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역사 | 9분만에 알아보는 에르메스에 대한 15가지 사실 / 에르메스가 원래는 Ooo을 만들었다? / 유명한 에르메스 가방, 어떻게 탄생했을까? / 에르메스 스카프가 군인 때문에 탄생? 10313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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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Hermès)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에서 설립한 프랑스의 패션, 가죽 기업이다.

에르메스
원어 Hermès
산업 분야 가죽, 패션, 시계, 실크 등의 섬유, 직물, 액세서리, 화장품, 홈웨어
창립 1837년
창립자 Tierry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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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브랜드) – 나무위키:대문

역사3. 평가4. 매장. 4.1. 국내 매장. 5. 제품. 5.1. 기성복5.2. 가죽제품. 5.2.1. 가방. 5.2.1.1. 켈리백5.2.1.2. 버킨백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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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23/2022

View: 3125

6세대에 걸쳐 전해지고 있는 장인 정신 – 에르메스대한민국

에르메스의 이야기는 마구용품 제작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1837년 파리의 바스-듀-름파르(Basse-du-Rempart) 가에 공방을 오픈하면서 시작됩니다. 근대화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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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ermes.com

Date Published: 3/19/2022

View: 2509

에르메스 , 차원이 다른 명품중의 최고 명품 (Hermes의 역사 …

에르메스(Hermes)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 1801년 독일 크레펠트라는 지역의 여관을 운영하는 에르메스 가문에서 태어난 “티에리 에르메스” 라는 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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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usdivgrowth.tistory.com

Date Published: 5/21/2021

View: 2862

갖기 힘든 에르메스가방 그리고 오랜역사 – 여기다이슈

갖기 힘든 에르메스가방 그리고 오랜역사. by 리에스더 2020. 9. 20. 시대를 초월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에르메스 백은 가죽 장인의 작업대에서 오랜 시간을 인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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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stherissue.tistory.com

Date Published: 11/13/2021

View: 1272

에르메스, 패션의 역사를 말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에르메스, 패션의 역사를 말하다! 최초로 가죽 핸드백을 만들고, 백에 처음 지퍼를 달았으며, 실크 스카프를 탄생시킨 에르메스의 사람들. 그저 단순하게 브랜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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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lle.co.kr

Date Published: 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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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써 내려온 가방 속 역사 이야기 – 노블레스닷컴

가죽과 장인정신의 헤리티지를 간직한 에르메스의 가방 이야기. … 플룸(Plume), 버킨(Birkin) 등 에르메스의 아이코닉한 가방은 역사와 각 시대를 …

+ 여기에 표시

Source: www.noblesse.com

Date Published: 3/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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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분만에 알아보는 에르메스에 대한 15가지 사실 / 에르메스가 원래는 OOO을 만들었다? / 유명한 에르메스 가방, 어떻게 탄생했을까? / 에르메스 스카프가 군인 때문에 탄생?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르메스 역사

  • Author: 앤드류의 5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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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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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에르메스(Hermès)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에서 설립한 프랑스의 패션, 가죽 기업이다. 수공업을 통한 높은 품질과 인위적으로 높이지 않는 가격 정책으로 유명하며, 현재 에르메스의 친척 가문인 뒤마 가문의 악셀 뒤마가 CEO를 맡고 있으며 에르메스와 뒤마 가문의 총 지분율은 73.7%에 달하는 가족 기업이다.

원래 1800년대의 주요 운송, 이동수단인 말을 위해서 말과 관련된 마구 용품과 안장을 제공하였으나,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가방이나 지갑과 같은 제품들도 추가하였다. 마차 모양 로고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에서 기원했으며, 프랑스에서 가방에 최초로 지퍼를 사용하여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이는 티에리 에르메스의 손자가 세계대전 중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지퍼를 보고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그레이스 켈리와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딴 ‘켈리백’과 ‘버킨백’이 유명하다. 에르메스 지분의 73.7% 정도를 에르메스 가문과 친척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악셀 뒤마와 피에르 알렉시스 뒤마는 에르메스 사람들의 친척 가문인 뒤마 가문 사람들이다. 2022년 4월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에르메스 가문 H51 SAS는 20년 뒤인 2041년까지 최소한 54%의 지배 지분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르메스는 최고의 사람들이,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방법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장인 사람들이 모인 팀이다.

