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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인생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막막한 당신에게 건네는 최고의 조언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뭘까?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중요한 선택의 순간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막막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나의 인생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간 속에 쌓인 평범한 이야기들이야말로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한 출발선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박선웅 교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인생 이야기가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지를 담백하고 깔끔한 필체로 풀어냈다.
나도 몰랐던 ‘진짜 나’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들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돌아보며 진정한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도서 자세히 보러가기 http://bitly.kr/bHKOiLvcU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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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어떤 대상의 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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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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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란 무엇인가 – 살며생각하며

좀 더 쉬운 말로 이야기해 볼까요? 정체성이란 단순히 외모나 이름 만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체성이란 바로 당신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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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uturemoney.tistory.com

Date Published: 4/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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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칼럼] 정체성을 찾아서…’나’로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

그에 의하면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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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duinnews.co.kr

Date Published: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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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브런치

정체성. 나의 정체, 나라는 존재의 정체. 혹은 나 아니더라도 뭔가 존재하고 있는 그 대상의 정체. 이것은 엄중히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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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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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란 뜻 알아보기

정체성 뜻은 쉽게 말해서 자신의 본질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정체성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우선 국가 정체성은 개인이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해 소속감을 갖고 국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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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elena.tistory.com

Date Published: 9/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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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란 무엇인가 – 나를 지키는 공간

정체성이란 것은 하나의 인식의 결과입니다. 즉 나는 누구인지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한 끝에 우리가 세상에서 찾아낸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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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republic.tistory.com

Date Published: 4/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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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나의 정체성이란? – 네이버 블로그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정체성(正體性)의 사전전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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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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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체성 ”그들이 보는 나” | 나라경제

한국인에게 정체성이란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의 ‘심리적 정체성’이기보다는 ‘내가 어디에 소속돼 있으며, 또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것과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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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iec.kdi.re.kr

Date Published: 6/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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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

여기에는 성전환자, 트랜스젠더, 간성자, 이성복장자, 그리고 성 정체성 또는 성 표현이 타고난 성별과 다르거나 다르게 보이는 사람 등이 포함됩니다. 성 정체성이란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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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hrc.on.ca

Date Published: 8/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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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이 말하는 정체성의 세 가지 특징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정체성을 향해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변이 정체성은 아니다. 정체성이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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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ind-journal.com

Date Published: 7/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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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가?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정체성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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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경계를 허무는 콘텐츠 리더,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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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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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체(正體)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할 수 있다.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어떤 대상의 인식으로서의 정체, 인간의 정체성, 기업의 정체성, 군대의 정체성, 국가의 정체성 등 다양하다. 통상 정체성이라고 하면 인간의 정체성을 말한다.[1][2][3]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을 한다. 정체감의 형성 과정에서 아동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소망, 사고, 기억, 외모 등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4][5]

인간은 양육자나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 형성을 시작하는데,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으로 보내진 아이도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의 생모나 생부라는 존재를 자기 인생에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6] 에릭 에릭슨의 발달이론에서 12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기에는 정체성이 형성되거나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 시기에 친구, 외부 집단과 접촉하면서 의미있고 풍요로운 자기 개념을 만들거나, 외부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관계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현상을 맞기도 한다.[7][8][9][10]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인간이 종교를 갖는 것도 정체성 형성과 연관이 있다. 신과의 관계 설정, 우주와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안정감을 유지하며 삶의 부조리나 희로애락을 처리해 나간다.[11][12][13][14][15][10]

정체성은 철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정체성 문제도 다각도로 조명되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인격과 온라인상에서의 인격이 전혀 다르게 자신의 삶을 연출할 수 있게 되면서 당사자도 어느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가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16][17]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인공지능의 발달도 정체성 문제를 본질적 측면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18][19][20][21][22]

정체감 [ 편집 ]

‘나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처럼 정체라는 정의가 필연적으로 구별되는 또다른 대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동일성을 유지하는 개별적인 것이 다른 구별되는 존재와의 관계에서 변별되고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그러한 다른 존재들중에 속한 존재로서 개별성을 언급하는 맥락에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를 다루어왔다. 한편 이처럼 개인의 정체성을 주변환경과의 상호관계까지 확대하여 이해하는 것은 고립적이고 독립적일수있는 측면에 국한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내 존재의 의미는 나의 삶이 나에게 질문한다는 데에 있다. 한편 이것은 반대로, 나 자신이 세상에게 나의 대답을 전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세상의 응답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은 내 개인적인 것을 초월하는 사명으로 이는 오직 내가 전력을 다해 노력할 때에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 기억, 꿈, 반사상 11장 사후 생애 – P318

Here is the greatest and smallest, the remotest and nearest, the highest and lowest, and we cannot discuss one side of it without also discussing the other. No language is adequate to this paradox. Whatever one can say, no words express the whole. (Chapter 12-Late Thoughts III ,P354 MDR), 카를 융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마음가짐에서 태도를 바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The greatest discovery of my generation is that a human being can alter his life by altering his attitudes of mind. – 윌리엄 제임스

발달 과정에서 아동은 문화 경험의 항목뿐만 아니라 문화적 행동의 습관과 형태, 문화적 추론 방법을 숙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동의 행동 발달에있어 주요 선을 구별해야합니다. 첫째로는 일반적인 유기적 성장 과정과 그리고 아동의 성숙 과정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있는 행동의 자연적 발달 선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심리적 기능의 문화적 개선, 새로운 추론 방법의 작동, 문화적 행동 방법의 숙달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다른 두 자녀 중 나이가 어린 자녀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가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점을 살펴볼수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이유로 사실입니다. 나이가 많은 어린이가 암기하는 과정은 추가 성장 기간 동안 특정 진화를 겪었으며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심리 분석을 통해서만 진화가 첫 번째 또는 두 번째로 진행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것입니다.

