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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로 선정된
에페소스 의 아르테미스 신전 입니다.
재미있게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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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전/주석 – 두란노닷컴

아데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딸로, 보통 ‘사냥의 여신’으로 불렸으며 로마의 신 중 달의 여신인 ‘디아나'(Diana)에 해당한다. 에베소에는 아데미를 섬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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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5/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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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여신 아데미the great goddess Artemis – 은파선교회

아데미 신전에서 출발한 아데미 신상과 축제 행렬은 에베소 시의 동쪽에 있는 마그네시아 문을 통해 입성하고, 동방 체육관과 시장, 음악당을 지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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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wm.or.kr

Date Published: 4/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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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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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베소 아데미 신전

  • Author: 달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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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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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 신전터 (Temple of Artemis

셀죽 아데미 신전 터 (뒷쪽으로 사도요한 무덤 교회 터가 보인다)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5539)

아데미 여신은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신성시 하였던 신으로 처음에는 킬벨레 (Kylbele)라 불리웠다. 이 여신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로마와 메소포타미아 및 아라비아에서도 섬기었다. 아랍인은 ‘라트’로, 이집트인은 ‘이시스’로, 그리스인은 아르테미스(사냥의 여신), 로마인은 ‘디아나’로 불렀으며 이오니아인들이 ‘아데미’라 불렀다. 처음 킬벨레로 불리울 때는 목신 상이었으며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이오니아 문명과 함께 아데미로 이름이 바뀌었고 땅과 다산을 상징하였다. 아데미 신전은 고대 칠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서 헬레네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이었으며 최초로 완전히 대리석으로 된 건물이었다. 이 신전은 일곱 번이나 파괴되었으나 항상 같은 위치에 재건되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해변에 지어졌으나 후에 항구가 매립되어 지금은 바다에서 5km 떨어져 있다. 고대의 신전은 55 x 110 m 크기로 이오니아 양식에 따라 건축되었으나 에베소에 살던 헤로스트라토스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자 불태웠다고 한다. 후에 신전은 당초의 것과 매우 유사하게 재건되었는데 55 x 105m 크기로 대리석으로 된 토대 석 위에 13층의 계단과 2.7m 높이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인들은 다이아나 신전이라고 부르는 아데미 신전은 1860년대에 영국인들이 이곳에서 신전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 폐허를 발견하기까지 무려 육 년이 걸렸습니다. 소아시아의 모신에게 바치는 이 신전은 주전 천 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이 신전은 주전 350년 알렉산더 대제가 태어나던 바로 그 날 밤에 불에 타 파괴되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이 신전을 재건했는데, 길이가 108미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입니다. 그리고 건물 전체를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 가운데 이렇게 큰 건물로 처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부서진 조각만 갖고는 이 신전의 모양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다른 두 신전들을 통해서 아데미 신전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데미 신전이 세워지기 100년 전쯤에 세워졌습니다. 건축학적으로 두 신전은 매우 흡사하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 있었던 신전은 그 규모가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46개의 기둥이 있는 반면, 에베소에 있던 아데미 신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기둥보다 두 배나 큰 기둥들이 127개가 있었습니다. 36개의 기둥의 기단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지름이 2미터가 넘는 이 기둥 받침 하나가 소장되어 있다.

아데미 여신전 기둥 (출처- cafe.daum.net/olivesan/2EEC/332)

무덤교회에서 내려다본 아데미 신전 터 (출처- cafe.daum.net/6527091/DZMu/137)

아데미 신전 복원도

아데미 신전 복원도,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출처- http://toads.blog.me/20142355353

)

셀죽 시내의 아데미 여신상

아데미 여신상(풍요의 신)