같이 보기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에르메스 , 차원이 다른 명품중의 최고 명품 (Hermes의 역사,브랜드 유지비결, 새들스티치, 분기실적)

에르메스(Hermes)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

1801년 독일 크레펠트라는 지역의 여관을 운영하는 에르메스 가문에서 태어난 “티에리 에르메스”

라는 사내아이가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Hermes를 탄생시킨 창업자이다.

1828년 가족과 함께 종교적 이유로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에르메스는 파리 시내에

가게를 열어 자신을 꿈을 펼치고 싶었지만 자금력이 부족해 가슴에만 간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불안으로 루이 필리프 왕의 행렬을 행한 공화당원들의 기습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파리 시내의 임대료가 폭락하게 되고 틈을 타서 에르메스는 작은 가게를

얻고 당시 주요 교통수단인 마차 관련 부속품이나 안장 등을 만드는 마구상을 개업하는 데

성공한다.

1842년 루이 필리프 왕의 아들 오를레앙 공작이 마차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을

하는데 그 이유는 엉성한 마구때문이라고 판명이 되었으며 평소 제대로 물건을 만든다는

평판을 받고 있던 에르메스의 마구가 일약 유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186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그의 실력이 인정받아 1등을 차지하며 에르메스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2세의 시대 샤를 에밀 에르메스

에르메스를 탄생시킨 티에리가 1878년 세상을 떠나며 2세인 아들 샤를 에밀이 기업을 계승한다.

같은 해 아버지가 수상을 했던 박람회 1등상을 다시 수상을 하게 되며 부전자전의 신화를

이었으며 가게의 이전을 하면서 운 좋게도 해당지역이 부유한 귀족들의 호화 주택이 즐비한

곳이다 보니 많은 귀족들을 고객으로 만들게 되며 일약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된다.

3세의 시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

1902년에 에르메스 2세인 샤를 에밀은 경영에서 은퇴를 하며 둘째 아들인 에밀 모리스에게

가업을 물려주게 된다. 그는 유난히도 날카로운 관찰력, 아이디어, 사업수완을 지닌 인물로 미국,

캐나다등을 방문하여 캐딜락이라는 자동차를 보고 후드에 달린 지퍼가 눈에 들어오는데 자동차

외의 모든 독점권을 구입하여 에르메스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되며 가방 입구에 지퍼를 최초로 달게

되었고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자동차 여행용 백이 탄생이 된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에르메스백인 “블리드”가 탄생하는 배경이 된다.

1920년대부터 기계문명의 도입으로 자동차 시대가 열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마차의 시대가

종결될 것이라고 예상하여 마구만 만드는 기업에서 여행과 생활용품을 만들기 위한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가방, 벨트, 장갑, 시계, 자동차 소품 등으로 범위를 넓혀 나간다.

하지만 새롭게 바뀌는 환경 속에서도 미국의 대량생산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고 프랑스 장인

들의 전통적인 수작업과 소량 생산주의를 그대로 고집하면서 희소성의 원칙과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한다. 또한 마구 상의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팔찌, 시계, 스카프

등과 로운 용품들도 개발하여 선보이게 된다.

4번째 경영자 로베르 뒤마의 시대

3세 경영자 에밀 모리스의 사위인 로베르 뒤마는 애초에는 건축가가 꿈이었으며 미적 감각도

있었고 드로잉에도 소질이 있어 사슬을 이용한 디자인에 시간을 할애했다.

부둣가에 걸려 있는 닻과 쇠사슬의 모습을 보고 에르메스의 아이콘 중 하나인 팔찌를 개발

했으며 “샹 당르크”라는 디자인은 에르메스 전체의 제품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에르

메스의 클래식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에르메스 팔찌 샹당르크(Chaine d’Ancre)

1951년 에밀 모리스의 하직 이후 에르메스의 선장으로 취임했으며 말, 마차, 기수가 표현된

에르메스의 로고를 탄생시킨다.

에르메스 로고

한편, 1956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덕분에 오래전에 만들어진 “프티 삭 오트”라는

가방이 켈리 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상당한 광고효과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모나코왕비 그레이스켈리

5번째 경영자 로베르 뒤마의 2세 장 루이 뒤마

1970년대부터 신흥 라이벌 기업의 등장과 인조가죽 등의 신소재 개발이라는 위협 요인 등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잠시 사업을 중단하는 사태도 있었지만 장 루이가 경영권을 쥐면서 재 2의

전성기로 기업을 이끌게 된다.