‘In the process of development the child not only masters the items of cultural experience but the habits and forms of cultural behaviour, the cultural methods of reasoning. We must, therefore, distinguish the main lines in the development of the child’s behaviour. First, there is the line of natural development of behaviour which is closely bound up with the processes of general organic growth and the maturation of the child. Second, there is the line of cultural improvement of the psychological functions, the working out of new methods of reasoning, the mastering of the cultural methods of behaviour. Thus, of two children of different ages the elder can remember better and more than the younger. This is true for two entirely different reasons. The processes of memorizing of the older child have undergone, during his additional period of growth, a certain evolution – they have attained a higher level – but only by means of psychological analysis may we reveal whether that evolution proceeded on the first or on the second line.’ -Lev Vygotsky 1929, The Problem of the Cultural Development of the Child , 챕터 ‘The problem’ -레프 비고츠키

관련 서적 [ 편집 ]

도복선. 《헤르만 헤세의 작품과 정체성 위기 문제》. 한국학술정보. 2005년. ISBN 8953423236

파트릭 모디아노 저. 김화영 역.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2010년. ISBN 9788954610971

ISBN 9788954610971 파트릭 모디아노 저. 김화영 역.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문학동네. 2015년. ISBN 9788954634113

ISBN 9788954634113 이사벨 나자레 아가 저. 정미애 역. 《나는 왜 맨날 당하고 사는 걸까》. 북뱅. 2015년. ISBN 9791155783801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의 정의에 대하여 정신분석용어사전에서는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경험, 정체감은 주관적 경험으로서, 아동 자신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체성 이란 용어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지요?

좀 더 쉬운 말로 이야기해 볼까요? 정체성이란 단순히 외모나 이름 만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체성이란 바로 당신만의 가치관,신념,특성이 포함하여 당신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가리키는 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신념이 없이 남을 따라 가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즉 마네킹처럼 남이 입혀 주는 대로 옷을 입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정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다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의 장단점은 무엇이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까? 현재 나는 어떤 모습이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잘 모르겠다면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솔직히 말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단점도 알게 된다면 앞으로 되기를 원하는 자신의 모습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남이 하는 대로 쫓아가는 사람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한번 자문해 보시고 자신만의 신념을 정리 정돈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해 보고 답을 써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저급한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고, 나중에 존경 받는 한 사람으로도약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도덕관, 종교관, 불공정과 관련되 정의관, 직업관 등등….. 많은 것이 관련될지도 모릅니다. 다수를 따라 행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이 가진 정체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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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란 무엇인가 / 스트레스의 뜻

[전재학 칼럼] 정체성을 찾아서…‘나’로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에듀인뉴스] ‘정체성의 심리학’ 저자인 박선웅 고려대 교수는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정체성 연구의 전문가이자 심리학과 교수다.

그는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찾아 좌충우돌하였다. 공군 학사장교로서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 교직원, 국회이원 보좌관, 다시 대학교 교직원으로 살다가 서른이 되기 직전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자신의 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민했던 시간은 자연스럽게 정체성 연구로 이어졌다. 그의 글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이젠 한평생 살면서 써나가고 싶은 나의 인생의 줄거리는 무엇인지, 나의 삶을 통해 내가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아가 이 세상에 말하고 싶은 나의 인생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사람이 죽어 남기고 싶은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회자될 이야기가 없는 이름은 허망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를 의미한다. 이는 언제 어디서든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일 수도 있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추구하고 싶은 가치일 수도 있다.

정체성이 잘 형성되어 있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 영혼의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자신이 행복한 순간은 언제이고, 자신의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공통으로 하는 말이 사회나 부모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뛰어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공부만 하느라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그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둘째, 자신의 목적지가 찍힌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상당 부분 내렸다는 것이다. 가야 할 도착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기만 하다면 결국 가기로 한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셋째, 삶에 대한 지침,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알고, 가야 할 곳을 알면 어떤 일에 집중하고 어떤 일은 거절하고 어떤 일은 미뤄둘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심리학자 제임스 마샤(James Marcia)는 누군가의 정체성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탐색했는가. 둘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는가이다.

이 두 요소에, 즉 탐색과 신념의 여부에 따라 네 가지 정체성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정체성의 획득, 유예, 폐쇄, 혼미이다.

정체성 형성이 큰 이슈가 되는 이십대를 상대로 정체성 상태를 연구한 결과(사회정신건강연구소 2007)에 의하면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정체성 획득 상태에 있는 사람이 현저히 적고 반면에 정체성 폐쇄 상태에 있는 사람은 현저히 많다는 것이다.

무려 91%에 해당하는 한국의 이십대들이 정체성 폐쇄(66%)나 혼미(25%) 상태에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비해 획득(7%), 유예(2%)상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다행이도 요즘 한국사회는 정체성이라는 화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무려 200쇄를 훌쩍 넘기며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는 책이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이다. 이에 앞서서는 역사상 최장 기간 1위였던 책은 일본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였다.

이보다 앞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통해선 일제강점기와 6.25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달려온 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니 왜 우리의 영혼이 말라비틀어졌는지를 성찰하게 해 주었다.

성찰의 결과는 ‘헬조선’이란 끔찍한 진단서였다. 결국 이런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용기 있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은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이다. 이후엔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 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항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꽃집 ‘수다 F.A.T’를 열고 플로리스트로 살아가는 손은정, 44개국 세계일주를 다녀 온 ‘꼬맹이 여행자’ 장영은, 여행작가, 소설가, 인생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전직 KBS 아나운서 손미나 등이 대표적인 정체성 탐구의 주인공이다.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자. 누군가 항아리에 큰 돌을 하나씩 넣어 항아리를 가득 채운 후 “항아리가 가득 찼는가?”라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가 또 다시 조그만 자갈을 꺼내 항아리에 채워 넣기 시작한다면? 큰 돌들 사이에 조그만 자갈이 가득 차니 다시 항아리가 가득 찼다고 할 것인가? 여기에 이젠 모래로 가득 채우고 또 그 다음엔 물을 가득 부으면 항아리엔 물이 가득 차게 된다.

