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복음 13 장 주석 | [조정민 목사 설교]그 때가 언제인가(마가복음13장28-37절) 298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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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조정민 목사
날 짜: 2014년 12월 7일
제 목: 그 때가 언제인가
본 문: 마가복음 13장 28-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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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주석 – Daum 카페

마가복음 제 13장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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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5/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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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13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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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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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마가복음 1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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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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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3장 주석 – 블로그

마가복음13장. ​. 13:1-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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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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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강해]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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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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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마가복음 13장

13:1 성전 파괴 예언 (마가복음 13:1-4)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Ⅰ.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외관상 크게 보이는 것들을 우상화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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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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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마가 복음 13 장 주석 Trust The Answer – 1111.com.vn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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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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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 교사용] – – 홍순관 목사의 성경공부 누리집 –

마가복음 13장. < 1-8 >. 1. 제자 중 하나가 보는 것과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제자: 건물의 웅장함, 돌의 크기: 이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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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khong.org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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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금) “마가복음 13:1-13” / 작성: 정한조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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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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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 1) 성전 멸망을 예언하심 (1-2) · 2) 마지막 때의 징조 (3-23) · 3) 예수의 재림(24-27) · 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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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7/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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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설교]그 때가 언제인가(마가복음13장28-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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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가 복음 13 장 주석

  • Author: svcforh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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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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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주석

마가복음 제 13장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13:3-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1)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 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야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3:5-6

“주의하라”(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13:7-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서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야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3:9

“너희는 주의하라”라는 훈계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하셨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회당에서 열리는 지방 유대인의 법정인 공회(산헤드린)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연하게 회당에서 이교도들처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을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그 증거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고소하는 증거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13:10

복음이 반드시 먼저 모든 민족 즉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나 그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최우선 적으로 해야 될 일이며 또 그의 목적에 따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 것은 가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곧 이 시대에 혹은 이 시대의 끝에 가서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마25:31-46)

=======13:11

제자들이 체포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질 때에 변명하기 위해서 염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담대하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움이 꼭 석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3:12-13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이며, 또한 가까운 자기의 친척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매우 심각하여 가족들이 서로 대적자들에게 넘겨 줄 것이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예수를 위한 충성 때문에 박해로 고통 당하는 로마에 잇는 마가의 독자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고통을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와 변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게 될 때 더 한층 그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게 된다.

=========13:14

“가증한 것”이란 말은 원래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가증스러운 일들”을 가리켰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표현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그 대상이 너무 가증하여 성전을 버리게 하고 황폐케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은 그 예언이 또 한 번 성취될 것을, 즉 A. D. 70년의 성전 모독과 파괴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즉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들이 이같은 성전 모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베뢰아 요단강을 건너 산으로 도망하라는 신호이다.

요세프스는 A.D. 67-68년에 유대 열심당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점령하고 침략자 파니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가증한 것”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서 있지 못할 곳에 서 있는 장래의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3:15-18

이러한 위기가 일어날 때에 자기 집의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지려고 결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자들도 추운 밤 공기를 막아 주는 겉옷을 가지려고 다른 밭이나 집으로 가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하에서 도망가야만 하는 아이 밴 여자와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동정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강물이 많이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될 우기인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13:19

그들이 급하게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다행히도 도망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재난의 날들이 없었고 결코 또다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재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에도 해당되지만 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을 넘어서 재림에 앞서 있을 마지막 대환란 이기도 한 것이다.

==========13:20

“만약 주께서 그이 구언 계획 속에서 이미 결정된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13:13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택하신 그 택한 자들 때문에 마지막 때 환난 기간을 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A.D. 70년에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지막 때의 대환란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13:21-22

“그 때에” 즉 심한 고통과 도망하는 그날 중에 만약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에 혹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여도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말고 계속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3: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날에 거짓 함정에 바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다시 교훈 하셨다.

=====13:24-25

“그러나”라는 말이 기적적인 이적들을 베푸는 거짓 메시야의 출현과 재난 이후의 때에 참 메시야의 극적인 오심 사이에 뚜렷한 대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표현은 14-23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리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무질서가 바로 재림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예수는 정확하게 어느 한 편의 구절만 인용하지 않고 이사야 13:10과 34:4 둘 다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천체 변화를 언급하신 것이다.

===========13:26

방금 언급한 우주적인 사건이 발생한 그 때에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신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능을 행하실 것이며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13:27

또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이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언급은 없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란 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13:28

제자들이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기에서 그런 의미를 의도하지는 않아다.

======13:29

이 절은 28절의 교훈을 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너희 제자들은 14-23절에 언급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임박한 위기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박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13:30-31

엄숙한 서론적인 말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한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말씀들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씀은 영원히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의 말씀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3:32

비록 위기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식별해 낼 수 있으나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예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13:33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라고 거듭 훈계하셨다.

==========13:34-37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는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는 비유를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다.

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13장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 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13:3 – 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1)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 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야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3:5 – 6

주의하라 (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 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13:7 – 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서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야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3:9

너희는 주의하라 라는 훈계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하셨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회당에서 열리는 지방 유대인의 법정인 공회(산헤드린)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연하게 회당에서 이교도들처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을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그 증거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고소하는 증거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13:10

복음이 반드시 먼저 모든 민족 즉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나 그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최우선 적으로 해야 될 일이며 또 그의 목적에 따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 것은 가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곧 이 시대에 혹은 이 시대의 끝에 가서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25:31 – 46).

=======13:11

제자들이 체포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질 때에 변명하기 위해서 염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담대하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움이 꼭 석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3:12 – 13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이며, 또한 가까운 자기의 친척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매우 심각하여 가족들이 서로 대적자들에게 넘겨 줄 것이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예수를 위한 충성 때문에 박해로 고통 당하는 로마에 잇는 마가의 독자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고통을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와 변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게 될 때 더 한층 그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게 된다.

=========13:14

가증한 것 이란 말은 원래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가증스러운 일들 을 가리켰다. 멸망의 가증한 것 이란 표현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그 대상이 너무 가증하여 성전을 버리게 하고 황폐케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 이라는 말은 그 예언이 또 한 번 성취될 것을, 즉 A. D. 70년의 성전 모독과 파괴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즉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들이 이같은 성전 모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베뢰아 요단강을 건너 산으로 도망하라는 신호이다. 요세프스는 A. D. 67 – 68년에 유대 열심당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점령하고 침략자 파니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가증한 것 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서 있지 못할 곳에 서 있는 장래의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3:15 – 18

이러한 위기가 일어날 때에 자기 집의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지려고 결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자들도 추운 밤 공기를 막아 주는 겉옷을 가지려고 다른 밭이나 집으로 가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하에서 도망가야만 하는 아이 밴 여자와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동정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강물이 많이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될 우기인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13:19

그들이 급하게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다행히도 도망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재난의 날들이 없었고 결코 또다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재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에도 해당되지만 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을 넘어서 재림에 앞서 있을 마지막 대환란 이기도 한 것이다.

==========13:20

만약 주께서 그이 구언 계획 속에서 이미 결정된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13:13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택하신 그 택한 자들 때문에 마지막 때 환난 기간을 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A. D. 70년에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지막 때의 대환란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13:21 – 22

그 때에 즉 심한 고통과 도망하는 그날 중에 만약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에 혹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여도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말고 계속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3: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날에 거짓 함정에 바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다시 교훈 하셨다.

=====13:24 – 25

그러나 라는 말이 기적적인 이적들을 베푸는 거짓 메시야의 출현과 재난 이후의 때에 참 메시야의 극적인 오심 사이에 뚜렷한 대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표현은 14 – 23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리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무질서가 바로 재림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예수는 정확하게 어느 한 편의 구절만 인용하지 않고 이사야 13:10과 34:4 둘 다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천체 변화를 언급하신 것이다.

===========13:26

방금 언급한 우주적인 사건이 발생한 그 때에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신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능을 행하실 것이며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13:27

또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이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언급은 없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란 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13:28

제자들이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 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기에서 그런 의미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13:29

이 절은 28절의 교훈을 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너희 제자들은 14 – 23절에 언급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임박한 위기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박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13:30 – 31

엄숙한 서론적인 말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한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말씀들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씀은 영원히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의 말씀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3:32

비록 위기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식별해 낼 수 있으나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예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13:33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라고 거듭 훈계하셨다.

==========13:34 – 37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는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는 비유를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다.

본장의 강화 역시 12장과 마찬가지로 수난 주간 중 화요일에 주어진 말씀으로서 묵시 문학적 특성으로 인해 해석상 어려움이 따른다. 본 강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두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1) 인내에 관한 교훈. 이는 본서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강조되며, 특히 예수의 공생애의 마감 시점이 가까울수록 더욱 부각되는 주제인 ‘제자 훈련'(discipleship training)의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는 사항이다. 아울러 이 교훈은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 강화가 성격상 묵시 문학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강화가 주어진 가장 큰 목적은 장래사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윤리적인 교훈을 주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증거로서 본 강화에서는 ‘. . . 하라’는 명령내지는 권면의 말씀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무릇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핍박이 따르며 이 핍박은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후에 비로소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듯이 성도들도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을 견뎌내야 함을 가르친다.

(2) 종말에 관한 예언. 본 강화는 또한 역사의 마지막 때 곧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이는 본문이 묵시 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사항이다. 묵시 문학 형태는 1C경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으며, 성경 전체 중에서 ‘묵시적’인 내용의 책은 다니엘, 요엘, 아모스, 스가랴, 말라기, 요한 계시록 등이며 본장과 마 24장에 수록된 감람산 강화와 살전 4:13이하 내용도 묵시 문학적이다. 이런 책들은 정경(Canon)에 포함되지 않은 묵시문학(apocalytic literature)과 마찬가지로 상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으며, 역시 종말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는 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편 본문의 내용은 네 문단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문단에서는 종말에 관한 예언 및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에 관한 교훈이 교차적으로 반복된다. 다시 말해서, 1-8절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에 관한 예언이며 9-13절은 종말시의 핍박에 직면했을 때 굳센 믿음으로 인내하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14-27절은 대환난과 주의 재림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예언이며, 28-37절은 항상 종말론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성할 것에 대한 교훈의 내용이다.

* 종말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종말론(eschatology)에 관한 학자들간의 다양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견해: 그들은 성서에 기록된 종말에 관한 예언들을 분석, 종합하면 말세지말(末世之末)에 일어날 일들을 어느 정도 상세히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 간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소위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은 천년 왕국 후 짧은 배교의 시기, 즉 선과 악의 세력간의 극심한 싸움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래한다는 견해로서 어거스틴(A. Augustinus),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등이 주장했다. 반면에 랑게(J. P. Lange), 알포드(H. Alford)등의 견해인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은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임한다고 본다. 그리고 무천년설(ammillennialism)

은 천년 왕국을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재림 전까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통치하는 전 기간을 바로 천년 왕국 시기로 이해하며, 이 학설의 대변자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게할더스 보스(Gerhardus Vos)등이다.

(2) 슈바이처의 견해 : 슈바이처(A. Schweitzer)의 ‘철저적 종말론’에 의하면, 예수는 세상의 임박한 천재지변적 종국과 묵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급작스런 도래는 선포하는 데 전적으로 사역의 초점을 집중시켰던 한 유대인 묵시주의자였다고 한다. 예수는 곧 세상의 마지막이 도래하리라고 믿고 설교하였으나 결국 그러한 확신은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적 천국은 철저히 미래적인 소망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3) 도드의 견해 : 도드(C. H. Dodd)는 슈바이처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이미 도래하였다고 보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했다. 즉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러한 현재적, 종말론적 위기 상황을 기술할 때 사용한 묵시적 언어들은 역사를 넘어 항상 현존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였으며, 이러한 초역사적이며 절대적인 영역이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이미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현된 종말론에 의하면 세상의 끝에 별도의 종말론적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는 셈이다.

(4) 볼트만의 견해 : 볼트만(R. Bultamnn)은 성경상의 종말론을 실존주의적으로 이해하였다. 그에게 있어 종말에 관한 예언들은 신화에 불과하며 종말론적 시각이란 강렬한 신인식(神認識)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직면했을 때 책임있는 결단으로써 응답하는 자는 종말론적 실존에로 돌입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오늘날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학자들은 ‘철저적 종말론’과 ‘실현된 종말론’에는 둘다 진리의 일면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미 도래하였으되(already), 다만 그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not yet) 미래의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다(마태복음 24장 주제 강해 “성경은 종말론의 관심과 그 해석상의 문제점” 참조)

1. 종말의 징조들과 성도의 인내(13:1-13)

감람산 강화는 성전의 화려한 웅장한 외양에 감탄하는 제자들의 아둔한 모습을 묘사하는(1절) 내용으로부터 도입되고 있다. 그들은 방금 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위선을 책망하는 예수의 호된 경고를(12:38-40)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저들의 가식과 부패상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의 외면적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의 이러한 영적 암매(暗昧) 상태를 꿰뚫어 보시고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으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 때의 징조를 묻자 예수의 감람산 강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본문을 특히 제자 훈련 내지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교훈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몇 경고 사항들에 주목하게 된다.

(1) 종교적 형식주의. 성전 숙정 사건(11:15-18)과 마찬가지로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2절) 또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서 특히 뚜렷이 나타났던 형식주의와 위선에 대한 심판 선고라 할 수 있었다.

(2) 거짓 메시야. 말세에는 미혹하는 영들이 많이 출현하며 스스로 메시양인양 가장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킨다는 경고이다(6절). 사도행전에 나오는 드다(Theudas)(행 5:36)와 갈릴리 유다(행 5:37) 및 마술사 시몬(행 8:9) 등도 메시야로 자처한 듯하며, 현재 우리나라에도 자칭 메시야를 따르는 이단 종파가 있다.

(3) 세계의 격변에 따른 동요, 말세지말이 가까와 음에 따라 전쟁과 지진 그리고 기근(饑饉)등이 빈발하게 될 것이지만, 성도들은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역사의 최종적인 도달처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며, 본문에 예언된 난리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달하기 이전에 거처야 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기 때문이다(히 12:26).

(4) 핍박으로 인한 실족. 본문 중 무려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핍박을 대비하라는 경계의 말씀이다(-913절). 이는 감람산 강화의 주목적인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하는 단적 실례라 하겠다.

이와 같은 경계의 말씀은 당시 예수의 강화를 듣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사 본문에 기록된 말세지말의 징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징조에 버금가는 현상들이 세계 도처에서 빈발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 무장을 게을리하는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이나 위협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가능성이 다분하다. 요컨대 예수의 조속한 재림을 대망하며 늘 종말론적 긴장 가운데 깨어 기도함으로썸나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엡 6:18;딤후 2:26).

*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들. 이단은 이미 초대교회 당시부터 대두하였으며(벧후 2:1) 교회사의 진전과 더불어 수많은 이단들이 출몰하였다. 여기서는 편의상 초대교회 이후로부터 중세 시대 이전까지 출몰했던 이단 사상들 및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창궐(猖獗)하고 있는 이단 종파들 중 대표적인 것들만 대략적으로 지적해 보는 데에 그치기로 하자. ‘이단’의 개념 및 특성에 관해서는 요일 4:1-6의 주제 강해 ‘이단의 개념’을 참조하라.

(1) 중세 초엽까지의 이단들 중 대표적인 이단은 다음과 같다.

(까) 영지주의(Gnosticism). 신앙보다 지식을 우위에 두었고, 그노시스(지식)야말로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육체를 포함한 물질은 모두 약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다(요일 4:1-6, 주제 강해 ‘영지주의’ 참조).

(다) 오리게네스주의(Origenism). 일종의 기독교적 영지주의라 하겠으며, 성자를 신격으로 간주하되 성부께 종속시켰다. 그리고 만물이 그 근원인 가장 지고한 존재,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므로 사단마저도 하나님께로 회복된다고 주장했다.

(따) 마르키온주의(Marcionism). 하나님이 두 분 계시며,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서로 대립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모두 폐지하였고, 열 개의 바울서신과 누가복음의 일부만을 정경을 간주했다.

(마) 몬타누스주의(Montanism). 몬타누스는 요 14장에 약속된 보혜사 성령이 자기에게서 나타났으며, 자신에게 특별한 예언의 말씀이 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말이 박두하였음을 외치면서 혼인을 대체로 반대하고 엄격한 금식 생활을 권했다.

(바) 모나키아니즘(Monarchianism:군주신론). 이 이단 학설은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들이워진 인간이었다는 양자설(養子設), 혹은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 이상의 존재로서 그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할 능력을 지녔다고 보는 영성론 등 두 가지 주장으로 대별된다.

(빠) 마니교(Manichaeism). 악의 실체성과 영원성을 긍정하고, 사단과 하나님에 의해 각각 다스려지고 있는 어둠의 왕국과 빛의 왕국기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싸) 아리우스주의(Arianism). 인간을 영, 육, 이성으로 삼분하고, 그리스도는 이성 대신 로고스(Logos)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이긴 하였으나 그분의 진정한 인성을 거부한 셈이다.

(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 그리스도 안에는 인성과 신성이 병존해 있고 또한 서로 협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두 속성은 결코 하나로 융합되거나 서로 유통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카)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여 원죄의 영향력을 부인하였다.

(2) 현대의 이단 종파들은 성경의 절대성을 부정, 교주의 신격화, 행위 주권등을 주장하며 범람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실례는 다음과 같다.

(까) 통일교(Unification church). 교주인 문선명은 성경이 진리를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고 진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으며 하나님을 남성과 여성의 중화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천사 루시퍼와 성관계를 가진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영적 타락이라 규정했다. 예수는 영적 구원만 이루었을 뿐이며, 육적 구원은 재림주인 문선명 자신을 통해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다)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Seventh Day Advenist).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속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1844년 10월 22일을 그리스도의 재림일로 예언했다가 그 예언이 빗나가자 그날 예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따)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창시자인 럿셀은 1914년 10월에 종말이 올 것을 예언했다가 그 예언이 빗나가자 이를 수정하여 천국이 현재는 공중에 임해 있으며, 여화와의 중인들에게만 그 문이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인간으로 단정하며, 성령의 인격서을 부인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하고 지옥의 존재 또한 부인한다. 또한 교회 제도의 기원이 마귀에게 있다고 보며, 인간의 부활을 영적인 측면에서만 인정한다.

(마) 몰몬교(Mormonism: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다신론적이며, 신들도 성이 있어 결혼하고 그 결과 자녀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담 또한 신들의 육체적 결합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신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만인 구원을 믿으며, 일부다처를 권장했다.

(바)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미국의 메리 베이커 에디 부인에 의해 창시되었다. 에디는 기독교가 상실해버린 치료 법칙이 자신에게 계시되었다고 주장했다. 외관상으로는 성경에 궁극적 권위를 둔다고 말하나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실제적 권위는 성경이 아니라 에디 부인의 책들이다. 에디가 본 하나님은 범신론적인 하나님이며, 그녀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이원론적으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죄나 악이란 단지 착각내지 환상에서 비롯된 개념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여러 이단들에게 관해 지극히 개략적인 한도 내에서 고찰하였다. 이단은 인간적 야욕을 종교적 허울을빌어 성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리를 미혹시키는 데서 생겨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의에도 불구하고 편협하고 왜곡된 성경 이해에서 생겨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성경 구절마다에 담긴 심오한 진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을 잇는 통전적(通典的) 의미에 유의하여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며(신 17:11), 오직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출 수 있어야 하겠다. 아울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 성경 진리를 왜곡시키는 사단의 세력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하겠다.

2. 대환난과 재림에 관한 예언(13:14-27)

본문은 계시록에 언급된 종말론적 대환난과 예수의 재림에 관한 예언(계 6-19장)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14-23절의 내용은 종말론적 대환난의 때와 A. 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의 때를 동시에 예언하는 예언적 단축법(prophetic foreshortening)을 보여 준다. 이 예언에 관한 구성상의 특징이나 내용상의 강조점에 대해서는 마 24:15-28, 29-31의 강해에서 상세히 설명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예언된 사건 자체 보다는 이 예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예수의 교훈이라는 측면에 주안점을 두기로 하자.

(1) 환난에 대한 인내. 앞 문단에서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환난을 당하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인내할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본문 또한 부활과 재림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의 제자 훈련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14-23절의 내용 자체는 대환난의 불가피성과 심각성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지만, 전후 문맥상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환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에 관한 교훈 또한 매우 강조되고 있다 하겠다. 마지막 때를 당하여 성도들은 불신 세력에 의해 핍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천재지변과 범세계적인 환난 또한 맞게 된다. 하지만 본문은 택한 자들을 위해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시고’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성도들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 10:13).

따라서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도래하기로 작정된 대환난 자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들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환난을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도록 매진(邁進)하여야겠다.

