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행전 2 장 설교 | 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2:1-13)_주일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60515 8293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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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2:1-13)
주일예배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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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1절-13절 오순절에 일어난 기적, 수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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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2:1-13)_주일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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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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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1절-13절 오순절에 일어난 기적, 수요기도회설교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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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23일은 교회력에 따라 성령강림절로 지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님을 기억하고 성령님으로 인하여 변화된 초대 교회와 우리의 삶을 재조명해 보고자, 성령의 역사와 기적에 대해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심으로써,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이들에게 바람같은 역사와 불 같은 역사, 그리고 방언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경 : 사도행전 2장 1절-13절

설교 : 오순절에 일어난 기적

찬송 :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주님의 승천 이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40일간 나타나시며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며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1장 14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감람산에서 돌아와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또 24절에서는 함께 모여 기도한 후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자로 제비 뽑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모이기에 힘썼고 모일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사도행전 1장의 연속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였거나 혹은 들었던 사람들은 오늘 본문 1절과 같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평소처럼 모이기도 했겠지만, 이 날은 오순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3대 절기들 중에 유월절이 지난 50일 째 되는 날이며, 이 날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즉, 처음 수확한 밀로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감사의 날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이들은 감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는데, 이 장소는 50여일 전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하였던 장소이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소이며 모두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장소입니다. 이 곳에 모인 제자들은 하나님 주신 수확에 대한 감사를 드리기도 했을 것이며, 주님과의 마지막 만찬의 당시를 회고하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때, 성령께서 집에 가득하였으며, 각 개인에게도 충만하였다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충만하다”(플레도, πλήθω)는 것은 “완전히 채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함 없이 가득하게 채우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만 모였을 때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만,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제자들의 부족함에 기적과 은혜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이 집과 제자들에게 어떤 기적과 은혜를 가득 채우셨습니까?

첫째 이적, 바람 같은 역사

제일 먼저, 성령님께서는 바람 같은 역사를 이 집과 제자들에게 가득 채우셨습니다.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바람”은 원어 성경에는 ‘프노에'(πνοή)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은 자연 속에서 부른 기압 차이로 인해 생기는 바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에는 히브리어로 ‘네샤마'(נְשָׁמָה)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네샤마’라는 말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령으로 만드실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창세기 2장 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기”를 ‘니쉬맛 하임'(נִשְׁמַת חַיִּים)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2절의 ‘성령의 바람’은 생명을 불어 넣는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두려움과 걱정 속에 사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죽어 가는 영혼에게 소성케 하며, 지치고 상한 심령에 용기를 주는 바람입니다. 실패 때문에 절망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는 바람입니다.

바람 같은 성령, 다시 살려 내는 새 생명, 새 용기, 새 소망을 주는 성령의 바람이 우리와 우리 가정에 충만하게 불어 나길 소망합니다.

둘째 이적, 불 같은 역사

살려 내는 바람 같은 역사를 일으키시는 성령께서는, 불 같은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3,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은 태우는 것으로 ‘퓌르'(πῦρ)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태우는 것’, ‘정결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럽고 부정한 것을 불을 통하여 깨끗하게 만듭니다. 구약에서 부정해진 것은 불을 통과시킴으로써 정결하게 만들었습니다. 불로 태울 수 없는 것은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주의 천사가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숯불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사야 6:6-7,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불이 피어 오른 벌건 숯불을 이용하여 이사야의 죄와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셨고, 사명을 주시고 이사야를 보내셨습니다. 불 같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의 죄를 이기고 정결하고 거룩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세번째 이적, 방언의 역사

새 생명의 바람의 역사와 거룩하게 만드는 불의 역사를 베푸신 성령님께서는, 방언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본문의 4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방언을 함으로써 일어난 사건들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다른 여러 지역에서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언어를 들음으로써 모두가 놀랐습니다. 성령의 이적으로 한국 사람이 영어를 말하고 히브리어를 말하고 헬라어를 말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4절에 나타난 “언어”는 ‘글로싸'(γλῶσσα)라고 표현하는데 ‘지방 사투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절에 나타난 “방언”은 ‘디알렉토스'(διάλεκτος)로 표현되어 있는데, 각 지방이나 나라의 고유한 언어를 의미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성령의 은혜로 말이 통하게 되고, 모두가 이해하는 한 언어로의 회복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으로 바벨탑을 쌓았고 그 결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언어의 혼잡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언어가 나누어지게 됨으로써 의사소통이 안되고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말이 통하는 몇몇의 사람들끼리 나누어지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나누어졌던 언어가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방언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의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나 나라와 민족에게도 나타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나에게 일어날 기적

오늘 본문의 4절에는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 말합니다. 단순히 가득 찼다는 의미 뿐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받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의 뜻입니다. 내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곧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새 소망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며 거룩한 삶을 주시는 성령님의 충만함이 내 마음과 내 인생 가운데 있길 소망합니다.

또 우리 가정이나 교회, 직장과 국가, 민족, 세계 열방에도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심의 역사가 나타나, 더 이상 다툼과 전쟁이 사라지고 참 평화가 자리 잡게 되길 소망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통하여 오순절에 있어난 기적이, 내 삶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도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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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 ]

제 2 장

성령이 임하시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 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 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 인과 메대 인과 엘람 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 유대 와 갑바도기아 , 본도 와 아시아 ,

10 브루기아 와 밤빌리아 , 애굽 과 및 구레네 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 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 인과 유대 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 인과 아라비아 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14 베드로 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 인들과 예루살렘 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때가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오전 아홉 시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 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욜 2:28 이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또는 이적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 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시 16:8 이하 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 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 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이 일에 증인이로다 또는 그의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 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시 110:1 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 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 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헬 , 또는 침례 또는 성령을 선물로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헬 , 또는 침례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모든 물건을 통용하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또는 이적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020/09/07(월) \”사도행전 2:1-13\” / 작성: 이창호A

[본문] 사도행전 2:1-13

[찬송가]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마침내 임하신 성령(1-4)]

