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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경제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주식, 부동산, 금리, 환율 등 경제변수를 따로 따로 공부하는 것 보다는 경제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매 시기의 당면한 경제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이들의 사상을 쉽고 좋은 책으로 공부하면 경제 전체를 바라보는 올 바른 경제관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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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나무위키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Todd G.Buchholz)가 쓴 경제사상사 관련 서적. 번역본은 김영사에서 출판되었으며 옮긴이는 이승환.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8/26/2021
View: 5996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YES24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 [ 개정판/양장 ]. 토드 부크홀츠 저 / 류현 역 | 김영사 | 2009년 09월 …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5/20/2022
View: 2749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경제적 자유를 위한 삶
이번에 제가 선택한 책은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입니다. 토드 부크홀츠라는 저자가 쓴 책입니다. 저자 : 토드 부크홀츠.
Source: rookie-mind.tistory.com
Date Published: 9/19/2021
View: 4903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요약 및 서평
「유쾌한 경제학」외 그의 저서「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수 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지금도 주요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Source: iamcsh.tistory.com
Date Published: 8/7/2022
View: 5445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영어: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는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벅홀츠가 지은 경제사상사 도서로 1989년 처음 출판되었다.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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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죽은 경제학자 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요약
- Author: 앙현의 타이밍_경제학자 차신준의 지식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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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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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태도, 즉 정신 상태이지 지리적 위치가 아니다. 한 나라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찾아 길을 묻는 지혜일 수 있다. 경제사상의 역사는 종종 배고픈 사람들, 누추한 사람들, 그리고 재빠른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책에서도 여러분은 이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p.32
세계는 젖과 꿀이 넘쳐 나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주택과 더 넓은 주차장, 더 많은 노동 시간과 더 많은 여가 시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나쁘고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한번에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은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이해시켜 줄 뿐이다.”—p.34
경제학자는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이며, 동시에 철학자여야 한다. (…) 그는 경제학의 복잡한 수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한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하며,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동일한 사고의 지평에 놓고 다루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이미 지난 과거의 경험에 입각해 연구해야 한다.—p.40
《국부론》은 괜찮은 책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책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단숨에 때려눕히는 오만 가득한 신들처럼, 스미스는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무려 900페이지에 걸쳐 세상사에 대한, 특히 경제에 대한 사실, 분석, 예언, 우화 등 자신의 위력을 뿜어냈다. 무엇보다 스미스는 가장 명료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p.63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산술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던 식량 생산 및 공급은 예상과 달리 바닥을 기지도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맬서스가 제시했던 이유 때문은 아니다. 반대로, 맬서스가 관심을 두었던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오래 살았으며, 맬서스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높은‘도덕적 자제력’을 보였다.—p.125
맬서스의 오류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절대, 두 번 다시, 정확하지도 않고 신뢰도 가지 않는 과거의 자료를 토대로 논거를 삼지 말라는 것이다.—p.128
자유무역은 교역 상대국이 경제적으로 앞서 있든 그렇지 않든 두 나라 모두에 이롭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나라의 국민들이 더 많은 제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리카도가 곡물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프랑스 농민들이 우리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프랑스 식량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 시간에 다른 유용한 일을 하는 편이 낫다.” —p.16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가 지적했듯이, 밀이 경제학에서 이룩한 성과는 특별하다. 특히 개별 원리나 이론에 대한 설명이 뛰어나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p.220
밀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구제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노동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기금이 그들의 노동 의욕을 저하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p.227
마르크스는“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는 못한다. 즉, 인간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환경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어진 환경에서 역사를 창조한다. 모든 앞선 세대의 전통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악몽처럼 자리 잡고 있다.”12라고 말했다.—p.254
마르크스는《자본론》에서 자본주의 분석을 위한 과학적인 체계를 고안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를 자신 있게 예측했다. 몇 가지 불충분한 점을 인정하고 관대한 해석을 내릴 경우, 마르크스의 예측은 그런대로 옳다고 볼 수 있다.—p.284
앨프리드 마셜은 평생을 두고 경제학을 역사나‘도덕 과학’의 한 분과가 아니라 별개의 독립된 학문으로 구축하기 위해 싸웠다. 그는 교과 과정에 경제학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많은 경제학자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애썼다.—p.301
마셜은 경제학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수학을 남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마셜에게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원한 우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수학자처럼 사고하면서도 절대 애매한 기호나 자신만 알 수 있는 비밀 공식에는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셜은 리카도와 밀의 이론을 첹적분을 이용해 수학적으로 재해석했지만, 자신의 이론이나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수학적 증명을 통해 입증하려하지 않았다 —p.310
앨프리드 마셜에 따르면, 목마르고 배고픈 기업이 뚱뚱하고 게으른 기업의 이윤을 잠식해 들어간다. 마셜의 이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크게 번성한 사실에 비춰보면 시대에 크게 뒤떨어진 진부한 이론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더욱 현실 적합성이 있어 보인다. —p.321
베블런에게 있어 그의 적은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에게 노동자들이 영웅일리도 없다. 그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기용했다. 그에게 나쁜 사람은 경영자들이었다. 그들이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는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앞세워 선악대결을 그린다. 현대 세계에서 창조, 향상, 생산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엔지니어들뿐이다. 반면 그들의 위에서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고, 군림하는 경영자들은 창조성을 억압한다. 경영자들은 현시적 소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이유, 즉 돈을 벌 목적에서 사업을 한다. 만일 그들은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행복해 할 것이다.—p.357
공공선택학파의 주요 논지는 매우 간단하다. 즉, 사업가가 이기적이라면, 정부 관료들 역시 ‘정치적 사업가들’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무엇을 가장 극대화하고 싶어 할까? 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p.489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뭔가를 잃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고, 때로는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주식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이 약간의 손실을 입었다고 해서 바로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 이런 반응은 주식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더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해도 마찬가지다.—p.575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런 모든 가능성을 연구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공개할 순간만을 고대하며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려온 그림, 즉 경제학 모델을 자칫 망칠 수 있는 뼈아픈 순간에 봉착할 수도 있다.
—p.599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세계 유수의 투자 회사들에서 투자 자문 역할을 맡고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세계적인 헤지 펀드 기업인 타이거TIGER의 펀드 매니저를 역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 개론을 가르칠 때는 학생들이 직접 뽑은 명강의에 수여되는 ‘앨린 영’상ALLYN YOUNG PRIZE을 받았다. ABC 뉴스, PBS, CBNC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제논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 《죽은 CEO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CEOS》, 《유쾌한 경제학FROM HERE TO ECONOMY》, 《마켓 쇼크MARKET SHOCK》 등이 있으며, 《카스트로 유전자THE CASTRO GENE》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경제학의 역사를 이끈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깊이 있는 철학과 반짝이는 지혜를 부크홀츠 특유의 재치로 담아낸 책이다. 어렵다는 이유로 경제학에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많은 독자들에게 역동적인 300년 경제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21세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제시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요약 및 서평
Ⅰ. 작가소개 – 토드 부크홀츠
캠브리지 대학교 하버드 법률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 경제학자이자 법률가. 백악관의 경제 담당 자문위원으로 일해 왔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는데, 그 시절 재학생들의 투표로 최우수 강의상을 받기도 했다.