이 실험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노력을 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다. 이 실험이 주는 의미는 만약 큰 돌을 넣지 않으면 영원히 큰 돌을 넣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이 왜 중요한 가를 정확하게 짚은 것이다.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없다. 이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특히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더욱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해야만,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만 우리 삶에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겐 하루 24시간의 공정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죽는다. 따라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만 한다. 즉 인생의 큰 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큰 돌을 찾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정체성은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조화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곧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그동안 우리는 이를 잊고 단지 타인이 정해 놓은 성공의 길만을 따라 인생길을 그렇게 소모적인 경쟁에 매달려 험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 속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다시금 외친다. 옛것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정체성이란 위에 제시한 모든 사실과 과정을 인지하고 자신의 삶에 심어 놓음으로써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미움받을 용기>의 후속편이 아닌가 한다. 내 안에 숨겨진 진짜 나를 찾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정체성임을 잊지 말자.

정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글은 이전에 썼던 “정체성은 내용이 아닌 느낌이다”의 후속글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링크를 클릭해서 먼저 읽어도 좋다. 같은 주제인 ‘정체성’ 관련 내용이지만 두 글의 차이는 크다. 그래서 앞서의 글은 ‘자기 미움’ 매거진에 넣었지만 이 글은 ‘메타 사유’ 매거진에 넣었다. 의도적 배치이다. 그러므로 구분해서 읽으면 좋다. 일반적인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서 글의 관점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글이다.)

‘내용’만이 아니라 ‘느낌’마저도 넘어선 정체성

앞서의 글에서는 ‘내용’으로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의 모순과 한계들을 짚어봤었다. 그리고 정체성의 본래 근거로 ‘느낌’을 제시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우리가 자신의 혹은 타인의 정체성을 결정할 때 사용되는 모든 것이다. 그의 인종, 국적, 성별, 외모, 나이, 이름, 직업, 능력, 성취하거나 하지 못한 것, 성격, 특성 등이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그 어떤 ‘내용’도 정체성의 근거나 바탕이 되지 못하며 우리는 그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말했다.

그러면서 정체성이란 결국 그 모든 내용들을 바탕으로 가지고자 하는 어떤 느낌의 문제라고 했다. 그 느낌은 ‘비조건적, 비한정성의 존재감’이었다.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나 능력에 바탕하고 의존해서 가지려고 하지만 사실은 그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당당함과 떳떳함, 자랑스러움, 만족의 느낌’이다. 우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성취해서, 돈을 벌어서, 지식을 갖추어서, 관계를 맺어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궁극적으로 가지려고 하는 게 바로 그 ‘있는 그대로에서의 온전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어떤 ‘불완전한 느낌, 안 좋은 느낌, 부족한 느낌’을 가지기 위해 뭔가를 하는 이들은 없다. 그렇게 부정적 느낌으로 자신을 구축하는 ‘내용’을 쌓으려는 이는 없다.

정체성에 대한 바탕으로 ‘느낌’을 제시한 이유는, 애초에 정체성의 기반이 될 수 없는 ‘내용’에 의존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닌 것을 그런 것으로 삼는’ 근본적, 태생적 한계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내용으로 정체성을 삼는 건 결국엔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로워하고, 허무해하고, 힘들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내용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의 정체성은 더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지낼 수는 있겠지만 그 안정 조차도 한계가 있는 안정이다.

마치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갈증에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을 마시지만 염류 농도가 체액보다 훨씬 높기에 오히려 마신 바닷물보다 더 많은 물을 배출해서 탈수증으로 죽게 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사실은 우리 자신이 물이다!)

‘차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 과거일수록 인류는 사람의 ‘내용’으로 상대 집단을, 상대를 그리고 나를 절대적으로 차별해 왔다.

시대적으로 보자. 아주 먼 과거에는 인종이라는 내용에 의한 구분이 절대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타 인종은 말살시켜도 아무렇지도 않은 때도 있었다. 흑인이라고, 인디언이라고 무조건 노예로 만들거나 착취를위해 학살했다. 그러다 그 부분은 점점 약해져 왔다. 물론 인류는 아직도 여전히 인종 차별적인 습성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먼 과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론 분명 나아졌고 앞으로 점점 나아질 것이다. 신분 차이에 의한 무조건적 차별도 마찬가지다.

조금 가까이는 남녀라는 내용의 차이가 절대적인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거의 모든 사회에는 남녀차별의 요소가 존재한다. 어떤 국가나 사회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향성은 점점 더 남녀차별을 없애가는 것, 넘어서는 쪽으로 가고 있다. 남녀차별의 상황을 현재보다 더욱 개선시키기 위한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노력과 투쟁은 아직도 필요하지만 여하튼 그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

현재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 타파도 그런 흐름이다. 주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더 중동이나 동양으로도 번져갈 것이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내용’에 기반한 차별을 없애 나가는 것, 넘어서 가는 것이 말이다.

이렇듯 인류는 큰 흐름에서는 내용에 대한 의존, 내용에 의한 차별을 없애고 넘어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가장 마지막에 남을 내용에 의존한 차별’은 바로 ‘내용에 의존한 개인의 정체성의 차별’이 될 것이다. 자기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래서 앞서 쓴 글과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마지막 차별, 기저의 차별을 좀 더 빨리 눈치채고 넘어서자는 게 되기도 하겠다. 마치 먼 과거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가 지금 주요 주제가 되었듯이, ‘내용에 의존한 개인의 정체성 차별’ 문제도 미래에는 점점 주요 주제로 떠오를 것이라 예측된다.

물론 내용에 바탕한 정체성 설정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용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게 더 지혜로는 것이다. 그것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도구는 잘 써 주는 게 미덕이다. 빤히 쓸 수 있는 도구를 안 쓰는 것은 다만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내용이든 자신을 잘 보완해 주고, 유용하게 하고, 도움을 준다면 기꺼이 쌓고 쓰자.

