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수 의 | ‘삼베 수의·국화 영정’은 일제 잔재…“전통 장례문화 복원” / Kbs뉴스(News) 최근 답변 14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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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에게 삼베 수의를 입히고 국화로 헌화하는 장례 문화에 익숙하실 텐데요,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일제가 남긴 흔적이라고 합니다.
문예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인의 몸에 입히는 삼베 수의.
우리의 전통 장례 문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입니다.
삼베 수의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을 통해 강권했습니다.
[\”의례준칙에서 의미하는 포라는 것은 바로 대마, 삼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고인이 입었던 가장 좋은 옷, 화려한 비단옷을 수의로 썼습니다.
왕은 곤룡포, 관리는 관복, 여성은 혼례복으로 입던 옷이 수의였습니다.
[최연우/단국대 전통복식연구소장 : \”(가족들은) 죄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가공하지 않은 가장 거친 옷을 입었던 것이고, 돌아가신 분들은 입을 수 있는 신분 내에서 허락된 가장 좋은 옷을 입는 것이 기본 예법이었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며 국화로 꾸민 장례식 영정도 전통이 아닌 일제의 잔재입니다.
1926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 당시 모습을 보면 국화 화환이 등장합니다.
[서해성/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 : \”현재까지 국화가 확인되는 건 26년도 순종 국장에서 보이고요, 앞에 보면 왼쪽에 쭉 화환이 쭉 있는데 한국은 화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3.1 운동과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새해.
아직까지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 남은 일제의 잔재를 찬찬히 돌이켜볼 때입니다.
KBS 뉴스 문예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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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수의·유족 완장 장례문화, 전통 아니었다? – 경기신문

“이제껏 전통이려니 생각하고 따랐던 삼베 수의와 유족이 차는 완장 등 장례문화가 일제잔재라니 참 애석하네요. 이제라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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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gnews.co.kr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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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수의, 국화 영정···전통장례 아니었다, 일제 잔재 | 중앙일보

유족이 다는 검은 리본, 완장도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른 방식이다. 의례준칙에는 전통상복인 굴건제복을 생략해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하고,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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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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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핸드메이커 차연정 기자] 장례식장에서 시신에게 입히는 옷을 수의(寿衣)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평상시 입던 옷이나 예복에 해당하는 옷을 수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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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dmk.com

Date Published: 9/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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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 다나와 가격비교

생활/주방/건강>실버용품/간병용품>장례용품>수의 가격비교 리스트 입니다. 다나와의 가격비교 … 합리적가격 장례수의 대마소재 삼베수의 효도선물. 4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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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rod.danawa.com

Date Published: 3/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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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수의는 일제잔재인가? “설득력 부족” – 하늘문화신문

‘수의는 어떤 옷인가’ ‘상복과상장’ 등 주제를마련한가운데 특히 ‘삼베수의는 일제의 잔재인가?’란 주제는 우리 상장례업계의 당면한 주요 이슈였다.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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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emorialnews.net

Date Published: 4/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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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수의 – 검색결과 | 쇼핑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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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shoppinghow.kakao.com

Date Published: 12/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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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 표제어 – 한국일생의례사전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반적인 수의는 삼베로 만든 것으로, 남자는 도포·두루마기·저고리·겹바지·속저고리·속바지이고, 여자용 수의는 삼베 홑원삼·겹저고리·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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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olkency.nfm.go.kr

Date Published: 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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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설] 올바른 장례문화 알아보기! 삼베 수의, 일제강점기의 …

유가족들이 ‘고인을 잃은 죄인’의 의미로 입었다고 합니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왕을 잃은 신하가 입던 옷이 삼베옷이었죠. 따라서 죄인을 상징하는 삼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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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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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삼베 수 의

  • Author: K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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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2. 3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3c4zyHCiaM

삼베 수의·유족 완장 장례문화, 전통 아니었다?