중년층의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소비자 계층의 확산을 위해 캐주얼한 분위기도

연출을 하면서 젊은 층을 유입시키는데 크게 성공을 했으며 에르메스 시계회사를 본고장인

스위스에 설립을 하고 품질을 인정받게 된다.

1984년에는 우연히도 비행기 옆좌석에 영국의 영화배우 제인 버킨과 동석을 하게 되며 그녀의

피드백과 디자인을 계기로 하여 매우 실용적인 목적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가방이 바로 버킨

백이며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없는 희소성이 높고 소장가치가 높은 최고의 백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제인버킨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버킨 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전 영국 축구선수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이라고 한다.

6번째 경영자 악셀 뒤마

그의 5대조 할아버지인 티에리가 창업한 이후 세대에서 세대로 179년 동안 전통을 이어 2014

년에 악셀뒤마는 현재의 최고 경영자로 취임을 했으며 선대회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 세대가

자랑스러울 만한 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에르메스의 그룹의 과제

1. 미래에도 최고의 소재를 확보할 수 있아야 한다.

2. 가죽(가방), 실크, 남성복, 여성복 등 제품군 간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3. 지역 간 매출의 균형을 이룬다

4. 디지털 전략

(패션의 탄생 이라는 도서 및 중앙일보 기사등을 참조/요약함)

주요 사업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인 가죽 분야( Leather Goods and Saddlery)는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버킨백이나 켈리백 같은 가방, 소형 피혁제품, 승마용 도구, 일기장

등의 라인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큰 사업은 패션 및 액세서리(Ready-to-wear and Accessories)로서 기성복, 벨트,

보석,장갑, 모자, 신발 등의 제품이 포함이 되며 비중은 23%이다.

세 번째로는 실크와 옷감 관련 사업으로 9%의 비중이며 4번째 크기의 사업인 Other Hermes

sectors 는 보석과 생활용품 등의 가정용 제품 등이 포함되며 비중은 7%이다.

주요매출구성, 2019년 매출기준

지역/국가별 매출 비중

일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비중이 51%에 이이를 정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유럽, 미주, 프랑스 등으로 구성이 되어서 비교적 지리적인 분산이 잘 이루어진 상태이다.

지역별 매출비중, 2019년 매출기준

매출 및 순이익 추세

2009년 이후 매출은 평균 13.7%의 비율로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으며 2019년도의 매출액은

68억 8천만 유로를 달성을 하였으며 순이익의 평균 성장률은 더 높은 18.1%를 기록하면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2019년도 기준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2.2%이다.

매출 및 순이익 추이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 추세

2011년 이후로 20%대 돌파한 후 꾸준히 높은 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매출액대비 순이익률

배당금 추이

과거 6년간의 자료만 본다면 배당은 성장 중이며 배당성향은 30%~35% 정도이다.

시가배당률은 1% 미만으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며 특별 배당금을 지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당금 추이

2020년 1분기 매출 및 전망

코비드 19에 따른 매장 영업 중단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 감소하여 15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며 역성장을 하였지만 시장 기대치인 13.5억 유로는 상회하였다.

중국 본토 매장 11개, 마카오 전체 매장이 중단이 되었으며 홍콩은 부분적으로 영업제한이며

일본은 3월 말 이후 영업중단 기조로 전환되었고 미국은 3월 20일 이후 전체 매장이 중단이

된 상태이다. 특히 매장 영업중단 효과가 컸던 패션/액세서리나 실크 등의 부문의 매출 감소

효과가 상대적으로 컸다고 한다.

2020년 1분기 매출실적

2020년 가이던스는 제시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4월부터 중국과 한국의 매장 영업은 재개된

상태이며 일본, 미국, 유럽의 영업이 중단되어 1분기보다는 2분기의 매출 하락이 클 것으로

전망이 된다.

주가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견고함과 브랜드 파워 덕분으로 전고점 대비 상당한 회복을 한

상태이며 경기 불확실성이 확산이 되는 시기임에도 방어적인 속성으로 주가를 지지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12개월 선행 주가 수익비율은 45배로 동 업종 내에도 상당한 프리미엄을 부여받고

있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긴 하다.

최고의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 경쟁력

에르메스가 명품 중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초심을 유지하기” 였다고 한다.

