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보리암 | 근심, 걱정,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에너지가 담긴 곳, 바다와 산을 품은 남해 보리암-떠나요 풍수힐링여행 7회 25772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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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은 절경인데 입장료는 현금만 고집해…

남해 호구산 산행을 마치고 금산 보리암으로 들어가려는 데, 차량이 빠져나올 때마다 차를 들여보낸다. 주말에만 차량이 많은 줄 알고 방심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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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lectee.tistory.com

Date Published: 2/25/2021

View: 8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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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남해 금산 보리암

  • Author: 한국불교 대표방송 BTN
  • Views: 조회수 117,3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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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8.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Ca9qSuhM

경상도 여행 가볼만한곳 : 남해 금산 보리암

두번째 방법

두번째 방법은 내차 가지고 올라가는것으로

정상에 있는 2주차장이 혼잡하지 않을경우 그냥 올라가시면 되나

아까 전망판에서 본 혼잡이 뜰 경우 사진속 차와 같이 대기라인에서 대기 타다가 올라가야 합니다

아래있는 1주차장은 대형 주차장이라 항상? 널널하구요

여기서 진짜, 완전, 레알 이해할수없는 정보가 인터넷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어

바로 잡아 드리면..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심해요..ㅠ

잠깐 서면 차가 뒤로 밀려요.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아시겠죠?

길이 험하니 웬만하면 셔틀버스 타시는게 좋아요

라며 마치 차량이 가기 힘들정도로 경사와 도로상태가 안좋은것처럼 이야기 하길래

각오를 좀 하고 올라갔는데 정상까지 도착한후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며 허탈 하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정도의 경사길을 두고 가니 못가니 라는 말이 나오죠?

여기 못 올라올 정도로 힘 딸리는 차가 있나요? 경차 힘 약하나?

이정도 길 운전 못하면 완전 초보 아니실까요?

제 기준으로는 그냥 경사가 좀 있네.. 수준의 아무것도 아닌 길로 차 가지고 그냥 올라가시면 됩니다

니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거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저 사진만 봐도 1주차장 텅텅 비고, 2주차장 거의 만차인 상태로

길이 그렇게 험하다면 2주차장에 차 두고 셔틀버스 타고 가시는 분이 많았을겁니다

남들이 그렇게 쓰니까 나도 그렇게 써야할거같은 따라쓰기 글의 폐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를 놓고 가야하는 경우는

대기라인에서 기다리는 차가 너무 많을 경우 고려해볼 일로

그외의 경우는 그냥 편하게 내 차 가지고 올라가세요

여기 평일에도 찾는분 많다고 했지요?

월요일 10:50 부터 대기라인 웨이팅 걸리기 시작 했습니다

남해 금산 ~ 보리암 등산코스

온 산에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다는

남해 금산(錦山)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이다.

남해 금산 대장봉과 보리암

남해 금산 정상 남쪽에 600m 높이의

해발 고도에 자리한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보리암전 삼층석탑과 해수관음상

경남 남해군 상주면 두모 주차장에서

시작하여→부소암→상사바위→금산 산장

→제석봉→금산 정상→보리암→쌍홍문을

거쳐 금산 주차장까지 산행을 즐겼다.

남해 금산 등산지도(출처:국제신문/일부편집)

두모 주차장에서 두모계곡을 따라

금산 부소암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는

2013년에 새로 개방되었다고 한다.

두모 주차장 입구에서 보이는 금산

그런데 두모 주차장 금산 등산로 입구

왼쪽에 역사적 기록이나 정확한 물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진시황 시대의

인물상이 세워져 있어 볼썽사나웠다.

두모 주차장 등산로 입구

금산 정상으로 산행 시작

석축과 계곡을 건너는 다리

두모 주차장에서 완만한 등산로를

15분쯤 올라가서 나무다리를 건너자

조금 후에 양아리 석각과 마주쳤다.

남해 양아리 석각 안내문과 거북바위

거북바위에 새겨진 양아리 석각

문양을 서불과차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고 한다.

쉼터와 계단

남해 양아리 석각을 지나서 40분쯤

더 올라가자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부소암 아래 멋진 전망대에 도착

전망대에서 남해 설흘산과 호구산,

돌산도를 비롯하여 지리산까지 보였다.

통천문을 가로 막고 설치된 철계단

전망대를 지나서 통천문이 있는

암벽에 설치된 원형 철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부소암 입구에 도착했다.

부소암 암자 입구

문이 잠긴 부소암 암자는 관람하지

못하고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부소암 바위 왼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부소암 바위 왼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남해 호구산과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더 잘 보였다.

남해 호구산, 망운산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부소암 바위 옆 등산로에서 바라본 지리산

하동 금오산과 지리산

부소암 바위를 지나서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

뒤돌아본 부소암 (바위)

부소암은 진시황의 장남인 부소가

2대 황제가 되는 호해와 환관 조고를

피해 머문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부소암에서 펼쳐지는 멋진 풍경

부소암 암자와 동명인 부소암 바위를

지나서 야자 매트가 깔린 흙길을 따라서

계단을 올라가자 헬기장과 마주쳤다.

헬기장에서 오른쪽 상사바위로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완만한 길을 거쳐 계단을 내리락

오르락하자 상사바위에 올라섰다.

상사바위에 도착

상사병에 걸린 젊은 남자와 머슴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온다는 상사바위에

올라서자 수려한 남해의 풍광과 금산

전경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상사바위 오른쪽으로 보이는 팔선대

상사바위에서 상주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인다.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금산 전경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다운 금산과 보리암

우뚝 솟은 대장봉과 보리암

3대 기도처라는 보리암을 당겨 보았다.

상사바위로 올라갔던 길을 따라서

내려와서 갈림길에서 헬기장 대신에

오른쪽 금산 산장 쪽으로 진행했다.