열두 사도를 비롯한 120여 명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4). 일찍이 하나님께서도 요엘 2장 28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이 되었을 때, 홀연히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2-3)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레23:15-16). 이 절기는 지중해 세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3대 절기 중 하나였고, 맥추절로도 불렸던 추수의 절기였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과로, 그 최초의 수확으로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 모두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었고, 그들 머리 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람과 불 모두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계곡에서, 마른 뼈가 살아날 때 불어넣었던 생기가 바로 성령을 뜻하는 “루아흐”입니다. 또 모세가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고, 이스라엘이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는 점에도 불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서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방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방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언급되는 방언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 방언은 실제로 당시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던 단어로, 120명이 동시에 내뱉는 큰 소리의 방언이 당시 예루살렘 순례자들에게까지 들렸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던 지역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이 선포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5-8)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얼마 전부터, 오순절을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기념일로 여겼고, 이를 기념하여 오순절에는 70개 민족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주님의 제자들로부터, 7절에 나오는 대로 갈릴리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에 대해 증거하는 것을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말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임재 앞에서 경험하는, 내 속에서 터져나오는 외침과도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희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구원 얻을 유일한 이름을 주셨다, 주 예수 앞으로 나오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하려면, 곧 성령 충만해야 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삶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늘 죄를 짓는 습관에 젖어, 주님의 사랑의 말씀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거룩을 사모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길을 내가 걸어가야 할 길로 여기고, 내가 주도하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을 기다리기로 작정한 주님의 제자만이 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 외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 성령에 붙들린바 되어 나의 언행심사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입으로 자랑하고 말하는 것이 주님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용하셔서 진리를 드러내시고, 세상을 정화해 나가십니다. 교회인 신자는 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조망하고 주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구원받았다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대신에 다른 것들을 말하고,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다운 말과 행동이 내 속에 있는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내 삶 속에서 나타나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놀란 사람들(5-13)]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9절부터 11절에 이르는 각국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하자 이를 들었던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당시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들은 순례기간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오기도 했지만, 말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고, 또 죽어서 그곳에 묻히기 위해 아예 이주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목격자가 되었고, 깜짝 놀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전하는 그들의 메시지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시해 마지않는 갈릴리 촌동네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각국 언어를 기적적으로 말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놀랐습니다. 거기 모여 있었던 120명의 사람들이 모두 갈릴리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 많았고, 예수님부터가 출신지가 갈릴리였기 때문에 예수의 무리들이 갈릴리 사람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6절에 나타난 대로 소동하였고, 7절에는 신기하게 여겼으며, 12절에는 놀라고 당황하였습니다. 일부는 13절의 표현대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한꺼번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복음서를 보면, 선문답하듯 자신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이후의 일들을 말씀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재하시는 이 장면까지 오고나면 주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는지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시키십니다. 이들이 그리스도 부활의 첫열매로 교회가 되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우리가 모이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구원하는 복음을 담지하지 못하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교회의 역할을 다할 수 없습니다. 이는 존재 목적 자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순절, 예루살렘의 온기는 절대로 제자들에게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50일 전 유월절 전날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지만 여전히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정치, 종교 권력자들은 자기 자리를 보전하고 기세등등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들은 분연히 하나님의 큰 일을 세계 각국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들 자체가 용맹했다든가 담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그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대중 앞에서 자처하도록 그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바꾸셨듯 우리도 바꾸어 주십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받게 될 불이익을 계산하지 않으며, 바른 길 걸어가는 용기를 주십니다. 생명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 가만 있으라는 세상 앞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정의로움을 외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말을 흩어지게 만들었던 바벨의 장벽도 넘게 만드십니다.

창세기 11장에,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혼잡해졌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던 고대 인류의 말을 흩으심으로써 그들이 의도했던 바를 중지시키셨습니다. 그 이후, 오순절 사건을 통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이 소개됨으로써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동질성”이 창출된 것입니다. 문화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언어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구원의 찬송을 올려드리는 요한계시록 7장의 비전이 성취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가 먼저 사회적 장벽을 깨뜨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거룩의 길로 이끄시며, 구체적으로 사회적 장벽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 일에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임마누엘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주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신 성령을 기다렸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이 오늘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또 하나님의 손이 되어, 하나님의 행하시는 크신 구원의 역사를 전하고 드러내는 인생 살기 원합니다.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1)

2. 성령께서 오셨을 때, 일어나고 보였던 구체적 정황은 어떠했습니까? (2-4)

3.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세계 각국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무엇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11)

4. 예수님의 제자들을 바라본 여러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6-7, 12-13)

(작성:이창호A)

사도행전 2장 14-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reformedmind

사도행전 2장 14-21절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의 시작 부분입니다. 성령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소동하며 놀랐다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자들을 보고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 혼란한 가운데에 베드로가 소리를 높여 설교를 시작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들이 술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베드로는 요엘서 2장 28-32절을 인용하여 마지막 때, 즉 ‘말세’(17절)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마지막 때를 입증하는 최종적 증거는 성령의 부으심이기 때문에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 사건이 말세에 대한 구약의 약속(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시키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도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며 이 예언을 인용하여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어떤 이들은 술 취한 모습과 오순절 사건의 현상에 관심을 둡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은 요엘서의 예언이 어떠한 현상으로 성취되었는가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상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내용과 목적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예언을 성취하셨다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요엘서의 예언을 통해서 지속해서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육체란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겉으로 나타나는 지위와 상관없는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가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7절 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 성별과 연령 그리고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집니다.

우리는 예언하는 것, 환상을 보는 것, 꿈을 꾸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언하는 것, 환상을 보는 것, 꿈을 꾸는 일이 다 보편적 사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성령님께서 증거하시는 분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보편적인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 세상에 그를 증거하는 보편적 사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에게 특별한 초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까? 분명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큰 소동을 일으킬 만큼 특별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우리를 술 취한 것 같이 여기지 말라! 베드로는 단호하게 요엘서의 예언이 지금 그들에게 임했다고 선언합니다. 바로 말세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며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제부터 시작할 그의 설교를 통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님을 받은 자의 예언이며, 환상을 보는 것이며, 꿈을 꾸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 거하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혹시 방언이나 신비로운 체험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성령님을 받지 못했다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증거 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성령에 붙잡힘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사도행전 2장 설교말씀]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의 강림(행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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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2장 설교말씀 중에서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의 강림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에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믿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각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방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술에 취한 것처럼 서로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말씀을 듣고 회개의 영이 임하게 했습니다.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복음을 들어야만이 회개하고 성령 세례를 받게 됩니다. 회개의 영이 임할 때 속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도 십자가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의 강림(행 2:1-47)

1-36절, 성령께서 강림하심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방언들]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무교절 주간에 처음 추수한 보리 곡식단을 안식일 후 첫날 곧 1월 16일에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보리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오순절은 일요일이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은 1:13에 언급한 ‘저희 유하는 다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고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의 강림은 이와 같이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였다. 성령께서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동반하면서 내려오셨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을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이요 표시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바와(욜 2:28-29), 주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에게 교훈하실 때 약속하신 바가(요 14-16장) 이루어진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오셨다. 또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일 즉 그들을 중생(重生)시키고 성화(聖化)시키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시대이다. 신약교회 시대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시대이다. 성령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복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영원히 거하셔서 그들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가 되신다. 또 성령께서는 성도의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를 도우시고 특히 전도를 위해 능력을 공급해주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성(罪性)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한다.

