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9 장 해석 |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3751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다니엘 9 장 해석 –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you.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홍융희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8,184회 및 좋아요 175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2019. 9. 10 (화) [하루 한 장]“말씀으로 깨달았나니” (단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다니엘 9장은 다니엘이 6장에서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가
사자굴에까지 끌려갔는지,
과연 무엇을 기도했는지에 대해서
숨겨진 배경을 밝히는 장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원년에
예레미야의 예언이 담긴 말씀을
읽다가 70년이면 돌아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반응하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후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신앙적 태도입니다
무조건 내 욕심과 바람만을
목청껏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신뢰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그를 사자굴에서 지키사
그의 기도가 신실함을 보이시고
다리오왕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결국 70년만에 포로에서 돌아오는
대 역사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놀라운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스크랩] 다니엘 9장 주석

다니엘 9장 주석. =====9:1.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 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

+ 여기를 클릭

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3/28/2022

View: 3224

다니엘 9장 강해(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4/21/2021

View: 1345

[다니엘 9장 – 교사용]

다니엘 9장에서 70이레의 의미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많은 부분의 성경 해석에 영향을 준다. 고려신학대학원(천안 소재) 한정건 교수의 저서 ‘종말론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2/2/2022

View: 4623

히브리어 다니엘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주님, 귀여겨들으시고 행동해 주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저의 하느님, 당신 자신을 생각하시어 그리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도성과 당신의 백성이 당신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12/7/2022

View: 4457

다니엘서연구 – 다니엘09장 – 구원의 계획과 시간표

제9과 구원의 계획과 시간표 – 다니엘서 9장 주제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 그 해석이 주어지는 9장에서도, 가브리엘이 다시 나타났고(9:21),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3agospel.com

Date Published: 4/21/2022

View: 337

다니엘서 강해 제9장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 – 네이버 블로그

다니엘 7장에도 이미 교황권의 활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어 성도들의 한을 풀어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 7:21,22, “내가 본즉 이 뿔이 …

+ 여기에 보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11/2021

View: 5900

호크마 주석, 다니엘 09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9:1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6/7/2022

View: 1039

2019/08/31(토) “다니엘 9:1-27” / 작성: 정재규

본문 다니엘 9:1-27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 어수선한 이 때에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예언을 기록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

+ 여기에 보기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8/2021

View: 9335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다니엘 9장)

다니엘 9장 요약다니엘이 본 이상은 스룹바벨성전 건축의 전후에 벌어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함축적이고 난해한 다니엘의 이상을 온전히 …

+ 여기에 표시

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8/25/2021

View: 9773

목사님, 다니엘서 9장 해석이 엇갈리는데 대해 질문드립니다.

(다니엘 9장)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1/20/2022

View: 3971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다니엘 9 장 해석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8,184회
  • Likes: 좋아요 175개
  • Date Published: 2019. 9.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K1UvDhCPt0w

[스크랩] 다니엘 9장 주석

다니엘 9장 주석

=====9:1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

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20-27절)

이 기술된다. 한편 본장은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정하였다는 점(2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원년 – 여기서 ‘다리오’는 6:1에 이미 언급되었는

바, 메대의 마지막 왕이며 고레스의 장인인 키악사레스 2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부왕 ‘아하수에로’는 곧 ‘아스투아게스'(Astyages)이다. 또한 본 구절의 ‘원년’은 다

리오의 메대 왕 즉위 원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레스에게 메대의 통치권을

위임한 뒤, 바벧론 지역만의 섭정 왕으로 재즉위한 해인 B.C. 538년(또는 537)을 가리

키는 것이다. 본 구절의 상세한 내용은 6:1 주석을 참조하라.

=====9:2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

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

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

(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

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

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

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

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3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

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

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

(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

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

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

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

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4

본격적인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현대의 많은 비평학자들은 이 기도문

의 형식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타난 기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4절-느

1:5;9:32;7/8절-스 9:7;느 9:34/14절-느 9:33/15절-느 1:10;9:10)에서 이를 포로기 이

후에 편집된 삽입구로 이해한다(Hitzig, Ewald, Berth). 그러나 그 기도 대부분의 근

간이 구약의 포로기 이전의 문서라는 점(7, 8절-대하 32:21;시 44:16;렘 7:19/9절-시

130:4/11절-대하 12:7;34:21;렘 42:18;44:6;나 1:6 등)을 고려해 볼 때, 타당성이 희

박하다. 본절은 신 7:9에 의거한 것으로 느 1:5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

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일차적 명칭들이 모두 나타나는 바, ‘여호와'(* ,

야훼)는 신실한 언약 성취자로서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 엘로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주)하나님'(* , 아도나이)은 피조 세계에 대한 절

대적인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칭

호는 당시 유대 민족이 처한 내적, 외적 상황 곧 그들의 회개의 수용과 해방의 예언

성취를 염두에 둔 다니엘의 간절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9:5

느 1:6, 7과 유사하다.

범죄하여…반역하여 – ‘범죄하여'(* , 하타)는 ‘빗나가다’란 문자적 의미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죄를, ‘패역하며'(* , 아

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완악한 심성(잠 12:8)으로서의 내적 의미의 범죄를, ‘행악하

며'(* , 라솨)는 ‘잘못 행하다’란 뜻으로 실제적 행위로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외

적 의미의 범죄를, ‘반역하여'(* , 마라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

하는 적극적 의미의 번죄를 각각 가리키는 바, 본 구절에서 다니엘은 범죄의 점층적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종류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

약의 징표로 주신 계명에서 떠났다는 의미로, 위에 언급된 모든 범죄를 포괄적으로 함

축한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떠난 사실로 귀결된

다.

=====9:6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절의 범죄에 더해서 선지자를 통해 발한 하나님의 책

망과 경고를 무시한 또 하나의 죄악을 부가한다(대하 36:16;느 9:30, 34). 이처럼 하

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들은 불신앙과 이방의 우상 숭배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

님의 진노의 심판(여기서는 열강의 침략과 포로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7절;렘 29:19).

=====9:7

공의는…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 스 9:7;렘 7:19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 , 체다카)에 근거

하여 징벌을 받게 됨을 설명한다. 즉 이방인들의 손에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Kranichfeld).

오늘날과 같아서 – 여기서 ‘오늘날’은 현재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고난의 시기, 곧 이방에서의 포로 생활을 의미한다.

유다 사람들과…이스라엘 –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은 모두 남왕국 유다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렘 4:4;11:2;17:25),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는 바, 이는 하나님의 선민되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가까운 데…먼 데 있는 자’는 모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그들이 포로되어 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이방의 장소를 가리킨다.

=====9:8-10

8, 10절은 각각 7저로가 6절의 반복으로 백성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로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수욕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9절)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긍휼과 사유)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느 9:17). 한편 ‘긍휼'(* , 라

함)의 일차적 의미는 여성의 ‘자궁'(창 49:25)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약 백성 이스

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태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에 갖는 무한한 애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9:11

백성들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필연적인 징벌이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성취적 측면에

서 15절까지 기술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는 (1) 율법을 범함(11절), (2) 불순종

(11절), (3) 회개치 않음(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맹세대로 되었사오니 – 여기서 ‘내렸으되'(* , 나타크)

는 특별히 심판적 징벌의 수여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창 19:24;렘

7:20;42:18;44:6). 한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는 율법을 범하고 불순종한 자들

에게 심판적 위협으로 주어진 레 26:14 이하와 신 28:15 이하의 내용을 지시하는 바,

본 구절은 그 저주의 맹세가 이미 자신들에게 성취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9:12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 – 여기서 ‘재판관’은 법정적 의미에서의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치리를 담당한 왕들이나 백성의 장 또는 방백

등 국가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2:10;148:11).

온 천하에…없나이다 –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 성전과 모든 성읍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여타 국가나 도시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침략에

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렬한 행위였음이 분명하다(Thomson).

=====9:13

우리의 죄악을…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에 기록된 ‘주의 진리’에 대해 혹자

는 축복의 언약이든 저주의 맹세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백성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 이미 제시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회개했어

야함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Hitzig, Thomso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좀더 희

망적인 측면에서 ‘주의 진리’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

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깨닫고, 구원의 조속한 성취를 위해 미리 회개했어야 한다

는 주장이라고 본다.

=====9:14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악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피시다가’란 뜻이다(렘 1:12;31:28;44:27).

=====9:15

강한 손으로…명성을 얻으신 – 렘 32:20, 21에 근거한 것으로 느 1:10;9:10과 유

사한 본 구절은 곧 애굽에서의 해방을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

름을 열방 중에 나타내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다니엘은 이전 선조들의 이러한 애

굽에서의 해방이 하나님의 급작스런 사역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께서 그들의 족장들과 언약 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성취란 점(출 32:13;사 63:16)을 근

거로 해서 유대 민족의 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언약의 확고한 성취를 간구하고 있

다(Delitzsch).

=====9:16

겸손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 찬양에 이어 다니엘은 이제 그 죄에 대해 시행

된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 제거와 이스라엘의 구속을 간구한다.

주의 공의를 좇으사…떠나게 하옵소서 – 여기서 ‘공의'(* , 치드코테

카)는 ‘공의들’이란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공의

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신실한

언약의 이행, 곧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지시한다

(Delitzsch, Behrman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전례대로(출애굽 등) 이스라엘의 해

방과 회복을 언약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켜 달라는 다니엘의 간구이다.

사면에 있는 자에게…받음이니이다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9:17-19

본문 기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인 바, 다니엘은 그 구원의 유일한 근

거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스스로 행하실 그 이름의 영광스런 회복(17절-‘주를 위

하여’, 18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19절-‘주 자신을 위하여’)에서 찾고 있다

(8-10절 주석 참조).

주의 얼굴 빛을…비취시옵소서 – 시 80:3, 7, 19과 유사한 문구이다. 여기서 ‘주

의 얼굴 빛’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리

키는 것이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 이는 단순히 주의 이름을 따라 사람드레게 불리워졌다

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그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렘 7장, Delitzsch).

우리의 의를…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이스라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곧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증하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여 들으소서…행하소서 – 곧 회개의 구원의 간구(‘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

서’)를 열납하시고 그에 대해 조속히 응답하시기를(‘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바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신앙 자세가 점층적인 ‘주여…소서’라는 삼중 반복 속에서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9:20,21

다니엘의 신실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다.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주는 구절로

(창 24: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Thomson).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 여기서 ‘이전 이상’은 8장에 언급된 ‘을

래 강변의 이상’을 가리키는 바, 그 때에 본 천사 가브리엘(8:15, 16)이 지금 다시 다

니엘 앞에 나타났다. 한편 8:15의 ‘사람'(* , 가베르)과는 달리 본 구절의 ‘사람’

이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이쉬'(* )로 쓰여진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그렇게 다니엘과 애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듯하다(눅 24:4;행 1:10).

빨리 날아서…내게 이르더니 – 여기서 ‘빨리…날아서'(* , 무아프

비아프)의 ‘야아프'(* )는 원어상 ‘(신속하게) 날다’란 뜻과 ‘피곤하다’, ‘지치

다’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 두 의미 중 어느 것을 취하느

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의미에 의거할 때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과

연관된 수식어로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처럼 가브리엘이 신속하게 날아서 다니엘에게

왔다는 사실로 해석된다(Havernick, Hitzig, Jacchia 등의 랍비들). 이러한 의미에 의

거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천사들이 날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후자

의 의미를 취할 때 이 말은 인간 다니엘에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까지 계속되는 기도로 말미암아 몹시 지쳐서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

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Delitzsch, Thomson, Kliefoth, Gesenius 등). 이중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여기서 ‘저녁

제사 드릴 때’의 ‘제사'(* , 민하)가 피없는 소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유

대인들이 오후 3, 4시 경에 정규적으로 드리는 소제 때의 시간을 가리킨다(민 28;4).

=====9:22

지혜와 총명 – 곧 8:16, 17의 ‘깨달아 알다’와 동일한 의미로 이 환상의 의미를 깨

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수여하신 영적 통찰력을 가리킨다.

=====9:23

네가 기도를…명령이 내렸으므로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준 21절의 ‘내가…기도할 때에’란 말보다 가일층 그 의미가 강화된 구절로, 하나

님게서는 다니엘이 동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다니엘

의 중심을 미리 아시고 그 응답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순간적

인 응답은 곧 7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연단을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

하고 재확증하기 위한 것으로 그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연민과 긍휼이 반

영된 것이다.

은총을 입은 자(* , 하무도트) –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

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귀한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알게 한다. 한편 에발트(Ewald)는 ‘지극히 사랑받는 자'(God loves you

very much, LB)로 번역한다.

=====9:24

본절에서 마지막 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

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인데,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1)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

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어 있다.

칠십 이레 – ‘이레'(* , 솨부임)는 ‘일곱’의 의미로 ‘한 주간'(week)을 가

리키기도 하나(10:2), 때로는 1년(year)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창 29:27). 따라서

여기서의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 70주간을 의미하는 바, 이를 날 수로 계산하여 하

루를 1년으로 간주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도출되는데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

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칠십 이레’는 다시 ‘7이레와 62이레'(25절 주석 참조), ‘중간 공백기'(26절 주석 참

조)와 ‘한 이레'(27절 주석 참조)로 구분된다.

허물이 마치며…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메시야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메시야 개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본 구절의 여섯 항목 중 처음

의 세 가지는 죄의 제거와 연관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

에 성취되었으며(히 9:26), 나중의 세 가지는 의(義)의 회복과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

도의 초림에 의해 이말 하나님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성취되어 가다가 그리스도의 재림

으로 완결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계시된 것이다(사 61:1-3).

=====9:25

일곱 이레 –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B.C. 458)의 포로 귀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한 490년 동안을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상징적 해석으로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된 때(B.C. 536)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고레스 원년(B.C. 536)에 왕의

칙령으로 바벧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제2성전인 스

룹바벧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B.C. 444)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

러나 여기서는 이 일롭 이레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를 지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36:22, 23;스 1:1-4;

사 44:28).

육십 이 이레 – 이 또한 세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1) 에스라 때부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그리스도의 성육신 때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신약의 교회 시대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일롭 이레에 연속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B.C. 444)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B.C. 4)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견

해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일곱 이레’의 주석과 이 육십 이 이레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영적 쇠퇴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준

비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곤란한 동안에…해자가 이룰 것이며 – 여기서 ‘곤란한 동안’은 고레스의 칙령

(B.C. 536)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성전의 중건과 성벽을 수축할

때 겪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느 4, 6장). 한편 ‘거

리'(* , 레호브)는 ‘넓은 사거리’란 뜻으로 ‘넓은 광장’을, ‘해자'(* ,

하루츠)는 성벽을 따라 그 외곽에 파놓은 도랑을 각각 의미하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의 수축이 온전하게 성공될 것임을

예시하는 말이다.

=====9:26

육십 이 이레 후에…없어질 것이며 – 이는 곧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25

절) 그리고 최종적인 ‘한 이레'(27절) 사이에 있을 중간 공백기를 가리키는 바, 이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의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의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

건과 로마의 디도(Titus, A.D. 79-81)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훼파 사건

(A.D. 70) 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별히 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는 사항이다.

장차 한 왕의…훼파하려니와 – 여기서 ‘한 왕’은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A.D.

79) 디도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구절은 그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 훼파 사

건을 가리킨다(A.D. 70).

그의 종말은…작정되었느니라 – 감람 산 강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마

24:7-22)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고통과 고난, 전쟁이 이 세대 끝까지 게속될 것이며 그

종국에는 엄청난 대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여기서의 ‘그의 종말’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징벌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극적이고 최종적

인 종말의 의미를 아니다.

=====9:27

한 이레 – 세계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대환난 시대로

적그리스도의 활동 시기를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이 7년 대환난기의 절반인 3년 반

동안 성도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나(‘그가 장차…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후반 부인 3년 반의 기간에는(7:25 주석 참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그 이레의 절반에…쏟아지리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종국에는 그리스도의재림으로 영원한 멸망의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7:21, 22 주석 참조;마 24:15;살후 2:4;계 11-13장). 한편 ‘많은 사람’은 하나

님의 택한 백성 중 특별한 참되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사 53:11, 12).

이레의 절반에 – 위의 주석에서 언급되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후반부 3년 반을 가

리킨다(계 11:2, 9).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이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제시된 안티오쿠

스 에피파네스의 기사에서 보여진 바 있다(8:11 주석 참조).

강포하여…설 것이며 – ‘강포하여 미운 물건'(* , 쉬쿠침 메

쇼멤)은 문자적으로 ‘가증한 황폐케 하는 자’란 뜻으로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유사한 표현인 바,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감란 산 강

론에 밝힌 ‘멸망을 가져오는 가증한 것'(마 24:15)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이다. 이는 곧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문장과 함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신

속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성도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박해가 이루어

질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Thomson).

또 이미 정한…쏟아지리라 – 여기서 ‘황폐케 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 자신을 가

리키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그 정한 종말의 때까지 적그리

스도가 계속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편 적그리스도에 쏟아질 하나

님의 진노는 계 16장에 언급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정한 종말’은 적그리스도의 완전

한 궤멸이 성취될 아마겟돈 전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다니엘 9 장 강해 (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 서론) 본 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는 1~19 까지의 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 , 다음은 20~27 까지의 칠십이레에 대한 예언 부분입니다 . 이 후반부인 칠십 이레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나와 있어 다 배우기는 어렵지만 , 오늘은 세대주의 , 곧 침례교도들이 주로 믿는 바에 대한 해석을 배우도록 합니다 . 가)(1-19 절 ) 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은 BC 605 년 ( 포로로 잡혀간 시점 ) 부터 BC 536 년 ( 고레스 3 년 ) 까지 약 70 년간 활동했습니다 . 즉 다니엘의 활동 시작과 마지막은 이스라엘의 포로 시작과 마지막과 거의 일치하죠 . 단 9 장의 사건이 발생한 때는 BC 538 또는 539 년으로 봅니다 . 다니엘과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이 68 년 째 접어들던 때 , 바로 그때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바벨론 포로가 70 년 만에 마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그 당시는 고레스에 의해 BC 536 년에 이스라엘의 첫 번째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으니 , 앞으로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은 2 년 남았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거의 끝나가고 회복의 여명이 비취기 시작한 때였죠 . 당시 포로 상황 속에서도 다니엘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라는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포로에서 귀환하도록 간절히 기도할 특별한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말하며 얼마든지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죠 . 그러나 예레미야서를 읽는 도중 성령님은 다니엘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개인적인 안락함이나 영달보다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 그래서 다니엘은 3 절에 보니 ,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했다 했죠 .

단 9:4-19 절에서 다니엘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3 절 ). 그는 하나님을 광대하시며 두려운 분으로 고백했고 (4 절 ).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언약을 지키고 인자를 베푸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4 절 ). 5-6 절에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포로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악임을 고합니다. (30 번이나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함 ) : ” 범죄하여- 패역하며 – 행악하며 – 반역하며 –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으며 –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 라며 겸허히 기도했습니다 . 9절에서 다니엘은 긍휼과 사유하심이 주님께 있다고 고백했고 하나님은 긍휼로써 그 죄과를 사유하실 수 있다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계속 포로 중에 있다면 이방인이 볼 때 하나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 라고 19 절에 기도하였습니다 .

다니엘의 기도는 이방 땅에서 제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 이스라엘의 절기를 지키지도 못하고 , 율법이 시행되지 못하고 , 이방인의 조소거리가 되며 , 이방 우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비극에 종지부를 찍어 주시도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통하며 드리는 간구이다 . 자신의 안락한 삶이 아니라 , 구약 하나님의 교회 ,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이다 . 나)70 이레의 예언 (20-27 절 ) 1. 성경이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과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탁월성)은 예언과 그 정확성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문자적, 역사적으로 성취된 많은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미가는(미 5:2)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16). 이사야 53장 9절에는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묻히실 것이라 예언되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7:57).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한 여러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다는 겁니다.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예언들이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주신 분이 바로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다니엘서에는 주목할 만한 여러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질 세계의 역사와 마지막 종말의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예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룩한 성을 위한 70이레의 계획’을 알려주십니다(24). 구체적으로 살펴핍니다. 2. 70 이레의 의미 먼저, 70이레 할 때, ‘이레’(week)는 7일로 계산 된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한 이레’라 함은 일주일 혹은 7년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본문에서는 7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70이레=곧 70 곱하기 7년의 시간, 즉 490년을 의미합니다. 2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 된 70 이레 기간 동안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될 것’이라는 말씀은 초림의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관계된 예언입니다. 이 땅에 장차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가 일어나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천년왕국)를 건설하심으로 완성되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다니엘에게 보여준 70이레의 환상은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490년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70이레에 대한 예언은 또 다시 7이레와 62이레, 그리고 한 이레의 대한 예언으로 구분되어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25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3. 일곱 이레 먼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갈 것”이라 하십니다(25).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은 기원전 445년 니산 월 1일에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 의해 성취됩니다. 느헤미야 2장에 보면, 니산 월에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갑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지만, 대적들의 방해로 아직 예루살렘 성도 재건하지 못한 체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려진 때(BC.445)로부터 70이레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70이레 가운데 7 이레(49년)면 BC 445년으로부터 BC 397년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BC 397년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바로 이 49년의 기간 동안 예루살렘성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4. 62 이레 7이레에서 62이레를 더하면 69이레, 즉 483년의 시간이 됩니다.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뒤 정확히 483년의 시간을 계산하면 AD 30년 니산 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나오는데, 이 날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종려주일)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여 대관식을 치루었던 이스라엘 왕들의 전통을 따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정확히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난 시점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 것”입니다(25). 하지만, 26절에서는 또 다시 이렇게 찾아온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요, 그 후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예루살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십이 이레 후에”(26) 즉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신 종료주일 사건 이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 죽으실 것과, 그 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훼파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십이 이레 사건, 즉 종료주일 사건 이후 예수님은 정확히 닷새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있은 지, 약 40년이 지난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 받게 됩니다. 개역성경에는 명확한 묘사가 빠져있지만 KJV을 보면, 26절에 등장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의 죽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 –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메시야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될 것임을 명확히 드러낸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매우 단순하고 일반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5. 한 이레 여기까지는 70이레 가운데 69이레에 대한 예언이고, 이 모든 예언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정확히 문자적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이레, 7년에 대한 예언인데, 27절에 보면 한 왕이(그가 – 적그리스도를 의미) 와서 이스라엘과 한 이레 동안 언약(평화조약)을 맺음으로 이 예언의 성취가 시작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진 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자들이 바로 이 ‘한 왕의 백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KJV에서는 이 한 왕을 ‘장차 임할 통치자(the prince that shall come)’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왕의 백성’ 혹은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은 AD 70년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군대를 의미합니다.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은 26절의 예언처럼 철저히 훼파되고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역사와 몇 가지가 좀 맞지를 않습니다. 여기엔 우리가 지난 다니엘 2장과 7장 강해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마와 유사한,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나라 정부를 암시해 줍니다. 교회시대 끝부분에 앞으로 세워질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장차 말세에‘많은 사람들’(27)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맺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만, 3년 반의 시간(이레의 절반)이 지난 뒤, 말세의 적그리스도는 성전에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우상 앞에 경배하기를 강요할 것이라 했습니다. 역사적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라 한 적은 없습니다. 또 7년 평화조약을 맺은 적도 없습니다. 고로 이 부분은 종말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 이레가 바로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심판에 관한 예언, 즉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7년 대 환난과 일치하는 예언이죠. 극심한 대 환란과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사건들이 7년 대환난 가운데 오늘 본문에 묘사된 ‘한 이레의 절반’, 즉 후반기 3년 반의 기간에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30장 7절에서는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묘사하고 있고, 다니엘 7장 25절에서는 ‘작은 뿔’이 통치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에서도 바다에서 올라온 한 짐승이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 그리고, 또한 ) 그 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 그 가 그 이레의 절반 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예루살렘의 운명을 걱정하며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주신 70이레 즉,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490년의 시간에 대한 약속 가운데, 69이레 483년에 대한 약속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머지 한 이레, 7년 대환난에 대한 약속도 문자적으로 정확히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 참고적으로 정동수 목사는 예수의 초림과 부활을 첫번째 산으로 표현하고 예수 재림을 두번째 산으로 보았으며, 첫 산과 둘째 산 사이의 계곡이 교회시대이며 유대인들에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은 산이 둘째 산이라고 했다 . 그리고 1 년을 유대달력에 근거 , 360 이로 보았다 . 이것이 매우 성경적 해석으로 보아야 한다 .)