해방 76년째인 지금도 ‘친일 청산과 일제잔재 극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 모두가 동참해 찾아내고 뿌리 뽑아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갈 길이 멀다고 해 가지 않으면, 목적지는 그만큼 요원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의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부터 도내 친일잔재 조사를 시작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아울러 ‘항일운동’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각종 사업들까지 활발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독립’을 완성하는 날까지,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준비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진정한 ‘문화독립’ 완성하는 날까지

② 일제잔재 청산, 지속적 실천운동 돼야

③ 일제가 두려워 한, 민속신앙과 전통

④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는 왜 사라졌나

⑤ 숨겨진 의미 알면 쓰지 못할 일제잔재어

⑥ 삼베 수의·유족 완장 장례문화, 전통 아니었다?

계속

“이제껏 전통이려니 생각하고 따랐던 삼베 수의와 유족이 차는 완장 등 장례문화가 일제잔재라니 참 애석하네요. 이제라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삼베로 수의를 만들어 고인에게 입히는 풍습이 사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는 경기도민 A 씨는 전통 장례문화인줄 알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 전통 사상의 영향으로 효를 중시해왔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옛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머리카락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은 조상을 극진히 섬겼다.

2002년 경기도박물관이 발간한 ‘경기민속지 5권’을 살펴보면 선조들은 태어나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 생애에서 중요한 시기에 행하는 일생의례를 지냈다. 인생의 고비는 출생과 성년, 혼인, 사망과 같은 신체적 성장과 쇠망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믿었으며, 출생의례를 중시한 서양과 달리 사후의례의 하나인 제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관문인 죽음을 다루는 의례가 상례(喪禮), 그 일부분으로 장사를 치른다고 해 매장·화장 등으로 시신을 다뤄 처리하는 의례가 장례(葬禮)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수의(壽衣)는 장례 과정 중 시신을 목욕시킨 후 평상시처럼 팔다리를 끼워서 옷을 입히는 의식에서 쓰는 옷으로 습의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의례준칙을 통해 임의로 뜯어고친 예법을 우리 민족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수의가 변질됐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수의는 평상시 입던 가장 좋은 옷으로

최연우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교수는 2017년 ‘현행 삼베수의의 등장 배경 및 확산과정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삼베 수의의 등장과 정착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일제의 식민주의 정책이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 삼베 수의가 우리의 본래 전통이라는 명분 하에 상례문화로 자리 잡았고, ‘바람직한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정착·확산시키기 위해 등장한 유언비어에 가까운 속설이 믿음이 돼 정작 우리 전통이었던 다른 소재의 수의가 점점 설 곳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문헌과 출토된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의 수의 소재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유학자들이 가례주석서를 편찬하는데 대표적으로 이재(李縡)가 쓴 ‘사례편람’을 보면 수의 소재로 주, 견, 백, 금, 무명이 제시된다. 베는 남자용 홑바지에 쓰였고, ‘주나 무명, 베로 한다’는 기록이 있다.

왕실의 수의 소재는 조선시대 오례의 예법과 절차를 기록한 ‘국조오례의’, ‘국조상례보편’,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의 국장을 기록한 의궤 등에서 확인된다.

왕의 장례에는 광직, 모단, 모시 등을 썼고 왕비의 장례에는 금선, 필단, 모단, 모시 등을 썼다고 한다. 어디에도 삼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 수의에 삼베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 100여기의 분묘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옷에서 염습의 구분 없이 모든 출토복식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극소수에 해당하는 몇 점의 삼베옷이 나왔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일반적으로 평상시 입던 복식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지어 입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평소에 옷감으로 사용되지 않는 삼베를 수의로 입는다는 것은 잘못 전해지고 있는 전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제정 ‘의례준칙’, 유족 완장·국화 등 한국전통에 변화

광복 76주년을 맞이했으나 오늘날 국내 장례문화는 아직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많다.

삼베로 만든 수의와 유족 완장과 리본, 영좌의 꽃장식 등 장례 모습은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에서 비롯됐다.

조선총독부는 1934년 11월 10일 전통적인 사례에 근거를 둔 간략화 된 ‘의례준칙’을 제정·공포하며, 조선시대 상장례 규범서의 하나인 ‘사례편람’의 상례절차와 내용을 대폭 축소·간소화했다.