상사바위에서 금산 산장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올라가서

좌선대를 지나자 금산 산장에 도착했다.

금산 산장에 도착

금산 산장에서 바라본 제석봉과 남해바다

금산 산장 전경

금산 산장을 지나자 잠시 후에

전망이 멋진 제석봉에 올라섰다.

제석봉에 도착해 바라본 금산 산장

제석봉에서 보이는 상주와 상사바위(뒤편 높은 바위)

일월봉과 보리암

제석봉에서 보이는 보리암 전경

제석봉에서 흔들바위와 단군 성전

입구를 지나서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망대가 있는 금산 정상에 도착했다.

단군성전 입구에서 금산 정상으로 가는 길

금산 정상(705m)의 망대

금산 정상에 올라사자 사천 와룡산,

통영 벽방산을 비롯하여 멀리 거제도

가라산과 노자산까지 눈에 들어왔다.

금산 정상에서 통영 벽방산과 거제 가라산이 보인다.

북쪽으로 보이는 삼천포와 와룡산

사량도와 멀리 벽방산

미조항과 욕지도

금산 정상의 망대 아래쪽에 있는

옛 정상 표지석이 서 있는 바위에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옛 정상표지석에서 바라본 풍경

미조와 상주 앞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금산 정상 조금 아래쪽 갈림길에서

왼쪽 보리암 방향으로 쭉 내려갔다.

금산 정상에서 보리암으로

정상 아래 갈림길에서 금산각을 지나서

보리암에 도착하여 곧바로 해수관음상과

보리암전 삼층석탑 방향으로 내려갔다.

금산각

보리암 해수관음상으로

금산 대장봉과 보리암

보리암은 68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수도하시던 유서 깊은 사찰이라고 한다.

보리암 해수관세음보살상

보리암 뒤편의 화엄봉과 대장봉

보리암전 삼층석탑

30여 년 만에 보리암을 관람하고 쌍홍문을

거쳐 금산 주차장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보리암에서 쌍홍문으로

금산의 관문인 천연 암굴 쌍홍문에는

천장에도 구멍이 뚫려있으며,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 하여 원효대사가

쌍홍문으로 이름지어 불렀다고 한다.

쌍홍문에 도착

쌍홍문을 통과하면서

쌍홍문에서 바라본 풍경

쌍홍문 전경

쌍홍문을 통과해서 한 컷

쌍홍문에서 12분쯤 하산하여 도선

바위를 지나서 18분 정도 더 내려가자

금산 주차장으로 하산 완료하였다.

금산 주차장으로 하산길 풍경

금산 주차장에 하산하여 바라본 금산

대장봉과 만장대를 당겨보았다.

웅장한 금산 상사바위

두모주차장에서 금산 산행을 시작하여

→두모 계곡→부소암→헬기장→상사바위

→금산 산장→제석봉→금산 정상→보리암

→쌍홍문→금산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등산

코스는 휴식을 포함해 4시간쯤 걸렸다.

2022년 1월

남해 금산, 보리암은 절경인데 입장료는 현금만 고집해…

2021_65

2021.6.4. (금) 13:25~17:06(3시간 40분 탐방, 6km 이동, 평속 1.9km/h) 맑음

남해 호구산 산행을 마치고 금산 보리암으로 들어가려는 데, 차량이 빠져나올 때마다 차를 들여보낸다.

주말에만 차량이 많은 줄 알고 방심했는데, 평일에도 이렇게 차량이 많다니 놀랍다.

2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신호에 따라 올라가는데, 앞 차량이 너무 늦게 오른다.

워낙 가파른 곳이라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짜증도 난다.

복곡탐방지원센터에서 한참을 오른 끝에 보리암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니 엔진룸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 구간이라 오르는 내내 가속페달은 밟은 탓이다.

에이고 아까운 즐풍 차 하마터면 엔진룸 탈 뻔 했다.

복곡탐방지원센터에 주차비 5,000원을 내고 보리암에선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다.

배낭에 현금이 없어 신용카드로 결재하겠다고 하니 무통장 입금을 요구한다.

사업자가 신용카드 결재를 거부하면 제재를 받는데, 사찰은 완전히 치외법권 지역이다.

사찰의 순기능이 없어진지 오래 전이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입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보리암 주지님~

일반 국민은 수만 개의 눈으로 당신들의 못된 행태를 지켜보고 있으니 정도를 걷기 바라오…

언젠가 남해 금산을 탐방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다 보니 금산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 산행 시간이 빠듯하게 주어졌다.

차량 두 대가 동원될 만큼 인기가 좋아 두 차량의 회원을 모아 놓고 산행지 설명을 했다.

즐풍은 설명도 듣지 않고 마감 시간만 확인 후 하나라도 더 볼 욕심에 무조건 산으로 내달렸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라 산행 중반부터 태양은 빛을 잃어 사진도 별로 잘 안 나왔다.

오늘은 해 긴 초여름인데다 산행 대신 금산 정상인 보리암부터 탐방을 시작해 시간적 여유가 많다.

아침나절 많던 구름도 거의 다 물러갔고 날씨도 이만하면 나무랄 데 없으니 최적의 탐방 조건이다.

□ 줄사철나무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상록수의 덩굴식물과 사철나무와 닮은 모양이지만, 덩굴처럼 자라기 때문에 줄사철나무라고 한다.

잎은 마주나고 두꺼우며 길이 2~5cm의 긴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연한 녹색으로 5~6월에 피고 열매는 10~12월에 붉게 익는 자생종이다. (안내문)

□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이 각자(刻字)의 뜻은 “홍문으로 말미암아 금산에 오르다”란 의미로 주세봉이 바위에 새긴 글이다.

□ 남해 금산 봉수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13세기)예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론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적이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 가운데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루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대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 진주 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안내문)

□ 망대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705m)로서 사방의 조망이 넓고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바라볼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망대라 한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의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장엄한 일출은 가히 절경이다.