(2) 재림에 대한 소망.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대환난을 견디어 낸 모든 성도들을 세계각처로부터 불러모으시리나는 24-27절의 예언은 말세의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더없이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의 극심한 핍박을 당했을 때, 굴복하여 배고(背道)의 길을 걷기보다는 차라리 순교의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재림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재림하실 예수의 모습은 초림 때와는 전혀 다르다. 예수께서 초림 때에는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극히 초라한 모습으로 오사(눅 2:7) 죄인들을 대신하여 저주를 당하셨지만(갈 3:13), 재림 때에는 모든 죄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정복자로서 그리고 온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영광 가운데 임하실 것이다. 예수의 재림 사건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므로, 인간 이성을 최선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사람들은 이 재림의 예언을 미신이나 공상의 산물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이 엄연한 역사상의 사건이었듯이, 주의 재림 또한 역사의 마지막에 가까운 한 시점에서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와 같은 재림을 대망하는 굳건한 믿음으로써 모든 선한 일을 경주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악한 유혹이나 위협을 능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한편 역사의 한 정점에 이르러 세상의 마지막이 임한다고 하는 이 예언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적 역사관의 특징을 고찰해 볼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 기독교적 역사관. 기독교적 역사관이란 인간 역사의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단과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시간과 영원과의 관계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을 의미한다. 이제 이러한 역사관의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사의 진행 과정을 직선형으로 본다. 원형과 같이 무한히 반복 윤회(輪廻)한다는 불교적 시간관이나 나선형으로 무한히 발전해 간다는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영국의 역사가)의 역사관과는 달리, 성경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또한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것으로서 처음과 끝이 일직선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서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시간의 흐름은 재림주이신 예수의 백보좌 심판을 끝으로 하여 멈춰지며, 그 이후에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2) 역사의 진행 과정이 목적 지향적이라고 본다. 인류와 우주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진행되며, 하나님은 역사의 주(主)로서 역사를 통해 영원전부터 계획하신 당신의 선하신 목적과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 목적 가운데 으뜸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함 받은 무리들을 당신의 나라로 부르시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성도는 역사의 주역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참해야 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3)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본다.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이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며, 역사에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O. Cullmann). 그리스도를 통해 무한하고 영원한 구속선(球贖線)이 일반사를 꿰뚫고 들어왔으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영원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3. 경성(警醒)에 관한 교훈(13:28-37)

본문은 감람산 강화의 결론에 해당하며, 두 가지 비유를 통해 항상 종말론적 긴장을늦추지 말고 깨어서 주님 오실 날에 대비하라는 교훈이다. 이 중 무화과나무의 비유(28-33절)는 이제까지 본장에 묘사된 종말의 여러 징조들에 대한 결론으로서 내용상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깨어있는 문지기 비유는(34-37절) 이 결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내용이다.

한편 마태는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마 24:32-25:46에서 여러 비유들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본문의 두 비유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종말의 임박성. ‘이 세대'(30절)라는 표현이 주는 어감과 ‘홀연히'(36절)라는 말 등에서 종말의 임박성이 강조된다. 특히 ‘이 세대’라는 말은 모든 인류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 당시의 세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쨌든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 때문에(벧후 3:8), 우린 정확한 재림 날짜에 지나친 관심을 나타낼 필요는 없으며, 다만 항상 종말론적 긴장과 재림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서 부단히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2) 경성(警醒)을 촉구함. 33, 34, 35, 37절 등에는 ‘깨어 있으라'(keep, watch, NIV)는 말씀이 거듭 반복되고 있어 본 강화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드러낸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점점 더 약해지고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더욱 멀어져만 가는데, 많은 성도들은 영혼의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생각을 않고 있다. 죄악된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자포자기 상태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들은 주께서 홀연히 임하시는 날에 책망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헬라어 마가복음 1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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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에크포류오메누 아우투 에크 투 히에루 레게이 아우토 헤이스 톤 마데톤 아우투 디다스칼레 이데 포타포이 리도이 카이 포타파이 오이코도마이

개역개정,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새번역,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저 큰 돌들 하며 웅장한 건물 좀 보십시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

영어NIV,1 As he was leaving the temple,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ok, Teacher! What massive stones! What magnificent buildings!”

영어NASB,1 As He was going out of the temple,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Teacher, behold what wonderful stones and what wonderful buildings!”

영어MSG,1 As he walked away from the Temple, one of his disciples said, “Teacher, look at that stonework! Those buildings!”

영어NRSV,1 As he came out of the temple,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ok, Teacher, what large stones and what large buildings!”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εκπορευομενου αυτου εκ του ιερου λεγει αυτω εις των μαθητων αυτου διδασκαλε ιδε ποταποι λιθοι και ποταπαι οικοδομαι

라틴어Vulgate,1 et cum egrederetur de templo ait illi unus ex discipulis suis magister aspice quales lapides et quales structurae

히브리어Modern,1 ויהי בצאתו מן המקדש ויאמר אליו אחד מתלמידיו רבי ראה מה יפו האבנים והבנינים האלה׃

성 경: [막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카이 호 예수스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우토 타우타스 타스 메갈라스 오이코도마스 우 메 아페데 리도스 에피 리도 호스 우 메 카탈뤼데

개역개정,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새번역,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우리말성경,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훌륭한 건물들을 보느냐? 여기 있는 돌 하나라도 그냥 쌓여 있지 않고 하나같이 모두 무너질 것이다.”

가톨릭성경,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영어NIV,2 “Do you see all these great buildings?” replied Jesus. “Not one stone here will be left on another; every one will be thrown down.”

영어NASB,2 And Jesus said to him, “Do you see these great buildings? Not one stone will be left upon another which will not be torn down.”

영어MSG,2 Jesus said, “You’re impressed by this grandiose architecture? There’s not a stone in the whole works that is not going to end up in a heap of rubble.”

영어NRSV,2 Then Jesus asked him, “Do you see these great buildings? Not one stone will be left here upon another; all will be thrown down.”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ο ιησους αποκριθεις ειπεν αυτω βλεπεις ταυτας τας μεγαλας οικοδομας ου μη αφεθη λιθος επι λιθω ος ου μη καταλυθη

라틴어Vulgate,2 et respondens Iesus ait illi vides has omnes magnas aedificationes non relinquetur lapis super lapidem qui non destruatur

히브리어Modern,2 ויען ישוע אתו ויאמר הראית את כל הבנינים הגדולים האלה לא תשאר אבן על אבן אשר לא תתפרק׃

성 경: [막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카이 카데메누 아우투 에이스 토 오로스 톤 엘라이온 카테난티 투 히에루 에페로톤 아우톤 캍 이디안 페트로스 카이 야코보스 카이 요안네스 카이 안드레아스

개역개정,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새번역,3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예수께 물었다.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서 앉아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나아와 예수께 물었습니다.

가톨릭성경,3 예수님께서 성전 맞은쪽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예수님께 물었다.

영어NIV,3 As Jesus was sitting on the Mount of Olives opposite the temple, Peter, James, John and Andrew asked him privately,

영어NASB,3 As He was sitting on the Mount of Olives opposite the temple, Peter and James and John and Andrew were questioning Him privately,

영어MSG,3 Later, as he was sitting on Mount Olives in full view of the Temple, Peter, James, John, and Andrew got him off by himself and asked,

영어NRSV,3 When he was sitting on the Mount of Olives opposite the temple, Peter, James, John, and Andrew asked him privately,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καθημενου αυτου εις το ορος των ελαιων κατεναντι του ιερου επηρωτων αυτον κατ ιδιαν πετρος και ιακωβος και ιωαννης και ανδρεας

라틴어Vulgate,3 et cum sederet in montem Olivarum contra templum interrogabant eum separatim Petrus et Iacobus et Iohannes et Andreas

히브리어Modern,3 וישב על הר הזיתים ממול המקדש וישאלהו פטרוס ויעקב ויוחנן ואנדרי והם אתו לבדם׃

성 경: [막13:3-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1).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 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야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에이페 헤민 포테 타우타 에스타이 카이 티 토 세메이온 호탄 멜레 판타 타우타 쉰텔레이스다이

개역개정,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새번역,4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우리말성경,4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가톨릭성경,4 “ 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영어NIV,4 “Tell us, when will these things happen? And what will be the sign that they are all about to be fulfilled?”

영어NASB,4 “Tell us, when will these things be, and what will be the sign when all these things are going to be fulfilled?”

영어MSG,4 “Tell us, when is this going to happen? What sign will we get that things are coming to a head?”

영어NRSV,4 “Tell us, when will this be, and what will be the sign that all these things are about to be accomplished?”

헬라어신약Stephanos,4 ειπε ημιν ποτε ταυτα εσται και τι το σημειον οταν μελλη παντα ταυτα συντελεισθαι

라틴어Vulgate,4 dic nobis quando ista fient et quod signum erit quando haec omnia incipient consummari

히브리어Modern,4 אמר נא לנו מתי תהיה זאת ומה הוא האות בבא העת אשר תעשה בה כל זאת׃

호 데 예수스 아포크리데이스 아우토이스 에릌사토 레게인 블레페테 메 티스 휘마스 플라네세

개역개정,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새번역,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우리말성경,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가톨릭성경,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영어NIV,5 Jesus said to them: “Watch out that no one deceives you.

영어NASB,5 And Jesus began to say to them, “See to it that no one misleads you.

영어MSG,5 Jesus began, “Watch out for doomsday deceivers.

영어NRSV,5 Then Jesus began to say to them, “Beware that no one leads you astray.

헬라어신약Stephanos,5 ο δε ιησους αποκριθεις αυτοις ηρξατο λεγειν βλεπετε μη τις υμας πλανηση

라틴어Vulgate,5 et respondens Iesus coepit dicere illis videte ne quis vos seducat

히브리어Modern,5 ויען אתם ישוע ויחל לדבר ראו פן יתעה אתכם איש׃

성 경: [막13:5-6]

“주의하라”(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폴로이 가르 엘류손타이 에피 토 오노마티 무 레곤테스 호티 에고 에이미 카이 폴루스 플라네수신

개역개정,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새번역,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우리말성경,6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바로 그다’라며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가톨릭성경,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영어NIV,6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he,’ and will deceive many.

영어NASB,6 “Many will come in My name, saying, ‘I am He!’ and will mislead many.

영어MSG,6 Many leaders are going to show up with forged identities claiming, ‘I’m the One.’ They will deceive a lot of people.

영어NRSV,6 Many will come in my name and say, ‘I am he!’ and they will lead many astray.

헬라어신약Stephanos,6 πολλοι γαρ ελευσονται επι τω ονοματι μου λεγοντες οτι εγω ειμι και πολλους πλανησουσιν

라틴어Vulgate,6 multi enim venient in nomine meo dicentes quia ego sum et multos seducent

히브리어Modern,6 כי רבים יבאו בשמי לאמר אני הוא ויתעו רבים׃

호탄 데 아쿠세테 폴레무스 카이 아코아스 폴레몬 메 드로에이스데 데이 가르 게네스다이 알 우포 토 텔로스

개역개정,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새번역,7 또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놀라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우리말성경,7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소문이 들려도 놀라지 말라.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지만 마지막은 아직 아니다.

가톨릭성경,7 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아직 끝은 아니다.

영어NIV,7 When you hear of wars and rumors of wars, do not be alarmed. Such things must happen, but the end is still to come.

영어NASB,7 “When you hear of wars and rumors of wars, do not be frightened; those things must take place; but that is not yet the end.

영어MSG,7 When you hear of wars and rumored wars, keep your head and don’t panic. This is routine history, and no sign of the end.

영어NRSV,7 When you hear of wars and rumors of wars, do not be alarmed; this must take place, but the end is still to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7 οταν δε ακουσητε πολεμους και ακοας πολεμων μη θροεισθε δει γαρ γενεσθαι αλλ ουπω το τελος

라틴어Vulgate,7 cum audieritis autem bella et opiniones bellorum ne timueritis oportet enim fieri sed nondum finis

히브리어Modern,7 ובשמעכם מלחמות ושמעות מלחמה אל תבהלו כי היו תהיה זאת אך לא זאת היא הקץ׃

성 경: [막13:7-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서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야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에게르데세타이 가르 에드노스 에피 에드노스 카이 바실레이아 에피 바실레이안 카이 에손타이 세이스모이 카타 토푸스 카이 에손타이 리모이 카이 타라카이 아르카이 오디논 타우타

개역개정,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새번역,8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진통의 시작이다.

우리말성경,8 민족과 민족이 서로 대항해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항해 일어날 것이다.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해산하는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가톨릭성경,8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

영어NIV,8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and famines.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영어NASB,8 “For nation will rise up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there will also be famines. These things are merely the beginning of birth pangs.

영어MSG,8 Nation will fight nation and ruler fight ruler, over and over. Earthquakes will occur in various places. There will be famines. But these things are nothing compared to what’s coming.

영어NRSV,8 For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there will be famines. This is but the beginning of the birthpangs.

헬라어신약Stephanos,8 εγερθησεται γαρ εθνος επι εθνος και βασιλεια επι βασιλειαν και εσονται σεισμοι κατα τοπους και εσονται λιμοι και ταραχαι αρχαι ωδινων ταυτα

라틴어Vulgate,8 exsurget autem gens super gentem et regnum super regnum et erunt terraemotus per loca et fames initium dolorum haec

히브리어Modern,8 כי יקום גוי על גוי וממלכה על ממלכה והיה רעש כה וכה והיה רעב ומהומה׃

블레페테 데 휘메이스 헤아우투스 파라도수신 휘마스 에이스 쉬네드리아 카이 에이스 쉬나고가스 다레세스데 카이 에피 헤게모논 카이 바실레온 스타데세스데 헤네켄 에무 에이스 마르튀리온 아우토이스

개역개정,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새번역,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우리말성경,9 너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너희는 법정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당할 것이다. 그리고 나로 인해 왕과 총독들 앞에 서서 그들에게 증언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는 너희가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증언할 것이다.

영어NIV,9 “You must be on your guard. You will be handed over to the local councils and flogged in the synagogues. On account of me you will stand before governors and kings as witnesses to them.

영어NASB,9 “But be on your guard; for they will deliver you to the courts, and you will be flogged in the synagogues, and you will stand before governors and kings for My sake, as a testimony to them.

영어MSG,9 “And watch out! They’re going to drag you into court. And then it will go from bad to worse, dog-eat-dog, everyone at your throat because you carry my name. You’re placed there as sentinels to truth.

영어NRSV,9 “As for yourselves, beware; for they will hand you over to councils; and you will be beaten in synagogues; and you will stand before governors and kings because of me, as a testimony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9 βλεπετε δε υμεις εαυτους παραδωσουσιν γαρ υμας εις συνεδρια και εις συναγωγας δαρησεσθε και επι ηγεμονων και βασιλεων σταθησεσθε ενεκεν εμου εις μαρτυριο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9 videte autem vosmet ipsos tradent enim vos conciliis et in synagogis vapulabitis et ante praesides et reges stabitis propter me in testimonium illis

히브리어Modern,9 אלה ראשית החבלים ואתם השמרו בנפשתיכם כי ימסרו אתכם לסנהדריות והכיתם בבתי כנסיות ולפני משלים ומלכים תובאו למעני לעדות להם׃

성 경: [막13:9]

“너희는 주의하라”라는 훈계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하셨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회당에서 열리는 지방 유대인의 법정인 공회(산헤드린)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연하게 회당에서 이교도들처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을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그 증거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고소하는 증거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카이 에이스 판타 타 에드네 데이 프로톤 케뤼크데나이 토 유앙겔리온

개역개정,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새번역,10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 ㉠또는 ‘기쁜 소식’

우리말성경,10 먼저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

가톨릭성경,10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영어NIV,10 And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영어NASB,10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the nations.

영어MSG,10 The Message has to be preached all across the world.

영어NRSV,10 And the good news must first be proclaimed to all nation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εις παντα τα εθνη δει πρωτον κηρυχθηναι το ευαγγελιον

라틴어Vulgate,10 et in omnes gentes primum oportet praedicari evangelium

히브리어Modern,10 והבשורה צריכה להקרא בראשנה לכל הגוים׃

성 경: [막13:10]

복음이 반드시 먼저 모든 민족 즉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나 그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최우선 적으로 해야 될 일이며 또 그의 목적에 따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 것은 가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곧 이 시대에 혹은 이 시대의 끝에 가서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마25:31-46)

카이 호탄 아고신 휘마스 파라디돈테스 메 프로메림나테 티 랄레세테 알 호 에안 도데 휘민 엔 에케이네 테 호라 투토 랄레이테 우 가르 에스테 휘메이스 호이 랄룬테스 알라 토 프뉴마 토 하기온

개역개정,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새번역,11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우리말성경,11 너희가 붙잡혀 가서 재판을 받게 될 때에 무슨 말을 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라. 때에 맞게 너희에게 주시는 말만 하면 된다. 말하는 분은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가톨릭성경,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그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영어NIV,11 Whenever you are arrested and brought to trial, do not worry beforehand about what to say. Just say whatever is given you at the time, for it is not you speaking, but the Holy Spirit.

영어NASB,11 “When they arrest you and hand you over, do not worry beforehand about what you are to say, but say whatever is given you in that hour; for it is not you who speak, but it is the Holy Spirit.

영어MSG,11 “When they bring you, betrayed, into court, don’t worry about what you’ll say. When the time comes, say what’s on your heart–the Holy Spirit will make his witness in and through you.

영어NRSV,11 When they bring you to trial and hand you over, do not worry beforehand about what you are to say; but say whatever is given you at that time, for it is not you who speak, but the Holy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ταν δε αγαγωσιν υμας παραδιδοντες μη προμεριμνατε τι λαλησητε μηδε μελετατε αλλ ο εαν δοθη υμιν εν εκεινη τη ωρα τουτο λαλειτε ου γαρ εστε υμεις οι λαλουντες αλλα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라틴어Vulgate,11 et cum duxerint vos tradentes nolite praecogitare quid loquamini sed quod datum vobis fuerit in illa hora id loquimini non enim estis vos loquentes sed Spiritus Sanctus

히브리어Modern,11 וכאשר יוליכו ומסרו אתכם אל תדאגו ואל תחשבו מה תדברו כי הדבר אשר ינתן לכם בשעה ההיא אותו דברו יען לא אתם הם המדברים כי אם רוח הקדש׃

성 경: [막13:11]

제자들이 체포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질 때에 변명하기 위해서 염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담대하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움이 꼭 석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파라도세이 데 아델포스 아델폰 에이스 다나톤 카이 파테르 테크논 카이 에파나스테손타이 테크나 에피 고네이스 카이 다나토수신 아우투스

개역개정,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새번역,12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우리말성경,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배신해 죽게 내어 줄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배역해 죽게 만들 것이다.

가톨릭성경,12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영어NIV,12 “Brother will betray brother to death, and a father his child. Children will rebel against their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영어NASB,12 “Brother will betray brother to death, and a father his child; and children will rise up against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영어MSG,12 “It’s going to be brother killing brother, father killing child, children killing parents.

영어NRSV,12 Brother will betray brother to death, and a father his child, and children will rise against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헬라어신약Stephanos,12 παραδωσει δε αδελφος αδελφον εις θανατον και πατηρ τεκνον και επαναστησονται τεκνα επι γονεις και θανατωσουσιν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2 tradet autem frater fratrem in mortem et pater filium et consurgent filii in parentes et morte adficient eos

히브리어Modern,12 ואח ימסר את אחיו למות ואב את בנו וקמו בנים באבותם והמיתו אותם׃

성 경: [막13:12-13]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이며, 또한 가까운 자기의 친척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매우 심각하여 가족들이 서로 대적자들에게 넘겨 줄 것이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예수를 위한 충성 때문에 박해로 고통 당하는 로마에 잇는 마가의 독자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고통을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와 변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게 될 때 더 한층 그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게 된다.

카이 에세스데 미수메노이 휘포 판톤 디아 토 오노마 무 호 데 휘포메이나스 에이스 텔로스 후토스 소데세타이

개역개정,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새번역,13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3 모든 사람들이 나로 인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3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영어NIV,13 All men will hate you because of me, but h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영어NASB,13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the one who endures to the end, he will be saved.

영어MSG,13 There’s no telling who will hate you because of me. “Stay with it–that’s what is required. Stay with it to the end. You won’t be sorry; you’ll be saved.

영어NRSV,13 and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the one who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εσεσθε μισουμενοι υπο παντων δια το ονομα μου ο δε υπομεινας εις τελος ουτος σω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13 et eritis odio omnibus propter nomen meum qui autem sustinuerit in finem hic salvus erit

히브리어Modern,13 והייתם שנואים לכל אדם למען שמי והמחכה עד עת קץ הוא יושע׃

호탄 데 이데테 토 브델뤼그마 테스 에레모세오스 헤스테코타 호푸 우 데이 호 아나기노스콘 노에이토 토테 호이 엔 테 유다이아 퓨게토산 에이스 타 오레

개역개정,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새번역,14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 ㉡단 9:27; 11:31; 12:11

우리말성경,14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읽는 사람들은 깨달아라) 유대에 있는 사람은 산으로 도망가라. 단9:27;단11:31;단12:11

가톨릭성경,14 “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라.

영어NIV,14 “When you see ‘the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standing where it does not belong–let the reader understand–then let those who are in Judea flee to the mountains.

영어NASB,14 “But when you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tanding where it should not be (let the reader understand), then those who are in Judea must flee to the mountains.

영어MSG,14 “But be ready to run for it when you see the monster of desecration set up where it should never be. You who can read, make sure you understand what I’m talking about. If you’re living in Judea at the time, run for the hills;

영어NRSV,14 “But when you see the desolating sacrilege set up where it ought not to be (let the reader understand), then those in Judea must flee to the mountain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ταν δε ιδητε το βδελυγμα της ερημωσεως το ρηθεν υπο δανιηλ του προφητου εστος οπου ου δει ο αναγινωσκων νοειτω τοτε οι εν τη ιουδαια φευγετωσαν εις τα ορη

라틴어Vulgate,14 cum autem videritis abominationem desolationis stantem ubi non debet qui legit intellegat tunc qui in Iudaea sunt fugiant in montes

히브리어Modern,14 וכי תראו את שקוץ משמם הנאמר ביד דניאל הנביא עמד במקום אשר לא לו הקורא יבין אז נוס ינוסו אנשי יהודה אל ההרים׃

성 경: [막13:14]

“가증한 것”이란 말은 원래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가증스러운 일들”을 가리켰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표현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그 대상이 너무 가증하여 성전을 버리게 하고 황폐케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은 그 예언이 또 한 번 성취될 것을, 즉 A. D. 70년의 성전 모독과 파괴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즉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들이 이같은 성전 모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베뢰아 요단강을 건너 산으로 도망하라는 신호이다. 요세프스는 A.D. 67-68년에 유대 열심당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점령하고 침략자 파니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가증한 것”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서 있지 못할 곳에 서 있는 장래의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호 데 에피 투 도마토스 메 카타바토 에이스 텐 오이키안 메데 에이셀데토 아라이 티 에크 테스 오이키아스 아우투

개역개정,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새번역,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제 집 안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들어가지도 말아라.