「유쾌한 경제학」외 그의 저서「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수 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지금도 주요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현재 국제적인 경제 컨설팅 회사인 G7 그룹의 대표 겸 수석경제학자로 있다.
Ⅱ. 내용 요약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기업 이사진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박애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너무 꼼꼼하게 따진다고 비난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경제학자들은 희생 없는 번영이라는 공약을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이렇듯 경제학자들은 수난의 세월을 살아왔다.
경제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들은 단지 전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경제학자들은 많은 비판과 억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언어로써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그 언어의 이름은 모형model이다.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느 경제현상의 수만 가지 가능요인들 중 가장 주된 것들을 추출, 그 현상의 간략한 축소판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모형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는 그 모습을 바꾸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서 경제학자들이 모형으로써 우리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내기 힘든 것이다.
* 경제학의 기원
근대 경제학의 기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재산의 사유를 찬양한 아리스토텔레스인가, 아니면 고리대금의 ‘이자’를 위험부담, 기회비용, 인플레이션, 불편 등의 세부 품목들로 분리하여 정당화 시켰던 중세 신학자 인가? 이들도 아니라면 유럽이 식민지 경쟁을 하고 있던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왕족들의 경제운영에 관한 자문역할을 맡아 보았던 중상주의자들은 어떤가? 저자는 이 세 부류 모두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을 경제학의 기원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이 세운 경제학적 업적이 너무 미비하다. 경제학의 기원은 중상주의자들을 비판대 위에 올려놓았던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자들의 이론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공격하였다. 첫째, 참된 부의 기준은 화폐나 귀금속의 보유량이 아닌 국민들의 생활수준이어야 한다. 둘째, 부란 그 나라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측정되는 것이지, 소수의 정치인들과 아첨하는 상인들 무리에게만 돈이 돌아가게 하는 술책들은 국민 생활수준 향상에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셋째, 스미스는 개인적 의욕, 정열, 발명, 개혁에의 의지 등이야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이를 억제하는 정부의 강제력은 국민 참여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경제학자들을 무시해 버려야 할까?
애덤 스미스 이래 인류역사가 배출한 대경제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이 세상에는 주요 경제학 이론들로는 설명하지 못할 현상들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경제학 이론의 기본원리를 무시하는 국가나 개인은 어리석은 도박을 하는 셈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경제학자들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점화된 이래 인류는 항상 미래는 당연히 현재 보다는 나을 것으로 간주해 왔다. 허나 역사상 끊임없는 지속적 발전의 유래는 없다. 예를 들어 11세기의 유럽의 상황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보다 더 비참했다. 이렇게 인류의 생활이 퇴보하지 않고 향상될 수 있도록 우리를 계몽하는 것이 대경제학자 들의 목표였고, 경제학자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2. 애덤 스미스의 재림(1723~1790)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서설 Discourse on Method』에서 인간은 실용적 과학을 통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다가올 18세기 사상폭발시대의 복선을 깐다. 바로 이 18세기에 애덤 스미스는 그의 최대 역작『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을 세상에 선보인다.
스미스는 어린 시절을 홀어머니 밑에서 보냈으며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참 별나게 생긴 사람이었다. 거대한 코와 개구리 눈, 돌출한 아랫입술을 지녔으며 신경쇠약, 말더듬 증세 등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우등생이었던 스미스는 14살 때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였고 후에 옥스퍼드 대학의 베얼리얼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도 처음엔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흄D. Hume의 회의론에 영향을 받아 결국 성직자가 되기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 글래스고 대학에서 논리학과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스미스의 법률학 강의를 수강했던 한 학생의 노트에는 스미스의 노동 분석의 초창기 아이디어들이 이렇게 적혀 있다. 「국민의 부는 흔히 착각하듯 금은의 보유량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조직적 작업능률에 비례한다. 그 작업능률 향상의 지름길은 분업이다. 따라서 분업은 국부 증대의 필수요소다.」
* 철학자 스미스
『국부론』을 쓰기 전에 스미스는 윤리 문제를 다룬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저서로 이미 명성을 떨쳤다.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타인들을 만족시키는 도덕적 결정들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유지되어 가는 걸까?’라는 물음에 대한 스미스의 해답이 들어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떠한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 일종의 ‘공명정대한 관찰자 impartial spectator’를 항상 염두에 둔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순수한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양심이라고도 할 이 무언의 조언을 따를 때가 많은 것이고, 긍휼이나 동정심에 바탕을 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라고 말한다. 이 책으로 인해서 스미스의 명성은 유럽전역에 알려졌다.
* 프랑스에 가서 중농주의자들을 만나다
1764년 스미스는 버크럭 공작의 장남의 개인교사가 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한다. 이 소년과 유럽여행을 함께 하면서 그를 가르치게 되는데, 유럽여행의 첫 번째 체류지인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1년 반 동안이나 머무르면서 경제학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제네바를 거쳐 파리에 도착했고, 파리에서 중농주의physiocracy라 불리는 경제학파를 접하게 된다. 중농주의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역설했다. 첫째, 부란 중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금은(화폐)의 획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 농업만이 부를 창출해 낼 뿐 상공업을 비롯한 기타산업은 가치생산을 해낼 수 없다. 이러한 기타산업은 생산된 가치를 분배할 뿐이다. 즉, 노동 생산력의 원천은 ‘땀’이 아니라 ‘땅’인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논리를 귀담아들었지만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유럽여행을 떠난지 2년 만에 스미스는 고향으로 돌아와 10년 동안 집필에 전념한다.
* 국부론
1766년 경제학자들에게 있어 최초의 독립선언서와 같은 『국부론』이 발간된다. 『국부론』의 원제는 ‘모든 국민의 부의 성질 및 원인에 관한 연구An Inp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다. 이 책은 계몽사상을 답습하고 있는데, 스미스는 ’경제분야의 배역들economic actors’을 지배하고 이끄는 법칙들을 설명하고 이러한 행동의 법칙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스미스는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토대로 인간의 공통적 욕구, 혹은 ‘성향propensity’을 경제 분석의 바탕으로써 이용했고, 나아가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초를 이룬다. 그 첫 번째 성향은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 한다’라는 명제이고, 두 번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남의 것과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공통된 성향’이다. 스미스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사회가 억누르기보다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부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경제학사상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스미스의 말인 이 구절은 그의 생각을 잘 대변해 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기심을 어떻게 하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잘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도 얻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고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야말로 사회전체로 볼 때 서로 화합하고 돕는 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돕는 것은 아니지만.
* 분업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에는 서너 명 단위의 소규모 수공업자들에 의해 생산물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스미스는 일의 전문화와 분업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첫째, 노동자들은 맡은 일을 더 숙달할 수 있다. 둘째, 노동자들의 작업 전환 시 소요되는 시간을 없앨 수 있다. 셋째, 전문화된 노동자들이 오히려 공학자들 보다 신발명을 해낼 수 있다. 이상의 이유로 스미스는 분업을 주장했고, 이러한 분업 때문에 생기는 임금격차에 관해서도 설명하였다.