다른 명품 기업들과는 달리 에르메스는 아직까지도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라는 전통

수공박음질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에르메스의 정체성이다.

이 기술을 구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수년간 기술을 연마하고 경험을 쌓아온

프랑스 장인들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제조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서 기본적인 제작을 위탁하고 있는 다른 명품

기업들과는 달리 기업이 창립된 이후 일관되게 수작업을 고집하며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퀄리티를 고객들에게 제공한고 있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에르메스의 제품이미지, 출처:Hermes Honepage

갖기 힘든 에르메스가방 그리고 오랜역사

시대를 초월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에르메스 백은 가죽 장인의 작업대에서 오랜 시간을 인내한 끝에 완성됩니다

모든 스티치는 한 땀 한 땀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교한 제스처로 이루어집니다

에르메스 공홈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문구다

” 우린 오랜시간 정성스럽게 공들여 만들었어! 너가 에르메스 가방을 들게되면 너 자신도 명품이 되는거야!” 라고 하는것 같다 ㅋㅋㅋ

사실 나같은 평민은 버킨백이나 켈리백 같은건 넘사벽이지만 3대 명품중 하나인 에르메스가 어떻게 명품계의 명품이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티에리 에르메스

프랑스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15세때 전쟁과 질병으로 부모를 여이고 1821년 프랑스로 건너왔다는 설과,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1828년에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는 설이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는 프랑스 파리의 마들렌 광장의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에서 마구용품을 생산하는 마구상을 내면서 에르메스 브랜드가 시작되었다

티에리 에르메스 HERMES.COM

1880년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공방을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로 이전해 그곳에 매장을 열었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안장과 마구용품을 납품하는 동시에, 자동차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마구용품 이외에 여행용품과 가방 같은 생활용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1900년, 아르헨티나 카우보이의 새들백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오뜨 아 크루아’ 백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이 백은 카우보이들이 마구를 운반하기 편하도록 디자인된 것으로 훗날 에르메스 버킨백의 원형이 되었다

L. 1880년 에르메스 매장 R. 오뜨 아 크루아

1922년 두번의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샤를 에밀의 아들 에밀 에르메스가 에르메스의 혁신을 선두하게 되면서 에르메스는 안장과 마구에서 가죽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했다

에밀 에르메스는 캐나다 여행 중 군용 차량 후드의 미국식 개폐 장치에 아이디어를 얻어 1922년, 지퍼잠금장치 시스템에 대한 독점권을 얻으며 이를 에르메스 백에 사용하게 되었고 자동차 브랜드 부가티와의 협업을 통해 자동차 여행 백, 볼리드가 만들어졌다

세계최초의 지퍼가방 볼리드는 가방정면에 고객의 이름을 새겨주는 이름표 역할을 하는 타원형의 가죽이 덧붙여져있다

볼리드

에밀 에르메스는 과거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있는 동시대에 대한 열정이 강했기에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했고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 골프 재킷을 만들었다

이후 1927년에 쥬얼리를 선보였고 이어서 1928년에는 워치와 샌들을 출시했다

1927 골프제품 광고. HERMES.COM

1920년대 에르메스의 포장박스는 하얀 색에 금색 줄이 들어가 있는 형태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염료가 부족하였던 시기에 오렌지 색이 천연 가죽 색과 가장 흡사했고 또 가장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용되어진 색이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현재의 고유색상이 되었다

에르메스 포장은 오렌지 색을 바탕으로 브라운 색상의 라이닝과 에르메스 로고인 깔레쉬가 새겨져 있다

에르메스 오렌지포장상자

대공황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있던 1930년대, 에르메스는 사용용도가 분명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생산했다

켈리백으로 알려진 핸드백과 가죽 아젠다, 삭 아 데페쉐(기자용 가방), 남성용 브리프 케이스, 샹 당크르(로베르 뒤마가 부두 근처를 산책하며 배에 연결된 닻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은팔찌), 승마복 등 훗날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이 된 제품들 대부분이 이때 선보여진 것이다

샹 당크르 팔지/반지

1937년 에르메스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스카프 컬렉션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실크스카프‘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가 탄생했다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 HERMES.COM

1945년 모리스 에르메스가 수집한 프랑스의 화가 알프레드 드 드로의 19세기 석판화 ‘르 뒤끄 아뗄’에서 영감을받아 로고로 만들었다

그림 속에는 마부 석이 빈 채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로고는 에르메스가 고삐를 조정할 고객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한다