우리말성경,15 자기 집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거기서 내려오지 말고 물건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가톨릭성경,15 옥상에 있는 이는 내려가지도 말고 무엇을 꺼내러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마라.

영어NIV,15 Let no one on the roof of his house go down or enter the house to take anything out.

영어NASB,15 “The one who is on the housetop must not go down, or go in to get anything out of his house;

영어MSG,15 if you’re working in the yard, don’t go back to the house to get anything;

영어NRSV,15 the one on the housetop must not go down or enter the house to take anything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 δε επι του δωματος μη καταβατω εις την οικιαν μηδε εισελθετω αραι τι εκ της οικι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5 et qui super tectum ne descendat in domum nec introeat ut tollat quid de domo sua

히브리어Modern,15 ואשר על הגג אל ירד הביתה ואל יבא פנימה לשאת דבר מביתו׃

성 경: [막13:15-18]

이러한 위기가 일어날 때에 자기 집의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지려고 결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자들도 추운 밤 공기를 막아 주는 겉옷을 가지려고 다른 밭이나 집으로 가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하에서 도망가야만 하는 아이 밴 여자와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동정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강물이 많이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될 우기인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카이 호 에이스 톤 아그론 메 에피스트렢사토 에이스 타 오피소 아라이 토 히마티온 아우투

개역개정,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새번역,16 들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말아라.

우리말성경,16 들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돌아가지 말라.

가톨릭성경,16 들에 있는 이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마라.

영어NIV,16 Let no one in the field go back to get his cloak.

영어NASB,16 and the one who is in the field must not turn back to get his coat.

영어MSG,16 if you’re out in the field, don’t go back to get your coat.

영어NRSV,16 the one in the field must not turn back to get a coat.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ο εις τον αγρον ων μη επιστρεψατω εις τα οπισω αραι το ιματι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16 et qui in agro erit non revertatur retro tollere vestimentum suum

히브리어Modern,16 ואשר בשדה אל ישב הביתה לשאת מלבושו׃

우아이 데 타이스 엔 가스트리 에쿠사이스 카이 타이스 델라주사이스 엔 에케이나이스 타이스 헤메라이스

개역개정,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새번역,17 그 날에는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우리말성경,17 임신한 여인들이나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는 그날들이 얼마나 끔찍할지 모른다.

가톨릭성경,17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영어NIV,17 How dreadful it will be in those days for pregnant women and nursing mothers!

영어NASB,17 “But woe to those who are pregnant and to those who are nursing babies in those days!

영어MSG,17 Pregnant and nursing mothers will have it especially hard.

영어NRSV,17 Woe to those who are pregnant and to those who are nursing infants in those day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υαι δε ταις εν γαστρι εχουσαις και ταις θηλαζουσαις εν εκειναις ταις ημεραις

라틴어Vulgate,17 vae autem praegnatibus et nutrientibus in illis diebus

히브리어Modern,17 ואוי להרות ולמיניקות בימים ההמה׃

프로슈케스데 데 히나 메 게네타이 헤 퓌게 휘몬 케이모노스

개역개정,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새번역,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우리말성경,18 이런 일이 겨울에 닥치지 않도록 기도하라.

가톨릭성경,18 그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영어NIV,18 Pray that this will not take place in winter,

영어NASB,18 “But pray that it may not happen in the winter.

영어MSG,18 Hope and pray this won’t happen in the middle of winter.

영어NRSV,18 Pray that it may not be in winter.

헬라어신약Stephanos,18 προσευχεσθε δε ινα μη γενηται η φυγη υμων χειμωνος

라틴어Vulgate,18 orate vero ut hieme non fiant

히브리어Modern,18 אך התפללו אשר לא תהיה מנוסתכם בחרף׃

에손타이 가르 하이 헤메라이 에케이나이 들맆시스 호이아 우 게고넨 토이아우테 앞 아르케스 크티세오스 헤스 에크티센 호 데오스 헤오스 투 뉜 카이 우 메 게네타이

개역개정,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새번역,19 그 날에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9 그때가 환난의 날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환난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지금까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9 그 무렵에 환난이 닥칠 터인데, 그러한 환난은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창조 이래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어NIV,19 because those will be days of distress unequaled from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world, until now–and never to be equaled again.

영어NASB,19 “For those days will be a time of tribulation such as has not occurr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which God created until now, and never will.

영어MSG,19 “These are going to be hard days–nothing like it from the time God made the world right up to the present. And there’ll be nothing like it again.

영어NRSV,19 For in those days there will be suffering, such as has not been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that God created until now, no, and never will be.

헬라어신약Stephanos,19 εσονται γαρ αι ημεραι εκειναι θλιψις οια ου γεγονεν τοιαυτη απ αρχης κτισεως ης εκτισεν ο θεος εως του νυν και ου μη γενηται

라틴어Vulgate,19 erunt enim dies illi tribulationes tales quales non fuerunt ab initio creaturae quam condidit Deus usque nunc neque fient

히브리어Modern,19 כי הימים ההם יהיו עת צרה אשר לא נהיתה כמוה מראשית הבריאה אשר ברא אלהים עד עתה וכמוה לא תהיה עוד׃

성 경: [막13:19]

그들이 급하게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다행히도 도망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재난의 날들이 없었고 결코 또다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재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에도 해당되지만 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을 넘어서 재림에 앞서 있을 마지막 대환란 이기도 한 것이다.

카이 에이 메 퀴리오스 에콜로보센 타스 헤메라스 우크 안 에소데 파사 사릌스 알라 디아 투스 에클렠투스 후스 엨셀렠사토 에콜로보센 타스 헤메라스

개역개정,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새번역,20 주님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셨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셨다.

우리말성경,20 주께서 그날들을 줄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그날들을 줄여 주셨다.

가톨릭성경,20 주님께서 그 날수를 줄여 주지 않으셨으면, 어떠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몸소 선택하신 이들을 위하여 그 날수를 줄여 주셨다.

영어NIV,20 If the Lord had not cut short those days, no one would survive. But for the sake of the elect, whom he has chosen, he has shortened them.

영어NASB,20 “Unless the Lord had shortened those days, no life would have been saved; but for the sake of the elect, whom He chose, He shortened the days.

영어MSG,20 If he let the days of trouble run their course, nobody would make it. But because of God’s chosen people, those he personally chose, he has already intervened.

영어NRSV,20 And if the Lord had not cut short those days, no one would be saved; but for the sake of the elect, whom he chose, he has cut short those days.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ει μη κυριος εκολοβωσεν τας ημερας ουκ αν εσωθη πασα σαρξ αλλα δια τους εκλεκτους ους εξελεξατο εκολοβωσεν τας ημερας

라틴어Vulgate,20 et nisi breviasset Dominus dies non fuisset salva omnis caro sed propter electos quos elegit breviavit dies

히브리어Modern,20 ולולי קצר יהוה את הימים ההם לא יושע כל בשר אך למען הבחירים אשר בחר בם קצר את הימים׃

성 경: [막13:20]

“만약 주께서 그이 구언 계획 속에서 이미 결정된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13:13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택하신 그 택한 자들 때문에 마지막 때 환난 기간을 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A.D. 70년에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지막 때의 대환란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카이 토테 에안 티스 휘민 에이페 이두 호 크리스토스 헤 이두 에케이 메 피스튜세테

개역개정,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새번역,21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보아라,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우리말성경,21 그때 누가 너희에게 ‘보라! 여기 그리스도가 있다!’, ‘보라!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고 해도 믿지 말라.

가톨릭성경,21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 보아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 보아라, 저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영어NIV,21 At that time if anyone says to you, ‘Look, here is the Christ!’ or, ‘Look, there he is!’ do not believe it.

영어NASB,21 “And then if anyone says to you, ‘Behold, here is the Christ’; or, ‘Behold, He is there’; do not believe him;

영어MSG,21 “If anyone tries to flag you down, calling out, ‘Here’s the Messiah!’ or points, ‘There he is!’ don’t fall for it.

영어NRSV,21 And if anyone says to you at that time, ‘Look! Here is the Messiah!’ or ‘Look! There he is!’–do not belie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τοτε εαν τις υμιν ειπη ιδου ωδε ο χριστος η ιδου εκει μη πιστευσητε

라틴어Vulgate,21 et tunc si quis vobis dixerit ecce hic est Christus ecce illic ne credideritis

히브리어Modern,21 ואז אם יאמר איש אליכם הנה פה המשיח או הנהו שם אל תאמינו׃

성 경: [막13:21-22]

“그 때에” 즉 심한 고통과 도망하는 그날 중에 만약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에 혹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여도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말고 계속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에게르데손타이 가르 프슈도크리스토이 카이 프슈도프로페타이 카이 도수신 세메이아 카이 테라타 프로스 토 아포플라난 에이 뒤나톤 카이 투스 에클렠투스

개역개정,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새번역,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 ㉣또는 ‘메시아들’

우리말성경,22 가짜 그리스도들과 가짜 예언자들이 나타나 표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가능한 한 택함받은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영어NIV,22 For false Christs and false prophets will appear and perform signs and miracles to deceive the elect–if that were possible.

영어NASB,22 for false Christs and false prophets will arise, and will show signs and wonders, in order to lead astray, if possible, the elect.

영어MSG,22 Fake Messiahs and lying preachers are going to pop up everywhere. Their impressive credentials and dazzling performances will pull the wool over the eyes of even those who ought to know better.

영어NRSV,22 False messiahs and false prophets will appear and produce signs and omens, to lead astray, if possible, the elect.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γερθησονται γαρ ψευδοχριστοι και ψευδοπροφηται και δωσουσιν σημεια και τερατα προς το αποπλαναν ει δυνατον και τους εκλεκτους

라틴어Vulgate,22 exsurgent enim pseudochristi et pseudoprophetae et dabunt signa et portenta ad seducendos si potest fieri etiam electos

히브리어Modern,22 כי יקומו משיחי שקר ונביאי שקר ונתנו אתות ומופתים להתעות אף את הבחירים אם יוכלו׃

휘메이스 데 블레페테 이두 프로에이레카 휘민 판타

개역개정,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새번역,23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여 둔다.”

우리말성경,23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라. 그때가 오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미리 일러두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3 그러니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

영어NIV,23 So be on your guard; I have told you everything ahead of time.

영어NASB,23 “But take heed; behold, I have told you everything in advance.

영어MSG,23 So watch out. I’ve given you fair warning.

영어NRSV,23 But be alert; I have already told you every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23 υμεις δε βλεπετε ιδου προειρηκα υμιν παντα

라틴어Vulgate,23 vos ergo videte ecce praedixi vobis omnia

히브리어Modern,23 ואתם ראו הנה מראש הגדתי לכם את כל׃

성 경: [막13: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날에 거짓 함정에 바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다시 교훈하셨다.

알 엔 에케이나이스 타이스 헤메라이스 메타 텐 들맆신 에케이넨 호 헬리오스 스코티스데세타이 카이 헤 셀레네 우 도세이 토 펭고스 아우테스

개역개정,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새번역,24 “그러나 그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 ㉤사 13:10; 34:4

우리말성경,24 ‘그러나 환난이 지나가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며

가톨릭성경,24 “ 그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영어NIV,24 “But in those days, following that distress, “‘the sun will be darkened, and the moon will not give its light;

영어NASB,24 “But in those days, after that tribulation, THE SUN WILL BE DARKENED AND THE MOON WILL NOT GIVE ITS LIGHT,

영어MSG,24 “Following those hard times, Sun will fade out, moon cloud over,

영어NRSV,24 “But in those days, after that suffering, the sun will be darkened, and the moon will not give its light,

헬라어신약Stephanos,24 αλλ εν εκειναις ταις ημεραις μετα την θλιψιν εκεινην ο ηλιος σκοτισθησεται και η σεληνη ου δωσει το φεγγος αυτης

라틴어Vulgate,24 sed in illis diebus post tribulationem illam sol contenebrabitur et luna non dabit splendorem suum

히브리어Modern,24 והיה בימים ההם אחרי הצרה ההיא תחשך השמש והירח לא יגיה אורו׃

성 경: [막13:24-25]

“그러나”라는 말이 기적적인 이적들을 베푸는 거짓 메시야의 출현과 재난 이후의 때에 참 메시야의 극적인 오심 사이에 뚜렷한 대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표현은 14-23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리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무질서가 바로 재림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예수는 정확하게 어느 한 편의 구절만 인용하지 않고 이사야 13:10과 34:4 둘 다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천체 변화를 언급하신 것이다.

카이 호이 아스테레스 투 우라누 에손타이 카이 하이 뒤나메이스 하이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살류데손타이

개역개정,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새번역,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우리말성경,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무너질 것이다.’ 사13:10;사34:4

가톨릭성경,25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영어NIV,25 the stars will fall from the sky, and the heavenly bodies will be shaken.’

영어NASB,25 AND THE STARS WILL BE FALLING from heaven, and the powers that are in the heavens will be shaken.

영어MSG,25 Stars fall out of the sky, cosmic powers tremble.

영어NRSV,25 and the stars will be falling from heaven, and the powers in the heavens will be shaken.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οι αστερες του ουρανου εσονται εκπιπτοντες και αι δυναμεις αι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 σαλευ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25 et erunt stellae caeli decidentes et virtutes quae sunt in caelis movebuntur

히브리어Modern,25 והכוכבים יפלו מן השמים וכחות השמים יתמוטטו׃

카이 토테 옾손타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에르코메논 엔 네펠라이스 메타 뒤나메오스 폴레스 카이 돜세스

개역개정,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새번역,26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말성경,26 그때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가톨릭성경,26 그때에 ‘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영어NIV,26 “At that time men wi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clouds with great power and glory.

영어NASB,26 “Then they wi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CLOUDS with great power and glory.

영어MSG,26 “And then they’ll see the Son of Man enter in grand style, his Arrival filling the sky–no one will miss it!

영어NRSV,26 Then they wi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clouds’ with great power and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τοτε οψονται τον υιον του ανθρωπου ερχομενον εν νεφελαις μετα δυναμεως πολλης και δοξης

라틴어Vulgate,26 et tunc videbunt Filium hominis venientem in nubibus cum virtute multa et gloria

히브리어Modern,26 ואז יראו את בן האדם בא בעננים בגבורה רבה ובכבוד׃

성 경: [막13:26]

방금 언급한 우주적인 사건이 발생한 그 때에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신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능을 행하실 것이며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카이 토테 아포스텔레이 투스 앙겔루스 아우투 카이 에피쉬낰세이 투스 에클렠투스 아우투 에크 톤 테싸론 아네몬 앞 아크루 게스 헤오스 아크루 우라누

개역개정,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새번역,27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7 그때에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 택함받은 사람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영어NIV,27 And he will send his angels and ga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the ends of the heavens.

영어NASB,27 “And then He will send forth the angels, and will gather toge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the farthest end of the earth to the farthest end of heaven.

영어MSG,27 He’ll dispatch the angels; they will pull in the chosen from the four winds, from pole to pole.

영어NRSV,27 Then he will send out the angels, and ga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the ends of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τοτε αποστελει τους αγγελους αυτου και επισυναξει τους εκλεκτους αυτου εκ των τεσσαρων ανεμων απ ακρου γης εως ακρου ουρανου

라틴어Vulgate,27 et tunc mittet angelos suos et congregabit electos suos a quattuor ventis a summo terrae usque ad summum caeli

히브리어Modern,27 ואז ישלח את מלאכיו ויקבץ את בחיריו מארבע הרוחות מקצה הארץ עד קצה השמים׃

성 경: [막13:27]

또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이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언급은 없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란 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아포 데 테스 쉬케스 마데테 텐 파라볼렌 호탄 아우테스 에데 호 클라도스 하팔로스 게네타이 카이 엨퓌에 타 퓔라 기노스케테 호티 엥귀스 토 데로스 에스틴

개역개정,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새번역,28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우리말성경,28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새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안다.

가톨릭성경,28 “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영어NIV,28 “Now learn this lesson from the fig tree: As soon as its twigs get tender and its leaves come out, you know that summer is near.

영어NASB,28 “Now learn the parable from the fig tree: when its branch has already become tender and puts forth its leaves, you know that summer is near.

영어MSG,28 “Take a lesson from the fig tree. From the moment you notice its buds form, the merest hint of green, you know summer’s just around the corner.

영어NRSV,28 “From the fig tree learn its lesson: as soon as its branch becomes tender and puts forth its leaves, you know that summer is near.

헬라어신약Stephanos,28 απο δε της συκης μαθετε την παραβολην οταν αυτης ηδη ο κλαδος απαλος γενηται και εκφυη τα φυλλα γινωσκετε οτι εγγυς το θερ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28 a ficu autem discite parabolam cum iam ramus eius tener fuerit et nata fuerint folia cognoscitis quia in proximo sit aestas

히브리어Modern,28 למדו נא את משל התאנה כשירטב ענפה ופרח עלה ידעתם כי קרוב הקיץ׃

성 경: [막13:28]

제자들이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기에서 그런 의미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후토스 카이 휘메이스 호탄 타우타 이데테 기노메나 기노스케테 호티 엥귀스 에스틴 에피 뒤라이스

개역개정,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새번역,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우리말성경,29 이와 같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때가 바로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라.

가톨릭성경,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영어NIV,29 Even so, when you see these things happening, you know that it is near, right at the door.

영어NASB,29 “Even so, you too, when you see these things happening, recognize that He is near, right at the door.

영어MSG,29 And so it is with you. When you see all these things, you know he is at the door.

영어NRSV,29 So also, when you see these things taking place, you know that he is near, at the very gates.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υτως και υμεις οταν ταυτα ιδητε γινομενα γινωσκετε οτι εγγυς εστιν επι θυραις

라틴어Vulgate,29 sic et vos cum videritis haec fieri scitote quod in proximo sit in ostiis

히브리어Modern,29 כן אף אתם בראתכם כי היו כל אלה דעו כי קרוב הוא לפתח׃

성 경: [막13:29]

이 절은 28절의 교훈을 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너희 제자들은 14-23절에 언급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임박한 위기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박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레고 휘민 호티 우 메 파렐데 헤 게네아 하우테 메크리스 후 판타 타우타 게네타이

개역개정,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새번역,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우리말성경,30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가톨릭성경,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영어NIV,30 I tell you the truth, this generation will certainly not pass away until all these things have happened.

영어NASB,30 “Truly I say to you, this generation will not pass away until all these things take place.

영어MSG,30 Don’t take this lightly. I’m not just saying this for some future generation, but for this one, too–these things will happen.

영어NRSV,30 Truly I tell you, this generation will not pass away until all these things have taken place.

헬라어신약Stephanos,30 αμην λεγω υμιν οτι ου μη παρελθη η γενεα αυτη μεχρις ου παντα ταυτα γενηται

라틴어Vulgate,30 amen dico vobis quoniam non transiet generatio haec donec omnia ista fiant

히브리어Modern,30 אמן אמר אני לכם לא יעבר הדור הזה עד אשר יהיו כל אלה׃

성 경: [막13:30-31]

엄숙한 서론적인 말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한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말씀들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씀은 영원히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의 말씀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호 우라노스 카이 헤 게 파렐류손타이 호이 데 로고이 무 우 메 파렐도신

개역개정,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새번역,31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1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가 한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어NIV,31 Heaven and earth will pass away, but my words will never pass away.

영어NASB,31 “Heaven and earth will pass away, but My words will not pass away.

영어MSG,31 Sky and earth will wear out; my words won’t wear out.

영어NRSV,31 Heaven and earth will pass away, but my words will not pass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 ουρανος και η γη παρελευσονται οι δε λογοι μου ου μη παρελθωσιν

라틴어Vulgate,31 caelum et terra transibunt verba autem mea non transibunt

히브리어Modern,31 השמים והארץ יעברו ודברי לא יעברון׃

페리 데 테스 헤메라스 에케이네스 카이 테스 호라스 우데이스 오이덴 우데 호이 앙겔로이 호이 엔 우라노 우데 호 휘오스 에이 메 파테르

개역개정,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새번역,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우리말성경,32 그 날짜와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가톨릭성경,32 “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영어NIV,32 “No one knows about that day or hour,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영어NASB,32 “But of that day or hour no one knows,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the Father alone.

영어MSG,32 “But the exact day and hour? No one knows that, not even heaven’s angels, not even the Son. Only the Father.

영어NRSV,32 “But about that day or hour no one knows,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헬라어신약Stephanos,32 περι δε της ημερας εκεινης και της ωρας ουδεις οιδεν ουδε οι αγγελοι οι εν ουρανω ουδε ο υιος ει μη ο πατηρ

라틴어Vulgate,32 de die autem illo vel hora nemo scit neque angeli in caelo neque Filius nisi Pater

히브리어Modern,32 אך עת בוא היום ההוא והשעה ההיא אין איש יודע אותה גם לא מלאכי השמים גם לא הבן מבלעדי האב׃

성 경: [막13:32]

비록 위기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식별해 낼 수 있으나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예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블레페테 아그륖네이테 카이 프로슈케스데 우크 오이다테 가르 포테 호 카이로스 에스틴

개역개정,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새번역,33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깨어서 기도하여라’

우리말성경,33 정신을 바짝 차리라! 항상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 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영어NIV,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at time will come.