[5-13절]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방언들]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방언들]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그들이] 다 우리의 각 방언[방언들]으로 하나님의 큰 일[일들]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 성령 강림의 독특한 한 표시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롯사)는 ‘언어’라는 뜻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방언들, 즉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다. 본문은 무리들이 사는 15개의 지역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것은 제자들이 적어도 약 15개의 언어들로 말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약성경의 방언은 이와 같이 언어를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 배워본 적이 없는 외국어이었다고 보인다.

이미 믿은 자들은 성령께서 그들 속에 거하시는 표로 방언을 말할 필요는 없다. 방언은 성령 강림의 표시이었다. 그러나 이미 믿은 자에게는 방언보다 인격적 신앙생활, 즉 바른 지식과 믿음과 사랑의 인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4:19,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복음화의 일을 이루게 될 것도 암시하는 것 같다. 세계복음화의 한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일 것이다. 인류는 본래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창 11:1). 그러나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연합을 도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인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14-21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여러 나라 말들로 방언을 말할 때 그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모여든 많은 무리들이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서서 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말했다.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이었다. 그것은 원고를 준비한 설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의 감동과 힘에 이끌리어 한 설교이었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우선 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당시 시각이 제3시 즉 오전 9시이니 제자들이 술취한 것이 아니고, 선지자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성령을 받은 현상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부어지면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예언은 구약 백성이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풍성한 임하심을 약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이루어졌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강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 그는 먼저 예수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증거한다. 그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나사렛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는 물질적 몸을 가진 인간이셨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그의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증거된다. 그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셨다. 그것은 인간으로는 하기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역사상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 있었으며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인 일이 있었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사람을 살린 일이 있었는가? 이 모든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풍성히 증거하였다. 또 이 기적들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셨다.

[23-24절]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의 십자가는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고 믿을 만한 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대적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 할 뿐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셨다. 그는 예수님을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셨다.

[25-32절]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KJV)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지옥](KJV)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편에 예언된 바임을 증거했다. 거기에서 다윗은 주께서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고 또 그로 하여금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때까지 그들 중에 있었다. 그의 육체는 다 썩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시편에서의 그의 고백은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편은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이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33-36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도 시편 110편을 들어 성경의 예언대로 되었음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셨다. 또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통치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들은 사탄과 악령들과 사탄의 종들이다. 그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며 허물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오셨다. 그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속(救贖)을 성령께서 그 택자들에게 적용하여 중생(重生)시키시고 회개하고 믿게 하시는 것이다. 또 그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성화(聖化)를 이루신다. 그는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또 위로 격려하시고 도우신다. 그는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

둘째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표로 방언을 하였다. 성령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내려오실 때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셨다. 그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과 함께 제자들에게 내려오셔서 그들이 방언들을 말하게 하셨다. 그들이 말한 방언들은 외국어이었다. 그들은 약 15개 지역의 언어들로 말하였다. 방언을 포함하여 사도 시대에 주신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한 사도들의 표이었다(행 2:43; 5:12; 고후 12:12). 또한, 제자들이 방언들을 말한 것은 세계복음화의 암시이었다고 본다. 그들은 온 세계에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했다. 오늘 우리는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과 방언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바른 지식과 온전한 사랑의 인격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였다. 성령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자들에게 전도할 능력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겠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일어나 소리를 높여 담대히 전도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들을 행하셨음을 증거하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과 3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신 주께서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우리가 전할 내용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복음서들에 기록된 복음의 내용이며 복음서들이 증거하고자 하는 바이다(요 20:30-31).

37-47절, 초기 예루살렘 교회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오순절에 모인 무리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사도 베드로의 전도 설교는 효력이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마음이 굳어 찔림을 받지 못한다. 말씀의 화살이 그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믿을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구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다’는 원어(메타노에오)는 ‘생각을 바꾸다’는 뜻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 없이 사는 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데로, 죄의 낙을 누리던 데서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데로, 예수님을 부정하던 데서 예수님을 믿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회개는 생각을 바꿈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십자가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으라는 뜻이라고 본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인간에게 죄씻음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죄 때문에 세상에 죽음과 불행이 왔으나 죄씻음으로 의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이 온다. 세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는 예수님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씻음 받음을 표시한다.

사람이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 가며 거룩하여지며 또 하나님을 힘 있게 섬기며 전도할 수 있게 된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또 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 곧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먼데 사람’ 곧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다. 이 약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시며 부르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 부르심으로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는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전도는 진리의 선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확증과 권면’도 필요하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 말로 복음을 확증하며 권면하였다. 성경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자들은 다 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과의 구별도 가져온다. 이 세상은 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패역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목이 곧고 완악하다. 사람이 이 세상의 풍습대로 살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41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원문) 3천이나 더하더라.