망대는 고래시대부터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 남해 금산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보광산에서 기도하면서 보강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왕위에 오르게 되자 은혜를 갚기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뜻으로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이 산을 금강산과 비교하여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으로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산의 으뜸봉인 망대와 자연 동굴인 쌍홍문을 비롯한 38경이 빼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특히 정상에서는 크고 작은 섬과 넓은 바다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안내문)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되어 살다 갔다는 부소암은 사람의 뇌를 닮았다.

□ 부소암

부소대는 법왕대라고도 한다.

남해에 와서 부소대를 오르지 않고서야 금산을 다 봤다고 말할 수 없다.

명산의 반열에 우뚝 솟은 금산, 금산 더욱 명산답게 만드는 곳, 그것이 바로 법왕대이다.

현 위치에서탐방로를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에 요새처럼 거대한 돌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이 천해고도 법왕대이다.

암벽 한켠에는 산신을 업고 포효하며 산을 내달리는 호랑이 형상의 조각도 보이고 작은 암자인 부소암이 위치해 있다.

아득히 눈길 머무는 곳에 소치도, 노도가 보이고 호구산, 망운산도 지척처럼 다가오다가 두모마을 다랭이 논도 눈에 들어온다.

들어갈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겸손한 논다랭이는 민초들의 선량한 마음처럼 아름답다.

이처럼 한점 티끌없이 빛나는 부소대(법왕대)대 옆에 위치한 작은 암자인 부소암은 그렇게 숨어 있어 더욱 아름다우며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2011년 12월 23일 보물 제1736호로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 53”을 소유하고 있다. (안내문)

지난번남해 금산 탐방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부소암이다.

드디어 가장 보고 싶었던 부소암에 도착했다.

부소암, 아 부소암이라니…

부소암 아래에 있는 작은 암자는 부소암으로 암자 암(庵)자를 쓰고

부소암 뒤 커다란 바위는 같은 발음의 부소암으로 바위 암(巖,岩)자를 쓴다.

연원으로 보자면 바위가 먼저이고 암자가 나중이겠다 상식적 생각이 가능하다.

이 부소암에 작은 건물을 하나 짓고 있다.

이 건물이 들어서면 더 들어설 공간도 없으니 더이상 추가 건물을 세울 수 없겠다.

부소암을 둘러보고 나오는 데, 따듯한 커피가 마련되어 있다.

온수통은 전기가 들어와 커피 맛에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한다.

올라올 때 무통장 입금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 따듯한 커피로 눈 녹듯 사라진다.

따듯한 마을의 소유자인 부소암은 보리암과 별개의 암자이길 바란다.

핸드폰 010을 연상시키는 특이하게 생긴 바위다.

010이 외국에서는 남근을 상징하여 기피하는 숫자로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이 쓰이는 숫자이다.

나중에 금산의 자랑인 쌍홍문을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다.

쌍홍문과 010은 암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바위로 같은 산에 이런 바위가 있다니 재미있다.

부소암을 지나 상사암으로 가려는 데 중간에 샛길이 보인다.

지름길이거니 생각하며 오르니 상사암과는 제법 거리가 떨어졌다.

길을 잘못 들었어도 새로운 바위를 보는 행운을 얻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인 셈이다.

상사암에서 이 암릉의 일부는 볼 수 있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다.

크고 작은 오 형제바위의 오붓한 모습

남해 금산을 산행으로 오른다면 제법 힘을 써야 한다.

단독으로 도는 개인 차량을 이용하면 차량으로 보리암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오르는 방법이 가장 편하다.

기껏 20여 분 오르면 보리암 매점을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암릉 탐방을 시작할 수 있다.

보리암 풍경이든 암릉의 비경이든 모든 게 아름다운 곳이다.

□ 상사암

상사암의 설화는 조선 선조 봉강 조겸(1569년)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아래로 굽어 보면 너무 높아

땅이 보이지 않아 사신암이라 부르고 “속세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하여 상사자가 오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상사암이라도 붙인 것이다”고 되어있다.

또한 한 젊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려 여인과 바위에서 사랑을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부잣집 주인의 딸을 사모하던 머슴이 상사병으로 죽은 후 뱀으로 변해 딸의 몸을 감아 떨어지지 않자

이곳으로 딸을 데려와 굿을 하자 뱀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 등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안내문)

워낙 많은 제각각의 바위군이라 만물상으로 통칭한다.

상사암에서 조망하는 보리암 일대

금산에 있는 바위 모두는 제각기 기기묘묘한 모습이라 작은 노력에 비해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멋진 산이다.

고흥의 팔영산이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이 육지에 알박기 형태로 팔영산지구로 지정했다면,

이곳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섬의 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명산이다.

분명 이름은 해상 국립공원인데도, 지상의 산을 끌어들일 만큼 멋진 산이란 뜻이다.

홍예문 형태의 바위가 만든 무지개다리

향로봉

□ 좌선대

옛날 신라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팔거사 등 삼사가 수도좌선했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 이들 삼사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이 뚜렷히 남아 있다고 한다. (안내문)

상사암에서 금산산장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구간에 좌선대가 있다.

지금은 나무가 자라 잘 안 보이는데, 멀리서 잡은 이 사진 맨 우측에 일부가 보인다.

금산산장을 지나 제석봉으로 오른다.

□ 제석봉

이 바위에 제석천이 내려와 놀다 갔다 하여하여 제석봉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재석천은 부처를 좌우에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을 말한다. (안내문)

금산산장

상주 은모래해수욕장이 소나무에 가려 좌측만 조금 보인다.

금산 탐방을 끝내고 상주 은모래해수욕장을 가는 데, 19km가 걸린다.

보리암에선 직선거리 4km에 불과하나 도로 사정이 열악해 돌고 돌아 거의 20km를 잡아먹는다.