2세기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박물관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아데미 여신의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이 있고,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다양한 짐승들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매년 5월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 여신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 따른다.축제의 행렬은 아데미 신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데미 신전에서 출발한 아데미 신상과 축제 행렬은 에베소 시의 동쪽에 있는 마그네시아 문을 통해 입성하고, 동방 체육관과 시장, 음악당을 지나서 에베소 시청에 이른다. 에베소 시청 앞에는 또 하나의 아데미 여신상이 밖을 향하여 서 있는데 두 개의 여신상이 만나게 되면 군중들의 열광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때, 에베소의 총독은 관저에서 나와서 아데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총독의 인사를 받은 아데미 여신상은 크레테 도로를 지나 셀수스 도서관을 거쳐 에베소 광장에 이른다. 광장에서 왼쪽 방향으로 항구대로를 지나 부두에 이르게 된다. 부두에 이르면, 드디어 소들을 바치는 희생 제사가 드려진다. 남자 사제들이 24마리의 황소 고환을 잘라 아데미 여신의 목에 걸어 주면, 군중들의 열광인 함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따라 춤을 추고, 도살된 소들이 제단에 올려지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데미 축제가 무르익게 된다.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박물관 (출처- http://toads.blog.me/2014235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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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양옆에 사자, 소 등의 모습이 있다. 풍요(다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아데미 여신 가슴부분의 동그란 것은 여신에게 바친 소의 고환을 나타냈다. 이 역시 풍요를 상징한다.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1491784)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박물관

출처 : 배성수성지사랑

‘7대 불가사의’의 최고봉 아르테미스 신전을 찾아서

서기 1세기 제작된 아르테미스 여신. 현존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가운데 가장 크다.

21개에 달하는 가슴, 몸 전체를 감싸는 사자·표범·기린·벌 문양, 머리 주변을 에워싼 박쥐와 둥근 광채, 흰 대리석의 몸매와 검은 대리석으로 장식된 얼굴과 팔….

30여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접했던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이다. 풍만한 가슴이 증명하듯 대지의 여신,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라 불리는 입상이다. 그러나 신성(神聖)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기묘한 신비감은 묻어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우상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났다. 중세시대라면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해질 이단(異端)의 전형적인 모델로 와닿았다. 부정(不淨)이나 불순(不純), 나아가 부정(不正)한 존재로까지 비쳐진다. 분명한 것은, 워낙 특이한 모습의 여신이기에 한 번만 봐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후 아르테미스를 다시 만났던 것은 로마의 바티칸박물관에서다. 고대 그리스 전시관을 돌아다니다 온통 흰 대리석으로 꾸며진 아르테미스 입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검은 얼굴의 나폴리 아르테미스는 로마인이 만든 짝퉁 조각이었다. 원래 그리스인이 제작한 아르테미스는 흰색 대리석으로 통일돼 있다. 우상 파괴에 앞장선 가톨릭 총본산 한가운데 이단의 여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15세기 르네상스의 출발점으로 통한다. 부분적이지만, 바티칸은 피렌체보다 앞서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은 가톨릭의 본산 교황청이 아니라 교황 개인이었다. 우상 아르테미스가 바티칸박물관에 들어선 이유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교황 개개인의 남다른 호기심 때문이었다. 바티칸박물관 전시물품 중 상당수는 종교와 무관한, 예술과 역사에 관심을 가진 교황들 개개인의 수집품에 해당한다. 큰 봉(棒)을 든 헤라클레스, 벌거벗은 비너스 조각상이 바티칸에 들어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터키 에페수스(Ephesus)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10여년 전이다. 그리스 신화의 특징이지만, 신은 반드시 자신의 기반이 될 특별한 신전을 갖고 있다. 제우스의 올림푸스 신전, 아폴로의 델피(Delphi)처럼, 그리스 모든 신들은 자신만의 고유영토를 적어도 하나는 갖고 있다. 제우스나 아폴로 신전이 에게해와 지중해 곳곳에 넘치지만, 원조에 해당하는 곳은 하나다. 보통은 신의 출생지나 주된 활동 근거지가 원조 신전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스 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조 신전에 가서 살펴야 한다.

