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22 장 |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상위 254개 베스트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사무엘 상 22 장 –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you.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홍융희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6,551회 및 좋아요 112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사무엘 상 22 장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 사무엘 상 22 장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2016. 12. 10 [하루 한 장]“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삼상22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http://sungminch.com
다윗은 사울의 위협을 피해
블레셋땅 가드로 망명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금새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는 할 수 없이 미친체 하면서
겨우 겨우 목숨을 보존합니다
다윗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흑역사를 쓰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다시 돌아온 아둘람 굴에서
그는 온 가족들과 그를 따르는
사백명의 용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다윗의 둘도 없는 용사요
그를 따르는 친위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계획대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손길은 우리를 막거나
우리를 망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에게 동역자를 붙여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압으로 가서
그곳에 부모님을 의탁하고
모세가 섰던 비스가산 꼭대기
미스베에 서서 유대를 봅니다
모세가 보고 죽었던 그 자리에서
다윗은 새 삶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다윗의 새 비전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의 시대를
우리 모두 힘껏 열어갑시다!

사무엘 상 22 장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사무엘상 22

사무엘상 22. … 제 22 장 …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1/16/2021

View: 89

사무엘상 22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사무엘상 22 · 7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 8 · 9 …

+ 여기에 표시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18/2021

View: 6336

사무엘상 22 KLB – 아둘람과 미스바로 도망한

사무엘상 22 … 22 다윗이 가드를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치자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그 소식을 듣고 … 22:18 앞판과 뒷판으로 된 앞치마 비슷한 제사장의 예복.

+ 여기에 보기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6/7/2021

View: 6389

쉬운성경 사무엘상 22장

22:1 <다윗이 아둘람과 미스베에서 지냄> 다윗은 가드를 떠나 아둘람 동굴로 도망갔습니다. 다윗의 형들과 다른 친척들이 다윗이 그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을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3/2/2021

View: 3365

사무엘상 제22장 강해: 사울의 제사장 학살 사건 – Daum 블로그

‘는 뜻이 됩니다. 공모는 ‘어떤 것을 무엇인가에 묶거나 연결시키는 것’을 말하며 또한 인간들끼리 함께 뭉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울은 모든 신하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2/24/2021

View: 8350

2017/07/01(토) “사무엘상 22:1-23” / 작성

본문 사무엘상 22:1-23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주시는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6/30/2021

View: 2466

사무엘상 22:22 – 다국어 성경 Holy-Bible

사무엘상 22장 ·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 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

+ 더 읽기

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6/17/2021

View: 9768

사무엘상 22장 & 성경주석

두 사람의 삶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4/20/2021

View: 791

사무엘상22장

▷▷ 환난 당한 모든 자는 everyone who was in distress(고통/고난/곤란 중에 있는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는 everyone who was discontented(불평/ …

+ 더 읽기

Source: oldandnewtestament.tistory.com

Date Published: 10/22/2021

View: 9822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사무엘 상 22 장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무엘 상 22 장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6,551회
  • Likes: 좋아요 112개
  • Date Published: 2016. 12.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O_RP6iCuQuI

사무엘상 22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죽이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6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YouVersion

22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것이 없나이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쉬운성경 사무엘상 22장

22:1 <다윗이 아둘람과 미스베에서 지냄> 다윗은 가드를 떠나 아둘람 동굴로 도망갔습니다. 다윗의 형들과 다른 친척들이 다윗이 그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을 만나러 왔습니다.

22:2 많은 사람이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과 빚을 진 사람, 그리고 마음에 억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몰려온 사람들은 사백 명 가량 되었습니다.

22:3 다윗은 그 곳에서 모압 땅에 있는 미스베로 갔습니다. 다윗이 모압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리로 와서 당신과 함께 있게 해 주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실지 알 수 있을 때까지 머물러 있게 해 주시오.”

22:4 다윗은 자기 부모님을 모압 왕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윗의 부모님은 다윗이 요새에 숨어 있는 동안, 모압 왕과 함께 있었습니다.

22:5 하지만 예언자 갓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새에 숨어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가시오.” 그리하여 다윗은 그 곳을 떠나 헤렛 숲으로 갔습니다.

22:6 <사울이 아히멜렉의 가족을 전멸시킴> 사울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울은 기브아 언덕 위의 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고, 모든 신하들은 그 주변에 둘러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손에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22:7 사울이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여, 들어 보시오. 여러분은 이새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리라고 생각하시오? 과연 다윗이 여러분을 군인 백 명을 지휘하는 백부장 혹은 군인 천 명을 지휘하는 천부장으로 삼을 것 같소?

22:8 여러분은 모두 나를 배반할 음모를 꾸몄소.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약속을 하였는데도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내 아들이 내 종을 부추겨 오늘 당장 나를 해치려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소.”

22:9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들과 함께 그 곳에 서 있었습니다. 도엑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놉으로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을 만났습니다.

22:10 아히멜렉은 다윗을 위해 주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또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22:11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사람을 보내어 놉에서 제사장으로 있던 아히멜렉과 그의 모든 친척을 잡아 오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왕에게 잡혀 왔습니다.

22:12 사울이 아히멜렉에게 말했습니다. “아히둡의 아들아, 내 말을 들어라.” 아히멜렉이 대답했습니다. “왕이여, 말씀하십시오.”

22:13 사울이 말했습니다. “너는 왜 이새의 아들과 함께 나를 해치려고 남이 모르게 나쁜 일을 꾸몄느냐? 너는 다윗에게 빵과 칼을 주었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다. 어찌하여 다윗이 지금 나를 치도록 만들었느냐?”

22:14 아히멜렉이 대답했습니다. “다윗은 왕에게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왕에게 다윗만큼 충성스러운 종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은 왕의 사위이고, 호위대장입니다. 왕실에서 그는 귀중한 사람입니다.

22:15 다윗을 위해 내가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이 이번만은 아닙니다. 나와 내 친척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는 왕의 종입니다.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22:16 그러나 왕이 말했습니다. “아히멜렉아, 너와 너의 친척들은 죽어 마땅하다.”

22:17 사울은 곁에 서 있던 호위병들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들은 다윗의 편이다. 그들은 다윗이 도망친다는 것을 알고도 나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왕의 신하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22:18 그러자 왕은 도엑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제사장들을 죽여라.” 에돔 사람 도엑은 사울의 말대로 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그 날, 도엑은 세마포 에봇을 입은 사람 팔십오 명을 죽였습니다.