영어NASB,33 “Take heed, keep on the alert; for you do not know when the appointed time will come.

영어MSG,33 So keep a sharp lookout, for you don’t know the timetable.

영어NRSV,33 Beware, keep alert; for you do not know when the time will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33 βλεπετε αγρυπνειτε και προσευχεσθε ουκ οιδατε γαρ ποτε ο καιρ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33 videte vigilate et orate nescitis enim quando tempus sit

히브리어Modern,33 ראו שקדו והתפללו כי לא ידעתם מתי תהיה העת׃

성 경: [막13:33]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라고 거듭 훈계하셨다.

호스 안드로포스 아포데모스 아페이스 텐 오이키안 아우투 카이 두스 토이스 둘로이스 아우투 텐 엨수시안 카이 헤카스토 토 에르곤 아우투 카이 토 뒤로로 에네테일라토 히나 그레고레

개역개정,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새번역,34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우리말성경,34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이 집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자기 문지기에게 집을 잘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가톨릭성경,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영어NIV,34 It’s like a man going away: He leaves his house and puts his servants in charge, each with his assigned task, and tells the one at the door to keep watch.

영어NASB,34 “It is like a man away on a journey, who upon leaving his house and putting his slaves in charge, assigning to each one his task, also commanded the doorkeeper to stay on the alert.

영어MSG,34 It’s like a man who takes a trip, leaving home and putting his servants in charge, each assigned a task, and commanding the gatekeeper to stand watch.

영어NRSV,34 It is like a man going on a journey, when he leaves home and puts his slaves in charge, each with his work, and commands the doorkeeper to be on the watch.

헬라어신약Stephanos,34 ως ανθρωπος αποδημος αφεις την οικιαν αυτου και δους τοις δουλοις αυτου την εξουσιαν και εκαστω το εργον αυτου και τω θυρωρω ενετειλατο ινα γρηγορη

라틴어Vulgate,34 sicut homo qui peregre profectus reliquit domum suam et dedit servis suis potestatem cuiusque operis et ianitori praecipiat ut vigilet

히브리어Modern,34 והיה כאיש הולך למרחק אשר עזב את ביתו ויתן שלטן לעבדיו ולאיש איש את מלאכתו וגם את השוער צוה לשקד׃

성 경: [막13:34-37]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는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는 비유를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레고레이테 운 우크 오이다테 가르 포테 호 퀴리오스 테스 오이키아스 에르케타이 옾세 에 메소뉰티우 에 알렠토로포니아스 에 프로이

개역개정,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새번역,35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5 그러므로 너희는 항상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곧 저녁이 될지, 한밤이 될지, 새벽이 될지, 아침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영어NIV,35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when the owner of the house will come back–whether in the evening, or at midnight, or when the rooster crows, or at dawn.

영어NASB,35 “Therefore, be on the alert–for you do not know when the master of the house is coming, whether in the evening, at midnight, or when the rooster crows, or in the morning–

영어MSG,35 So, stay at your post, watching. You have no idea when the homeowner is returning, whether evening, midnight, cockcrow, or morning.

영어NRSV,35 Therefore, keep awake–for you do not know when the master of the house will come, in the evening, or at midnight, or at cockcrow, or at dawn,

헬라어신약Stephanos,35 γρηγορειτε ουν ουκ οιδατε γαρ ποτε ο κυριος της οικιας ερχεται οψε η μεσονυκτιου η αλεκτοροφωνιας η πρωι

라틴어Vulgate,35 vigilate ergo nescitis enim quando dominus domus veniat sero an media nocte an galli cantu an mane

히브리어Modern,35 לכן שקדו כי לא ידעתם מתי יבוא בעל הבית אם לעת ערב או בחצות הלילה אם בעת קריאת הגבר או בבקר׃

메 엘돈 엨사이프네스 휴레 휘마스 카듀돈타스

개역개정,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새번역,36 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우리말성경,36 그가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가톨릭성경,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영어NIV,36 If he comes suddenly, do not let him find you sleeping.

영어NASB,36 in case he should come suddenly and find you asleep.

영어MSG,36 You don’t want him showing up unannounced, with you asleep on the job.

영어NRSV,36 or else he may find you asleep when he comes suddenly.

헬라어신약Stephanos,36 μη ελθων εξαιφνης ευρη υμας καθευδοντας

라틴어Vulgate,36 ne cum venerit repente inveniat vos dormientes

히브리어Modern,36 פן יבוא פתאם ומצא אתכם ישנים׃

하 데 휘민 레고 파신 레고 그레고레이테

개역개정,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새번역,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우리말성경,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깨어 있으라!’”

가톨릭성경,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영어NIV,37 What I say to you, I say to everyone: ‘Watch!'”

영어NASB,37 “What I say to you I say to all, ‘Be on the alert!'”

영어MSG,37 I say it to you, and I’m saying it to all: Stay at your post. Keep watch.”

영어NRSV,37 And what I say to you I say to all: Keep awake.”

헬라어신약Stephanos,37 α δε υμιν λεγω πασιν λεγω γρηγορειτε

라틴어Vulgate,37 quod autem vobis dico omnibus dico vigilate

히브리어Modern,37 ואת אשר אמרתי לכם אמר אני לכל שקד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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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3장 주석

마가복음13장

13:1-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성전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어 감격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네가 이 성전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감동이 되느냐 이 성전은 조금 후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리라”고 말씀 해 주셨다. 제자들은 감동할만한 가치도 없는 것에 감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있는 지” 묻고 계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기에 좋은 것에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보았을 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먹었다. 만일 그 열매가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성전을 보고 감탄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이상의 성전을 건축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서 풍요로움을 보았지만 다가오는 심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향락에 도취 되어 살았고, 롯은 소돔에서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그들 가운데 있는 악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을 때 그도 함께 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실패는 이처럼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주님은 성전의 외적 모습만을 보고 감격하고 있는 제자들이 이런 실패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성전은 참으로 감탄할만한 곳이었다. 헤롯이 지은 이 성전은 뛰어난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다. 이 성전은 모리아 산 위에 세어졌고 그 성전의 기초는 육중한 석조 벽을 쌓아올려 일종의 광대한 단을 형성했다. 이 단 위에 세워진 돌기둥들은 가로 13미터, 세로 6미터 높이 4미터였다. 성전 정면 바깥쪽은 황금 판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때는 빛이 반사되어 매우 아름다운 광채를 발했지만, 멀리서보면 금박을 입히지 않은 부분은 매우 하얗게 보였기 때문에 마치 눈 덮인 산과 같이 보였다고 한다. 헤롯은 이 성전을 46년 동안 지어졌지만 예수님 당시까지도 완성 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갈릴리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런 웅장한 성전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었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성전 건물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은 다만 철거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빈집과 같이 무가치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람의 눈에는 위대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주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볼 때 주님이 보시는 것처럼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청하신다. 우리가 그토록 감탄하고 있는 것들이, 그토록 부러워하고 있는 것들이, 그토록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그토록 누리고 싶은 것들이 주님께서도 우리가 보는 것처럼 보기에 좋으신 것일까?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가 보기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묻고 계신 것이다.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무엇을 볼 수 있느냐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지금 무엇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지 묻고 계시다. 헤롯은 46년 동안 세계에서 뛰어난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인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가 건축한 이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여 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일생동안 수고하여 지은 집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것이라면 우리의 수고는 헛될 것이며 또한 우리의 삶 자체가 낭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반복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능력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헤롯의 마음에 있는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욕망에 이끌려 서로 경쟁하며 사막에 피라밋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고 정글 속에 웅장한 신전들을 세우고, 도시마다 수많은 사원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일생을 수고함으로 이루어 놓은 이것들이 결국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여 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의 전기(轉機)를 맞게 된다.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일화를 알고 있다. 그는 중세 철학과 신학의 거장으로서 교회와 동료들의 기대 가운데 카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신학대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러나 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던 이 책을 어느 날 갑자기 중단함으로 그 책은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가 집필하던 것은 도중에 그만둔 것은 미사 중에 본 계시로 인하여 자신이 저술하고 있는 일은 마치 지푸라기처럼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이나가키 료오스케, 토마스 아퀴나스, 새남, 1995, P163). 토마스에게 일어났던 예를 우리는 바울의 삶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에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자랑할 만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 후 그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을 해로 여겼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이라(빌3:7,8)” 언급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변화는 그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로부터 “그 일이 참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가?”로 바꾸어 졌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이처럼 그들에게 시각이 변했을 때 그들의 삶도 변한 것이다. 만일 우리도 그들처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바꾸어진다면 일생동안 지푸라기 같은 것을 위하여 힘을 다해 수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일들은 어떤 것들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세 가지 영원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사랑이고 구원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크고 위대한 일을 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일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에 전심할 것이다. 즉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되, 그 일이 세상에 사랑을 보다 더 풍성히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이라는 의미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일도 바로 이와 같은 일들이다. 주님은 헤롯처럼 불가사의한 성전을 지으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상아탑(象牙塔)을 쌓으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허락된 환경에서 요청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심으로 바로 그 일을 통하여 세상에 사랑이 더 풍성해 지도록 하셨고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이끌어 주는 일을 하셨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위대해 지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어 세운 모든 바벨탑들은 모두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막 가운데 세운 웅장한 피라밋도, 정글에 세운 거대한 신전들도, 그리고 대도시마다 세워진 불가사의한 수많은 건축물들도 시간이 더해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웅장했던 건축물들 가운데는 이미 폐허되어 돌기둥 몇 개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벽돌 조각들만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세우신 집은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견고히 서가고 있다. 우리는 필립부룩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한다. “이제까지 진군한 모든 육군과 이제까지 편성되었던 모든 해군과 이제까지 의회에 참석하였던 모든 의원들과 그리고 이제까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합쳐 놓아도 이 고독했던 생애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 만큼 능력 있게 이 지상에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준 분은 없습니다”

주님은 성전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묻고 계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막13:3-13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제자들은 주님께서 성전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한 시간에 주님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 물었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종말의 증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즉 세상의 마지막 때 나타날 징조로서 미혹이 있을 것이고(13:5), 각처로부터 난리의 소문이 들려 올 것이고(13:7,8), 기근이 있을 것이고(13:8),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이고(13:9,13),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있을 것이고(13:12), 만국에 복음이 증거 될 것이다(13:10). 그러나 정확한 시기는 오직 성령님만 아신다(13:11).

특별히 제자들의 주된 관심이었던 종말에 대한 시기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할 때,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종말을 자신들의 생애 동안에 임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종말이 자신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임할 것으로 믿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이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성경이 거짓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성경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이 종말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분명히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고 있었다. 사도들이 주님께 “때와 시기”에 대하여 물었을 때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이 자신들의 생애 어는 날인가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하고 물었을 것이다(마24:3,행1:6).

실제로 이런 종말에 대한 임박 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과 신앙에 많은 문제점을 주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종말과 관련하여 갖게 된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쓴 서신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지만 재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믿음의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재림 전에 죽은 믿음의 형제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신앙의 문제를 가지게 되었고(살전4:13-18), 또한 그들 중에 일부는 종말에 대한 그릇된 신앙으로 인하여 규모 없는 생활을 하였다(살후3:6-15). 이처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것이다. 사도들조차 처음에는 주님께서 곧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체 될수록 그들은 종말의 시기에 대하여 숙고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임박한 종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믿음의 여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바르게 지도해 줄 수 있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의 시기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시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주님께서 때와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다음의 몇 가지 개념들 가운데 하나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하루는 우리에게 천년과도 같고 우리에게 하루가 하나님에게는 천년과도 같다는 것이다(벧후3:8).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시간에 대한 개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시간의 개념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심으로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사용하실 때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과는 다를지라도 그 언어를 통하여 전달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류 없이 전달해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시간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실 때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시는지” 주의해 보아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급하시는 시간은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시간이며,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시기”에 관하여 알아야할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마지막 때” 또는 “마지막 날”이라는 말은 주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 사이의 모든 시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바로 그때가 “마지막 때”이었던 것처럼,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마지막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떤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말을 마치 현재만을 의미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처럼 말한다면 그가 무지함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와 시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선지자적 단축법”이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하여 동일한 시점에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이런 것을 “선지자의 단축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때와 시기” 우리가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예들 가운데 하나를 마태복음24, 25장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이 학설들 가운데 하나는 여기에 언급된 내용들이 모두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D.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그 예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상의 종말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표라는 설이고, 마지막은 A.D.70년 예루살렘 멸망뿐만 아니라 종말에 있을 사실적인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언의 말씀에서 시간의 문제는 해결하는 일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언의 말씀에 나타난“ 때와 시기”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려는 호기심에 이끌리기보다는 시간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계시해 주고자 하신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시간에 대하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이다(여기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D.M 로이드 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 선교회, PP122124. 참조).

13:14-23.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의 징조를 말씀하신 후, 그와 같은 징조들 가운데 결정적인 징조를 볼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 날에 대한 결정적인 징조로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말씀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3:14-16)” 주님은 제자들에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우리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도망하라고 말씀하실 때 집에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미련도 두지 말고 즉시 도망하라고 하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그 날에 임할 환란의 극심함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도망하라”는 것은 마지막 때의 환난을 피하기 위하여 취해야 할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때를 알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야 말로 마지막 때를 알리는 결정적인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70인 역의 다니엘12장 11절을 문자적으로 취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우상을 의미하고 그것이 “서지 못할 곳”은 성전을 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은 “우상이 성전에 세워진 것을 보거든”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예언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행위와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 B.C.168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위에 주피터를 위한 제단을 건립하도록 명했기 때문이다. 주석가들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시대의 예표로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드은 이 예언을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과 연관 시켜 해석하고 있다. 70년 9월 26일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들의 군대기를 성역(聖域) 동문 맞은편에 세우고 거기에서 희생제를 드렸다.

주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볼 때 어째서 도망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이후로 극심한 환란이 시작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날의 환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13:17-20)” 그날로부터 시작 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대 환난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만일 이와 같은 환난이 지속 된다면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환난을 피하여 도망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날을 감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날의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특별히 여기 기도하라는 것은 환난의 날에 즉시 피할 수 있도록 방해 되는 모든 환경을 제해 주시도록 구하라는 의미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가 있는 자는 환난의 날에 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고 또한 그 날이 안식일에 임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의 날에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하여 즉시 피하는 일에 방해 받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그날에 거짓 선지지들의 미혹을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다.

13:24-27.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종말에 대한 징조로서 성경은 천지지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24:4-14).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포함하여 하늘에 무서운 징조들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마24:29,30.막13:24,25.눅21:25,26). 이와 같은 때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여기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는 것은 주님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함이다.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주로 오실 때에는 초라한 말구유로 오셨지만 이처럼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중에 오실 것이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볼 것이다. 그 날에 이루어질 또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을 모든 곳으로부터 불러 모으시는 일이다. 주님은 그 날에 있을 또 다른 한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란 모든 곳을 의미한다. 주님은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13;28-37.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24:29-32).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보이면 세상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교훈은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분별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의 사람들 역시 세속화에 휩쓸려 갈 것이다. 특별히 동일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자기 시대에 무감각함으로 멸망 받은 노아의 시대를 예로 들어 교훈 해 주심으로 시대를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 주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도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마24:37,38)”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홍수 심판을 경고하셨지만 아무도 이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노아가 홍수 전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전심했다. 즉 그들은 너무 현실에 집착하여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노아의 식구들 외에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은 홍수의 심판으로 멸망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징조를 보여 주신다. 이 징조를 살피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과 회심과 관련시키고 있다.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언들은 많은 있다(슥12:10,13:1,고후3:15,16,롬11:25-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마8:11-12, 마21:28-32, 21:43, 마22:1-14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상반되는 말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심을 종말의 징조로 볼지라도 그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은 한 개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스라엘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들 각 사람이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한 국가 또는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고 영적 의미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온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독립했다고 하여(1948년), 그것이 재림의 징조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적으로 복음을 믿고 구원받으리라는 기대도 성경적인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림의 징조로서 이스라엘의 회심에 대한 언급 역시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더 많은 사람들 즉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민족적 구별이 없이 하나님께서 구원하도록 예정하신 충분한 수가 구원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여야 할 것이다.

주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알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13:29-33)” 이 모든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알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종말의 때를 알아야 하는가? 종말에 대한 징조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종말의 징조”라는 언어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종말이라는 언어는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것은 고난의 장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나 소망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날이 오늘이 될지 아니면 오랜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언제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뿐만 아니라 재림을 준비하며 살게 될 것이다.

여기 믿음으로 미래를 전망하며 산다는 것은 종말의 징조를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일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말한다. 실례로서 마지막 때가 가까워올 수록 복음이 세상에 넓게 전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계속 전파 될 것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떤 사람들이 과학과 사회 발전을 예를 들며 앞으로 오는 세상은 복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때 일어날 징조에 비춰볼 때 앞으로 사람들은 복음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시대 복음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종말이 가까이 이를수록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가운데 충분한 수가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종말의 징조를 통하여 마지막 때가 가까이 이를수록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적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믿는 자들을 유혹할 것이고 박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종말의 징조들은 우리로 하여금 장래를 예측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믿음의 승리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셨다. 여기 “깨어 있으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는 의미이고(13:34),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한 일을 언제든지 셈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의미다(13:35,36). 그러므로 주님의 “깨어 있으라”는 권고의 말씀은 충성과 관계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마태복음에서는 종말에 대한 마지막 권고로서 충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5,46)” 여기 충성된 종이란 주인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주인이 위임해 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의미한다.

종말에 대한 교훈과 적용에 대하여(막13:3-37를 중심으로)

마가복음13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과 그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리는 징조들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예언과 징조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하나의 예표(豫表)일 뿐이고 실제로 본문은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마가복음13장은 가까이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징조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만 멀리는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 가르침을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큰 원칙을 말씀해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그 가르침이 자신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적용하려 하기 보다는 단순히 그 사건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렸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호기심이 제자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세워지기도 하고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에 대하여 말씀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 그 가르침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는 언제나 함께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지적 관심만 가지고 있고, 적용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 관심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릇 행하였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종말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교훈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지적 호기심은 그들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데 이르렀던 것이다. 종말론에 대한 그릇된 호기심으로 인하여 이단에 빠지게 된 경우라든지, 또는 이와 같은 호기심에 너무 깊이 빠져버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모두 그릇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하여 받게 된 해악들이다. 이런 해악은 종말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표적과 기사 또는 치유 등과 같은 가르침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릇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하여 위험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공통적인 것은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절은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주님은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가? 주님은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만족할만한 지식을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믿는 자들로 하여금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미혹들이 많아질 것이고(13:6), 곳곳에서 전쟁의 소문과 지진과 기근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올 것이고(13:7,8),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것이고(13:9-13),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표적과 이적을 행할 것이고(13:21-23), 천지에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13:24-27) 주님은 이처럼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가 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무지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의 지적 관심을 억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식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에 대한 지적 관심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신앙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삶에 필요한 모든 지적 관심에 대하여 성실해야한다. 만일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제자들처럼 종말에 대한 지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고 또한 신앙생활에서 체험의 문제들 즉 기도응답, 치유, 표적과 기사 등에 대하여 지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성실히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처럼 제자들의 지적 관심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것으로만 만족하시지 않았다. 주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후, 그들에게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13:28,29)”고 말씀하시고 계속하여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13:33)”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얻었다면 그 지식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지하게 살피고 그것을 삶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대한 만족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 지식은 그들에게 생명과 멸망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은 우리에게 생명과 멸망의 길 중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지식이 우리에게 이처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음의 두 가지 방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지식의 중요함을 충분히 가르쳐 주셨다. 하나는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이 지식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들을 통하여 종말을 대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삶을 결단하게 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BC.722년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한 역사적 사건을 대하거나 또는 BC.586년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한 역사적 사건을 대할 때 언제나 갖게 되는 물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것이다. 그들도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과 경고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겠는가”라고 의심하므로 그 날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날을 그처럼 비극으로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장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홀연히 그 날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 그들처럼 비극으로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나간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주시는 교훈과 앞으로 다가올 종말에 대한 예언들은 우리에게 예언의 말씀을 무시했을 때 오는 불행을 보게 해 주고 앞으로 임하게 될 주의 날을 준비하도록 한다. 그러면 주님은 이처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첫째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말씀하셨다.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거짓으로부터 미혹을 받아왔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미혹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어떤 미혹은 마치 주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신앙에서 떠나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필요가 보장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며 영원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세상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진리에 굳게 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미혹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주님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될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되시며 세상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셋째,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도록 말씀하셨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13:33,34)” 여기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라는 말은 우리의 부르심에 깨어 있으라는 의미다. 삶의 주변에 속한 것들에 대하여 주위를 빼앗김으로 삶의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가 받아야할 교훈은 우리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도록 허용해 주신 시간 동안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2020. 8. 24.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강해]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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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나가시다가 이 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을 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A.D.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있겠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의 질문에 주님은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던 내용이 이미 성취된 부분도 있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가 되면 나타날 징조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눈여겨보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1절 카이 에크포류오메누 아우투 에크 투 히에루 레게이 아우토 헤이스 톤 마데톤 아우투 디다스칼레 이데 포타포이 리도이 카이 포타파이 오이코도마이

막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외관상 크게 보이는 것들을 우상화하고 신성시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성전으로 하여금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음에 대해서 노여워하심을 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전 안에 남아 있는 강을 근절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떠났을 때에 그들이 성전의 웅장한 구조에 대하여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그 성전을 사랑하실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나이까?”(1절)하였다.