다만, ‘정체성은 그 사람이 가진 내용에 의해 절대적으로 정해진다’는 이 오류를 자각하면 된다. 자신이 그리고 타인이 가진 내용으로 그 정체성을 결정해서 그것을 절대화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내용이 부족하다고 정체성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고, 또 내용이 크거나 많거나 좋다고 정체성도 그렇다고 절대시 하지 않으면 된다. 즉 내용에 따라 불필요하게 괴롭게 되지 않으면 됩니다.

사실 인간이 가진 문제와 고통 거의 모두가 바로 이 ‘정체성은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위에 링크한 앞서의 글에서, 이러한 한계와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인 ‘본래의 느낌’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다시 느낄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런데, 이제 좀 더 근본적인 사유로 들어가야 한다.

사실은 ‘느낌’마저도 하나의 방편이었지 정체성에 대한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주의할 것은, 그렇다고 이 글에서 ‘느낌’마저도 넘어서거나 무시하거나 하자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이다. ‘내용’에 대해서도 이미 그렇게 말했다. 정체성을 내용으로 한정 짓는 것을 하지 말자고 할 때, 그것이 결코 내용을 무시하거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내용의 주인으로서 철저히 잘 활용하자고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느낌도 그렇다. 우리가 내용을 근거로 구축하고자 했던 ‘있는 그대로의 나의 온전성, 충분함, 만족함, 좋음, 괜찮음’의 느낌은 사실 그러한 내용의 바탕 혹은 그에의 도움, 의존, 의지가 없어도 ‘본래 그러함’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우리의 문명과 문화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와 문명은 다른 발로 하면 ‘집단적 학습’이다. 아기가 자라면서 부모와 어른과 사회로부터 주입되는 현 문명, 문화들의 모든 설정은 ‘너의 정체성은 네가 가진 내용이다’가 된다.

그러나 자연에서 인간 이외에 그런 인위적 설정을 정체성의 근거로 만들고 받아들이는 존재는 없다. 인간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 특유의 언어 기능, 개념 설정 기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동물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지력을 가진 경우엔 비슷한 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을 순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일종의 오염 혹은 착오인 셈이다. 자연 속의 그 어느 것도 그렇지 않다.

다소 은유적 표현이지만, 심지어 지구 밖으로 나가 행성과 별과 은하들도 그 내용으로 정체성을 한정하고 제한하진 않는다 볼 수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럴 뿐이다. 오직 인간만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있는 그대로의 온전함’에 대한 느낌을 건강한 정체성의 근거와 바탕으로 삼는 것은 충분히 훌륭하다. 의미가 있고 유용하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여기서 그 ‘느낌’마저도 품되 마침내 넘어서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걸까?

그것은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이다. ‘내용’보다는 굳건하지만 ‘느낌’을 정체성의 바탕으로 삼는 것도 사실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용만이 아니라 느낌에 대한 의존도 끝끝내는 의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어쩌면 쉽게 느끼거나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직 내용으로 정하는 정체성 부분도 넘어서기 힘든데 그 바탕인 느낌마저 넘어서라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시해 보는 이유는, 그것이 쉽든 어렵든 ‘그런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 문명이, 각 문화가 다른 것을 제시해 왔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한계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든 어렵든, 혹은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그와 상관없이 일단은 “본래의 것’이 제시되어야 한다. 보여야 한다. 이야기되어야 한다. ‘다른 게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 글은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라 보면 된다.

왜 ‘느낌’마저도 정체성의 최종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밀하게 말하면 느낌도 사실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언어적 내용이고, 언어 이전의 내용이고, 미세한 내용인 것이 다를 뿐이다. 어쩌면 최초의 내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용’이 왜 정체성의 온전한 근거가 될 수 없는지는 앞서의 글들에서 충분하게 이야기했다.

정체성의 바탕으로 삼을 그 ‘온전한 느낌’은, 충분히 의의가 있으며 선명하게 가질수록 좋다. 그러나 그렇게 가지면서도, 궁극적으론 그 느낌마저도 조건이고 앎이고 분별이고 내용임을 알아채야 한다. 주의할 것은, 그렇기 때문에 느낌을 무시하거나 없애야 한다가 아니라, 그것을 잘 사용하되 그 근본 정체와 한계를 알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더 자유로워진다.

성숙한 사회로 갈수록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관련된 학습이나 교육, 문화의 전달에서 ‘내용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도 몇 가지 ‘차별’의 해체 과정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인류의 역사 자체가 그래 왔다. 계속 ‘내용 의존도’를 낮추어 오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일종의 집단의식적인 성숙인 셈이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인간의 내용에 의한 정체성 결정과 차별을 없애는 쪽으로 교육을 하고 있고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 바람직한 것이며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회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계속 그 구성원들이 노력하고 때론 투쟁도 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이든 개인이든, 만약 끝끝내 ‘느낌’ 마저도 나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 근거로 남겨두게 되면, 그러면 언젠가는 다시 ‘내용’으로 빠져들게 되는 흐름이 생길 수 있다. 이미 느낌 자체도 내용인 측면도 있지만, 그 전에 넘어섰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의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으므로 바람에 의해 다시 열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여지가 남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전체 사회와 문화가 건강하게 되어 있으면 웬만하면 다시 내용 위주로 절대적으로 빠져드는 일은 잘 생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투쟁,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집단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시 내용으로 가려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저지되고 치유될 것이다. 혹은 비판을 받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 소수자 차별 등에 대처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일종의 사회적 항상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건강성, 항상성의 바탕 위에서 이제 ‘느낌에 의존하는 정체성’ 문제도 점점 해결해 가야 한다. 짧으면 수 십 년일 수도 있지만, 아마 수 백 년, 수 천년이 걸릴 수도 있다. 마치 고대부터 시간을 거쳐 전근대 사회로, 다시 근대 사회와 후근대 사회로 넘어가는 그 거대 과정에 긴 시간이 걸려왔듯이 말이다. 시간 상의 문제일 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나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으로 정체성 삼음’이 아니라고 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대로의, 그 자체로서의 온전함’의 느낌을 정체성으로 삼으라고 해서 그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다시 그 느낌마저도 아니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내용도 느낌도 다 무시하라고? 다 허무한 것이고 소용없다는 말인가? 그런 정체성 자체가 어떻게 되는 거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계속 강조해 왔었다. 그건 오해다 무시하거나 허무하다 여기는 것이 말이다.