르 뒤끄 아뗄

1951년 4명의 딸이 있었던 에밀 에르메스는 사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이들 중 로베르 뒤마가 1951년에 에밀 에르메스의 뒤를 이어 에르메스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최초의 실크 스카프, 미래의 켈리 백, 샹 당크르 브레이슬릿 등과 같은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로베르 뒤마 HERMES.COM

로베르 뒤마는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인 켈리 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56년, 모나코의 왕세자비 그레이스 켈리가 에르메스의 ‘쁘띠 싹 아 끄로와’를 들고 임신한 배를 가리고 있는 사진이 잡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백을 켈리 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에르메스는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오마주로 이 핸드백의 이름을 ‘켈리백’이라고 지었다

그레이스 켈리

1967년 헝가리 출신의 프랑스 스타일리스트, 캐서린 카롤리가 여성복 디자인을 맡게 되었고 아이코닉한 H버클을 포함한 의류와 액세서리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1978년부터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루이 뒤마가 뒤를 이으면서 5세대 경영이 시작되면서 장 루이 뒤마는 실크, 가죽, 기성복 라인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고 시계부문 자회사인 라 몽트르 에르메스를 설립하는 등 팔찌, 자기, 크리스탈 등의 제품 라인을 추가하며 에르메스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장루이 뒤마 HERMES.COM

1984년에 탄생한 버킨백은 장 루이 뒤마와 배우 겸 가수인 제인 버킨이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한 아이의 엄마였던 제인 버킨이 아이의 물건을 수납할 마땅한 가방을 찾지 못해 속상하던 차에 장루이 뒤마는 버킨백의 디자인을 그 자리에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버킨백은 저녁 외출에도 낮의 일상에서도 어울리는 큰 사이즈의 우아한 가방을 모티브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인 버킨

1992년 에르메스는 장인들이 제품을 제작하는 아틀리에와 디자인실을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기 위해 파리 인근의 팡탕 지역에 대형 유리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장 루이 뒤마의 아내이자 건축가인 레나 뒤마가 디자인을 맡았다

팡탕 공방

2005년에 장-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알렉시 뒤마가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2015년부터는 애플 워치 에르메스 에디션을 통해 Apple과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L. 알렉시 뒤마 R. 에르메스 애플워치

2010년 장 루이 뒤마가 사망하면서 라코스테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14년에는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증손자인 악셀 뒤마가 CEO를 맡게되었다

2020년 입술의 아름다음을 강조하는 컬렉션으로‘루즈 에르메스’를 선보이며 에르메스 뷰티가 런칭되었다

에르메스 루즈 HERMES.COM

에르메스의 장인정신 새들스티치

에르메스 가죽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인 박음질은 에르메스 역사의 시작인 마구 및 안장을 만드는 기술에서 비롯되었다

새들 스티치는 에르메스의 모든 가죽 제품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표시인 동시에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에르메스의 새들 스티치는 왁스를 입힌 프랑스산 리넨 실에서 시작되며 실 양쪽 끝으로 바늘이 꿰어져 있고 두 번 겹쳐진 바느질이 두 장의 가죽을 이어줌으로써 튼튼한 제품이 만들어지는것이다

하나의 박음질이 끊어지더라도 다른 하나는 남기 때문에 새들 스티치는 가죽 종류, 제품의 크기에 따라 2.5cm당 5번에서 14번까지 이루어진다

새들 스티치는 특정 도구를 가지고 수개월의 훈련을 거친 전문가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엄격한 품질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기계로 한 박음질과는 달리 방향은 항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해야 하고, 모든 스티치가 동일한 조임과 사이즈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들스티치 작업 / 새들스티치

에르메스 가방

1892년 삭 오타크루아

에르메스의 첫 번째 가방으로 켈리백, 버킨백의 초기 디자인으로 마구를 넣던 큰 가방이다

삭 오타크루아

1923년 볼리드(Bolide)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인 지퍼를 단 가방으로 자동차에 쉽게 실을 수 있는 모양이라 ‘볼리드’란 이름이 붙었다

볼리드

1935년 켈리(Kelly)

삭 오타크루아를 작게 만들어 스트랩을 단 가방으로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빨간 악어가죽 소재의 가방을 들고 임신한 그녀의 배를 가린 사진이 ‘라이프’지 표지에 실린 후 켈리백이라 불리게 되었다