2절 호 이에수스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우토 블레페이스 타우타스 타스 마갈라스 오이코도마스 우 메 아페데 리도스 에피 리도 호스 우 메 카탈뤼데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외관상으로만 화려하지 진정한 순결미가 결여되었을 때에 귀하게 평가하시지 않으신다. “여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2절). 건물의 화려함에 안전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께서는 그 건물에 동정심을 나타내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귀한 영혼들의 멸망함에 대하여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시었고 그들을 위해서 우셨고 그들에게 대하여 존귀한 평가를 하시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웅장한 건물의 황폐됨에 대해 동정을 나타내심을 볼 수 없다. 예수께서 성전 안의 부정을 규탄하다 성전에서 나왔을 때에 그 일은 그에게 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별스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셨다. 성전의 중력은 큰 돌들로 지탱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돌들이 무너지면 계단 하나도 남지 않고 기억을 되살릴 만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만일에 건물의 일부라도 그대로 서 있다면 그것을 복구할 가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고 무너진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3절 카이 카데메누 아우투 에이스 토 오로스 톤 엘라이온 카테난티 투 히에루 에페로톤 아우톤 카트 이디안 헤트로스 카이 이아코보스 카이 오오안네스 카이 안드레아스

막 13: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절 에이페 헤민 포테 타우타 에스타이 카이 티 토 세메이온 호탄 멜레 판타 타우타 쉰텔레이스다이

막 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13:3-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1)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 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아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이루어질 때를 알고 싶어 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보다 그 일들에 대해서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들이 선생님의 궁전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들 자신들이 존귀하게 되고 영광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곳으로 생각하였던 성전의 함락에 대한 이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과 홀로 있게 됨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볼 때까지 고민을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베다니로 돌아오시는 길에 “감람산에서 성전을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보고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다”(3절). 그들은 무리와 떨어져서 조용히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절)하는 것이었다.

5절 호 데 이에수스 아포크리데이스 아우토이스 에륵사토 레게인 블레페테 메 티스 휘마스 플라네세

막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절 폴로이 가르 엘류손타이 에피 토 오노마티 무 레곤테스 호티 에고 에이미 카이 폴루스 플라네수신

막 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3:5-6

“주의하라”(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아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아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그들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시어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시기보다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하였다”라고 희미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속히 임할 일들을 대비하여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제 곧 나타날 미혹자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심(5,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미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참 메시아를 찾지 못하게 하고 참 메시야를 찾은 자들도 미혹하여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온다고 함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참 그리스도를 버리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전례 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6절). 많은 사람이 미혹을 받게 될 때에 우리는 미혹되지 않도록 경성 하여 우리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7절 호탄 데 아쿠세테 폴레무스 카이 아코아스 폴레몬 메 드로에이스데 데이 가르 게네스다이 알르 우포 토 텔로스

막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절 에게르데세타이 가르 에드노스 에피 에드노스 카이 바실레이아 에피 바실레이안 카이 에손타이 세이스모이 카타 포푸스 카이 에손타이 리모이 카이 타라카이 아르카이 오디논 타우타

막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13:7-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써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당황하지 말고 말세에 대한 경고로 삼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7, 8절). 죄는 전쟁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전쟁들은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다른 때보다 나라들이 더 많이 전쟁으로 혼란하고 황폐케 되는 것이다. 그런 때가 이제 온다는 것이다. 대체로 평온한 때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시자 곧 전쟁이 있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전쟁 무기의 부딪치는 소리 가운데는 율법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시었다.

예수께서는 아마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었을 것이다. “너희는 놀라지 말라. 너희가 미리 예기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남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유대인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목적하신 일을 더욱더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사가 요셉푸스(Josephus)는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악함에 대하여 형벌하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두려워 말라. 마치 너희가 재산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너희의 사업이 전쟁으로 파업되는 것처럼 두려워 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일로 인해 어떤 손해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세상의 미소를 경시하고 세상의 그러한 향락을 탐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의 노에 대해서도 경시하고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만일에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일어나려고 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침몰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침몰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일들을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징조로 생각지 말자. 세상 끝은 아직 아니니라(7절). 이런 전쟁들이 세상 끝을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끝과 만물의 마지막 사이에는 이루어질 중간적 경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끝날을 위해 너희를 예비케 하고 그 합당한 때에 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

“마치 그 전쟁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내리신 것으로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활에는 더 많은 화살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핍박자들을 대하여 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쟁의 소문을 듣게 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재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로 인해 당황하지 말고 더 심한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처에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집들과 같이 삼켜 버릴 것이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 일로 인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주림과 고생과 소란으로 죽어갈 것이다. 세상은 근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었다. 밖으로는 전쟁의 소리 내부로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 자기들의 잘못만 아니라면 ─ 모든 사람들이 큰 소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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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성전 파괴 예언 (마가복음 13:1-4)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Ⅰ.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외관상 크게 보이는 것들을 우상화하고 신성시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성전으로 하여금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음에 대해서 노여워하심을 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전 안에 남아 있는 강을 근절하지 못한 채 그 곳에서 떠났을 때에 그들이 성전의 웅장한 구조에 대하여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그 성전을 사랑하실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나이까?”(1절)하였다. Ⅱ. 그리스도께서는 외관상으로만 화려하지 진정한 순결미가 결여되었을 때에 귀하게 평가하시지 않으신다. “여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2절). 건물의 화려함에 안전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께서는 그 건물에 동정심을 나타내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귀한 영혼들의 멸망함에 대하여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시었고 그들을 위해서 우셨고 그들에게 대하여 존귀한 평가를 하시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웅장한 건물의 황폐됨에 대해 동정을 나타내심을 볼 수 없다. 예수께서 성전 안의 부정을 규탄하다 성전에서 나왔을 때에 그 일은 그에게 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별스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셨다. 성전의 중력은 큰돌들로 지탱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돌들이 무너지면 계단 하나도 남지 않고 기억을 되살릴 만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만일에 건물의 일부라도 그대로 서 있다면 그것을 복구할 가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고 무너진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Ⅲ. 우리가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고 싶어하고 그 이루어질 때를 알고 싶어함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보다 그 일들에 대해서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들이 선생님의 궁전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들 자신들이 존귀하게 되고 영광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곳으로 생각하였던 성전의 함락에 대한 이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과 홀로 있게 됨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볼 때까지 고민을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베다니로 돌아오시는 길에 “감람산에서 성전을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보고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다”(3절). 그들은 무리와 떨어져서 조용히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절)하는 것이었다.

13:5 재난의 때 (마가복음 13:5-13) 우리 주 예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그들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시어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시기보다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하였다”고 희미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속히 임할 일들을 대비하여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Ⅰ. 이제 곧 나타날 미혹자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심(5,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미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참 메시야를 찾지 못하게 하고 참 메시야를 찾은 자들도 미혹하여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온다고 함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참 그리스도를 버리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전례 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6절). 많은 사람이 미혹을 받게 될 때에 우리는 미혹되지 않도록 경성 하여 우리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Ⅱ. 그들이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당황하지 말고 말세에 대한 경고로 삼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7, 8절). 죄는 전쟁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전쟁들은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다른 때보다 나라들이 더 많이 전쟁으로 혼란하고 황폐케 되는 것이다. 그런 때가 이제 온다는 것이다. 대체로 평온한 때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시자 곧 전쟁이 있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될 것인가? “전쟁 무기의 부딪치는 소리 가운데는 율법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시었다. 1. 예수께서는 아마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었을 것이다. “너희는 놀라지 말라. 너희가 미리 예기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남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유대인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목적하신 일을 더욱 더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사가 조셉푸스(Josephus)는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악함에 대하여 형벌 하시려는 것이다.”

2. “너희는 두려워 말라. 마치 너희가 재산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너희의 사업이 전쟁으로 파업되는 것처럼 두려워 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일로 인해 어떤 손해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세상의 미소를 경시하고 세상의 그러한 향락을 탐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의 노에 대해서도 경시하고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만일에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일어나려고 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침몰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침몰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3. “그런 일들을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징조로 생각지 말자. 세상 끝은 아직 아니니라(7절). 이런 전쟁들이 세상 끝을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끝과 만물의 마지막 사이에는 이루어질 중간적 경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끝날을 위해 너희를 예비케 하고 그 합당한 때에 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

4. “마치 그 전쟁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내리신 것으로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활에는 더 많은 화살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핍박자들을 대하여 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쟁의 소문을 듣게 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재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로 인해 당황하지 말고 더 심한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처에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집들과 같이 삼켜 버릴 것이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 일로 인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주림과 고생과 소란으로 죽어갈 것이다. 세상은 근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었다. 밖으로는 전쟁의 소리 내부로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 자기들의 잘못만 아니라면 ─ 모든 사람들이 큰 소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마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었을 것이다. “너희는 놀라지 말라. 너희가 미리 예기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남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유대인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목적하신 일을 더욱 더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사가 조셉푸스(Josephus)는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악함에 대하여 형벌 하시려는 것이다.””너희는 두려워 말라. 마치 너희가 재산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너희의 사업이 전쟁으로 파업되는 것처럼 두려워 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일로 인해 어떤 손해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세상의 미소를 경시하고 세상의 그러한 향락을 탐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의 노에 대해서도 경시하고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만일에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일어나려고 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침몰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침몰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그런 일들을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징조로 생각지 말자. 세상 끝은 아직 아니니라(7절). 이런 전쟁들이 세상 끝을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끝과 만물의 마지막 사이에는 이루어질 중간적 경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끝날을 위해 너희를 예비케 하고 그 합당한 때에 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마치 그 전쟁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내리신 것으로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활에는 더 많은 화살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핍박자들을 대하여 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쟁의 소문을 듣게 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재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로 인해 당황하지 말고 더 심한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처에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집들과 같이 삼켜 버릴 것이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 일로 인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주림과 고생과 소란으로 죽어갈 것이다. 세상은 근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었다. 밖으로는 전쟁의 소리 내부로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 자기들의 잘못만 아니라면 ─ 모든 사람들이 큰 소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Ⅲ.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이 직면해야 할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금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자신들을 조심하라(9절). 비록 너희들이 이웃보다도 전쟁의 칼을 잘 피했다고 하더라도 ─ 그것은 대중들의 싸움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정의의 칼 앞에 서게 될 서이다. 너희는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며 연합하여 너희를 대적하던 자들보다 너희가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니 번영하리라는 희망과 너희가 꿈꾸는 현실의 왕국에 대하여 스스로 속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필요치 않은 근심에 사로잡히거나, 너희 재간으로써 그런 것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의 언행에 주의하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하에서 이 문제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1. 그들이 예기하지 않으면 안 될 고난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보라.

(1)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온유한 심령에 슬픔이 되는 것이다. 증오의 열매는 계속적인 괴로움인 것이다. 악을 즐기는 자들은 불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미움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거나 그들로 말미암아 잘못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미움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2) 그들의 친족들이 그들을 배반할 것이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인척관계가 있으며 그들에게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그들이 배반한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그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2절). 만일에 어떤 아버지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본성적인 애정을 떠나서 강퍅한 마음에 사로잡히어 자기 자식을 박해자들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신 8:6-10).

(3) 교회 관리자들이 그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함이라.” 교회의 포병들이 그 장교들의 배반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비난을 듣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4) 관장들과 임금들이 그들에게 대하여 권세를 부리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죽게 할 권세가 없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를 충동하여 헤롯이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해하게 한다. 마치 로마 제국에 대하여 반역한 자같이 그들을 죽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러한 크고 심한 고난 중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1) 그들이 당하는 이러한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부름을 받은 그 일을 수행해야 했고 반영케 해야 했다(10절).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 전에 그들은 유대 나라에 뿐만 아니라 온 지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비록 그들이 좌절되고 압도당한다해도 복음은 그럴 수 없고 복음은 그 거점을 확보하고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 그들의 맡은 일이 방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고난이므로 더욱 그 일은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 함이다”(9절). 그들이 박해를 당하여 죄수들이 끌려 왔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네로 앞에 서게 된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는 대로 그를 심문하던 자들이나 집행관들에게 그가 무죄할 뿐 아니라 우수한 자들인 것이 판명됨으로 그들에게 증거가 된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하늘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거가 되는 것이니, 만일 우리가 복음을 받으면 복음이 우리를 위해 증거 하는 것이다. 그 복음이 우리를 외롭게 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만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복음이 심판 날에 우리에게 반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

(3)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넘겨졌을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와 자신들을 위해서 변호할 말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모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11절). 그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할까 또는 어떻게 그들의 호의를 입게 될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심문을 당하는 것이므로 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답변할 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입에 주시는 말을 해야 하며 그 말의 결과에 대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혜나 판단이나 사고를 힘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대변자가 되도록 부르신 성령께서는 지혜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다.

(4) 하늘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새롭게 하여 주신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에 있어서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달게 닫도록 하라. 당신에게 축복이 나타날 것이며 당신의 증거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인내는 면류관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약속된 구원이란 악으로부터 구원보다 더 큰 구원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고난 당한 일에 대한 풍성한 보상으로 허락하시는 영원한 축복인 것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는 마태복음 10장 17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이 예기하지 않으면 안 될 고난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보라.”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온유한 심령에 슬픔이 되는 것이다. 증오의 열매는 계속적인 괴로움인 것이다. 악을 즐기는 자들은 불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미움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거나 그들로 말미암아 잘못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미움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그들의 친족들이 그들을 배반할 것이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인척관계가 있으며 그들에게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그들이 배반한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그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2절). 만일에 어떤 아버지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본성적인 애정을 떠나서 강퍅한 마음에 사로잡히어 자기 자식을 박해자들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신 8:6-10).교회 관리자들이 그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함이라.” 교회의 포병들이 그 장교들의 배반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비난을 듣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관장들과 임금들이 그들에게 대하여 권세를 부리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죽게 할 권세가 없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를 충동하여 헤롯이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해하게 한다. 마치 로마 제국에 대하여 반역한 자같이 그들을 죽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러한 크고 심한 고난 중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그들이 당하는 이러한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부름을 받은 그 일을 수행해야 했고 반영케 해야 했다(10절).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 전에 그들은 유대 나라에 뿐만 아니라 온 지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비록 그들이 좌절되고 압도당한다해도 복음은 그럴 수 없고 복음은 그 거점을 확보하고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그들의 맡은 일이 방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고난이므로 더욱 그 일은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 함이다”(9절). 그들이 박해를 당하여 죄수들이 끌려 왔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네로 앞에 서게 된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는 대로 그를 심문하던 자들이나 집행관들에게 그가 무죄할 뿐 아니라 우수한 자들인 것이 판명됨으로 그들에게 증거가 된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하늘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거가 되는 것이니, 만일 우리가 복음을 받으면 복음이 우리를 위해 증거 하는 것이다. 그 복음이 우리를 외롭게 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만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복음이 심판 날에 우리에게 반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넘겨졌을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와 자신들을 위해서 변호할 말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모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11절). 그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할까 또는 어떻게 그들의 호의를 입게 될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심문을 당하는 것이므로 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답변할 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입에 주시는 말을 해야 하며 그 말의 결과에 대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혜나 판단이나 사고를 힘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대변자가 되도록 부르신 성령께서는 지혜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다.하늘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새롭게 하여 주신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에 있어서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달게 닫도록 하라. 당신에게 축복이 나타날 것이며 당신의 증거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인내는 면류관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약속된 구원이란 악으로부터 구원보다 더 큰 구원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고난 당한 일에 대한 풍성한 보상으로 허락하시는 영원한 축복인 것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는 마태복음 10장 17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13:14 말세의 징조 (마가복음 13:14-23) 유대인들은 한편으로 로마에 대한 반역과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에게 대한 박해로 그들 자신의 파멸을 유효하고 기이하게 재촉하였고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대적이 된 것이다(살전 2:15). 지금 우리는 여기에 이후로 40년 내에 그들에게 임할 멸망에 대한 예언을 대하게 된다. 전에 마태복음 24장 15절 이하에서 본바 있다. 이하에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Ⅰ. 그 일에 대하여 여기에 뭐라고 예언되었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로마군이 유대땅을 점령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포위할것에 대해서 예언이 되었다. 그 군대는 “멸망의 가증한 것”인데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겼고, 그들로 인해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되리라”(사 7:16). 가증한 일은 멸망밖에 초래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증한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 될 그리스도를 가증스럽게 여겨 버렸으므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그들의 멸망이 될 가증스런 것을 그들에게 보내신 것이다(단 9:27).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과 헌물 드리기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군대들은 그들에게 합당치 않은 곳에 즉 예루살렘 성 안팎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예루살렘 성은 이방 군대들이 접근하거나 접근하려 노력하는 것도 합당치 못하였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교회가 애석하게 여기는 말씀이 예레미야 애가 1장 10절에 나타나 있으니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죄가 이런 불행을 초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영광은 떠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침입하여 금지된 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예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예언의 말씀들을 우선적으로 서로 비교하면서 연구함으로써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으며 마침내는 예언된 사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 로마군들이 유대 나라에 침입해 왔을 때에 아무 곳에도 안전할 수 없었으므로 나라를 버리고 가능한 한 도망쳐야 하였던 것이다. 그들과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헛수고이고 희생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대항하기에 너무나 힘든 적수들이다. 숨어도 소용없다. 그들이 찾아내게 될 것이다. 항복해도 소용없다. 원수들이 그들에게 구명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명이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유대땅에서 나와서 산으로 도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첫 번 경고를 받았을 때에 자기의 살 길을 예비해야 되는 것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적이 침입해 오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며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재물보다 더 귀한 자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밭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접근을 살피고 그 곳에서 도피하여야 하며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한다(16절). 자기의 생명을 구원받은 자는 덤으로 받은 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가 아무 재물을 건져내지 못했다 하여도, 그가 가난하게 되었다 해도 생명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3. 그때에는 아이 밴 여인과 젖먹이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큰 고난을 당하게 된다.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17절). 그런 여인들은 낯선 땅으로 피난하기가 어렵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을 민첩하게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젖먹이를 가진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두어야 할지 데리고 떠나야 할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가볍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피조물의 공허함을 말해 준다. 즉 가장 큰 위로가 때로는 가장 큰 고난의 시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겨울에” 도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마찬가지로 큰 고난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길이 험할 때에, 길로 통행하기가 어려운 때 특히 그들이 산으로 피할 때에 그 고충은 큰 것이다. 여기에 대한 어떤 구제책이 없고 그러한 환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우리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거든 환난이 완화되도록 모든 사정들이 질서있게 이루어지도록 바라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들이 두서없이 혼란에 처해진다면 더욱 사태는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피난을 해야 함은 불행이지만 “겨울에” 피난을 해야함은 더욱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4. 유대 나라 전체를 통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파멸과 황폐함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9절).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환난은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다. 유대인 전체에 대한 대 학살을 위협하는 환난인 것이다. 대단히 잔혹하게 그들은 서로를 삼켰고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다 삼켜 버리려 했다. 그러므로 이 환난이 좀 더 계속됐다면 “살아 남을 아무 육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노 중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기억하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끝장을 내시기 전에 당신이 노하심을 멈추신 것이다. 교회나 나라에 있어서 그 파멸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특별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 그들의 생명을 덤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2)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20절). 그들 중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그들 중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두려워하는 소수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중한 것이다. 남은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며(사 10:22),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그들을 다 멸하시지 않으신다는(사 65:8)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들은 마땅히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밤낮으로 간청하므로” 그들의 간구 하심을 응답되고야 마는 것이다(눅 8:17). 로마군이 유대땅을 점령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포위할것에 대해서 예언이 되었다. 그 군대는 “멸망의 가증한 것”인데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겼고, 그들로 인해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되리라”(사 7:16). 가증한 일은 멸망밖에 초래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증한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 될 그리스도를 가증스럽게 여겨 버렸으므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그들의 멸망이 될 가증스런 것을 그들에게 보내신 것이다(단 9:27).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과 헌물 드리기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군대들은 그들에게 합당치 않은 곳에 즉 예루살렘 성 안팎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예루살렘 성은 이방 군대들이 접근하거나 접근하려 노력하는 것도 합당치 못하였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교회가 애석하게 여기는 말씀이 예레미야 애가 1장 10절에 나타나 있으니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죄가 이런 불행을 초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영광은 떠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침입하여 금지된 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예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예언의 말씀들을 우선적으로 서로 비교하면서 연구함으로써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으며 마침내는 예언된 사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다.로마군들이 유대 나라에 침입해 왔을 때에 아무 곳에도 안전할 수 없었으므로 나라를 버리고 가능한 한 도망쳐야 하였던 것이다. 그들과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헛수고이고 희생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대항하기에 너무나 힘든 적수들이다. 숨어도 소용없다. 그들이 찾아내게 될 것이다. 항복해도 소용없다. 원수들이 그들에게 구명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명이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유대땅에서 나와서 산으로 도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첫 번 경고를 받았을 때에 자기의 살 길을 예비해야 되는 것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적이 침입해 오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며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재물보다 더 귀한 자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밭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접근을 살피고 그 곳에서 도피하여야 하며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한다(16절). 자기의 생명을 구원받은 자는 덤으로 받은 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가 아무 재물을 건져내지 못했다 하여도, 그가 가난하게 되었다 해도 생명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그때에는 아이 밴 여인과 젖먹이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큰 고난을 당하게 된다.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17절). 그런 여인들은 낯선 땅으로 피난하기가 어렵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을 민첩하게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젖먹이를 가진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두어야 할지 데리고 떠나야 할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가볍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피조물의 공허함을 말해 준다. 즉 가장 큰 위로가 때로는 가장 큰 고난의 시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겨울에” 도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마찬가지로 큰 고난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길이 험할 때에, 길로 통행하기가 어려운 때 특히 그들이 산으로 피할 때에 그 고충은 큰 것이다. 여기에 대한 어떤 구제책이 없고 그러한 환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우리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거든 환난이 완화되도록 모든 사정들이 질서있게 이루어지도록 바라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들이 두서없이 혼란에 처해진다면 더욱 사태는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피난을 해야 함은 불행이지만 “겨울에” 피난을 해야함은 더욱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유대 나라 전체를 통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파멸과 황폐함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9절).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환난은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다. 유대인 전체에 대한 대 학살을 위협하는 환난인 것이다. 대단히 잔혹하게 그들은 서로를 삼켰고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다 삼켜 버리려 했다. 그러므로 이 환난이 좀 더 계속됐다면 “살아 남을 아무 육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노 중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기억하신 것이다.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끝장을 내시기 전에 당신이 노하심을 멈추신 것이다. 교회나 나라에 있어서 그 파멸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특별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 그들의 생명을 덤으로 구원받는 것이다.”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20절). 그들 중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그들 중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두려워하는 소수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중한 것이다. 남은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며(사 10:22),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그들을 다 멸하시지 않으신다는(사 65:8)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들은 마땅히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밤낮으로 간청하므로” 그들의 간구 하심을 응답되고야 마는 것이다(눅 8:17). Ⅱ. 이 대답을 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시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원수들이 곧 퇴진할 것이라는 말이나 그들과 곧 타협을 볼 것이라는 말에 속지 말고 지체없이 피하라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절).