내용이든 느낌이든 모두 ‘도구’이다. 그러므로 본인이 원하는 내용, 느낌이 있으면 최대한 그것을 잘 사용해서 좋은 정체성, 건강한 정체성의 요소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내용이든 느낌이든 그것을 ‘정체성 그 자체 혹은 절대적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결국 고통과 혼돈,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든 집단 차원에서든 말이다.

이렇게까지 오면 아마 이 부분을 눈치챌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체성’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도대체 정체성이란 게 무엇인가? 내용으로도 느낌으로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아니, 그게 결정될 수 있는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맞다. 사실은 그렇다. 내용이든 느낌이든 정체성 자체는 아니며 다만 정체성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라고 했지만, 결국엔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문제는, ‘그렇다면 정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이다.

정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은 이 ‘정체성’ 마저도 내용이다. 말하자면 정말 ‘마지막’ 내용인 셈이다. ‘느낌’도 거의 마지막 내용일 수 있지만 마지막이라기보다는 ‘미세한’ 내용이라는 게 더 맞다. 진짜 마지막 내용은 바로 ‘정체성 자체’인 것이다. 가장 순수한 내용 혹은 맨내용(맨살과 같은 의미로).

그리고,

내 정체성은 내가 아니다.

정체성. 나의 정체, 나라는 존재의 정체. 혹은 나 아니더라도 뭔가 존재하고 있는 그 대상의 정체.

이것은 엄중히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설정이다. 내용이다.

철학적으로는 ‘주체 설정’ 혹은 ‘주체-객체 설정’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최초의 내용이 있었기에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느낌과 그리고 수많은 생각과 행동과 구체적 성취와 물질적인 내용들이 다 드러붙은 것이다. 이 구조는 선명하다.

선명하지만 일상과 삶에서 얼마나 이것을 자각하며, 실제 삶에 구체적으로 연결되고 적용되느냐는 결국 각 개체 의식의 ‘선택’의 문제가 된다. 구조가 아무리 선명해도 이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에서 아무런 의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개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집단에도 마찬가지다. 인류 전체에도. 반대로 이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다면 사실은 삶에서, 존재에서 가장 큰 주제가 될 수 있다.

이 글은 여기에서 멈출 것이다. 얼마든지 더 풀어서, 덧붙여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실제 할 말은 이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더 할 말은 없다. 다만 추가적인 자극과 흔들기를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필요한 말을 더 할 수는 있겠지만 핵심은 다 나왔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만약 관심이 생긴다면 혹은 의식의 초점이 여기에 맞추어진다면 하나의 삶의 주제로 이것을 탐구해 가는 것이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순수한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설사 그게 아니어도, 이제까지 잘 살아온 삶을 계속 그리고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면 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체성 그 자체와 상관없이

온전히, 여여히, 무한정, 비한정으로

존재한다.

정체성이란 뜻 알아보기

정체성 뜻

안녕하세요 오늘은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정체성이란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두뇌

정체성

평소에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종종 듣게 될 때가 있는데요, 이때 정체성이 무엇인지 몰라서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체성 뜻이 무엇일지 바로 살펴보겠습니다.

생각

정체성 사전적 의미

우선 정체성 뜻을 사전에서 살펴보면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이러한 성질을 갖고 있는 독립적 존재’라고 설명되어 있는데요, 이렇게만 보면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더욱 쉽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민

국가 정체성

정체성 뜻은 쉽게 말해서 자신의 본질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정체성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우선 국가 정체성은 개인이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해 소속감을 갖고 국민의 일원으로서 연대감을 지니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늘

다양한 정체성

또한 민족 정체성은 특정 사람이 스스로 특정 민족에 속해있다고 의식하거나 또는 믿음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을 의미하며, 성 정체성은 본인의 성에 대한 자각 또는 인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정체성의 또다른 의미

또한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알아가는 것도 무척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사물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곳에만 머물러있을 때도 정체성이라고 표현하니 상황에 맞게 해석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음표

오늘은 이렇게 정체성 뜻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에 많은 분들 깨서 궁금해하실만한 내용이라 소개해드렸는데 큰 도움이 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2013.8.23.

나는 누구인가라던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은 흔합니다. 저 자신도 몇년전에 이렇게 쓴적이 있습니다만 자신의 정체성이 결국 자기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라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것이고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 할것이고 학자면 학자로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것이며 한 가족의 일원이면 그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정체성이란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나 그 답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이란 것은 하나의 인식의 결과입니다. 즉 나는 누구인지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한 끝에 우리가 세상에서 찾아낸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점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정체성이란 사실 그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찾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어떤 뜻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역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역사는 사실 그자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요즘 거의 없습니다. 역사가 허구고 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무수히 존재하는 사실들을 어떤 역사를 보는 눈 즉 사관과 입장에 근거해서 연관짓고 나열하는 작업이 역사입니다.

