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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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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이야기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을 기억한다. 시대를 풍미한 패션 디자이너자 기업가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그는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도 젊은 피였으며, 사망에는 어떤 전조도 없었던 터라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모두가 애도했다.

‘그’의 이름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디자이너, 건축가, 브랜드의 디렉터, CEO, 스트리트와 럭셔리의 벽을 깨부수고 아름다운 영혼과 지혜를 통해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와 팬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물한 선각자다. 버질 아블로는 단순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향력을 펼쳤고, ‘기존의 것’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였다.

왜 그가 특별했고, 왜 세상이 그에게 열광하였으며, 우리는 왜 그를 기억할까. 시카고 태생의 소년이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기까지. 버질 아블로가 걸어온 길을 다시금 돌아본다.

| 유년기

1980년 가나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시카고 교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버질 아블로(아버지는 페인트 회사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건축을 공부, 2002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200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전공이 패션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는 어머니로부터 재봉을 배웠고, 일리노이 공과대학 시절에는 유명 블로그인 에서 패션과 디자인 주제의 글을 작성했다고.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있던 패션이 결정적 한방을 통해 그의 인생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바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를 접하게 된 것. 렘 쿨하스는 2003년 9월 미국 내 자신의 첫 건물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세우는데, 당시 그를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버질은 2001년 프라다와 렘 쿨하스가 협업해 선보인 ‘프라다 에피센터 뉴욕’ 매장 에 한 눈에 반한다. 버질에게 있어 이는 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기틀이 되었고, 그 기점으로 버질의 패션 사랑이 펼쳐진다.

버질 아블로와 램 쿨하스

| 칸예 웨스트

칸예 웨스트는 학업에서 갓 벗어난 버질 아블로가 커리어를 시작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주요 인물 중 하나다. 버질이 시카고의 한 인쇄소에서 도안을 가지고 티셔츠를 제작하던 중 칸예 웨스트와 조우한 것은 유명한 일화. 소문에 의하면 버질은 위스콘신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칸예의 매니저 존 모노폴리와 미팅을 가진다. 그렇게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칸예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2009년 버질 아블로와 칸예 웨스트는 나란히 럭셔리 패션 하우스 ‘펜디’에서 인턴십을 갖는다. (비록 입사 과정이 남들과 같았을 지는 의문이지만)둘은 실제 펜디 인턴과 동등한 대우 아래 일을 했는데, 월 500 달러(한화 약 60만 원)를 받고 상사에게 커피를 배달하며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실무 스킬을 익혀 나갔다. 당시 펜디의 CEO였던 마이클 버크가 “버질과 칸예가 스튜디오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전했을 만큼 이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던 바. 참고로 마이클 버크는 2012년부터 루이 비통의 CEO로 재직, 향후 버질 아블로를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앉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

칸예 웨스트와 버질 아블로

같은 해, 돈 C(칸예 웨스트의 매니저이자 시카고의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와 함께 미국 시카고에 패션 부티크를 오픈하기도 한다. 라 명명된 매장은 버질의 스타일을 전체적인 인테리어에 반영해 큰 주목을 모았으며 샤넬과 꼼 데 가르송부터 타카시 무라카미와 카우스까지, 여러 형태의 문화를 섞어내 당세 최고 하입을 자랑했다. 예컨대 여기서 ‘파이렉스 비전’이 첫 번째 컬렉션을 단독으로 선보였고, 제리 로렌조는 ‘피어 오브 갓’의 50장 한정 티셔츠를 출시한 바. 이상의 긴 말 생략하고, 는 소위 ‘좀 치는’ 이들의 멋있는 공간으로 명성을 날렸다.

위 두 커다란 이야기는 칸예-버질 인연의 자그마한 부분에 불과, 2010년 버질은 칸예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되기에 이른다. 학창 시절부터 디제잉을 즐겼던 덕에 음악 자체에도 일가견 있었던 그는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나아가 2011년에는 칸예 웨스트와 제이 지의 전설적인 합작 앨범 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그래미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는 더 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 패션

빈트릴(2010)

버질 아블로는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하는 동시에 매튜 윌리엄스, 헤론 프레스턴, 저스틴 손더스 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친구들과 한 팀을 이루고 꽤나 재미있는 패션 브랜드 사업 빈트릴(BEENTRILL)을 전개한다. 빈트릴은 과감한 그래픽과 로고 플레이로 무장하고 스트리트웨어 신에 파격적인 반향을 일으키게 되는데, 후디와 티셔츠 등이 높은 가격(품질에 비해)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 인기는 2010년 브랜드 론칭 후 한 동안 꾸준히 지속됐다.