052317 안익선 목사/ 참고 : 송영목 , 정동수 , 방월석 목사,밤중소리(끝 도표)

히브리어 다니엘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반응형

비쉬나트 아하트 레다르야웨쉬 벤 아하쉐웨로쉬 밎제라 마다이 아쉘 함메랔 알 말쿠트 카스딤

개역개정,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새번역,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가 ㉠바빌로니아 나라의 왕이 된 첫 해, / ㉠또는 ‘갈대아’

우리말성경,1 메대 사람인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왕이 돼 바벨론을 다스린 첫 해였습니다.

가톨릭성경,1 메디아족 출신으로 칼데아 나라 임금이 된,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다리우스 제일년이었다.

영어NIV,1 In the first year of Darius son of Xerxes (a Mede by descent), who was made ruler over the Babylonian kingdom–

영어NASB,1 In the first year of Darius the son of Ahasuerus, of Median descent, who was made king over the kingdom of the Chaldeans–

영어MSG,1 “Darius, son of Ahasuerus, born a Mede, became king over the land of Babylon.

영어NRSV,1 In the first year of Darius son of Ahasuerus, by birth a Mede, who became king over the realm of the Chaldeans–

헬라어구약Septuagint,1 ετους πρωτου επι δαρειου του ξερξου απο της γενεας της μηδικης οι εβασιλευσαν επι την βασιλειαν των χαλδαιων

라틴어Vulgate,1 in anno primo Darii filii Asueri de semine Medorum qui imperavit super regnum Chaldeorum

히브리어구약BHS,1 בִּשְׁנַת אַחַת לְדָרְיָוֶשׁ בֶּן־אֲחַשְׁוֵרֹושׁ מִזֶּרַע מָדָי אֲשֶׁר הָמְלַךְ עַל מַלְכוּת כַּשְׂדִּים׃

성 경: [단9:1]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20-27절)이 기술된다. 한편 본장은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정하였다는 점(2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원년 – 여기서 ‘다리오’는 6:1에 이미 언급되었는 바, 메대의 마지막 왕이며 고레스의 장인인 키악사레스 2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부왕 ‘아하수에로’는 곧 ‘아스투아게스'(Astyages)이다. 또한 본 구절의 ‘원년’은 다리오의 메대 왕 즉위 원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레스에게 메대의 통치권을 위임한 뒤, 바벨론 지역만의 섭정 왕으로 재즉위한 해인 B.C. 538년(또는 537)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 구절의 상세한 내용은 6:1 주석을 참조하라.

비쉐나트 아하트 레마르코 아니 다니엘 비노티 밧세파림 미스팔 핫솨님 아쉘 하야 데발 아도나이 엘 이르미야 한나비 레말로트 레호르보트 예루솰람 쉬브임 솨나

개역개정,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새번역,2 곧 그가 통치한 첫 해에, 나 다니엘은 거룩한 책들을 공부하면서, 주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한 상태로 있을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 ㉡렘 25:11-12; 29:10 참조

우리말성경,2 곧 그가 다스린 지 1년 되던 해에 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을 보고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연수를 정해 말씀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이 무너진 지 70년 만에 돌이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그의 통치 제일년에 나 다니엘은 성경을 펴 놓고,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채 채워야 하는 햇수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흔 해였다.

영어NIV,2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I, Daniel, understood from the Scriptures,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given to Jeremiah the prophet, that the desolation of Jerusalem would last seventy years.

영어NASB,2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I, Daniel, observed in the books the number of the years which was revealed as the word of the LORD to Jeremiah the prophet for the completion of the desolations of Jerusalem, namely, seventy years.

영어MSG,2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I, Daniel, was meditating on the Scriptures that gave,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to the prophet Jeremiah, the number of years that Jerusalem had to lie in ruins, namely, seventy.

영어NRSV,2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I, Daniel, perceived in the books the number of years that,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to the prophet Jeremiah, must be fulfilled for the devastation of Jerusalem, namely, seventy years.

헬라어구약Septuagint,2 τω πρωτω ετει της βασιλειας αυτου εγω δανιηλ διενοηθην εν ταις βιβλοις τον αριθμον των ετων οτε εγενετο προσταγμα τη γη επι ιερεμιαν τον προφητην εγειραι εις αναπληρωσιν ονειδισμου ιερουσαλημ εβδομηκοντα ετη

라틴어Vulgate,2 anno uno regni eius ego Danihel intellexi in libris numerum annorum de quo factus est sermo Domini ad Hieremiam prophetam ut conplerentur desolationes Hierusalem septuaginta anni

히브리어구약BHS,2 בִּשְׁנַת אַחַת לְמָלְכֹו אֲנִי דָּנִיֵּאל בִּינֹתִי בַּסְּפָרִים מִסְפַּר הַשָּׁנִים אֲשֶׁר הָיָה דְבַר־יְהוָה אֶל־יִרְמִיָה הַנָּבִיא לְמַלֹּאות לְחָרְבֹות יְרוּשָׁלִַם שִׁבְעִים שָׁנָה׃

성 경: [단9:2]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와에테나 엩 파나이 엘 아도나이 하엘로힘 레밬케쉬 테필라 웨타하누님 베촘 웨사크 와에펠

개역개정,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새번역,3 응답을 들으려고, 나는 금식을 하면서, 베옷을 걸치고, 재를 깔고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간구하였다.

우리말성경,3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올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린 채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리하여 나는 단식하고 자루옷을 두르고 재를 쓴 채, 기도와 간청으로 탄원하려고 주 하느님께 얼굴을 돌렸다.

영어NIV,3 So I turned to the Lord God and pleaded with him in prayer and petition, in fasting, and in sackcloth and ashes.

영어NASB,3 So I gave my attention to the Lord God to seek Him by prayer and supplications, with fasting, sackcloth, and ashes.

영어MSG,3 I turned to the Master God, asking for an answer–praying earnestly, fasting from meals, wearing rough penitential burlap, and kneeling in the ashes.

영어NRSV,3 Then I turned to the Lord God, to seek an answer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fasting and sackcloth and ashes.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εδωκα το προσωπον μου επι κυριον τον θεον ευρειν προσευχην και ελεος εν νηστειαις και σακκω και σποδω

라틴어Vulgate,3 et posui faciem meam ad Dominum Deum rogare et deprecari in ieiuniis sacco et cinere

히브리어구약BHS,3 וָאֶתְּנָה אֶת־פָּנַי אֶל־אֲדֹנָי הָאֱלֹהִים לְבַקֵּשׁ תְּפִלָּה וְתַחֲנוּנִים בְּצֹום וְשַׂק וָאֵפֶר׃

성 경: [단9:3]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 특별한 개인적, 국가적 사건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전형적인 기도 모습으로(창 37:34;삼하 1:11;에 4:1;사 3:24) 진실한 회개와 겸손의 외적 표현이다.

󰃨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 다니엘이 포로 생활 67 여년이 지나서야 일상적인 기도의 틀(6:10)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동족의 구원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일차적으로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아울러 이차적으로는 당시 국제적인 정세의 변화 곧 예루살렘을 침공했던 바벨론의 멸망과 사 44:28;45:1, 2, 13에서 이스라엘 회복의 기원을 이룰 자로 기록된 고레스가 다리오를 이어 메대와 바사의 실질적인 권좌에 오르는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 다니엘은 이와같이 말씀과 국제 정세에 비추어서 예레미야 예언의 완전한 성취가 임박했음을 알고, 구원의 전제가 되는 유대 민족의 회개와 돌이킴을 위해 강력히 중보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와에트팔라 아도나이 엘로하이 와에트왇데 와오메라 안나 아도나이 하엘 학가돌 웨한노라 쇼멜 하베리트 웨하헤세드 레오하바우 우레쇼메레 미츠오타우

개역개정,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새번역,4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아뢰었다.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주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과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말성경,4 나는 하나님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하고 고백하며 말씀드렸습니다. “여호와여! 크고 두려우신 주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여,

가톨릭성경,4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며 아뢰었다.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영어NIV,4 I prayed to the LORD my God and confessed: “O Lord, the great and awesome God, who keeps his covenant of love with all who love him and obey his commands,

영어NASB,4 And I prayed to the LORD my God and confessed and said, “Alas, O Lord, the great and awesome God, who keeps His covenant and lovingkindness for those who love Him and keep His commandments,

영어MSG,4 I poured out my heart, baring my soul to GOD, my God: “‘O Master, great and august God. You never waver in your covenant commitment, never give up on those who love you and do what you say.

영어NRSV,4 I prayed to the LORD my God and made confession, saying, “Ah, Lord, great and awesome God, keeping covenant and steadfast love with those who love you and keep your commandment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προσηυξαμην προς κυριον τον θεον και εξωμολογησαμην και ειπα ιδου κυριε συ ει ο θεος ο μεγας και ο ισχυρος και ο φοβερος τηρων την διαθηκην και το ελεος τοις αγαπωσι σε και τοις φυλασσουσι τα προσταγματα σου

라틴어Vulgate,4 et oravi Dominum Deum meum et confessus sum et dixi obsecro Domine Deus magne et terribilis custodiens pactum et misericordiam diligentibus te et custodientibus mandata tua

히브리어구약BHS,4 וָאֶתְפַּלְלָה לַיהוָה אֱלֹהַי וָאֶתְוַדֶּה וָאֹמְרָה אָנָּא אֲדֹנָי הָאֵל הַגָּדֹול וְהַנֹּורָא שֹׁמֵר הַבְּרִית וְהַחֶסֶד לְאֹהֲבָיו וּלְשֹׁמְרֵי מִצְוֹתָיו׃

성 경: [단9:4]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본격적인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현대의 많은 비평학자들은 이 기도문의 형식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타난 기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4절-느 1:5;9:32;7/8절-스 9:7;느 9:34/14절-느 9:33/15절-느 1:10;9:10)에서 이를 포로기 이후에 편집된 삽입구로 이해한다(Hitzig, Ewald, Berth). 그러나 그 기도 대부분의 근간이 구약의 포로기 이전의 문서라는 점(7, 8절-대하 32:21;시 44:16;렘 7:19/9절-시 130:4/11절-대하 12:7;34:21;렘 42:18;44:6;나 1:6 등)을 고려해 볼 때, 타당성이 희박하다. 본절은 신 7:9에 의거한 것으로 느 1:5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일차적 명칭들이 모두 나타나는 바, ‘여호와'(*, 야훼)는 신실한 언약 성취자로서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엘로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주)하나님'(*, 아도나이)은 피조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는 당시 유대 민족이 처한 내적, 외적 상황 곧 그들의 회개의 수용과 해방의 예언 성취를 염두에 둔 다니엘의 간절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하타누 웨아위누 웨히르솨누 히르솨누 우마라데누 웨소르 밈미츠오테카 우밈미쉬파테카

개역개정,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새번역,5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며, 반역하며,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우리말성경,5 우리가 죄를 지었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악하게 행동했고 주의 법과 명령을 어기고 거역했습니다.

가톨릭성경,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영어NIV,5 we have sinned and done wrong. We have been wicked and have rebelled; we have turned away from your commands and laws.

영어NASB,5 we have sinned, committed iniquity, acted wickedly, and rebelled, even turning aside from Your commandments and ordinances.

영어MSG,5 Yet we have sinned in every way imaginable. We’ve done evil things, rebelled, dodged and taken detours around your clearly marked paths.

영어NRSV,5 we have sinned and done wrong, acted wickedly and rebelled, turning aside from your commandments and ordinances.

헬라어구약Septuagint,5 ημαρτομεν ηδικησαμεν ησεβησαμεν και απεστημεν και παρεβημεν τας εντολας σου και τα κριματα σου

라틴어Vulgate,5 peccavimus inique fecimus impie egimus et recessimus et declinavimus a mandatis tuis ac iudiciis

히브리어구약BHS,5 חָטָאנוּ וְעָוִינוּ [כ= וְהִרְשַׁעְנוּ] [ק= הִרְשַׁעְנוּ] וּמָרָדְנוּ וְסֹור מִמִּצְוֹתֶךָ וּמִמִּשְׁפָּטֶיךָ׃

성 경: [단9:5]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느 1:6, 7과 유사하다.

󰃨 범죄하여…반역하여 – ‘범죄하여'(*, 하타)는 ‘빗나가다’란 문자적 의미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죄를, ‘패역하며'(*, 아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완악한 심성(잠 12:8)으로서의 내적 의미의 범죄를, ‘행악하며'(*, 라솨)는 ‘잘못 행하다’란 뜻으로 실제적 행위로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외적 의미의 범죄를, ‘반역하여'(*, 마라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하는 적극적 의미의 번죄를 각각 가리키는 바, 본 구절에서 다니엘은 범죄의 점층적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종류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다.

󰃨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징표로 주신 계명에서 떠났다는 의미로, 위에 언급된 모든 범죄를 포괄적으로 함축한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떠난 사실로 귀결된다.

웨로 솨마누 엘 아바데카 한네비임 아쉘 딥베루 베쉬메카 엘 멜라케누 사레누 와아보테누 웨엘 콜 암 하아레츠

개역개정,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새번역,6 우리는,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성경,6 또 우리가 주의 종 예언자들이 우리 민족의 여러 왕과 귀족들과 조상들과 온 백성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씀한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영어NIV,6 We have not listened to your servants the prophets, who spoke in your name to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fathers, and to all the people of the land.

영어NASB,6 “Moreover, we have not listened to Your servants the prophets, who spoke in Your name to our kings, our princes, our fathers, and all the people of the land.

영어MSG,6 We’ve turned a deaf ear to your servants the prophets, who preached your Word to our kings and leaders, our parents, and all the people in the land.

영어NRSV,6 We have not listened to your servants the prophets, who spoke in your name to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ancestors, and to all the people of the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ουκ ηκουσαμεν των παιδων σου των προφητων α ελαλησαν επι τω ονοματι σου επι τους βασιλεις ημων και δυναστας ημων και πατερας ημων και παντι εθνει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6 non oboedivimus servis tuis prophetis qui locuti sunt in nomine tuo regibus nostris principibus nostris patribus nostris omnique populo terrae

히브리어구약BHS,6 וְלֹא שָׁמַעְנוּ אֶל־עֲבָדֶיךָ הַנְּבִיאִים אֲשֶׁר דִּבְּרוּ בְּשִׁמְךָ אֶל־מְלָכֵינוּ שָׂרֵינוּ וַאֲבֹתֵינוּ וְאֶל כָּל־עַם הָאָרֶץ׃

성 경: [단9:6]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절의 범죄에 더해서 선지자를 통해 발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무시한 또 하나의 죄악을 부가한다(대하 36:16;느 9:30, 3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들은 불신앙과 이방의 우상 숭배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여기서는 열강의 침략과 포로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7절;렘 29:19).

레카 아도나이 핯체다카 웨라누 보쉐트 하파님 카욤 핮제 레이쉬 예후다 우레요쉬베 예루솰람 우레콜 이스라엘 핰키로빔 웨하레호킴 베콜 하아라초트 아쉘 힏다흐탐 솸 베마알람 아쉘 마알루 바크

개역개정,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새번역,7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처럼 낯뜨거운 수치를 당합니다. 유다에 사는 사람이나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이나, 가까운 데나 먼 데, 곧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흩어져 사는 사람이, 주님께서 쫓아내신 그 모든 땅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7 주여, 의로움은 주께 있으며 우리에게는 오늘날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과 각 나라로 쫓겨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사람,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부끄러움을 당할 뿐입니다. 그들은 주를 거역하며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주께서 각 나라로 쫓아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어NIV,7 “Lord, you are righteous, but this day we are covered with shame–the men of Judah and people of Jerusalem and all Israel, both near and far, in all the countries where you have scattered us because of our unfaithfulness to you.

영어NASB,7 “Righteousness belongs to You, O Lord, but to us open shame, as it is this day– to the men of Judah,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nd all Israel, those who are nearby and those who are far away in all the countries to which You have driven them, because of their unfaithful deeds which they have committed against You.

영어MSG,7 You have done everything right, Master, but all we have to show for our lives is guilt and shame, the whole lot of us–people of Judah, citizens of Jerusalem, Israel at home and Israel in exile in all the places we’ve been banished to because of our betrayal of you.

영어NRSV,7 “Righteousness is on your side, O Lord, but open shame, as at this day, falls on us, the people of Judah,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nd all Israel, those who are near and those who are far away, in all the lands to which you have driven them, because of the treachery that they have committed against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7 σοι κυριε η δικαιοσυνη και ημιν η αισχυνη του προσωπου κατα την ημεραν ταυτην ανθρωποις ιουδα και καθημενοις ε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παντι τω λαω ισραηλ τω εγγιστα και τω απωτερω εν πασαις ταις χωραις εις ας διεσκορπισας αυτους εκει εν τη πλημμελεια η επλημμελησαν εναντ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7 tibi Domine iustitia nobis autem confusio faciei sicut est hodie viro Iuda et habitatoribus Hierusalem et omni Israhel his qui prope sunt et his qui procul in universis terris ad quas eiecisti eos propter iniquitates eorum in quibus peccaverunt in te

히브리어구약BHS,7 לְךָ אֲדֹנָי הַצְּדָקָה וְלָנוּ בֹּשֶׁת הַפָּנִים כַּיֹּום הַזֶּה לְאִישׁ יְהוּדָה וּלְיֹושְׁבֵי יְרוּשָׁלִַם וּלְכָל־יִשְׂרָאֵל הַקְּרֹבִים וְהָרְחֹקִים בְּכָל־הָאֲרָצֹות אֲשֶׁר הִדַּחְתָּם שָׁם בְּמַעֲלָם אֲשֶׁר מָעֲלוּ־בָךְ׃

성 경: [단9:7]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공의는…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 스 9:7;렘 7:19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 체다카)에 근거하여 징벌을 받게 됨을 설명한다. 즉 이방인들의 손에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Kranichfeld).

󰃨 오늘날과 같아서 – 여기서 ‘오늘날’은 현재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고난의 시기, 곧 이방에서의 포로 생활을 의미한다.

󰃨 유다 사람들과…이스라엘 –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은 모두 남왕국 유다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렘 4:4;11:2;17:25),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는 바, 이는 하나님의 선민되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가까운 데…먼 데 있는 자’는 모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그들이 포로되어 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이방의 장소를 가리킨다.

아도나이 라누 보쉐트 하파님 리멜라케누 레사레누 웨라아보테누 아쉘 하타누 라크

개역개정,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새번역,8 주님, 우리와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이 낯뜨거운 수치를 당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8 여호와여, 우리가 부끄러움과 욕을 당하고 우리 왕들과 귀족들과 조상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8 O LORD, we and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fathers are covered with shame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영어NASB,8 “Open shame belongs to us, O Lord, to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fathers,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영어MSG,8 Oh yes, GOD, we’ve been exposed in our shame, all of us–our kings, leaders, parents–before the whole world. And deservedly so, because of our sin.

영어NRSV,8 Open shame, O LORD, falls on us, our kings, our officials, and our ancestors,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8 δεσποτα ημιν η αισχυνη του προσωπου και τοις βασιλευσιν ημων και δυνασταις και τοις πατρασιν ημων οτι ημαρτομεν σοι

라틴어Vulgate,8 Domine nobis confusio faciei regibus nostris principibus nostris et patribus nostris qui peccaverunt

히브리어구약BHS,8 יְהוָה לָנוּ בֹּשֶׁת הַפָּנִים לִמְלָכֵינוּ לְשָׂרֵינוּ וְלַאֲבֹתֵינוּ אֲשֶׁר חָטָאנוּ לָךְ׃

성 경: [단9:8-10]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8, 10절은 각각 7저로가 6절의 반복으로 백성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로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수욕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9절)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긍휼과 사유)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느 9:17). 한편 ‘긍휼'(*, 라함)의 일차적 의미는 여성의 ‘자궁'(창 49:25)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태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에 갖는 무한한 애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아도나이 엘로헤누 하라하밈 웨핫세리호트 키 마라데누 보

개역개정,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새번역,9 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9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지만 우리는 주께 반역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영어NIV,9 The Lord our God is merciful and forgiving, even though we have rebelled against him;

영어NASB,9 “To the Lord our God belong compassion and forgiveness, for we have rebelled against Him;

영어MSG,9 “‘Compassion is our only hope, the compassion of you, the Master, our God, since in our rebellion we’ve forfeited our rights.