검은 얼굴의 나폴리 아르테미스. 로마 바티칸박물관에 있다.

인류 최고의 성지

터키 동쪽 아시아 지방의 원래 지명은 아나톨리아(Anatolia)다. 아나톨리아인들은 에페수스가 아르테미스의 출생지라 믿었다. 아르테미스를 신으로 모시면서 신전을 건립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에 관한 얘기는 기원전 3000년 전인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역사적 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0세기 이후다. 아나톨리아가 그리스 식민지가 돼 그리스인들이 들어온 시기다. 아르테미스의 영광은 기원전 2세기 시돈 출신 시인 안티파테르(Antipater of Sidon)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자신의 시집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세계 최고 명소라 예찬한다. 기원전 2세기, 당대의 ‘7대 불가사의’ 중 최고봉이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크기와 권위라는 측면에서, 2200여년 전 에페수스 아르테미스 신전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성지였다는 것이다.

“마찻길로 이어진 웅장한 바빌론 성벽 위의 공중정원, 올림푸스산의 제우스 신전, 로데스(Rhodes)섬의 초대형 태양신 청동조각,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해 완성된 피라미드, 마우솔루스(Mausolus)의 거대한 무덤. 이 모든 것을 직접 보면서 여행을 다녔지만, 구름 위로 솟아난 아르테미스 신전은 다른 것들(나머지 6개 불가사의)의 위용을 한순간에 녹슬게 만드는 위대한 공간이다. 올림푸스 신전을 제외할 경우, (아르테미스 신전 위의) 태양이 그토록 크게 보이는 곳도 없다.”

에페수스는 이미 예수가 탄생하기 전부터 번성한, 당시의 아테네와 로마에 필적할 만한 아나톨리아의 항구도시다. 서기 1세기 당시 인구가 22만명이나 됐다. 아나톨리아의 뉴욕 같은 도시가 바로 에페수스다. 에페수스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귀에 익은 ‘죄의 원천지’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경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울의 핵심 선교지가 바로 에페수스다. 보통 ‘에베소’란 지명으로 등장한다. 더불어 아르테미스 여신도 ‘아데미’란 이름으로 성경 곳곳에 나타난다. 바울 당시는 물론 이후 기독교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우상과 사탄으로 들끓는 지옥행 대기실이 에베소이고 그 원흉이 아데미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에페수스) 사람들아, 에베소가 큰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사도행전 19장 35절)

신전 기둥 하나만 남긴 채 전부 사라진 아르테미스 신전. 기독교도가 조직적으로 파괴한 고대 우상의 성지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언급된 초대형 성지 아르테미스 신전.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에페수스로 향해야 한다. 현재의 행로는 보통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즈미르(Izmir)로 날아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에페수스로 직행하는 식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출발해 전부 3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이다. 21세기 에페수스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로마 당시 만들어진 계획도시 에페수스에 있다.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고대도시로, 전체가 대리석 도보로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초대형 원형경기장에서부터,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황제들의 기념관, 미적 차원에서 헬레니즘 예술의 최고봉이라 불릴 만한 도서관, 부자들의 별장과 모자이크 장식품이 늘어선 초대형 도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도시 에페수스에서 3㎞ 떨어진 내륙에 위치해 있다. 터키에서 에페수스는 셀주크(Selcuk)라 불린다. 셀주크 버스정류장에 내려 곧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향했다. 걸어서 1㎞ 거리에 있다. 흥미롭게도 기원전 2세기 최대 규모를 자랑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19세기 들어서기까지 구체적인 위치가 어디인지 수수께끼였다고 한다. 1869년, 6년간의 탐사 끝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발견한 것은 영국 고고학팀이다. 부서진 작은 간판을 따라 아르테미스 신전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좁은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기둥 하나가 보일 뿐, 고대 신전이란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적막한 분위기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고대 동전 판매상만 넘칠 뿐, 안내간판이 없다면 아르테미스 신전이란 사실조차 알아내기 어렵다.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곳이었지만, 2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99.99%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폐허 그 자체다. 고대도시 에페수스에 가기 전에 들르는, 5분짜리 셀카 관광지가 ‘큰 아데미’의 현실이다.