22:19 도엑은 또 제사장들의 성인 놉의 백성들도 죽였습니다. 도엑은 칼로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와 갓난아기들을 죽였고 소와 나귀와 양도 죽였습니다.

22:20 그러나 아비아달은 죽음을 피하여 달아났습니다. 아비아달은 아히둡의 아들인 아히멜렉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에게로 달아났습니다.

22:21 아비아달은 다윗에게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22:22 그러자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말했습니다. “에돔 사람 도엑이 그 날, 그 곳에 있었소. 나는 그 사람이 사울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할 줄 알고 있었소. 당신 아버지와 당신 친척들이 죽은 것은 내 책임이오.

22:23 당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이 나도 죽이려 하고 있소.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있으시오.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사무엘상 제22장 강해: 사울의 제사장 학살 사건

사무엘상 제22장 강해.hwp

사무엘상 제22장 강해: 사울의 제사장 학살 사건

본 장은 1차 도피기 중에 있는 다윗에게 그의 혈족과 추종자들이 결집되는 것과, 자신도 모르게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간신 도엑의 고발에 따라 놉 제사장 85인과 그 가족을 학살한 만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둘람 굴에 피한 다윗의 추종자들 400인과, 모압 미스베로 갔다가 다시 헤렛 수풀로 돌아온 도피 과정의 요약과, 부하들을 향하여 다윗 추적 실패에 대한 질책을 하던 사울이 간신 도엑의 고발로 다윗이 놉을 방문하였다는 사실 알게 되고, 부지중에 다윗에게 음식과 무기를 제공했다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행한 학살 사건, 학살을 피한 제사장 가문의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피하는 순서로 내용이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1-5절: 다윗이 사울의 살해 위협을 피하여 이리저리로 도피하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안전한 피난처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추종자들을 얻었으며 다시금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하니, 다윗 일행은 유다 땅 헤렛 수풀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다윗이 400인의 추종자를 얻게 되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 400명 중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다윗을 따르고 지지하던 사람들도 있으며,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살기를 갈망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다윗을 따르기는 했지만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고난도 함께 겪어야 했습니다. 이는 앞으로 밝은 미래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후에 다윗과 함께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삼하 2:3).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인내로써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롬 8:17).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는 갓 선지자의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난처이며 요새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누구든지 대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담대히 마주서야 할 것도 아울러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아둘람’은 가나안의 왕도(王都) 중의 하나로서 ‘피난처’ ‘은신처’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드와 베들레헴 사이에 위치합니다. 가나안 정복 이후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땅이지만(수 12:15;15:35), 당시는 블레셋 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 지역에는 석회암 동굴이 많을 뿐 아니라 사울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았던 곳이므로 다윗이 피신하기 좋았을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4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 동굴을 발견하고 이곳을 다윗의 피신처로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이곳 근처의 굴로 도망하여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 결합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둘람에서부터 약 15km 거리의 베들레헴에 있던 가족들이 다윗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모반(謀反)에 관한 범죄에는 온 가족이 처벌을 당하는 시대였으므로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도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2: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의 학정으로 고통을 받던 사람들이 아둘람으로 모이고 다윗은 그 장관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다윗의 명성은 사울보다 높았습니다. 여인들의 노래에서 사울보다 다윗을 더 위대하게 표현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삼상 18:6-8). 그리고 다윗이 군대의 사령관으로 있을 때에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여 모든 일에 성공했었습니다(삼상 18:5, 14). 그래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에게 온 사람 중에는 갓도 있었으므로 다윗에 모여든 사람들이 불량배나 각종 난민들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추앙을 받았던 다윗이 사울의 질투와 시기로 왕궁에서 쫓겨나 도피생활을 하자 사울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환난당한 모든 자’ 사울의 학정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고통을 받던 자들입니다(사 51:13). ‘빚진 자’ 사울의 그릇된 경제 정책의 일면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즉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원통한 자’에서 원통(마르: )은 ‘쓴’이라는 뜻입니다. 이 형용사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쓰인 경우는 ‘쓴 포도송이(신 32:32)’, ‘쓴 물(출 15:23)’ 등 미각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감정을 묘사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이 됩니다. 히브리인들은 비통하고 불쾌한 체험을 미각의 관점에서 즉 쓴 맛이라는 관점에서 표현하였습니다. 다윗에게 모인 사람들은 사울의 불의한 통치와 정책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KJV나 NIV도 ‘불만을 품은 사람들(discontented)’로 번역했습니다. ’다 그에게로 모였고‘ 이렇게 사울 왕권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영적으로 고통을 받던 사람들이 사울을 버리고 혹은 피하여 다윗에게로 모여든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많은 용사들과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5절; 대상 12:1-18). 이들은 패역한 사울 왕권 하엣6j 안일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에게로 온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라면 여호와의 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사람 계수법에 따르면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전투 요원만 4백여 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다윗이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천부장이었음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효지만 생활 기반을 모두 버리고 가족을 동반해 온 자들이 이처럼 많았다는 것은 다윗의 신앙이나 인감 됨됨이가 얼마나 좋은 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다윗은 아둘람이 많은 사람이 모여 있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근거지를 옮기고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부모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 이유에는 첫째 다윗의 증조모 룻의 고향이 모압이었으므로 혈연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며(룻 4:13-22;마 1:5,6) 둘째 사울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4,5절) 이처럼 다윗이 도주 중에도 그 부모를 보살피는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마치 자기의 모든 이익을 포기하고 시모 나오미를 따랐던 룻의 희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그 후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고 노력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기가 ‘할례 없는 사람’(삼상 17:26)이라고 경멸했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피신했다가 큰 위기를 당하엿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들이 다윗을 좀 더 신중하고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구체적인 인도와 계획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때까지 자신의 부모들을 안전한 모압의 왕에게 위탁한 것입니다.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다윗의 요새는 다윗이 산의 고지 혹은 성채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그의 부모는 모압의 왕과 함께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장소는 단지 다윗이 모압 미스베에서 발견한 숨을 곳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5절의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더 이상 이 요새에 머무르지 말고 유대 땅으로 돌아가라는 말에서 이 요새가 아둘람 동굴이나 베들레헴 근처의 다른 피신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당시 선지자 갓이 어떻게 다윗과 함께 모압 땅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은 모압 땅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해서 유다 땅을 벗어나 모압으로 왔는데 다시 사울이 지배하는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원수가 통치하는 땅으로 과감하게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함으로 이제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삼상 21:10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것입니다. ‘헤렛 수풀’은 헤브론 산맥의 등성이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헤렛’은 아둘람에서 약 5키로미터 되는 것으로 수풀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아둘람을 거쳐 헤렛 수풀에서 그일라로(삼상 23:1) 또 마온 황무지(삼상 23:24)으로 그 다음에는 엔게디 황무지(삼상 24:1)로 도피하였습니다.