* 지역과 국가 간의 분업
스미스는 분업만 하면 나라가 부유해진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는 분업 후 늘어난 생산량을 모두 소비해 줄 소비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비처를 설명하면서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교역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절대 우위absolute advantage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모든 자원은 희소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일(절대 우위)에 모두 투자를 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는 교역을 통하여 얻으면 된다는 것이다.
* 일반인을 위한 주제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상업 활동의 동기를 찬양하긴 했으나 부르주아 세력을 떠 받들지는 않았다. 스미스는 자유무역이나 분업의 혜택이 왕이나 귀족들보다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중상주의 시대에는 국왕의 권위를 위해 혹은 식민지 정복사업을 위해 정부가 귀족이나 대상인에게 특혜를 주었고,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분업으로 인한 인간의 정서적 피폐에 대해서도 스미스는 간과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스미스는 공공교육을 권유했다. 공공교육은 극히 적은 비용만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수적인 기본교육을 촉진하고 부과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국제적인 분업에 의한 자유로운 무역과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보호를 외친 스미스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보호 무역론을 허용해도 된다고 하였고, 여타의 다른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스미스가 말하는 정부는 국방의 의무, 법치에 의한 사회정의 유지, 공공시설과 제도 관리를 통한 군주의 존엄성 확립만 하면 된다.
3. 맬서스 : 인구폭발과 멸망의 예언자(1766~1834)
맬서스는 생존 당시에도 그리고 사후에는 마르크스의 혹독한 비판으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사람들은 왜 맬서스를 차가운 시선으로 대했을까? 그 이유는 맬서스가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의 낭만적 꿈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환희에 넘치는 미래를 맞기는커녕 인구과다로 인해 사회 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 유토피아 환상을 깨뜨리며
1793년 프랑스의 혁명세력은 루이 16세를 교수형에 처했고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러한 시련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당시 작가들과 전도사들은 험난한 격변의 시기가 지나면 마침내 에덴 이후 가장 평화롭고 이상적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맬서스는 이러한 낙원에의 환상을 거부했다. 당시에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인구의 확충은 필수적이었기에 인구증가 예찬론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던 시기였고, 그래서 가족 수에 따라 정부의 빈민구제수당을 늘리는 법안이 최초로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존의 견해에 반발하여 나온 것이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 공포의 이론
맬서스는 인구가 25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등비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생산량은 고작 산술급수(등차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문제로 인류가 참담한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맬서스의 논문은 영국을 강타했고, 피트 수상의 빈민구제수당을 4년 만에 철회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는 빈민을 멸시하는 가혹한 인간은 아니다. 만일 예방성 제어가 실패하여 양성 제어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경우, 가장 먼저 희생되는 계층은 다름 아닌 빈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조사해 본 결과 극빈자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17세기와 18세기의 법 조항들이 있음을 밝혀냈다. 1803년 맬서스는 인구론의 개정판을 출판했다. 개정판에서 맬서스는 식량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식량의 수출입을 제한할 것을 주장한다. 맬서스는 대체로 자유무역을 지지하였지만, 식량문제에 있어서는 예외를 두었다.
* 족집게 점쟁이(?)
맬서스의 예언과는 다르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도 않았고, 식량생산이 밑바닥 성장률을 맴돌지도 않았다. 맬서스의 예언이 왜 맞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몇 가지 실수를 범했다. 우선 그가 이론을 정립할 때 기초자료로 수집한 미국의 경우 그 당시에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맬서스는 그것에 대해 고려하지 못하고 미국 여자를 단순히 애를 낳는 기계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중요한 실수는, 맬서스가 농업과 공업의 혁명적 발달을 예견하지 못했던 점이다.
비록 맬서스가 잘못된 조사 통계로써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예견했지만, 농업생산의 증대와 의술의 발달만으로도 인구는 폭증해야 옳다. 하지만, 맬서스의 우려 보다 사람들은 훨씬 예방성 제어를 잘 해내고 있었다. 특히 피임법의 발달,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은 인구 폭증을 억제 하였고, 여기에서 인구 수준은 안정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흔히들 맬서스의 잘못된 예언을 두고 성급한 단순화와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이것은 절대로 과거의 자료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연기된 종말
1970년대에 들어 공해문제, 인구문제, 유가상승 등으로 세계는 시끄러워졌고, 세상의 미래를 예언하겠다는 맬서스의 후예들이 나타났다. 바로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이다. 이 단체는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에서 현재 추세로 봐서 자원은 마침내 고갈되어 생산은 종지부를 찍게 되고 인구는 식량수준을 초과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로마클럽은 가격변화에 따른 자원의 대체효과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자원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원의 대체제가 나올 것이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석유채굴에 들어가는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되어 왔으나, 비용증가와 비슷하게 기술도 발전되어 지고 있다. 이것을 본다면 맬서스의 후예들도 잘못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데이비드 리카도와 자유무역론(1772~1823)
데이비드 리카도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증권시장에서 수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명철한 두뇌와 실용적 지식은 14세부터 아버지의 일터인 주식 중개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다. 그는 이미 20세에 기업체를 경영할 정도로 사업 수완이 뛰어나서 항상 부가 그를 따라다녔지만, 리카도는 스미스의 『국부론』을 27세가 돼서야 읽게 된다. 그 후 1809년 리카도는 경제평론가로 데뷔하여, 1817년 애덤스미스의 이론과 당대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논평을 담은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저술한다. 2년 후 제임스 밀의 권유로 리카도는 하원의원이 되고, 정치자유와 자유무역을 정책입안자들에게 주장한다.
* 교묘하지만 절묘한 이론
리카도의 이론은 경제학의 여러 원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반직관적인 이론이지만 바로 이 교묘한 이론은 현대 경제학 이해의 필수 관문이다. 리카도의 이 교묘한 이론은 바로 “비교우위론Law of Comparative Advantage”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각국의 무역제한, 관세, 무역전쟁 등에 대해서 쓸데없는 행위임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정리 하자면, 무역상대국의 생산능력이나 기술과 상관없이 자유무역은 두 나라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여기에서 스미스의 절대우위론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절대우위는 국가 간의 비교개념이지만 비교우위는 한 국가 내 산업끼리 비교한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우위의 산업이 하나도 없는 국가라 할지라도 비교우위 산업은 있게 마련이다. 결국 그는 ‘각국은 비교우위 산업에 주력해서 세계가 분업화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보호무역론자들과의 전쟁
1840년대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보호무역론에 대해 아래의 글로 일침을 가했다.
– 고결하신 국민의회 의원님들께
저희들은 저희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월등한 조건에서 빛을 생산해 내는 외부 경쟁자 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가와 고품질로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바로바로…. 태양이올시다요.