2. 그들은 그들의 영혼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잇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세상 끝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짓 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미혹케” 하는 것이다(22절). 복음의 왕국이 건설될 때에 사탄은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그리고 갖은 계교를 다하여 방해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의 성실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사람들의 위선을 찾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거역한 사람들을 혼미케 하려고 사탄의 이런 방해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을 전한다. 또한 그 거짓 그리스도들은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려는 척하면서 선지자들로 등장하여 칭찬되어질 일들을 예언하며 표적을 보이고 기사를 말할 것이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던” 것이다(살후 2:7). 그리고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며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그럴 듯하게 가장하고 그들은 아주 부지런히 날뛰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진취적이고 근면한 종교인들을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는 아무 것도 유효하지 못하고 다만 변치 않고 확실한 하나님을 근거로 서 있는 것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자기의 것인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질 때에 보존되는 것이다(딤후 2:18, 19).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택함을 받은 자들은 유혹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롬 11:7). 그러나 이 일을 고려하여 제자들은 그들이 신임하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시었다. “너희는 삼가라”(23절).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택함을 입은 자들임을 아시었고 그들이 미혹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아시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삼가라”고 당부하시었다. 인내에 대한 확신과 배교에 대한 주의 이 두 가지는 서로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부탁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내할 것에 대한 의심에서 그렇지 않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내가 확실하다 해도 그렇다고 그들이 주의를 필요치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유한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겠지만 그들도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들에게 미리 말하여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미리 경고를 받고 미리 무장을 하게 하려함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 미리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그 거짓된 선지자들을 식별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며 그들의 예언에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그러한 가장한 선지자들의 말에 속지 않게 하는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원수들이 곧 퇴진할 것이라는 말이나 그들과 곧 타협을 볼 것이라는 말에 속지 말고 지체없이 피하라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절).그들은 그들의 영혼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잇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세상 끝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짓 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미혹케” 하는 것이다(22절). 복음의 왕국이 건설될 때에 사탄은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그리고 갖은 계교를 다하여 방해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의 성실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사람들의 위선을 찾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거역한 사람들을 혼미케 하려고 사탄의 이런 방해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을 전한다. 또한 그 거짓 그리스도들은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려는 척하면서 선지자들로 등장하여 칭찬되어질 일들을 예언하며 표적을 보이고 기사를 말할 것이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던” 것이다(살후 2:7). 그리고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며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그럴 듯하게 가장하고 그들은 아주 부지런히 날뛰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진취적이고 근면한 종교인들을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는 아무 것도 유효하지 못하고 다만 변치 않고 확실한 하나님을 근거로 서 있는 것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자기의 것인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질 때에 보존되는 것이다(딤후 2:18, 19).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택함을 받은 자들은 유혹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롬 11:7). 그러나 이 일을 고려하여 제자들은 그들이 신임하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시었다. “너희는 삼가라”(23절).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택함을 입은 자들임을 아시었고 그들이 미혹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아시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삼가라”고 당부하시었다. 인내에 대한 확신과 배교에 대한 주의 이 두 가지는 서로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부탁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내할 것에 대한 의심에서 그렇지 않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내가 확실하다 해도 그렇다고 그들이 주의를 필요치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유한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겠지만 그들도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들에게 미리 말하여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미리 경고를 받고 미리 무장을 하게 하려함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 미리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그 거짓된 선지자들을 식별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며 그들의 예언에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그러한 가장한 선지자들의 말에 속지 않게 하는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13:24 주의 재림 예언 (마가복음 13:24-27) 이 성경 귀절들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에 대하여 가르친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끝에 대해서 듣고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세상이 존속할 때까지는 존속해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 성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그들이 물은 바 있는 “세상 끝날,”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 세상 심판의 날은 환난이 있은 후에 나타나고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유대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사는 사람들은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지 않을 것이니 주의하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그 때에 그렇게 임하시지 않고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오신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천체의 변동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예언하심. 전연 변동이 없을 것 같은 광대한 천체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24절) 그것은 왜냐하면 인자의 영광이 광채에 천체의 빛이 약해지기 때문이다(사 24:23). 태초부터 제 위치를 지키며 규칙적인 운행을 해 오던 하늘의 별들이 추풍낙엽같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권능들, 천체들, 별들이 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2. 세상의 심판에 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서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신다는 것이다(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천체의 변동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예언하심. 전연 변동이 없을 것 같은 광대한 천체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24절) 그것은 왜냐하면 인자의 영광이 광채에 천체의 빛이 약해지기 때문이다(사 24:23). 태초부터 제 위치를 지키며 규칙적인 운행을 해 오던 하늘의 별들이 추풍낙엽같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권능들, 천체들, 별들이 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세상의 심판에 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서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신다는 것이다(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시는 그 사명에 적합하도록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이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게” 될 것이다(계 1:7). 3. 택하신 자들을 사방으로부터 자기에게 모으신다.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살전 4:17). 그 택하신 자들은 세상의 한 편에서 다른 편에까지 사방으로부터 그에게 모여들며 아무도 이 성회에 낙오자가 없도록 하시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먼 지상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지만 아주 분명하고 아주 민첩하고 아주 쉽게 이동하며 잘못 들림 받는 자도 없는 것이다. 신실한 이스라엘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안전하게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을 사방으로부터 자기에게 모으신다.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살전 4:17). 그 택하신 자들은 세상의 한 편에서 다른 편에까지 사방으로부터 그에게 모여들며 아무도 이 성회에 낙오자가 없도록 하시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먼 지상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지만 아주 분명하고 아주 민첩하고 아주 쉽게 이동하며 잘못 들림 받는 자도 없는 것이다. 신실한 이스라엘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안전하게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13:28 그날을 예비하라 (마가복음 13:28-37) 우리는 여기에서 이 예언적 설교에 대한 적응을 대하게 된다. 올바른 태도로 앞을 내다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Ⅰ.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속히 임할 것을 말씀하심.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28절). 자연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 적합한 차서와 시간에 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29절). 유대 나라가 전쟁으로 혼란에 빠지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에 이하여 미혹을 받고 로마군들의 불쾌한 행동이 이스라엘인들에게 가해지며 특히 그들이 주님으로 인해 박해를 가하게 되면 그들이 주님이 죽음을 당할 때에 그를 처형하려고 그들이 일어 선 것처럼 그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들의 범죄의 그릇을 채우게 된다. 그 때에 저들은 멸망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악한 날이 오기 전에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 후세들이 그 날을 볼 것을 대비하여 교훈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뒤에 남긴 이런 가르침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30절). 이 멸망의 날이 임박했고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일은 확실한 것이다.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단 9:27). 그리스도께서 이런 일들을 단순히 저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 일들은 하나님의 예정된 목적이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니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절). 이런 예언들의 한 마디도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은 없는 것이다. Ⅱ. 세상 끝 날에 대해서 어느 때 그날이 임하느냐고 묻지 말아야한다. 왜냐하면 그날은 물어보기에 합당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32절)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니다. 그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은 어떤 성경 말씀에 의해서 지상의 사람들에게나 하늘의 천사들에게나 계시되지 않았다. 천사들은 그날에 수종들도록 준비하라고 때에 알맞는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나팔소리로 경고하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인간들이나 천사들은 오늘날 그들에게 맡겨진 알맞은 일을 섬기도록 그날에 대한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전연 알려 주시지 않으시고 비밀로 하시는 것이다.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모르실 만한 것이 있을까? 우리는 실로 성경에서 “어린양이 인을 떼시기까지 두루마리 책이 인봉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인을 떼시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모르신단 말인가? 기독교 초기에는 이 본문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도 되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있다함은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으로서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실 수 있었다는 말과 같이 어리석은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많은 정통적인 교부들도 이것을 인정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견해와는 다릴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일에 관해서 더 말씀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처세 방법에서 그렇게 말씀하시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서 초대 교회의 어느 분은 말하기를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하였다. 대주교 틸로츤(Tillotson)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구세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의 인성과 교통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은 때로는 어떤 것에 대해 모르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지혜가 자랐다고 하였다(눅 2:52). 만일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성과 연합한 미덕으로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그의 지혜가 자랐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 하였다. 라이트푸트(Lightfoot)박사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메시야로 부르신 것처럼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러한 메시야는 아버지의 종으로서(사 42:1) 아버지에 의해서 보내지고 임명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자주 아버지의 뜻과 명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순종하였으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요 5:19).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시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계 1: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우수함과 인성과 신성간의 인격적인 연합으로부터 비롯된 그의 완전함을 구분하리라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령의 기름부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인성으로부터는 그의 무한한 인격의 위엄과 모든 죄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낳게 하였고 그의 신성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되어질 미래사에 대한 예지를 얻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의 교회에 계시된 것을 인성과 신성의 연합에서가 아니고 성령의 계시로부터 된 것으로 인정하시기를 원하신다. 그 성령의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아직 그 때를 모르고 다만 아버지께서만 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틸로츤 주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성자와 성령을 구별하는 뜻이 아니라 신성의 근원이 되신 “성부”를 말하는 것이다. Ⅲ. 우리가 행해야 할 두 가지 의무는 “깨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하기 위하여 그 시간을 비밀로 하시는 것이다(33절). “주의하라.” 주님의 강림에 대한 신앙을 방해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생각을 복잡케 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하신다. “깨어 있으라.” 주님의 강림에 대비하여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 언제 오시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리고 주께서 어느 시에 오실 지 모르므로 매일 준비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 우리의 주인이 멀리 떠나가시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맡겨 주시었는데 우리는 그 책임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34절).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의 집을 지상에 남겨두고 당신의 종들에게 사무를 맡기고 오랜 기간을 멀리 떠나 계시는 것인데 어떤 종들에게는 사무를 살필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어떤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군이 되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큰 권세를 받은 자들이 가장 귀한 사무를 맡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일을 맡겨 주신 그 사람들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떠나는 마지막 마당에서 “문지기에게 깨어있으라 명한”것이다. 그가 돌아올 때에 그에게 문을 열어 드리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멀리 계시는 동안에도 문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는데 그것은 주인의 친구들과 종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어야 하지만 도적이나 강도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주님 예수께서 멀리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에 당신이 계시지 않는 동안에 그들이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당신이 돌아오실 때에 당신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를 기대하면서 당신의 종들에게 모든 일들을 수행하도록 맡기신 것이다. 모든 자들이 일하도록 임명을 받았고 어떤 자들에게는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다.

2. 우리는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면서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35-37).

(1) 우리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오시되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간” 집주인이 돌아와 그의 종들과 그들이 사무에 대해서 회계하기 위함과 같이 오시는 것이다.

(2)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하는 고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깨어 준비하게 하시려고 대단히 현명하게 돌아오시는 시간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늘 개어 기다리는 것이다. “집주인이” 저녁 때 올는지, 저녁 아홉시에 올는지, 밤중에 올는지, 닭 울 때에 올는지, 새벽3시에 올는지 새벽 6시에 올는지 모르는 것이다(35절).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나 우리의 죽을 때에 주님께 모든 자들이 받는 심판에 대해서 적응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 인생은 다른 시대 사람들에게 비한다면 밤과 같다. 깊은 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밤 몇 시경에 주님이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젊은 날에 주님이 찾아오실는지 중년에 오실는지 노년에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자 마자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고 죽음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우리의 큰 관심은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그가 우리를 잠들어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경계를 소홀히 하고 스스로 안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일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안일과 태만에 스스로 빠져 방종하고 있는 것을 보시거나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을 보시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지 않으신다 하거나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4) 주님께서 오실 때에 갑작스럽게 오시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잠자는 자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은 실로 큰 놀람과 두려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은 그들에게 마치 한밤중에 도적이 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5)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의무는 각성하고 깨어 근신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절). 주님께서 몇 몇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을 통해 이 말씀을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고 주님은 거듭해서 당신의 재림을 대비하고 기대되어 주님이 오실 때에 흠 없고 점 없이 평화 가운데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 멀리 떠나가시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맡겨 주시었는데 우리는 그 책임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34절).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의 집을 지상에 남겨두고 당신의 종들에게 사무를 맡기고 오랜 기간을 멀리 떠나 계시는 것인데 어떤 종들에게는 사무를 살필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어떤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군이 되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큰 권세를 받은 자들이 가장 귀한 사무를 맡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일을 맡겨 주신 그 사람들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떠나는 마지막 마당에서 “문지기에게 깨어있으라 명한”것이다. 그가 돌아올 때에 그에게 문을 열어 드리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멀리 계시는 동안에도 문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는데 그것은 주인의 친구들과 종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어야 하지만 도적이나 강도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주님 예수께서 멀리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에 당신이 계시지 않는 동안에 그들이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당신이 돌아오실 때에 당신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를 기대하면서 당신의 종들에게 모든 일들을 수행하도록 맡기신 것이다. 모든 자들이 일하도록 임명을 받았고 어떤 자들에게는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다.우리는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면서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35-37).우리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오시되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간” 집주인이 돌아와 그의 종들과 그들이 사무에 대해서 회계하기 위함과 같이 오시는 것이다.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하는 고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깨어 준비하게 하시려고 대단히 현명하게 돌아오시는 시간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늘 개어 기다리는 것이다. “집주인이” 저녁 때 올는지, 저녁 아홉시에 올는지, 밤중에 올는지, 닭 울 때에 올는지, 새벽3시에 올는지 새벽 6시에 올는지 모르는 것이다(35절).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나 우리의 죽을 때에 주님께 모든 자들이 받는 심판에 대해서 적응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 인생은 다른 시대 사람들에게 비한다면 밤과 같다. 깊은 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밤 몇 시경에 주님이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젊은 날에 주님이 찾아오실는지 중년에 오실는지 노년에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자 마자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고 죽음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큰 관심은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그가 우리를 잠들어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경계를 소홀히 하고 스스로 안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일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안일과 태만에 스스로 빠져 방종하고 있는 것을 보시거나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을 보시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지 않으신다 하거나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주님께서 오실 때에 갑작스럽게 오시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잠자는 자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은 실로 큰 놀람과 두려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은 그들에게 마치 한밤중에 도적이 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의무는 각성하고 깨어 근신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절). 주님께서 몇 몇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을 통해 이 말씀을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고 주님은 거듭해서 당신의 재림을 대비하고 기대되어 주님이 오실 때에 흠 없고 점 없이 평화 가운데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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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주석 – 마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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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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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3장 주석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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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마가복음 1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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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강해]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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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강해]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주석강해]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막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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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한글 Lingua Franca – 메튜 헨리 주석, 마가복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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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금) “마가복음 13:1-13” / 작성: ì •í•œ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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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2020/03/13(금) “마가복음 13:1-13” / 작성: ì •í•œì¡°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내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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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금) “마가복음 13:1-13” / 작성: ì •í•œ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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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º¹À½ 13Àå – ±³»ç¿ë] 마가복음 13장. < 1-8 >. 1. 제자 중 하나가 보는 것과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제자: 건물의 웅장함, 돌의 크기: 이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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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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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 1) 성전 멸망을 예언하심 (1-2) · 2) 마지막 때의 징조 (3-23) · 3) 예수의 재림(24-27) · 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 1) 성전 멸망을 예언하심 (1-2) · 2) 마지막 때의 징조 (3-23) · 3) 예수의 재림(24-27) · 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 묵상 & 기도, 독자광장, 복음뉴스, BogEum News마가복음 13:1-37 말씀 묵상’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마가복음 13:32‭-‬33).“But about that day or hour no one knows,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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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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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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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징조가..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학과 설교와 상담 자료를 모아 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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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마가복음 13장 헬라어 강해] 재림 때에 있을 환난과 박해(막 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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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주석

마가복음 제 13장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13:3-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1)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 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야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3:5-6 “주의하라”(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13:7-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서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야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3:9 “너희는 주의하라”라는 훈계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하셨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회당에서 열리는 지방 유대인의 법정인 공회(산헤드린)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연하게 회당에서 이교도들처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을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그 증거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고소하는 증거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13:10 복음이 반드시 먼저 모든 민족 즉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나 그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최우선 적으로 해야 될 일이며 또 그의 목적에 따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 것은 가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곧 이 시대에 혹은 이 시대의 끝에 가서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마25:31-46) =======13:11 제자들이 체포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질 때에 변명하기 위해서 염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담대하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움이 꼭 석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3:12-13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이며, 또한 가까운 자기의 친척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매우 심각하여 가족들이 서로 대적자들에게 넘겨 줄 것이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예수를 위한 충성 때문에 박해로 고통 당하는 로마에 잇는 마가의 독자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고통을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와 변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게 될 때 더 한층 그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게 된다. =========13:14 “가증한 것”이란 말은 원래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가증스러운 일들”을 가리켰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표현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그 대상이 너무 가증하여 성전을 버리게 하고 황폐케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은 그 예언이 또 한 번 성취될 것을, 즉 A. D. 70년의 성전 모독과 파괴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즉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들이 이같은 성전 모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베뢰아 요단강을 건너 산으로 도망하라는 신호이다. 요세프스는 A.D. 67-68년에 유대 열심당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점령하고 침략자 파니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가증한 것”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서 있지 못할 곳에 서 있는 장래의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3:15-18 이러한 위기가 일어날 때에 자기 집의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지려고 결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자들도 추운 밤 공기를 막아 주는 겉옷을 가지려고 다른 밭이나 집으로 가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하에서 도망가야만 하는 아이 밴 여자와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동정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강물이 많이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될 우기인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13:19 그들이 급하게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다행히도 도망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재난의 날들이 없었고 결코 또다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재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에도 해당되지만 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을 넘어서 재림에 앞서 있을 마지막 대환란 이기도 한 것이다. ==========13:20 “만약 주께서 그이 구언 계획 속에서 이미 결정된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13:13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택하신 그 택한 자들 때문에 마지막 때 환난 기간을 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A.D. 70년에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지막 때의 대환란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13:21-22 “그 때에” 즉 심한 고통과 도망하는 그날 중에 만약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에 혹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여도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말고 계속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3: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날에 거짓 함정에 바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다시 교훈 하셨다. =====13:24-25 “그러나”라는 말이 기적적인 이적들을 베푸는 거짓 메시야의 출현과 재난 이후의 때에 참 메시야의 극적인 오심 사이에 뚜렷한 대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표현은 14-23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리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무질서가 바로 재림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예수는 정확하게 어느 한 편의 구절만 인용하지 않고 이사야 13:10과 34:4 둘 다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천체 변화를 언급하신 것이다. ===========13:26 방금 언급한 우주적인 사건이 발생한 그 때에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신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능을 행하실 것이며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13:27 또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이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언급은 없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란 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13:28 제자들이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기에서 그런 의미를 의도하지는 않아다. ======13:29 이 절은 28절의 교훈을 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너희 제자들은 14-23절에 언급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임박한 위기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박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13:30-31 엄숙한 서론적인 말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한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말씀들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씀은 영원히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의 말씀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3:32 비록 위기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식별해 낼 수 있으나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예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13:33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라고 거듭 훈계하셨다. ==========13:34-37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는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는 비유를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다.