6-23절: 다윗이 놉 땅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에 그곳에는 도엑이라는 자가 있어서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즉 그 광경을 도엑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도엑으로 인하여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본 단락에서는 그 같은 예견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급기야 도엑에게 놉 제사장들을 살육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제사장 85인과 놉 땅의 거민 모두가 진멸당하고 말았습니다(11-19).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만이 겨우 다윗에게로 도망하여 사태를 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의 왕위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사울의 잘못된 욕심과 도엑의 기회주의적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처세술이 빚어낸 추악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실현해야 할 신정적 왕정 체제의 왕으로서 이런 악한 일을 행하였다는 것을 기술하여 그가 앞으로 몰락할 것이 필연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이 사울을 떠나고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혀 이런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되고 도엑이라는 악한 자가 그 도구가 되어 악과 악이 만나 이런 엄청난 살육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사장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애매히 당하는 고난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가문에 대하여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삼상 2:31,32;3:11-14) 엘리와 그 아들들의 패역으로 인하여 그 가문의 멸절을 선고하셨는데, 엘리, 홉니, 비느하스 및 그의 처의 죽음(삼상 4:11; 18:20)에 이어 그 후손들인 제사장 85명이 죽음으로 또 한 번의 예언 성취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천지는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며 때가 되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사울이 자신의 왕위 보존을 위해 죽이려 했던 다윗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많은 무리들과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울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행방을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나타났다(야다: ידע)’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안다’는 것과 동일어로 피상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고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높은 곳(라마: רמה)’로 일차적 의미는 ‘높이 쌓아 올린 대’이지만 많은 경우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사용이 됩니다(수 19:29;삿 4:5;삼상 7:15)여기에서는 당시 사울의 수도였던 ‘기브아’란 지명이 나오므로 개역성경처럼 일반 명사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라마’가 대부분 신적 존재를 섬기기 위해 쌓아놓은 높은 곳애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당시 사울은 자신을 신처럼 높이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손에 단창을 들고’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의 왕들은 왕권의 상징으로 홀을 들고 있었으나 사울은 흔히 단창을 소지한 듯 합니다.(삼상 18:10;26:7;삼하 1:6) 이는 당시 상황이 전시였다는 점과 더불어 여기서는 특히 다윗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셀 나무 아래 앉았고’ 에셀 나무는 주로 수분이 많은 와디(WADI)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고지대였던 기브아에서는 자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에셀 나무가 있었던 것은 사울이 에셀 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삼상 31:13), 이 나무가 과거 아브라함과 관계되었으며(창 21:33) 자신의 권위를 높여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모든 신하가 그 곁에 섰더니’ 마치 동양의 절대 군주가 자신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하들을 기립시킨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울은 몹시 흥분된 상태였고 그 부하들을 질책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전회의를 이끌기 위해 이런 상태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사울은 그의 측근들을 거의 같은 지파 사람인 베냐민 지파로 구성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도원과 밭을 주었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준 포도원과 밭은 일반 백성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일찍이 왕의 제도를 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무엘이 경고햇던 내용들입니다(삼상 8:10-18). 사울은 그의 신하들에게 ‘다윗이 너희에게 포도원을 주며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 속에는 ‘다윗이 다른 지파인데 너희에게 내가 해 준 것처럼 그렇게 해 주겠는가? 그가 유다 사람들에게 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내 편에 서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여 은근함 압박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속에서도 사울은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게 모든 유익을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실로 너희 모두가 나를 대항하여 공모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공모는 ‘어떤 것을 무엇인가에 묶거나 연결시키는 것’을 말하며 또한 인간들끼리 함께 뭉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울은 모든 신하들이 다함께 뭉쳐서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맺어 서로 정보를 교환한 것을 알면서도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발하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나의 귀에 드러내는’이라는 뜻으로 곧 보고하는 것입니다. KJV에서는 ‘나에게 드러내는(showth me)으로 번역했고, NIV에서는 ’말하다(tells me)’라고 번역했습니다. 자기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에게 고발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그의 부하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선동하는 것은 일으켜 세운다는 뜻인데, 배반하도록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의 신하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이제는 요나단까지도 다윗 편에 가담해서 자기를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극심한 피해 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이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자기가 포도원과 밭도 주고, 천부장과 백부장의 직책을 주었는데 자기편에 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여 부하들의 이기심을 부추기며 충성이 약하다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때에’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자기편에 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여 부하들의 충성을 요구했을 바로 그 때를 말합니다. 즉 에돔 사람 도엑이 바로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놉에서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준 일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우리 성경은 ‘그를 위하여’라고 한 번만 번역하고 있는데 원문에서는 3번이나 쓰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었고, 그를 위하여 식량을 주었고, 그를 위하여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해 한 행동들을 조목조목 자세하게 고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께 묻고’라는 말은 삼상 21:1-10에 나오지 않지만 15절 아히멜렉의 답변으로 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들은 조금도 사울 왕에게 범죄 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도망하거나 다윗에게 피하려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아히멜렉 혼자였는데 사울은 놉에 있는 제사장 모두를 소환한 것입니다. 자기의 신하들과 요나단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던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도엑의 말을 듣고 극도로 흥분하여 처음부터 제사장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악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분명하며, 그러나 그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12,13: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사울은 도엑의 말을 듣고 아히멜렉에게 반역죄를 씌우고 있습니다. 아히멜렉과 다윗의 공모한 죄목은 도엑이 말한 10절의 세 가지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종인 제사장도 반역자로 다스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심문은 모세 율법의 형사 소송법상 재판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는 것도 무시한 것이기도 합니다(신 19:15).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은 여기에서 사울의 말을 통해 다윗이 자기에게 왕명 수행의 일로 왔다고 한 것이 거짓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광적인 모습 앞에서 아히멜렉은 자신의 안위를 꾀하기보다 다윗의 의로움과 왕이 그를 사위로 삼을 만큼 존귀한 자였음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충실한 자(네에만: נאמן)’은 ‘신실하다’ ‘성실하다’의 뜻을 가진 ‘아만(אמן )’ 동사의 수동 분사형입니다. 즉 ‘확증된 사람’ ‘충성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히멜렉은 ‘왕의 신하들 중에서 다윗과 같이 충성된 사람으로 입증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하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윗의 신분이 ‘왕의 사위요, 왕의 시위대 장관이요, 왕궁에서 존경 받는 자가 아닙니까?’하고 묻고 있습니다. ‘모신(謀臣)’은 ‘왕의 개인적인 감정을 얘기하고 토론하는 왕의 비밀스런 보좌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 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