조선의 관혼상제례를 인위적으로 바꾸고자 한 조선총독부는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무시하고 상주와 상복, 습렴 등에 대해 새로운 절차를 제시했다. 이때 값비싼 비단, 명주 사용을 금지하고 삼베와 무명을 수의로 만들 것을 강제했다.

상례의 제한 내용은 성복의 절차를 생략하고, 염습이 끝나면 바로 상복을 입도록 했다. 상복에는 상장을 달도록 제한하고, 양복을 입을 경우에는 완장을 차도록 했다. 또 유족이 한복 등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게 했다.

고인의 영혼을 모시는 영좌 주변을 국화로 장식하는 것도 일제의 영향이다. 한국은 사람의 시신을 실어서 묘지까지 나르는 상여를 장식하는 종이꽃 수파련 말고는 생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오죽했으면 삼베 수의랴”

그렇다면 전통 장례문화에서 삼베옷은 누가 입었을까?

“나는 군부(임금)에게 죄를 얻었으니 황공한 마음으로 죽는다. 너희들은 옷은 삼베옷으로 하고 염은 삼베 이불로 하며, 띠풀로 관을 덮고 달구지로 실어다 장사하여 대략 흙으로만 덮도록 하라. 나의 뜻을 어김이 없도록 하라.”

1608년 광해군 즉위년에 교리 최기남이 성혼의 원통함을 풀어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에 이와 같이 성혼의 유서가 인용됐다. 성혼은 임진왜란 시 선조가 피난 중 자신의 집 근처를 지났음에도 달려와 문안하지 않았다고 해 죄를 입었고 위 내용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에 삼베옷은 ‘죄인이 입는 옷’이라는 관념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부모를 여읜 자식이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뜻에서 삼베 상복을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 현대 민속에서 삼베 수의를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마련하는 수의로 인지해 “오죽했으면 삼베 수의랴”라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전통 수의 복원→일제잔재 청산 위한 움직임 ‘활발’

전통 출토복식을 국내 최대 규모로 소장하고 있는 단국대학교는 2016년 신형 전통수의를 개발했다.

전통수의의 발전적 계승과 장례문화 복원에 나선 단국대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최연우 교수를 비롯해 전통의상학과와 전통복식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진 15명이 삼베 수의가 일제잔재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출토복식을 고증해 1년여 끝에 신형 전통수의를 개발한 것이다.

당시 최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삼베 수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 사람들이 전통수의로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중국산까지 비싸게 유통되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에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전통수의의 발전적 계승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바쁜 현대인들이 전통 예법대로 모두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수의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꽃 장식이나 조화도 없애고 전통대로 병풍을 세우는 방식으로 개혁하는 게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한국장례협회와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김명연 국회의원이 장례문화의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우리시대 장례문화를 진단하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장은 “일제강점기 하에 유입된 왜곡된 장례문화를 확인하고 바른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 됐다”면서 “앞으로 일제잔재를 확인하고 전통을 발굴, 계승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김명연 의원 역시 “일제에 의해 왜곡된 장례 의식과 풍습을 청산하는 것이 자주독립의 정신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삼베 수의, 국화 영정···전통장례 아니었다, 일제 잔재

삼베 수의, 국화로 꾸민 영정, 상주의 팔 완장, 유족 왼쪽 가슴의 검은 리본…. 그간 전통장례 문화로 알려졌던 이같은 풍습 중 상당수가 사실 일제 식민지의 잔재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청 1층 로비서 ‘상·장례문화’ 무료 전시

전통장례법이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과정 조명

31일 서울시와 서울시설관리공단은 ‘빼앗긴 길, 한국 상·장례문화의 식민지성’을 주제로 다음달 20일까지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무료 전시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전시회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새해를 맞아 한국 장례 문화 속 일제 식민 잔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전통을 말살하고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장례문화를 훼손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실제로 상·장례문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장례법에서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수의로 사용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묘를 이장할 때 발견된 수의가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진 화려한 복색이다.

삼베옷은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상복으로 해 입었다. 삼베로 만든 전통상복은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이라 부른다.