영어NRSV,9 To the Lord our God belong mercy and forgiveness, for we have rebelled against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9 τω κυριω η δικαιοσυνη και το ελεος οτι απεστημεν απο σου

라틴어Vulgate,9 tibi autem Domino Deo nostro misericordia et propitiatio quia recessimus a te

히브리어구약BHS,9 לַאדֹנָי אֱלֹהֵינוּ הָרַחֲמִים וְהַסְּלִחֹות כִּי מָרַדְנוּ בֹּו׃

웨로 솨마누 베콜 아도나이 엘로헤누 랄레케트 베토로타우 아쉘 나탄 레파네누 베야드 아바다우 한네비임

개역개정,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새번역,10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율법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성경,10 우리는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영어NIV,10 we have not obeyed the LORD our God or kept the laws he gave us through his servants the prophets.

영어NASB,10 nor have we obeyed the voice of the LORD our God, to walk in His teachings which He set before us through His servants the prophets.

영어MSG,10 We paid no attention to you when you told us how to live, the clear teaching that came through your servants the prophets.

영어NRSV,10 and have not obeyed the voice of the LORD our God by following his laws, which he set before us by his servants the prophets.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ουκ ηκουσαμεν της φωνης κυριου του θεου ημων κατακολουθησαι τω νομω σου ω εδωκας ενωπιον μωση και ημων δια των παιδων σου των προφητων

라틴어Vulgate,10 et non audivimus vocem Domini Dei nostri ut ambularemus in lege eius quam posuit nobis per servos suos prophetas

히브리어구약BHS,10 וְלֹא שָׁמַעְנוּ בְּקֹול יְהוָה אֱלֹהֵינוּ לָלֶכֶת בְּתֹורֹתָיו אֲשֶׁר נָתַן לְפָנֵינוּ בְּיַד עֲבָדָיו הַנְּבִיאִים׃

웨콜 이스라엘 아베루 엩 토라테카 웨소르 레비레티 쉐모아 베콜레카 왙팉타크 아레누 하아라 웨핫쉐부아 아쉘 케투바 베토라트 모쉐 에베드 하엘로힘 키 하타누 로

개역개정,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새번역,11 참으로 온 이스라엘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율법을 어기고 벗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벌과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주의 목소리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우리는 주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11 온 이스라엘은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율법을 어기고 그것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쓰인 저주와 맹세가 저희에게 쏟아졌습니다. 저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1 All Israel has transgressed your law and turned away, refusing to obey you. “Therefore the curses and sworn judgment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e servant of God, have been poured out on us,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영어NASB,11 “Indeed all Israel has transgressed Your law and turned aside, not obeying Your voice; so the curse has been poured out on us, along with the oath which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e servant of God, for we have sinned against Him.

영어MSG,11 All of us in Israel ignored what you said. We defied your instructions and did what we pleased. And now we’re paying for it: The solemn curse written out plainly in the revelation to God’s servant Moses is now doing its work among us, the wages of our sin against you.

영어NRSV,11 “All Israel has transgressed your law and turned aside, refusing to obey your voice. So the curse and the oath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e servant of God, have been poured out upon us,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πας ισραηλ εγκατελιπε τον νομον σου και απεστησαν του μη ακουσαι της φωνης σου και επηλθεν εφ’ ημας η καταρα και ο ορκος ο γεγραμμενος εν τω νομω μωση παιδος του θεου οτι ημαρτομ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1 et omnis Israhel praevaricati sunt legem tuam et declinaverunt ne audirent vocem tuam et stillavit super nos maledictio et detestatio quae scripta est in libro Mosi servi Dei quia peccavimus ei

히브리어구약BHS,11 וְכָל־יִשְׂרָאֵל עָבְרוּ אֶת־תֹּורָתֶךָ וְסֹור לְבִלְתִּי שְׁמֹועַ בְּקֹלֶךָ וַתִּתַּךְ עָלֵינוּ הָאָלָה וְהַשְּׁבֻעָה אֲשֶׁר כְּתוּבָה בְּתֹורַת מֹשֶׁה עֶבֶד־הָאֱלֹהִים כִּי חָטָאנוּ לֹו׃

성 경: [단9:11]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백성들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필연적인 징벌이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성취적 측면에서 15절까지 기술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는 (1) 율법을 범함(11절), (2) 불순종(11절), (3) 회개치 않음(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이 저주가 우리에게…맹세대로 되었사오니 – 여기서 ‘내렸으되'(*, 나타크)는 특별히 심판적 징벌의 수여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창 19:24;렘 7:20;42:18;44:6). 한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는 율법을 범하고 불순종한 자들에게 심판적 위협으로 주어진 레 26:14 이하와 신 28:15 이하의 내용을 지시하는 바, 본 구절은 그 저주의 맹세가 이미 자신들에게 성취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와야켐 엩 데바라우 데바로 아쉘 딥벨 알레누 웨알 쇼프테누 아쉘 쉐파투누 레하비 아레누 라아 게돌라 아쉘 로 네에스타 타하트 콜 핫솨마임 카아쉘 네에스타 비루솰라임

개역개정,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새번역,12 주님은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셔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내린 것과 같은 재앙은 하늘 아래 그 어느 곳에서도 없던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2 주께서는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우리와 우리 지도자들을 벌하셔서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증명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12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큰 불행을 내리시어, 저희와 저희를 다스린 통치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난 것과 같이 그렇게 큰 불행은 온 천하 어디에서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영어NIV,12 You have fulfilled the words spoken against us and against our rulers by bringing upon us great disaster. Under the whole heaven nothing has ever been done like what has been done to Jerusalem.

영어NASB,12 “Thus He has confirmed His words which He had spoken against us and against our rulers who ruled us, to bring on us great calamity; for under the whole heaven there has not been done anything like what was done to Jerusalem.

영어MSG,12 You did to us and our rulers what you said you would do: You brought this catastrophic disaster on us, the worst disaster on record–and in Jerusalem!

영어NRSV,12 He has confirmed his words, which he spoke against us and against our rulers, by bringing upon us a calamity so great that what has been done against Jerusalem has never before been done under the whole heaven.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στησεν ημιν τα προσταγματα αυτου οσα ελαλησεν εφ’ ημας και επι τους κριτας ημων οσα εκρινας ημιν επαγαγειν εφ’ ημας κακα μεγαλα οια ουκ εγενηθη υπο τον ουρανον καθοτι εγενηθη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12 et statuit sermones suos quos locutus est super nos et super principes nostros qui iudicaverunt nos ut superducerent in nos malum magnum quale numquam fuit sub omni caelo secundum quod factum est in Hierusalem

히브리어구약BHS,12 וַיָּקֶם אֶת־[כ= דְּבָרָיו] [ק= דְּבָרֹו] אֲשֶׁר־דִּבֶּר עָלֵינוּ וְעַל שֹׁפְטֵינוּ אֲשֶׁר שְׁפָטוּנוּ לְהָבִיא עָלֵינוּ רָעָה גְדֹלָה אֲשֶׁר לֹא־נֶעֶשְׂתָה תַּחַת כָּל־הַשָּׁמַיִם כַּאֲשֶׁר נֶעֶשְׂתָה בִּירוּשָׁלִָם׃

성 경: [단9:12]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 – 여기서 ‘재판관’은 법정적 의미에서의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치리를 담당한 왕들이나 백성의 장 또는 방백 등 국가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2:10;148:11).

󰃨 온 천하에…없나이다 –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 성전과 모든 성읍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여타 국가나 도시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침략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렬한 행위였음이 분명하다(Thomson).

카아쉘 카툽 베토라트 모쉐 엩 콜 하라아 하조트 바아 아레누 웨로 힐리누 엩 페네이 아도나이 엘로헤누 라슈브 메아오네누 우레하스킬 바아미테카

개역개정,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새번역,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우리에게 이 모든 재앙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서 주의 진리를 알기 위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은총을 내려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3 모세의 율법에 쓰인 대로 이 모든 불행이 저희에게 닥쳤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저희의 죄악에서 돌아서지도 않고 당신의 성실하심을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주 저희 하느님께 호의를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영어NIV,13 Just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all this disaster has come upon us, yet we have not sought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by turning from our sins and giving attention to your truth.

영어NASB,1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all this calamity has come on us; yet we have not sought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by turning from our iniquity and giving attention to Your truth.

영어MSG,13 “‘Just as written in God’s revelation to Moses, the catastrophe was total. Nothing was held back. We kept at our sinning, never giving you a second thought, oblivious to your clear warning,

영어NRSV,13 Just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all this calamity has come upon us. We did not entreat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turning from our iniquities and reflecting on his fidelity.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τα τα γεγραμμενα εν διαθηκη μωση παντα τα κακα επηλθεν ημιν και ουκ εξεζητησαμεν το προσωπον κυριου θεου ημων αποστηναι απο των αμαρτιων ημων και διανοηθηναι την δικαιοσυνην σου κυριε

라틴어Vulgate,13 sicut scriptum est in lege Mosi omne malum hoc venit super nos et non rogavimus faciem tuam Domine Deus noster ut reverteremur ab iniquitatibus nostris et cogitaremus veritatem tuam

히브리어구약BHS,13 כַּאֲשֶׁר כָּתוּב בְּתֹורַת מֹשֶׁה אֵת כָּל־הָרָעָה הַזֹּאת בָּאָה עָלֵינוּ וְלֹא־חִלִּינוּ אֶת־פְּנֵי יְהוָה אֱלֹהֵינוּ לָשׁוּב מֵעֲוֹנֵנוּ וּלְהַשְׂכִּיל בַּאֲמִתֶּךָ׃

성 경: [단9:13]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우리의 죄악을…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에 기록된 ‘주의 진리’에 대해 혹자는 축복의 언약이든 저주의 맹세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백성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 이미 제시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회개했어야함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Hitzig, Thomso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좀더 희망적인 측면에서 ‘주의 진리’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깨닫고, 구원의 조속한 성취를 위해 미리 회개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본다.

와이쉬코드 아도나이 알 하라아 와예비에하 아레누 키 차디크 아도나이 엘로헤누 알 콜 마아사우 아쉘 아사 웨로 솨마누 베코로

개역개정,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새번역,14 주님께서 재앙을 간직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신 것은, 주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우신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리말성경,14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 재앙을 준비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롭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4 주님께서는 그 불행을 간수하셨다가 저희에게 내리셨습니다. 정녕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하시는 일마다 의로우십니다. 그런데 저희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영어NIV,14 The LORD did not hesitate to bring the disaster upon us, for the LORD our God is righteous in everything he does; yet we have not obeyed him.

영어NASB,14 “Therefore, the LORD has kept the calamity in store and brought it on us; for the LORD our God is righteous with respect to all His deeds which He has done, but we have not obeyed His voice.

영어MSG,14 and so you had no choice but to let the disaster loose on us in full force. You, our GOD, had a perfect right to do this since we persistently and defiantly ignored you.

영어NRSV,14 So the LORD kept watch over this calamity until he brought it upon us. Indeed, the LORD our God is right in all that he has done; for we have disobeyed his voice.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ηγρυπνησε κυριος ο θεος επι τα κακα και επηγαγεν εφ’ ημας οτι δικαιος κυριος ο θεος ημων επι παντα οσα αν ποιηση και ουκ ηκουσαμεν της φωνη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4 et vigilavit Dominus et adduxit eam super nos iustus Dominus Deus noster in omnibus operibus suis quae fecit non enim audivimus vocem eius

히브리어구약BHS,14 וַיִּשְׁקֹד יְהוָה עַל־הָרָעָה וַיְבִיאֶהָ עָלֵינוּ כִּי־צַדִּיק יְהוָה אֱלֹהֵינוּ עַל־כָּל־מַעֲשָׂיו אֲשֶׁר עָשָׂה וְלֹא שָׁמַעְנוּ בְּקֹלֹו׃

성 경: [단9:14]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악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피시다가’란 뜻이다(렘 1:12;31:28;44:27).

웨앝타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쉘 호체타 엩 암메카 메에레츠 미츠라임 베야드 하자카 왙타아스 레카 쉠 카욤 핮제 하타누 라솨누

개역개정,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새번역,15 강한 손으로 주님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으신 주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짓고,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말성경,15 주 우리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을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오늘날같이 이름이 유명해지신 주여,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을 저질렀습니다.

가톨릭성경,15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당신께서는 강한 손으로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오늘날까지도 명성을 떨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짓고 악을 저질렀습니다.

영어NIV,15 “Now, O Lord our God, who brought your people out of Egypt with a mighty hand and who made for yourself a name that endures to this day, we have sinned, we have done wrong.

영어NASB,15 “And now, O Lord our God, who have brought Your people out of the land of Egypt with a mighty hand and have made a name for Yourself, as it is this day– we have sinned, we have been wicked.

영어MSG,15 “‘Master, you are our God, for you delivered your people from the land of Egypt in a show of power–people are still talking about it! We confess that we have sinned, that we have lived bad lives.

영어NRSV,15 “And now, O Lord our God, who brought your people out of the land of Egypt with a mighty hand and made your name renowned even to this day–we have sinned, we have done wickedly.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νυν δεσποτα κυριε ο θεος ημων ο εξαγαγων τον λαον σου εξ αιγυπτου τω βραχιονι σου τω υψηλω και εποιησας σεαυτω ονομα κατα την ημεραν ταυτην ημαρτομεν ηγνοηκαμεν

라틴어Vulgate,15 et nunc Domine Deus noster qui eduxisti populum tuum de terra Aegypti in manu forti et fecisti tibi nomen secundum diem hanc peccavimus iniquitatem fecimus

히브리어구약BHS,15 וְעַתָּה אֲדֹנָי אֱלֹהֵינוּ אֲשֶׁר הֹוצֵאתָ אֶת־עַמְּךָ מֵאֶרֶץ מִצְרַיִם בְּיָד חֲזָקָה וַתַּעַשׂ־לְךָ שֵׁם כַּיֹּום הַזֶּה חָטָאנוּ רָשָׁעְנוּ׃

성 경: [단9:15]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강한 손으로…명성을 얻으신 – 렘 32:20, 21에 근거한 것으로 느 1:10;9:10과 유사한 본 구절은 곧 애굽에서의 해방을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열방 중에 나타내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다니엘은 이전 선조들의 이러한 애굽에서의 해방이 하나님의 급작스런 사역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족장들과 언약 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성취란 점(출 32:13;사 63:16)을 근거로 해서 유대 민족의 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언약의 확고한 성취를 간구하고 있다(Delitzsch).

아도나이 케콜 치드코테카 야숍 나 아페카 와하마테카 메이레카 예루솰람 할 카드쉐카 키 바하타에누 우바아오노트 아보테누 예루솰람 웨암메카 레헤르파 레콜 세비보테누

개역개정,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새번역,16 주님, 주님께서 지난 날에 우리를 구하여 주셨으니, 이제 주님의 성 예루살렘 곧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부터 주님의 분노를 떠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의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과 주님의 백성이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에게 멸시를 받습니다.

우리말성경,16 주여, 내가 기도합니다. 주의 모든 공의에 따라서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 내린 주의 노하심을 거둬 주소서.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인해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들이 우리 주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습니다.

가톨릭성경,16 주님, 당신의 그 모든 의로운 업적을 보시어, 당신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분노와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희의 죄와 저희 조상들의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과 당신의 백성이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수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어NIV,16 O Lord, in keeping with all your righteous acts, turn away your anger and your wrath from Jerusalem, your city, your holy hill. Our sins and the iniquities of our fathers have made Jerusalem and your people an object of scorn to all those around us.

영어NASB,16 “O Lord, in accordance with all Your righteous acts, let now Your anger and Your wrath turn away from Your city Jerusalem, Your holy mountain; for because of our sins and the iniquities of our fathers, Jerusalem and Your people have become a reproach to all those around us.

영어MSG,16 Following the lines of what you have always done in setting things right, setting people right, please stop being so angry with Jerusalem, your very own city, your holy mountain. We know it’s our fault that this has happened, all because of our sins and our parents’ sins, and now we’re an embarrassment to everyone around us. We’re a blot on the neighborhood.

영어NRSV,16 O Lord, in view of all your righteous acts, let your anger and wrath, we pray, turn away from your city Jerusalem, your holy mountain; because our sins and the iniquities of our ancestors, Jerusalem and your people have become a disgrace among all our neighbors.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δεσποτα κατα την δικαιοσυνην σου αποστραφητω ο θυμος σου και η οργη σου απο της πολεως σου ιερουσαλημ ορους του αγιου σου οτι εν ταις αμαρτιαις ημων και εν ταις αγνοιαις των πατερων ημω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ο δημος σου κυριε εις ονειδισμον εν πασι τοις περικυκλω ημων

라틴어Vulgate,16 Domine in omnem iustitiam tuam avertatur obsecro ira tua et furor tuus a civitate tua Hierusalem et monte sancto tuo propter peccata enim nostra et iniquitates patrum nostrorum Hierusalem et populus tuus in obprobrium sunt omnibus per circuitum nostrum

히브리어구약BHS,16 אֲדֹנָי כְּכָל־צִדְקֹתֶךָ יָשָׁב־נָא אַפְּךָ וַחֲמָתְךָ מֵעִירְךָ יְרוּשָׁלִַם הַר־קָדְשֶׁךָ כִּי בַחֲטָאֵינוּ וּבַעֲוֹנֹות אֲבֹתֵינוּ יְרוּשָׁלִַם וְעַמְּךָ לְחֶרְפָּה לְכָל־סְבִיבֹתֵינוּ׃

성 경: [단9:16]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겸손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 찬양에 이어 다니엘은 이제 그 죄에 대해 시행된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 제거와 이스라엘의 구속을 간구한다.

󰃨 주의 공의를 좇으사…떠나게 하옵소서 – 여기서 ‘공의'(*, 치드코테카)는 ‘공의들’이란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신실한 언약의 이행, 곧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지시한다(Delitzsch, Behrman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전례대로(출애굽 등) 이스라엘의 해방과 회복을 언약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켜 달라는 다니엘의 간구이다.

󰃨 사면에 있는 자에게…받음이니이다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웨앝타 쉐마 엘로헤누 엘 테필라트 압데카 웨엘 타하누나우 웨하에르 파네카 알 미크다쉐카 핫솨멤 레마안 아도나이

개역개정,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새번역,17 우리의 하나님, 이제 주님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 주십시오. 무너진 주님의 성전을 복구하여 주십시오. 성전을 복구하셔서,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17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의 기도와 간절함을 들어주십시오. 하나님 자신을 위해 무너진 주의 성전에 주의 얼굴빛을 비춰 다시 세워 주십시오.

가톨릭성경,17 그러니 이제 저희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주님, 당신 자신을 생각하시어 황폐한 당신의 성소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십시오.

영어NIV,17 “Now, our God, hear the prayers and petitions of your servant. For your sake, O Lord, look with favor on your desolate sanctuary.

영어NASB,17 “So now, our God, listen to the prayer of Your servant and to his supplications, and for Your sake, O Lord, let Your face shine on Your desolate sanctuary.

영어MSG,17 So listen, God, to this determined prayer of your servant. Have mercy on your ruined Sanctuary. Act out of who you are, not out of what we are.

영어NRSV,17 Now therefore, O our God, listen to the prayer of your servant and to his supplication, and for your own sake, Lord, let your face shine upon your desolated sanctuary.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νυν επακουσον δεσποτα της προσευχης του παιδος σου και επι τας δεησεις μου και επιβλεψατω το προσωπον σου επι το ορος το αγιον σου το ερημον ενεκεν των δουλων σου δεσποτα

라틴어Vulgate,17 nunc ergo exaudi Deus noster orationem servi tui et preces eius et ostende faciem tuam super sanctuarium tuum quod desertum est propter temet ipsum

히브리어구약BHS,17 וְעַתָּה שְׁמַע אֱלֹהֵינוּ אֶל־תְּפִלַּת עַבְדְּךָ וְאֶל־תַּחֲנוּנָיו וְהָאֵר פָּנֶיךָ עַל־מִקְדָּשְׁךָ הַשָּׁםֵם לְמַעַן אֲדֹנָי׃

성 경: [단9:17-19]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다니엘의 중보 기도]

본문 기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인 바, 다니엘은 그 구원의 유일한 근거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스스로 행하실 그 이름의 영광스런 회복(17절-‘주를 위하여’, 18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19절-‘주 자신을 위하여’)에서 찾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 주의 얼굴 빛을…비취시옵소서 – 시 80:3, 7, 19과 유사한 문구이다. 여기서 ‘주의 얼굴 빛’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다(9절).

󰃨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 이는 단순히 주의 이름을 따라 사람드레게 불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그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렘 7장, Delitzsch).

󰃨 우리의 의를…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이스라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곧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증하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 주여 들으소서…행하소서 – 곧 회개의 구원의 간구(‘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를 열납하시고 그에 대해 조속히 응답하시기를(‘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바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신앙 자세가 점층적인 ‘주여…소서’라는 삼중 반복 속에서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핱테 엘로하이 오즈네카 우솨마 피크하흐 페카흐 에네카 우레에 쇼메모테누 웨하일 아쉘 니크라 쉼카 아레하 키 로 알 치드코테누 아나흐누 맢필림 타하누네누 레파네카 키 알 라하메카 하라빔

개역개정,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새번역,18 나의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눈을 크게 뜨시고, 우리가 황폐해진 것과 주님의 이름을 빛내던 이 도성의 고통을 굽어보아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고, 주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8 내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떠서 보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성이 무너지고 우리가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잘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께서 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8 저의 하느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눈을 뜨시어 저희의 폐허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도성을 보십시오. 저희가 당신 앞에 간청을 올리는 것은 저희의 어떤 의로운 업적이 아니라, 당신의 크신 자비 때문입니다.