우리가 조선시대를 말할 때 조선시대의 왕의 생활에 대해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영화에 사실만을 담아도 징기스칸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 우리는 징기스칸의 입장에서만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징기스칸 시대에 몽고병에게 침략당했던 나라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때 이야기는 다르게 들립니다. 역시 사실만을 나열해도 그렇습니다. 결국 사실의 양은 무한합니다. 게다가 사실은 사실그대로 재현 불가능합니다. 같은 징기스칸 영화라도 주연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징기스칸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일을 관찰하는 우리가 또한 그 시대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현대의 시점으로만 보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는 독재자이고 무지한 사람이며 비평등주의자라고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당세의 눈으로 보는 것은 그럼 가능한가. 그것도 안되죠. 이렇게 관찰자의 태도에 따라 의미가 흔들리는데 사실 그대로라면서 아주 작은 것을 다 현실적으로 재현해도 그것만으로 우리가 사실로서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전체적 사실이 아니라 부분적 사실만 보게 되는 것이죠.

이제 다시 우리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던가 대한민국이라던가 하는 것으로 돌아와서 정체성의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앞에서 그냥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정체성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우리는 적어도 한가지 점을 추가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체성이 그 대상에 대한 간단한 인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간단한 인식이 없을 때 우리는 행동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의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수학에 등장하는 개념처럼 이러저러한 정의를 알면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과한알에도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습니다. 그 사과는 누군가가 먹을수 있고 썩어서 거름이 될지도 모르며 혹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서 독재자의 얼굴을 향해 던져지는 무기로 쓰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과는 그 사과를 만들어 낸 나무가 있고 그 나무가 서있는 땅이 있으며 그 나무를 심고 키웠던 사람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 사과는 가장 인기좋은 여자 배우가 키스했던 사과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한한 사실들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과는 실상 다른 모든 사과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정확히 해서는 아무것도 알수없고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슈퍼에서 사과를 팔자면 등급정해서 같은 등급에 같은 지역에서 난 사과는 한알에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하기 마련입니다. 이럴때 사과는 단순화됩니다. 같은 박스안의 사과는 정확히 서로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그 사과의 정체성을 아주 간단히 정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사과를 인식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통상 우리가 더 애착을 가지는 상대에 대해서 더 길고 복잡한 인식을 합니다만 그래도 그것역시 무한대일수는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만하다가 굶어죽는 사람이 될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결국 우리는 사물을 모르고 우리 자신도 모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고 에너지도 시간도 유한하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알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하겠다는 것으로는 굶어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인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의 결과는 간단한 설명입니다. 이게 세상이고 이게 나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이 사실 그자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역사가 그러하듯이 우리가 가진 관점에 의해 선택된 정보로 만들어진 세계이고 나입니다.

여기 중요한 문제가 또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그럼 무엇이 만들어 낼까요. 우리의 행동,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 냅니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이 되는 것이죠.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관점을 만들고 우리의 관점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정체성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요즘 한국에는 다문화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몇몇사람들은 이러한 정책이 한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개 평등이나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이민을 받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이 질문이 객관적인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질문은 마치 나이가 찼으니까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처럼 그건 당신이 뭘 원하는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는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객관성과 주관성.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주관적 문제를 객관적 문제로 착각하고 내눈에 이렇게 보이니 나는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체성의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세상과 나를 보는 것인데 대부분은 그걸 그저 과학적 사실의 관찰쯤으로만 생각합니다. 즉 내가 뭘 ‘보니까’ 이렇더라, 그건 이거 아니냐. 나는 사실을 관찰했다. 나라는, 사회는, 계층은, 인간은, 본래 이러저러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런 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다문화정책 같은 것에 대해서 같은 세상을 사는데 보는게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 안에서 파시즘이나 히틀러를 봅니다. 너는 국수주의적으로 외국인을 차별하고 배제해야 한다라고 믿는구나. 사람이 그럼 안되지. 이런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국의 역사와 언어는 한국의 정체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간 일이 뭐가 중요하냐면서 가볍게무시하고 요즘 한국어보다 영어쓰거나 중국어 쓰는게 대세다라면서 외국어를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것을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라고 믿는가에 따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어떤 자리를 얻고 유명세를 얻으면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독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한다면 부자가 되건 유명해지건 그건 다 허무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세상에 대해 뭔가를 알다가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껍데기에 신경쓰는 대신에 알몸으로서의 자기자신에게 너는 그래서 뭐를 알게 되었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의 정체성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그 순환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일이 많습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개의 눈에는 개만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보고 있다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로 적어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합니다.

이상한 인형모으기에 광분하는 오타쿠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저렇게 돈과 시간을 낭비하다니 인간으로 태어난게 아깝다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당신은 오타쿠가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결국 그게 중요한 것이죠. 당신은 변태이고 어리석은 집착에 빠진 인간이 아니라서 다른 오타쿠를 찡그린 얼굴로 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출세오타쿠나 권력오타쿠, 사랑오타쿠나 잘난체 오타쿠인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뭐에 목숨을 걸고 인생을 다 써버리고 있습니까.

배운 사람은 특히 요즘 세상에서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사람들은 대개 주입식으로 남의 이야기를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감당이 안될정도의 지식체계를 머리속에 덕지덕지 넣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입니다. 남의 말에 의존해서 삽니다. 남의말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걸 내 시각으로 소화하는가 아니면 그냥 권위주의적으로 외웠는가는 다르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는 퀴즈 풀기 대회처럼 그저 남의 말을 많이 외워대면 학식이 높고 많이 배운 사람으로 인기를 얻습니다. 한마디를 듣고 그걸 오랫동안 생각하고 외우고 뜻을 생각하는 공부가 아니라 수천마디의 말을 들어서 그걸 줄줄이 외우는데 주력합니다.

그렇게 잘못 배운, ‘배운’ 사람들은 특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오히려 못배운 사람들보다 장님일수 있습니다. 자기 눈에 너무나 생생하게 세상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보는 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합니다만 그들은 스스로 감옥에 빠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깊어서 탈출이 불가능할 정도의 감옥인데 자기가 거기에 빠진 것도 부족해서 열광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옥으로 초대합니다.

개인의 선택에 딸린 문제이니 결국 학교 안가면 현명해진다고 말할수도 없고 학교가면 현명해진다고 말할수도 없습니다만 학교는 초등학교밖에 가지 않았어도 현명하신 분들은 있을수 있습니다. 박사를 받은 멍청이들은 확실히 세상에 많습니다.