사도 베드로의 전도와 확증과 권면은 결실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성령의 역사이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 3천명이나 더했다. 그들은 다 예수께 복종한 제자들이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무리에 3천명의 신입교인이 더하여졌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기쁜 사건이었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그들은 네 가지 일에 힘썼다. 이것은 후시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일들이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다 포함한다. 설교자나 주일학교 교사는 바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가르침이 혼란하면 교회가 혼란해진다. 요즘 교회들은 가르침이 혼란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교회연합운동, 은사운동, 여성 안수, 열린 예배 등 별별 풍조들이 교회들 안에 들어왔다.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단들이 포용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창조와 진화를 절충시키려 한다.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주의자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천주교회까지 포용하려 한다. 그것은 참된 복음주의가 아니다. 참된 기독교는 그런 오류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타협적 복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확고히 서야 한다.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사상이 바르고 부교역자들의 사상이 바르고 교사들과 권찰들의 사상이 바를 때, 교회는 바로 세워질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그것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교제이다. 그것은 서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교제이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해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오래 참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친절하고 진실을 말하며 상대방에게 선을 행하는 교제이다. 그들은 또 성찬식을 행했고, 또 성도들 간의 식탁 교제도 힘썼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곧 성화를 위해, 전도와 영혼 구원을 위해, 참된 교회들의 건립을 위해, 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힘의 통로이다.

[43-45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한 까닭은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단지 몇 가지의 기적들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구원의 진리들을 확증하셨다(히 2:3-4). 기독교는 기적들로 확증된 종교이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였다. ‘다 함께 있어’라는 말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상적 교회의 모습이다. 또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공동 소유로 생각하고 사용하도록 내어놓았다. 그것은 그 물건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또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형제자매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이런 지식과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로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제는 구제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물론, 성경은 자기 손으로 성실히 일하여 먹고살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성도들에게 일하는 본을 보여주었다(행 20:34-35). 또 그는 손으로 일하며 살라고 가르쳤다(엡 4:28).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하였다(살후 3:10). 그러나 재산이 넉넉히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이다. 돈은 구제 같은 선한 일에 쓰는 데 가치가 있다.

[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카트 오이콘)[각 집에서, 각 집을 돌아가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또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드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거룩한 집 곧 성전(聖殿)이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힘써 모여야 한다(히 10:25).

또 그들은 각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이것은 성찬식과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이다. 성찬은 성도들의 엄숙한 교제의 표시이며 식탁 교제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의 사랑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했다. 서로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사랑의 식탁 교제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인들의 사랑은 진실하였다.

그들은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찬양은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하심이었다(엡 1장).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들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건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구제를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칭송할 것이다. 참된 신자는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그 교회에](전통본문) 더하게 하셨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은 기회 있는 대로 전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보다 성도들의 행실의 본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주께서는 날마다 그 교회에 구원 얻는 자들을 더하게 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그는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다른 이들을 구원하신다. 수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었다.

전통 본문에 의하면, 본절에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교회’는 어떤 인간적 조직이나 외형적 건물이 아니고 믿는 이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중요하다. 그들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순종하며 서로 교제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주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또 교회는 바른 말씀의 교훈과 그 교훈을 믿고 실천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회개는 사람이 자신의 죄들을 깨닫고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고 믿었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둘째로, 사도들은 오순절 때에 구원의 큰 결실을 보았다. 오순절은 맥추절과 같은 절기이었다. 그것은 밀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중생 重生)과 구원을 상징한다. 그날 누룩 넣은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구원받을 죄인들, 특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곡식 추수는 대체로 오순절 기간에 그친다. 가을에는 나무 열매, 포도주, 기름 등을 거두어 저장한다. 추수감사절인 오순절에 약 3천명이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그 교회에 더하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오순절의 곡식 제물과 같다.

셋째로,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후대 교회의 본이 된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 바른 말씀의 교훈을 받았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책을 읽고 모일 때마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을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둘째, 그들은 서로 교제하였다.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또 각 집에서 모여 성찬을 나누었고 식탁 교제를 하였고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고 어려운 교우들을 구제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서로 교제하며 병든 교우들을 방문하며 궁핍한 교우들을 돌아보며 구제하자.

셋째, 그들은 기도하기를 힘썼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 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도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자. 우리가 성화하는 길은 기도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도할 힘을 얻는 길도 기도뿐이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힘썼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여호수아 히브리어 강해] 여호수아의 탄식과 하나님께 간구(수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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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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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1-13절

사도행전 2:1-13에는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것을 보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신약교회가 태동을 하며,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자들을 조롱합니다.

1. 개요와 본문 읽기

신약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그 이전은 교회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식적인 교회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강조됩니다. 2장은 기도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이를 보고 술취했다고 조롱한 이들에게 베드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1-13절 오순절의 성령 강림

14-36절 베드로의 설교

37-47절 교회의 시작

사도행전 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2. 주해와 강해

1. 1-13절 오순절의 성령 강림

1) 1-4절 오순절 임한 성령

오순절 날이 이르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더니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합니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 같이 갈라져 각자의 머리에 하나씩 임합니다. 그들은 즉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합니다.

오순절은 구약의 맥추절입니다. 초실절이 지난 후 50일이 되던 날입니다. 곡식을 추수하는 날이기에 이 날은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왜 신약에서는 맥추절이 아닌 오순절이란 표현을 했을까요? 오순절은 희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 즉 7년이 일곱번 지난 해로 만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해는 얽매인 종들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종이 다시 주인으로 돌아가는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순절에 날에 성령이 임하여 각 사람에게 머뭅니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2절 하)에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종 가시적 형태로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성령은 바람처럼 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2) 5-13절 조롱하는 이들

하나님의 큰일을 들음

오순절은 유대인들에게 큰 행사였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외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각각의 나라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제자들은 이상한 중얼거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말투를 통해서 그들이 갈릴리 사람들임을 단박에 알아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각국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합니다.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루기아, 밤빌리야, 애굽, 리비야, 여러 지방과 로마에서 왔습니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러한 지역들은 전세계에서 몰려들었다는 뜻입니다. 인종도 다양합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각 지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11절)을 듣고 있습니다. 너무 놀라 당황하면서도 제자들을 조롱합니다. 새 술에 취하지 않고서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자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11절)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하나님의 구속과 능력을 뜻합니다. 이곳에서 방언은 알아들 수 없는 말이 아니라 각 지방의 언어입니다.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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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 증인(행2:1-13)

제목: 성령 충만 증인

본문: 사도행전 2장 1-13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건을 살펴보기 원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뒤, 오순절 날에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주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실 때 아버지께 요청하여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6-26; 15:26-27; 16:7-11). 성령은 그들을 고아처럼 방치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예수님을 증언하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분이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4:49), 그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 성에 머물렀던 120여 명의 제자가 함께 기도에 힘쓸 때, 예수님의 약속대로 위로부터 능력의 성령이 그들에게 입혀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행 1:5).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전파될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성령 하나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임하여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입혀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증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시켜 주셨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당신은 왜 오늘날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오순절 주의 교회들에서 뜨거운 찬송과 함께 모든 성도가 방언으로 기도함으로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똑같이 재연한다. 성령 하나님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에게 같은 방법으로 능력을 부어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우리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신다고 믿는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계신다고 믿는가?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진실로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충만한 능력으로 증인의 일을 하게 하신다고 굳게 믿어 기쁨으로 증인의 일을 담대하게 하기를 원한다.