영어NIV,18 Give ear, O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the desolation of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do not make requests of you because we are righteous, but because of your great mercy.

영어NASB,18 “O my God, incline Your ear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our desolations and the city which is called by Your name; for we are not presenting our supplications before You on account of any merits of our own, but on account of Your great compassion.

영어MSG,18 “‘Turn your ears our way, God, and listen. Open your eyes and take a long look at our ruined city, this city named after you. We know that we don’t deserve a hearing from you. Our appeal is to your compassion. This prayer is our last and only hope:

영어NRSV,18 Incline your ear, O my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look at our desolation and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do not present our supplication before you on the ground of our righteousness, but on the ground of your great mercies.

헬라어구약Septuagint,18 προσχες κυριε το ους σου και επακουσον μου ανοιξον τους οφθαλμους σου και ιδε την ερημωσιν ημων και της πολεως σου εφ’ ης επεκληθη το ονομα σου επ’ αυτης ου γαρ επι ταις δικαιοσυναις ημων ημεις δεομεθα εν ταις προσευχαις ημων ενωπιον σου αλλα δια το σον ελεος

라틴어Vulgate,18 inclina Deus meus aurem tuam et audi aperi oculos tuos et vide desolationem nostram et civitatem super quam invocatum est nomen tuum neque enim in iustificationibus nostris prosternimus preces ante faciem tuam sed in miserationibus tuis multis

히브리어구약BHS,18 הַטֵּה אֱלֹהַי אָזְנְךָ וּשֲׁמָע [כ= פִּקְחָה] [ק= פְּקַח] עֵינֶיךָ וּרְאֵה שֹׁמְמֹתֵינוּ וְהָעִיר אֲשֶׁר־נִקְרָא שִׁמְךָ עָלֶיהָ כִּי לֹא עַל־צִדְקֹתֵינוּ אֲנַחְנוּ מַפִּילִים תַּחֲנוּנֵינוּ לְפָנֶיךָ כִּי עַל־רַחֲמֶיךָ הָרַבִּים׃

아도나이 쉐마아 아도나이 셀라하 아도나이 하카쉬바 와아세 알 테아하르 레마아네카 엘로하이 키 쉼카 니크라 알 이레카 웨알 암메카

개역개정,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새번역,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만민이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니, 지체하지 마십시오. 이 도성과 이 백성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9 주여, 들어주십시오! 주여, 용서해 주십시오! 주여, 들으시고 이뤄 주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해 미루지 마십시오. 그곳은 주의 성이며 이 사람들은 주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귀여겨들으시고 행동해 주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저의 하느님, 당신 자신을 생각하시어 그리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도성과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9 O Lord, listen! O Lord, forgive! O Lord, hear and act! For your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영어NASB,19 “O Lord, hear! O Lord, forgive! O Lord, listen and take action! For Your own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are called by Your name.”

영어MSG,19 “‘Master, listen to us! Master, forgive us! Master, look at us and do something! Master, don’t put us off! Your city and your people are named after you: You have a stake in us!’

영어NRSV,19 O Lord, hear; O Lord, forgive; O Lord, listen and act and do not delay! For your own sake, O my God,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υριε συ ιλατευσον κυριε επακουσον και ποιησον και μη χρονισης ενεκα σεαυτου δεσποτα οτι το ονομα σου επεκληθη επι την πολιν σου σιων και επι τον λαον σ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19 exaudi Domine placare Domine adtende et fac ne moreris propter temet ipsum Deus meus quia nomen tuum invocatum est super civitatem et super populum tuum

히브리어구약BHS,19 אֲדֹנָי שְׁמָעָה אֲדֹנָי סְלָחָה אֲדֹנָי הַקֲשִׁיבָה וַעֲשֵׂה אַל־תְּאַחַר לְמַעֲנְךָ אֱלֹהַי כִּי־שִׁמְךָ נִקְרָא עַל־עִירְךָ וְעַל־עַמֶּךָ׃

웨오드 아니 메다베르 우미트팔렐 우미트와데 핱타티 웨핱타트 암미 이스라엘 우맢필 테힌나티 리페네 아도나이 엘로하이 알 할 코데쉬 엘로하이

개역개정,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새번역,20 내가 아직 아뢰어 기도하면서, 나의 죄와 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고, 나의 하나님의 거룩한 산 성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 나의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우리말성경,20 내가 이렇게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스스로 밝혀 말하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입니다.

가톨릭성경,20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기도하고 나의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내 하느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주 나의 하느님 앞에 간청을 올리고 있었다.

영어NIV,20 While I was speaking and praying, confessing my sin and the sin of my people Israel and making my request to the LORD my God for his holy hill–

영어NASB,20 Now while I was speaking and praying, and confessing my sin and the sin of my people Israel, and presenting my supplication before the LORD my God in behalf of the holy mountain of my God,

영어MSG,20 “While I was pouring out my heart, baring my sins and the sins of my people Israel, praying my life out before my God, interceding for the holy mountain of my God–

영어NRSV,20 While I was speaking, and was praying and confessing my sin and the sin of my people Israel, and presenting my supplication before the LORD my God on behalf of the holy mountain of my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εως εγω ελαλουν προσευχομενος και εξομολογουμενος τας αμαρτιας μου και τας αμαρτιας του λαου μου ισραηλ και δεομενος εν ταις προσευχαις εναντιον κυριου θεου μου και υπερ του ορους του αγιου του θεου ημων

라틴어Vulgate,20 cumque adhuc loquerer et orarem et confiterer peccata mea et peccata populi mei Israhel ut prosternerem preces meas in conspectu Dei mei pro monte sancto Dei mei

히브리어구약BHS,20 וְעֹוד אֲנִי מְדַבֵּר וּמִתְפַּלֵּל וּמִתְוַדֶּה חַטָּאתִי וְחַטַּאת עַמִּי יִשְׂרָאֵל וּמַפִּיל תְּחִנָּתִי לִפְנֵי יְהוָה אֱלֹהַי עַל הַר־קֹדֶשׁ אֱלֹהָי׃

성 경: [단9:20,21]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다니엘의 신실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다.

󰃨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주는 구절로(창 24: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Thomson).

󰃨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 여기서 ‘이전 이상’은 8장에 언급된 ‘을래 강변의 이상’을 가리키는 바, 그 때에 본 천사 가브리엘(8:15, 16)이 지금 다시 다니엘 앞에 나타났다. 한편 8:15의 ‘사람'(*, 가베르)과는 달리 본 구절의 ‘사람’이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이쉬'(*)로 쓰여진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그렇게 다니엘과 얘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듯하다(눅 24:4;행 1:10).

󰃨 빨리 날아서…내게 이르더니 – 여기서 ‘빨리…날아서'(*, 무아프 비아프)의 ‘야아프'(*)는 원어상 ‘(신속하게) 날다’란 뜻과 ‘피곤하다’, ‘지치다’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 두 의미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의미에 의거할 때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과 연관된 수식어로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처럼 가브리엘이 신속하게 날아서 다니엘에게 왔다는 사실로 해석된다(Havernick, Hitzig, Jacchia 등의 랍비들). 이러한 의미에 의거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천사들이 날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후자의 의미를 취할 때 이 말은 인간 다니엘에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까지 계속되는 기도로 말미암아 몹시 지쳐서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Delitzsch, Thomson, Kliefoth, Gesenius 등). 이중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여기서 ‘저녁 제사 드릴 때’의 ‘제사'(*, 민하)가 피없는 소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유대인들이 오후 3, 4시 경에 정규적으로 드리는 소제 때의 시간을 가리킨다(민 28;4).

웨오드 아니 메다베르 밭테필라 웨하이쉬 가브리엘 아쉘 라이티 베하존 바테힐라 무아프 비아프 노게아 엘라이 케에트 미느하트 아렙

개역개정,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새번역,21 내가 이렇게 기도드리면서 아뢸 때에, 지난번에 환상에서 본 가브리엘이, 내가 있는 곳으로 급히 날아왔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였다.

우리말성경,21 내가 아직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환상을 보았을 때 보았던 가브리엘이 재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 드릴 때쯤 내게 왔습니다.

가톨릭성경,21 내가 이렇게 기도하며 아뢰고 있는데, 지난번 환시에서 본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에 빨리 날아서 나에게 다가왔다.

영어NIV,21 while I was still in prayer, Gabriel, the man I had seen in the earlier vision, came to me in swift flight about the time of the evening sacrifice.

영어NASB,21 while I was still speaking in prayer, then the man Gabriel, whom I had seen in the vision previously, came to me in my extreme weariness about the time of the evening offering.

영어MSG,21 while I was absorbed in this praying, the humanlike Gabriel, the one I had seen in an earlier vision, approached me, flying in like a bird about the time of evening worship.

영어NRSV,21 while I was speaking in prayer, the man Gabriel, whom I had seen before in a vision, came to me in swift flight at the time of the evening sacrifice.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ετι λαλουντος μου εν τη προσευχη μου και ιδου ο ανηρ ον ειδον εν τω υπνω μου την αρχην γαβριηλ ταχει φερομενος προσηγγισε μοι εν ωρα θυσιας εσπερινης

라틴어Vulgate,21 adhuc me loquente in oratione ecce vir Gabrihel quem videram in visione principio cito volans tetigit me in tempore sacrificii vespertini

히브리어구약BHS,21 וְעֹוד אֲנִי מְדַבֵּר בַּתְּפִלָּה וְהָאִישׁ גַּבְרִיאֵל אֲשֶׁר רָאִיתִי בֶחָזֹון בַּתְּחִלָּה מֻעָף בִּיעָף נֹגֵעַ אֵלַי כְּעֵת מִנְחַת־עָרֶב׃

와야벤 와예다벨 임미 와요말 다니엘 앝타 야차티 레하스킬레카 비나

개역개정,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새번역,22 그가 나에게 ㉡와서 설명해 주었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너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려고 한다. / ㉡칠십인역과 시리아역을 따름

우리말성경,22 그가 내게 알려 주었습니다. “다니엘아, 이제 내가 네게 지혜와 이해력을 주려고 왔다.

가톨릭성경,22 그렇게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다니엘아, 내가 너를 깨닫게 해 주려고 이렇게 나왔다.

영어NIV,22 He instructed me and said to me, “Daniel, I have now come to give you insight and understanding.

영어NASB,22 And he gave me instruction and talked with me, and said, “O Daniel, I have now come forth to give you insight with understanding.

영어MSG,22 “He stood before me and said, ‘Daniel, I have come to make things plain to you.

영어NRSV,22 He came and said to me, “Daniel, I have now come out to give you wisdom and understand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προσηλθε και ελαλησε μετ’ εμου και ειπεν δανιηλ αρτι εξηλθον υποδειξαι σοι διανοιαν

라틴어Vulgate,22 et docuit me et locutus est mihi dixitque Danihel nunc egressus sum ut docerem te et intellegeres

히브리어구약BHS,22 וַיָּבֶן וַיְדַבֵּר עִמִּי וַיֹּאמַר דָּנִיֵּאל עַתָּה יָצָאתִי לְהַשְׂכִּילְךָ בִינָה׃

성 경: [단9:22]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 지혜와 총명 – 곧 8:16, 17의 ‘깨달아 알다’와 동일한 의미로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수여하신 영적 통찰력을 가리킨다.

비트힐라트 타하누네카 야차 다발 와아니 바티 레학기드 키 하무도트 앝타 우빈 받다발 웨하벤 밤마르에

개역개정,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새번역,23 네가 간구하자 마자, 곧 응답이 있었다. 그 응답을 이제 내가 너에게 알려 주려고 왔다. 네가 크게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잘 생각하고, 그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

우리말성경,23 네가 기도를 시작할 때 그것을 말해 주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내가 왔다. 너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닫도록 하여라.

가톨릭성경,23 네가 간청하기 시작할 때에 이미 말씀이 내렸는데, 그것을 일러 주려고 내가 왔다. 네가 총애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서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

영어NIV,23 As soon as you began to pray, an answer was given, which I have come to tell you, for you are highly esteemed. Therefore, consider the message and understand the vision:

영어NASB,23 “At the beginning of your supplications the command was issued, and I have come to tell you, for you are highly esteemed; so give heed to the message and gain understanding of the vision.

영어MSG,23 You had no sooner started your prayer when the answer was given. And now I’m here to deliver the answer to you. You are much loved! So listen carefully to the answer, the plain meaning of what is revealed:

영어NRSV,23 At the beginning of your supplications a word went out, and I have come to declare it, for you are greatly beloved. So consider the word and understand the vision: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εν αρχη της δεησεως σου εξηλθε προσταγμα παρα κυριου και εγω ηλθον υποδειξαι σοι οτι ελεεινος ει και διανοηθητι το προσταγμα

라틴어Vulgate,23 ab exordio precum tuarum egressus est sermo ego autem veni ut indicarem tibi quia vir desideriorum es tu ergo animadverte sermonem et intellege visionem

히브리어구약BHS,23 בִּתְחִלַּת תַּחֲנוּנֶיךָ יָצָא דָבָר וַאֲנִי בָּאתִי לְהַגִּיד כִּי חֲמוּדֹות אָתָּה וּבִין בַּדָּבָר וְהָבֵן בַּמַּרְאֶה׃

성 경: [단9:23]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 네가 기도를…명령이 내렸으므로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준 21절의 ‘내가…기도할 때에’란 말보다 가일층 그 의미가 강화된 구절로, 하나님게서는 다니엘이 동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다니엘의 중심을 미리 아시고 그 응답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순간적인 응답은 곧 7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연단을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재확증하기 위한 것으로 그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연민과 긍휼이 반영된 것이다.

󰃨 은총을 입은 자(*, 하무도트) –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귀한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알게 한다. 한편 에발트(Ewald)는 ‘지극히 사랑받는 자'(God loves you very much, LB)로 번역한다.

솨부임 쉬브임 네흐타크 알 암메카 웨알 이르 카드쉐카 레칼레 하페솨 울라흐톰 울라하템 핱타오트 핱타트 우레카펠 아온 우레하비 체뎈 올라밈 웨라흐톰 하존 웨나비 웨리메쇼아흐 코데쉬 카다쉼

개역개정,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새번역,24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 / ㉢또는 ‘주간’ ㉣또는 ‘가장 거룩한 것’ 또는 ‘가장 거룩한 분’

우리말성경,24 네 백성들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해 70주의 기간이 정해졌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제 죄악이 그치고 죄를 영원히 용서받으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환상과 예언이 이뤄져 높고 거룩한 분이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24 너의 백성과 너의 거룩한 도성에 정해진 일흔 주간이 지나야 악행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속죄가 이루어지리라. 또한 영원한 정의가 펼쳐지고 환시와 예언이 확증되며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이 부어지리라.

영어NIV,24 “Seventy ‘sevens’ are decreed for your people and your holy city to finish transgression, to put an end to sin, to atone for wickedness,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to seal up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영어NASB,24 “Seventy weeks have been decreed for your people and your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to make an end of sin, to make atonement for iniquity,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to seal up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place.

영어MSG,24 “‘Seventy sevens are set for your people and for your holy city to throttle rebellion, stop sin, wipe out crime, set things right forever, confirm what the prophet saw, and anoint The Holy of Holies.

영어NRSV,24 “Seventy weeks are decreed for your people and your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to put an end to sin, and to atone for iniquity,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to seal both vision and prophet, and to anoint a most holy place.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εβδομηκοντα εβδομαδες εκριθησαν επι τον λαον σου και επι την πολιν σιων συντελεσθηναι την αμαρτιαν και τας αδικιας σπανισαι και απαλειψαι τας αδικιας και διανοηθηναι το οραμα και δοθηναι δικαιοσυνην αιωνιον και συντελεσθηναι το οραμα και ευφραναι αγιον αγιων

라틴어Vulgate,24 septuaginta ebdomades adbreviatae sunt super populum tuum et super urbem sanctam tuam ut consummetur praevaricatio et finem accipiat peccatum et deleatur iniquitas et adducatur iustitia sempiterna et impleatur visio et prophetes et unguatur sanctus sanctorum

히브리어구약BHS,24 שָׁבֻעִים שִׁבְעִים נֶחְתַּךְ עַל־עַמְּךָ וְעַל־עִיר קָדְשֶׁךָ לְכַלֵּא הַפֶּשַׁע [כ= וּלַחְתֹּם] [ק= וּלְהָתֵם] [כ= חַטָּאֹות] [ק= חַטָּאת] וּלְכַפֵּר עָוֹן וּלְהָבִיא צֶדֶק עֹלָמִים וְלַחְתֹּם חָזֹון וְנָבִיא וְלִמְשֹׁחַ קֹדֶשׁ קָדָשִׁים׃

성 경: [단9:24]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본절에서 마지막 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인데,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1)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어 있다.

󰃨 칠십 이레 – ‘이레'(*, 솨부임)는 ‘일곱’의 의미로 ‘한 주간'(week)을 가리키기도 하나(10:2), 때로는 1년(year)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창 29:27). 따라서 여기서의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 70주간을 의미하는 바, 이를 날 수로 계산하여 하루를 1년으로 간주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도출되는데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칠십 이레’는 다시 ‘7이레와 62이레'(25절 주석 참조), ‘중간 공백기'(26절 주석 참조)와 ‘한 이레'(27절 주석 참조)로 구분된다.

󰃨 허물이 마치며…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메시야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메시야 개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본 구절의 여섯 항목 중 처음의 세 가지는 죄의 제거와 연관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에 성취되었으며(히 9:26), 나중의 세 가지는 의(義)의 회복과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이말 하나님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성취되어 가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결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계시된 것이다(사 61:1-3).

웨테다 웨타스켈 민 모차 다발 레하쉽 웨리브노트 예루솰람 아드 마쉬아흐 나기드 솨부임 쉬브아 웨솨부임 쉿쉼 우쉬나임 타슈브 웨니브네타 레홉 웨하루츠 우베초크 하잍팀

개역개정,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새번역,25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우리말성경,25 이것을 깨달아 알아라.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이 있을 때부터 7주와 그 다음 62주가 지나면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오신다. 그때 예루살렘 성이 다시 세워지고 거리와 성벽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어려움 가운데 이뤄질 것이다.

가톨릭성경,25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영도자가 나올 때까지 일곱 주간이 흐르리라. 또 예순두 주간이 흐르는 동안 예루살렘이 복구되고 재건되어 광장과 외호까지 갖추겠지만 그 기간은 어려운 때가 되리라.

영어NIV,25 “Know and understand this: From the issuing of the decree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until the Anointed One, the ruler, comes, there will be seven ‘sevens,’ and sixty-two ‘sevens.’ It will be rebuilt with streets and a trench, but in times of trouble.

영어NASB,25 “So you are to know and discern that from the issuing of a decree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until Messiah the Prince there will be seven weeks and sixty-two weeks; it will be built again, with plaza and moat, even in times of distress.

영어MSG,25 “‘Here is what you must understand: From the time the word goes out to rebuild Jerusalem until the coming of the Anointed Leader, there will be seven sevens. The rebuilding will take sixty-two sevens, including building streets and digging a moat. Those will be rough times.

영어NRSV,25 Know therefore and understand: from the time that the word went out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until the time of an anointed prince, there shall be seven weeks; and for sixty-two weeks it shall be built again with streets and moat, but in a troubled time.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γνωση και διανοηθηση και ευφρανθηση και ευρησεις προσταγματα αποκριθηναι και οικοδομησεις ιερουσαλημ πολιν κυριω

라틴어Vulgate,25 scito ergo et animadverte ab exitu sermonis ut iterum aedificetur Hierusalem usque ad christum ducem ebdomades septem et ebdomades sexaginta duae erunt et rursum aedificabitur platea et muri in angustia temporum

히브리어구약BHS,25 וְתֵדַע וְתַשְׂכֵּל מִן־מֹצָא דָבָר לְהָשִׁיב וְלִבְנֹות יְרוּשָׁלִַם עַד־מָשִׁיחַ נָגִיד שָׁבֻעִים שִׁבְעָה וְשָׁבֻעִים שִׁשִּׁים וּשְׁנַיִם תָּשׁוּב וְנִבְנְתָה רְחֹוב וְחָרוּץ וּבְצֹוק הָעִתִּים׃

성 경: [단9:25]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 일곱 이레 –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B.C. 458)의 포로 귀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한 490년 동안을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상징적 해석으로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된 때(B.C. 536)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고레스 원년(B.C. 536)에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B.C. 444)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일롭 이레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를 지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36:22, 23;스 1:1-4;사 44:28).

󰃨 육십 이 이레 – 이 또한 세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1) 에스라 때부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그리스도의 성육신 때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신약의 교회 시대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일롭 이레에 연속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B.C. 444)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B.C. 4)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일곱 이레’의 주석과 이 육십 이 이레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영적 쇠퇴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준비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 곤란한 동안에…해자가 이룰 것이며 – 여기서 ‘곤란한 동안’은 고레스의 칙령(B.C. 536)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성전의 중건과 성벽을 수축할 때 겪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느 4, 6장). 한편 ‘거리'(*, 레호브)는 ‘넓은 사거리’란 뜻으로 ‘넓은 광장’을, ‘해자'(*, 하루츠)는 성벽을 따라 그 외곽에 파놓은 도랑을 각각 의미하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의 수축이 온전하게 성공될 것임을 예시하는 말이다.

웨아하레 핫솨부임 쉿쉼 우쉬나임 이카레트 마쉬아흐 웨엔 로 웨하일 웨핰코데쉬 야쉬히트 암 나기드 합바 웨킻초 밧쉐테프 웨아드 케츠 밀하마 네헤레체트 쇼메모트

개역개정,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새번역,26 예순두 이레가 지난 다음에,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한 통치자의 군대가 침략해 들어와서, 성읍과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홍수에 침몰되듯 성읍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끝까지 계속되어, 성읍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26 62주간이 지난 후에 기름 부음받은 분은 죽고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후 한 왕의 백성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무너뜨릴 것이다. 마지막 날은 홍수가 밀려온 것과 같으며 또 마지막까지 전쟁이 있어서 성이 황폐해질 것이다.