장례식 때 영좌 주변에 꽃을 입체적으로 배치하고 단을 높게 쌓는 것도 일본에서 왔다. 한국 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수파련이라 불리는 상여에 다는 꽃이 전부다. 영좌 뒤에는 꽃대신 병풍을 친다.

이처럼 한국 전통 장례법이 일본식으로 싹 바뀐 건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을 발표하면서다. 당시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는 “생활양식 중 각종 의례는 구태가 의연하여 오히려 개선할 여지가 작지 않다”면서 “그중에 혼인·장례·제사의 형식과 관례는 지나치게 번잡하여 엄숙하여야 할 의례도 종종 자질구레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쓰게 되어 그 정신을 망각하지 아니할까 우려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의례준칙과 더불어 펴낸 ‘조선총독부 제정의 의례준칙과 그 해설의 상례’에서 “수의는 포목 등을 쓰고, 비단 등 값비싼 것을 사용하지 말라”고 썼다. 박태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연구위원은 “이는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한국의 장례문화를 훼손한 증거”라면서 “이후 일본은 ‘조선잠사통제령’을 내려 조선에서 생산된 누에고치의 대부분을 일제에 강제로 판매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유족이 다는 검은 리본, 완장도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른 방식이다. 의례준칙에는 전통상복인 굴건제복을 생략해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하고, 왼쪽 가슴에는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게 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의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한 것도 이 때다. 박태호 연구위원은 “최근엔 유족 완장이 군 계급장처럼 변질됐다”면서 “넉줄완장은 맏상주가, 석줄은 나머지 아들들이, 두줄은 사위가, 한줄은 손자·형제가 각각 차는데, 이게 마치 전통인양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정을 국화로 장식하는 방식은 일본의 상조문화와 함께 유입됐다. 장례업계 한 관계자는 “80년대 일본의 상조문화가 한국에 처음 유입됐고, 이후 한국의 장례업자들이 일본의 전문가에게 최신 꽃장식을 배워온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권을 잃으면 삶과 죽음의 정체성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해성 3·1운동100주년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은 “100년 전 그날 고종은 일제 주도의 ‘국장’으로 왜색화된 저승길을 떠났다”면서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상·장례의 식민지성’ 성찰을 시작으로, 장례문화 의식을 정립해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email protected]

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전주시, 한지수의를 사용하여 전통 장례문화 계승 및 한지산업 활성화 모색

[핸드메이커 차연정 기자] 장례식장에서 시신에게 입히는 옷을 수의(寿衣)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평상시 입던 옷이나 예복에 해당하는 옷을 수의로 사용하였다. 성종 대에 편찬한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비단과 명주, 모시, 무명 등으로 만든 옷을 수의로 사용한다고 나온다.

특히 조선 후기로 들어갈수록 비단 등으로 만든 가장 화려하고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했다고 하며 새 옷을 만드는 일도 많아졌다. 장례식을 맞아 집에서 직접 바느질 등을 통해 수의를 준비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며 우리의 고유한 장례 문화였다.

일제에 의해 탄압된 전통장례문화와 잔재로 남겨진 삼베수의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는 장례업체가 장례를 대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삼베로 만든 삼베수의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삼베수의가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원래 거칠고 무른 삼베옷은 죄인이 입는 옷이었다. 또한 부모를 여읜 상주 역시 죄인이라는 의미에서 삼베옷을 입었다. 그런데 부모의 시신을 가장 좋은 옷으로 감싼다는 효의 정신이 담긴 상례문화가 일제 이후로 삼베가 수의로 사용되면서 격하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번잡한 의례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1934년 의례준칙(仪礼准则)을 제정 및 반포하였다. 하지만 그 실체는 한국 고유의 문화와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한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 결국 이 준칙으로 인해 각종 혼례, 상례, 제례의 내용과 절차가 간소화되고 가족묘가 없어지고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또한 일제는 수의에 비싼 비단 대신 베나 무명을 쓸 것을 규정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의는 삼베로 만든 것으로 정해졌다. 1940년대에는 대표적 친일파인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삼베수의를 입어야 한다는 주장을 실기도 했다. 이렇게 일제의 잔재인 삼베수의는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물론 기존 전통만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베는 시신보다 더 빨리 썩는 재질이어서 수의로는 알맞지 않다. 아울러 기존에 고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수의로 쓰면서 고인을 존중했던 우리의 문화가 획일적으로 변질된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주시, 전통한지로 만든 수의를 사용하다