1. 초자연적인 성령의 강림(1-3)

먼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는지 누가가 기록한 구체적인 역사 증언을 살펴보자. 성령 강림의 역사는 단지 제자들의 착각이나 환상 체험이 아니다. 제자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초자연적인 성령 하나님의 역사다.

언제: 사건은 오순절 날에 일어났다(1절). 오순절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절기인 칠칠절과 같은 날이다(출 34:22; 신 16:10). 유월절 다음날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7주째(7X7, 50일째-‘펜테코스테스’) 되는 날에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불렀다. 밀을 추수한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라서 “맥추절”이라고도 불렀다(출 23:16). 기본적으로 오순절(맥추절, 칠칠절)은 추수감사절과 같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며,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 절기로 유대 성인 남성이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하시고 첫 열매로 제물로 바쳐지신 후, 오십일 째 되는 날 성령이 강림하셨고,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사람 중 삼천 명을 수확하게 하셨으니 오순절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주님의 승천 후 열흘 뒤 있었던 이 사건 이후로 오순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강림절’로 기념되고 있으며 다음 주일이(5/31) 바로 성령강림 주일이다(2:5, 41).

어디서: 장소는 그들이 다같이 모였던 한 곳이다(1절). 2절에서는 “그들이 앉은 집”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모든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던 다락방이었을 것이다(1:13). 그들은 1장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다락방에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공중 기도로 모였는데, 그 첫 시작은 오전 9시(“때가 제삼 시니”, 2:15)였다.

어떻게: 성령 강림은 홀연히, 갑자기 일어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적인 일상을 깨고 일어났다. 어디서부터? 하늘로부터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역사였다(눅 11:13).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온다. 가장 좋은 선물, 은사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셨다(약 1:17).

성령님은 영이라서 볼 수 없지만, 성령의 강림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일어났다. 먼저 소리가 있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 같은 소리였다. 공기의 흐름이나 이동이 없는, 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일어나는 매서운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일어난 무서운 태풍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는가?

성령은 또한 불의 모양처럼 보이도록 임하셨다(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다. 마치 갈라진 혀의 모양 혹은 갈라진 불꽃 모양으로 성령이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는 불을 동반할 때가 많았다.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떨기나무에 붙은 불 속에서(출 3:2),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실 때 불기둥으로 함께하셨다(출 13:21; 신 4:33).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마치 불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모양 속에서 목격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마치 갈라진 혀의 모양으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증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셨다(3, 11절). 판타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실제 역사 속에 그런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120여 명의 제자를 수퍼 증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능력이 생겼을까?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인(4)

성령은 단지 제자들 위에 임하여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충만하게 하셨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어떤 능력을 받았을까?

지혜: 구약시대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성막을 지었다(출 35). 리더십: 여호수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지혜가 충만하여 모세를 이어 백성을 율법대로 인도했다(신 34). 파워: 삼손은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사자를 찢어 죽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을 천명을 죽였다(삿 14-5). 영향력: 세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사역을 담당했다(눅 1). 표적: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권위 있는 말씀 사역과 능력 있는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인은 어떤 능력을 받았는가?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4절). 외국어 능력. 학습의 결과가 아니다. 기존에 익혔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혀 알지 못했던, 연습한 적이 없는 말을 초자연적으로 한 것이다. 성령의 능력에 따라서 말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외계어 혹은 천사의 말이 아니란 것이다. 그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했다. 실제 사용하는 언어(디아렉토스-지역 언어), 그것도 이어서 등장할 청중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8절).

성경에서 이와 같은 방언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12-14장에만 언급된다.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방언을 두 종류의 다른 방언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은 인간의 언어, 고린도전서는 천상의 언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바울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말했기 때문에, 천사의 말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소리 방언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말씀에서 바울은 과장법을 사용한다. “내가 만일…할지라도.”

같은 논리로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고전 13:2),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고전 13:3), 이 표현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분적으로 알고”있다고 이어서 말했다(고전 13:9). 또한, 바울은 “방언도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13:8).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외계어가 아닌 외국어로 사도들이 활동했던 시기, 그들을 통해 신약성경이 기록된 시기 이후로 그쳤던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였다고 볼 수 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모두 외국어를 통해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성령 충만하여 방언하는 경우는 오직 세 차례, 오늘 본문에서 한 번, 첫 이방인 고넬료 집안 사람들이 구원받고 세례받을 때 한 번(10:46),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며 요한의 세례만 경험한 이들에게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때(19:6)뿐이다. 모든 믿는 자가 구원받을 때 방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들이 방언을 했을까? 증인의 사명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사명을 주셨다. 장차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사람을 모든 민족과 방언 가운데 불러 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는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다양한 민족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이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능력은 바벨탑 사건 때 벌어진 저주를 극적으로 역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창 11).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던 교만한 죄인들을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을 통해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모으시려 하신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신다. 그래서 성령께서 충만한 능력을 더하셔서 제자들의 입으로 여러 언어를 말하게 하신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큰 일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래된 유대인의 관습과 편견 때문에 제자들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렸고, 그들이 구원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방인 그리고 요한의 세례만 경험한 이들이 그들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들이 모든 민족에게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행 10:47-48; 19:6).

결론적으로 방언은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 전파와 사명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신호탄이었다. 표적이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전달할 메시지, 증인으로서 증거할 내용이다. 표적만으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당시 일어난 반응을 보자.

3. 성령 충만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5-13)

그때에 곧 오순절에, 율법에 철저한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5절). 유대 주요 명절인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 가운데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디아스포라 유대인, “나그네”-10절).