켈리백 HERMES.COM

1967년 플럼(Plume)

1930년대 담요 가방에서 힌트를 얻은 디자인으로 심플하고 기능적이다

가벼워서 깃털이라는 뜻의 플럼이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플럼

1969년 콘스탄스(Constance)

다섯 번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던 한 장인에 의해 디자인되었는데 가방이 완성됐을 때 아이가 태어나 아이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에르메스의 ‘H’로 가방 덮개를 만들었고 가방을 메는 이의 키, 취향에 따라 끈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콘스탄스

1978년 에블린(Evelyne)

펀칭 기법으로 H 모양이 새겨진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이다

기수들이 마구 제품을 넣고 다니도록 만들어졌고 젖은 제품이 잘 마를 수 있게 H가 펀칭되어있다

에블린

1984년 버킨(Birkin)

여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디자인된 가방으로 비행기에서 버킨 옆자리에 앉게 된 장 루이 뒤마 회장이 그녀의 혼잡한 가방을 보고‘소지품이 전부 들어가는 우아하고 큰 가방’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버킨백

1998년 에르백(Herbag)

조립식으로 된 특이하고 가벼운 가방이다

에르백

2004년 파리스-봄베이(Paris-Bombay)

인도 출신의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의사 왕진 가방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된 가방으로 입구가 넓어 사용이 편하고 소가죽을 안감으로 사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색을 띤다

파리스 봄베이

2007년 린디(Lindy)

2007년 ‘춤의 해’를 맞아 에르메스는 율동적인 디자인과 패턴을 선보였는데 린디는 스윙댄스 장르 중 하나다

핸드백과 숄더백을 각각 다르게 연출할 수 있는 가죽 가방이다

린디

2008년 집시에르(Jypsiere)

버킨을 메신저 백의 형태로 변형시킨 모델로 버킨의 고급스러운 디테일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옛날 사낭꾼이나 어부들이 어깨에 메던 백을 모티브로 장 폴 고티에가 재탄생시킨 가방이다

집시에르

2010년 툴 박스(Tool Box)

장인들의 공구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가방으로 겉으로는 작아보이지만 내부는 상당히 넓다

툴 박스

왼쪽부터) 가든파티 – 더블센스 – 비치백 롤리스 – 베를린 – 카테니나 피코탄 – 후루토 – 켈리클래식 투고 클러치 이지 클러치

사실 우리나라 사이트에는 정말 일부분만 있을뿐 에르메스의 가방종류는 150개정도 된다고 한다

창시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지켜오던 그 투철한 장인정신은 에르메스의 컬렉션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에르메스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현재 에르메스 가문의 자손들이 가족경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절대 LVMH 에 빼앗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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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패션의 역사를 말하다!

FASHION

에르메스, 패션의 역사를 말하다!

최초로 가죽 핸드백을 만들고, 백에 처음 지퍼를 달았으며, 실크 스카프를 탄생시킨 에르메스의 사람들. 그저 단순하게 브랜드의 히스토리라 치부하기엔 너무 거대하다. 오랜 역사와 아카이브를 통해 고집스럽게 일관해온 그들의 가치. 그리고 최고 중의 최고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보자.

에르메스가 써 내려온 가방 속 역사 이야기

오브제가 된 가방

어떤 대상을 향한 집념은 곧 그것에 대한 굳은 신념을 의미한다. 에르메스 메띠에(Metiers)와 궤를 같이해 떼려야 뗄 수 없는 메종의 주요 소재인 가죽 역시 승마 문화를 기반으로 한 에르메스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한다. 1837년부터 마구용품과 안장 등을 제작하며 유서 깊은 장인정신을 이어온 에르메스의 가죽 컬렉션. 크고 작은 사물에 고스란히 깃든 히스토리를 탐구하고자 에르메스는 헤리티지 전시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전시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Once Upon a Bag)>가 5월 22일부터 6월 6일까지 서울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주제는 ‘가방’. 오랜 세월을 거쳐 변화를 거듭해온 에르메스 가방의 이야기가 전시장 곳곳을 가득 채워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질 예정이다. 프랑스 루베의 라 피신(La Piscine) 미술관 큐레이터 브뤼노 고디숑(Bruno Gaudichon)과 시노그래퍼 로랑스 폰테인(Laurence Fontaine)은 이번 전시를 위해 내레이터로 직접 나섰다. 메종에서 최초로 출시한 가방 오뜨 아 크로와(Hauta Courroies)를 시작으로 베루(Verrou), 켈리(Kelly), 플룸(Plume), 버킨(Birkin) 등 에르메스의 아이코닉한 가방은 역사와 각 시대를 잇는 오브제들의 긴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엡솜 카프스킨 소재로 제작한 베루 백. 1935년 ‘시티(City)’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해 1956년 현재 이름으로 바뀐 켈리 백. 1998년 켈리 백을 변형해 만든 에르(Her) 백. 2021년 S/S 켈리돌 백 참.