가톨릭성경,26 이렇게 예순두 주간이 흐른 다음 기름부음받은이가 잘려 나가 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그리고 도성과 성소는 앞으로 일어날 군주의 군대가 허물어 버리리라. 그 종말은 홍수처럼 들이닥치리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남도록 결정되었다.

영어NIV,26 After the sixty-two ‘sevens,’ the Anointed One will be cut off and will have nothing. The people of the ruler who will come wi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The end will come like a flood: War will continue until the end, and desolations have been decreed.

영어NASB,26 “Then after the sixty-two weeks the Messiah will be cut off and have nothing, and the people of the prince who is to come wi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And its end will come with a flood; even to the end there will be war; desolations are determined.

영어MSG,26 After the sixty-two sevens, the Anointed Leader will be killed–the end of him. The city and Sanctuary will be laid in ruins by the army of the newly arriving leader. The end will come in a rush, like a flood. War will rage right up to the end, desolation the order of the day.

영어NRSV,26 After the sixty-two weeks, an anointed one shall be cut off and shall have nothing, and the troops of the prince who is to 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Its end shall come with a flood, and to the end there shall be war. Desolations are decreed.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μετα επτα και εβδομηκοντα και εξηκοντα δυο αποσταθησεται χρισμα και ουκ εσται και βασιλεια εθνων φθερει την πολιν και το αγιον μετα του χριστου και ηξει η συντελεια αυτου μετ’ οργης και εως καιρου συντελειας απο πολεμου πολεμη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6 et post ebdomades sexaginta duas occidetur christus et non erit eius et civitatem et sanctuarium dissipabit populus cum duce venturo et finis eius vastitas et post finem belli statuta desolatio

히브리어구약BHS,26 וְאַחֲרֵי הַשָּׁבֻעִים שִׁשִּׁים וּשְׁנַיִם יִכָּרֵת מָשִׁיחַ וְאֵין לֹו וְהָעִיר וְהַקֹּדֶשׁ יַשְׁחִית עַם נָגִיד הַבָּא וְקִצֹּו בַשֶּׁטֶף וְעַד קֵץ מִלְחָמָה נֶחֱרֶצֶת שֹׁמֵמֹות׃

성 경: [단9:26]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 육십 이 이레 후에…없어질 것이며 – 이는 곧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25절) 그리고 최종적인 ‘한 이레'(27절) 사이에 있을 중간 공백기를 가리키는 바, 이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의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의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로마의 디도(Titus, A.D. 79-81)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훼파 사건(A.D. 70) 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별히 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는 사항이다.

󰃨 장차 한 왕의…훼파하려니와 – 여기서 ‘한 왕’은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A.D. 79) 디도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구절은 그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 훼파 사건을 가리킨다(A.D. 70).

󰃨 그의 종말은…작정되었느니라 – 감람 산 강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마 24:7-22)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고통과 고난, 전쟁이 이 세대 끝까지 게속될 것이며 그 종국에는 엄청난 대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여기서의 ‘그의 종말’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징벌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를 아니다.

웨힉비르 베리티 라랍빔 솨부아 에하드 와하치 핫솨부아 야쉽비트 제바 우민하 웨알 케나프 슄쿠침 메쇼멤 웨아드 칼라 웨네헤라차 팉타크 알 쇼멤

개역개정,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새번역,27 침략하여 들어온 그 통치자는 뭇 백성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굳은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반이 지날 때에, 그 통치자는 희생제사와 예물드리는 일을 금할 것이다. 그 대신에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 흉측한 우상을 세울 것인데, 그것을 거기에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끝 날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이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7 그는 1주 동안 많은 사람들과 굳게 약속을 정할 것이다. 그가 1주의 절반의 기간에 희생제사와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또 흉측해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물건이 성전의 거룩한 장소에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황폐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노하심이 쏟아질 것이다.”

가톨릭성경,27 그 군주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이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반 주간 동안은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리라. 성전 날개에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져 황폐하게 만드는 그자에게 이미 결정된 멸망이 쏟아질 때까지 서 있으리라.”

영어NIV,27 He will confirm a covenant with many for one ‘seven.’ In the middle of the ‘seven’ he will put an end to sacrifice and offering. And on a wing of the temple he will set up an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until the end that is decreed is poured out on him.”

영어NASB,27 “And he will make a firm covenant with the many for one week, but in the middle of the week he will put a stop to sacrifice and grain offering; and on the wing of abominations will come one who makes desolate, even until a complete destruction, one that is decreed, is poured out on the one who makes desolate.”

영어MSG,27 “‘Then for one seven, he will forge many and strong alliances, but halfway through the seven he will banish worship and prayers. At the place of worship, a desecrating obscenity will be set up and remain until finally the desecrator himself is decisively destroyed.'”

영어NRSV,27 He shall make a strong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for half of the week he shall make sacrifice and offering cease; and in their place shall be an abomination that desolates, until the decreed end is poured out upon the desolator.”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και δυναστευσει η διαθηκη εις πολλους και παλιν επιστρεψει και ανοικοδομηθησεται εις πλατος και μηκος και κατα συντελειαν καιρων και μετα επτα και εβδομηκοντα καιρους και εξηκοντα δυο ετη εως καιρου συντελειας πολεμου και αφαιρεθησεται η ερημωσις εν τω κατισχυσαι την διαθηκην επι πολλας εβδομαδας και εν τω τελει της εβδομαδος αρθησεται η θυσια και η σπονδη και επι το ιερον βδελυγμα των ερημωσεων εσται εως συντελειας και συντελεια δοθησεται επι την ερημωσιν

라틴어Vulgate,27 confirmabit autem pactum multis ebdomas una et in dimidio ebdomadis deficiet hostia et sacrificium et in templo erit abominatio desolationis et usque ad consummationem et finem perseverabit desolatio

히브리어구약BHS,27 וְהִגְבִּיר בְּרִית לָרַבִּים שָׁבוּעַ אֶחָד וַחֲצִי הַשָּׁבוּעַ יַשְׁבִּית זֶבַח וּמִנְחָה וְעַל כְּנַף שִׁקּוּצִים מְשֹׁםֵם וְעַד־כָּלָה וְנֶחֱרָצָה תִּתַּךְ עַל־שֹׁםֵם׃ ף

성 경: [단9:27]

주제1: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

주제2: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

󰃨 한 이레 – 세계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대환난 시대로 적그리스도의 활동 시기를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이 7년 대환난기의 절반인 3년 반 동안 성도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나(‘그가 장차…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후반 부인 3년 반의 기간에는(7:25 주석 참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그 이레의 절반에…쏟아지리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종국에는 그리스도의재림으로 영원한 멸망의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7:21, 22 주석 참조;마 24:15;살후 2:4;계 11-13장). 한편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중 특별한 참되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사 53:11, 12).

󰃨 이레의 절반에 – 위의 주석에서 언급되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후반부 3년 반을 가리킨다(계 11:2, 9).

󰃨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이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제시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기사에서 보여진 바 있다(8:11 주석 참조).

󰃨 강포하여…설 것이며 – ‘강포하여 미운 물건'(*, 쉬쿠침 메쇼멤)은 문자적으로 ‘가증한 황폐케 하는 자’란 뜻으로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유사한 표현인 바,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감란 산 강론에 밝힌 ‘멸망을 가져오는 가증한 것'(마 24:15)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문장과 함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신속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성도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박해가 이루어질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Thomson).

󰃨 또 이미 정한…쏟아지리라 – 여기서 ‘황폐케 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그 정한 종말의 때까지 적그리스도가 계속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편 적그리스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계 16장에 언급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정한 종말’은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궤멸이 성취될 아마겟돈 전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728×90

반응형

구원의 계획과 시간표

제9과 구원의 계획과 시간표 – 다니엘서 9장

주제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단 9:23).

시작하는 말

1976년 7월 3일, 온 세계는 방금 성공적으로 끝난 이스라엘 특공대의 인질 구출 작전에 환호하고 있었다. 과반수가 이스라엘인들인 102명의 인질들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게 공중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억류되어 며칠째 생명을 위협받고 있던 터에 이스라엘 군용기 3대로 공항을 기습한 이스라엘 특수부대에 의하여 전원 구출되어 본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지휘관은 희생되었으나 작전은 완전히 성공한 역사적인 구출 사건이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세워졌으며, 모형으로 만들어진 엔테베 공항에서 실제와 다름없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수천 년째 사탄에 의하여 납치당한 지구 거민 (居民)을 구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은 무엇이며, 그 청사진(靑寫眞)은 어디에 있는가? 성소와 2300주야에서 우리는 그 대답을 찾게 된다.

위대한 기도와 위대한 응답

1. 어떤 상황에서 고령의 다니엘이 또다시 금식하며 기도 드리게 되었는가?

“메대 족속 아하수에르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 (단 9:1, 2상단).

설명 이때는 바빌로니아가 멸망한 이듬해인 기원전 538년경으로 메디아 사람 다리오가 왕으로 즉위한 해로서, 다니엘서 6장의 기도 금지령과 사자굴 사건이 일어난 같은 때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면서까지 기도 드려야 했던 사연과 기도의 내용이 9장에 공개되어 있다.

2. 이 때 다니엘이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은 무엇이었는가?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단 9:22).

설명 다니엘은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과거에 불순종을 거듭한 동족 유대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일찍이 예언하신 70년간의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이 거의 마쳐지고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다니엘 자신이 잡혀온 기원전 605년부터 시작된 70년 포로 기간이 다음해인 537년에는 끝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고 촉급해졌다.

3. 다니엘은 무슨 목적으로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렸는가?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 9:3).

설명 동족 유대인이 70년간 포로살이를 해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이다. 그러나 70년 포로 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그들은 아직도 철저히 회개하지 않았으며 어서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신속히 복구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맞이해야 할 사명(使命)을 잊어버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포로살이에 안주(安住)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포로된 백성들이 어서 돌아가고 황폐된 예루살렘과 성전이 신속히 복구되어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를 탄원(歎願)했다. 자신은 허물이 없을 만큼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하고 백성의 속죄와 예루살렘의 회복(回復)을 탄원하였다. 다니엘의 그 기도는 참으로 위대하기 그지없는 영혼의 절규였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페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7 ~ 19).

4. 이처럼 위대한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대한 반응을 하셨는가?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으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단9:21 ~ 24).

설명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땅에서 멀지 않다. 응답은 신속하고 확실했다. 하늘의 최고 천사로 알려진 가브리엘(Gabriel)이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파송되었으며 다니엘에게 자신이 온 목적을 알렸다. 참으로 인간의 위대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응답이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사명이 다니엘이 깨닫지 못한 이전에 받은 “그 이상”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응답의 내용

5. 다니엘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그 이상”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단 8:14).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단8:26, 27)

설명 우리가 앞서 연구한 8장에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았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특별한 계시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2300주야에 대한 이상(계시)”이었다. 그 계시는 그 충격으로 다니엘이 여러 날 병석(病席)에 누울 만큼 중요한 것이었으나 아무도 깨달을 수 없는 난해(難解)한 내용이었다. 다니엘은 이 특별한 이상(異像)을 표현하기 전달해준 8장 14절의 2300주야에 대한 이상은 “마레” (mareh)라는 말을 써서 구별했다. 실제로 8장 14절의 계시가 주어질 때도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었고(8:17) “마레”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쓰여졌고(8:15, 16, 26, 27), “깨달으라”는 표현이 거듭 쓰여졌는데, 그 해석이 주어지는 9장에서도, 가브리엘이 다시 나타났고(9:21), 특수 용어”마레” (이상)가 다시 쓰여졌으며(9:23), 전에 깨닫지 못한 “그 이상”을 “깨달으라”는 지시가 주어졌다. 이와 같이 9장은 다니엘이 8장에서 깨닫지 못한 “2300주야에 대한 이상”을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해석해 주시는 내용임이 확실해졌다.

2300주야의 시작인 70주일

6. “2300주야에 대한 이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단 9:24 상단).

설명 고령의 다니엘이 포로의 땅에서 밤낮으로 기도하고 염려하는 것은 동족(同族) 유대인과 고국(故國) 유다 였다. 그것은 단순한 애국애족(愛國愛族) 이상의 뜻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함으로 멸망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구주 ( 救主)를 보내시고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일찍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을 택하셨기 때문에(창 12:1 ~3, 49:8 ~10) 구약시대에는 세상의 운명이 유다 나라와 유대인에게 달린 셈이었다. 다니엘이 8장의 “2300주야에 대한 이상” (8:14, 26)을 받고 그토록 충격을 받고 몸져누운 것이나 9장에서 유대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금식기도를 드린 것도 모두 같은 심정에서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다니엘의 일차적인 관심사인 “네 백성(유대인)과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의 장래 운명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7.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는 뜻이 무엇인가?

해답 “이레”는 “7일”로서 “1주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상징적인 예언에서는 언제나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민 14:34 ; 겔 4:6), 이 경우에도 7일은 7년이 되어 “70이레”, 즉 “70주일”은 70×7=490년으로 환산(換算)되어야 마땅하다. “정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타크”인데 “자르다(cut)“, “잘라내다(cut off)”는 뜻으로 “할당(割當)”과 같은 말이다. 어디서 잘라냈는가. 9장이 8장의 “2300 주야에 대한 이상[계시]”의 해석임이 확실함에 따라 70주일은 2300주야에서 잘라낸 부분임이 분명해진다.

8. 70주일(490년)이 “네 백성” 즉 유대인을 위해 특별히 할당된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6).

설명 9장의 70주일은 8장의 2300일 기간의 일부로서 범죄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유대인이 해야 할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특별히 떼어놓은 기간(期間)이란 뜻이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질병을 퇴치(退治)하기 위해 먼저 의과대학을 세우고 사람을 선발하여 적어도 8년 이상 교육을 시켜 의사를 배출하고,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해 먼저 교육대학을 세우고 사람을 선발하여 적어도 4년 이상 교육을 시켜 교사를 양성하듯이 세상에 구원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하시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선교사의 나라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 동안 불순종과 반역을 거듭함으로써 택한 백성의 사명을 이루는 데 실패한 유대인들에게 70주일(490년)은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다.

70주일의 내용과 목적

9. “70이레(주)” 동안 인류의 구원을 위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續)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단 9:24).

설명 위의 성경절에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성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할당된 70주일, 곧 490년 동안 이루어지도록 계획되거나 예언된 일들이 열거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이제까지의 불순종과 반역을 그치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죄인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구원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제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합법적으로 속(贖)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공의(公義)를 동시에 입증하였다.

10. 70주일(490년) 기간에 이상과 예언이 응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4, 45).

설명 8, 9장에서 말하는 이상과 모든 예언들이 확실하게 비준되어 마무리 될 것을 가리킨다. 특별히 메시아의 초림과 관련된 예언들이 성취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확증하셨듯이 구약 성경은 모두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실 구주(救主)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예언들이 유대인에게 할당된 70주일(490년) 기간에 포함된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地上 生涯)를 통해 실제로 낱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초림 (初臨)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짐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마무리 짓는 재림(再臨)이 있기까지의 그리스도의 모든 봉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11. 70주일(490년) 기간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모세가 관유(灌油)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레 8:10).

설명 이곳에 쓰인 “지극히 거룩한 자”는 히브리어로 “코데슈 카다쉼”인데, “지극히 거룩한 것”이란 뜻으로써 사람에게 적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성소와 거기에 관련된 기구나 봉사에 사용된 말이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성소가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성소가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모세에 의하여 장막 (帳幕)으로 된 최초의 성소가 세워진 후 봉사를 시작할 때 거기에 성령을 상징하는 거룩한 감람열매 기름을 부어 성별(聖別)했다. 똑같은 일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성소에서 봉사를 시작하실 때에 하늘성소가 기름 부음을 받을 것으로 (히 4:14 ~ 16) 예고된 것이다.

70주일의 시작 연대

12. 이처럼 인간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성취시킬 예비 기간인 70주일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단 9:25).

설명 9장의 계시가 주어진 기원전 538년 당시의 예루살렘은 과거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멸된 이래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었다. 다니엘은 그러한 예루살렘과 성전의 중건(重建)을 탄원하고 있었다. 그러한 예루살렘을 이전처럼 다시 회복시키라는 왕의 명령이 날 때부터 70주일 기간이 시작되는 기산점(起算點)이 설정된 것이다.

여기에 쓰인 “중건”이란 표현의 히브리어는 “슈브” (shub)와 “바나” (banah)라는 두 마디 동사인데, “슈브”는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다” (restore)는 뜻이고, “바나”는 “세우다,” “짓다” (build)는 뜻이어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이전 상태로 회복 하라” 는 뜻이다.

13. 70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예루살렘 “중건”의 내용을 만족시키는 왕의 조사가 언제 내려졌는가?

“아닥사스왕 7년에 …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스 7:7, 11).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키루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展)을 건축하여 필역하되” (스 6:14).

설명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내용에는 무너진 성전뿐만 아니라 폐허가 된 성읍(城邑)의 복구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치권의 부여도 전제(前提)되어 있다. 이 일을 위한 세 명의 페르시아 왕들의 조서는 키루스 원년(537년 BC), 다리우스 1세 제2년(520년 BC), 아닥사스다 제7년(457년 BC), 아닥사스다 제20년의 추가 조서(444년 BC) 등이 있었으나, 다니엘서 9장 25절에 예언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의 조서였다(스 4:12, 13, 7:7 ~ 26).

14. 기원전 457년이 70주일의 정확한 시작임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해답 이 사실은 종교개혁 이래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누차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Isaac Newton)이다. 그는 20개 이상의 고대 일식(日飾) 기록을 조사하여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제7년이 기원전 457년임을 천문학적으로 확증했다. 근년에 애굽의 유대인 거주지였던 나일강의 엘레판티네(Elphantine) 섬에서 발견된 고대 페르시아의 엘레판티네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70주일의 내용과 연대

15.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70주일 기간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단 9:25, 26 상단, 27 상단).

설명 다니엘서 9장 24 ~ 27절에 기록된 70주일의 내용을 도해 (圖解)하면 <표-5> 와 같다.

70주일 내용의 구분과 연대

70주일 (70×7=490년간)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을 위해 할당된 기간으로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제7년인 기원전 457년에 시작됨.

7주일 (7×7=49년간)

예루살렘의 복구와 자치(自治)가 이루어짐.

62주일 (62×7=434년간)

약속된 구주(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며 이 기간이 끝나는 서기 27년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위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심.

1주일 (1×7=7년간)

70주일에서 7주일과 62주일을 감(減)한 마지막 1주일인 7년인데 침례 받으신 이후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원의 언약을 성취시키시고 유대인과의 약속을 이루신 기간임.

1주일의 절반 (7÷2=3년 반)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서기 27년 가을로부터 3년 만인 서기 31년 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구약시대 동안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여 짐승을 드려 온 모든 제사와 예물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폐지됨(히 10:1 ~10).

70주일의 종결 ((7+62+½+½)=490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서기 31년 봄부터 다시 3년 반이 경과된 서기 34년, 유대인들은 의회에서 마지막으로 회개를 호소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임으로 유대인을 위한 은혜의 기간인 70주일(490년)이 공식적으로 끝나고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

70주일에 관한 보충 설명

16. 예수께서 언제, 어떻게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시작하실 수 있었는가?

“곧 요한이 그 세례[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행 10:37, 38).

“백성이 다 세례[침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눅 3:21 ~ 23 상단).

설명 방금 연구한 다니엘서 9장 25절에는 7주일과 62주일이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다고 예언되어 있다. 70주일이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므로 그 때로부터 7주일(7×7=49년)과 62주일(62×7=434년)이 지나면 서기 27년에 이르는데, 이 해는 예수께서 30세가 되시면서 침례를 받으신 때이다(이 해가 예수님의 나이처럼 서기 30년이 아니고 27년인 까닭은 서력 기원(A.D.)을 제정하던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4년 정도 늦은 연대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 취임할 때 성령을 상징하는 관유(灌油)를 머리에 부었다. 이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 곧 “메시야(Messiah)”이고,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 곧 “그리스도” (Christ)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경우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표현함으로써 (행 10:38)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예언된 대로 예수께서는 정확히 30세가 되시던 서기 27년 가을 요단강에서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를 받으신 후에 공식적인 메시야의 일을 시작하셨다(예수께서 받으신 것은 세례가 아니라 침례이다).

70주일 예언의 성취

17. 70주일이 마쳐질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단9:26).

설명 다니엘의 예언에 의하면,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70주일(490년) 기간 가운데 7주일(49년)과 62주일(434년)이 마감되는 서기 27년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의 일을 시작하신 이후 갑자기 “끊어져 없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그 일이 침례 받으신 후 1주일(7년)의 절반인 3년 반이 지난 서기 31년에 예수께서 돌연(突然)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정확히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끊어져 없어”진 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한 왕의 백성”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당신을 끝내 거절하고 죽인 결과로 초래될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파멸을 미리 말씀하실 때 다니엘서 9장 26절의 성취를 아래와 같이 생생히 인용하셨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1 ~ 44).

18. 다니엘서에 예언된 예루살렘의 멸망이 실제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15, 16, 20).

설명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결과였으며 다니엘서에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졌다. 거듭해서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징벌하기 위해 서기 67년부터 3년간이나 계속된 로마의 명장(名將) 베스파시아누스 (Vespasianus)의 공격은 유다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서기 70년 그의 아들 티투스 (Titus) 장군이 거느린 8만 명의 로마 군인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5개월간의 포위 끝에 110만 명으로 유대인이 무참히 죽었으며 9만 7천 명이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분노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불바다가 되어 깡그리 파괴됨으로써 문자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직접 인용하여 경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포위가 시작되기 직전에 미리 도망하여 파멸을 면했다.