멀리서 잡아보는 금산산장

제석봉이 상사암보다 훨씬 가까워 보리암을 더 선명하게 잡을 수 있다.

멀리서 보는 보리암은 금산과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배치 구조를 갖는다.

여러 전설을 품고 있는 상사암 전경

보리암 전경

향로봉의 웅장함

금산과 보리암은 사계절 어느 때라도 멋진 곳이다.

상사암 다시 보기

흐렸던 오전과 달리 오후엔 제법 선명한 날씨라 호구암과 탐방 순서를 바꾸길 잘했다.

금산 암릉은 하나하나 다 비경이다.

오늘은 힘들지 않게 차근차근 자세히 살피게 돼 정말 좋다.

대장봉과 형리암이다.

보리암이 3대 관음성지이니 4대 관음성지이니 하며 자랑이 많다.

이런 자랑이 아니라도 전체적인 풍경만 놓고 보면 명산임이 틀림없다.

이런 명산이라 진시황이 불로초를 캐러 보냈다는 일행이 남해에 왔다면 금산에 충분히 오르고 남을 만큼 멋진 곳이다.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올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부소암이란 바위 이름을 만들 정도로 진시황과 연결시키고 싶은가 보다.

사실 금산에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보냈던 서복이 새겼다는 ‘서불과차’란 한자가 있다.

이 글을 두고 많은 이론이 있으나 이 지역 주민은 진시황의 업적과 관련해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진시황의 큰 아들 부소가 다녀가지 않았음에도 부소암이라 지은 걸 보면 결부시키기 좋은 모양이다.

부소암을 전설을 믿지 않으면서도 굳이 거부하지도 않는다.

□ 화엄봉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자를 닮았다하여 화엄봉이라 하며,

신라시대의 유명한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하여 화엄봉이라는 설도 있다. (안내문)

일월봉

드디어 돌고 돌아 보리암에 들어왔다.

□ 해수관음성지 보리암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는 예로부터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을꼽아왔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하게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안내문)

보리암 석굴 속 부처님

□ 남해 보리암 전 삼층석탑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시는 건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남해 보리암 전 삼층석탑은 보리암 앞에 세워져 있는 탑아다.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이 약한 곳을 채우기 위해 세우는 비보탑 성격도 가지고 있다.

탑의 높이는 2.3m이며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몸돌과 지붕돌을 놓고 구슬모양의

모양의 머리 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불꽃과 연꽃을 나타내는 연상 두 개를 얕게 새겼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에 크기가 작으며, 위층 기단과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동 모양이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밑면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탑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쉬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두꺼운 지붕틀과 3단으로 된 지붕틀 밑면 받침 등을 보아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왼쪽 일월봉과 오른쪽 화엄봉

□ 화엄봉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자를 닮았다하여 화엄봉이라 하며,

신라시대의 유명한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하여 화엄봉이라는 설도 있다. (안내문)

해수관음봉

보리암 쌍홍문을 만나기 위해선 안내판이 옆 굴로 내려가야 한다.

부소암과 함께 금산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쌍홍문이다.

쌍홍문을 만나기 전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굴을 여러 개 볼 수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은 통상 양기가 많은 산으로 통하지만, 월출산의 월악산처럼 여성을 상징하는 월(月) 자가

금산에 이런 여성형의 굴이 많아 양기보다 음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 장군암

이 바위는 장군의 검을 집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하였으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안내문)

워낙 많은 굴이 있어 두어 개는 일부러 넣지 않았다.

앞서 부소암에서 상사암 방향으로 010 바위를 먼저 살폈다.

반대편에 이런 암굴이 많은 걸 양기 가득한 010 바위가 중화시키는 셈이다.

□ 보리암 쌍홍문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우아한 청옥빛을 뽐내는 남해와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보석처럼 박힌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다.

경남 남해군에 있는 금산(錦山)은 535㎢에 달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 공원이다.

금산에는 무려 38경이 전해 내려온다.

쌍홍문은 산 밑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보리암으로 갈 때 지나게 되는 관문이다.

암벽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는 것이 두 눈에 구멍이 뚫린 해골바가지처럼 험상궂게 보이기도 한다.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해서 쌍홍문(雙虹門)이라 불렀다고 한다.

[출처_남해,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2021.3.17]

보리암의 한자는 菩提庵(보제암)이다.

‘보리’는 불교의 이상인 깨달음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로는 ‘보제(菩提)’라고 쓰고, ‘보리’라고 읽는다.

‘보제’라고 하면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하여 수도하는 데 공연한 연상 작용을 일으켜 방해가 되므로

‘보리’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보리심[菩提心], 보리문[菩提門], 보리수[菩提樹] 등이 그 예이다.

쌍홍문이 있는 금산에 보제암이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란 생각이 든다.

이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가…

음굴은 하늘에도 생겼다.

쌍홍문의 한쪽 굴

만장대

□ 음성굴

만장대 바로 위쪽의 높이 2m, 길이 5m의 바위로 성음굴이라고도 불린다.

음성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있다고 전해진다.

이 굴에서 북을 올리면은 소리가 잘 펴져서 1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음성굴로 들어가 돌북을 치니 북소리가 온 골짜기에 메아리쳤다고 전했다. (안내문)

쌍홍문의 우측 굴 밖으로 보이는 장군봉

밖에서 본 쌍홍문

쌍홍문을 보고 다시 보리암으로 올라와 차량 회수를 위해 주차장으로 떠난다.

보리암은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이니 알려졌다.

법을 무시하는 치외법권 지역에 관세음보살이 있을지 만무하니 기도발원의 가피가 있을리 없다.

이런 혹세무민의 그릇된 오도가 방문객을 끝없이 유인한다.

보리암은 그저 풍취 좋은 사찰일 뿐이다.