나으리들께서 이 불평등을 시정할 법을 하나 통과시켜 주셨으면 하고 저희들은 탄원하는 바입니다. 낮에는 국민들이 모든 창문과 곁문, 커튼, 블라인드 등을 닫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자연광을 차단하고 인공광의 수요를 창출해 내면 프랑스 국내에 번창하지 않을 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초의 원료인 유지방은 소와 양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프랑스 전역의 낙농업이 번성할 것이고…
선택을 하되 논리적으로 하십시오. 국내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거의 거저나 다름없이 값싼 외국산 철강, 곡물, 직물 등의 수입은 막으면서 참말로 거저인 태양광은 막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처사입니까!
양초, 양초심지, 심지절단기, 칸델라, 촛대, 가로등, 소등기 등의 제조 업자들과 등유, 수지, 송진 등의 생산업자, 그리고 기타 모든 조명 관련업자들로부터 –
* 선택의 기로
리카도는 한 국가의 미래를 왕성한 무역국으로서의 밝은 미래와 격리된 패쇄국으로서의 어두운 미래, 이 두 가지로 보았다. 만일 리카도가 주장하는 밝은 미래를 선택하지 않고 격리된 패쇄국으로 선택한 미래는 어떤 것일까? 리카도의 분석에 의하면 (1)인구증가에 따라 식량수요가 증가하고 (2)비옥하지 못한 토지마저 농경지로 개간해야 하며 (3)농사짓는 데 드는 비용이 그만큼 증가하게 되고 (4)농산물 가격이 인상되며 (5)노동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임금인상이 불가피해지고 (6)자본가들의 소득은 그만큼 감소하며 (7)가장 비옥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소득은 증가한다.
이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영국은 대륙봉쇄령 이후 곡물법으로써 자국 내 농업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곡물법의 시행은 값싼 외국 농산물을 막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지주들일 뿐 나머지 노동자와 자본가 계층은 몰락을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러한 리카도의 예견에 맬서스는 반론을 제기한다. 맬서스는 곡물법은 국내 곡물 가격을 인상시킴으로써 투자를 활성화시켜 영국의 곡물생산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고, 곡물은 해외수입에 의존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생산물이다. 그리고 곡가 인상은 임금인상을 수반하여 노동자들은 오히려 덕을 보았다는 점을 들어 리카도의 의견에 반론을 폈다.
맬서스의 이러한 의견은 명목임금과 실질임금의 변동 폭을 간과한 것이다. 아무리 명목임금이 상승 된다 할지라도 실질임금의 상승폭이 훨씬 커져 버린다면, 임금은 인상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한 것이 된다. 그리고 영국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곡물에서 절대우위도 비교우위도 점유하지 못한다면, 곡물의 수입은 다른 나라에 맡겨 놓고 그 시간에 다른 산업을 육성시키는 것이 오히려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한 맬서스의 우매한 반론이다.
* 리카도와 맬서스의 대결 2 : 공급과다와 논증방법에 대한 논쟁
리카도와 맬서스는 경기침체에 관한 논쟁으로도 유명하다. 맬서스는 시장의 ‘공급과다Glut’현상이 실제로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리카도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신봉하여 공급과다는 고드윈의 낙원론 만큼이나 허황된 이론이라고 반박하였다. 그는 일시적인 공급과다는 존재할 수 있을지라도, 일반적인 공급과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리카도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게 될 경우, 완전고용에 이르는 장애는 전혀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지만 지금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한 나라는 없다. 이것은 맬서스와 리카도의 대결에서 맬서스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렇게 일반적 공급과다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우선 리카도가 말한 ‘일시적 공급과다’ 부분에서 ‘일시적’의 기간문제이다. 리카도가 생각한 것 보다 일시적인 기간이 훨씬 길게 작용을 한 것이다.
5. 존 스튜어트 밀의 격정적 일생(1806~1873)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난 존 스튜어트 밀은 젖을 땔 무렵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그가 3살 때 희랍어를 가르쳤고, 8살 때는 이미 플라톤, 크세노폰, 디오게네스 등의 저서들을 원문으로 깨우치게 된다. 12세가 되었을 때는 미적분과 기하학을 이미 마스터한 상태로 어릴 적부터 그의 취미는 역사공부였고 친구는 없었다. 이렇게 혹독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을 결과 밀은 지력에 있어서는 강력한 순종 경주마로 거듭났지만, 감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장난감 흔들 목마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 제레미 벤담 : 쾌락, 고통, 그리고 산수
감성적인 면이 취약했던 밀은, 당시 유행한 벤담의 ‘공리주의’에 심취하게 된다. 벤담은 “인류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지배자에게 묶여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마땅히 쾌락의 길을 택해야 하며,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나는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의 합산량이 최대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을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벤담의 ‘최대다수를 위한 최대행복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이 나오는 것이다.
밀은 벤담의 철학적 급진주의philosophical radicalism에 투신하게 된다. 이 급진주의파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을 했고, 여기에서 더욱 발전하여 훗날 밀은 여성참정권의 기치를 올리기도 했다. 밀을 비롯한 급진주의자들의 신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공리utility’였다.
하지만 어릴 적 부터 가정의 화목과는 거리가 멀었던 밀은 철학적 방황을 걷게 되고, 이때부터 공리주의를 벗어나 낭만주의로 잠시 은둔하게 된다. 이 시기에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출판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공리주의를 만들어 가게 된다. 밀은 벤담주의를 개량하고 향상시키면서, 최대의 행복은 단순한 쾌락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그는 만족에 찬 돼지가 되느니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하면서 쾌락의 양이 같다면 정신적인 만족이든 육체적인 만족이든 같다고 생각한 벤담의 주장을 반박한다.
* 밀의 방법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연역법으로서 사회과학을 풀어가려고 하였으나, 밀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모두 사용했다. 특히 귀납법에 더욱 많은 비중을 두고 사회현상을 풀어나갔다. 그는 저서『원론』에서 생산의 방식을 분석할 때는 연역법을, 분배의 방식에서는 귀납법을 이용하여 현상을 분석해 나갔다. 밀은 생산의 경우 고정되고 보편적인 법칙이 지배한다고 주장했고, 분배는 이와 다르게 전면적으로 인간의 성향에 달려 있으므로 보편적인 법칙 보다는 지금까지의 결과를 토대로 예측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밀의 이러한 이분법은 생산의 법칙이 항상 고정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점과, 생산과 분배는 항상 깨끗하게 분리될수만은 없다는 점을 간과한 잘못이 있다.
밀은 『원론』에서 경제학 원리들의 포괄적 재정리와 개선을 시도했다. 그는 기업경영 방법, 세이의 법칙등을 설명하고, 비율로 표현되던 수요와 공급을 수식으로 나타내었으며,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했다. 또한,『원론』은 모두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처음 3권은 실증적이고 나머지 2권은 규범적이다. 규범경제학을 통해 밀은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고, 부의 평등한 분배, 여성의 권리, 교육 등을 통해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밀의 의지가 나타난다.
* 조세와 교육
밀은 비례세율proportional tax rate를 지지했다. 누진세율progressive tax rate이 노동의욕을 저하시킬 것을 염려했던 탓이다. 비례세율을 적용하되, 빈민에 한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야 한다고 하였고, ‘상속세’에 대해서 더욱 강하게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항상 ‘결과의 균등’보다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밀은 “스스로 벌지 않은 재산이야말로 공공의 복리증진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고”말한다.