21장에서 아히멜렉이 하나님께 물어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이번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 이전부터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의 전투 수행 시 우림과 둠밈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히멜렉의 질문 속에는 ‘내가 다윗을 위하여 물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자신이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다윗의 앞길이 평탄할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 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기에게 왕의 명령을 수행 중에 있다고 한 말은 고하지 않았는데, 이는 다윗의 말과 상관없이 양심상 자신의 행위가 떳떳하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아히멜렉은 자기에게 사울이 반역을 꾀했다고 한 말에 대해 ‘이 모든 일의 대소 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라는 말로 왕에 대해 반역의 음모를 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하여 자기와 자신의 온 집에 책임을 묻지 말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사울이 도엑의 말을 듣고 아히멜렉을 불러 반역 공모 죄를 씌워 이제는 사형의 판결을 내리는 말입니다. 이는 관원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해야 하며 자신의 사사로운 이기심의 충족을 위해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롬 13:1-7) 점에서 볼 때, 사울의 판결은 여호와의 뜻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국사범의 경우 많은 증인을 확보하여 설차 범죄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당사자만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의 영혼은 온 가문을 멸절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범죄자임입니다. 이런 경우에 성도는 정권에 공의를 제시할 책임이 있다고 잠어서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잠 24:21).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아히멜렉이 그의 결백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일고(一考)도 없이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놉의 다른 제사장들에게까지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그의 시위자 즉 창기병(槍騎兵)에게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반역 행위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히 5:4) 사람들 편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사 업무를 수행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울의 명령 가운데서 ‘여호와의 제사장’이란 표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의 사형죄목은 첫째 다윗과 협력하여 다윗의 편에서 합세하여 공모했다는 것이며, 둘째는 다윗이 도망한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히멜렉은 무죄임을 증언했으므로 즉각 사형은 온당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이 매우 잔인하고 미친 짓에 가까운 것이어서 왕의 신복인 창기병들조차 여호와의 제사장들에게 손대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싫어한지라’는 ‘원하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사울의 명령에 직접적인 거부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왕의 창기병들이 그의 명령에 불순종하자 이제 사울은 도엑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도엑은 이방 사람으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출세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들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이 사건은 일찍이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삼상 2:27-36). 아히멜렉은 이다말의 후손으로서, 아히둡의 아들이며, 사악한 비느하스의 손자였고 엘리의 증손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손에 엘리 자손들이 몰살당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비아달도 다윗의 생전에는 제사장 직무를 잘 수행했으나 다윗 이후 왕자들 사이에 왕위 찬탈전이 벌어졌을 때, 아비아달이 아도니야 편에 가담함으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제사장 직무를 박탈당하고 아나돗 지역으로 귀양을 갔습니다.(왕상 2:26) 이렇게 하여 엘리 집안에 예고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놉 땅은 본래 제사장 성읍으로 지정 된 곳은 아닙니다. 실로가 함락된 후 사울이 놉에 제사장들을 정착시키고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회복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이 같이 놉에 있는 사람들과 가축들까지도 몰살시켰다는 것은 당시 사울이 얼마나 사악한 영혼으로 변질 되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을 죽이라는 사울의 명령에 이 같이 백성들과 가축까지도 몰살시킨 것은 도엑 스스로 한 짓이라기보다는 사울의 추후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만행에 도구가 된 도엑 그 자신도 얼마나 흉악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가 타락한 영혼은 불신자보다 더 반기독교인(antichristian)이 되어 마귀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아버지는 부유하시다.’는 뜻을 가진 아비아달은 엘리 제사장 계열에서 생존한 유일한 자입니다. 아마 그는 모든 놉의 제사장이 사울에게 나아갈 때 성소를 지키기 위해 놉에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기브아에서 발생한 살육 소식을 듣고 즉시 ‘에봇’을 챙겨(삼상 21:9;23:6) 도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위기 상황에서도 에봇을 챙긴 것은 후에 압살롬 반역 시 하나님의 연약 궤를 메고 다윗을 좇은 것과 마찬가지로(삼하 15:24-29), 그의 여호와의 제사장으로서의 충성된 일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로 가서’ 당시 다윗에게는 사울의 폭정에 시달려 도피한 자들이 많았으므로 아비아달 역시 자연스럽게 이들과 합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아비아달은 다윗이 다음 왕위를 계승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임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이런 도피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당시 다윗이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는 더욱 악인을 증오하게 되고,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고발하는 기도가 시편 17, 35, 109, 140 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다윗이 아비아달로부터 ‘놉 제사장 학살 사건’의 내용을 듣고 그 사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과 다른 놉의 모든 제사장들이 사울에 죽임을 당한 것은 다윗 자신이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하여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주된 원인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삼상 21:2). 따라서 다윗은 자신의 거짓말로 인한 범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비아들을 보호해 주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책임을 지려는 모습은 성도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에게 장차 이스라엘의 왕권을 주실 것임을 믿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다윗에게는 선지자 갓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있어서 다윗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2017/07/01(토) “사무엘상 22:1-23” / 작성: 박창용

본문 사무엘상 22:1-23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주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집이 듣고 그리고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은 지명수배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가족들도 안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로인해 다윗이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의 하나인 가드에서, 아둘람 굴로 피하자 가족들도 피신해 온 것입니다.

(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이어 사울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에서 억압당한 자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환난가운데 있거나 빚을 지거나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자들이 하나 둘씩 아둘람 굴로 피해서 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40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600여명으로 늘게 되고, 사무엘하23에 보면 이들이 바로 다윗의 용사들이 됩니다. 다윗왕국의 중요한 요직을 담당하게 됩니다.