개개인의 턱없이 욕심 많은 기도에 부처님이 일일이 가피가 보여줄까?

방문자는 그들이 소원하는 복을 빌 뿐이니 관세음보살이 무슨 능력으로 그 복을 다 들어주랴.

차라리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로 세상사 모두 각자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좋은 마음을 갖자.

즐풍은 무신론자로 불교를 폄하할 의도가 없으니 오해 없길 바란다.

보리암 소개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하고 수도하시던 절로서 금산(錦山)의 한복판에 관음봉을 기대고 위치한 유서 깊은 절이다.

이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부르고, 동록(東麓)에 범우(梵宇)를 지어 보광사라 불렀다.

명승 남해 금산 (南海 錦山)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남해 금산』은 지리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이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금산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南嶽)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다 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산이 작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 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산은 다도해에서 유일한 큰 체적의 화강암 산임에도 불구하고 토산 성격이 강해 남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마치 오색 자수판을 보는 듯하며 대규모의 낙엽수림이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갔다는 서불의 이야기가 담긴 ‘서불과차암’과 춘·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 老人星 또는 壽星)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스런 전설이 많은 곳이며,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인 보리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

Geumsan Mountain is part of a southern extension of the Jirisan Mountain Range. It was originally called Bogwangsan Mountain after Great Master Wonhyo (617-686) founded a temple named Bogwangsa Temple there. It was renamed Geumsan Mountain, meaning “Silk Mountain”, in tribute to Yi Seong-gye’s accession to the throne in 1392 as the founding monarch of the Joseon Dynasty, after he prayed for one hundred days on this mountain. Due to its outstanding scenic beauty, it is often compared with Gayasan Mountain and Jirisan Mountain, earning it various other names such as Little Geumgangsan Mountain and Little Bongnaesan Mountain, each implying it comes next to Geumgangsan Mountain. It is also favorably compared to Nanyue Mountain, a famous scenic mountain in China. Geumsan Mountain is further distinguished by its faraway island location, which serves to enhance its unworldly and mysterious feeling. Though it is the only massive body of granite in Dadohae, the Sea of Many Islands, the mountain also has an abundance of rich soil that nurtures the largest forest of deciduous trees along the south coast. In the autumn, in particular, the numerous fantastic rocks and stones harmonize with colorful foliage, creating fascinating landscapes reminiscent of gorgeous works of embroidery. The mountain provided various sites of religious practice for a number of famous Buddhist monks during the Silla Period, including Great Master Uisang and Master Yunpil. Still standing on the mountain is Boriam, a hermitage known as one of the three major Buddhist retreats in the country. There is a rock bearing ancient hieroglyphic symbols related with Xu Fu, a court sorcerer of Emperor Shihuang of the Qin Dynasty, China, who is said to have visited the mountain on his quest for the elixir of life. There is also a legend about Canopus, the Star of the Old Man, or the Star of Longevity, that can only be seen at the spring and autumn equinoxes.

南海锦山是智异山脉向南伸展而形成的山,据说元晓大师曾在此山建造了名为宝光寺的寺院后,开始称此山为宝光山,后来太祖李成桂在此百日祈祷并登上王位,为了报恩使用有“披上永不磨灭的绸缎”之意的“锦”字,改称其为锦山。据说新罗高僧元晓大师、义湘大师、允弼居士等曾在此修行。这里有很多神秘的传说,包括记载了中国的徐福为秦始皇求取长生不老药途经此地的故事之“徐福过此岩”、只有在春·秋分时节才能看到的老人星(掌管寿命的星,老人星或寿星)等。韩国三大祈祷道场之一的菩提庵也在此地,是非常具有象征意义的名胜。

「南海錦山」は智異山脈が南に伸びて形成された山で、元々は元暁大師がここに宝光寺という寺を建立したことから山の名前が宝光山と呼ばれてきた。しかし、太祖李成桂がここで百日祈祷を行った後王位に就くようになり、その恩返しのために永久不滅の絹をかけるという意味の「錦」の字を使って錦山と名付けたと言われている。新羅時代の高僧であった元暁大師・義湘大師・潤弼巨師などがここで修行を行ったと伝えられ、中国秦の始皇帝の不老草を求めるためにここを訪れた徐市の話が込められた「徐市過次岩」と、春・秋分の時にだけ見られるという老人星(人間の寿命を司るという星、老人星または寿星)にまつわる伝説など、神秘的な伝説が多く伝わる所であり、全国三大祈祷道場である菩提庵があるなど、象徴的な意味の多い名勝地である。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20여 년 전 승용차로 남해 금산(705m) ‘복곡탐방지원센터’까지 갔다가 20여 분 걸어서 보리암에 간 적이 있다. 보리암-금산산장-단군성전-화엄봉을 거쳐 다시 보리암주차장으로 회귀하는 2㎞의 비교적 짧은 구간이었지만 금산의 절경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도 사람의 발길은 잦았으나 보리암은 꽤 고즈넉한 절집으로 기억된다. 보리암에서 상주해수욕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노라니 이성복 님의 시, ‘남해 금산’의 시적 화자가 된 느낌이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남해 금산

상사암에서 바라본 설흘산과 멀리 여수 돌산반도

남해 금산은 돌을 매개로 신화적 사랑을 표현한 이성복의 시 외에도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성계의 기도, 진시황의 아들 부소와 시종 서복이 영생을 꿈꾸는 불로초를 찾으러 다녀간 전설 등이 깃든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산이다.

오늘은 그런 금산과 보리암을 트레킹을 통해 오르기로 한다. 내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여수에서 금산 등산로 입구인 두모주차장까지는 77km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보리암 일출/남해군

남해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타산이었으나 신라 중엽 원효대사가 이 산을 찾았을 때 갑자기 서광이 비쳐서 보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말 이성계가 입산하여 백일기도로 영험을 얻어 조선왕조를 세우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비단금(錦) 자를 붙인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하여 그때부터 금산으로 불리게 됐다.