청동기시대 이래 3000년 이상 성지로 통해온 곳이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서기 4세기를 기점으로 흙먼지로 변해간다. 기독교가 국교로 정착되면서 유일신에 어긋나는 이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된다. 기독교도들의 눈에 아르테미스 신전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우상의 상징으로 비쳤다. 당시 에페수스 시민들의 대부분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믿는 신자들이다. 신전을 먼저 파괴해야만 기독교 포교가 쉬워진다. 로마가 가진 공권력을 동원해 아르테미스 신전 주변에 넘치던 수많은 입상들을 하나씩 처분한다. 성전 아르테미스 신전도 철저히 파괴했다. 대규모 기둥의 경우 아예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겨져 교회 건축용 재료로 재활용되기도 했다. 이스탄불의 하지아 소피아(Hagia Sophia)는 비잔틴시대 당시는 물론 현재 터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고대건물이다. 하지아 소피아의 수많은 초대형 기둥들은 원래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키던 대리석들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착된 이후 그리스 신전은 교회로 개조되거나, 새 교회 건립용 재료 공급처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도 로마 이후 기독교 교회로, 이후 오스만투르크 시대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활용돼왔다. 적어도 2000여년 전 건립된 건축물들이지만, 미적 감각은 물론 크기나 구조 면에서 손색이 없다.

아르테미스의 전신에 해당하는 대지의 여신 시벨르(Cybele). 앉아 있는 여신이다.

여신을 향한 기원

폐허로 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고맙게도 박물관을 통할 경우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셀주크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들어선 에페수스박물관 덕분이다. 열심히 볼 경우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박물관으로, 전 세계 어떤 고고학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급 유물들로 메워져 있다. 사실 터키 고고학 여행의 진수는 박물관에서 시작된다. 사전지식과 이미지를 머리에 넣은 뒤 현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에페수스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이다. 서기 1세기, 2세기에 만들어진 두 개의 대형 아르테미스 여신이 들어서 있다. 기독교도의 눈과 손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귀중한 유물이다. 어두운 조명 밑에 설치된 두 여신을 통해 2000여년 전 여신을 향해 기원하는 인간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생로병사에 관한 인간의 애원 전부가 아르테미스가 벌린 양팔 사이로 스며들어갔을 것이다. 우상에 대한 무지한 미신이라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예수는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어떤 대상이라 해도, 인간의 기도와 염원이 극에 달할 경우 설명하기 힘든 기적이 생겨날 수도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상상도. 파르테논 신전의 거의 두 배 크기였다.

원래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특징 중 하나는 습지다. 무너진 대리석들 대부분이 물에 잠겨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습지 위에다 기초를 다진 특이한 건축물이다. 지진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습지는 지진에 강하다. 영국 고고학팀이 밝힌 원래 신전의 조감도를 보면 전방 기둥 8개, 측방 기둥 20개로 이뤄져 있다. 전방이 72m, 측방이 129m에 달하는 거대한 신전이다. 얼마나 큰지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파르테논은 전방 기둥 8개, 측방이 18개다. 길이는 전방이 31m, 측방이 70m 정도다. 현재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아테네의 걸작 파르테논의 거의 2배에 달하던 곳이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크기가 2배라는 것은, 적어도 4배 이상의 하중을 감당해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기둥 하나 크기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이상이었던 셈이다. 건립에 필요한 모든 석재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10여㎞ 떨어진 대리석 산에서 채굴됐다.