가드와 아둘람 굴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에 블레셋 지역과 경계에 위치한 있는 성읍입니다. 아히멜렉이 있던 놉은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고, 사울이 수도로 삼은 기브아 또한 베냐민 지역으로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언제 어떻게 침공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3절) “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결국 다윗과 그의 일행들은 블레셋 경계지역에서 이제 동남쪽에 위치한 모압까지 피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모를 피신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닙니다. 다윗을 따르는 400여명의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숨어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선지자 갓이 모압에 숨어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5절)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선지자 갓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다윗은 헤렛 수풀로 떠납니다. 그곳은 헤브론과 베들레헴 사이에 위치한 숲으로 은신하기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숨어 있다는 소식을 사울은 듣게 됩니다. 그리고 기브아에 있는 사울은 손에 단창을 들고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8절)“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다윗은 도망자 신세였지만, 사람들이 찾아오고 모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한 개인이 아닌,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때를 기다립니다. 반면, 사울은 왕좌에 앉아 있지만, 수 많은 신하들이 곁에 있을 뿐, 그 누구도 마음을 함께 하지 않습니다. 딱 한 사람 이방인 에돔 사람 도엑만이 사울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어마 어마한 사실을 그에게 폭로합니다.

(10절)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결국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은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과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왜 이새의 아들 다윗과 공모를 했는지 추궁합니다. 그리고 사울은 호위병들에게 명령합니다.

(17절)“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호위병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제사장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에돔 사람 도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울도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도엑에게 제사장을 죽이라 명하고, 도엑은 이를 시행합니다. 85명의 세마포 에봇을 입은 제사장들이 이방인 도엑의 손에 죽임 당합니다.

딱 한사람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만 다윗에게 도망하여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에게 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안타가워 하며 함께 있자고 합니다. 그의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 이제 사울이 통치하는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사람인 제사장은 없습니다. 마지막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피신하여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울 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할 그 누구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은 이방인 에돔 사람 도엑만 따르고 그 누구도 마음을 함께 하지 않습니다. 반면, 다윗은 억압받는 자들의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잃고, 다윗은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볼 때, 사울과 다윗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사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을 모두 그의 호위병들에게 죽이라고 명령할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호위병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는 목숨을 걸고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에돔 사람 도엑이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칼로 쳤습니다. 놉에 있는 남녀와 아이들, 젖 먹는 자들 소와 나귀 양 모두 칼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왕 사울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사울을 피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 다윗은 맞서지도 않고, 죽이지 않고, 피했습니다. 이방 땅까지 가서 숨었습니다. 블레셋으로 갔습니다. 모압에도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숨었습니다. 피했습니다.

언젠가 한 청년이 이런 신앙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했습니다. 골리앗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들짐승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울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다윗에게 억압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다윗이 억압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피난처가 되어 준 것입니다. 그늘이 되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이 억압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때 비로소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불안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하나님만 두려워 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따뜻해 질 수 있습니다. 배려하고 양보 할 수 있습니다.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요함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분노와 증오를 갖고 억압하는 누군가를 심판하고 공격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 할 때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인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기도로 시작하며, 하나님만 두려워하기로 결단하십시다. 그리하여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두려워할 대상이 정말 누구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두 눈과 믿음을 갖는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기에

사람도 환경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람과 환경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믿음의 삶, 소망의 삶, 사랑의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정직하고 바른 선택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방인 도엑의 말을 듣고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호위병들도 죽이지 못한 제사장들을 에돔 사람 도엑이 죽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사울을 피해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피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으로 사울을 피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일상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6. 사람 또는 환경이 두려워 잘못된 선택을 한 경험이 있습니까?

(작성: 박창용)

사무엘상 22장 & 성경주석

<사무엘상 22장 흐름정리>

계속해서 다윗은 아둘람 굴과 모압 미스베로 도피하였고, 선지자 갓의 조언에 따라 유다 땅(헤렛 수풀)으로 들어갔다. 이 약속의 땅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다윗의 유일한 은신처와 요새가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메시지였다. 한편, 6절 이하는 도엑의 밀고로 인해 놉에 있는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 살육당한 끔찍한 사건을 보도한다. 사울은 오직 다윗을 죽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들이면 모두 처단하는 살인마로 변해 있었다.

<사무엘상 22장 줄거리>

1. 일행들이 아둘람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옴.

3. 미스베에서 다윗이 모압왕에게 부모를 맡아줄 것을 청함.

5. 갓의 권고로 헤렛으로 감.

6. 사울이 신하들의 불충을 불평하면서 다윗을 추격하려 함.

9. 도엑이 아히멜렉을 고소함.

11.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함.

17. 시위자들이 명을 거역함으로 도엑이 제사장들을 처형함.

20. 아비아달이 도망하여 다윗에게 그 소식을 전함.

<사무엘상 22장 개역한글>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것이 없나이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사무엘상 22장 성경주석>

22:1 아둘람굴.

요세푸스에 따르면(Anti- quities vi. 12. 3), 아둘람 성읍 근방에 있는 동굴이라고 한다. 아둘람은 산지 지역이 셰펠라 쪽으로 낮아지기 시작하는 서쪽 비탈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2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키르베트 엣-셰이크 마드쿠르(Khirbet esh-Sheikh Madhkur)로 확인되었다. 아둘람 성읍은 다윗이 블레셋 거인과 대면한 엘라 계곡 동쪽 끝자락에 있다. 구릉 지역에는 동굴이 많이 있는데 몇몇 동굴은 아주 크다. 사암층이 아주 부드러워 조개 껍데기로도 벽을 깎아 내릴 수 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껍데기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동굴 중 일부에서 양치기들이 가축을 키웠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로 팔레스타인 성읍들에서 쫓겨났을 때 아둘람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몇몇 동굴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 동굴에는 로마의 카타콤과 유사한 납골당과 토굴이 있다. 아둘람굴을 은신처로 삼은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시고 싶어했다. 용맹스런 다윗의 부하 셋이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 근방 르바임 계곡을 침략했던 블레셋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하는 지도자에게 우물물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의 충성심에 깊이 감동받은 다윗은 여호와께 예물로 물을 부었다(삼하 23:13~17; 대상 11:15~19). 이 사건은 추수기(삼하 23:13; 참조 삼상 23:1), 즉 한 해 중 봄과 초여름에 일어났다. 다윗은 이 동굴에서 겨울을 보낸 것 같다.

시 57편 표제에 따르면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이 시편을 썼다고 한다. 믿음과 용기를 회복한 다윗은 “사자 중에 처하며…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시 57:4)은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이 구원해 주리라는 확신을 나타냈다. 그의 태도가 변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선지자 갓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갓이 동굴에서 지내던 다윗과 그 일행을 만나 함께 지냈으리라 추측한다(참조 5절 주석).