금산은 보리암을 중심으로 해발 500m 이상에서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난온대 식물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면서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와 주변 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두모주차장의 서복상

두모주차장에 도착하여 오전 11시 10분경 등산로 입구로 향하는데 2015년 세워진 석상 서복상(徐福像)이 눈길을 끈다. 중국 진시황제의 명을 받고 서복이 삼신산 불로초(三神山 不老草)를 찾아 이곳 금산까지 왔다가 중턱에 지금도 해독할 수 없는 석각(양아리석각)을 남겨놓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기념하는 석상이다. 일명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불리는 이 양아리 석각은 1974년 경남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양아리석각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약 1km 남짓 오르자 일명 ‘거북바위’에 새겨진 암호와도 같은 ‘양아리석각’과 마주한다. 안내판의 내용은 이렇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시종 서불을 불렀다.

“서불아 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줄 터이니 불로초를 구해 오라”

서불은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다.

늙지 않게 해주는 풀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서불은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이 바위 위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뜻의 서불과차(徐市過此)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등산로

입춘을 지난 뒤 1주일이 넘어선 지 남녘의 바람에서는 따사로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겨우내 옷을 벗은 나목들도 차츰 잎눈을 맺으려 수분을 가지 끝으로 올려 보내고 있는지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부소암 아래 전망대 오르는 길

등산로는 차츰 가팔라져 오르막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더니 부소암 아래 전망대에 도착한다. 서쪽 남해 설흘산 너머로 한려해상국립공원 여수·오동도 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수시가지는 물론 돌산반도 향일암과 여수 앞바다에 떠 있는 안도와 연도도 조망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여수·오동도 지구. 가운데는 남해 설흘산

앞으로 10여 년쯤 후면 남해군 서면과 여수시 상암동을 잇는 총연장 7.3km(터널 5.93km, 접속도로 1.37km)의 해저터널이 건설된다. ‘남해~여수 해저터널’은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국비 총 6312억원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현재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을 거쳐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가 10분으로 줄어들어 여수시와 남해군은 30분대 공동 생활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관광객들은 쉽게 여수·순천권과 남해·하동·사천권을 넘나들 수 있게 되며 고성·통영·거제권까지 그 영향권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부소암 암자 입구

전망대에서 원형 철계단으로 된 통천문을 타고 오르니, 요새처럼 거대한 돌산이 우뚝 서 있다. 부소암이다. 부소암은 법왕대라고도 하는데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머물며 살다가 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부소암 아래의 작은 암자는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그곳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2011년 보물 제1736호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53’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 진시황제의 아들 부소가 머물며 살다 갔다는 부소암. 좌측 아래에 부소암 암자가 있다

부소암에서 단군신전과 상사암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해 상사암으로 향한다. 상사암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조 19대 숙종 때에 여수 돌산지역 사람이 남해로 이사와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렸다. 남자가 상사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 과부가 이 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 하여 상사암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상사암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상사암은 보리암과 상주은모래해수욕장을 두루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여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물려 든다. 상사암을 떠나 금산산장을 거쳐 단군성전으로 향한다. 단군성전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를 모시는 곳이다.

단군성전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봉수대가 있는 금산 정상으로 향한다. 금산 봉수대는 고려 중엽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둘레 26m, 높이 4.5m의 원형으로 원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다. 시야가 좋아서 봉수대에서는 신수도, 사량도와 두미도, 수우도 등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섬들은 물론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된다.

금산 정상 봉수대

정상 봉수대에서 보리암으로 내려서니 주말이라 그런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등산복 차림보다는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캐주얼 복장이 대부분으로 복곡탐방지원센터까지 올라와 보리암을 돌아보는 관광객들 같다.

보리암에서 바라본 상사암

해발 681m 절벽 위에 자리한 보리암도 많이 변해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상계사의 말사로 683년(신문왕 3년)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에 암자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보광사는 이후 조선 현종 때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菩提)’는 뜻으로 보리암으로 바뀌었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예전 보리암 주위로는 여러 건물이 들어섰고, 한 가지의 소원은 들어준다는 해수관음상 앞에서는 가족 단위로 기도를 드리는 인파들이 많다. 한국의 해수 관음 성지로는 예로부터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을 꼽는데 보리암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쌍홍문으로 가는 길

보리암의 한쪽에 조용하게 앉아서 남해를 조망하는 과거의 그런 낭만은 이제 느낄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해수관음상에서 쌍홍문 방향으로 하산한다. 급경사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쌍홍문에 이른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바위에 구멍이 뚫린 것인데 마치 수우도 해골바위를 보는 듯하다.

내려가다 본 쌍홍문

쌍홍문은 금산의 관문으로 옛날에는 천양문(天兩門)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雙紅門)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군봉(우측)

쌍홍문에서 1.6km의 금산주차장 입구까지는 급경사 돌계단이다. 그 사이에 장군이 검을 짚고 앞의 봉우리를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장군암과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는 신선들이 모여 놀았다는 사선대를 지난다. 비교적 한적한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준비해 간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한다. 오후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급경사 돌계단을 타고 금산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금산주차장

금산주차장으로 하산하여 주차해 둔 두모주차장까지 약 2km의 포장도로를 걷어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트레킹 코스> : 약 8.3km (5시간)

o 두모주차장 → 양아리석각 → 통천문 → 부소암 → 헬기장 → 상사암 → 금산산장 → 단군 성전

→ 금산 정상(705m) → 금산각 → 보리암 → 쌍홍문 → 금산주차장→ 두모주차장

한국섬뉴스에서 ‘섬기행’ 더 보기

[2월의 섬-남해도] ‘그 여자’ 떠났지만 돌산은 남았네

남해 금산 정상부 2km 산행과 설흘산 7km 종주, 일거양득 바다뷰 코스

남해 최고의 비경이라 해도 손색없는 금산 상사바위 일몰. 상사바위는 ‘경치의 왕’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예술적인 전망터다.