현재 에페수스는 기독교도들을 위한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하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성모 마리아가 피난해온 곳이 에페수스였기 때문이다. 아들을 잃은 마리아가 평생 기도로 보냈다는 작은 집이 에페수스 도시를 내려다보는 산 위에 들어서 있다. 마리아가 마지막 승천할 때까지 살았던 산은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도 보인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약 2㎞ 정도 떨어져 있다. 바티칸이 공인한 산 위의 마리아 집과 고대 7대 불가사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 정통과 이단, 성모와 우상으로 대별되는 존재지만, 필자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 싶다. 모성애를 잊지 못하는 인간의 고독함이 만들어낸 꿈과 희망으로서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르테미스다.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신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 대지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로서의 아르테미스다. 신의 어머니이기에 옳고 강하며, 대지의 어머니이기에 사악하고 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용서를 받고 사랑에 의지해 살아가려는 인류 모두의 소원이 아르테미스와 마리아를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성모 마리아 최후의 주거지가 아르테미스 신전 바로 옆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좌충우돌의 성지순례(5):크리스찬리뷰 ㅣ The Christian Review

‘파묵칼레’에서 ‘에베소’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걸렸다. 에베소에 도착할 때는 이미 어둠이 깔렸다. 다행히 인근 민박집 주인들이 나와 집을 소개하는 것이다. 에베소는 관광지역이라서 대부분의 민박집이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머문 집도 5층 빌딩인데 한층만 주인이 쓰고 나머지 4개 층은 민박을 치고 있었다.

▲ 에베소 인근의 민박집들은 대부분 기업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김환기

배낭을 풀고 옷을 정돈하고, 빨래 거리를 찾는데 있어야 할 중요한 물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여권, 비자카드, 직불카드, 운전면허증 등을 스캔하여 저장한 ‘메모리 스틱’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이다. 여권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모든 정보를 스캔하여 배낭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갑자기 머리가 곤두서는 것이다.

`누가 훔쳐간 것일까? 아니면 어디다 놓고 내린 것일까? 아니야, 배낭 깊숙이 감쳐 둔 것이 사라진 것을 보면 분명 누가 뒤진 거야! 그러면 누가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은 ‘파묵칼레’로 향했다. 여행사에서 ‘밧모섬’과 ‘소아시아 7개 교회’를 방문하는 가격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직원이 여기 저기 알아 본 후 제시한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다. 비싸다고 하니,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낸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 놈이 내 배낭을 뒤진 것은 아닐까?’

저녁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른다. ‘직불카드(Debit Card)’는 저축된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만, 내

‘비자카드(Visa Card)’는 ‘골드’이다. `집에 연락해서 카드를 정지시킬까? 그러면 돈은 어떻게 빼서 쓰지? 아냐 카드 뒷면은 스캔을 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야! 요즘은 생년월일과 카드번호만 알면 된다고 하던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가슴이 더 답답해 졌다.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에베소 일정에 충실하고, 차후에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에베소 (Ephesus)

▲ 에베소©김환기

에베소는 로마시대 소아시아 수도로서 로마 6대 도시 중 하나이며 소아시아의 서해안, ‘코레소스 산맥’과 지중해 사이의 ‘카이스테르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에베소는 로마 당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상업,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특히 정치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어 ‘아시아 최대의 도시’라는 명예를 누렸던 곳이다.

당시 에베소에는 약 25만 명이 살았다. 25만 명이란 근거는 에베소에는 2만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다. 도시에는 원형극장 관객의 10배 정도의 인구가 상주하였다고 한다. 항구도시로 번성하던 에베소는 토사 유입으로 서서히 항구가 매몰되어 도시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다. 또한 산과 갯벌이 공존한 지형 탓으로 말라리아 전염병이 자주 발병해 인구감소를 촉진했다. 더욱이 지진도 자주 일어났다.

로마시대 최고로 번성한 도시였던 에베소는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 갔다. 에베소는 기독교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도시이다. 바울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다. 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목회했다. 여기서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 제자들을 양육했다. 바울이 개척하고 1년 6개월(행 18:11) 동안 목회한 ‘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회자의 입장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답변한 ‘고린도전서’를 쓴 곳이기도 하다.