22:3 미스베.

문자적으로 “망대.” 모압의 산악 지역 곳곳에서 이러한 “요새”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들은 산등성이에서 서로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각 요새에는 정찰대가 주둔해 연락망을 구축했다. 미스베가 정확하게 모압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르에서 멀지 않은 모압 산지의 요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기르는 후에 모압의 수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왕하 3:25~27). 오늘날의 지명은 케라크(Kerak)인데, 와디 케라크(Wadi Kerak)의 비탈에 위치한 마을로, 방어하기에 적합한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르에서 2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와디 헤사(Wadi H.esa-)가 있는데 에돔의 북부 경계선인 세렛강으로 성경에 나온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후 모압과 전쟁을 벌였다(삼상 14:47). 그러므로 사울이 무법자로 선언한 이들은 모압으로 도망갔다. 다윗 또한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사람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거기로 도피한 것 같다.

22:4 요새.

히브리어 므추다(mes.udah). “성채” 또는 “요새”라는 뜻으로, “사냥하다”는 의미의 어근 추드(s.ud)에서 나온 말이다.

22:5 갓.

다윗의 생애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 사람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울이 제사장들뿐 아니라 사무엘의 수하에 있던 선지자들에게도 등을 돌리자,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이 왕에게서 소원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다름 아닌 사무엘 자신이 갓을 보내 다윗과 연락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이스라엘왕은 하나님께 영감받은 선견자와 함께함으로써 크게 도움받을 것이었다. 다윗의 생애 동안 갓은 그와 함께한 선견자이다(삼하 24:11~19). 선지자 나단과 함께 갓은 다윗의 전기를 편찬했다(대상 29:29). 갓이 평생 친구였던 다윗 왕보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젊었을 때 다윗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갓은 다윗을 찾아 미스바까지 여행했다기보다는 다윗이 아둘람에 있을 때 그에게 가서 모압까지 동행한 듯하다.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다윗과 관련한 정보의 편린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돕는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많은 상세한 이야기가 빠졌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이야기를 복원한다면 흥미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 인도한 것처럼 사울에게도 똑같이 했다. 두 사람의 삶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한 성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하나라도 덜 이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계획이 계속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22:5 요새에 있지 말고.

다윗은 모압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유다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사울의 군대는 계속되는 블레셋인의 침략에 무기력했으며(삼상 23:1, 27; 대상 11:15), 상황이 불안정했다. 나발의 이야기는 목자들도 무장 병력의 보호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삼상 25:15, 16, 21). 사울이 다윗을 증오하는 것이 다윗이 외국으로 도망갈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과거에 다윗을 수없이 많이 보호했던 하나님이 지금 와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고난과 시련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전개시켜 나갈 것이었다.

고난을 통한 훈련은 심지어 예수의 생애에서도 효력이 있었다. 우리 구원의 주도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었다. 다윗은 온갖 문제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유다의 한복판으로 돌아옴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오늘날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신실함을 보여 주고 싶어한다. 그분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자신의 자녀들이 후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기독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기독교가 인간 자신과 사단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22:5 헤렛.

헤브론 서북쪽 산악지역 끝자락에 위치한 오늘날의 카라스(Kharas)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2:6 다윗과…나타났다.

이 장에 나오는 나머지 이야기를, 히브리 문서에서 때때로 사용하는 대로 다른 주제를 논하기 전에 한 주제를 결론으로 끌어가기 위해 엄격한 연대 순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실례로 보는 성경 주석자들도 있다.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도엑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고발한 것과 놉에서의 학살이 다윗의 처음 탈출 직후에 있었지만, 다음 장에서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학살 사건을 도입할 필요가 생길 때까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해석은 다윗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다는 아히멜렉의 자백에 주로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추론이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연속적인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 또한 타당하다. 그럴 경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둘람 요새에 위치한 은신처에서 나와 헤렛 수풀에 진을 쳤음이 알려졌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부하들에게 반역자와 공모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8절)는 뜻이다. 그리하여 목자였던 도엑은 기회를 잡아 아히멜렉을 밀고하기에 이른다(9, 10절). 도엑과 같은 신분의 사람이 다윗을 성소에서 보았을 때 그가 거기에 온 실제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윗이 사울의 심부름을 가는 길에 자문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에 들른 것에 이상한 점이 없었을 것이므로 그 당시 도엑은 이것을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히멜렉의 대답은 사건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이 방문했을 당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명함으로써, 배신으로 추정된 행위를 한 때와 제사장들이 사울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을 논리적으로 변호했기 때문이다(참조 14, 15절 주석). 그러므로 반드시 다윗이 성소를 방문한 직후에 제사장 학살과 놉에서의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8 659).

22:6 에셀나무.

(「제임스왕역」에는 “라마에 있는 한 나무”로 되어 있음-역자 주). 라마와 기브아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참조 1:1 주석), 사울이 라마에 위치한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서 기브아에 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 히브리어 라마(ramah)는 겔 16:24, 25에서처럼 “높은 곳” 즉 “높은 대(臺)”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기브아의 높은 곳은 아마도 그 성읍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22:8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정신병에 가까운 질투심에 사울은 자신을 동정하면서, 다윗을 잡으려는 계획이 좌절된 것을 자신을 뺀 모든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부족이 유다에서 온 적수를 돕기 위해 정보를 숨겼다며 비난에 열을 올린다. 사울은 아들조차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반역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한 번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14:44). 이제 그는 백성들이 전에 없이 요나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22:9 도엑이…대답하여 가로되.

목자장 도엑은 왕과 함께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음을 알아챘다(참조 21:7 주석). 도엑은 다윗에게 음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묻고 무기까지 제공해 준 제사장(10절)에 비하면 요나단과 베냐민 지파는 잘못이 없다고 사울에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엑은 상을 후하게 주며 높은 지위도 주겠다는 유혹를 받고서야 자청해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9).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불충했다는 죄목은 부인했다. 그의 대답으로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의견이 분분하다(참조 6절 주석). 다윗이 기브아에서 도망간 즉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히멜렉의 대답에서 그가 그 순간까지 다윗이 더 이상 사울의 가장 충실한 신하가 아니며 왕의 집안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지했다고 해석한다. 다윗이 오랫동안 도망자이자 범죄자였는데도 사울에게 그가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라고 말할 만큼 아히멜렉이 무지하고 어리석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동사를 현재 시제로 번역한 영어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 본문에는 제임스왕역에서 “goeth”로 번역된 수르(sur)라는 동사 하나만 있다. 이 절에서 “is”가 세 번 나오지만 원문에 첨가된 것이다. 여기 나오는 수르라는 동사의 형태는 현재와 과거의 의미가 모두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논의 중인 기간과 관련하여 문장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시제는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히멜렉의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만큼 충실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왕의 사위이며 당신의 분부대로 따르는(또는 따랐으며),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문맥상 과거형을 쓰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러한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 필요한 동사를 삽입하는 것은 번역자가 제일 좋다고 판단하는 대로 맡겨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본질적으로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히멜렉의 말은 분명 그 당시(최근이든 오래 전이든) 왕의 존귀한 대표자라고 생각한 사람을 도왔다는 뜻이다.