그들은 9절부터 기록된 대로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그리고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 리비야, 로마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그레데인, 아라비아인이었다(15곳, 9-11절). 오늘날 인터넷으로 세계 지도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가 볼 땐 천하 각국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당시엔 알려진 모든 장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토종 유대인도 있었고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10절).

실제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각 지역마다 체류하고 있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며, 오늘날 대륙의 구분에 따라 6대륙으로 볼 때, 발견되지 않았던 남극과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빼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증인들의 예행연습, 훈련 과정처럼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모든 민족의 일부를 예루살렘에 불러모아 증인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 충만에 따른 방언은 확실히 주목을 이끌었다.

방언의 소리가 나자 큰 무리가 모여 소동하였다. 소동했다는 말은 경악하고 혼란스러워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모두 다 놀랐고 신기하게 여겼다. 행색이나 발음을(사투리, 억양) 보면 분명히 갈릴리 사람이 맞는데, 제자들이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마도 다락방에서 나와 큰 무리와 함께 있을 만한 장소로 이동했을 것 같다. 무리는 다시 한번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말했다(12절). 확실히 성령 충만에 따라 나타난 방언은 표적으로서 무리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종종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를 보면서 그 아기가 “내가 말 못 하는 줄 알았지?”라고 말하면 얼마나 놀라고 무서울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놀라며 당황하고 신기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 놀라운 일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 표적이 그렇다. 표적은 그에 따른 메시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령 충만에 따른 방언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오해만 산다.

13절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오히려 제자들을 비웃었다. 조롱했다. 새 술 곧 발효되지 않은 포도 곤죽에 꿀을 첨가하여 더 높은 알코올 농도와 달콤함을 자랑하는 술에 취하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언이 없는 성령의 능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은 증인이 증인의 역할을 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하나님의 큰 일, 구원의 일을 이루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놀라고 당황하고 신기해하고 오해하여 조롱하는 무리에게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 것이다(2:14). 증인의 첫 증언이 시작됐다. 표적이 가리키는 참 메시지가 선포된다.

이것이 오늘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엡 5:18).

존 스토트는 이런 말을 했다.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불가능하기까지 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생명은 있을 수 없고, 진리의 영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으며, 성령의 연합이 없으면 교제가 없고, 성령의 열매를 떠나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지닐 수 없고, 그분의 권능 없이는 효과적인 증언을 할 수 없다. 호흡이 없는 육체는 시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없는 교회는 죽은 것이다”(사도행전, BST, 83p).

물론 성령은 오늘날 우리에게 방언의 표적을 주지 않으신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교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지니게 하신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신다.

성령이 주신 지혜로 말씀을 깨달아 가르치는 다섯 마디 말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고전 14:19).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하고 사랑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고 자비를 베풀고 절제하고 충성하는 삶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된다(갈 5:22-23). 참된 성령의 능력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이 겪는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똑같이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큰 사고를 당하게 하신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내게서 빼앗아 가신다면, 그래도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기쁨으로 증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나아가 사도들의 순교사를 보며 과연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주를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봤다. 사실 그럴 자신도 능력도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눅 12:11-12).

성령께서 하신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성령이 일하신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환난, 고난과 슬픔, 비방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기쁨으로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그 능력이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 그 능력을 구하라.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 더 말씀의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구하라. 조금 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성품과 인격 속에서 성령의 열매 맺게 해달라고 구하라. 세상을 이기고 염려와 자랑과 유혹을 피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대상을 오직 그리스도로 삼게 해달라고 구하라. 성령님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증인인 당신과 함께하신다. 성령님은 언제든지 말씀을 통해 당신을 충만하게 하실 수 있다. 능력을 더하신다. 성령이 함께 하시니, 매일 기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며 살라.

바람 같이 불 같이 오신 성령님 (행 2:1-13) * 땅 끝까지 이르러

2018년 2월 4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 ✦

“바람 같이 불 같이 오신 성령님”

(사도행전 2장 1~13절)

[ 들어가는 말 ]

이전에 제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5공화국 시절에는 학교에 들어갈 때 가방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위를 벌이는 운동권 학생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전경들이 무작위로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가방을 뒤졌고, 혹시라도 소위 ‘불온서적’ 같은 게 나오면 압수하면서 전경 버스(소위 닭장차)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한 번은 같은 과의 친구가 갑자기 저에게 오더니 자기 책을 좀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야, 이걸 나에게 주면 어떡하니?”라고 했더니 “너는 운동권처럼 안 생겼으니까 괜찮아.”라고 해서 괜히 기분이 좋아져 맡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습니까? 그 후 민주화 물결이 일어나고, 요즘 영화도 나왔지만 1987년 이후에 그래도 많이 민주화가 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존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치게 되었는지, 요즘은 조금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되면 바로 고소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변호사 천국이라고 하지만 한국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성추행을 한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실명을 거론하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것만 보아도, 이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것이 없이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자유가 없이는 더 이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과 같은 것은 인간의 자유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한 인권도 그렇지만,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은 질병에서도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죽을병들인데 요즘은 고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스퇴르가 병균을 이길 수 있는 백신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은 인류의 병 치료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신의 저주나 심판으로 생각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파스퇴르가 개발한 백신으로 인해 죽을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의학기술로 살아난다 할지라도 결국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가장 위대한 일, 즉 영혼까지 구원하는 일이 2000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오순절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부어진 사건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결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복은 하늘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 건강이나 장수 등 많은 복이 있지만, 그런 복이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다 끝나는 것들입니다. 죽고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죽고 나서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해주실 수 있는 주님을 믿고 성령을 받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가장 큰 복입니다.