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13장

=======13:1 고난 주간 수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그를 선생이라고 호칭한 다음 놀라움과 감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뜰과 발코니, 콜로나레와 행각으로 된 성전의 거대한 돌들과 건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의 호의를 얻고 헤롯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헤롯 왕조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크고 흰 돌들과 광택이 있는 풍부한 금으로 장식하여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옛 예루살렘 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성전만큼 장엄하고 굉장한 것은 없었다. ===========13:2 예수의 대답은 이 엄청난 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강한 이중 부정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그의 말씀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불길한 예언은 성전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예수의 심판의 결과이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한 세대 내에 성취되었다. A. D. 70년 티투스는 성전을 불태우고 나서 전 도시를 파괴하고 그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13:3 – 4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성전을 마주 바라보며 앉았다. 감람산은 바다의 수면보다 약 2700피트 높이 솟아 있었지만 예루살렘보다는 약 100피트 정도밖에 높지 않았다. 감람산 서쪽에 성전과 예루살렘 시가 위치해 있었다. 제자들은 예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질문은 두 부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1)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2)그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인자가 다시 재림하는 그 종말 시간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 현 시대의 끝이 일어날 사건이며 그때에 비로소 메시야 왕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3:5 – 6 주의하라 (플레페테, 조심하다, 경계하다)는 가르침 전반에 나타난 경계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이름을 사칭하며 다니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위기 시기에는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내가 그로라 라고 주장할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의 형식 속에 표현되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13:7 – 8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멀리서 들을 때마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인간이 번역과 죄의 결과로서 허락된 전쟁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역사는 새로운 메시야 시대의 출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3:9 너희는 주의하라 라는 훈계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하셨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회당에서 열리는 지방 유대인의 법정인 공회(산헤드린)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연하게 회당에서 이교도들처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을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그 증거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때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고소하는 증거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13:10 복음이 반드시 먼저 모든 민족 즉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나 그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최우선 적으로 해야 될 일이며 또 그의 목적에 따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 것은 가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곧 이 시대에 혹은 이 시대의 끝에 가서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25:31 – 46). =======13:11 제자들이 체포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질 때에 변명하기 위해서 염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담대하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움이 꼭 석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3:12 – 13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이며, 또한 가까운 자기의 친척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매우 심각하여 가족들이 서로 대적자들에게 넘겨 줄 것이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예수를 위한 충성 때문에 박해로 고통 당하는 로마에 잇는 마가의 독자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고통을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와 변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게 될 때 더 한층 그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게 된다. =========13:14 가증한 것 이란 말은 원래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가증스러운 일들 을 가리켰다. 멸망의 가증한 것 이란 표현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그 대상이 너무 가증하여 성전을 버리게 하고 황폐케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 이라는 말은 그 예언이 또 한 번 성취될 것을, 즉 A. D. 70년의 성전 모독과 파괴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즉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들이 이같은 성전 모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베뢰아 요단강을 건너 산으로 도망하라는 신호이다. 요세프스는 A. D. 67 – 68년에 유대 열심당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점령하고 침략자 파니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가증한 것 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서 있지 못할 곳에 서 있는 장래의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3:15 – 18 이러한 위기가 일어날 때에 자기 집의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지려고 결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자들도 추운 밤 공기를 막아 주는 겉옷을 가지려고 다른 밭이나 집으로 가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하에서 도망가야만 하는 아이 밴 여자와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동정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강물이 많이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될 우기인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13:19 그들이 급하게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다행히도 도망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재난의 날들이 없었고 결코 또다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재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에도 해당되지만 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을 넘어서 재림에 앞서 있을 마지막 대환란 이기도 한 것이다. ==========13:20 만약 주께서 그이 구언 계획 속에서 이미 결정된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13:13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택하신 그 택한 자들 때문에 마지막 때 환난 기간을 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A. D. 70년에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지막 때의 대환란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13:21 – 22 그 때에 즉 심한 고통과 도망하는 그날 중에 만약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에 혹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여도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말고 계속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3: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날에 거짓 함정에 바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다시 교훈 하셨다. =====13:24 – 25 그러나 라는 말이 기적적인 이적들을 베푸는 거짓 메시야의 출현과 재난 이후의 때에 참 메시야의 극적인 오심 사이에 뚜렷한 대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표현은 14 – 23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리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무질서가 바로 재림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예수는 정확하게 어느 한 편의 구절만 인용하지 않고 이사야 13:10과 34:4 둘 다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천체 변화를 언급하신 것이다. ===========13:26 방금 언급한 우주적인 사건이 발생한 그 때에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신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능을 행하실 것이며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13:27 또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이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언급은 없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란 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13:28 제자들이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 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기에서 그런 의미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13:29 이 절은 28절의 교훈을 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너희 제자들은 14 – 23절에 언급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임박한 위기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박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13:30 – 31 엄숙한 서론적인 말로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한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말씀들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씀은 영원히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의 말씀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3:32 비록 위기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식별해 낼 수 있으나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예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13:33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라고 거듭 훈계하셨다. ==========13:34 – 37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는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는 비유를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다. 본장의 강화 역시 12장과 마찬가지로 수난 주간 중 화요일에 주어진 말씀으로서 묵시 문학적 특성으로 인해 해석상 어려움이 따른다. 본 강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두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1) 인내에 관한 교훈. 이는 본서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강조되며, 특히 예수의 공생애의 마감 시점이 가까울수록 더욱 부각되는 주제인 ‘제자 훈련'(discipleship training)의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는 사항이다. 아울러 이 교훈은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 강화가 성격상 묵시 문학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강화가 주어진 가장 큰 목적은 장래사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윤리적인 교훈을 주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증거로서 본 강화에서는 ‘. . . 하라’는 명령내지는 권면의 말씀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무릇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핍박이 따르며 이 핍박은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후에 비로소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듯이 성도들도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을 견뎌내야 함을 가르친다. (2) 종말에 관한 예언. 본 강화는 또한 역사의 마지막 때 곧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이는 본문이 묵시 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사항이다. 묵시 문학 형태는 1C경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으며, 성경 전체 중에서 ‘묵시적’인 내용의 책은 다니엘, 요엘, 아모스, 스가랴, 말라기, 요한 계시록 등이며 본장과 마 24장에 수록된 감람산 강화와 살전 4:13이하 내용도 묵시 문학적이다. 이런 책들은 정경(Canon)에 포함되지 않은 묵시문학(apocalytic literature)과 마찬가지로 상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으며, 역시 종말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는 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편 본문의 내용은 네 문단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문단에서는 종말에 관한 예언 및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에 관한 교훈이 교차적으로 반복된다. 다시 말해서, 1-8절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에 관한 예언이며 9-13절은 종말시의 핍박에 직면했을 때 굳센 믿음으로 인내하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14-27절은 대환난과 주의 재림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예언이며, 28-37절은 항상 종말론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성할 것에 대한 교훈의 내용이다. * 종말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종말론(eschatology)에 관한 학자들간의 다양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견해: 그들은 성서에 기록된 종말에 관한 예언들을 분석, 종합하면 말세지말(末世之末)에 일어날 일들을 어느 정도 상세히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 간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소위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은 천년 왕국 후 짧은 배교의 시기, 즉 선과 악의 세력간의 극심한 싸움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래한다는 견해로서 어거스틴(A. Augustinus),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등이 주장했다. 반면에 랑게(J. P. Lange), 알포드(H. Alford)등의 견해인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은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임한다고 본다. 그리고 무천년설(ammillennialism) 은 천년 왕국을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재림 전까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통치하는 전 기간을 바로 천년 왕국 시기로 이해하며, 이 학설의 대변자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게할더스 보스(Gerhardus Vos)등이다. (2) 슈바이처의 견해 : 슈바이처(A. Schweitzer)의 ‘철저적 종말론’에 의하면, 예수는 세상의 임박한 천재지변적 종국과 묵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급작스런 도래는 선포하는 데 전적으로 사역의 초점을 집중시켰던 한 유대인 묵시주의자였다고 한다. 예수는 곧 세상의 마지막이 도래하리라고 믿고 설교하였으나 결국 그러한 확신은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적 천국은 철저히 미래적인 소망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3) 도드의 견해 : 도드(C. H. Dodd)는 슈바이처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이미 도래하였다고 보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했다. 즉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러한 현재적, 종말론적 위기 상황을 기술할 때 사용한 묵시적 언어들은 역사를 넘어 항상 현존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였으며, 이러한 초역사적이며 절대적인 영역이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이미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현된 종말론에 의하면 세상의 끝에 별도의 종말론적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는 셈이다. (4) 볼트만의 견해 : 볼트만(R. Bultamnn)은 성경상의 종말론을 실존주의적으로 이해하였다. 그에게 있어 종말에 관한 예언들은 신화에 불과하며 종말론적 시각이란 강렬한 신인식(神認識)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직면했을 때 책임있는 결단으로써 응답하는 자는 종말론적 실존에로 돌입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오늘날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학자들은 ‘철저적 종말론’과 ‘실현된 종말론’에는 둘다 진리의 일면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미 도래하였으되(already), 다만 그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not yet) 미래의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다(마태복음 24장 주제 강해 “성경은 종말론의 관심과 그 해석상의 문제점” 참조) 1. 종말의 징조들과 성도의 인내(13:1-13) 감람산 강화는 성전의 화려한 웅장한 외양에 감탄하는 제자들의 아둔한 모습을 묘사하는(1절) 내용으로부터 도입되고 있다. 그들은 방금 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위선을 책망하는 예수의 호된 경고를(12:38-40)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저들의 가식과 부패상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의 외면적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의 이러한 영적 암매(暗昧) 상태를 꿰뚫어 보시고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으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 때의 징조를 묻자 예수의 감람산 강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본문을 특히 제자 훈련 내지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교훈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몇 경고 사항들에 주목하게 된다. (1) 종교적 형식주의. 성전 숙정 사건(11:15-18)과 마찬가지로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2절) 또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서 특히 뚜렷이 나타났던 형식주의와 위선에 대한 심판 선고라 할 수 있었다. (2) 거짓 메시야. 말세에는 미혹하는 영들이 많이 출현하며 스스로 메시양인양 가장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킨다는 경고이다(6절). 사도행전에 나오는 드다(Theudas)(행 5:36)와 갈릴리 유다(행 5:37) 및 마술사 시몬(행 8:9) 등도 메시야로 자처한 듯하며, 현재 우리나라에도 자칭 메시야를 따르는 이단 종파가 있다. (3) 세계의 격변에 따른 동요, 말세지말이 가까와 음에 따라 전쟁과 지진 그리고 기근(饑饉)등이 빈발하게 될 것이지만, 성도들은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역사의 최종적인 도달처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며, 본문에 예언된 난리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달하기 이전에 거처야 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기 때문이다(히 12:26). (4) 핍박으로 인한 실족. 본문 중 무려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핍박을 대비하라는 경계의 말씀이다(-913절). 이는 감람산 강화의 주목적인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하는 단적 실례라 하겠다. 이와 같은 경계의 말씀은 당시 예수의 강화를 듣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사 본문에 기록된 말세지말의 징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징조에 버금가는 현상들이 세계 도처에서 빈발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 무장을 게을리하는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이나 위협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가능성이 다분하다. 요컨대 예수의 조속한 재림을 대망하며 늘 종말론적 긴장 가운데 깨어 기도함으로썸나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엡 6:18;딤후 2:26). *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들. 이단은 이미 초대교회 당시부터 대두하였으며(벧후 2:1) 교회사의 진전과 더불어 수많은 이단들이 출몰하였다. 여기서는 편의상 초대교회 이후로부터 중세 시대 이전까지 출몰했던 이단 사상들 및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창궐(猖獗)하고 있는 이단 종파들 중 대표적인 것들만 대략적으로 지적해 보는 데에 그치기로 하자. ‘이단’의 개념 및 특성에 관해서는 요일 4:1-6의 주제 강해 ‘이단의 개념’을 참조하라. (1) 중세 초엽까지의 이단들 중 대표적인 이단은 다음과 같다. (까) 영지주의(Gnosticism). 신앙보다 지식을 우위에 두었고, 그노시스(지식)야말로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육체를 포함한 물질은 모두 약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다(요일 4:1-6, 주제 강해 ‘영지주의’ 참조). (다) 오리게네스주의(Origenism). 일종의 기독교적 영지주의라 하겠으며, 성자를 신격으로 간주하되 성부께 종속시켰다. 그리고 만물이 그 근원인 가장 지고한 존재,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므로 사단마저도 하나님께로 회복된다고 주장했다. (따) 마르키온주의(Marcionism). 하나님이 두 분 계시며,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서로 대립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모두 폐지하였고, 열 개의 바울서신과 누가복음의 일부만을 정경을 간주했다. (마) 몬타누스주의(Montanism). 몬타누스는 요 14장에 약속된 보혜사 성령이 자기에게서 나타났으며, 자신에게 특별한 예언의 말씀이 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말이 박두하였음을 외치면서 혼인을 대체로 반대하고 엄격한 금식 생활을 권했다. (바) 모나키아니즘(Monarchianism:군주신론). 이 이단 학설은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들이워진 인간이었다는 양자설(養子設), 혹은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 이상의 존재로서 그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할 능력을 지녔다고 보는 영성론 등 두 가지 주장으로 대별된다. (빠) 마니교(Manichaeism). 악의 실체성과 영원성을 긍정하고, 사단과 하나님에 의해 각각 다스려지고 있는 어둠의 왕국과 빛의 왕국기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싸) 아리우스주의(Arianism). 인간을 영, 육, 이성으로 삼분하고, 그리스도는 이성 대신 로고스(Logos)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이긴 하였으나 그분의 진정한 인성을 거부한 셈이다. (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 그리스도 안에는 인성과 신성이 병존해 있고 또한 서로 협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두 속성은 결코 하나로 융합되거나 서로 유통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카)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여 원죄의 영향력을 부인하였다. (2) 현대의 이단 종파들은 성경의 절대성을 부정, 교주의 신격화, 행위 주권등을 주장하며 범람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실례는 다음과 같다. (까) 통일교(Unification church). 교주인 문선명은 성경이 진리를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고 진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으며 하나님을 남성과 여성의 중화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천사 루시퍼와 성관계를 가진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영적 타락이라 규정했다. 예수는 영적 구원만 이루었을 뿐이며, 육적 구원은 재림주인 문선명 자신을 통해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다)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Seventh Day Advenist).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속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1844년 10월 22일을 그리스도의 재림일로 예언했다가 그 예언이 빗나가자 그날 예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따)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창시자인 럿셀은 1914년 10월에 종말이 올 것을 예언했다가 그 예언이 빗나가자 이를 수정하여 천국이 현재는 공중에 임해 있으며, 여화와의 중인들에게만 그 문이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인간으로 단정하며, 성령의 인격서을 부인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하고 지옥의 존재 또한 부인한다. 또한 교회 제도의 기원이 마귀에게 있다고 보며, 인간의 부활을 영적인 측면에서만 인정한다. (마) 몰몬교(Mormonism: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다신론적이며, 신들도 성이 있어 결혼하고 그 결과 자녀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담 또한 신들의 육체적 결합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신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만인 구원을 믿으며, 일부다처를 권장했다. (바)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미국의 메리 베이커 에디 부인에 의해 창시되었다. 에디는 기독교가 상실해버린 치료 법칙이 자신에게 계시되었다고 주장했다. 외관상으로는 성경에 궁극적 권위를 둔다고 말하나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실제적 권위는 성경이 아니라 에디 부인의 책들이다. 에디가 본 하나님은 범신론적인 하나님이며, 그녀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이원론적으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죄나 악이란 단지 착각내지 환상에서 비롯된 개념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여러 이단들에게 관해 지극히 개략적인 한도 내에서 고찰하였다. 이단은 인간적 야욕을 종교적 허울을빌어 성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리를 미혹시키는 데서 생겨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의에도 불구하고 편협하고 왜곡된 성경 이해에서 생겨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성경 구절마다에 담긴 심오한 진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을 잇는 통전적(通典的) 의미에 유의하여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며(신 17:11), 오직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출 수 있어야 하겠다. 아울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 성경 진리를 왜곡시키는 사단의 세력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하겠다. 2. 대환난과 재림에 관한 예언(13:14-27) 본문은 계시록에 언급된 종말론적 대환난과 예수의 재림에 관한 예언(계 6-19장)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14-23절의 내용은 종말론적 대환난의 때와 A. 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의 때를 동시에 예언하는 예언적 단축법(prophetic foreshortening)을 보여 준다. 이 예언에 관한 구성상의 특징이나 내용상의 강조점에 대해서는 마 24:15-28, 29-31의 강해에서 상세히 설명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예언된 사건 자체 보다는 이 예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예수의 교훈이라는 측면에 주안점을 두기로 하자. (1) 환난에 대한 인내. 앞 문단에서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환난을 당하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인내할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본문 또한 부활과 재림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의 제자 훈련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14-23절의 내용 자체는 대환난의 불가피성과 심각성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지만, 전후 문맥상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환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에 관한 교훈 또한 매우 강조되고 있다 하겠다. 마지막 때를 당하여 성도들은 불신 세력에 의해 핍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천재지변과 범세계적인 환난 또한 맞게 된다. 하지만 본문은 택한 자들을 위해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시고’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성도들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 10:13). 따라서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도래하기로 작정된 대환난 자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들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환난을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도록 매진(邁進)하여야겠다. (2) 재림에 대한 소망.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대환난을 견디어 낸 모든 성도들을 세계각처로부터 불러모으시리나는 24-27절의 예언은 말세의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더없이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의 극심한 핍박을 당했을 때, 굴복하여 배고(背道)의 길을 걷기보다는 차라리 순교의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재림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재림하실 예수의 모습은 초림 때와는 전혀 다르다. 예수께서 초림 때에는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극히 초라한 모습으로 오사(눅 2:7) 죄인들을 대신하여 저주를 당하셨지만(갈 3:13), 재림 때에는 모든 죄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정복자로서 그리고 온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영광 가운데 임하실 것이다. 예수의 재림 사건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므로, 인간 이성을 최선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사람들은 이 재림의 예언을 미신이나 공상의 산물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이 엄연한 역사상의 사건이었듯이, 주의 재림 또한 역사의 마지막에 가까운 한 시점에서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와 같은 재림을 대망하는 굳건한 믿음으로써 모든 선한 일을 경주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악한 유혹이나 위협을 능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한편 역사의 한 정점에 이르러 세상의 마지막이 임한다고 하는 이 예언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적 역사관의 특징을 고찰해 볼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 기독교적 역사관. 기독교적 역사관이란 인간 역사의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단과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시간과 영원과의 관계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을 의미한다. 이제 이러한 역사관의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사의 진행 과정을 직선형으로 본다. 원형과 같이 무한히 반복 윤회(輪廻)한다는 불교적 시간관이나 나선형으로 무한히 발전해 간다는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영국의 역사가)의 역사관과는 달리, 성경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또한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것으로서 처음과 끝이 일직선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서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시간의 흐름은 재림주이신 예수의 백보좌 심판을 끝으로 하여 멈춰지며, 그 이후에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2) 역사의 진행 과정이 목적 지향적이라고 본다. 인류와 우주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진행되며, 하나님은 역사의 주(主)로서 역사를 통해 영원전부터 계획하신 당신의 선하신 목적과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 목적 가운데 으뜸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함 받은 무리들을 당신의 나라로 부르시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성도는 역사의 주역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참해야 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3)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본다.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이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며, 역사에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O. Cullmann). 그리스도를 통해 무한하고 영원한 구속선(球贖線)이 일반사를 꿰뚫고 들어왔으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영원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3. 경성(警醒)에 관한 교훈(13:28-37) 본문은 감람산 강화의 결론에 해당하며, 두 가지 비유를 통해 항상 종말론적 긴장을늦추지 말고 깨어서 주님 오실 날에 대비하라는 교훈이다. 이 중 무화과나무의 비유(28-33절)는 이제까지 본장에 묘사된 종말의 여러 징조들에 대한 결론으로서 내용상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깨어있는 문지기 비유는(34-37절) 이 결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내용이다. 한편 마태는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마 24:32-25:46에서 여러 비유들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본문의 두 비유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종말의 임박성. ‘이 세대'(30절)라는 표현이 주는 어감과 ‘홀연히'(36절)라는 말 등에서 종말의 임박성이 강조된다. 특히 ‘이 세대’라는 말은 모든 인류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 당시의 세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쨌든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 때문에(벧후 3:8), 우린 정확한 재림 날짜에 지나친 관심을 나타낼 필요는 없으며, 다만 항상 종말론적 긴장과 재림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서 부단히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2) 경성(警醒)을 촉구함. 33, 34, 35, 37절 등에는 ‘깨어 있으라'(keep, watch, NIV)는 말씀이 거듭 반복되고 있어 본 강화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드러낸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점점 더 약해지고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더욱 멀어져만 가는데, 많은 성도들은 영혼의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생각을 않고 있다. 죄악된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자포자기 상태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들은 주께서 홀연히 임하시는 날에 책망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마가복음13장 주석