빈트릴의 빠른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요인으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꼽힌다.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리한나, ASAP 라키 등 유명 인사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빈트릴 아이템을 착용하고 등장한 바. 무엇보다 당시 ‘인스타그램’이 새로운 SNS로 부상하고 있었고, 이에 발맞춰 등장한 시의적절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브랜드가 뚜렷한 아이덴티티 없이 단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다만, 행복한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과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의존도 높았던 로고 플레이의 부작용이 금새 찾아온 것이다. 휘황찬란한 그래픽과 멋들어진 셀러브리티들의 착장이 어느새 지루해졌고,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빈트릴은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진다.

파이렉스 비전(2012)

빈트릴이 한창 흥행 가운데 있던 2012년,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첫 번째 단독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선보인다.

파이렉스 비전은 처음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원단을 선택해 패턴을 짜고 디자인을 더하는 대신, 40 달러짜리 폴로 랄프 로렌과 챔피온 데드 스탁에 커다란 PYREX 23 브랜딩을 프린팅하고 550 달러에 판매하는 방식이 전부였기 때문. 참고로 여기서 ‘PYREX’는 마약 제조에 흔히 사용되던 글라스 브랜드를, ’23’은 마이클 조던의 백 넘버를 표현한 것이다.

지드래곤이 착용한 파이렉스 비전

버질은 파이렉스 비전에 대해 “단지 젊음을 자극하고 지향하는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고스란히 반영되어 매일같이 새롭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찾는 ‘하입비스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분명 버질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디자인이 아닌 사기’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행보에 시장의 반응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제품은 출시 때마다 완판을 기록했다.

위 내용을 종합해 조금 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면 파이렉스 비전은 브랜드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팬들이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평가들의 격분을 마케팅으로 소화하고 데드 스탁 아이템을 14배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결과적으로 버질의 방식은 단 1년 만에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파이렉스 비전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2013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오프 화이트(2013)

도약의 결과물이 2013년 밀라노를 거점으로 론칭한 오프 화이트(Off-White). 빈트릴, 파이렉스 비전에서 보여준 티셔츠 팔이를 넘어 마침내 시즌마다 컬렉션을 발표하는 하이 패션 신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를 배경으로 곧잘 스트리트와 하이 패션을 연결해나간다. 건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차용한 화살표 로고 및 사선 형태의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 패턴을 초기 브랜드의 키 디자인으로 삼고, 코트와 블레이저부터 후디와 쇼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아이템 속에 주입해 넣었다. 특유의 오버사이징 실루엣에 다채로운 소재와 그래픽 등이 가미되어 탄생한 매 시즌 컬렉션은 어느 한 카테고리에 묶여있기보다 ‘오프 화이트’ 그 자체로 정의되었고, 런웨이 무대를 넘어 실제 우리의 일상복으로도 함께하게 된다. 오프 화이트를 논하는데 ‘협업’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나이키가 있는데, 볼드한 헬베티카 레터링 및 레드 케이블 타이 등 기존 오프 화이트의 시그니처 디자인 미학으로 변주된 에어 조던 1과 에어 포스 따위를 통해 전 세계 스니커헤드를 열광케 하고 스니커 신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 밖에도 버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몽클레르, 크롬하츠, 챔피온, 스투시, 지미 추, 반스를 비롯해 리모와, 이케아, 도버 스트리트 마켓, 바이레도, 에비앙, 모엣 샹동 등 문화 전반의 브랜드들과 함께하며 ‘OFF-WHITE’ 인지도와 그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오프 화이트 x 나이키 <더 텐> 컬렉션

자크뮈스, 베트멍, 코페르니와 함께 2015 LVMH 프라이즈 결승에 진출한 바 있는 오프 화이트는 2021년에 이르러서 LVMH에 지분 60%를 내어준다. 오프 화이트는 그 사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이 패션 시장에서 스트리트 웨어의 미학을 아낌없이 뽐내온 바. 셰인 올리버의 HBA, 즈바살리아 형제의 베트멍을 제치고 여전히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오프 화이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있다.

루이 비통(2018)