하지만 밀 또한 신체 건강한 빈민들이 단순히 정부의 보조금에만 목을 매는 현상에 대해 염려하여, 빈민구제자금을 집행하더라도 신체가 건강하다면, 정부에서 일정량의 노동의 대가로 그 보조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극빈자들이 대물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공 교육 서비스의 제공이 절실하다고 생각하여 기초적인 학문은 공립학교를 통해 극빈자들에서부터 최 상위층까지 골고루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미래의 전망
밀은 인간이 점차 ‘필요의 단계realm of necessity’를 초월하여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한 삶으로부터 인간성의 고취를 위한 삶으로 진보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과 빈민들의 참정권을 주장했고, 남북전쟁에서는 북군을 지지했다. 밀은 단순히 물질적 쾌락이 아닌 정신적 쾌락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6. 격분한 현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마르크스는 결코 훌륭한 자본가의 소질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평생 빚에 허덕이며 살았다. 하지만 그의 강력한 문장과 선동적 문체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다.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사의 위치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대에 끼친 영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마르크스는 프로이트, 다윈 등과 함께 20세기 역사를 바꿔 놓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
마르크스는 실력 있는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릴 적부터 따랐던 폰 베스트팔렌 남작은 그를 낭만주의의 세계로 인도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마르크스는 남들과는 다르게 살벌한 투쟁을 직시하게 된다. 이후 본Bonn 대학으로 진학한 마르크스는 낭비벽과 주벽으로 항상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고, 거지와 같은 차림새를 하고, 학교는 캠핑 야영장 정도로 생각하며 다닌다. 그동안 카를 마르크스는 철학을 독학한 후 헤겔G. W. F. Hegel에 심취하여 청년헤겔학파Young Hegelians라 불리는, 종교에 대한 과격 비판자들과 헤겔의 절충 지지파들로 구성된 서클에 가입한다. 그 후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서는 서둘러 학위를 마친다. 그의 공산주의적인 성향은 1840년에 그가 내놓은 저서로 빛을 발하고 그로 인해 프로이센과 프랑스에서 모두 추방을 당하게 된다.
* 유물사가
마르크스는 헤겔식 분석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변증법dialectic을 그대로 답습한다. 헤겔은 역사가 순조롭고 점진적인 형태로 이어져 나가지 않고, 역사는 서로 대립하는 힘들의 투쟁으로 이뤄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든 명제는 필연적으로 그것의 반대명제와 부딪치게 되고, 처음의 명제와 그것의 반대명제는 다시 제3의 합성명제를 탄생해 보다 높은 차원의 진리로 진화되지만, 제3의 합성명제 또한 다시 반대명제를 수반하게 된다는 변증법적인 역사 해석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과 물질주의를 융합시켜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을 탄생시킨다. 그는 인간의 역사에서 ‘빵’을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자세히 말해서 ‘인간과 생산의 관계’를 인간의 역사의 흐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모든 생산제도는 필연적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낳는다. 각각의 시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으로부터 빵(물질)을 빼앗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구분될 뿐이다. 지배계급은 생산을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지배계급에 대하여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고, 이러한 현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법, 문화, 종교, 도덕, 가치관 등을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부구조는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고, 계급체제를 보호하는 지배계급이 존재한다면 봉건주의 사회는 영원히 봉건주의 사회로, 자본주의 사회 또한 자본주의 사회로 영원히 남아야겠지만,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변화와 신기술의 발전이 지배계급의 이동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대작 『자본론Das Kapital』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계급 사회만이 혁명을 피할 수 있고, 수세기에 걸친 수탈에 종지부를 찍고 노동자들은 자유스러워 질 것이라는 말을 뒷받침 해준다.
* 자본과 자본주의의 몰락
마르크스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여 『자본론』을 쓰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에서의 마르크스 가족의 생활은 비참하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었고, 그를 피해 마르크스는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경제학 서적들과 씨름하며 지냈던 것이다. 이때 마르크스는 자식 셋을 폐렴 혹은 결핵으로 잃게 된다. 이것은 모두 마르크스와 그의 아내가 잘못하여 일어난 일(그때까지도 마르크스는 낭비벽을 고치지 못하였다)임에도 마르크스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곤경을 모두 부르주아들의 탓으로 돌렸고, 언젠가는 그들로 하여금 가족의 비극과 자신의 병고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자본론』은 어떤 책인가? 마르크스의 이 책을 세 단계로 나눠 보면 첫 번째 자본주의의 열쇠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노동착취 이론, 두 번째 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하는지를 알려 준다. 세 번째 자본주의에 따르는 심리적 비용에 대해 서술한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한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의 생산에 소요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렇게 결정된 가치로 그 상품이 판매가 된다면, 왜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마르크스는 해답을 제시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기업에 기여한 만큼의 보수 보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연명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생계임금subsistence wage만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로부터 수탈한 잉여가치surplus value로써 그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착취를 당하면서도 노동자들이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산업예비군reserve army, 즉 예비 노동력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특히 자본가들은 그들의 잉여가치를 더욱 증가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보다 싼 값의 임금을 위해서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고용하는 수법으로 가변자본(노동자) 비율을 현저히 낮추면서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종국에 가서는 폭동을 일으킨다.”라고 단순하게 마르크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가 파열로 치닫기까지의 5단계 법칙을 주장했다.
-떨어지는 이윤율과 자본축적 : 어떤 한 기업이 생산수준을 늘리게 되면 그와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 또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고용을 늘리거나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새로운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수요가 증가하니 당연히 가격을 올리게 될 것이고, 이것은 기업의 이윤율을 악화시킨다. 이윤이 적어진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 개발로써 보다 높은 값을 받고 제품을 팔아야하기 때문에 신기계 개발에 투자를 해야만 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다 착취해야만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계속된 채산성의 악화를 가져오고,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의 인내심을 위험수위로 연장시켜 놓을 뿐이다.
-경제력 집중화와 가속 : 위의 경쟁관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대기업이다. 결국 몇몇의 대기업이 경제력을 독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경기침체와 위기의 고조 : 대기업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보다 편리한 기계로 대체하고, 사회적으로 실직률은 증가하게 된다. 이로써 사회적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줄어든 수요는 기업들이 생산해낸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상품 가격이 폭락하고 나면 간신히 살아남은 기업들은 다시 생산을 위해 많은 실직자 중 일부를 다시 고용하게 되지만, 이러한 상황은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 될 뿐이다.
-산업예비군 : 계속되는 노동과 기계의 대체와 경기침체로 실업자의 수는 늘어난다. 처음에는 기업가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만, 계속된 불황은 실업자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게 된다.
-비참해지는 프롤레타리아 : 결국 몇몇 대기업의 착취로 인해 사회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고,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한동안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투쟁이 있겠지만, 종국에 가서는 국가가 쇠퇴하여 사라질 것을 암시했다.