마가복음13장 ​ 13:1-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성전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어 감격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네가 이 성전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감동이 되느냐 이 성전은 조금 후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리라”고 말씀 해 주셨다. 제자들은 감동할만한 가치도 없는 것에 감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있는 지” 묻고 계신 것이다. ​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기에 좋은 것에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보았을 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먹었다. 만일 그 열매가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성전을 보고 감탄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이상의 성전을 건축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서 풍요로움을 보았지만 다가오는 심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향락에 도취 되어 살았고, 롯은 소돔에서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그들 가운데 있는 악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을 때 그도 함께 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실패는 이처럼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주님은 성전의 외적 모습만을 보고 감격하고 있는 제자들이 이런 실패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 외형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성전은 참으로 감탄할만한 곳이었다. 헤롯이 지은 이 성전은 뛰어난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다. 이 성전은 모리아 산 위에 세어졌고 그 성전의 기초는 육중한 석조 벽을 쌓아올려 일종의 광대한 단을 형성했다. 이 단 위에 세워진 돌기둥들은 가로 13미터, 세로 6미터 높이 4미터였다. 성전 정면 바깥쪽은 황금 판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때는 빛이 반사되어 매우 아름다운 광채를 발했지만, 멀리서보면 금박을 입히지 않은 부분은 매우 하얗게 보였기 때문에 마치 눈 덮인 산과 같이 보였다고 한다. 헤롯은 이 성전을 46년 동안 지어졌지만 예수님 당시까지도 완성 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갈릴리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런 웅장한 성전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었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성전 건물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은 다만 철거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빈집과 같이 무가치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람의 눈에는 위대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주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볼 때 주님이 보시는 것처럼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청하신다. 우리가 그토록 감탄하고 있는 것들이, 그토록 부러워하고 있는 것들이, 그토록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그토록 누리고 싶은 것들이 주님께서도 우리가 보는 것처럼 보기에 좋으신 것일까?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가 보기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묻고 계신 것이다. ​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무엇을 볼 수 있느냐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지금 무엇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지 묻고 계시다. 헤롯은 46년 동안 세계에서 뛰어난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인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가 건축한 이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여 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일생동안 수고하여 지은 집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것이라면 우리의 수고는 헛될 것이며 또한 우리의 삶 자체가 낭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반복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능력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헤롯의 마음에 있는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욕망에 이끌려 서로 경쟁하며 사막에 피라밋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고 정글 속에 웅장한 신전들을 세우고, 도시마다 수많은 사원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일생을 수고함으로 이루어 놓은 이것들이 결국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여 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의 전기(轉機)를 맞게 된다.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일화를 알고 있다. 그는 중세 철학과 신학의 거장으로서 교회와 동료들의 기대 가운데 카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신학대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러나 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던 이 책을 어느 날 갑자기 중단함으로 그 책은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가 집필하던 것은 도중에 그만둔 것은 미사 중에 본 계시로 인하여 자신이 저술하고 있는 일은 마치 지푸라기처럼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이나가키 료오스케, 토마스 아퀴나스, 새남, 1995, P163). 토마스에게 일어났던 예를 우리는 바울의 삶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에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자랑할 만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 후 그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을 해로 여겼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이라(빌3:7,8)” 언급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변화는 그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로부터 “그 일이 참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가?”로 바꾸어 졌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이처럼 그들에게 시각이 변했을 때 그들의 삶도 변한 것이다. 만일 우리도 그들처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바꾸어진다면 일생동안 지푸라기 같은 것을 위하여 힘을 다해 수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일들은 어떤 것들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세 가지 영원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사랑이고 구원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크고 위대한 일을 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일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에 전심할 것이다. 즉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되, 그 일이 세상에 사랑을 보다 더 풍성히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이라는 의미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일도 바로 이와 같은 일들이다. 주님은 헤롯처럼 불가사의한 성전을 지으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상아탑(象牙塔)을 쌓으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허락된 환경에서 요청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심으로 바로 그 일을 통하여 세상에 사랑이 더 풍성해 지도록 하셨고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이끌어 주는 일을 하셨다. ​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위대해 지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어 세운 모든 바벨탑들은 모두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막 가운데 세운 웅장한 피라밋도, 정글에 세운 거대한 신전들도, 그리고 대도시마다 세워진 불가사의한 수많은 건축물들도 시간이 더해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웅장했던 건축물들 가운데는 이미 폐허되어 돌기둥 몇 개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벽돌 조각들만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세우신 집은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견고히 서가고 있다. 우리는 필립부룩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한다. “이제까지 진군한 모든 육군과 이제까지 편성되었던 모든 해군과 이제까지 의회에 참석하였던 모든 의원들과 그리고 이제까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합쳐 놓아도 이 고독했던 생애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 만큼 능력 있게 이 지상에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준 분은 없습니다” ​ 주님은 성전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묻고 계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 막13:3-13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제자들은 주님께서 성전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한 시간에 주님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 물었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종말의 증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즉 세상의 마지막 때 나타날 징조로서 미혹이 있을 것이고(13:5), 각처로부터 난리의 소문이 들려 올 것이고(13:7,8), 기근이 있을 것이고(13:8),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이고(13:9,13),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있을 것이고(13:12), 만국에 복음이 증거 될 것이다(13:10). 그러나 정확한 시기는 오직 성령님만 아신다(13:11). ​ 특별히 제자들의 주된 관심이었던 종말에 대한 시기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할 때,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종말을 자신들의 생애 동안에 임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종말이 자신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임할 것으로 믿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이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성경이 거짓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성경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이 종말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분명히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고 있었다. 사도들이 주님께 “때와 시기”에 대하여 물었을 때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이 자신들의 생애 어는 날인가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하고 물었을 것이다(마24:3,행1:6). ​ 실제로 이런 종말에 대한 임박 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과 신앙에 많은 문제점을 주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종말과 관련하여 갖게 된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쓴 서신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지만 재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믿음의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재림 전에 죽은 믿음의 형제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신앙의 문제를 가지게 되었고(살전4:13-18), 또한 그들 중에 일부는 종말에 대한 그릇된 신앙으로 인하여 규모 없는 생활을 하였다(살후3:6-15). 이처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것이다. 사도들조차 처음에는 주님께서 곧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체 될수록 그들은 종말의 시기에 대하여 숙고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임박한 종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믿음의 여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바르게 지도해 줄 수 있었다. ​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의 시기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시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주님께서 때와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다음의 몇 가지 개념들 가운데 하나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하루는 우리에게 천년과도 같고 우리에게 하루가 하나님에게는 천년과도 같다는 것이다(벧후3:8).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시간에 대한 개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시간의 개념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심으로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사용하실 때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과는 다를지라도 그 언어를 통하여 전달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류 없이 전달해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시간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실 때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시는지” 주의해 보아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급하시는 시간은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시간이며,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시기”에 관하여 알아야할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마지막 때” 또는 “마지막 날”이라는 말은 주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 사이의 모든 시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바로 그때가 “마지막 때”이었던 것처럼,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마지막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떤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말을 마치 현재만을 의미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처럼 말한다면 그가 무지함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때와 시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선지자적 단축법”이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하여 동일한 시점에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이런 것을 “선지자의 단축법”이라고 한다. ​ 이처럼 “때와 시기” 우리가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예들 가운데 하나를 마태복음24, 25장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이 학설들 가운데 하나는 여기에 언급된 내용들이 모두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D.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그 예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상의 종말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표라는 설이고, 마지막은 A.D.70년 예루살렘 멸망뿐만 아니라 종말에 있을 사실적인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언의 말씀에서 시간의 문제는 해결하는 일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언의 말씀에 나타난“ 때와 시기”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려는 호기심에 이끌리기보다는 시간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계시해 주고자 하신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시간에 대하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이다(여기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D.M 로이드 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 선교회, PP122124. 참조). ​ 13:14-23.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의 징조를 말씀하신 후, 그와 같은 징조들 가운데 결정적인 징조를 볼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 날에 대한 결정적인 징조로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말씀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3:14-16)” 주님은 제자들에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우리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도망하라고 말씀하실 때 집에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미련도 두지 말고 즉시 도망하라고 하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그 날에 임할 환란의 극심함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도망하라”는 것은 마지막 때의 환난을 피하기 위하여 취해야 할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때를 알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야 말로 마지막 때를 알리는 결정적인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70인 역의 다니엘12장 11절을 문자적으로 취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우상을 의미하고 그것이 “서지 못할 곳”은 성전을 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은 “우상이 성전에 세워진 것을 보거든”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예언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행위와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 B.C.168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위에 주피터를 위한 제단을 건립하도록 명했기 때문이다. 주석가들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시대의 예표로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드은 이 예언을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과 연관 시켜 해석하고 있다. 70년 9월 26일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들의 군대기를 성역(聖域) 동문 맞은편에 세우고 거기에서 희생제를 드렸다. ​ 주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볼 때 어째서 도망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이후로 극심한 환란이 시작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날의 환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13:17-20)” 그날로부터 시작 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대 환난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만일 이와 같은 환난이 지속 된다면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환난을 피하여 도망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날을 감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날의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특별히 여기 기도하라는 것은 환난의 날에 즉시 피할 수 있도록 방해 되는 모든 환경을 제해 주시도록 구하라는 의미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가 있는 자는 환난의 날에 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고 또한 그 날이 안식일에 임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의 날에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하여 즉시 피하는 일에 방해 받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그날에 거짓 선지지들의 미혹을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다. ​ 13:24-27.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종말에 대한 징조로서 성경은 천지지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24:4-14).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포함하여 하늘에 무서운 징조들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마24:29,30.막13:24,25.눅21:25,26). 이와 같은 때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여기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는 것은 주님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함이다.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주로 오실 때에는 초라한 말구유로 오셨지만 이처럼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중에 오실 것이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볼 것이다. 그 날에 이루어질 또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을 모든 곳으로부터 불러 모으시는 일이다. 주님은 그 날에 있을 또 다른 한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란 모든 곳을 의미한다. 주님은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 13;28-37.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24:29-32).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보이면 세상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교훈은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분별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의 사람들 역시 세속화에 휩쓸려 갈 것이다. 특별히 동일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자기 시대에 무감각함으로 멸망 받은 노아의 시대를 예로 들어 교훈 해 주심으로 시대를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 주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도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마24:37,38)”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홍수 심판을 경고하셨지만 아무도 이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노아가 홍수 전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전심했다. 즉 그들은 너무 현실에 집착하여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노아의 식구들 외에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은 홍수의 심판으로 멸망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징조를 보여 주신다. 이 징조를 살피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다. ​ 어떤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과 회심과 관련시키고 있다.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언들은 많은 있다(슥12:10,13:1,고후3:15,16,롬11:25-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마8:11-12, 마21:28-32, 21:43, 마22:1-14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상반되는 말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심을 종말의 징조로 볼지라도 그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은 한 개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스라엘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들 각 사람이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한 국가 또는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고 영적 의미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온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독립했다고 하여(1948년), 그것이 재림의 징조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적으로 복음을 믿고 구원받으리라는 기대도 성경적인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림의 징조로서 이스라엘의 회심에 대한 언급 역시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더 많은 사람들 즉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민족적 구별이 없이 하나님께서 구원하도록 예정하신 충분한 수가 구원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여야 할 것이다. ​ 주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알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13:29-33)” 이 모든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알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종말의 때를 알아야 하는가? 종말에 대한 징조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종말의 징조”라는 언어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종말이라는 언어는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것은 고난의 장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나 소망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날이 오늘이 될지 아니면 오랜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언제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뿐만 아니라 재림을 준비하며 살게 될 것이다. ​ 여기 믿음으로 미래를 전망하며 산다는 것은 종말의 징조를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일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말한다. 실례로서 마지막 때가 가까워올 수록 복음이 세상에 넓게 전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계속 전파 될 것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떤 사람들이 과학과 사회 발전을 예를 들며 앞으로 오는 세상은 복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때 일어날 징조에 비춰볼 때 앞으로 사람들은 복음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시대 복음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종말이 가까이 이를수록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가운데 충분한 수가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종말의 징조를 통하여 마지막 때가 가까이 이를수록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적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믿는 자들을 유혹할 것이고 박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종말의 징조들은 우리로 하여금 장래를 예측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믿음의 승리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한다. ​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셨다. 여기 “깨어 있으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는 의미이고(13:34),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한 일을 언제든지 셈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의미다(13:35,36). 그러므로 주님의 “깨어 있으라”는 권고의 말씀은 충성과 관계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마태복음에서는 종말에 대한 마지막 권고로서 충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5,46)” 여기 충성된 종이란 주인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주인이 위임해 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의미한다. ​ 종말에 대한 교훈과 적용에 대하여(막13:3-37를 중심으로) ​ 마가복음13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과 그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리는 징조들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예언과 징조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하나의 예표(豫表)일 뿐이고 실제로 본문은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마가복음13장은 가까이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징조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만 멀리는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다. ​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 가르침을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큰 원칙을 말씀해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그 가르침이 자신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적용하려 하기 보다는 단순히 그 사건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렸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호기심이 제자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세워지기도 하고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에 대하여 말씀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 그 가르침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는 언제나 함께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지적 관심만 가지고 있고, 적용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 관심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실제로 많은 사람이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릇 행하였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종말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교훈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지적 호기심은 그들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데 이르렀던 것이다. 종말론에 대한 그릇된 호기심으로 인하여 이단에 빠지게 된 경우라든지, 또는 이와 같은 호기심에 너무 깊이 빠져버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모두 그릇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하여 받게 된 해악들이다. 이런 해악은 종말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표적과 기사 또는 치유 등과 같은 가르침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릇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하여 위험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공통적인 것은 지적 관심과 적용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4절은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주님은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가? 주님은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만족할만한 지식을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믿는 자들로 하여금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미혹들이 많아질 것이고(13:6), 곳곳에서 전쟁의 소문과 지진과 기근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올 것이고(13:7,8),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것이고(13:9-13),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표적과 이적을 행할 것이고(13:21-23), 천지에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13:24-27) 주님은 이처럼 제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가 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무지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의 지적 관심을 억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식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에 대한 지적 관심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신앙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삶에 필요한 모든 지적 관심에 대하여 성실해야한다. 만일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제자들처럼 종말에 대한 지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고 또한 신앙생활에서 체험의 문제들 즉 기도응답, 치유, 표적과 기사 등에 대하여 지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성실히 연구해야 한다. ​ 그러나 주님은 이처럼 제자들의 지적 관심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것으로만 만족하시지 않았다. 주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후, 그들에게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13:28,29)”고 말씀하시고 계속하여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13:33)”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얻었다면 그 지식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지하게 살피고 그것을 삶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대한 만족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 지식은 그들에게 생명과 멸망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실제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은 우리에게 생명과 멸망의 길 중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지식이 우리에게 이처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음의 두 가지 방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지식의 중요함을 충분히 가르쳐 주셨다. 하나는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이 지식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들을 통하여 종말을 대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삶을 결단하게 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BC.722년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한 역사적 사건을 대하거나 또는 BC.586년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한 역사적 사건을 대할 때 언제나 갖게 되는 물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것이다. 그들도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과 경고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겠는가”라고 의심하므로 그 날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날을 그처럼 비극으로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장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홀연히 그 날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 그들처럼 비극으로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나간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주시는 교훈과 앞으로 다가올 종말에 대한 예언들은 우리에게 예언의 말씀을 무시했을 때 오는 불행을 보게 해 주고 앞으로 임하게 될 주의 날을 준비하도록 한다. 그러면 주님은 이처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 첫째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말씀하셨다.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거짓으로부터 미혹을 받아왔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미혹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어떤 미혹은 마치 주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신앙에서 떠나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필요가 보장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며 영원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세상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진리에 굳게 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미혹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 둘째, 주님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될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되시며 세상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셋째,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도록 말씀하셨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13:33,34)” 여기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라는 말은 우리의 부르심에 깨어 있으라는 의미다. 삶의 주변에 속한 것들에 대하여 주위를 빼앗김으로 삶의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가 받아야할 교훈은 우리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도록 허용해 주신 시간 동안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 2020. 8. 24.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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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금) “마가복음 13:1-13” / 작성: 정한조

본문 마가복음 13:1-13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무너질 성전(1-2절)

마가복음 13장은 마태복음 24장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감람산(올리브산)에서 전하셨다고 하여 ‘감람산 강화(Discourse on the Mount of Olives)’라고 불립니다. 또한 그 내용이 마지막에 있을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작은 계시록(Little Apocalypse)’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즉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할 시점에 장차 겪게 될 일을 말씀하여 주심으로, 미리 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는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1-2절은 장차 무너지게 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서, 그 건물의 웅장함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세 번째 성전입니다. 첫 성전은 솔로몬이 7년 동안 건축했기에 ‘솔로몬 성전’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는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의 주도로 건축하였기에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며, 이 세 번째는 헤롯대왕의 주도하에 건축되었기에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짓고 있는데, 당신이 사흘 만에 일으킨다고요?”

이 헤롯 성전은 BC 19년에 착공되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보내실 때도 여전히 지어지고 있었고, 그 후로도 약 30여 년 동안 더 지어져, 6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82년 동안이나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그 터가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넓었고, 성전 주춧돌 하나의 크기가 가로 7.3m, 세로 1.2m나 될 정도로 웅장하였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흰색 돌로 지어진 성전은, 각각의 돌들이 서로 엇갈려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성벽이 파도가 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또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성전은 황금으로 장식된 백색 대리석의 거대한 산과 같았다고 찬양했습니다.

제자들이 성전에 대해서 그 크기의 웅장함과 그 내용의 화려함에 놀라서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답변은 그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이었습니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초토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전 건물에 함몰되어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내면의 부패함과 불경건함을 직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성전은, 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세푸스의 책, 에는 이때의 모습을 “화염이 치솟았을 때… 그 성전이 폐허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까지 학살당했다 …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제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우리 자신이 성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웅장하게 보이는 크기만을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화려함을 따라가기만 하고, 그 내면의 정결함, 구별됨을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라는 성전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웅장함과 화려함만을 추구하면 할수록, 나중에 “내 삶에 그 무엇 하나도 다른 것 위에 없다”라고 깊은 한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의 웅장함이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 내면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이자 인생의 지혜입니다.

재난의 징조(3-13절)

3-13절은 감람산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답변의 말씀입니다.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반대편 감람산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예수님과 성전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을 반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본래 역할은 ‘기도하는 집’인데, 종교지도자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집’은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강도’는 자기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은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성전을 마주 보고 계심으로, 성전이 잘못되어 있음을 그림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몹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틀림없고, 이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것은 다 빼앗기고, 다 무너져도 이 성전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세우시기 위해서라도 지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새겨 놓아야 할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혹을 당하게 되면 시대를 바르게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특히 이단이나 사이비에 영적으로 미혹 당하게 되면 자신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바르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미혹하다(헬. 플라나오)’의 문자적인 의미는 ‘길을 잃다’입니다.

혹시 길을 잃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길을 잃으면 참 당황스럽고 두렵습니다. 종종 우리나라 뉴스나 국제뉴스에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거나 극적으로 구조된 기사를 보곤 합니다. 특히 거대한 산에서나 겨울 산에서 길을 잃으면 더욱 위험합니다.

혹 우리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에게 묻거나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설령 해외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라에 있는 대사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길을 잃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인생의 길은 세상의 길과 같이 몇 갈래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길이 있기 때문이고,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 역시 유한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길을 잃으면, 좀 가난하게 살고, 덜 배운 채로 살면 됩니다. 꼭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배웠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길을 잃으면, 영원히 미아가 됩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 죽음 이후에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길을 잃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웰빙(well-being)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길을 잃어서 미혹되면 웰다잉(well-dying)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음부에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6절 이하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일들입니다.

(6-8)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지막 때가 되면 ‘자칭 예수’라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 사람들의 길을 잃게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망했던 때인 66-70년 사이에 자기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모든 시대에, 세계 곳곳에 ‘자칭 재림주’가 등장했습니다. 이단 종파를 파헤치는 일을 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만 해도 ‘자칭 하나님’이 20명 정도가 있고, ‘자칭 예수’는 5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또 대지진, 쓰나미, 화산 폭발, 전쟁 등이 일어나면, 마지막 때가 왔다고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전이나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도 거짓 그리스도(pseudo-christ)와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항상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아직 끝은 아니니라” 그래서 끝이라고 부추기는 사람은 전부 가짜입니다. ‘주님은 밤에 도적같이 임하신다’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 신실하면서 주님을 목적 삼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10)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끊임없이 있어 온 일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의 지하 카타콤에서 살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나 북한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박해를 받지, 오늘날은 박해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오늘날도 여전히 박해를 받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으로 박해를 가합니다. 그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웰빙이며, 어떻게 죽는 것이 웰다잉인지를 바르게 직시해야 합니다.

5절의 ‘주의하다’와 9절의 ‘조심하다’가 같은 단어인데, 모두 ‘보다’입니다. 바르게 보는 사람이 웰빙과 웰다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1-13)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진리를 따라서 살면, 세상적으로는 이익을 보는 것보다 손해를 보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서 바보처럼 산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표징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할 말과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은 잘 견디는 것입니다. 잘 견딘 사람의 대표적인 예는 요셉입니다. 요셉이 17살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서 종살이를 했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요셉이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견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다(105:19)”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지막 때의 일에 관해 증거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는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사이’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미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때를 가장 웰빙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웰빙이 끝나는 날, 우리는 웰다잉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웅장하게 보이고, 화려하게 보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을 목도 했고,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는 처참한 상황도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지난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등장했고, 지금도 있습니다. 또한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한 세기가 저물 때마다 종말이 임박했다고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잘 지키며, 말씀에 순종하는 웰빙의 삶을 살다가, 웰다잉하는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19가 대유행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더 성숙하게 하시고, 이 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예방 백신과 치료 약이 속히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자랑스러워했던 것이 무너진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잘못된 말을 들었다가 인생의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까? 그 후에 어떻게 다시 돌이킬 수 있었습니까?

3.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마가복음 13장 1-37절 말씀 묵상

마가복음 13:1-37 말씀 묵상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마가복음 13:32‭-‬33).

“But about that day or hour no one knows,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Be on guard! Be alert ! You do not know when that time will come.”(Mark 13:32‭-‬33).

1) 성전 멸망을 예언하심 (1-2)

한 제자가 성전의 외형이 웅장하고 거대한 것을 보고 예수님께 그 성전을 바라보신 느낌울 묻자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성전은 음모, 탐욕,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강도의 굴혈로 주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2) 마지막 때의 징조 (3-23)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주님께 언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그 징조는 어떠한가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처에 지진과 기근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8).

예수님은 성도들이 공회와 회당에서 핍박을 당하고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지만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그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오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질 뿐만 아니라 배반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9-13).

지붕 위에서 환난을 만난 사람은 곧바로 피신을 해야지 집안으로 물건을 나지러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이 다가올 때 재물에 욕심을 내어 되돌아가는 자들은 롯의 아내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 것과 아이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14-17).

환난의 날이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그 날은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환난의 날에는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신다고 하셨습니다(18-20).

마지막 날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통해 택하신 백성을 미혹한다고 주님은 하셨습니다(21-23).

3) 예수의 재림(24-27)

자연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그때에 즉 해가 어두워지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전인류에게 동시에 임합니다.그 때에 천사들은 믿지 아니한 악인들을 의인들 가운데서 갈라내어 심판을 받게 합니다(27). 이때 주님은 성도들을 모으시고 그들에게 상을 내려 주십니다(벧전5:4; 계22:12).

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깨어있을 것을 말하심(28-37)

주님은 무화과나무의 상태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하라고. 천지는 없어져도 말씀은 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재림의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는데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까지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므로(32), 성도들은 깨어 있어 종말의 징조를 분별하고 경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신 오늘!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며. 회개하고 그 날을 기다리며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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