2018년 3월의 어느 날, 버질 아블로는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루이 비통 남성복 부문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소식은 루이 비통이 킴 존스와 함께 맛을 본 ‘스트리트웨어’를 진정 꽃피우고자 함을 시사하였고, 자연스레 패션 신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킴 존스는 ‘루이 비통 x 슈프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며,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하이 패션을 넘어 럭셔리가 스트리트웨어를 받아들였다. 그것도 가장 아이코닉한 브랜드 중 하나로 손 꼽히는 루이 비통이. 사실 버질 아블로의 럭셔리 시장 진출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기도 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셰인 올리버와 즈바살리아 형제의 뎀나가 각각 헬무트 랑과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질의 전공이 패션이 아닌 건축이라는 점은 리스크 중 하나였고, 많은 이들이 기대와 함께 ‘과연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루이 비통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해 6월 버질 아블로의 데뷔작, 2019 봄-여름 맨즈 컬렉션이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펼쳐졌다.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는 화이트로 시작해 화려한 그래픽을 거쳐 강렬한 레드와 블루 등의 다채로운 컬러로 구성된 컬렉션은 그 즉시 떠돌던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 미학으로 해석된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베이직한 후디와 트라우저 등에 접목되고, 구조화되지 않은 블레이저와 유틸리티 베스트 등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기다란 체인 디자인을 채택한 가방과 알록달록한 스니커들에 시선이 쏠렸다. 이보다 성공적으로 끝날 수 없었을 컬렉션과 쇼는 버질 아블로가 칸예 웨스트를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그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you can do it too…’로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들에게 꿈과 용기를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버질의 루이 비통은 그렇게 밝게 빛났다. 이후에도 스트리트웨어 아이덴티티는 물론, 꾸준히 건축에 대한 자신의 영감을 선보이며 매 시즌 필히 주목해야 할 남성복으로 정착하는데, 우리는 그가 선보인 컬렉션과 더불어 쇼 자체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고르자면 구름 그래픽과 커다란 오브제로 장식된 2020 가을-겨울 컬렉션이 있으며,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에서 테마를 가져온 2021 가을-겨울 컬렉션, 펑크 소울 그룹 ‘더 윈스톤즈’에 경의를 표하는 2022 봄-여름 컬렉션 ‘AMEN BREAK’가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지금까지 버질이 선보여온 퍼포먼스 중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의 별명이 ‘밀레니얼 칼 라거펠트’로 지어지기에도 조금은 합당한 대목 중 하나다.

그다음과 그다음만이 기대되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2021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난다. LVMH와 루이 비통이, 케어링과 구찌가 그를 추모했고 버질을 사랑하고 버질에게 사랑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루이 비통은 이후 마이애미에서 22 가을-겨울 컬렉션을 다시금 조명한 쇼를 통해 버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냈으며, 오프 화이트는 전 세계 일부 매장을 꽃으로 장식하였고, 우리는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전했던 사랑의 메시지를 돼새긴다.

| 카피 혹은 샘플링?

버질 아블로의 디자이너 인생에 카피 이슈가 늘 꼬리표처럼 뒤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카피캣’이라 불렸을 만큼 말이다. 패션 고발 계정 @diet_prada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격수’. 유명 디저이너들의 카피를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이들이기에, LVMH를 등에 업고 있어도 @diet_prada의 레이더망에 걸린 이상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그가 카피켓이 맞다 아니다에 갑론을박이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논란을 절실히 부정해왔다. ‘훔치는 것’이 아니라 ‘리믹스’라 이야기하며. 여기서 우리는 버질의 디자인 정신 중심에 있던 ‘3% 접근법’과 ‘샘플링’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에서 3%만 바뀌어도 새로운 오리지널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3%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패션의 세계에 정말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실제로 버질은 유스 컬처를 기반으로 현시대 남성복의 기틀을 마련한 라프 시몬스로부터 큰 영감을 받으며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스스를 비유한 방법에 따르면,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웨어는 마르셀 뒤샹의 ‘샘’ 혹은 앤디 워홀이 선보인 ‘마릴린 먼로’와 ‘캠벨의 수프 캔’과 동일한 맥락이다. 단지 그 무대가 ‘패션’이었을 뿐. 버질 아블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무엇인가에 3%의 해석을 가미하며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였다.

뒤샹의 ‘샘’과 칸예 웨스트의 ‘MBDTF’