전주지역 대표 의료기관인 전북대학교병원과 예수병원이 장례 및 의료 업무에 전주에서 생산된 전통한지 제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전주시는 19일 전주시장실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조남천 전북대학교병원장, 김철승 예수병원장, 최영재 전주한지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주한지수의 및 전통한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시는 이날 협약에 따라 협약참여기관들이 한지제품 구매와 사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체계적인 행정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또한 두 의료기관은 앞으로 장례식장을 통해 일제 잔재로 알려진 삼배수의보다는 한지수의 사용을 독려키로 하여 전통한지의 쓰임새를 기존 공예품 중심에서 장례품 등 산업으로 확장시키는데 앞장서기로 했다.

생산자단체인 전주한지사업협동조합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향후 더욱 경쟁력 있고 우수한 한지수의 및 한지제품을 개발해 양질의 한지제품 제공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앞서, 전주한지사업협동조합은 신협중앙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최근 활옷형·당의형·단령형 등 한지수의 신상품을 개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전주한지수의는 전주한지장이 전통방식으로 떠서 줌치기법으로 형태를 만들며, 수의 1벌당 전지사이즈(145×75cm) 55장이 소요돼 한지수의가 활성화된다면 전주한지 판로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특히 한지를 사용하면 활옷·당의·당령 등 다양한 형태의 수의를 제작할 수 있고 삼베수의와 달리 화려한 색상과 전통문양을 표현할 수 있어 수려한 심미성이 돋보인다. 또한 매장 시에는 생분해도가 현저히 높아 친환경 장례문화를 만드는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향후에도 신협중앙회, 전주한지사업협동조합과 함께 전라북도 의료기관과 타 지역 의료기관을 방문해 친환경적이고 민족의 얼이 담긴 전주한지수의의 우수성을 알리고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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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수의는 일제잔재인가? “설득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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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예지원의 2020전통생활문화워크샵의 일환으로 기획된 ‘상장례복식’을 주제로 한 워크샵이 장충동소재 예지원에서 실시되었다. ‘수의는 어떤 옷인가’ ‘상복과상장‘ 등 주제를마련한가운데 특히 ’삼베수의는 일제의 잔재인가?‘란 주제는 우리 상장례업계의 당면한 주요 이슈였다.

관련 움직임을 보면 2017년 12월 28일부터 2018년 1월 20일까지 서울시청 로비에서 실시된 ‘빼앗긴 길, 한국 상·장례 문화의 식민지성’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있었다.

약 한 달간 진행된 전시회에 대한 보도기사를 살펴보면

”서울시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전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고인이 입었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했다. 관리는 관복(官服),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하얀 심의(深衣), 여성은 혼례복인 녹의홍상(綠衣紅裳·녹색 저고리와 다홍색 치마)을 입는 식이었다. 경제 형편에 따라 천은 비단, 명주, 무명 등을 썼다. 삼베로 수의를 만들어 고인에게 입히는 풍습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34년 ‘의례준칙’을 통해 관혼상제 같은 우리의 전통 생활양식을 일본식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는 게 전시회 주최 측의 설명이다.“ (머니투데이 2018.12.31.일자)