왼쪽 에르메스 메종을 대표하는 가방 중 하나로 손꼽히는 켈리 백. ©Jack Davison

오른쪽 에르메스 가방에 담긴 창조성을 엿볼 수 있는 베루 백. ©Jack Davison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의 운을 뗀 오뜨 아 크로와는 본래 부츠와 안장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가방이다. 20세기 초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대중에게 여행용 가방으로 사랑받은 이 백은 볼린카(Volynka)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여러 차례 재해석되며 에르메스 가방이 갖춘 독특함과 다양성을 증명했다. 1930년대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고안한 켈리 또한 그 창조성을 대변한다. 기하학적 사다리꼴 실루엣이 돋보이는 켈리는 탈착 가능한 스트랩을 가방 양쪽에 달아 자유롭게 스타일을 변형할 수 있다. 1950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이 가방을 든 사진이 화제를 모으면서 당시 뜨거운 인기를 얻었고, 이후 켈리아도(Kellyado)와 켈리돌(Kellydole), 켈리라키스(Kellylakis) 등 다채로운 버전으로 소개해 변화무쌍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각 디자인 요소가 저마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섬세한 디테일의 가방, 베루에서도 에르메스의 혁신성은 여지 없이 드러난다. 절묘한 곡선 실루엣과 잠금장치를 여닫을 때 나는 미세한 소리, 가방 안쪽에 손을 넣을 때 느껴지는 안감의 촉감까지도 모두 치밀한 설계에 따라 탄생한 것이다. 가방을 만드는 내내 디자이너는 장인과 끊임없이 의견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개인의 소지품을 휴대하는 단순한 기능의 가방이 아닌, 각각의 요소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비로소 완성된다.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강조한 박스 카프스킨 소재의 버킨 백.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방

기발한 디자인만큼 에르메스 가방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다. ‘에르메스 가방’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흥미로운 스토리는 버킨에 대한 것이다. 1984년 에르메스 회장을 맡은 장 루이 뒤마(Jean Louis Dumas)는 영국과 파리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뮤지션 겸 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과 우연히 마주친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자신 같은 젊은 엄마가 들고 다닐 편안한 토트백이 없어 아쉽다는 말을 꺼낸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장 루이 뒤마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유연한 실루엣을 살리고, 수납공간이 넉넉한 실용적 디자인의 가방을 생각해낸다. 컷아웃 디테일의 플랩, 회전형 잠금장치 등 메종을 상징하는 장식까지 더한 버킨의 디자인은 지금도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으며 버킨 섀도우(Birkin Shadow), 버킨 쏘 블랙(Birkin So Black), 버킨 셀리에(Birkin Sellier)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1967년 인하우스 디자이너 까뜨린 샤이에(Catherine Chaillet)의 다섯째 딸 출산을 기념해 이름을 본뜬 콘스탄스(Constance), 브랜드 창립자의 손자 에밀 에르메스(Émile Hermès)가 캐나다를 방문해 자동차 후드를 여닫는 지퍼를 보고 만든 볼리드(Bolide), 그의 셋째 딸 이름을 본뜬 시몬느 에르메스(Simone Hermès) 등 다채로운 디자인처럼 에르메스 가방이 전하는 이야기는 메종의 역사 속 무수한 사건과 인물을 다룬다.

문의 02-542-6622

2020년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볼리드 1923-30 레이싱 백. 카우하이드 가죽으로 제작한 버킨 셀리에 35 백. 시몬느 에르메스 백.

왼쪽 가방 모서리 부분의 기죽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버니싱 작업 중인 에르메스 하우스 장인.

오른쪽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 전시 포스터.

에디터 박소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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