3% 접근법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가 패션 대신 건축을 전공하고 디제잉을 하며 ‘샘플링’의 대가인 칸예 웨스트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에 있던 곡의 일부 음원을 잘라내 새롭게 가공하고 배치하는 행위’를 일컫는 샘플링은 음악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법 중 하나다. 디제잉 속에 다양한 음악을 조합하고 칸예 웨스트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 바가 있기에, 버질에게 이는 전혀 어색한 개념이 아니다. 단순히 직업이 뮤지션이 아닌 디자이너라고 샘플링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샘플링의 집합체인 MBDTF(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음악 시장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힙합 앨범으로 위치하는데, 샘플링 요소가 가미된 오프 화이트 및 루이 비통 컬렉션이 패션 시장에서 기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혹자는 ‘3% 접근법’이나 ‘샘플링’이 버질 아블로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려한 말장난이 아니냐고 말한다.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주장이다. 버질 아블로가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고 있음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만, 그가 모든 영감의 원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 자칫 ‘무단으로 디자인을 뺏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에 이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논쟁 거리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 버질 아블로는 세상을 떠났다. 패션과 음악, 디자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추모했다. 단순히 그의 성공적인 커리어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생전 내보인 무수한 사랑이 바로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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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루이비통은 왜 버질아블로를 선택했나 : HighenDaily 하이엔드데일리 Updating “100년 이상 된 제품과 브랜드를 12살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그 일에 전문이다.”- 버질아블로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에게는 전설적인 스토리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데드스톡으로 구매한 40달러짜리 챔피온 티셔츠와 폴로 남방에 그의 어린시절 영웅 마이클조던의 백넘버 23 과 파이렉스(PYREX)라고 써서 크게 프린트한 뒤 550달러에 판매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엄청나게 팔려나갔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신화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명품 브랜드의 빗장이 열리다2018년 3월, 전 세계 패션업계를 뒤흔든 혁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루이비통이 오프화이트(OFF-WHITE)의 수장,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것이다. 루이비통 설립 이래 164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석 디자이너. 게다가 그는 오프화이트라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수장이며, 심지어 패션스쿨을 나오지도 않았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세계로 악명이 높다.버질 아블로의 무엇이 그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일까.소비층의 변화 :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스트리트브랜드패션의 원래 뜻은 ‘인기’, ‘유행’이다. 즉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통해 그 생명력을 얻는 것이 패션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태생적으로 제한된 소수층에게만 허용되어 왔지만, 쉽게 향유할 수 없는 나머지 수많은 대중들에게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끊임없이 심어옴으로써 명품으로써의 위상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약 10여년 전부터 럭셔리 브랜드들의 매출성장폭은 유례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요인은, 명품 소비층이 급격하게 젊어지고 있었던 것. 글로벌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명품 매출 2600유로(약334조원) 중 33%가 20-30대 밀레니얼 세대의 지갑에서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젊은 소비층은 가성비를 철저히 따지면서도, 가치 있다고 여기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기존의 명품 브랜드는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만, 본인들이 열광하는 스트리트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몇 백만원을 쓰는 식이다. 이 같은 흐름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되어, 이미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여 스트리트 브랜드들과 다양한 콜라보를 시도했고, 이른바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를 발판으로 ‘젊은 명품’이 되기 위한 대대적인 혁신을 감행하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를 영입했으며, 구찌는 10년 이상 데리고 있던 수석디자이너를 내보내고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기용해 완전히 새로워진 구찌로 젊은 층의 호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루이비통마저 슈프림과의 콜라보로 거둔 거대한 성공의 단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트리트브랜드 태풍의 핵,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를 영입함으로써 주류 패션계는 이제 완전히 다른 항로를 타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출처] 2018 [시스템]매거진 10호 표지WHAT IS Vergile Abloh? – 버질아블로 현상천부적인 재능과 자기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개인브랜드로 성공했던 디자이너들이 유럽의 유명 패션하우스에 입성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버질아블로의 경우는 좀 다르다. 루이비통이 그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의 디자인 능력을 사기 위함이 아니다. 오프화이트라는 브랜드의 대표라는 것은 그의 직함일지언정 그의 활동영역과 영향력은 오프화이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프화이트는 그 브랜드 자체의 특성보다 버질 아블로의 존재를 통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팬들의 충성도도 높아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버질 아블로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하고, 작년 시스템 매거진에서는 버질아블로는 누구인가? 가 아니라 라는 제목으로 그를 인물이 아닌 현상으로 다루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수많은 미디어와 비평가들이 그에 대해 분석한 내용들을 종합해서 그의 성공비결을 정리해보면, 한 마디로 그는 지금 이시대가 요구하는 최적,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브랜딩, 마케팅을 포함한 디렉팅을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진정성 수행해 내고있는 소통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정확히 파악한 후 그 안에서 혁명적인 것을 내놓으려 했다. ”- 버질아블로철저하게 계산된 디렉팅버질 아블로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Thinker(사상가)이자 Director 디렉터에 가깝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트렌드와 소구점에 대해서 일반 마케터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전략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오프화이트(OFF-WHITE)는 현재 하이엔드 스트리트 브랜드의 최정점에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2년 그가 최초로 런칭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그야말로 한땀 한땀 전통적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직접 바느질, 제단을 하여 옷을 만들던 장인디자이너의 시대가 지나고, 소위 수석디자이너가 구상한 컨셉에 따라 실제 옷은 전문적인 패턴사나 샘플사 같은 기술사가 만들어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지금의 명품과 패션에 대해 그가 던진 일침이다. 