* 마르크스 재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관념론적인 원인idealistic causes과 유물론적인 원인materialistic causes의 충돌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인 원인들만이 모든 사회현상의 원인인 양 묘사한다. 그에 의하면 자본가들은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 낼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 독창성, 경영능력과 같은 인간의 지적능력을 무시한 결과이다. 결국 그는 오늘날 가장 중요시 되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간과해 버렸고, 노동가치설에 집착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역동적, 관념적 요인들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7. 앨프레드 마셜의 한계적 시야(1842~1942)
마셜의 한계이론의 핵심은 점증적 움직임을 탐구의 초점에 맞추려는 집요한 추구에 있다. 이 말은 계속 변화되는 동태적인 상황을 정태적인 상황으로 탈바꿈시켜 그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한계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은 마셜이 아니지만, 마셜은 한계분석을 가장 명료하고 광범위하게 적용시켰고, 오늘날 미시경제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계전통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한계이론의 선구자로써 여겨질 수 있다.
앨프레드 마셜은 184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도 스튜어트 밀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수학을 공부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몰래 수학공부를 즐겨 하였다. 마셜은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고,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에 최초로 독립된 경제학과를 개설시킨다. 이후 그는 꾸준히 경제학의 학문적 체계화를 시도하면서 오늘날 미시경제학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는 이전의 밀이나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열정적이지도 선동적이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견고하고 한결같이, 조용하고 느긋하게 인생을 살았다. 이러한 그의 성격에 맞게 마셜은 세상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믿고, 경제를 구성하는 개개의 구성원들에 초점을 맞춰 경제학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 경제학적 시간 – 장기와 단기
마셜은 한 기발한 분석체계를 창안해 냈다. 그는 한 가지 요인을 검토하는 동안 다른 요인들 즉, 다른 변수들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각 요인들을 차례차례 분석하는 세터리스 패러버스ceteris paribus(다른 사정이 같다면)를 이용하여 문제의 범위를 좁혔던 것이다.
또한, 마셜은 경제학적으로 단기와 장기를 구분하였다. 단기는 기업이 시장의 변동에 대하여 고정비용의 조정이 없이 가변비용의 조정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단기간 동안 생산설비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회사 측은 수확체감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 기간이다. 그리고 ‘장기’란 기업이 원료나 노동자 확충뿐 아니라 새로운 공장을 짓고 기계 설비를 늘릴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기업들이 시장경쟁에 뛰어들거나 적자 기업들이 시장을 떠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공급이 적절히 수요를 맞춰 주어 공급이 안정된다.
마셜은 기업의 규모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종래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기업이 규모를 확장해도 평균비용은 그대로일 것으로 믿었지만, 마셜은 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수확체증의 요인으로는 내부경제와 외부경제의 작용을 지적했다. 내부경제는 분업, 공급물품의 대량구입, 첨단기계의 도입 등을 통한 이윤증대 효과를 뜻하고, 외부경제는 기계와 원료를 공급하는 보조연관 산업이 발달하거나 숙련된 노동력의 공급확보가 용이해질 경우 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수확체증의 법칙에 따라 대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런 반론에 대해서 마셜은 유기체의 생명과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어떠한 대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주주의 눈치를 보게 된다. 또한 신생기업은 새로운 기술이나 마케팅 능력으로 거대하고 안일해진 대기업의 이윤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마셜은 말한다.
* 한계적 소비자
마셜은 수요와 공급을 모두 중요시 했다. 그는 한계효용 분석을 토대로 ‘수요의 법칙law of demand’을 발표한다. 물론 마셜은 수요가 상품의 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수요를 결정하는 다른 요인들을 (1) 소비자의 취향, 관습, 기호 (2) 소비자의 소득수준 (3) 대체상품의 가격변동 이라고 말하고, 이들을 상대로 세터리스 패러버스의 울타리에 가두었다. 이를 토대로 마셜은 소비자의 행동패턴을 분석했던 것이다.
그는 공급에 있어서도 비슷한 분석을 시도했는데, 이번엔 ‘한계수확marginal return’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이 공급하는 상품에 있어서도 적정 가격을 산출해 냈던 것이다. 마셜은 이렇게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의 적정가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들을 매섭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상품의 가격을 결정짓는 것은 생산자 혼자도 아니고 소비자 혼자도 아니다. 이 둘의 존재가 가위의 양날처럼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은 결정된다. 마셜의 이러한 논리는 기존의 공급 혹은 수요에 치우치던 가격 결정론을 반박하였고,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또한 반박하였다. 마셜은 인간은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재배열 할 뿐이라고 말하면서 마르크스의 오직 노동에 의한 유물사관을 비판한다.
* 탄력적 경제
수요를 설명하는데 있어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탄력성elasticity의 개념에 대해 마셜은 한층 발전을 시키게 된다. 탄력성이란 반응도를 뜻하는 것으로써, 한 상품의 가격 변동에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어떠한 상품의 가격 변동폭에 대해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여 소비량의 변화를 크게 보인다면 그 상품은 탄력적이라 할 수 있고, 이것과 반대되는 상황은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탄력도가 주는 의미는 독점기업의 행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만일 어떤 독점기업이 자신의 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생산량을 줄여 버린다면, 독점기업의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마셜은 독점기업들이 정부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탄력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을 대체하는 대체물의 존재이고, 그 다음으로는 대체물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탄력성을 결정하게 된다.
8. 구제도학파와 신제도학파(토스타인 베블런, 1857~1929)
제도학파institutionalist란 보통 지대, 이윤, 노동비용 등과 같은 일반적인 경제학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사회의 법, 윤리, 제도와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학자들이다. 구제도학파의 거장인 토스타인 베블런은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경제란 항상 변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특별히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기 보다는 기존의 이론에 대해서 반박하고 비판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 엔지니어들의 창조적 추진력
베블런은 현대사회에서는 엔지니어들만이 창조, 발전, 생산의 욕구를 지녔으며, 이 엔지니어들을 감독하고 통솔하는 비즈니스맨들은 오로지 현시적 소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창조적 작업을 방해할 뿐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20세기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엔지니어들의 급격한 부상은 자본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뒤흔들 것으로 베블런은 예견한다. 이는 엔지니어들이 과학적으로 사고함에 따라 모든 상징주의나 허례허식, 신, 국가, 사유재산에 관한 추상적 믿음들은 사라진다고 미래를 예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베블런에게 경영인은 신기술의 개발과 같은 비용의 추가 없이, 단순히 상품의 외형을 조금만 바꾸거나 광고만으로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 시키려는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베블런의 견해는 그의 제자인 갤브레이스에게 넘어가게 된다.
* 갤브레이스와 광고의 유혹
갤브레이스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취향과 수요에 맞춰 생산 공급을 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의 공급에 맞춰 수요를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갤브레이스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욕망은 현시적 소비나 전시효과를 부추기는 광고술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의존효과로 인해 소비자가 원하는 생산품이 아닌 기업의 요구에 맞춘 상품을 소비자가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갤브레이스의 논리대로라면 사람들의 문화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피카소와 같은 사람은 어떠한 단체나 개인에 의해 사람들에게 선호되어지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선택은 소비자들이 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기업이 공급하고 소비자는 그에 순응할 뿐이라는 갤브레이스의 논리는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사람들의 선택은 단순히 기업이 원하는 공급에 따른 광고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갤브레이스는 소비자의 측면을 너무 무시했다.