22:15 내가 그를 위하여…오늘이 처음이니이까.

「제임스왕역」이나 「개정표준역」보다는 「개정역」이나 「미국표준역」의 다음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내가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묻는 일을 시작한 것이 오늘입니까?” 이 말은 만약 다윗의 처지를 알고 나서 지금 그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사울의 공식적인 적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울과 다윗 사이에 분쟁이 있음을 알기 전에 한 행위는 충성심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아히멜렉은 사울의 문책-사울의 생각을 거슬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울과 참으로 가까운 사람, 충성되고 헌신적이었던 사람을 위해 여호와께 여쭈었으며, 왕을 대신한 사자에게 도움을 제공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침착하게 답했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한 것이다.

22:17 시위자.

히브리어 라침(ras.im). 문자적으로 “달리는 자”라는 뜻이며 명백히 여기서처럼 시위대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요구한 왕이 아들을 취하고 그들 중 일부를 징집하여 “병거 앞에서 달리도록”(8:11) 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이 직책을 두고 한 말이었다. 사울은 시위병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 치기를 거부하자 좌절감을 느꼈다. 왕이 요구한 것은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오늘날 이교도 가운데서도 의사(醫師)는 신성하게 여겨지며 아무도 감히 손을 들어 그를 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울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종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하겠는가!

22:18 에돔 사람 도엑.

여기에 나오는 에서의 자손은 질투가 심하고 화를 잘 내며, 악의를 품고 악한 본성에서 나온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핑곗거리라도 얻으려 갈구하는 사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으로부터 허락을 맡은 도엑은 아히멜렉과 그의 동료들이 신성한 예복을 입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종을 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날 여든다섯 명이 이기적인 탐욕 앞에서 쓰러져 갔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 주면서 자신에게 종교적인 열정이 있다고 공언했을 때(15:20)와, 광란에 휩싸여 유대인 역사상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을 때가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22:19 남녀.

무고한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 쓴 채 고통을 받았다. 놉의 주민들은 성막과 제사장의 가족을 놉으로 이주시키는 것(참조 21:1 주석)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무분별하고 극악무도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성읍 전체를 쓸어버렸다. 이전에 블레셋인들이 성스러운 도성 실로를 파괴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었지만 성읍 전체를 절멸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22:20 아비아달.

놉에서의 유일한 생존자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뒤를 좇아” 도망한 그는 다윗이 하렛 수풀을 떠나 그일라로 향할 때 다윗에게 이르렀다(참조 23:2, 6 주석).

22:21 다윗에게 고하매.

문자적으로 “다윗이 알도록 했다.” 다윗은 그 전에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윗이 놉을 방문한 것과 관련하여 잔학 행위가 이전에 있었다기보다는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22:23 내게 있으라.

다윗이 아비아달을 일행으로 환영할 때 얼마나 기뻤을까? 우림과 둠밈을 보았고(23:6) 놉이 초토화되었지만 하나님의 손이 에봇과 그것을 지키는 제사장 위에 있음을 알고 용기백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그 비극의 끔찍한 면면을 전해 들었을 때, 대제사장의 죽음과 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데에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남을 속이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고 있다. 그 해를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자책감이 무섭게 밀려왔지만 “앞에 있는 것을 잡는”(빌 3:13) 수밖에 없었다.

시 52편은 다윗이 도엑의 행위를 들은 후에 쓴 것이다(참조 52편 표제). 다윗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 오만하게 반항하며 그분의 계획에 맞설 수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엑은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혀로 기만과 재난을 뿌림으로 협잡과 악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사무엘상22장

사무엘상 22장

삼상22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요약: 다윗이 가드 땅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했다. 그의 부모 형제를 비롯하여 환난 당한 자 등 사백여 명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다. 다윗은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의탁했다. 선지자 갓은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간 일을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말했다. 도엑이 아히멜렉에 속한 제사장 85명을 죽이고 제사장들의 성읍을 칼로 쳤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살아남아 다윗에게로 피했다.

다윗이 아둘람 굴로 도망하다 (1~4절)

①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1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2절) ▶ 유다 지파의 조상 유다도 일찍이 아둘람 땅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창38:1), 아둘람 굴은 아둘람 땅에 있었던 어느 굴이었을 것이다. 집안의 막내인 다윗은 아버지 이새와 형들이 보는 데서 기름 부음을 받았고, 골리앗을 죽였으며,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등 상당한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한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그의 아버지 집안까지도 어려움을 당한 것으로 보이고, 그로 인해 아둘람 굴로 도망한 다윗에게 오게 되었다. ▶▶ 환난 당한 모든 자는 everyone who was in distress(고통/고난/곤란 중에 있는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는 everyone who was discontented(불평/불만을 가진 모든 자)를 말한다. ‘원통한’은 (히) ‘마르/마라(여성형)’인데 ‘쓴’ ‘쓰라린’ ‘불만스러운’ ‘무거운’ 등의 뜻이다. 이 단어를 보면 남편도 두 아들도 다 잃고 모압 땅에서 돌아온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고 하던 나오미가 떠오른다(룻1:20). 다윗이 지금 억울하고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고난 3종 세트의 사람들 4백 명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다. 이 4백이란 숫자는 고난을 상징하는 40에 10을 곱한 수로서 아둘람 굴로 도망한 다윗의 처지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목하 아둘람 굴은 (부정적 의미로)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의 핫 스팟(hot spot)이 되었다. ▶▶▶ 교회가 아둘람 굴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소위 중산층화된 교회와 성도들이 고난 3종 셋트의 사람들을 받아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②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3절)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4절). ▶ 여기서 처음으로 다윗의 모친이 등장하고 있다. 성경에 수 많은 여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너무나 유명한 다윗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다윗의 고백이 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그러나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를 ”Though my father and mother forsake me“(NIV)(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 몰라도‘(현대인의성경) 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으므로 실제로 버림받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윗이 자신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다윗의 모친이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인해 그럼 다윗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하 참고적으로만 보기로 하자. 삼하17:25(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와 대상2:13~17(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은 상충하는 구절이다. 역대기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아비갈)을 다윗과 그의 자매들 즉 이새의 딸들이라 하고 있고, 사무엘서에서는 나하스의 딸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화를 낸 것(17:28)을 가지고 다윗과 엘리압이 이복형제라고 하고 ㉡스루야와 아비갈의 아버지 나하스가 죽고 나하스의 아내가 이새와 계대결혼-이렇게 보면 나하스와 이새는 혈족이 된다- 또는 재혼을 통해 태어난 막내 아들이 다윗이라고 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역대기에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이새의 족보에 어떻게 올랐는지는 차치하고, 다윗을 이새의 본처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고 할만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족보(역대기)와 현실(사무엘서)의 차이를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이새의 아들들의 숫자도 마찬가지다. 사무엘서는 여덟이라 하고, 역대기는 일곱이라 하고 있다.