2300일 예언과 70주일 예언

19. 2300주야[일]에 관한 예언과 70주일에 관한 예언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해답 이미 설명한 대로, 다니엘서 8장(14절)에서 재림 전에 있을 심판의 때와 관련하여 주어진 2300주야[일]에 관한 예언은,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단 8:27)는 다니엘의 말에 나타났듯이 미결 상태로 끝났다. 다니엘이 9장에서 동족 유대인의 장래와 예루살렘의 복구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 드렸을 때 응답을 받아, 8장의 계시 가운데 나타났던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가브리엘 자신은 8장에서 다니엘이 깨닫지 못한 그 계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주려고 왔다는 설명과 함께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단9:23)고 격려했다. 그리고 유대인과 예루살렘을 위해 특별히 할당된 70주일[490년] 기간이 8장의 2300일[2300년]에 속한 기간임을 “70이레로 기간을 정했다[떼어 내다라는 뜻]”는 표현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 기간의 시작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領)이 날 때부터”라는 기산점(起算點)을 명백히 제시했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재건, 그리고 자치권의 회복 등 9장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 왕의 조서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7년인 기원전 457년의 조서임을 성경과 역사에서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을 도해로 나타내면 <표 – 6>과 같다.

성소의 정결

20. 2300주야[년] 기간이 이를 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 (단 8:14)는 뜻은 무엇인가?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설명 우리는 지난 8장의 연구에서 성소가 무엇인지를 이미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러한 성소가 정결(淨潔)해진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 중요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다음 쪽에 설명된 성소 봉사의 구분과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성소란 무엇인가 (하), 140쪽 참조>.

이곳에 쓰여 진 “정결하게 되다”의 히브리어는 “차다크”의 수동태인 “니츠다크”인데, 본뜻은 “의롭게 되다”, “올바로 되다”, “회복되다”, “옹호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성소라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 모든 내용을 폭넓게 포함하면서도 그 본래의 뜻을 더 잘 드러내는 뜻으로 “정결하게 되다”는 의미로 함축시켰다.

2300주야의 목적은 무엇인가?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히4:14 ~ 16) 하늘성소에서의 속죄의 봉사가 끝나기까지는 재림하실 수가 없다. 죄로 더럽혀진 성소를 정결케 하시고 회개한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의로 옹호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입증하신 후에야 재림하실 수 있다. 이처럼 십자가에서 준비된 구원을 끝마치는 마지막 과정이 대속죄일의 성소 정결인 것이다. 그것이 재림 전에 있어야 하는 조사심판인데, 2300주야의 끝인 1844년부터 이 마지막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21. 2300주야[년] 기간과 대속죄일의 봉사와 성소의 정결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가 네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단 8:14).

설명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답을 찾게 된다. 먼저 성소 봉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가 있다.

날마다[매일]의 봉사 – 제사장이 뜰과 첫째 칸에서 날마다 행한 봉사인데 속죄 과정에서 개인[죄인] → (안수) → 제물 →(제물의 피) → 성소로 회개한 죄를 옮기는(轉嫁) 봉사였다. 회개한 죄인은 회개함으로 의로워졌지만 성소는 의식상(義式上) 그 죄로 더럽혀진다. 그 밖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을 무시하고 반역하며 우상을 섬길 때에도 성소가 더럽혀지는데(겔 5:11). 그것이 다니엘서 7장과 8장의 작은 뿔인 중세 로마 교회에 의한 경우이다.

해마다[연중]의 봉사 – 1년에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이 되면 둘째 칸인 대제사장이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서 수행하는 봉사인데, 한 해 동안 성소로 옮겨진 죄를 성소와 백성으로부터 제거함으로써 성소를 정결케 하는 봉사이다(레16:16, 19). 유대인들이 “욤 키프르”라고 부르는 이 대속죄일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짐을 당하는 심판의 날이었다.(레 23:28~30). 그 때가 <표 – 6>의 계산처럼 예루살렘 중건령(重建領)이 내린 기원전 457년부터 2300년이 지난 서기 1844년이 되는 것이다.

22. 2300주야 기간 가운데 70주일 예언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22,23).

설명 구약시대의 지상의 성소는 짐승의 피로써 정결케 되었지만 신약시대의 하늘에 있는 성소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정결케 되어야 한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하늘의 성소를 정결케 하는 속죄의 피가 마련된 십자가는 70주일 기간 중 마지막이 되는 70번째 주일의 절반인 서기 31년의 사건으로, 70주일은 속죄제도의 원인(原因)과 근거(根據)를 제공하고 2300주야는 결과(結果)와 효과(效果)를 거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성소란 무엇인가 (하)

성소 봉사의 구분과 내용

성소는 범죄한 인간을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구원의 청사진이다. 성소는 도해 <표 – 7>과 같이 뜰과 첫째 칸인 성소(聖所), 둘째 칸인 지성소(至聖所)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기서 날마다 반복되는 제사인 매일(每日)의 봉사와 일년의 단 하루, 대속죄일에만 거행되는 제사인 연중(年中)의 봉사가 수행되었다.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것이 무엇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소 봉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뜰의 봉사 –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이 뜰의 봉사이다. 여기서 희생제물이 죽임을 당하고 피가 십자가를 상징하는 번제단에 부어졌고 회개함으로 다시 태어나는 침례를 상징하는 물두덩이 있었다. 첫째 칸, 성소의 봉사 – 승천 이후 하늘에서의 첫 단계 봉사 : 죄 지은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직후 하늘에 있는 성소의 첫 번째 칸에 들어가셔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들을 위한 속죄의 봉사를 계속하셨다. 성소에는 떡상과 촛대, 분향단이 놓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몸이신 생명의 떡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빛, 그리고 죄인을 위해 드리시는 중보의 기도를 드러낸다. 이 모든 것들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모든 것은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燔祭) 등 다른 제사들과 함께 날마다 계속된 매일의 봉사의 내용들이다. 둘째 칸, 지성소의 봉사 – 재림 전 대속죄일의 마지막 봉사 : 1년에 단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루 동안 행하는 특별한 연중(年中) 봉사이다. 대제사장은 이 날 십계명이 들어 있는 언약궤 위에 피를 뿌림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죄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회개한 죄인들이 고백한 죄를 속죄 제물의 피를 통해 성소로 옮김으로 의식상(儀式上) 더럽혀진 성소와 성소의 기구들이 희생 제물의 피를 뿌려 정결하게 함으로써 일 년 동안 계속해온 속죄를 위한 봉사를 모두 끝마쳤다.

마치는 말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요 수학자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우주시대의 기초를 놓은 뉴턴 경(Sir Isaac Newton)은 다니엘서 등 예언서 연구에 있어서도 뛰어난 신학자였다. 수학자인 그는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에 나타난 대로 그리스도의 초림 (初臨)에 관하여 예언된 연대가 수학적으로 정확함에 대해 경탄하였다. 뉴턴 경 자신이 70주일과 2300주야 예언의 시작이 아닥사스다 왕 7년이고 그것이 기원전 457년임을 일식(日蝕) 기록들을 조사하여 그 정확성을 천문학적으로 입증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염두에 두며 이렇게 말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뒤엎는 일을 하는 셈인데,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도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도 면밀하게 성취되었고 또 마쳐질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계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잇는가? 그것은 정확한 것만큼 엄숙한 책임이 따르는 숙명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확실함과 정확함이 입증된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끝나는 1844년,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죄를 영원히 끝내시기 위해 하늘의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고자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대속죄일의 지성소 봉사를 시작하셨다. 지성소 봉사가 끝나면 인간을 위한 은혜의 시기도 끝나게 되며 세상은 마지막 재앙을 겪게 되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된다(계 15:5 ~ 8). 아직도 죄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죄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경험을 바로 지금 가져야 한다(레 16:30).

다니엘서 강해 제9장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

1. 다니엘 8장에서 배운 2300일 예언의 간단한 복습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 장이 다니엘 9장이다. 그것은 2300주야(일)에 대한 예언인데, 성경에서 기간을 상징하는 예언에서 1일은 실제에 있어서 1년으로 환산된다. 우리는 에스겔 4장 6절에서 기간적 예언을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네게 사십일을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민수기 14장 34절에도 동일한 원칙이 반복되고 있다.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그러므로 230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실제에 있어서 2300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2300주야 예언은 다니엘 8장 14절에 처음 등장한다. 다니엘 8장에서 배웠던 것처럼, 작은 뿔 세력인 교황권의 횡포에 대한 예언 후에 하늘에서 하나님과 한 거룩한 천사 사이에 나누어지는 대화가 나오고 곧 이어서 2300일 예언이 등장했다.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 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단 8:13,14). 이렇게 해서 시작된 2300일 예언은 9장에 가서 그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작은 뿔의 배도와 2300일 예언이 연결되어 있는 문맥으로 보아서 2300일에 대한 예언은 교황권 세력이 하나님의 구원의 도를 설명해 주는 성소 제도의 진리를 짓밟는 일과 분명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천사가 물었다. 언제 이 성소가 정결케 되겠습니까? 과연 언제나 하나님께서 이 교황권의 횡포를 심판하여 성도를 신원하여 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다니엘 7장에도 이미 교황권의 활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어 성도들의 한을 풀어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 7:21,22,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신원하신다는 뜻은 심판하여 변호하여서 성도들의 소원과 원한을 풀어주신다는 뜻이다. 7장에서 성도들을 위하여 변호하고 심판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이 8장에 와서는 더 자세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심판해 주실 시간에 대하여서 알려 주신 것이 2300일 에언이다. 그 시간이 바로 2300일에 대한 예언, 곧 성경 예언 기간에 대한 해석 원칙에 의하여 2300년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2. 성소정결과 심판

“예루살렘 중건령”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

—-/———————————————–/————>

BC457 ㅡ 2300년 ㅡ AD1844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

——–/——————————————/————-

AD31 AD 1844

죄인들의 죄 고백으로 하늘 성소가 더러워진 시기 죄를 심판 및 도말하는 시기

2300일 예언의 초점은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데에 있다.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다니엘 8장에서 이미 공부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표현은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성소 제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아야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소가 정결케 된다는 의미는 대속죄일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도말하여 없애심으로 성소에 있는 모든 죄들을 씻어 정결케 하신다는 뜻이다.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한 다음에 다시는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도록 완전히 죄를 도말해서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의 경험의 결말이다.

일 년 내내 고백한 죄악들이 양의 피에 내포되어 성소 안에 뿌려져 왔다. 그래서 성소는 백성들의 고백한 죄들로 더럽혀져 온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 년 끝에 대속죄일을 제정하셔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다시 살피고, 정말로 자기가 죄들을 회개하고 버렸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생애를 하나씩 검토하시어 심판하시고 그들의 죄를 영원히 도말하여 버리심으로 인을 쳐주시는 날이었다. 구약 시대에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이었다.

성경 시대에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 인침 받는 날로 여겨져 왔다. 대속죄일의 의식은 신자들의 죄의 고백이 하늘 성소에 기록되어 있다가 하나님께서 대속죄일에 그 죄들을 말끔히 씻어 도말해 버리실 것을 상징해 주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죄들을 없애시기 전에 믿는 자들의 생애를 살펴보시는 심판이 먼저 선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때에 성소가 모든 죄들로부터 드디어 정결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소 정결에 대한 성서적 이해이다. 이제 우리는 다니엘 8장 14절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2300주야(2300년)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다시 말하자면, 그때에 가서 교황권의 배도의 역사를 심판해 줄 것이고, 그 세력에 억울하게 핍박당한 성도들은 물론 그 외의 모든 믿는 자들을 변호하시어 모든 죄들을 도말하여 주시겠다는 선포이다.

레위기서 16장 16절은 대속죄일의 성소 정결 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흥미 있는 것은, 성경은 대속죄일 날에는 백성들 자체보다는 백성들의 죄 때문에 더럽혀진 성소를 정결케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소 자체가 고백된 죄의 기록들 때문에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들을 심판하여 영원히 도말하여 버림으로써 성소를 죄의 모든 기록들로부터 말끔히 씻어 버리는 정결사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 16장 29,30절은 대속죄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그러므로 2300년이라는 기간이 끝마쳐진 후에는 하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드디어 심판을 시작하심으로써 성소와 성도들을 정결케 하시는 일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 2300주야 예언이다.

3. 다니엘의 기도

그런데 2300년의 예언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 시작되는 시점만 알면 언제부터 심판이 하늘 성소에서 시작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니엘 9장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시작하여 2300년이 지난 후부터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다음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 예언을 주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희가 돌아가서 이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축하라”는 명령이 내리는 그 시간부터 2300년이 지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니엘 9장의 대부분은 다니엘의 기도이다. 그가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다가 유대 나라가 다시 회복되어 돌아가게 되는 70년의 예언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9장의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2300년의 예언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 시작되는 시점만 알면 언제부터 심판이 하늘 성소에서 시작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니엘 9장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시작하여 2300년이 지난 후부터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다음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 예언을 주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희가 돌아가서 이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축하라”는 명령이 내리는 그 시간부터 2300년이 지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니엘 9장의 대부분은 다니엘의 기도이다. 그가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다가 유대 나라가 다시 회복되어 돌아가게 되는 70년의 예언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9장의 거의 대부분이다.

단 9:1,2 –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왕 때에도 국무총리였는데 그 정권이 바뀌고 메대 페르샤 왕권이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진실함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었다.

단 9:3-6 –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은 “저 백성들이 범죄했습니다”라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를 포함해서 “우리가 범죄했습니다”라고 금식하며 겸손하게 기도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2300일 예언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8장에서는 그가 이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절했었다.

단 9:7 –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려움과 시련을 받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시지만 마귀가 시험한다.

단 9;8-19 –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얼마나 간절하며 눈물겨운 기도인가!

단 9:20-22 –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4. 2300일 예언의 시작 기간인 70이레(주일) 예언

다니엘이 기도할 때, 유대인들에게 다시 은혜의 기간을 70이레(70주일=70×7일=490일)동안 줄 것을 말씀해 주었는데 그것이 2300일 예언의 시작점이다.

단 9;23-25 –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1) 그리스도의 초림과 유대 민족의 마지막 유예 기간을 가리키는 70주일 예언

구약에 나타난 유대 민족의 역사는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과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생활 등과 같은 고난을 통하여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처럼 살기를 고대하였지만, 그들은 불순종의 길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유예 기간을 주시는 것이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주일(이레) 예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예언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다니엘 선지자에게 전달하셨다.

“네(다니엘)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단 9:24).

이 70주일 예언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 번 주어진 마지막 은혜 기간이다. 이 예언적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위하여 잘 준비해야만 하였다. 이 예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70주일이라는 암호를 풀어야만 하는데,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할 때를 대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풀 수 있는 암호 해독법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다. “1일은 1년이니라”(겔 4:6, 민 14:34). 건축기사들이 1미터를 1센티미터로 환산하여 축소 도면을 그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간적 예언을 해석할 때에도 그분께서 지정하신 이 특별한 계산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70주일은 490일(70주일x7일)이고, 이것은 기간적 예언의 계산 원칙에 의거하여 490년이 된다. 그런데 490년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계속되는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들어 보도록 하자.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 곧 메시야가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7주)와 육십이 이레(62주)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요” (단 9:25).

자,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70주일 즉, 490년의 시작점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이며, 그때부터 시작해서 7주일과 62주일 즉, 69주일(69 x 7=483일, 즉 483년)이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이다.

2) 70주일 예언이 2300일 예언에 속하였다는 3가지 증거

한 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다.다니엘 8장에 2300일 예언이 나오는데 어떻게 9장에 나오는 유대인을 위한 은혜의 기간인 490년의 예언 기간이 2300주야 예언과 연결되고 그것에 속한 예언인지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가) 다니엘 8장에서 다니엘은 2300년에 대한 이상을 본 후에 이해하지 못하고 기절하였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중요한 계시를 다니엘에게 이해시키시려고 가브리엘 천사를 파송해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

단 9:21~23,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이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음으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 지니라.”

8장에서 2300일 예언을 주셨는데 다니엘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다음 9장 23절에서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는 말을 한 다음에 24절부터 이 예언에 대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2300주야라는 언급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니엘 9장 끝 부분 즉, 24절 이후에 나오는 예언 해석은 다니엘이 8장에서 이해되지 못한 2300주야에 관한 해석일 수밖에 없다.

2) 또한 9장에서 “이상”(계시)이라는 단어가 9장에 두 번 나오는데, 원래 히브리어로 각각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첫 번째 “그전 이상 중에 본”(단 9:21)이라고 말할 때의 “이상”은 히브리어로 “하존(Hazon)”이고, 두 번째 가브리엘이 말한 “그 이상을 깨달으라”(단 9:23)에 나오는 “이상”은 “마레(Mare)”이다. 그런데 다니엘 8장 17절에서 2300년에 대한 이상을 언급할 때에도 그 이상을 표현할 때 마레(Mare)라는 동일한 단어로 사용했다.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아 왔는데 그가 나아 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Mare)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단 8:17). 그러므로 9장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깨달으라고 설명하여 주는 이상은 바로 2300년에 대한 이상, 즉 다니엘이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기절하였던(단 8:27)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3) 또한 다니엘 9장 24절 자체가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여기에서 기한을 정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영어 성경에서도 말하였듯이 Cut off, 즉 어디서부터 잘라 내었다는 뜻이다. 히브리 원어로 Chadak(샤닥)인데, 그 뜻은 어디로부터 잘라 내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떤 더 큰 부분에서부터 이 490년을 잘라 내었을까? 이 70이레(주일), 즉 유대인들을 위하여 주어진 은혜의 기간인 490년에 대한 예언을 어디에서부터 잘라 내었다는 말인가?물론 그것은 2300년의 긴예언 기간에서부터 잘라 낸 첫 번째 기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속죄일 즉 심판하셔서 성도들을 신원하여 주시는 일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지으라는 중건령이 내릴 때부터 계산하여 2300년에 이르는 때에 시작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때에 드디어 하늘 성소가 정결하여진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기록책을 살피면서 심판하여 지워버림으로 죄가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늘 성소가 정결케 되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온 세상을 향한 대속죄일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성소가 정결케 된다는 말은 유대인의 성소 언어이다. 유대인의 성소를 이해해야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대속죄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날은 심판의 날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가장 긴 2300년에 대한 예언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엄숙한 예언이 아닐 수가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시기 전에 심판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먼저 하늘에서 심판이 있고 심판(재판)이 마쳐진 다음에 예수께서 재강림하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먼저 살피고 심판하신 후에야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이상은 끝날 마지막 때에 관한 일이라고 다니엘서는 말하고 있지 않는가!

성경 예언의 원칙 중 하나가 1일이 1년이라는 것이다.70주일도 마찬가지로 70곱하기 7하여 490일이 되는데, 그것은 예언 기간의 해석의 원칙을 따라 490년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반역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있는 유대인들의 은혜 기간을 490년간 다시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2300년간의 예언은 다니엘이 살아 있던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처음 490년 동안은 유대인들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 될 것이고 그 이후 남은 1810년이 지나면 (2300년-490년=1810년), 다시 말해서 490년의 기간이 지나고 거기서부터 다시 1810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면 마지막 시대의 심판이 하늘의 성소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지상의 성소는 불타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90년은 유대인들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고, 1810년 동안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 되는 것이다. 이 예언에서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예수께서 어느 해에 정확하게 이 세상에서 메시야의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시간을 알려주셨고 또한 유대인들이 결국에는 어느 해에 정확하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며 또한 결국에는 어느 해에 그들이 버림받게 되어 그들이 더 이상은 택한 민족이 아니고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자세한 예언들이 2300년의 예언 기간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얼마나 흥미 있는 예언인가? 그러면 2300년의 예언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예언의 첫 부분인 490년의 예언 기간의 시작점에서 같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490년은 2300년이라는 기간의 첫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예언은 과연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5. 정확한 시간에 성취된 그리스도의 침례와 공중 봉사 사업

다니엘 9장 25절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가브리엘 천사는 기름부음을 받은 왕 곧 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 62이레와 7이레를 지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62이레(주일)와 7이레(주일)는 62에 7을 더하여 69주일이 된다. 69주일은 며칠인가? 483일이다(69주일x7=483일). 예언 기간의 원칙은 1일이 1년이므로 483일은 483년으로 환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린 B.C 457년부터 시작하여 483년 후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예언인 것이다.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의 조서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B.C 457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483년을 내려가면, 역사의 연대표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셨던 해이다.

한 가지 우리가 계산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B.C에서 A.D로 넘어 갈 때에, 다시 말해서 기원 전에서 기원 후로 넘어갈 때에는 “0”년이 없으므로 B.C 1년에서 그 다음 해가 A.D 1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실제적인 계산에서는 1년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함께 계산해 보도록 하자. B.C 457년에서부터 69주일인 483년을 앞으로 더해 가면 얼마가 나오는가? A.D 26년이 나오는데, B.C에서 A.D로 넘어가는데 1년을 더해 주어야 하므로 실제적으로는 A.D 27년이 된다. A.D 27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놀랍게도 그 해는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공중 전도사업을 시작하신 바로 그 해이다.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

사도행전 10장 38절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라고 말씀하였다.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3장 1절은 침례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전파한 해가 디베료 가이사 제15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디베료 가이사 15년은 바로 역사적으로 A.D 27년이었다. 그 해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드디어 메시야로서 복음 사업을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언을 근거로 당신의 지상 사업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The time is fulfilled, 때가 성취되었고 )”(막 1:14,15).

무슨 때가 찼다는 것인가? 다니엘 9장에 예언되어 있는 69주일(483년)이라는 예언의 때가 찼던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셨으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공중전도를 시작하셨다. 이 예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미래를 예언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면 이렇게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하여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누구인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그리스도”란 뜻이다. “메시야”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히브리말이고 “그리스도”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헬라 말이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25절)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생애하실 정확한 기간을 말하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통 인간이 아니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경에 정확하게 예언하여 둔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이 성경절에서 가브리엘은 우리에게 “깨달아 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 또한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예언일까? 그렇다. 가브리엘 천사는 우리에게 깨달아 알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예언의 시작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 즉,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되고 파괴되어 있는 예루살렘 도성를 다시 지으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시작한다고 천사 가브리엘이 설명하여 주었다. 이것은 놀라운 열쇠가 아닐 수 없다. 2300주야 기간의 시작점이다. 그러면 언제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대인들에게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는지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6. 2300일 예언의 시작점

에스라 7장 7절에 그 해답이 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을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연도를 그곳에서 찾을 수가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 이 2300년의 예언의 수수께끼가 드디어 서서히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페르샤 제국의 왕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은 은과 금과 재료들을 주면서 유대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 자기들의 무너진 성전과 성을 다시 건축하도록 허락하는 명령을 내려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에스라 7장 7,13절을 읽어보도록 하자.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올 때에 … 조서하노니.”