디자이너의 도안을 찍어내고 상표를 부착하는 것으로 몇십배의 가격이 책정되는 명품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를 묻고있는 것이다.이를 그의 크루들이 나누어 입고 메시지를 담은 영상도 만들었다. 의상 자체의 힙한 느낌은 물론이고, 스트리트컬쳐의 하나인 그라피티를 활용한 것들 모두가 Youth Always Wins(젊은이들이 항상 이긴다)라는 그가 내건 시즌 컨셉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이미 이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테다. 스트리트컬쳐에 열광하는 지금의 젊은 층이 패션산업의 주도세력이라는 것을. 칸예웨스트의 아트디렉터로써 앨범아트 작업이 인정받고, 유명한 패션 셀레브리티이기도 했던 칸예웨스트의 곁에서 현장감을 익힌 그가 독보적으로 내딛은 첫 행보에서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자산을 백분 활용했다. 퍼포먼스 자체로도 충분히 도발적이었지만, 칸예를 비롯한 그의 주변 셀럽들이 파이렉스를 입은 사진들이 SNS에 자주 노출되면서 셀레브리티 마케팅 효과를 극대치로 끌어올렸다. 이 또한 그에게는 애초에 계획된 부분이었을 것. 파이렉스는 그가 구상하고 계획한 대로 지금의 밀레니얼세대들에게 손짓을 보내어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함과 동시에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구매욕을 자극하여 엄청난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다.좌측이 <파이렉스>의 셔츠, 우측이 <오프화이트>의 셔츠. 오프화이트는 파이렉스의 리뉴얼브랜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담이지만, 보관용기를 생산하는 기존의 PYREX파이렉스社의 상표권 소송에 패소하여 해당 브랜드명을 쓸 수 없게 되자 아예 새로운 브랜드명으로 재런칭한 것이 오프화이트다. 이 때부터는 직접 소재나 형태 등을 디자인하기 시작하여 독자적인 브랜드의 틀을 갖추긴했지만, 기본적인 컨셉과 정신은 파이렉스를 계승하고 있다. 패션계의 BTS- 현 세대와 호흡하는 커뮤니케이터2019년 4월, 버질 아블로는 디자인 프라이즈 (디자인붐 주관)에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부문은 브랜드,캠페인,또는 특정 프로젝트나 제품이 후보가 되는 부문인데, 유일하게 인물로써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하게 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버질 아블로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는 단순한 디자이너 혹은 디렉터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는 최근 글로벌 대중음악계의 하나의 현상으로 불리는 BTS와도 겹쳐진다. 음악성이나 춤 자체로는 BTS보다 더 뛰어난 가수들이 많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와 실시간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진정성 있게 소통하여 두터운 지지층을 양산해낸 것과 버질아블로의 행보는 많이 닮아 있다. BTS가 그저 우연히 대박이 터진 것이 아닌 것처럼 버질 아블로 또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그러나 전략적으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왔다. 이미 패션업계의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1년의 300일 이상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세계 각지에 있는 다양한 그들을 향해 그의 소통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 시대의 걸출한 커뮤니케이터로써의 그의 활약이 앞으로도 우리에게 감탄과 영감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 패션은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만들어 놓은 걸 사람들이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 버질아블로#하이엔드데일리 #하이엔드 #하이엔드전략하이엔드,하이엔드전략,하이엔드데일리,하이엔드캠프,마케팅,신제품마케팅,마케팅대행,프리미엄마케팅,하이엔드마케팅,sns마케팅,퍼포먼스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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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레전드 프로젝트 TOP 6 [RedFri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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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레전드 프로젝트 TO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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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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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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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이야기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을 기억한다. 시대를 풍미한 패션 디자이너자 기업가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그는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도 젊은 피였으며, 사망에는 어떤 전조도 없었던 터라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모두가 애도했다. ‘그’의 이름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디자이너, 건축가, 브랜드의 디렉터, CEO, 스트리트와 럭셔리의 벽을 깨부수고 아름다운 영혼과 지혜를 통해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와 팬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물한 선각자다. 버질 아블로는 단순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향력을 펼쳤고, ‘기존의 것’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였다. 왜 그가 특별했고, 왜 세상이 그에게 열광하였으며, 우리는 왜 그를 기억할까. 시카고 태생의 소년이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기까지. 버질 아블로가 걸어온 길을 다시금 돌아본다. | 유년기 1980년 가나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시카고 교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버질 아블로(아버지는 페인트 회사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건축을 공부, 2002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200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전공이 패션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는 어머니로부터 재봉을 배웠고, 일리노이 공과대학 시절에는 유명 블로그인 에서 패션과 디자인 주제의 글을 작성했다고.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있던 패션이 결정적 한방을 통해 그의 인생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바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를 접하게 된 것. 렘 쿨하스는 2003년 9월 미국 내 자신의 첫 건물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세우는데, 당시 그를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버질은 2001년 프라다와 렘 쿨하스가 협업해 선보인 ‘프라다 에피센터 뉴욕’ 매장 에 한 눈에 반한다. 