* 신제도학파와 법률의 경제학
구제도학파에서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로 신제도학파는 마셜의 잣대로써 제도를 해부하려고 하였다.
-과실 : 법률에서 대부분의 사고는 과실이라는 법의 항목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실도 한계비용과 한계혜택의 측면에서 신제도학파는 바라보았다. 어떠한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사고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사고를 막기 위해 들여야하는 비용(한계비용)이 사고를 막음으로써 얻는 혜택(한계 혜택) 보다 크다면 그는 사법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산 : 여러 사람들이 재산권을 행사하는데 있어서도 한쪽이 재산권을 포기하거나, 양보해야 한다면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재산권이 제약 될 수도 있다.
9. 구원에 나선 풍류도락가 케인스(1883~1946)
케인스는 1883년 저명한 논리학자인 아버지와 여성으로서 케임브리지 시의 시장을 역임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이 아닌 수학을 전공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의 스승 마셜을 만나게 된다. 처음 마셜이 경제학으로 케인스를 이끌었을 때, 케인스는 경제학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늘날로 말하면 행정고시를 보고 관청에서 몇 년간 일하게 된다. 하지만 관청의 지루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던 케인스는 강사의 자리가 있다는 마셜의 말에 킹스 칼리지로 돌아오고, 그곳에서부터 경제학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다.
* 대공황과 고전학파의 몰락
1923년 ‘화폐개혁론Tract on Monetary Reform’ 과 1930년 ‘화폐론Treatise on Money’ 에서 알 수 있듯이 케인즈는 경제학 연구의 초점을 통화정책에 맞추었다. 케인스는 그의 저서에서 저축과 투자의 함수관계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미시켰다.
그러나 1930년대 경제학은 이러한 저서들의 포괄적 내용으로도 풀지 못할 새로운 난관에 부딪친다. 고전학파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였고, 실업률은 날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1930년대 대공황이 밀어 닥친 것이다. 1936년 케인스는 거시경제학 분석의 새 이정표를 세울 역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으로 경제 대공황을 설명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세이의 법칙으로써 현재의 대공황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논리로는 가계가 저축을 할 경우 비록 소비가 되지 않더라도 은행에서 기업으로의 이자율이 감소하기 때문에 기업은 싼 값으로 자금을 끌어오게 되고, 이로서 기업의 소비가 늘어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고용은 증가하여 경제가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만약 경기가 살아나지 않더라도 임금과 물가는 떨어지게 되므로, 경기침체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러한 고전학파의 논리에 케인스는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우선 첫 번째로, 저축은 완전히 투자로 연결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계의 저축이 기업의 투자를 초과할 경우 상품의 수요부족현상이 발생하게 되므로, 기업은 감원하고 소비는 더욱 감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임금과 물가가 자연스럽게 조절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독점기업이 존재하고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이상 물가와 임금은 자연스러운 하향곡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황에서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얻으려는 집단으로 인해 쉽게 변동되지 않는 것이다.
* 케인스의 처방
케인스는 과거의 경제학자들과는 다르게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악덕 자본가와 폭리 상인이 아닌 착실한 저축가들 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을 그의 ‘승수이론’을 가지고 설명했다. 케인즈의 ‘승수이론’의 요지 한 사람의 소비량 변화가 눈덩이 불어나듯 파급효과를 낳아 국가 전체의 소비량에 최종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처음의 몇 배가 된다는 것이다. 소비량은 한계소비성향, 즉 소득의 일부 중 소비되는 비율이 클수록 승수는 커진다.
불경기가 닥치면 사람들의 소득이 줄기에 정부의 세입 역시 줄어든다. 정부가 재정균형에 집착하게 되면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방안 중 어느 것도 경제를 승수효과에 따라 침체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세금도 더 많이 거둬질 것이고 정부가 지출해야 할 필요도 줄어들기에 재정은 흑자를 기록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불경기 때에는 고의로 재정적자를 내고 이 적자를 호경기 때 메꾸어 나가야 한다고 케인스는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은 케인즈 경제학을 응용했다. 경기가 침체되면 정부는 연방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인하하여 경제가 회생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를 내었다. 반대로 상품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만큼 급증하는 바람에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정부는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하여 수요를 안정시켰다. 그리하여 균형은 이루어졌다.
10. 케인스 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의 대결(밀턴 프리드먼, 1912~)
통화주의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케인스주의자들을 비판했다. (1)국가경제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는 정부지출이나 세금과 같은 재정정책이 아니다. (2)정부는 대개 형편없는 운전사이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의 통화 정책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금융계를 관장하는 연방준비은행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 통화주의 모형과 이에 대한 케인스주의자들의 비판
오늘날 통화주의자들은 고전학파에서는 돈의 힘을 너무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화폐의 유통속도가 일정하다는 데에는 통화주의자들 역시 동의하지만, 단기적으로 통화량의 증가가 물가의 상승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펼친다. 통화주의자들은 단기에서의 통화량 증가는 명목GNP 전체를 끌어올릴 수 있고, 장기에서의 통화량 증가는 물가의 상승만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은 만일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릴 경우, 사람들은 대게 거래적 동기 때문에 돈을 지니려 하기에 필요 이상의 돈은 투자를 하거나 실질자산의 구입에 지출하게 되므로 GNP는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케인스는 사람들은 돈을 보유할 때 거래적 동기 보다는 투기적 동기를 중요시 한다고 생각하였다. 투기적 동기를 중요시 하게 되면 통화의 유통속도는 불규칙 적이 되고, 당연히 GNP의 증감 유무도 예측해 낼 수 없게 된다.
통화주의자들은 도한 케인스주의자들의 정부지출의 효과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정부가 지출을 늘리려면 세금을 인상시키거나 공채를 발행해야 하므로 시중의 이자율이 상승하게 되어 민간기업의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축효과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이 구축효과를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지출의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이를 후에 상쇄하고도 남는 다고 생각한다.
* 밀턴 프리드먼의 반격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 금융사』를 통해 지난 세기 동안의 모든 불경기나 인플레이션의 배후에는 반드시 통화량 조절에 대한 실책이 있었지만, 케인스식 불경기나 인플레이션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통화주의 이론에 따라 계량경제학적 모형을 만들어 정부지출 승수에 대한 검증을 시도했다. 그 결과로 정부지출의 첫 해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두 번째 해부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이도 통화주의 이론이 옳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케인스와 프리드먼 덕분에 통화주의도 케인스주의도 아닌 절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11. 공공선택학파 : 정치는 곧 비즈니스(제임스 뷰캐넌, 1919~)
공공선택학파는 대다수의 경제학자들과 다르게 정치를 경제학적 도구로서 연구 분석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치고 하나의 경제활동이기 때문이다.