남해 금산은 가고 싶지 않았다. 풋풋하다 못해 어리숙했던 대학시절이 살아날 것 같았다. 당시 금산은 그냥 산이 아니었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 단 일곱 줄 시는 금산을 강렬한 낭만의 바위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처럼 비대면 강의가 아닌 낭만이 있던 시절이고, 연애 시가 가슴에 꽂힐 나이였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드론으로 촬영한 남해 금산 보리암.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위해 기도했던 곳이며, 전국 3대 기도터에 속할 만큼 영험한 곳으로 꼽힌다.

‘남해 금산’은 실연시失戀詩의 대명사였고, 금산 아래 상주해수욕장은 MT 명소이자, 청춘들의 낭만 여행지로 꼽혔다. 등산 문외한인 대학생들이 즐겨 찾을 수 있었던 건 8부 능선의 보리암까지 도로가 나있어 셔틀버스로 산행을 생략할 수 있는 이점도 한몫했다. 사랑에 실패가 있을까마는 두고두고 이불킥 했던 서툰 풋사랑은 여전히 돌 속에 묻혀 있었다.

다시 찾은 남해 금산은 변해 있었다. 보리암 입구의 리어카 행상이 장사 문구 대신 손님을 끌기 위해 써 놓았을 정도로 유명했던 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깔끔한 전망데크, 바닥엔 벽화가 그려진 세련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금산은 기기묘묘한 바위의 경연장이라 짧은 산행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이화여대 산악부 김미진·김지윤씨와 육군 소령 출신의 남해 사람 문부경 해설사와 입산한다. 평일 오후에도 보리암을 찾은 신도와 관광객 수가 적지 않다. 운동화 신은 이들이 중등산화와 등산복에 스틱까지 손에 쥔 우리를 힐끔 쳐다본다.

시야가 깨끗하진 않으나 미모를 숨길 순 없다. 길은 현대적으로 바뀌었으나 산세는 여전했다. 남해 앞 바다는 늘 그렇듯 잔잔하다 못해 적요했다. 검은 능선은 시선을 움켜쥐고 ‘왜 이제 왔냐’며 따라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고도 580m를 공으로 올렸다 하여 산은 면박 주지 않았다.

BAC 인증지점인 금산 정상 봉화대 곁의 표지석. 왼쪽부터 문부경 해설사, 이화여대산악부 김지윤·김미진씨.

과분한 경치였다. 잠깐 계단을 헐떡이며 오른 것치곤 정상은 지나치게 빼어났다. 대략 1,000년 전부터 망대望臺 역할을 한 봉우리답게 맛깔스런 한정식 같은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 앞에 솟은 금산 (705m)은 압도적이라, 촘촘히 뜬 섬을 꼬맹이 취급하고 있었다. 남해 앞바다 76개의 섬 중 73개가 무인도라는 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서인지 쓸쓸해 보였다. 섬 하나 골라 한 계절 깊은 숙면 같은 은거를 하고 싶다는 상투적인 생각이 스쳤다.

문 해설사는 시간이 없어도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며 이성계가 기도한 곳이라는 보리암 선은전璿恩殿으로 안내했다. 600년 된 영험한 기도터라 일러 주었으나 그저 흘러가는 능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산 이름도 이성계가 지은 것이다. 원래 보광산普光山이었는데, 이곳에서 기원하고 왕좌에 올랐다 하여 은혜를 갚기 위해 비단 ‘금錦’ 자를 산 이름으로 하사했다고 한다.

상사바위는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암릉이라 압도적인 고도감과 경치를 보여 준다.

해수관음상을 지나 산길로 들자, 익숙한 산길이 맞아주었다. 신라 원효대사가 쌍무지개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였다는 쌍홍문雙虹門은 기묘한 구멍으로 등산인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상주해수욕장 방면에서 산길을 올라오면 쌍홍문을 통해 정상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라톤 우승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부상품인 그리스 청동 투구를 빼닮아 누구든 사진을 찍게 하는 마력이 있다.

쌍홍문에서 본 남해도 앞 바다. 쌍홍문은 큼직한 바위 굴 아래로 산길이 연결되는 기묘한 기념사진 명소다.

이윽고 금산산장. 서정인 소설 <산>의 총각 교사 건우가 미인과 하룻밤 묵었던 그곳은 현재 숙박은 받지 않고 컵라면과 파전 맛집이 되었다. 할머니의 걸걸한 목소리는 여전하여 마음 놓인다. 지금은 SNS 촬영 명소가 되어, 젊은 커플 여럿이 절경의 남해를 배경으로 컵라면 먹는 장면을 찍고 있다.

걸음이 빨라진다. 노을 시간에 맞춰 상사바위에 오르려 속력을 낸다. 지금은 독일마을이나 다랭이마을이 가장 인기 있지만, 남해를 대표하는 경치의 왕은 상사바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벼랑 끝 마당바위에 올라서자 공기가 바뀐다. 산과 바다, 노을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곡 ‘비창’의 멜로디를 하늘에 뿌려 놓은 듯 감미로운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설흘산 암릉줄기를 오르는 김미진씨(오른쪽)와 김지윤씨. 응봉산과 설흘산을 잇는 산행은 바다 경치와 암릉산행의 즐거움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남해의 바위 명산, 설흘산

다음날도 산으로 향했다. 금산에서 맛본 바위산 특유의 재미가 아직 발바닥에 남아 있었다. 남해관광문화재단 윤문기 팀장에게 “산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설흘산을 권했다. 남해는 창선도를 포함하면 거대한 나비 모양인데 오른쪽 날개 끄트머리에 금산이 있고, 왼쪽 날개 끄트머리에 설흘산이 있다. 금산이 국민관광지격 명산이라면, 설흘산은 등산마니아들의 명산인 것.