버질에게 있어 이는 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기틀이 되었고, 그 기점으로 버질의 패션 사랑이 펼쳐진다. 버질 아블로와 램 쿨하스 | 칸예 웨스트 칸예 웨스트는 학업에서 갓 벗어난 버질 아블로가 커리어를 시작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주요 인물 중 하나다. 버질이 시카고의 한 인쇄소에서 도안을 가지고 티셔츠를 제작하던 중 칸예 웨스트와 조우한 것은 유명한 일화. 소문에 의하면 버질은 위스콘신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칸예의 매니저 존 모노폴리와 미팅을 가진다. 그렇게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칸예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2009년 버질 아블로와 칸예 웨스트는 나란히 럭셔리 패션 하우스 ‘펜디’에서 인턴십을 갖는다. (비록 입사 과정이 남들과 같았을 지는 의문이지만)둘은 실제 펜디 인턴과 동등한 대우 아래 일을 했는데, 월 500 달러(한화 약 60만 원)를 받고 상사에게 커피를 배달하며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실무 스킬을 익혀 나갔다. 당시 펜디의 CEO였던 마이클 버크가 “버질과 칸예가 스튜디오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전했을 만큼 이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던 바. 참고로 마이클 버크는 2012년부터 루이 비통의 CEO로 재직, 향후 버질 아블로를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앉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 칸예 웨스트와 버질 아블로 같은 해, 돈 C(칸예 웨스트의 매니저이자 시카고의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와 함께 미국 시카고에 패션 부티크를 오픈하기도 한다. 라 명명된 매장은 버질의 스타일을 전체적인 인테리어에 반영해 큰 주목을 모았으며 샤넬과 꼼 데 가르송부터 타카시 무라카미와 카우스까지, 여러 형태의 문화를 섞어내 당세 최고 하입을 자랑했다. 예컨대 여기서 ‘파이렉스 비전’이 첫 번째 컬렉션을 단독으로 선보였고, 제리 로렌조는 ‘피어 오브 갓’의 50장 한정 티셔츠를 출시한 바. 이상의 긴 말 생략하고, 는 소위 ‘좀 치는’ 이들의 멋있는 공간으로 명성을 날렸다. 위 두 커다란 이야기는 칸예-버질 인연의 자그마한 부분에 불과, 2010년 버질은 칸예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되기에 이른다. 학창 시절부터 디제잉을 즐겼던 덕에 음악 자체에도 일가견 있었던 그는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나아가 2011년에는 칸예 웨스트와 제이 지의 전설적인 합작 앨범 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그래미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는 더 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 패션 빈트릴(2010) 버질 아블로는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하는 동시에 매튜 윌리엄스, 헤론 프레스턴, 저스틴 손더스 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친구들과 한 팀을 이루고 꽤나 재미있는 패션 브랜드 사업 빈트릴(BEENTRILL)을 전개한다. 빈트릴은 과감한 그래픽과 로고 플레이로 무장하고 스트리트웨어 신에 파격적인 반향을 일으키게 되는데, 후디와 티셔츠 등이 높은 가격(품질에 비해)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 인기는 2010년 브랜드 론칭 후 한 동안 꾸준히 지속됐다. 빈트릴의 빠른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요인으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꼽힌다.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리한나, ASAP 라키 등 유명 인사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빈트릴 아이템을 착용하고 등장한 바. 무엇보다 당시 ‘인스타그램’이 새로운 SNS로 부상하고 있었고, 이에 발맞춰 등장한 시의적절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브랜드가 뚜렷한 아이덴티티 없이 단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다만, 행복한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과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의존도 높았던 로고 플레이의 부작용이 금새 찾아온 것이다. 휘황찬란한 그래픽과 멋들어진 셀러브리티들의 착장이 어느새 지루해졌고,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빈트릴은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진다. 파이렉스 비전(2012) 빈트릴이 한창 흥행 가운데 있던 2012년,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첫 번째 단독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선보인다. 파이렉스 비전은 처음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원단을 선택해 패턴을 짜고 디자인을 더하는 대신, 40 달러짜리 폴로 랄프 로렌과 챔피온 데드 스탁에 커다란 PYREX 23 브랜딩을 프린팅하고 550 달러에 판매하는 방식이 전부였기 때문. 참고로 여기서 ‘PYREX’는 마약 제조에 흔히 사용되던 글라스 브랜드를, ’23’은 마이클 조던의 백 넘버를 표현한 것이다. 지드래곤이 착용한 파이렉스 비전 버질은 파이렉스 비전에 대해 “단지 젊음을 자극하고 지향하는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고스란히 반영되어 매일같이 새롭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찾는 ‘하입비스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분명 버질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디자인이 아닌 사기’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행보에 시장의 반응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제품은 출시 때마다 완판을 기록했다. 위 내용을 종합해 조금 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면 파이렉스 비전은 브랜드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팬들이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평가들의 격분을 마케팅으로 소화하고 데드 스탁 아이템을 14배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결과적으로 버질의 방식은 단 1년 만에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파이렉스 비전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2013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오프 화이트(2013) 도약의 결과물이 2013년 밀라노를 거점으로 론칭한 오프 화이트(Off-White). 빈트릴, 파이렉스 비전에서 보여준 티셔츠 팔이를 넘어 마침내 시즌마다 컬렉션을 발표하는 하이 패션 신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를 배경으로 곧잘 스트리트와 하이 패션을 연결해나간다. 건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차용한 화살표 로고 및 사선 형태의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 패턴을 초기 브랜드의 키 디자인으로 삼고, 코트와 블레이저부터 후디와 쇼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아이템 속에 주입해 넣었다. 특유의 오버사이징 실루엣에 다채로운 소재와 그래픽 등이 가미되어 탄생한 매 시즌 컬렉션은 어느 한 카테고리에 묶여있기보다 ‘오프 화이트’ 그 자체로 정의되었고, 런웨이 무대를 넘어 실제 우리의 일상복으로도 함께하게 된다. 오프 화이트를 논하는데 ‘협업’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나이키가 있는데, 볼드한 헬베티카 레터링 및 레드 케이블 타이 등 기존 오프 화이트의 시그니처 디자인 미학으로 변주된 에어 조던 1과 에어 포스 따위를 통해 전 세계 스니커헤드를 열광케 하고 스니커 신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 밖에도 버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몽클레르, 크롬하츠, 챔피온, 스투시, 지미 추, 반스를 비롯해 리모와, 이케아, 도버 스트리트 마켓, 바이레도, 에비앙, 모엣 샹동 등 문화 전반의 브랜드들과 함께하며 ‘OFF-WHITE’ 인지도와 그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오프 화이트 x 나이키 컬렉션 자크뮈스, 베트멍, 코페르니와 함께 2015 LVMH 프라이즈 결승에 진출한 바 있는 오프 화이트는 2021년에 이르러서 LVMH에 지분 60%를 내어준다. 