* 특수 이익집단의 역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의회나 정부에 로비를 한다. 이때 국가적으로 입을 수 있는 손해액은 전체 GNP의 1% 수준이라고 하면, 로비를 하는 이들은 1%의 손실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손실 보다 크기 때문에 그들은 쉬지 않고 로비를 한다. 그렇다면 일반 소비자나 시민들은 이들을 왜 막지 않는 것일까? 피해를 보는 일반 시민들 또한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가는 피해액이 적기 때문에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을 무시(=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 하는 것이다.
* 규제받는 자들은 규제하는 자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경제학자들은 관료들과 입법자들이 어째서 종종 훌륭한 정책을 마다하고 열악한 정책을 택하는지 진지하게 연구해 보아야 한다. 공공선택학파는 기업들이 공장에 투자하고 힘을 쏟기보다는 국회의원을 로비하여 특혜를 입어 돈을 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업규제가 그들을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규제를 위해 로비한다고 했다. 이것을 포획이론이라 부르며 이 이론의 핵심은 규제받는 자들이 오히려 규제하는 자들을 포획해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 공약, 재정, 그리고 관료주의
결론적으로 공공선택학파의 일부 학자들은 뷰캐넌의 이론을 확장시켜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재선확률을 높이기 위해 경제를 조작한다고 주장한다. 선거유세 기간 중에는 정치가가 인플레이션 유발정책을 써서 경제를 팽창시키고 고용을 늘린다. 경기가 좋아져서 이 정치가가 재선된 후에는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기 위해서 긴축통화 정책을 실시하게 되고 그 결과 불경기가 닥치며 고용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왜 공공선택학파를 예견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먼저 지적, 문화적 요인들의 영향으로 그는 빅토리아왕조식 교육을 받아 영국의 지식층들이 도덕적이고 지적이며 양심적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 이유로는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신뢰로 들 수 있다.
12. 합리적 기대가 지배하는 기상천외의 세상
우리는 처음 중상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들은 정부가 경제를 돕는다고 했다. 그 다음 스미스가 나와서 정부는 경제를 해칠 뿐이라고 했다. 케인스가 등장해서는 정부가 경제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가 경제를 도울 때도 있지만 해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공공 선택학파는 정부가 보통 경제를 해친다고 했다. 이제 합리적 기대 이론 학파rational expectations school는 선언한다. 정부의 개입이란 요술쟁의 장난처럼 환상에 불과한 것, 그것은 현실을 바꿔 놓을 수 없다. 라고 말이다.
합리적 이론가들의 주장에는 첫째, 시장이 언제나 수급균형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즉 가격은 항상 적절히 조절되어 공급부족이나 공급초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사람들은 언제나 가능한 모든 정보의 분석에 기초하여 경제적 결정을 내릴 뿐 아니라 꾸준히 자신들의 모형을 경제예측에 맞춰 최신의 것으로 개량한다고 주장한다.
* 주식중개인들에게 화살을
증권시장이야말로 합리적 기대이론이 가장 큰 설득력을 발휘하는 분야이다. 증권시간은 새로운 정보를 순식간에 흡수한다. 정보가 새어나가기 무섭게 주가는 그 정보를 반영하게끔 조정된다. 이것은 바로 모든 유효한 정보는 즉각적으로 시장에서 입수, 분석되어 주가에 반영된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이다. 이 효율적 시장가설은 내부정보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효율적 시장가설대로 행동할 경우 효율적 시장가설은 틀린 가설이 되어 버린다. 이 때에는 아무렇게나 주식을 고를 경우에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빈번해 질 것이다.
* 주류의 역습
합리적 기대이론은 정부의 경제팽창 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또한 정부의 긴축통화 정책은 불경기를 몰고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현실 생활에서 맞지 않음의 예가 발견된다.
그들은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을 환하게 꿰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전략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합리적 기대이론가들은 비현실적이고 위태로운 가정들이 많다. 이러한 가정들을 다 인정해 줄 경우, 합리적 기대이론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일 듯하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비판자들은 사실상 두 개의 질문을 던지다. 1)사람들은 묵은 버릇에서 벗어나 합리적 기대를 하는가? 2)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가? 둘 중 어느 하나의 대답이 ‘아니오’ 라면 합리적 기대이론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할 수 있다.
13. 먹구름, 그리고 한줄기 햇빛
지금까지 애덤 스미스이래 경제학의 발달사를 더듬어 왔다. 경제학은 무수한 천재를 집어삼킨 학문이다. 그만큼 경제학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며, 이것은 곧 케인스가 대경제학자의 조건을 얘기했던 것처럼 경제학자가 되기도 쉽지 않다. 경제학은 정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 아니다. 모든 ‘법칙’ 에 예외가 따르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피해자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민주정부를 설득시키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좋은 경제정책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누리는 혜택이 증가하는 정책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경제학의 올바른 이해를 막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선 세 가지 심리적 요인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까다롭고 복잡한 분석보다 간단하고 시원시원한 정보를 선호한다. 둘째, 우리는 즉각적인 결과를 원한다. 셋째, 설령 `좋은 시절‘ 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즉,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정치적, 문화적, 심리적, 제도적 요인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과학기술은 이러한 각종 의식요인들에 의해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무수한 정신적 변수들이 앞으로 우리를 발전으로 이끌지 야만으로 떨어뜨릴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생활에서 탈락하는 자들의 수효도 늘어 갈 것이다. 각종 심리적, 지적 핸디캡을 지닌 사람들은 뒤쳐지고 말 것이다. 세상을 통달하기엔 너무 복잡해지고 커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재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두 발로 살던 때가 네 발로 살던 때보다 훨씬 행복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 더 행복했던 순간들은 있었다. 그 짧고 빛났던 순간들을 묘사하고 설명해 낸 경제학자들에게 약간의 박수는 쳐줘도 되지 않을까.
Ⅲ. 인상 깊은 문장
–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 “경제학자 및 정치철학자의 아이디어의 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세계는 그 아이디어들이 움직여 나간다.
선용이 되든 악용이 되든 궁극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이디어지 사리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반이론』중에서
자료정리:홍상호 [email protected]
출처: SPR 경영연구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 저자 토드 벅홀츠 번역가 이승환 국가 미국 언어 영어 주제 고전 경제학자의 이론을 통해 오늘날 사회의 나아갈 길을 찾는다. 출판사
발행일 1989년 페이지 321 ISBN ISBN 8934901845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영어: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는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벅홀츠가 지은 경제사상사 도서로 1989년 처음 출판되었다. 2007년 영문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내용 [ 편집 ]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빌려 “경제학은 우울한 과학”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애덤 스미스를 시작으로, 토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제도학파, 존 메이너드 케인스, 통화주의자, 공공선택학파 등의 위대한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일반적인 경제학 서적과는 다르게 명확하고 보편적인 언어로 역사적 예시를 들어서 현대 사회와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고민한다
세계를 분석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경제학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글을 맺는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아래 저서에서 참조되었다.
Cornucopia limited: design and dissent on the Internet – Richard Coyne, 2005
Saskatchewan: the roots of discontent and protest – John W. Warnock, 2004
출처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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