1. 성도들에게 임하신 성령님 (1-4 절 )

1) 한마음으로 모인 성도들 (1절)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께서 드디어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내려오십니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결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사건(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 완성을 향해 간다는 의미입니다.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지금 우리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오신 사건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구원과 똑같이 중요한 하나님의 사건이며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곳은 화려한 왕궁이나 유명한 곳이 아니라,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1절)

교회에 다니면 ‘오순절’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교파 중에도 오순절 계통이 있습니다. 순복음이 그 계통입니다. 우리가 ‘오순절’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하고 듣지만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순절’은 헬라어로 ‘펜테코스테(Pentekoste)’ 또는 ‘펜테코스토스(Pentekostos)’인데, 이 말은 50번째라는 뜻입니다. ‘오순’이라는 말은 한자로 ‘다섯 오’, ‘열흘 순’ 자로서, 다섯 번의 열흘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BC 1500년경 모세의 인도 아래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Passover)입니다. 그때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던(유월했던)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바로 그 유월절 후 안식일 다음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곡물 추수가 시작되는 유월절이 지난 지 7주 혹은 50일 후에 지켜졌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했고 ‘오순절’이라고도 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보리 추수를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맥추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 식으로 추수감사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칠칠절, 오순절, 맥추절이 다 같은 절기입니다. 또한 이집트에서 나온 지 50일 후에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이라고 하여 기념일로 지켜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농업적인 의미도 있고 역사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이 오순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의 3대 명절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3:17을 보면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반드시 1년에 3번씩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세 번이 바로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 절기마다 이스라엘 전국에 흩어져 사는 남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서 예루살렘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그 수가 200만 명 이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무리들로 가득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던 예루살렘의 어느 한 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드디어 성령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고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같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한마음을 품고’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이 한 장소에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들이 모두 같은 장소에서 한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품었던 한마음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다 같이 그런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명절인 오순절을 맞이하여 전 세계에서 온 유대인들로 예루살렘 거리가 차고 넘쳤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람들은 120명의 제자들뿐이었습니다. 화려한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하던 그들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 집회 등 예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교회당이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장식이 화려한가, 얼마나 우리가 옷을 잘 입고 왔나, 건물이 얼마나 튼튼하게 잘 지어졌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모인 우리가 한마음을 품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2백만 명이 밖에서 바글바글한 곳에 성령이 임하신 게 아니고, 2백만 명에 비하면 아주 소수인 120명이 모여서 전심으로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곳에 성령이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아무리 화려한 모습을 갖추어 있더라도, 한마음으로 간절히 주님을 바라며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서 같은 장소에 있지만, 우리 마음이 다 뿔뿔이 흩어져 있고 각자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면, 이 모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한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며 성령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듣고 볼 수 있게 임하신 성령님 (2-3절)

그런데 성령님은 너무나 놀랍고 특이한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성령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2-3절)

원래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도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우리에게 나타나는 성령 충만한 현상을 통해서 성령님이 임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소위 ‘은사 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2장에 보아도,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7절)이라고 은사를 표현했습니다. 성령이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실 때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이후로도 계속해서 성령님이 이런 식으로 오신 것은 아닙니다. 같은 사도행전에도 이런 식으로 성령님이 오신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처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보혜사 성령”께서 확실히 오신 것을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 청각적으로 또 시각적으로 듣고 볼 수 있게 임하셨습니다.

먼저,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성령님이 임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2)였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 때 쉬이익 하고 나는 소리가 난 겁니다. 이 바람은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진짜 바람이 분 게 아닙니다. 바람 같은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방 안에 있었고 창문도 닫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바람이 밖에서 들어오겠습니까? 그런데 아주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나면서, 그 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며 온 방 안이 바람 소리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원래 히브리어에도 ‘루아흐’라는 단어가 바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이 바람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불게 할 수도 없습니다. 또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바람이 불 때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바람은 그냥 불고 싶을 때 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파였고 공회원이었던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요 3:8, 새)

바람이 분 것은 알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성령의 바람을 피하느냐, 아니면 이 성령의 바람에 돛을 달고 훨훨 날아가느냐 하는 두 가지 중에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바람과 같이 오셨을 뿐 아니라 또한 불 같이 오셨습니다. 성도들 위에 불이 임하는 것이 보였는데, 먼저 큰 불덩어리가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불이 120개로 갈라지면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무는 모습으로 갈라진 겁니다. 마치 불의 혀와 같은 모습으로 길쭉하게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성도들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불이 임했습니다. 이 불은 각각 120개가 다르게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에서 120개로 갈라져서 임했던 서로 연결된 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성령께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는데, 그때는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불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의 속성이 뭡니까?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불은 쇠도 녹여버립니다. 불은 계속 가하면 물질의 본성도 바꾸어버립니다. 그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다 태우시고, 또 죄로 인하여 변질된 우리의 속사람을 다 치유하시며, 강퍅한 우리 마음을 녹여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바람 같이 불 같이 성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불이 같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산불이 됩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많이 나는데, 정말 무서운 것이 산불입니다. 한국에도 가끔씩 산불이 나는 것을 보는데, 산불이 한 번 나면 모든 것을 다 집어 삼킵니다. 어떻게 막을 수가 없고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고 헬리콥터에서 물을 뿌려도 안 될 정도로 정말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은 바로 성령의 산불이었던 것입니다. 한 번 타면 꺼뜨릴 수가 없는 엄청난 성령의 산불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이제 이 산불이 붙었고, 120명으로부터 퍼져 나가서 앞으로 예루살렘을 다 휩쓸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휩쓸고, 마침내 땅 끝까지 퍼져 나가 다 태우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산불은 파괴하고 멸망시키지만 이 불은 구원의 불이고 축복의 불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령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은 앞으로도 계속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오신 것은 한 번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임하여 주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은 일종의 개통식과 비슷합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성령께서 임하시고 온 세상을 휩쓰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류가 죄의 세력과 마귀의 유혹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복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링컨의 노예해방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중요한 사건입니다.

3) 성령을 받고 변화된 성도들 (4절)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만 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읽어보면 예수님이 이것에 대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어느 정도 인격의 수양과 머리로는 성경의 지식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변화가 다릅니다.

성령을 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맞아들일 때 성령을 받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십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4절)

여기서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상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시고 불 같이 임하셨을 때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겁니다. 성령 세례는 일회성입니다. 한 번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 후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현상으로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이 무슨 뜻입니까? 그들의 인격도 감정도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의 지배를 받았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고 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사람이 알코올의 지배를 받아서 비틀비틀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며 정신도 오락가락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 즉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생각과 감정과 인격 속에 성령이 가득 차셔서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다른 염려나 걱정이나 인간적인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나 의심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이 있을 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이 주시는 감동으로 가득하고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일만 하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맛보지 못한 기쁨으로 가득하게 된 것, 그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이 여기서는 ‘다른 언어들’로 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제 친구들이 제가 처음 미국에 올 때 영어의 은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즉 성령이 시키셔야 되는 것이지 자기가 원한다고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게 은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은 방언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듣고서 중국말이 아닌가 해서 중국말을 하는 사람에게 녹음해서 들려주었지만 전혀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가 아니고 ‘기도방언’이라고 하는데 통역의 은사를 주셔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신 것은 ‘언어방언’이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지금도 선교지에서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한국어와 영어 밖에 못하는데, 갑자기 현지인들을 만나게 되어 떠듬떠듬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어와 영어를 모르는 현지인들이 놀랍게도 다 알아 듣더라는 겁니다. 정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급한 경우에는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 자기가 모르는 경우로 하는 경우가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방언이 우리가 하는 방언인데, 이때만큼은 언어방언으로 했습니다.