오프 화이트는 그 사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이 패션 시장에서 스트리트 웨어의 미학을 아낌없이 뽐내온 바. 셰인 올리버의 HBA, 즈바살리아 형제의 베트멍을 제치고 여전히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오프 화이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있다. 루이 비통(2018) 2018년 3월의 어느 날, 버질 아블로는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루이 비통 남성복 부문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소식은 루이 비통이 킴 존스와 함께 맛을 본 ‘스트리트웨어’를 진정 꽃피우고자 함을 시사하였고, 자연스레 패션 신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킴 존스는 ‘루이 비통 x 슈프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며,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하이 패션을 넘어 럭셔리가 스트리트웨어를 받아들였다. 그것도 가장 아이코닉한 브랜드 중 하나로 손 꼽히는 루이 비통이. 사실 버질 아블로의 럭셔리 시장 진출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기도 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셰인 올리버와 즈바살리아 형제의 뎀나가 각각 헬무트 랑과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질의 전공이 패션이 아닌 건축이라는 점은 리스크 중 하나였고, 많은 이들이 기대와 함께 ‘과연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루이 비통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해 6월 버질 아블로의 데뷔작, 2019 봄-여름 맨즈 컬렉션이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펼쳐졌다.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는 화이트로 시작해 화려한 그래픽을 거쳐 강렬한 레드와 블루 등의 다채로운 컬러로 구성된 컬렉션은 그 즉시 떠돌던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 미학으로 해석된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베이직한 후디와 트라우저 등에 접목되고, 구조화되지 않은 블레이저와 유틸리티 베스트 등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기다란 체인 디자인을 채택한 가방과 알록달록한 스니커들에 시선이 쏠렸다. 이보다 성공적으로 끝날 수 없었을 컬렉션과 쇼는 버질 아블로가 칸예 웨스트를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그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you can do it too…’로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들에게 꿈과 용기를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버질의 루이 비통은 그렇게 밝게 빛났다. 이후에도 스트리트웨어 아이덴티티는 물론, 꾸준히 건축에 대한 자신의 영감을 선보이며 매 시즌 필히 주목해야 할 남성복으로 정착하는데, 우리는 그가 선보인 컬렉션과 더불어 쇼 자체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고르자면 구름 그래픽과 커다란 오브제로 장식된 2020 가을-겨울 컬렉션이 있으며,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에서 테마를 가져온 2021 가을-겨울 컬렉션, 펑크 소울 그룹 ‘더 윈스톤즈’에 경의를 표하는 2022 봄-여름 컬렉션 ‘AMEN BREAK’가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지금까지 버질이 선보여온 퍼포먼스 중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의 별명이 ‘밀레니얼 칼 라거펠트’로 지어지기에도 조금은 합당한 대목 중 하나다. 그다음과 그다음만이 기대되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2021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난다. LVMH와 루이 비통이, 케어링과 구찌가 그를 추모했고 버질을 사랑하고 버질에게 사랑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루이 비통은 이후 마이애미에서 22 가을-겨울 컬렉션을 다시금 조명한 쇼를 통해 버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냈으며, 오프 화이트는 전 세계 일부 매장을 꽃으로 장식하였고, 우리는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전했던 사랑의 메시지를 돼새긴다. | 카피 혹은 샘플링? 버질 아블로의 디자이너 인생에 카피 이슈가 늘 꼬리표처럼 뒤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카피캣’이라 불렸을 만큼 말이다. 패션 고발 계정 @diet_prada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격수’. 유명 디저이너들의 카피를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이들이기에, LVMH를 등에 업고 있어도 @diet_prada의 레이더망에 걸린 이상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그가 카피켓이 맞다 아니다에 갑론을박이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논란을 절실히 부정해왔다. ‘훔치는 것’이 아니라 ‘리믹스’라 이야기하며. 여기서 우리는 버질의 디자인 정신 중심에 있던 ‘3% 접근법’과 ‘샘플링’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에서 3%만 바뀌어도 새로운 오리지널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3%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패션의 세계에 정말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실제로 버질은 유스 컬처를 기반으로 현시대 남성복의 기틀을 마련한 라프 시몬스로부터 큰 영감을 받으며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스스를 비유한 방법에 따르면,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웨어는 마르셀 뒤샹의 ‘샘’ 혹은 앤디 워홀이 선보인 ‘마릴린 먼로’와 ‘캠벨의 수프 캔’과 동일한 맥락이다. 단지 그 무대가 ‘패션’이었을 뿐. 버질 아블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무엇인가에 3%의 해석을 가미하며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였다. 뒤샹의 ‘샘’과 칸예 웨스트의 ‘MBDTF’ 3% 접근법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가 패션 대신 건축을 전공하고 디제잉을 하며 ‘샘플링’의 대가인 칸예 웨스트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에 있던 곡의 일부 음원을 잘라내 새롭게 가공하고 배치하는 행위’를 일컫는 샘플링은 음악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법 중 하나다. 디제잉 속에 다양한 음악을 조합하고 칸예 웨스트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 바가 있기에, 버질에게 이는 전혀 어색한 개념이 아니다. 단순히 직업이 뮤지션이 아닌 디자이너라고 샘플링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샘플링의 집합체인 MBDTF(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음악 시장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힙합 앨범으로 위치하는데, 샘플링 요소가 가미된 오프 화이트 및 루이 비통 컬렉션이 패션 시장에서 기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혹자는 ‘3% 접근법’이나 ‘샘플링’이 버질 아블로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려한 말장난이 아니냐고 말한다.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주장이다. 버질 아블로가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고 있음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만, 그가 모든 영감의 원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 자칫 ‘무단으로 디자인을 뺏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에 이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논쟁 거리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 버질 아블로는 세상을 떠났다. 패션과 음악, 디자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추모했다. 단순히 그의 성공적인 커리어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생전 내보인 무수한 사랑이 바로 주된 이유다.

