는 24.1%로서 이들 두 나라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많이 감소하긴 했지만, 1995년에도 전체의 46.6%나 되었다. 한국의 무역은 일본 및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는 대폭적인 수입초과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우선 일본의 경우 1995년 한국의 수출은 170억 4,800만 달러인 데 반하여 수입은 326억 600만 달러에 달하여 무역역조는 155억 5,8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원자재와 자본재의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경제성장에 따라 내수용 수입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1976년 5억3천만 달러의 흑자를 본 이래 1990년까지도 수출 193억 6천만 달러, 수입 169억 4,200만 달러로 24억 1,800만 달러의 흑자를 보였으나 이후 점차 적자로 돌아서 1995년에는 무려 62억 7,2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다.

무릇 국제무역에 있어서 특정국과 무역 균형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다각무역으로 균형을 이룰 때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해방 후부터 계속해서 대폭적인 수입초과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는 무역흑자국이던 미국마저 무역역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특정국가에 대한 일반적 과도한 역조현상은 특정국 간의 무역수지가 문제되는 때에는 교역의 계속적인 확대를 위해서도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표〕-3 무역수지 및 교역조건

(1990=100)

수 량 지 수 단 가 지 수 순상품

교역조건 소 득

교역조건 수 출 수 입 수 출 수 입

증가율

증가율

증가율

증가율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65.8

70.2

80.7

100.0

119.8

149.6 8.4

6.7

15.0

23.9

19.8

24.9 63.8

47.9

82.5

100.0

112.6

114.3 2.1

6.4

21.5

21.2

12.6

1.5 93.2

93.6

95.2

100.0

86.6

72.8 -1.6

0.4

1.7

5.0

-13.4

-15.9 94.9

91.3

91.8

100.0

98.8

93.6 -1.6

-3.8

0.5

8.9

-1.2

-5.3 98.2

102.5

103.7

100.0

87.7

77.8 64.6

72.0

83.6

100.0

105.0

116.8

자료:한국은행 조사제2부 금융통계과

무역수지 도표 [ 편집 ]

연도 수출금액

(US$1,000) 수출증가율 수입금액

(US$1,000) 수입증가율 수지

(US$1,000) 1960년 32,827 65.7 % 343,527 13.1 % -310,700 1961년 40,878 24.5 % 316,142 -8.0 % -275,264 1962년 54,813 34.1 % 421,782 33.4 % -366,969 1963년 86,802 58.4 % 560,273 32.8 % -473,471 1964년 119,058 37.2 % 404,351 -27.8 % -285,293 1965년 175,082 47.1 % 463,442 14.6 % -288,360 1966년 250,334 43.0 % 716,441 54.6 % -466,107 1967년 320,229 27.9 % 996,246 39.1 % -676,017 1968년 455,400 42.2 % 1,462,873 46.8 % -1,007,473 1969년 622,516 36.7 % 1,823,611 24.7 % -1,201,095 1970년 835,185 34.2 % 1,983,973 8.8 % -1,148,788 1971년 1,067,607 27.8 % 2,394,320 20.7 % -1,326,713 1972년 1,624,088 52.1 % 2,522,002 5.3 % -897,914 1973년 3,225,025 98.6 % 4,240,277 68.1 % -1,015,252 1974년 4,460,370 38.3 % 6,851,848 61.6 % -2,391,478 1976년 7,715,343 51.8 % 8,773,632 20.6 % -1,058,289 1977년 10,046,457 30.2 % 10,810,538 23.2 % -764,081 1978년 12,710,642 26.5 % 14,971,930 38.5 % -2,261,288 1979년 15,055,453 18.4 % 20,338,611 35.8 % -5,283,158 1980년 17,504,862 16.3 % 22,291,663 9.6 % -4,786,801 1981년 21,253,757 21.4 % 26,131,421 17.2 % -4,877,664 1982년 21,853,394 2.8 % 24,250,840 -7.2 % -2,397,446 1983년 24,445,054 11.9 % 26,192,221 8.0 % -1,747,167 1984년 29,244,861 19.6 % 30,631,441 16.9 % -1,386,580 1985년 30,283,122 3.6 % 31,135,655 1.6 % -852,533 1986년 34,714,470 14.6 % 31,583,900 1.4 % 3,130,570 1987년 47,280,927 36.2 % 41,019,812 29.9 % 6,261,115 1988년 60,696,388 28.4 % 51,810,632 26.3 % 8,885,757 1989년 62,377,174 2.8 % 61,464,772 18.6 % 912,402 1990년 65,015,731 4.2 % 69,843,678 13.6 % -4,827,947 1991년 71,870,122 10.5 % 81,524,858 16.7 % -9,654,736 1992년 76,631,515 6.6 % 81,775,257 0.3 % -5,143,742 1993년 82,235,866 7.3 % 83,800,142 2.5 % -1,564,276 1994년 96,013,237 16.8 % 102,348,175 22.1 % -6,334,938 1995년 125,057,988 30.3 % 135,118,933 32.0 % -10,060,944 1996년 129,715,137 3.7 % 150,339,100 11.3 % -20,623,963 1997년 136,164,204 5.0 % 144,616,374 -3.8 % -8,452,171 1998년 132,313,143 -2.8 % 93,281,754 -35.5 % 39,031,388 1999년 143,685,459 8.6 % 119,752,282 28.4 % 23,933,177 2000년 172,267,510 19.9 % 160,481,018 34.0 % 11,786,492 2001년 150,439,144 -12.7 % 141,097,821 -12.1 % 9,341,323 2002년 162,470,528 8.0 % 152,126,153 17.8 % 10,344,375 2003년 193,817,443 19.3 % 178,826,657 6.6 % 14,990,786 2004년 253,844,321 31.0 % 224,462,687 25.5 % 29,381,985 2005년 284,418,743 12.0 % 261,238,264 16.4 % 23,180,497 2006년 325,464,840 14.4 % 309,382,632 23.4 % 16,082,216 2007년 371,489,086 14.1 % 356,845,733 15.3 % 14,643,352 2008년 422,007,328 13.6 % 435,274,737 22.0 % -13,267,409 2009년 363,533,561 -13.9 % 323,084,521 -25.8 % 40,449,040 2010년 466,383,762 28.3 % 425,212,160 31.6 % 41,171,601

자료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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