또 가장 최근 움직임으로는 작년 2019년 11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장례문화 속 일제잔재 청산과 우리시대의 바른장례를 위한 국회토론회”의 경우가 있다. 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자 중 한 사람인 최연우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삼베 수의’는 전통과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죄인의 옷‘으로 인식되던 삼베수의를 고인에게 입히는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정신을 피폐화시키고 잉여의 고급물자를 수탈해가려는 식민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하며, “고인에게 거친 삼베수의를 입히고 상주는 일반 옷을 입는 방식은 우리 고유의 상장례 예법과 반대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출처: 스포츠서울 20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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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삼베수의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실시된 금번 예지원 워크샵은 주제가 말해주듯 업계와 학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본 워크샵은 예지원 순남숙 원장의 학문적으로 접근한 브리핑과 관련 시연도 있었는데 업계의 뜻있는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하여 진지한 자세로 문제에 접근했다. 워크샵과 관련하여 미리 제시된 자료 ’장례문화 일제 잔재청산 연구‘ 논문의 결론에 의하면

”조선후기에 이르러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들은 주자가례가 사서인에게 적용되기 어렵다 하여 사서인의 가례 제정의 필요성을 말하였고, 습과 염에 있어서 비단의 사용을 비판하면서 포[베]의 사용을 권장하였다. 묘지에서 출토되는 조선시대의 수의나 『국조오례의』, 『사례편람』 등의 예서에서 말하는 수의는 비단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면 포[베]의 사용이 청렴과 검소함을 상징하면서 지도층에서도 사용이 증가한다.

따라서 우리의 삼베 수의는 1934 반포된 「의례준칙」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조선후기 우리 삶의 변화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상례에서의 검정색 사용 및 완장의 도입과 정착과정에 대해서도 이미 1884년과 1894년 고종의 의제개혁, 서양복의 도입과 단발령,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들어온 서양문물과 일제의 영향을 살펴보았을 때 일제의 잔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전보건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최정목교수는 ”우리의 문화가 어떤 연유에서든 수 십년 지속되면 고착화되고 그 또한 우리문화인데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현실에 맞게 발전해야 하며 고인의 존엄이 존중되고 위생적으로 장례문화가 바뀌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장사시설표준협회 김길선회장은 삼베수의의 유래와 효능 그리고 삼베수의가 일제잔재라는 것에 설득력이 부족함을 역설하면서 삼베에는 항균성, 항독성 등의 일명 마약(대마초)과같은 패틴 성분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신에 벌레나 곰팡이 같은 것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장장법에 적합한 수의 원단으로 고착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워크샵 현장을 상세히 취재한 ’예효경‘ 김익한 대표는 “35년을 수의와 함께한 경험이나 어른들 얘기를 종합해 볼 때 삼베수의를 우리가 자진해서 일제잔재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어이없는 일이고 수십 년 이어져 온 우리 대다수 국민들의 문화와 정서를 무시한 처사이며 우리 국민이 옛날에는 특히 효심이 높았기 때문에 일본이 시킨다고 부모님 수의를 하라는 대로 하는 그런 민족이 아니라”고 말하며 “현행 장법은 매장이 10%, 화장이 90%에 육박하기 때문에 삼베는 물론 한지사 인견사 등 자연섬유로 정성을 들여서 부모님 마지막 예복을 한다는 효심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대부분 냄새나고 저급한 중국산 나이론, 육수면, TC면, 저마(모시) 등등이 90% 이상 유통되는 현실에서 일제잔재 운운하는 것은 한 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장례문화에 정착되다시피한 삼베수의나 완장이 일제잔재라는 것은 설득력도 부족하지만 거론 자체 또한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 워크샵 참가자들의 대다수 의견이었다.

[기사협조 : 예효경 김익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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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2020 사단법인 예지원 상장례 복식 워크샵

내용

조선시대 수의는 평상시 입던 옷이나, 생시의 예복에 해당하는 옷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시대별로 유행하는 옷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옷의 종류, 즉 명칭과 형태가 달라졌다. 평상시에 입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수의의 옷감은 주로 명주나 비단종류가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출토 복식을 수습하면, 그 시대의 평상복을 수의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옷의 크기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8세기 후기까지는 평상시에 입던 옷을 수의로 사용하였으나, 1790년 대를 즈음하여 수의의 크기가 매우 장대해졌다. 충북대학교 소장 전주이씨(1722~1792) 수의와 이연응李沇應(1818~1879)의 수의가 그 예이다. 이를 통해, 18세기 초・중반까지 수의는 평상시에 입던 옷을 사용하거나 , 새 옷으로 수의를 만들어도 평상시의 치수 정도였지만, 18세기 후반부터는 남녀 수의를 매우 넉넉하게 큰 치수로 새로 장만하는 풍습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치수의 새 옷 수의를 만들어도 여전히 옷감은 대부분 비단으로 만들었다.

