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타샤 튜더 정원 –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you.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cosmos m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9,869회 및 좋아요 145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타샤 튜더 정원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 타샤 튜더 정원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081104
타샤 튜더 정원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타샤튜더의 정원 – 네이버 블로그
Tasha Tudor는 미국을 대표하는 90이 넘은 동화작가지만 지금은 가드닝으로 유명해져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집을 방문한 사람 은 모두 별세계에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8/2022
View: 8076
자연과 함께 하는 삶, 타샤 튜더(Tasha Tudor)
그리고 타샤 투더(Tasha Tudor)는 생애 전반을 자연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 특히 <타샤의 정원>은 미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데, 정원 곳곳에 …
Source: magazine.notefolio.net
Date Published: 8/1/2022
View: 265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타샤 튜더 정원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타샤 튜더 정원
- Author: cosmos m
- Views: 조회수 9,869회
- Likes: 좋아요 145개
- Date Published: 2021. 1.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tPNkes1Wk
타샤튜더의 정원
Tasha Tudor는 미국을 대표하는 90이 넘은 동화작가지만
지금은 가드닝으로 유명해져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집을 방문한 사람 은 모두 별세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 집은 미국 북동부 지역 뉴잉글랜드에 있습니다.
언덕 경사면에 세워져 포도나무나 덩굴장미 등으로 덮인 낡은 건물.
지붕 위에는 비둘기, 헛간 마당에서는 산양이나 닭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는 허브 정원이 있고 집 앞의 경사면에는
꽃들이 가득히 심어져 햇살을 담뿍 받고 있습니다.
이 개척시대의 농가 같은 집에서 화초를 키우고
무엇이나 직접 만들어 살아가면서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타샤는 자신이 만든 이 세계를 [이 세상의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집 정원은
나의 자존심이에요.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아요.
….
나는 정원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어찌할 줄 모를 정도예요.
정원 가꾸는 일만으로도
내 마음은 늘
행복으로 가득해져요.”
타샤는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정원 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차를 직접 만들고재배한 아마를 자아 천을 짜고 염색을 하고..타샤의 손은 정원의 꽃과 나무를 싱싱하게 키우고요리를 맛있게 만들고 천으로 옷을 만드는 마법의 손입니다.타샤는 말합니다.”살벌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정원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정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나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타샤 튜더의 집에는 인형이 넘칩니다.”나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좋아했어요.특히 봉제인형을 좋아해서 [소공녀] 속에 나오는 인형 이야기를 맘에 들어했지요.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아이 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부엌 가까운 곳에는 삼단으로 지어진 인형의 집이 있고인형들이 우아하게 살고 있습니다..”나는 마음으로부터 만족해요.이렇게 행복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나는 무지개를 손에 넣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타샤튜더는 시대에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그게 150년전 옷이라 해두..그래서 그녀는 여느 할머니보다훨씬 예뻐 보일수 밖에 없다.
나는 남자들을 무척 좋아해요.. 그렇지만,남자처럼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아요..모처럼 여자로 태어났는데,왜 남자처럼 입으려는 거죠?여성스러움이 여자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잖아요..그것을 왜 스스로 버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여자들이 긴치마를 입지 않게 된것은진짜 큰 실수라고 생각해요..조금만 보여주는 것은 전부를 보여주는 것보다훨씬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지요..치맛자락 밑으로 하얀 발목이 살짝 보일때,남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아세요?그것도 모르고 요즘 여자들은바지만 입고 다니니 정말 안타까워요..무다리 같은 결점은 긴치마를 입으면가릴수 있는데 말입니다..
………………………………..
행복은 물질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왜 그토록
행복을 바라는걸까요?
아마 그건 텅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것에 만족합니다..
정말..너무나 아름다워요.정원도 할머니도..저의 꿈은 타샤튜더처럼 전원속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퀼트와 그림을 마음껏 하며..고요하고 아름답게 사는것입니다..근데..같이 사는 사람이 라스베가스 스탈이라제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없지 않아 있지만요…가장 행복한 삶은명예도 아니고돈도 아니고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게 아닐런지요.오늘도 저는 제 꿈을 향하여..가고 있습니다안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꿈을 향하여….