여기에 분명히 이 예언의 시작점인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난 해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해는 역사적으로, 페르샤 나라의 아닥사스다 왕 7년 즉, B.C 457년인 것이다. 혹자들은 고레스왕과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 할지 모르지마는, 그 조서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축을 허락하는 조서들이었지, 아닥사스다 왕이 내려준 조서처럼 성벽을 재건하고 독립된 나라를 설립 할 것에 대한 완전한 조서가 아니었다 . 그로므로 B.C 457년의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2300년 계시의 시작점으로 삼는 것이다.

7.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

다니엘 9장 26,27절을 읽어보도록 하자.

단 9:26,27 –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2300년 예언의 첫 부분인 70주일 예언 속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정확한 해가 나타나 있다. 가브리엘 천사는 62주일 후, 즉 서기 27년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후에,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하실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1week)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week)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27절. (여기서 “이레(week)의 절반”은 7년의 반이므로 3.5년 즉, 3년 반이 됨) 이 예언의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시작하여 7주일과 62주일 즉, 69주일(483년)이 지나면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요, 69주일(483년)이 지난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주인 70번째 주(7년), 그 마지막 7년 동안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은혜의 70주일 기간, 즉 490년 기간이 끝마쳐지는 마지막 한 주일(7년)이 될 것이며, 그때에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즉,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2300일 예언의 첫 부분인 70주일(490년) 예언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중건령이 선포된 때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때로부터 7주일과 62주일 즉, 483년이 지나가고 마지막 70번째 주일 즉 마지막 7년의 절반이 되는 시점에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것이 70주일 예언의 핵심적 내용이 되는 것이다. 7주일과 62주일, 합해서 483년이 지나간 후에 그 나머지 한 주 즉, 예언적 기간인 그 마지막 7년의 절반인 그 중간에 그리스도가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이다.

27절은 그리스도가 70주일 예언 곧 490년 예언 기간 동안의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 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26장 27,2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의 피로 인류와 언약을 굳게 정하셨다. 또한 그가 그 마지막 한 주일 즉 7년의 절반에, 다시 말해서 7년의 중간인 3년 반 만에, 다시 말해서 A.D 27년에 침례 받으시고 복음 사업을 시작하신 지 3년 반 후에 제사와 예물을 금하시겠다고 한 것이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서기 27년 가을부터 3년 반 후인 서기 31년 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메시야의 죽음을 상징하여 드려온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A.D 31년 봄 유월절 날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A.D 31년 봄 유월절에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다시 한 번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시키셨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이며, 얼마나 큰 사랑인가!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성소의 번제단 위에서 태움으로써,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으며, 양의 죽음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아왔다. 그러나 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중간인 서기 31년 봄,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더 이상 양을 잡아서 태워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 성소 제도의 모든 제사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상징의 실체가 오신 다음에는 더 이상 양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일이 필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였도다…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5~7). 또한 “이(구약 시대의)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2,18). 얼마나 분명한 예언의 성취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더 이상 양을 잡아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적이 성소에서 일어났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자, 이에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 성소 안에 있던 성전 휘장이 갑자기 찢어짐으로써, 모세가 제사 제도에 대해서 기록하였던 의문의 율법이 정하고 있는 제사와 예물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셨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4)

8. 정확한 시간에 끝난 유대인의 은혜의 기간과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전파의 시작

70 주일 예언 중에서 마지막 1주일의 절반 즉, 7년의 절반인 서기 31년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이제 그 나머지 절반인 3년 반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허락하신 70주일의 전체 예언이 완전히 종결된다. 70주일 예언 중에서 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절반 이후에 성취된 사건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은 백성들에게 여전히 3년 반이라는 은혜의 기간이 남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 이후에도 한동안 제자들은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일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새 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행 7:51~60), 이로서 유대 민족을 위한 70주일(490년)의 유예 기간은 완전히 끝났으며, 곧 이어서 일어난 핍박과 함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온 세계로 퍼져나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사도행전 8장). 바로 이것이 70주일 예언의 끝을 알리는 최후의 신호였으며, 유대 민족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는 순간이었고, 온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 교회 시대가 개막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이것은 예수께서 이미 마태복음 21장 43절에 “그러므로 너희(유대인)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

9. 2300일 예언의 종점에 대한 오해와 새로운 빛의 발견

2300일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A.D 27년에 메시야의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또한 주님께서 A.D 31년 봄에 돌아가심으로 제사와 예물을 금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못 박고 진리를 거절하였으며 드디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면서 그리스도교를 내어 쫓음으로 그들의 은혜의 기간이 A.D 34년에 끝나게 될 것이라는 기간적인 예언도 놀랍게도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렇게 해서 2300년간의 기간적인 예언의 상반부는 예수님의 초림에 초점을 맞추어서 예언되었고 또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2300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에 대한 예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300년에서 유대인들의 기간이었던 490년을 빼고 나면 1810년이 남는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시작점인 B.C 457년부터 시작해서 1810을 앞으로 계산해 가면 1843년이 나오게 된다. 물론 이때도 0년이 없으므로 1년을 더하면 1844년이 된다. 1830년도 말기부터 23000주야 예언을 연구하던 중 많은 사람들은, 2300주야 예언의 상반부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므로 그 후반부인 2300주야 예언이 마쳐지게 되는 때를 “성소가 정결케 함을 입으리라”고 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착각하였다 . 성소 정결에 대한 정확한 성서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된 오해였다.

그리하여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미에서, 예수께서 1844년도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설교하는 일들이 열렬하게 온 세상 도처에서 일어났었던 것이다. 그들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회중교회 등 총 망라한 여러 교파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오심을 사모했으며 진실되게 준비하려고 했을지라도 그 적용을 잘못함으로 크게 실망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 당시 성경학자들도 그들이 해석하는 이 다니엘 2300년에 대한 해석만큼은 너무나 정확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해에 크게 실망했을지라도 그 예언 자체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재림을 기다리던 그리스도인들이 1844년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소를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심판사업을 가리키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망의 경험 때문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2300주야 예언의 종점에 일어나는 놀라운 심판 사업에 대한 밝은 이해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2300년의 예언 기간이 끝나면서 완전히 말세의 때에 접어들게 된 것이었다.

10. 2300일 예언에 대한 성경 학자들의 견해

2300일 예언은 아래와 같은 성경 학자들의 예언 해석에 기초하였다. 이들 성경 학자들은 한결같이 2300일 예언을 예루살렘성의 중건령(B.C 457년)으로부터 시작되는 2300년간의 긴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1. 1190년도, Floris의 Joachim은 “1일=1년” 원칙을 적용하여 제일 처음으로 1840년 초기에 2300주야 예언이 끝날 것이라고 해석하였음.

2. 1440년도, Cusa의 Nicholas도 이와 유사한 해석을 하였음.

3. 1768년도, 독일의 Johann Petri 목사는 70주일 예언이 2300주야의 첫 부분이며 이 예언은 1840년대 즈음에 마쳐질 것이라고 해석함.

4. 1800년도 초기에 영국의 John Aquila Brown 목사와 미국 South Carolina의 Cummins David 목사도 이와 유사한 해석을 하였음.

5. 1826년도, 미국 인디아나 주의 대학 교수였던 Theodore R. Robertson 목사는 2300주야에 대한 책자를 펴내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킴.

6.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회중교, 성결교회 등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1830년대에 들어 와서 2300주야에 대한 예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됨. 예를 들어, 버지니아 주의 Campbell목사, 오하이오 주의 Wilson 목사, 테네시 주의 McCorkle 목사, 뉴욕 주의 Scott 목사, 카나다의 Burwell 목사, 필라델피아의 A.J. Krupp 목사, 메인 주의 David McGregor 목사, 웨스트 버지니아의 Charles Wheeler 목사 등등임.

7. 남미에서, 천주교 신부였던 Lacunza 신부와 Jose Maria De Rosa 신부의 2300주야 연구와 해석은 멕시코와 남미의 기독교 교인들에게 많은 부흥을 일으켜 줌.

8. 동 시대 동안의 영국 성경학자들도 포함 되었다 : Lewis Way, William Cunnihame, William Anderson, Mathew Habershon, Joshua W. Brooks, Hugh McCeile, Geral T. Noel, Edward Bickersteth, John Cox, William Thorp, Joseph D. Sirr, Joseph Wolf.

9. 같은 당시에 뉴 햄프셔 주의 침례교회 거의 모든 교회들은 2300주야 예언이 1844년도에 끝났다는 해석을 받아들였다.

10. 초기 미국 대학들의 학장들은 2300년 예언 해석에 대부분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 예를 들어 예일 대학의 총장 Dweight 박사, 동부의 장로교회 신학 대학장이었던 George Jenkin 박사, 켄터키 주의 Bacon College의 James Shannon 총장 등등.

11. 모든 것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1260년) 예언이 마쳐지던 해인 1798년 교황권이 일시적으로 몰락하게 되면서 성경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말세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1798년 전후로 해서 불란서 혁명이 일어나고 무신론 세력이 기치를 들기 시작하여 세계 국가들의 면모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건국하여 일어났으며 이 세상 역사가 드디어 말세를 가리키고 있는 예언들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2300년의 예언은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이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발하기 시작하는 심각한 마지막 시대에 돌입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1844년도가 지나자 이 세상은 성경의 권위를 비판하는 벨하우젠의 고등비평의 소리가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니이체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회의주의의 씨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1859년에는 드디어 다윈의 진화론이 소개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고 부인하는 반역적인 운동들이 세상을 온통 뒤덮기 시작하였다. 1865년도에 멘델의 유전 법칙의 발표 결과 다윈의 진화론이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인간들이 성경의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신론적인 사상으로 이 지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14장 7절을 통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경고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2300년의 예언 기간이 끝난 지 150여 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도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노아는 120년 동안 홍수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다. 120년간의 긴 세월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1844년 이후 하늘 성소에서 각 개인에 대한 정결 사업과 심판 사업이 하늘에서 진행 중에 있고 죽은 자로부터 시작해서 죄를 씻어버리고 도말해서 없애버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은 온 우주의 배심원들에게 펼쳐져서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시는 피조물들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의문이나 반역이 생기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 성소의 심판의 사건은 우리의 눈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분명히 주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홍수가 온다는 약속대로 큰 물의 퍼부어짐이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멸망한 것처럼 이제는 약속대로 세상이 불로 멸망하게 될 것이고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는가? 2300일 예언은 하늘에서 이미 하늘 성소의 정결 사업, 즉 심판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엄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은 세상의 마지막 시대이다. 다니엘 9장의 예언은 놀라운 예언이다.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진실로 마음이 정직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은 부인할 수 없는 말씀이다. 믿는다고 말만 하지 말고 말씀대로 살라. 진리대로 따라 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출처] 다니엘서 9장 – (킹스 메신저) |작성자 예수둥이

호크마 주석, 다니엘 09장

=====9:1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20-27절)이 기술된다. 한편 본장은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정하였다는 점(2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원년 – 여기서 ‘다리오’는 6:1에 이미 언급되었는 바, 메대의 마지막 왕이며 고레스의 장인인 키악사레스 2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부왕 ‘아하수에로’는 곧 ‘아스투아게스'(Astyages)이다. 또한 본 구절의 ‘원년’은 다리오의 메대 왕 즉위 원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레스에게 메대의 통치권을 위임한 뒤, 바벨론 지역만의 섭정 왕으로 재즉위한 해인 B.C. 538년(또는 537)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 구절의 상세한 내용은 6:1 주석을 참조하라.

=====9:2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3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4

본격적인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현대의 많은 비평학자들은 이 기도문의 형식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타난 기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4절-느 1:5;9:32;7/8절-스 9:7;느 9:34/14절-느 9:33/15절-느 1:10;9:10)에서 이를 포로기 이후에 편집된 삽입구로 이해한다(Hitzig, Ewald, Berth). 그러나 그 기도 대부분의 근간이 구약의 포로기 이전의 문서라는 점(7, 8절-대하 32:21;시 44:16;렘 7:19/9절-시 130:4/11절-대하 12:7;34:21;렘 42:18;44:6;나 1:6 등)을 고려해 볼 때, 타당성이 희박하다. 본절은 신 7:9에 의거한 것으로 느 1:5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일차적 명칭들이 모두 나타나는 바, ‘여호와'(* , 야훼)는 신실한 언약 성취자로서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 엘로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주)하나님'(* , 아도나이)은 피조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는 당시 유대 민족이 처한 내적, 외적 상황 곧 그들의 회개의 수용과 해방의 예언 성취를 염두에 둔 다니엘의 간절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9:5

느 1:6, 7과 유사하다. 범죄하여…반역하여 – ‘범죄하여'(* , 하타)는 ‘빗나가다’란 문자적 의미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죄를, ‘패역하며'(* , 아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완악한 심성(잠 12:8)으로서의 내적 의미의 범죄를, ‘행악하며'(* , 라솨)는 ‘잘못 행하다’란 뜻으로 실제적 행위로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외적 의미의 범죄를, ‘반역하여'(* , 마라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하는 적극적 의미의 번죄를 각각 가리키는 바, 본 구절에서 다니엘은 범죄의 점층적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종류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징표로 주신 계명에서 떠났다는 의미로, 위에 언급된 모든 범죄를 포괄적으로 함축한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떠난 사실로 귀결된다.

=====9:6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절의 범죄에 더해서 선지자를 통해 발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무시한 또 하나의 죄악을 부가한다(대하 36:16;느 9:30, 3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들은 불신앙과 이방의 우상 숭배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여기서는 열강의 침략과 포로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7절;렘 29:19).

=====9:7

공의는…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 스 9:7;렘 7:19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 , 체다카)에 근거하여 징벌을 받게 됨을 설명한다. 즉 이방인들의 손에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Kranichfeld).

오늘날과 같아서 – 여기서 ‘오늘날’은 현재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고난의 시기, 곧 이방에서의 포로 생활을 의미한다. 유다 사람들과…이스라엘 –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은 모두 남왕국 유다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렘 4:4;11:2;17:25),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는 바, 이는 하나님의 선민되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가까운 데…먼 데 있는 자’는 모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들이 포로되어 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이방의 장소를 가리킨다.

=====9:8-10

8, 10절은 각각 7저로가 6절의 반복으로 백성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로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수욕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9절)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긍휼과 사유)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느 9:17). 한편 ‘긍휼'(* , 라함)의 일차적 의미는 여성의 ‘자궁'(창 49:25)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태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에 갖는 무한한 애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9:11

백성들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필연적인 징벌이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성취적 측면에서 15절까지 기술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는 (1) 율법을 범함(11절), (2) 불순종(11절), (3) 회개치 않음(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맹세대로 되었사오니 – 여기서 ‘내렸으되'(* , 나타크)는 특별히 심판적 징벌의 수여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창 19:24;렘 7:20;42:18;44:6). 한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는 율법을 범하고 불순종한 자들에게 심판적 위협으로 주어진 레 26:14 이하와 신 28:15 이하의 내용을 지시하는 바, 본 구절은 그 저주의 맹세가 이미 자신들에게 성취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9:12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 – 여기서 ‘재판관’은 법정적 의미에서의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치리를 담당한 왕들이나 백성의 장 또는 방백 등 국가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2:10;148:11). 온 천하에…없나이다 –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 성전과 모든 성읍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여타 국가나 도시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침략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렬한 행위였음이 분명하다(Thomson).

=====9:13

우리의 죄악을…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에 기록된 ‘주의 진리’에 대해 혹자는 축복의 언약이든 저주의 맹세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백성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 이미 제시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회개했어야함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Hitzig, Thomso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좀더 희망적인 측면에서 ‘주의 진리’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깨닫고, 구원의 조속한 성취를 위해 미리 회개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본다.

=====9:14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악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피시다가’란 뜻이다(렘 1:12;31:28;44:27).

=====9:15

강한 손으로…명성을 얻으신 – 렘 32:20, 21에 근거한 것으로 느 1:10;9:10과 유사한 본 구절은 곧 애굽에서의 해방을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열방 중에 나타내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다니엘은 이전 선조들의 이러한 애굽에서의 해방이 하나님의 급작스런 사역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족장들과 언약 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성취란 점(출 32:13;사 63:16)을 근거로 해서 유대 민족의 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언약의 확고한 성취를 간구하고 있다(Delitzsch).

=====9:16

겸손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 찬양에 이어 다니엘은 이제 그 죄에 대해 시행된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 제거와 이스라엘의 구속을 간구한다. 주의 공의를 좇으사…떠나게 하옵소서 – 여기서 ‘공의'(* , 치드코테카)는 ‘공의들’이란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신실한 언약의 이행, 곧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지시한다(Delitzsch, Behrman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전례대로(출애굽 등) 이스라엘의 해방과 회복을 언약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켜 달라는 다니엘의 간구이다. 사면에 있는 자에게…받음이니이다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9:17-19

본문 기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인 바, 다니엘은 그 구원의 유일한 근거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스스로 행하실 그 이름의 영광스런 회복(17절-‘주를 위하여’, 18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19절-‘주 자신을 위하여’)에서 찾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의 얼굴 빛을…비취시옵소서 – 시 80:3, 7, 19과 유사한 문구이다. 여기서 ‘주의 얼굴 빛’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 이는 단순히 주의 이름을 따라 사람드레게 불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그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렘 7장, Delitzsch). 우리의 의를…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이스라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곧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증하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여 들으소서…행하소서 – 곧 회개의 구원의 간구(‘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를 열납하시고 그에 대해 조속히 응답하시기를(‘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바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신앙 자세가 점층적인 ‘주여…소서’라는 삼중 반복 속에서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9:20,21

다니엘의 신실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다.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주는 구절로(창 24: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Thomson).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 여기서 ‘이전 이상’은 8장에 언급된 ‘을래 강변의 이상’을 가리키는 바, 그 때에 본 천사 가브리엘(8:15, 16)이 지금 다시 다니엘 앞에 나타났다. 한편 8:15의 ‘사람'(* , 가베르)과는 달리 본 구절의 ‘사람’이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이쉬'(* )로 쓰여진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그렇게 다니엘과 애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듯하다(눅 24:4;행 1:10). 빨리 날아서…내게 이르더니 – 여기서 ‘빨리…날아서'(* , 무아프 아프)의 ‘야아프'(* )는 원어상 ‘(신속하게) 날다’란 뜻과 ‘피곤하다’, ‘지치다’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 두 의미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의미에 의거할 때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과 연관된 수식어로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처럼 가브리엘이 신속하게 날아서 다니엘에게 왔다는 사실로 해석된다(Havernick, Hitzig, Jacchia 등의 랍비들). 이러한 의미에 의거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천사들이 날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후자의 의미를 취할 때 이 말은 인간 다니엘에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까지 계속되는 기도로 말미암아 몹시 지쳐서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Delitzsch, Thomson, Kliefoth, Gesenius 등). 이중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여기서 ‘저녁 제사 드릴 때’의 ‘제사'(* , 민하)가 피없는 소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유대인들이 오후 3, 4시 경에 정규적으로 드리는 소제 때의 시간을 가리킨다(민 28;4).

=====9:22

지혜와 총명 – 곧 8:16, 17의 ‘깨달아 알다’와 동일한 의미로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수여하신 영적 통찰력을 가리킨다.

=====9:23

네가 기도를…명령이 내렸으므로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준 21절의 ‘내가…기도할 때에’란 말보다 가일층 그 의미가 강된 구절로, 하나님게서는 다니엘이 동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다니엘의 중심을 미리 아시고 그 응답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순간적인 응답은 곧 7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연단을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재확증하기 위한 것으로 그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연민과 긍휼이 반영된 것이다.

은총을 입은 자(* , 하무도트) –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귀한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알게 한다. 한편 에발트(Ewald)는 ‘지극히 사랑받는 자'(God loves you very much, LB)로 번역한다.

=====9:24

본절에서 마지막 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인데,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1)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어 있다.

칠십 이레 – ‘이레'(* , 솨부임)는 ‘일곱’의 의미로 ‘한 주간'(week)을 가리키기도 하나(10:2), 때로는 1년(year)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창 29:27). 따라서 여기서의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 70주간을 의미하는 바, 이를 날 수로 계산하여 하루를 1년으로 간주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도출되는데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칠십 이레’는 다시 ‘7이레와 62이레'(25절 주석 참조), ‘중간 공백기'(26절 주석 참조)와 ‘한 이레'(27절 주석 참조)로 구분된다. 허물이 마치며…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메시야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메시야 개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본 구절의 여섯 항목 중 처음의 세 가지는 죄의 제거와 연관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에 성취되었으며(히 9:26), 나중의 세 가지는 의(義)의 회복과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이말 하나님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성취되어 가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결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계시된 것이다(사 61:1-3).

=====9:25

일곱 이레 –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B.C. 458)의 포로 귀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한 490년 동안을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상징적 해석으로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된 때(B.C. 536)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고레스 원년(B.C. 536)에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제2성전인 스룹바벧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B.C. 444)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일롭 이레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를 지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36:22, 23;스 1:1-4;사 44:28).

육십 이 이레 – 이 또한 세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1) 에스라 때부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그리스도의 성육신 때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신약의 교회 시대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일롭 이레에 연속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B.C. 444)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B.C. 4)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일곱 이레’의 주석과 이 육십 이 이레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영적 쇠퇴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준비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곤란한 동안에…해자가 이룰 것이며 – 여기서 ‘곤란한 동안’은 고레스의 칙령(B.C. 536)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성전의 중건과 성벽을 수축할 때 겪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느 4, 6장). 한편 ‘거리'(* , 레호브)는 ‘넓은 사거리’란 뜻으로 ‘넓은 광장’을, ‘해자'(* , 하루츠)는 성벽을 따라 그 외곽에 파놓은 도랑을 각각 의미하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의 수축이 온전하게 성공될 것임을 예시하는 말이다.