1925년에 발간된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에서는 중류 사회에서 보통으로 하는 수의를 표준으로 삼아 , 복건幅巾과 과두, 망건網巾은 공단이고, 지요[地褥]와 베개는 자주와 흑색의 공릉이며, 그 외의 옷들은 세포를 사용했으며 색상은 백색과 분홍, 옥색, 남색을 썼다고 설명했다. 수의의 색의 경우, 청은 청듸물, 홍은 잇다홍, 황은 회나무 열매, 자주는 짓치, 분홍은 여지로 물들이기가 원칙이나, 염색이 불편하므로 소색素色의 세포로 많아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베 수의는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수의를 구성하는 옷의 종류와 소재도 시대에 따라 변하였다. 2001년 사단법인 예지원과 한국출토복식연구회에서 ‘바람직한 상례절차와 수의문화의 정립을 중심으로’라는 주제 아래 여러 가지 소재의 수의를 제시하였다. 공단·명주·무명·운문사·삼베·모시 등으로 형편에 맞는 수의를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때 제시된 수의는 옷에 맞게 염색을 하였다. 공단 수의의 경우, 남자는 심의·복건·중치막·창의·바지·저고리이고, 여자는 원삼·당의·저고리 3벌·적삼과 치마이며, 남녀공용의 습구는 겹이불·천금·지요·베개·멱목·악수·오낭·버선·습신·소모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반적인 수의는 삼베로 만든 것으로, 남자는 도포·두루마기·저고리·겹바지·속저고리·속바지이고, 여자용 수의는 삼베 홑원삼·겹저고리·치마·속저고리·속바지이며, 남녀 공용의 습구로 삼베 홑천금·지요·장메(긴 줄)·악수·면포·베개·버선·오낭이었다.

2014년 현재 장례업체들에서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표준 수의로 제시하고 있는 수의는 다음과 같다. 남자 수의는 두루마기・도포・속바지・겉바지・저고리・속저고리, 여자 수의는 원삼・속바지・저고리・속저고리・속치마・치마이다. 그리고 남녀 공용의 수의 용품으로 천금(이불), 지금(요) 장매(염포), 모자, 버선, 악수, 오낭, 베개, 허리끈 등을 제시하고 있다.

2001년 경기도박물관에서 조사한 『경기민속지』에는 “수의는 보통 윤달이 든 해에 미리 만들어 두기도 하지만, 돌아가시면 바로 베를 사다가 마을 아주머니들이 상갓집 마당에서 짓는데, 염을 하기 전까지는 모두 마친다. 수의나 상복을 만들 때는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장의사를 통해 구입해 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수의는 “자식이 하는 것이며 윤달 든 해에 만들어야 탈이 없는데 망자亡者의 것은 하루에 마쳐야 탈이 없고, 다 만들면 돌아가실 이가 입어 본다고 하며, 바느질할 때는 온 박음이나 뒷바느질, 매듭을 지어도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본인이나 자식이 화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든 것은 좀이 쓸지 않도록 보자기나 고리짝에 넣고 안에 궁궁이 풀을 담아두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좀약이나 신문지를 넣어두고 있다. 또, 좀이 슬지 말라고 어른들은 칠월칠석이나 백중날에 거풍하였다.” “옷 위로 넘어다녀도 안 되고, 매듭을 지어도 안 된다.” “뒷바느질도 안 된다. 앞으로만 가야 한다.”와 같은 금기 사항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금기였다.

[추모시설] 올바른 장례문화 알아보기! 삼베 수의,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다!?

오늘 날 장례에서 흔히 사용되는 삼베 수의.

하지만 삼베 수의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올바른 장례문화 확산을 위해 서울시설공단이 들려주는 이야기!

키워드에 대한 정보 삼베 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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