자연과 함께 하는 삶, 타샤 튜더(Tasha Tudor)
전시
전시 누크갤러리, 국동완 <방향연습 SENSE OF DIRECTION>展 누크갤러리에서 2022년 5월 4일부터 2022년 5월 28일까지 국동완개인전 <방향연습 SENSE OF DIRECTION>展을 개최한다. 드로잉, 페인팅, 조각, 책 작업을 통해 무의식과 무의식에 접근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전개해가고 있는 국동완은 최근 치솟은 집값을 보며 한동안 막막한 상태로 일상을 살고있는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집값 그래프의 상향, 하향 곡선의 빨강과 파랑 물결에 대입해 풀어본다. 이번 전시에는 의문과 고통의 표면을 이미지로 만들어 질문하고 손이 그에 자동으로 반응하여 그려내는 드로잉과 새롭게 선보이는 오일 파스텔 드로잉 2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방향 연습 #1, Sense of Direction #1, Colored pencil on paper, 54x65cm, 2022 방향 연습 #5, Sense of Direction #5, Colored pencil on paper, 54x65cm, 2022 불장, Bull Ma 0 Read more
|나의 시어머니 타샤 튜더| 1,000평 정원 가꾸며 자급자족하는 삶
미국과 한국에서 출간된 타샤 튜더의 책.
타샤 튜더의 아들 톰 튜더와 김은임 씨 가족. 김은임 씨는 성심여대 불문과 졸업 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한국인 김은임 씨의 시어머니 타샤 투더. 문명의 힘 대신 자연의 품 속에서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종이나라’)
나의 시어머니 타샤 튜더는 미국의 유명한 그림책 삽화가이자, 화가, 동화작가이다. 올해 91세인 시어머니는 미국 뉴잉글랜드 버몬트주(州) 브래틀보로에서 1,000평이 넘는 정원을 가꾸며 홀로 사신다. 직접 양젖을 짜고 감자를 캐고 뜨개질을 하면서 자급자족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동화 같은 삶’으로 화제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독특한 생활과 아름다운 정원은 지난해 《맘 먹은 대로 살아요》라는 제목(종이나라 출간)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됐다.내가 타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2남 2녀 중 차남인 남편과 1994년 결혼하면서였다. 미국 공군 자문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시어머니께 인사드리기 위해 브래틀보로로 찾아갔다. 서울을 출발, 열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국(異國) 사람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자동차로 보스턴 교외를 빠져나갈 때는 불안감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세 시간쯤 달리자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도로에 이르자 “이 길은 우리 가족들 사이 비밀의 오솔길”이라며 남편이 내려서 걷자고 했다. 이때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앞으로 계속해서 경이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남편과 나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은 숲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은 달빛을 받아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올빼미가 등 뒤에서 가르릉거리며 적막을 깨뜨려 혼비백산케 했다. 흠칫흠칫 놀라는 내게 남편은 “올빼미들이 당신을 반기는 소리”라고 했다. 그 다음엔 승냥이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사립문이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빛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 아래 거무스름한 집의 윤곽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물가물한 호박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이 시어머니의 집이란다.종이 달린 작은 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현재의 삶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웨일스산(産) 작은 개인 귀여운 코기(corgi) 두 마리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계셨다. 집 안은 초가을 숲 속 냉기를 몰아낼 만큼 훈훈했다. 화덕에는 구수한 닭고기 수프가 끓고 있었고, 향긋한 옥수수 빵 냄새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시어머니의 집과 생활, 그리고 정원 손질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금방 그곳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시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손수 키우는 닭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먹이를 주고, 양젖을 짜서 버터나 치즈,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셨다.낮에는 정원을 거닐며 꽃에 물을 주고, 잡초를 일일이 뽑으셨다. 그러면서 꽃들의 색깔, 높낮이의 조화를 살피셨다. 정원은 시어머니가 마음 가는 대로 채색하는 캔버스였다.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내게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느냐?”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 “영국 문학작품 중 즐겨 읽는 게 있느냐?” “집에는 어떤 꽃들을 심었느냐?” “어떤 애완동물을 키우느냐?”고 물으셨다. 한국 부모님들과는 삶의 의미와 중심을 전혀 다른 곳에 두고 계셔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였다.시어머니는 대표적인 외유내강 인물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계획을 세운 시어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동물을 사들여 농장생활을 준비하셨다. 시어머니는 화가 어머니와 수학자이자 발명가 아버지로부터 감수성과 창의력을 물려받았다. 8학년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자신의 글과 그림을 출판하며 독립된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두 독립을 이룬 분이다. 