선구마을에서 응봉산(473m)과 설흘산(482m)을 거쳐 다랭이마을로 내려서는 종주 산행에 나선다. 이화여대 산악부 김미진·김지윤씨의 밝은색 등산복이 앙상한 숲을 화사하게 바꿔놓는다. 아무도 없는 산길의 고요가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전망터 역할을 하는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 정상. 발 아래로 가천 다랭이마을이 보인다.

산길이 희미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강직한 선비 심성처럼 능선은 단순하고 길은 올곧았다. 소사나무, 굴참나무가 벗어놓은 낙엽이 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급하게 고도를 높이는 능선을 따라잡느라 신경 쓸 겨를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산 같은데, 조금만 바위가 거칠어진다 싶으면 계단이 있다.

해발 200m를 넘어서자 칼날 같은 절벽이 서서히 진가를 드러낸다. 뒤돌아보면 145m 높이에 걸맞지 않는 카리스마를 가진 뾰족한 시루봉이 솟았다. 곁으로 설흘산과 장동산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은 임포리 일대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듯 훤히 드러난다. 맛보기처럼 잔잔한 조망 터가 나오더니 고도 300m를 넘자 설흘산의 명소 칼바위 능선이 예사롭지 않은 검술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바위 검 위에 서자 와락 덮쳐오는 바닷바람, 단순명료한 푸른색 풍경들. 내 안에 갇힌 무언가가 풀려나듯 응어리가 해소된다. 먼 바다 끝 산에서 맞는 자유로움이 도시인의 내재된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있었다.

설흘산에서 하산하면 관광명소인 가천 다랭이마을에 닿는다. ‘다랭이’는 이곳 사투리로 좁고 긴 계단식 논과 밭을 뜻한다.

고도 400m를 넘어서자 거대한 절개지의 위용도 서슬 퍼런 100m 직벽으로 치솟는다. 칼날 같은 바위가 하나의 검으로 쭉 뻗었다. 난간이 없는 자연 암릉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도 없는 이 능선을 온전히 맛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칼로 베어낸 듯 계단식 다랭이논이 모자이크 무늬처럼 아름답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날카로운 미학의 바윗길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이곳에서 그토록 요동치던 마음의 바다는 잠잠해진다. 산행이 가진 육체와 정신을 꿰뚫는 단순한 여정이 정점에 이르면 카타르시스처럼 마음에 꼬인 실타래가 풀려난다.

돌탑이 있는 응봉산 정상에 이르자 맞은편 설흘산 정상이 보인다. 슬쩍 안부로 가라앉았다가 치고 올라 한 마리 향유고래처럼 부드러운 굴곡을 만들어 놓았다. 분위기가 바뀐다. 골산에서 육산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발디딤 푹신한, 시간마저 느리게 흐를 것 같은 푸근한 산길. 긴장이 풀린다.

덩실덩실 춤을 추듯 능선을 따라 고도를 오르내린다. 장단이 극에 이를 무렵 비로소 나타나는 정상. 4m 높이의 봉수대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건너편 금산과 지나온 응봉산 줄기가 우리를 알아본다. 아득한 산만큼, 아득한 시간들이 배꽃 날리듯 허공에 실려 간다. 지체 없이 하산길로 든다. 가보지 않은 바다 쪽으로 능선이 뻗어 있었다.

남해도 가이드

BAC 섬&산 인증지점은 금산이지만, 산행의 즐거움은 설흘산이 크다. 산행의 재미로만 보면 100대 명산 안에 들고도 남는다. 금산은 차로 7부 능선까지 올라 2시간 정도면 빠르게 둘러볼 수 있으므로, 남해를 찾았다면 금산과 설흘산 모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이라 정해진 코스만 산행 가능한데, 셔틀버스로 올라 둘러보는 것에 비해 산 아래에서부터 산행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파르고 경치 없는 오르막 숲길이다.

봉수대가 있는 금산 정상의 ‘남해 금산’ 표지석이 인증 장소다. 보리암은 기도발이 좋기로 유명한 경치 좋은 사찰이며, 쌍홍문 기암 동굴이 볼 만하다. 금산산장 우측의 벤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게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비경 맛집이다. 상사바위는 금산의 백미로 일출과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 이렇게 정상부를 한 바퀴 도는 거리가 2km이며, 사진 찍으며 여유롭게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설흘산과 응봉산 두 개의 산이지만 보통 통틀어서 설흘산이라 부르며 높이도 10m 정도 높다.

능선 서쪽 끝인 선구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 칼바위와 응봉산을 지나 설흘산 정상에 올랐다가 가천 다랭이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7km에 4시간 정도 걸린다. 다랭이마을에 식당과 카페가 많아 하산 후 구경과 식사를 하면 여행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칼바위는 서슬퍼런 직벽이지만 좁은 곳도 2m가량의 폭을 유지하고 있으며 난간이 많아 어렵지 않다.

교통

금산 입구의 복곡1주차장과 해발 580m의 복곡2주차장이 있다. 복곡2주차장은 비교적 협소해 이곳이 만차가 되면 1주차장에서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 셔틀버스가 있어 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고 오르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셔틀버스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행하며 승객 정원(29명)이 차면 바로 출발한다. 왕복 2,500원. 하행 막차는 오후 5시다. 보리암은 문화재관람료 1,000원을 받는다. 1주차장 주차료는 5,000원.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복곡1주차장까지

버스가 하루 2회(08:00, 17:10) 운행한다. 택시 이용 시 2만 원 정도 나온다.

BAC 인증지점

남해 금산 정상석 좌표 N34 45.231, E127 58.977

맛집 BAC 플러스 가이드 기사 참조

등산 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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