이들이 성령 충만하게 되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여기서 여러 언어로 그것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방언이 성령 충만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언어방언이 나타났고, 그러함으로써 거기에 모여 있던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려지는 놀라운 역사가 이때 일어난 것입니다.

2. 난 곳 방언으로 (5-13 절 )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제 이런 놀라운 사건이 즉시 일어났는데, 매년 오순절이 되면 이처럼 수많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유월절에도 오고 오순절에도 옵니다. 성전에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며 굉장히 복잡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을 때, 성령으로 충만하여 언어방언을 하는 성도들이 큰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5-8절)

세계 각처에서 온 많은 사람들은 사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 이지만 외국에 나가서 산 역사가 길기 때문에 우리 영어권 2세, 3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기서 정착하여 사는 현지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현지인이 아니라 유대인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사는 곳의 언어를 하는데 히브리어는 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저곳에서 왔으니까 언어가 안 통하는 상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도, 히브리어로 하니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보고 경험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알아듣는 언어가 들리는 겁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방 안에 있던 120명이 너무 성령 충만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까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간 겁니다. 특히 사람이 많은 성전 쪽으로 가서 그런 언어로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그 내용은 자기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그토록 듣기 원했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겁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이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이고 갈릴리 사람들이며 별로 배운 사람들도 아닌데 어떻게 자기들의 언어를 하는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은 세게 각처에서 온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듣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복음의 진리에 놀라고 또 방언에 놀라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언어가 시시한 세상의 잡담 같은 것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서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드라마 얘기, 예능 얘기, 연예인 얘기, 스포츠 얘기, 정치 얘기 같은 것을 주로 하십니까? 그런 것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런 시시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낭비할 틈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기에도 우리 인생이 짧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시시한 말이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게 됩니다.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 모일 때도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세상의 잡담이나 시시한 이야기, 연예계, 스포츠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이렇게 역사해주셨다는 것, 즉 바로 그게 간증이고 그런 간증을 우리가 나누는 겁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9-11절)

이 지역들을 크게 다섯 군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는 지금의 이란, 이라크, 인도까지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유대는 그들이 지금 있는 지역이고, 거기를 중심으로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는 소아시아로 불리는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구레네, 리비야는 북아프리카이고, 로마와 그레데(크레타)는 유럽 쪽이고, 아라비아는 그야말로 아라비아 반도 지역입니다. 이것들은 그 당시 세계를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명들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증거 하는 진리를 자신들의 언어로 들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다고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 사역을 말합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 진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8)라고 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 고등부 시절에 전도사님이셨던 분이 지금은 유명한 선교사님이십니다. 그분이 소속된 선교단체에서 발행하던 잡지의 제목이 “난 곳 방언으로”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고등학생이라 잘 몰라서 ‘이름도 해괴하다. 저런 게 뭔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바로 여기 2장 8절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번역 선교회였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현지인이 “난 곳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말씀을 들려주겠다고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일들을 듣고 사람들이 놀랐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2-13절)

이들이 당황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성령으로 증거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놀라며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내 언어로 들을 수 있다니 놀랍다.’라고 했고, 놀라면서도 의심하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새 술에 취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새 술’이라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이 술은 헬라어로 ‘글루쿠스’라고 해서, 지금 막 발효가 되고 있는 술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발효가 되어 상품이 된 술이 아니라, 집에서 술을 담았는데 발효가 될랑말랑 하는 싸구려 술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로 치면 막걸리 정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을 증거 하는 제자들이 옷을 좋을 것을 입은 것도 아니고, 교육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며, 억센 갈릴리 사투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들 주제에 비싸고 좋은 술을 마셨을 것 같진 않고, 싸구려 술이나 마시고 주정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으로 조롱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일’인 생명의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똑같은 반응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네 가지 다른 토양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듣고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고, 약간 듣는 것 같더니 떠나는 사람이 있고, 조금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열매를 못 맺는 사람이 있고, 정말 열매를 맺는 좋은 땅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전할 때 정말 놀라면서 ‘내가 듣고 싶었고 찾던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동시에, 조롱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전할 때도 조롱하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이 주신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 나가는 말 ]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던 성령께서 드디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개통식이 이루어진 것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오순절에 임하셨던 성령께서 바로 그 자리에도 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오순절 전까지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대를 포함해서, 성령님이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신)으로 충만했다’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역사하시다 떠나시고 또 역사하시다 또 떠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밧세바와 범죄한 이후 회개하면서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구약의 개념으로는 성령이 오셨다가 떠나시니까 다시 떠나지 마시라고 애원하는 마음이 나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영원히 함께 해주십니다. 그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긴 계시는데,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저 구석에 계시게 하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오셨고 지금도 역사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가 일종의 성령의 고갈 시대입니다. 성령이 분명히 계시는데 안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입니다. 지금 성령의 역사가 너무나 보이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 상하고 정신적인 병이 생기고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믿는 자들도 타락하고 잘못되는 소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그런 것을 살리고 치료할 수 있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즉 우리가 그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님의 마음대로 사는 삶, 성령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끄시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렇게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여기 아직 예수님을 주인과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은 분들이 계시면,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실 때 성령을 받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냥 겉으로 표면적인 변화가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가 그때에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먼저 치료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능력을 주시고, 그래서 기쁨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큰일, 하나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바로 우리를 통해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바람처럼 또 불처럼 오셨습니다. 오늘 이 메마른 세계에 성령의 불길이 산불처럼 엄청나게 휩쓸고, 더러운 것들을 다 태우고, 그래서 죄로 인하여 신음하는 이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바로 우리를 통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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