요한 교회 (The Church of St. John)

▲ 요한교회 ©김환기

요한은 거의 100세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소원대로 에베소에 묻혔다. 기독교가 3,4세기에 널리 전파되자 그의 무덤 위에 목조지붕으로 된 ‘바실리카 양식’(basilica style)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가 5세기에 심한 지진으로 붕괴되었을 때 그 위에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는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붕괴된 6개 돔의 ‘요한 교회’를 건설했다. ‘요한 교회’를 건설할 때 그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세계 7대 불가사이’(The Seven Wonders) 중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의 기둥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언덕 위에 위치한 ‘요한 교회’에서 아래쪽에, 두 개의 기둥만 남은 초라한 ‘아데미 신전’을 볼 수 있었다. 교회 중간에 ‘요한의 무덤(The Tomb of St. John)’이라 쓴 비문이 있다. 비문 아래 요한의 시신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성지를 방문하며 느끼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데미 신전 (The Temple of Artemis)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다. 그리스인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까지 태양이 운행하는 중에 ‘아데미(Artemis) 신전’보다 더 훌륭한 것을 보지 못했노라”고 하는 격찬의 말이 있다. ‘아데미 신전’은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더 컸다고 한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행 19:26)라며 우상숭배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우상 제조업자들이 주동하여 온 성에 소요를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바울은 3년 간 목회를 하던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나는 ‘에베소 박물관’에서 본 ‘아데미상’보다 더 큰 신상을 ‘아테네 박물관’에서 보았다. 박물관의 안내 글에는 ‘아데미(Artemis) 신’은 처녀로서 ‘아이들과 출생을 도와주는 여신’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집 (The House of St. Mary)

▲ 성모 마리아의 집 ©김환기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죽기 전 요한을 가르치며 말씀하시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다시 마리아를 가르쳐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 ”하셨다.(요한복음 19:26-27) 그리하여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며, 에베소 3차 종교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성모 마리아께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드렸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가 잊히고 폐허가 되었다.

1878년 ‘캐더린’(Catherine)이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 속에서 계시를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사렛의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계시 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윗글은 마리아의 집 앞에 있는 ‘한글 입간판’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잃어버린 ‘메모리스틱’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내일은 ‘폴리캅’이 목회한 ‘서머나 교회’를 방문하고, 모래는 터키를 떠나 그리스 영토인 ‘밧모섬’을 가야하는데…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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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를 숭배하던 여신의 땅이라 마리아까지?

원제연 선교사 / 성지선교회 대표

세계 최대의 도시 유적이 남아 있고, 바울의 2~3차 전도여행지였으며, 아데미를 숭배하던 ‘여신의 땅’ 에베소. 옛 역사와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열린 제3차 공의회에 대한 ‘성지 터키 이야기’ 두 번째다. [ 편집자 주 ]

▲ 원제연 선교사

한국은 지금 ‘여교주’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문선명의 뒤를 이은 통일교의 한학자, 안상홍의 뒤를 이은 하나님의 교회의 장길자, 그리고 이만희의 뒤를 이를 것처럼 급부상하고 있는 신천지의 김남희 등이 마치 트로이카처럼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베소 지역은 예로부터 ‘여신의 땅’이었습니다. 그 여파는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인 AD 431년에 기독교 안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 에게해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섬기던 대모신(大母神)인 아데미(Artemis) 신(神)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대체되어 버렸습니다. 431년 에베소의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열린 에베소 3차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리 때문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 이단사이비들의 여교주 등장과 에베소의 뿌리 깊었던 여신 숭배의 결과가 묘한 동질감 느낌이 있습니다.