다윗이 유다 땅 헤렛 수풀에 이르다 (5~8절)

①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5절). ▶ 다윗이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해 준다. 안전한 모압 땅 요새에 머물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을 연단하시고 훈련하시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1~2). 사람이 만든 요새가 다윗을 지켜주는 게 아니다. 사울의 손아귀에 들어가더라도 여호와께서 요새가 되어주셔서 다윗을 지켜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라고 늘 찬송했다(시18:2, 시59:9, 삼하22:2 등). ▶▶ 다윗이 머물렀던 요새는 아마도 모압 땅에 있었을 것이다. 다윗이 요새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기간 동안만 다윗의 부모는 모압 왕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다. 다윗이 선지자 갓의 말대로 유다 땅으로 돌아갈 때 그의 부모도 함께 돌아갔을 것이다.

②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6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7절)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8절) ▶ 사울은 자신의 아들 요나단조차도 불신하고 의심하는 자가 되었음을 앞에서 보았다. 이제 사울은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는 얻을 게 없으니 나를 따르라고 하고 있다. 사울은 교묘하게 편가르기/갈라치기를 잘~ 하는 편협한 정치꾼과 같은 왕이 되었다.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고자질하다 (9~17절)

①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9절)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10절). ▶ 다윗은 이 사건으로 시52편을 쓸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일부를 보자.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1~7절).

②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11절)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12절)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13절)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14절)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15절). ▶ 왕에 뽑혔을 때 짐보따리 뒤에 숨었을 정도로 순진했던 사울은 이제 알량한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들과도 척을 지고, 급기야 제사장 집안과도 싸우는 처지가 되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히멜렉은 사울에 의해 공모자로 몰리게 되었다. 아히멜렉은 왕에게 4가지 간언을 하고 있다.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있습니까? ⓑ제가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께 여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종과 종의 집에 아무 것도 돌리지 마소서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나이다.

③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16절)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17절). ▶ 사울이 권력이 있기에 두려움이 없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반면에 다윗을 두려워하고 있다. 반대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도엑이 제사장들을 죽이다 (18~23절)

①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18절)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19절). ▶ 아히멜렉은 엘리의 후손이다. 아히멜렉의 집안이 거의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 것은, 앞의 2장과 3장에서 본 바와 같이 엘리의 집에 내려진 징계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도엑에게 돌아갈 비난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시52편을 보라. ▶▶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운 일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됐다.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 말이 어느 정도 맞는가 보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원망스럽다. 의인 다윗을 돕다가 악인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됐으니 그렇다. ▶▶▶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사울은(15:9) 놉 땅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을 진멸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사울은 에돔 사람 도엑에게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엑이 왕의 명령을 초과하는 살육을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사울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②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20절)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21절)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22절)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23절). ▶ 아히멜렉의 아들 중 아비아달 하나만 살아남아서 다윗과 함께 했다. 후일 솔로몬이 아도니야에 줄을 잘못 선 아비아달을 파면하면서 한 말을 보자.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왕상2:26~27). ▶▶ 다윗은 아비아달 네 아버지 집이 이렇게 된 것이 자신 탓이라고 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도 도망자 신세요 위험에 처해 있지만, 나와 함께 하면 안전하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22-1] 다음 중 삼상22장의 내용과 다른 것은?

① 다윗이 아둘람 굴로 피했는데 그의 형제와 아버지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 다윗을 만났다.

②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 사백 명 가량이 아둘람 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고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③ 마음이 원통한 자는 불평 불만을 가진 자라는 뜻도 된다.

④ 다윗은 자신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하고 요새를 떠나 유다 땅에 있는 헤렛 수풀에 이르렀다.

⑤ 다윗에게 사람이 만든 요새에 있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요새가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22-2] 다음 중 삼상22장의 내용 중 틀린 것은?

①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갔던 일을 말했다.

② 사울 왕 앞에 선 아히멜렉은 4가지를 간언했다.

③ 제사장들의 성읍 놉을 진멸한 책임을 전적으로 에돔 사람 도엑에게 물어야 한다.

④ 사울 왕의 신하들은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기 싫어했다.

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도엑의 살륙 중에 살아남아서 다윗에게 피했다.

핵심 한 줄

⒜ 교회가 아둘람 굴의 역할도 하게 되도록 기도하자(2절).

⒝ 사람이 만든 요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요새가 되어주시라고 간구하라.

⒞ 교회를 비롯한 어디에서도 편가르기는 없어(져)야 한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 사울은 아말렉은 진멸하지 않고, 아히멜렉을 진멸하는 악을 범했다.

암송 구절

2절

5절

18절

19절

22절

23절

정답

[문제22-1] ④

[문제22-2] ③

Copyright © 2019 by Paul Han

blog.daum.net/happybible

공유하기 글 요소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키워드에 대한 정보 사무엘 상 22 장

다음은 Bing에서 사무엘 상 22 장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 하루 한 장
  • 부산 성민교회
  • 삼상22장
  • 사무엘상22장
  • 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 홍융희
  • 분홍목사
  • 홍융희목사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YouTube에서 사무엘 상 22 장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한 장] 사무엘상22장_그러므로 그 곳을 떠나 | 사무엘 상 22 장,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