나와 세상을 쳐다볼때 이런 점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체성]나의 정체성이란?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정체성( 正體性) 의 사전전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 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 아이덴티티 ( identity)

‘대안탐색과 역할 헌신을 통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

왜 갑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궁금하시죠,

우리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무엇인가 기준없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일들에 연연하며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의 사람인것 같습니다.

과연! 정체성의 하나는 무엇일까요?

남들보다 앞서는 사람의 정체성은 어떻게 수립되었는지 이론이 있어 기록해 봅니다.

정체성 지위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마샤(Marcia)는

성숙한 정체성 획득을 위한 요인으로 위기(Crisis)와 헌신(Commitment)을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개인은 위기를 경험한 후 어떤 직업과 이념에 헌신하게 되었을때 성숙한 정체성을 획득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관심있는 것을 배우는 것은 대안들중 하나를 선택하여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신하는 것! 여기서 헌신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겠죠!

열정을 담아 진솔하고 진실하게 신의를 지킬줄 아는 정체성의 확립은 어려운 환경을 긍정으로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기준에서…

공부를 하면서 전혀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을 두고 정체성 혼미 상태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않고 있는 상태…

무의미한 대안들중 하나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여 본인의 의도와 맞지 않게 움직이는 유실 상태…

가장 불행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생각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본인의 의도하에 살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정신적 유예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공부 혹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전혀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듯…

유예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자를 제대로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대로된 교육자를 만난다면 가장 선망하고 있는 정체성 획득 상태가 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결정과 결론은 스스로 내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을 하기까지

부모의 도움도 중요하겠지만 교육자의 지도가 가장 우선이라고 봅니다.

분명 무엇인가 시작을 했다는 것은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 그런관심을 어떻게 자극하고 자극하여

도전하고 공부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헌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지못한다면 고기를 잡아 눈앞에 가져다 주어도 중요한지,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길을 제시해주는 교육자가 되길 바래봅니다.

고기를 잡아다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자!

저는 운이 좋아 그런 교육자를 몇년전에 만났습니다. 오늘의 이자리는 그분을 통해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자극하고 자극하며 도전하게하고 공부하고 책을 읽게 만들어주셨죠…

정체성의 유예에서 허덕이던 나를 정체성 획득이라는 성과를 가질 수 있게 해주셨기에

저 또한 멋진 교육자로 다른이들을 자극하여 공부하게 하고 스스로 고기를 잘~잡으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너무 오랜시간을 허비하여 아쉽습니다… 좀더 빨리 알았다면…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 살아갈 멋진 날이 훨씬 많으니까요^^

정체성의 하나는 헌신의 시작입니다^^

Ontario Human Rights Commission

온타리오 주 인권법(Human Rights Code)

온타리오 주 인권법(인권법)은 평등한 권리와 기회, 그리고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정한 법입니다. 인권법은 취업, 주택, 각종 시설 및 서비스, 각종 계약, 그리고 노동조합, 기술직 또는 전문직 협회 회원 자격 등에서 온타리오 주의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합니다.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성별 차별 금지에 따라 법적으로 보호됩니다. 여기에는 성전환자, 트랜스젠더, 간성자, 이성복장자, 그리고 성 정체성 또는 성 표현이 타고난 성별과 다르거나 다르게 보이는 사람 등이 포함됩니다.

성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성 정체성은 자의식, 특히 자신의 성별에 대한 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 정체성은 인권법에 의거하여 보호되는 또 다른 요소인 ‘성적 취향’과 다른 것입니다. 성 정체성은 타고난 성별과 다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경우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하나 이상의 성별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 여기에는 스스로를 성전환자로 여기는 사람, 자신이 ‘성별 스펙트럼’ 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성’ 또는 ‘여성’의 범주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성전환자: 태어날 때 하나의 성별로 분류되었지만 본인은 스스로를 다르게 분류하는 사람. 자신의 신체를 내면적 정체성과 일치시키기 위해 호르몬요법, 성전환 수술, 기타 방법 등 한 가지 이상의 의학적 시술을 받으려 하거나 실제로 받을 수 있습니다. 간성자: 태어날 때 또는 사춘기 후의 신체적 특징을 바탕으로 ‘남성’ 또는 ‘여성’으로 쉽게 분류되지 않는 사람. ‘남녀추니’ 또는 ‘양성체’는 부적절한 용어입니다. 이성복장자: 정서적 및 심리적 안녕을 위해 일반적으로 ‘이성’과 연관되는 복장을 하는 사람. 트랜스: 경우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회가 일반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포괄적 용어.

차별과 괴롭힘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특정인의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성별을 바탕으로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만 부담을 지우거나,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혜택의 이용을 보류 또는 제한하는 고의적 또는 비고의적 행위를 말합니다. 이 차별은 명백할 수도 있고 미묘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규정 또는 정책이 겉으로는 공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수용적이지 않은 경우처럼, 차별은 더 크고 조직적인 차원에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괴롭힘은 차별의 한 형태입니다. 여기에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특정인을 모욕하거나 격하하는 발언, 농담, 욕설, 행동, 그림 게시 등이 포함됩니다.