에베소의 개관

에베소(Ephesus) 도시 유적은 버가모(Bergama) 유적과 함께 ‘에게해의 두 개의 장미’로 격찬 받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신약성서 ‘에베소서’나 요한계시록의 수신지로 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로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 로마제국 시대에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황금기는 기원전 133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면서부터인데,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각지의 물산이 집합되는 무역 항구이자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이었고, 에베소의 최전성기는 AD 1~2 세기경으로 도시 인구가 30만 명에 달하면서, 당연히 초대 기독교인에게도 에베소는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항만을 끼고 번영한 상업도시 에베소가 쇠퇴한 것은 카이스터(Cayster) 강의 토사 퇴적으로 항구가 묻혀져 가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전염병이 도는 등 도시 기능이 점점 저하되어서 현재의 장소(Selçuk)로 도시를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AD 612년의 지진으로 부분적인 파괴를 겪으면서 에베소는 급속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2,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했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성령의 강림으로 방언과 예언의 이적이 일어나서 그것을 본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사르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3통의 편지(먼저 쓴 편지, 고린도전서, 눈물로 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의 역사

에베소(Ephesus)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리스의 역사가요, 철학자인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에베소 도시는 흑해로부터 건너 온 여인(女人)족인 아마존족이 BC 1,400년경에 마을을 처음으로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는 에베소는 아마존족 언어로 ‘꿀벌’이라는 뜻의 ‘아빠소스’라는 아마존족의 여왕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 에베소의 크레테스 거리 Ⓒ성지선교회

그 후 BC 1,100년경 이오니아인(Ionians)인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레스(Androcles)가 여인들이 다스리는 아마존 토착민들을 추방시키고 에베소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많은 그리스계인들이 척박한 그리스 본토와 섬을 떠나서 비옥한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버가모, 에베소, 서머나 등)으로 대거 침략하여 그리스계 도시들을 건설하였던 시기였는데, 안드로클레스 왕자도 당시의 전통에 따라 새 도시를 세우기 위해 델피의 아폴로 신전으로부터 신탁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드로클레스는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바다가 인접한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그가 부하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먹던 중에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Koressos) 산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숲속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곳이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그것을 기념하는 ‘산돼지 상’을 건립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 에베소 원형대극장이 위치한 언덕 쪽이었습니다.

안드로클레스가 그리스계 이오니아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에베소는 점차 항구 도시로서 발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페르시아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의 침략,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제국, 로마 제국, 셀축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진출하려는, 반대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여신 숭배

재밌는 것은 에베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대대로 여신을 섬겨 왔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데미 여신 이전에는 대모신인 키벨레(Cybele) 여신을 섬겼고, 키벨레의 또 다른 형태의 아데미(Artemis) 여신이 그 뒤를 이었으며, 재밌는 것은 기독교가 들어온 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스다롯과 아세라 여신을 섬겼던 것처럼, 예전부터 달의 여신인 키벨레(Cybele)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었습니다. 에베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키벨레를 전통적으로 섬겨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존족이 추방되고, 아테네에서 이주해 온 그리스인들은 에베소에 정착하면서 그들이 그리스에서 섬기던 아데미를 아나톨리아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에베소는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며 출산과 갓난아기의 발육을 관장하는 신인 아데미를 숭배하였습니다.