=====9:26

육십 이 이레 후에…없어질 것이며 – 이는 곧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25절) 그리고 최종적인 ‘한 이레'(27절) 사이에 있을 중간 공백기를 가리키는 바, 이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의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의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로마의 디도(Titus, A.D. 79-81)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훼파 사건(A.D. 70) 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별히 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는 사항이다. 장차 한 왕의…훼파하려니와 – 여기서 ‘한 왕’은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A.D. 79) 디도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구절은 그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 훼파 사건을 가리킨다(A.D. 70). 그의 종말은…작정되었느니라 – 감람 산 강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마 24:7-22)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고통과 고난, 전쟁이 이 세대 끝까지 게속될 것이며 그 종국에는 엄청난 대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여기서의 ‘그의 종말’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징벌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를 아니다.

=====9:27

한 이레 – 세계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대환난 시대로 적그리스도의 활동 시기를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이 7년 대환난기의 절반인 3년 반 동안 성도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나(‘그가 장차…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후반 부인 3년 반의 기간에(7:25 주석 참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그 이레의 절반에…아지리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종국에는 그리스도의재림으로 영원한 멸망의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7:21, 22 주석 참조;마 24:15;살후 2:4;계 11-13장). 한편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중 특별한 참되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사 53:11, 12).

이레의 절반에 – 위의 주석에서 언급되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후반부 3년 반을 가리킨다(계 11:2, 9).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이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제시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기사에서 보여진 바 있다(8:11 주석 참조).

강포하여…설 것이며 – ‘강포하여 미운 물건'(* , 쉬쿠침 메쇼멤)은 문자적으로 ‘가증한 황폐케 하는 자’란 뜻으로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유사한 표현인 바,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감란 산 강론에 밝힌 ‘멸망을 가져오는 가증한 것'(마 24:15)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문장과 함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신속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성도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박해가 이루어질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Thomson).

또 이미 정한…쏟아지리라 – 여기서 ‘황폐케 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그 정한 종말의 때까지 적그리스도가 계속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편 적그리스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계 16장에 언급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정한 종말’은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궤멸이 성취될 아마겟돈 전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갈등과 궁극적인 결과들을 환상의 형태로 계시한 전장

(8장)에 이어서 본장은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환상의 내용은 주로 이방인들과 관련된 계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본장부터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이 세

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적인 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이하게도 본장에서는 다

니엘의 간절한 기도를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을 실감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

성되어 있는데,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는 전반부(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을

묘사하는 후반부(20-27절)로 구분된다.

한편, 본장의 서구(1-3절) 역사적, 개인적 상황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형

식은 7장(1, 2장), 8장(1, 2절)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러한 언급은 환상

의 내용인 하나님의 계시가 세상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

기 위한 의도적 기록이다.

또한, 본장에는 환상 이전에 다니엘의 기도가 묘사되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스라

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리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어서 나오는

환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계시하는 내용임을 암시해준다. 즉 이스라엘의 미래

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으로서 칠십 이레의 환상이 계시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포로 시대 이후의 에스라(스 9:6-15)나 느헤미야(느 1:5-11 ;

9:6-38), 포로 시대 이전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비슷하다. 이 사실은 포로 시대 이전

이나 포로 시대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일하게 죄악에 빠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다니엘의 통회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해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칠십 이레의 환상’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직접 계시된 것으로 포로 귀

환과 성전 중건,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적그리스도의 출

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언되어 있다.

또한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말씀을 깨닫고(렘 25:11,

12 ; 29:10)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참된 기도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다니엘은 비록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지라도 민족의

죄에 대한 연대감을 느끼고 철저하게 통회하였다. 즉, 주위 사람들의 죄에 대해 민감

하게 반응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애통하며 간구했다. 이처럼 성도는 개인만을 생

각해서는 곤란하고, 시대적 죄악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기도해야 한다.

1. 다니엘의 기도(9:1-19)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의 형태로 묘사한 데 이어서(7, 8장) 본 단락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바벧론 포로에서 자유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렘 25:11의 말씀을 통하여 바벧론 포로가 70년만에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바벧론 포로라는 수치스러운 역사적인 상황이 끝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죄악이 처리

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처럼 간절한 다니엘의 기도를 쇄하고 있는 단락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

백하는 내용의 기도를 묘사하는 전반부(3-6절), (2) 하나미의 공의와 이스라엘 백성들

을 향한 징계를 묘사하는 중반부(7-14절), (3)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후반부

(15-1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민족의 회복과 미래

의 영광을 간구하는 다니엘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성도의 자세를 극명하게 제시하

고 있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다니엘의 기도는 에스라의 기도와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유사점

이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에스라(9:5-15) 다니엘(9:3-19)

회개의 자세 옷을 찢음 금식과 재를 무릅씀(9:3)

죄의 고백 허물이 커서 하늘에미침(9-6) 범죄,패역,행악,반역(9:5)

열조의 죄를 고백함 열조때로부터 죄가 비롯됨(9:7) 수욕이열조에게 돌아옴(9:8)

선지자의 말을 어김 땅에 대한 경고(9:11)를 어김 총체적 반역(9:6)

또한, 본 단락에서 나오는 ‘서책'(2절)은 단수로 쓰여 있지 않고 복수로 쓰였다. 이

사실은 다니엘이 렘 25:11의 말씀만을 보았다기보다는 예레미야 전체를 읽어내려 가다

가 본 구절을 발견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묵

상할 때 시대적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패역한 세대일수록 참된 회개의 기도가 요청된다(3-6절). 다니엘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과 반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공의에 입각하여 징계

를 시행했던 중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지난 날의 죄악은 너무나 심각한 것이었다.

유다 전역은 우상 숭배로 물들었으며, 도적의 소굴과 같이 변하였다(렘 7:9-11). 그

러므로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벧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다니엘은 진정한 회개만이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귀환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통회하기 시작하였다. 진실된 회개만이 하나니므이 용서와 새로운 회복을 가

능하게 한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7-14절).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죄와 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거듭하면 하나님

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전개된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당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도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다. 특히

저자는 모세의 율법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13

절).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된 생활에서

돌이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백성들의 이기적인 특혜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의

를 바라볼 때 바른 삶이 가능하게 된다.

(3)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15-19절).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면 자연적

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악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을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발견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살 소망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에게 긍휼을 구할 때 온

전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눅 18:1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가

장 잘 설명해 주는 표본이 된다(롬 3:23, 24).

2. 칠십 이레의 환상(9:20-27)

본 단락의 칠십 이레의 환상은 다니엘의 기도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에

있었던 환상들(2, 7, 8장)과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전장(8:16)에서 나타났던 ‘가브

리엘’이라는 천사가 본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밀접한 관련이 있음

을 알게 된다. 특히 그동안 환상(7, 8장)이 사건 중심이었던 데 반하여, 본 단락에서

는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환상이 이전의 환상들의 내용을 보

충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니엘이 이스라엘 백성

들의 회복과 관련하여 기도를 드리는 문맥에서 이 환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순간적인 회복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궁극적인 회복을

내다보고 있음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이 계시되기 전의 다니엘과 가브리

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20-23절), (2)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을 소개

하는 후반부(24-2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응 통하여 본문은 이스라엘

의 회복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게시함으로써 포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런데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개영 성경의 ‘칠십 이레’에 대한 번역이다. 이 말은 보통 칠십 주간으로 이해되고 있

으나, 실제적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칠십의 일곱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원문을 살펴보면 70이라는 숫자보다 ‘7’이라는 숫자에 강조점이 있음을 발견하

게 된다. 왜냐하면 히브리 원문에서는 ‘칠십’이라는 숫자를 형용사처럼 ‘일곱’이라는

명사 뒤에 배열했다. 원래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항상 수사가 명사보다 앞선다. 그런

데 여기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은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7에 대

한 해석은 문자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환상이라는 상징

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간을 의미하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490년으로 보기

는 어렵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는 고레스 원년부터 제2성전의 건축까지의 기간으로

보고, 2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희년 제도를 생각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레 25장). 희년이란 7년씩 7

번 지나서 임하는 해(제50년)이다. 그때에는 모든 부채를 탕감시키고 종을 해방시키

며 모두 속량해준다. 그러므로 70이레의 마지막 해는 모든 것에 걸쳐서 가장 최대의

안식일이요 모든 종류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년

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암시적으로 예수 그리스노의 메시야적 사역을 보여 준다는 것은

감안할 때 메시야적 사역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구약 성경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예

언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제 여기에 제시된 메시야 시대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메시야 시대에 있을 소극적인 측면들(24a절) : 이기서는 ‘허물이 마

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의 영속(永續)되는’ 세 가지 측면이 드러나 있다. ‘허물, 죄,

죄악’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당한 저주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부정적인 양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의 속죄 사역은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처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히 9:26). 구

약 시대에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 해마다 제사를 드려 죄를 정결케 했으나, 예수님은

친히 제사장과 제물이 되셔서 죄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은 완벽하고 영원한 제사를

두렸다(히 10:4, 11, 14). 그러므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

다(히 10:8).

(2) 메시야 시대에 있을 적극적인 측면들(24b) : 메시야 시대에는 영원한 의가 드러

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의’란 죄가 제거된 이후에 일어나는 동시적인 현상이다. 죄가 제거되면 완전하고 영

원한 의를 덧입는다(롬 3:22). 그리고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의가기능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졌다(히 1:1,2). 또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더욱 온전한 평화와 자유가 성취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다가 재림으로 완성된다(사 61:1-3).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1) 하나님의 백성들은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고 참된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며(느 1:4-11), (2) 이 세상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랑야 함을 깨닫게 된다(롬 14:7, 8).

다니엘의 70 이레 예언과 계시록의 7년 환난 – 본 단락(20-27절)에 나오는 본서의

70 이레 예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마지막 1이레는 계시록의 7년 대환난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므로 모든 견해를 나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을 종합하여 도표로 정리하기로 한다.

2019/08/31(토) “다니엘 9:1-27” / 작성: 정재규

본문 다니엘 9:1-27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다니엘(1-4절)

오늘 본문은 메대사람 다리오왕때 있었던 일입니다. B.C. 539년쯤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해는 바벨론이 메대·바사 연합국에 의해 무너진 시기입니다. 어수선한 이 때에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예언을 기록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 책을 통해 예루살렘이 70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온 것이 B.C. 605년이었으니,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할 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금식과 기도였습니다. 희망찬 내일이 기약되어 있었음에도 다니엘은 안도에 안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히 주님을 찾았습니다.

(3-4)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다니엘은 말씀을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세대를 구별할 지혜를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대를 초월하고, 상황을 초월하여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었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이 4-19절까지 이어집니다. 먼저 다니엘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해 기도했습니다.

(4, 새번역) 그때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나와 내 백성의 죄를 고백하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주는 크시고 두려워할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항상 주의 약속을 지키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크고 두려운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위협하는 세상의 왕이, 위협하는 세상의 상황이나 환경이 크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런 왕이나 세상이나 환경 또 인생의 역사마저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두려운 분임을 분명히 인식한 고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인정한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과 함께 다니엘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실 뿐 아니라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연약함중에라도 주님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한결같은 사랑과 약속에 신실하신 그 주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기도하는 다니엘(5-19절)

다니엘은 주님의 성품에 호소해 기도를 시작하며, 그 하나님 앞에 이 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며 지은 죄를 자백했습니다.

(5-9, 새번역) 그러나 우리는 범죄하였습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고 못된 짓을 하였으며 주의 명령을 거역하였고 주께서 보여 주신 바른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또 주의 종 예언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 왕들과 관리들과 우리 조상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한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항상 의로우신 분이시지만 우리는 오늘날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다 주께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다 주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의 왕들과 관리들과 우리 조상들까지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주를 거역하였습니다만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주는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진심과 간절함으로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막연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잘 못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언급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해 질 수 있는지,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과 긍휼을 통해서만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음을 절감하며 기도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가장중요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 우리에게 죄를 먼저 생각나게 하십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함보다 우리의 원함을 이루는데 더 큰 관심이 있기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분별하여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앞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 주님은 계속 돌아보게 하시지만, 그보다도 우리는 ‘나’에 대한 관심이 더 크진 않습니까?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나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싶어 하시는지…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함을 주님이 해결해 주실 때 회복이 일어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겸허히 주님의 음성의 길을 따라 걸을 때에만, 죄를 무너뜨려 회복으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손에 우리의 인생을 올려둘 때에만 진정한 회복이 일어납니다.

다니엘은 백성의 죄를 나의 죄로 끌어안았습니다. 복음송 가사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를 위한 이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에 그가 찾는 이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시네” 많은 이들이 주님을 예배하러 모이지만, 그 곳에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없어 슬퍼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 뒤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 그 예배자 내가 그 사람되길 간절히 주께 예배하네.”

다니엘은 그런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속에 허덕이는 이 백성을 품으로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셨고, 다니엘은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가정을 위해, 직장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 이웃을 위해, 그들의 문제를 또 그들의 죄를, 나의 문제와 죄로 끌어안고 기도하는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다니엘은 계속해서 19절까지 계속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끌어안고 주님의 용서와 회복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칠십 이레의 응답(20-27절)

그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22-23, 새번역) 다니엘아,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를 도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기도를 시작한 즉시 하나님이 네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너에게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고 여기에 왔다. 너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설명할 때 잘 듣고 네가 본 환상의 뜻을 깨달아라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이 전해왔습니다. 이 말 후에 가브리엘 천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24-27)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해 일흔 이레를 기간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일흔 이레가 지나면 허물이 끝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때 일흔 이레는 70년 곱하기 7로 490년을 지칭한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도 다양하고 난해한 부분입니다. 이 기간을 문자 그대로의 시간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상징적인 숫자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해석은 알 기 어렵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궁극적인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아픔이 있다고 그 아픔이 끝이 아니라, 슬픔이 있다고 그 슬픔이 끝이 아니라, 억울함이 있다고 그 억울함이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회복의 그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회복의 그때가 있음을 믿고 그때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한다면, 소망이 보일 것이고, 소망으로 인내를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여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삶을 잘 분별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말씀과 기도로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아 주님과의 관계를 막는 죄의 벽은 없는 지 잘 살피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혹여라도 죄된 세상을 원망이나 무관심으로 방치하지 않게 하시고,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는 그 곳을 주님의 마음으로 끌어안는 그 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소망없는 그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의 소망으로 찾아오심을 믿게 되고, 그 소망으로 주어진 삶을 잘 인내하며 묵묵히 걷는 은혜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러한 하루가 되길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다니엘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게 될 것을 알게 된 후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2. 다니엘의 기도를 살펴봅시다. 우리의 기도와 어떤 공통점 있고, 또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3.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내 죄로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과 회복을 이루신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작성 : 정재규)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다니엘 9장)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다니엘 9장) 0. 다니엘 9장 요약 다니엘이 본 이상은 스룹바벨성전 건축의 전후에 벌어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함축적이고 난해한 다니엘의 이상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한 솔로몬성전의 파괴에서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한 스룹바벨성전 재건까지, 헬라제국의 셀류코스왕조에 의한 스룹바벨성전 모독과 마카비가문에 의한 스룹바벨성전의 정화까지의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왜 다니엘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때를 가리켜 ‘70이레, 7이레, 62이레’라는 은유로 기록했을까? 다니엘서는 수천 년 전의 것이고 특정한 상황과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이지만 성경의 기사가 다 그런 것같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칠십 이레, 칠 이레, 육십이 이레’를 경험하고 있는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동영상) 1.칠십년만에 마치리라 ➀ (1절)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다(단5:31). 바사왕 다리오1세(페르시아전쟁 1차 원정), 다리오2세(성전재건축 포고) 다리오3세와 동명이인이다. ② (2절 전반부)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 메대 사람 다리오원년은 바벨론 멸망했던 B.C 538년이다. 고레스 원년(B.C 537년) 포로 귀환령이 내려지기 약 1년 반 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다니엘이 본 서책은 예레미야 25장11절 말씀이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기도했다. 예루살렘이 황무케 된 원인은 누누이 강조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무시하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 2. 다니엘의 기도 ➀ (4절~7절)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다” ▶ 다니엘의 기도는 참회(회개)의 기도다. 타인(민족)의 죄악을 짊어지고 기도했다(대속, 중보) 다니엘이 사자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쉬지 않았던 이유다. 개인의 안위보다 민족의 구원 즉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길 위해 먼저 기도했다. 징계의 원인은 하나님이 사랑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패역(배은망덕)과 반역(배신)의 결과다. (6)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공의는 주께 수욕은 우리 얼굴로’ 마침내 판가름하신다. ② (8절~15절)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다마는…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 ‘율법(말씀)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다’ 불순종을 회개해야 한다.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임하였사오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빨리 회개치 않은 완고함을 회개해야 했다.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듣지 않고 외면한 이유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오만했기 때문이다. ③ (16절~19절)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의 분노를 떠나게 하옵소서…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굽어 살피소서)…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함이오니…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간구하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들으시고 비취 시옵소서’ 기독교는 자력구원이 아니라 타력구원이다. 우리의 의(공로, 열심, 노력)가 아니라 주의 긍휼(은혜)을 구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우리의 허물은 주님의 수치다. 나를 통해 주의 이름을 존귀케 해야 한다. 우리는 배반하지만 주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3.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 ➀ (20절~23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 기도가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위해서 기다리며 동시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역사하신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은총을 입은 자’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언약이 성취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방해가 많기 때문이다. ② (24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칠십 이레’는 70*7(일곱 번씩 일흔 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때다. 여기서 지극히 거룩한 자는 바사 왕 고레스다. (에스라1:1)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아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누가 하나님의 자녀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다. ③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중단16년)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마침내 완공될 것이다) ▶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여기에 해당하는 왕(지도자)은 스룹바벨이다. 그는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시드기야왕의 손자(왕족)다. (학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는 스룹바벨 성전건축이 방해로 중단 되어 두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 한다. ‘일곱 이레’는 (에스라3:11~12)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단 지대’를 놓기 까지다. 이민족의 방해로 16년 동안 성전건축이 중단된다. ‘육십 이 이레’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해서 완공될 때까지의 기간이다. 학개의 예언과 다리오왕에게 조서를 올려보내서 다시 성전건축이 시작되고 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완공되었다. 학개의 예언 후 4년 후 (에스라6:15)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였더라’ 총20년의 기간이다. ④ (26절~27절)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 ‘육십 이 이레 후에’ 예루살렘성이 다시 중건되는 일을 다 마친 후에 여기에 나오는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성전 건축 곧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쓰임 받았던 이들(스룹바벨과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바사왕 고레스, 바사왕 다리오2세 등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 바사제국의 멸망까지 가리킨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헬라제국과 셀류코스왕조의 에피파네스다. 지난 시간에 본대로 제사와 예물을 금지, 미운 물건의 날개를 의지하며 성전을 모독하겠지만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장차 한 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을 통칭한다. ‘칠십 이레,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방해도 있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최후승리를 증거 한다.

목사님, 다니엘서 9장 해석이 엇갈리는데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코로나사태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역에 힘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몇차례 성경문답으로 좋은 가르침 많이 배울 기회가 되었는데 이렇게 또다시 질문을 드리게 되었네요. 너무 바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절대 서두르실 필요없이 천천히 답변 부탁드립니다.

오늘 질문은 늘 저를 고심하게 했던 구절입니다.

(다니엘 9장)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부득이하게 묵시론적 예언을 질문하게 되었네요.

종말론이 정통 교파안에서도 워낙 논쟁이 분분한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위 70이레 예언의 마지막 부분이 너무도 엇갈리는 두 해석이 버젓이 있는 바람에 마음이 너무 혼동됩니다.

먼저, 26절에서 기름부음받은자의 끊어짐.

이 부분이 69주 = 483일 = 환산해서 483년 (유대력)

즉 예루살렘 성읍 재건 칙령 때부터 위 시간이 지났을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해석은 모두가 이의없이 일치합니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실현되었고요.

세세한 시간표 계산 방식에는 차이점이 있을지언정 결국 주님 십자가의 시간적 시점을 말함에는 의견을 함께 합니다.

문제는 바로 26절 후반부부터 27절 까지입니다.

‘한 왕’ 과 ‘그’ 를 누구로 보느냐의 문제이죠

1. 적그리스도 로 해석하는 신학자들과 (개인적으로는 이쪽입니다)

2.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제각각 그럴듯한 근거로 해석을 맞추고 있습니다.

1번 견해 대로라면 27절은 7년 대환란을 설명하는게 됩니다.

다만 이 경우 교회시대라는 2천년 이상의 공백이 마지막 이레와 나머지 이레의 사이에 생기는 부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2번 견해는 제사와 예물을 중지한것이 구약 제사법의 폐지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가증한것’ ‘황폐케하는 자’의 설명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이 구절을 살짝 언급하시면서 분명 종말 예언과 결부시키셨으니까요 (2번 견해는 최후의 적그리스도 개념을 배제하고 위 구절의 파괴를 AD70년 사건으로만 국한하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과연 어떤 해석이 바람직할까요.

한글 버전이 못 미더워서 여러 영어 번역도 함께 봤는데

슬프게도 번역본마다 미묘하게 두 해석을 지지하는 방향이 다르더군요.

마치 번역자가 자기의 신학 노선을 따라 미리부터 한쪽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춘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종말예언이 구체적인 부분들이 신비로 감춰졌다지만

저 구절을 저렇게 상반되게 해석하는건 자칫 어느 한쪽이 신성모독이 될것만 같아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키워드에 대한 정보 다니엘 9 장 해석

다음은 Bing에서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 홍융희
  • 홍융희목사
  • 성민교회
  • 부산성민교회
  • 하루한장
  • 분홍목사
  • 다니엘 9장
  • 다니엘의 기도
  • 말씀과 기도
  • 말씀으로 기도하기
  • 다니엘 설교
  • 다니엘 강해
  • 말씀묵상훈련학교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YouTube에서 다니엘 9 장 해석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한 장] 다니엘9장_ 말씀으로 깨달았나니 | 다니엘 9 장 해석,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