버질 아블로란 무엇인가

​ 버질 아블로는 패션 전공자도, 유럽인도, 백인도 아니다. 아블로가 최초로 주목을 받은 건 친구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 덕분이었다. 시카고 출신의 아블로는 동네 인쇄소에서 직접 만든 디자인 도안을 인쇄하러 갔다가 우연히 칸예 웨스트를 만난다. 칸예는 아블로가 음악과 문화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인물임을 깨닫고, 2002년부터 자신의 기획사인 돈다(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용하게 된다. 아블로는 마침 1999년, 건축가 렘 콜하스가 프라다 매장을 건축하는 것을 보고 패션에 많은 관심을 가진 상태였다. ​ 칸예는 이후 10년동안 미국 역사에 남을 명반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데뷔 음반인 1집부터 스타가 됐고 계속해서 스타일을 바꿔가며 힙합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2011년, 킹 오브 힙합 제이지(Jay Z)와의 컬래버레이션 음반 ‘Watch the Throne’으로 자신의 음반 역사에 정점을 찍는다(물론 이 정점은 지금도 계속해서 추월되고 있다). 2011년에도 여전히 칸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버질 아블로는 Watch the Throne 음반의 디럭스 판에 자신이 존경하는 지방시의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의 작품을 의뢰하고, 해당 음반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패키징으로 남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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