▲ 아데미(Artemis) 여신상 Ⓒ성지선교회

▲ 마리아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리아상 Ⓒ성지선교회

그래서 전통적으로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에게해 인근 도시들은 모신(母神), 즉 ‘어머니 신’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항상 사람들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처음 거주자들이 아마존 여인족이었던 것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그러다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 53~56년)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에 대한 신앙심이 떨어지면서 은으로 만든 아데미 상의 판매 부진으로도 이어지기도 했지만, ‘은장색 조합’(Guild)의 폭동이 일어나고 네로 황제를 비롯한 이후의 황제들의 기독교 탄압과 박해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위기를 맞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데미를 숭배하는 신앙은 더욱더 활발해졌습니다.하지만 기독교는 로제 제국에서 박해를 가하면 가할수록 제국 내에 더 깊이 더 넓게 뿌리를 내리며 퍼져갔습니다. 바울이 제국 내에 기독교 복음의 씨앗을 심은 후 약 250년이 지난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마침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지정되었으며,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테살로니키아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그동안 지하에서 제국의 박해를 피해 몰래 예배를 드리며 숨죽여 왔던 기독교가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며 나래를 활짝 펴기 시작했습니다.이렇게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체로 퍼져가며 외면적으로 성장을 해 갈 때에도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인근 도시의 시민들은 항상 예전부터 그들의 조상, 조상들의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여신(女神) 혹은 모신(母神)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 그들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그러다가 여신을 향한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던 욕구와 욕망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431년도에 에베소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있었던 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그것입니다.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받은 후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제국의 메이저급 종교가 되어가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내홍을 겪습니다. 주된 이슈는 바로 예수의 신성과 관련되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 ‘삼위일체’(Trinity)라든가, ‘성육신’(Incarnation) 같은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도 그 당시에는 가장 뜨거운 감자였고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이슈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 논쟁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이것 때문에 327년에 1차 공의회가 니케아(Nicea, 현재 이즈닉)라는 곳에서 열려서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라는 교리가 확정 되었고, 381년에는 2차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서 개최되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습니다.그리고 예수의 신성에 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리아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를 놓고 3차 공의회가 431년에 에베소에 있는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개최된 것입니다.당시는 성모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던 때라 교우들이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으신 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사실 이 존칭은 그리스 교부들이 자주 사용해 오던 관용어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이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의 논리인즉, 예수는 신격과 인격을 갖춘 분인데, 성모는 인간 예수를 낳으신 예수의 어머니지 결코 신(神)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키릴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으로 합치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데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안디옥 학파의 대표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렉산드리아 총 대주교 키릴 간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종식시키려고 431년 6월 7일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공의회를 열어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고 마리아에게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라는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존칭을 드리기로 결의했습니다. 출교된 네스토리우스는 이집트로 유배되었는데, 436년 사막에서 쓸쓸하게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다’라는 명제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사고의 지평을 의미 없는 마리아에게까지 넓힌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신성의 원천이 되었다는 해석에서 마리아가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마리아 숭배사상이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3차 에베소 공의회를 통하여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했던 것입니다.에베소 공의회의 결의가 에 수록되어 로마 국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단순한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그 이상의 신적 능력을 소유한 분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공식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키릴이 정치적인 수완이 네스토리우스 보다 뛰어났는데, 그 능력을 가지고 황제 및 다른 주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관철시키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던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 3차 공의회가 열린 마리아 기념교회 Ⓒ성지선교회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일까요? 필자는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상기했듯이 에베소를 비롯한 에게해 연간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여신을 숭배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는 여신에 대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었는데, 이 부분은 기독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점이 불만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이 여신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혹은 본인의 제국 교회에서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아니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포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마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마리아의 신성에 관한 것을 이슈로 부각시켜서 이 안건을 에베소 공의회로 가져가고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마리아 숭배 교리를 통과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에베소 지역에 아마존 여인족이 처음 터를 잡은 후로 전통적으로 여신인 키벨레를 섬겨왔고, 그리스 이오니아인들이 점령한 후에는 키벨레에서 그들이 섬겨오던 아데미로,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로 공인된 후에는 아데미에서 마리아로 여신의 계보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3차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도 여신에 대한 감성이 가장 큰 에베소였고, 에베소 중에서도 마리아 기념교회를 공의회 장소로 잡은 것도 어떤 의도가 배후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 마리아의 집 Ⓒ성지선교회

어쨌거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3차 공의회를 통하여서 로마 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를 넘어서,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지위가 수직 상승되어 본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교회적으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 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이단과 사이비는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적용시키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만이 우리 자신과 가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서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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