모든 사람은 성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 학교, 주택 임차, 식당에서의 식사, 또는 기타 어떤 상황에서든지 차별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 성전환자가 주택 임대 광고를 보고 문의를 합니다. 관리자는 빈 집이 있는데도 없다고 합니다. 예: 직장인이 담당 부서장에게 자신이 이성복장자임을 밝힙니다. 부서장은 고객들과 동료들이 그를 대할 때 불편할 것이라면서 그가 승진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조직은 차별을 할 수 없으며, 괴롭힘에 대한 항의에 대응해야 하고, 트랜스에 대해 비차별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정기적으로 조직과 접촉하는 사람 등의 ‘제3자’에게도 적용됩니다. 모든 사람은 실생활에서 본인이 선택한 성별로 인정되어야 하며, 특별히 다른 수용을 요구하지 않는 한(예를 들어 안전 또는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이유로) 이를 바탕으로 화장실 및 탈의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용 의무

인권법에 의거하여 고용주, 노동조합, 임대주 및 서비스 제공자는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수용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수용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각종 서비스, 주택 또는 직장에서 평등한 혜택을 누리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용은 공동 책임입니다. 수용을 요청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관련된 모든 사람이 수용을 위해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수용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예: 트랜스젠더 남성이 자신이 다니는 체육관의 남자용 로커룸에서 위협을 당했다면서 안전 문제를 제기합니다. 체육관 관리자는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남자용 로커룸의 모든 샤워실 및 탈의실에 프라이버시 칸막이를 설치하거나 1인용 샤워실 및 탈의실을 설치하는 등의 가능한 해결책을 해당 고객과 함께 모색합니다. 그리고 최종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직원용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 성전환 여성이 직장에서 여자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담당 부서장은 다른 직원들이 불편을 나타냈다면서 안된다고 합니다. 이 직장은 성전환 고용인이 이 화장실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직원들의 우려를 해결해주고 장차의 괴롭힘 및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예: 트랜스 여성이 남자 경찰관에게 알몸 수색을 받습니다. 여자 경찰관이 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 요청을 묵살합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으므로 남자 경찰관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타리오 주 인권재판소(Human Rights Tribunal of Ontario)는 트랜스인 사람이 알몸 수색을 받을 경우, 남자 경찰관에 의한 수색, 여자 경찰관에 의한 수색, 남자 경찰관 및 여자 경찰관에 의한 수색 등 세 가지 옵션이 주어져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고용주 또는 서비스 제공자는 운전면허증이나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정보 등, 특정인의 성별이 실생활에서 본인이 선택한 성 정체성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다르게 표시된 개인정보를 수집 및 사용할 때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고용 기록, 보험회사 기록, 의료 정보 등 모든 경우에 적용됩니다.

추가 정보

웹사이트 www.ohrc.on.ca에 온타리오 주 인권위원회(Ontario Human Rights Commission)의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및 괴롭힘에 대한 정책(Policy on Discrimination and Harassment Because of Gender Identity) 등의 간행물이 올려져 있습니다.

인권 제소(진정)를 하려면 아래 연락처로 온타리오 주 인권재판소(Human Rights Tribunal of Ontario)에 문의하십시오:

무료 전화: 1-866-598-0322

TTY(청각장애인용 전화) 무료 전화: 1-866-607-1240

웹사이트: www.hrto.ca

여러분의 권리에 관해 상담하려거나 법률 지원이 필요하면 아래 연락처로 인권법률지원센터(Human Rights Legal Support Centre)에 문의하십시오:

무료 전화: 1-866-625-5179

TTY 무료 전화: 1-866-612-8627

웹사이트: www.hrlsc.on.ca

© 2011, Queen’s Printer for Ontario.

ISBN: 978-1-4249-4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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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이 말하는 정체성의 세 가지 특징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답이 뒤따른다. ‘나는 의미있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사람’.

이렇듯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분명 정체성을 향해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변이 곧 정체성은 아니다. 정체성이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판단이다.

이 주관적인 판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와 얼마나 유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글을 통해 다루었다 (정해진 나 vs. 결정하는 나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01 ) . 이번 글의 핵심 주제는 자신에 대한 판단 중 어떤 특징이 있는 판단을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심리학자의 입장 역시 존재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철학자의 입장을 살펴 이 논의를 다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멀리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너무나 다른 우리. 페이퍼맨 작가 이주연의 작품. 그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종이 인간의 캐릭터로 만들어서 다양한 스토리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그것을 가지고 소통하고자 한다. ‘Who Are You 1’ 45.7×35.6cm, Acrylic on canvas, 2012. ©이주연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이때 탁석산은 한 집단의 정체에 대한 여러 판단들이 정체성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특징은 개인의 정체성에도 적용된다.

첫번째 특징은 현재성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뤄져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룬다 할 지라도 그것이 현재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왕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왕정이 없어진 지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넘었기에 한국인들은 조선시대 왕을 대하는 느낌으로 오늘날 대통령을 대한다는 가설을 가지고 현재 한국인의 특성을 확인한다면 이 과거 역시 정체성 논의에 포함될 수 있다.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현재성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판단 그 자체는 정체성이 아니다. 현재 자신에 대한 판단이 정체성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있었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오늘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체성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주체성이다.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렸는지는 그 판단이 주체성으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주체성은 (단순히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나 마음으로 특정 행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갑돌이와 갑순이를 비교해보자.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수업을 듣고 예습, 복습도 철저히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둘의 행동은 거의 유사하다. 그럼에도 왜, 어떤 마음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서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갑돌이가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그의 의사 부모님이 병원을 물려주고자 어려서부터 갑돌이에게 의사의 길을 강요했기 때문이고, 반면 갑순이는 생명을 구하는 의학의 힘에 매료되어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어 의사의 길을 걷기로 스스로 결정했다면, 이 경우 갑돌이보다는 갑순이가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더 잘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탁석산이 제시한 정체성의 세 번째 요소는 대중성이다. 즉, 우리가 한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려할 때 해당 특성이나 평가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에게 중요한지를 고려하게 된다. 판소리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졌든 얼마나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든 오늘날 한국인의 삶 속에서 많이 향유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심수봉이나 BTS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것들이 한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다만 이 마지막 특징의 경우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논할 때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대중적인지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대중성이라는 개념은 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중심성’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 중심성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지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특성은 정체성이 될 수 없다. 어떤 특성이 누군가의 중심을 이룰 때 정체성이 된다.

잠깐 시간을 내어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더 중요하게는 당신 자신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변을 위의 세 가지 기준에 비추어 평가해 보자.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남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 세 가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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