시어머니의 식량 창고에는 직접 재배하고 가공한 야채와 과일 통조림이 겨우내 먹을 수 있을 만큼 쌓여 있다.해가 긴 여름이면 낮에 화초를 가꾸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신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키운 양털로 천을 짜고 정원의 화초로 천연염색을 한 후 담요와 셔츠를 만들기도 하신다. 남편이 어릴 때 시어머니는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각본을 쓰고 무대를 꾸며 아이들과 인형극 공연을 다니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요리와 바느질을 잘한다.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서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가르치셨기 때문이다.아흔이 넘은 나이에 백발, 주름진 얼굴인 시어머니는 여전히 지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계시다. 일 때문에 거칠어진 손과 발조차도 멋스러워 보인다. 그분의 요리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때면 10인분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만들어 내곤 하신다. 음식이나 옷,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데 그분은 아주 까다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고수하신다. 시어머니가 매일 입는 드레스는 1980년대 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외화 배우들과 같다. 오스트리아산(産) 옷감으로 전통의상 전문가인 친구들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정원 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어머니는 화초를 구하러 네덜란드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그 외에는 모두 자급자족하는 게 원칙인데, 자급자족이 안 되는 식료품의 경우 농장에서 생산한 무공해 달걀이나 사과 주스 등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웰빙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시어머니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해 오셨다.시어머니의 섬세하고 예술가적 기질은 자녀들에게 골고루 전해진 것 같다. 남편 역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요리 솜씨와 식탁 차림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남편이 들려주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너무 색달라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 착각할 때가 많다.그중 생일파티 이야기는 정말 이채로웠다. 어린 시절 남편이 살던 집에는 작은 시내가 하나 있었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시냇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드신 후 나무판과 이끼 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붙여 시냇물에 띄우셨기 때문이다.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케이크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환호하던 순간을 남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형극 순회공연을 했던 것이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남편은 말하곤 한다.남편이 그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서울에서 살던 우리 부부는 남편이 미국 국방부에서 근무하게 돼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됐다. 미국에 가면 시어머니부터 찾아뵐 생각이다. 이번에는 시어머니를 위해 내가 맛있는 옥수수 빵을 만들어 볼 참이다. ■
[정진경 칼럼] 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정원
타샤 튜더. ⓒTasha Tudor & Family 공식 홈페이지 캡처
타샤 튜더는 미국이 사랑하는 그림동화 작가다. 귀여운 아이들과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100권 가까이 남겼고 그의 정다운 그림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동화나 그림보다 더 유명해진 것은 그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노년에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옛날식으로 살았는데, 그 모습에 반한 작가들이 쫓아가서 사진책을 내고 다큐멘터리도 찍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나지막한 언덕 숲속 오래된 목조주택을 꽃이 만발한 넓은 정원이 둘러싸고 있고, 91세의 타샤 할머니가 창가 책상에 단정히 앉아 동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옆을 강아지 매기가 지킨다. 난로에는 타닥타닥 장작이 타면서 따듯한 온기가 집안에 퍼진다. 그 모습 자체가 동화 같다.
손으로 만든 동화 같은 정원
그는 1915년 미국의 상류층 집에 태어났는데, 남들 다 가는 사교계 파티는 싫어하고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소젖 짜기, 농장일, 살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개성 강한 소녀는 시골에 살고 싶어서 어머니와도 떨어져 지냈고, 남들이 뭐라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커서 결혼하고 아이 넷을 낳아 키우며 목장 일을 했고, 그림동화를 그려 가족을 부양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 후, 쉰여섯에 혼자 버몬트의 시골로 이사하면서 그는 평생 꿈꾸었던 정원을 가꾸며 동경하던 옛날 스타일로 살았다.
만들기를 좋아한 그는 자연이 주는 것을 감사히 받아 최대한 핸드메이드 살림을 했다. 채소를 키우고 손바느질로 옷을 짓고 비누와 양초를 만들고 바구니를 짜고 강아지, 닭, 비둘기를 길렀다. 손주들의 생일에는 정성스레 만든 인형을 선물했다. 그 하나하나에 어찌나 공을 들이는지 모두가 예술행위로 보인다.
타샤 튜더의 너른 정원에는 꿈속 같이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있다. 수선화, 작약, 히아신스, 장미, 데이지, 분꽃, 한련,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싱싱하고 탐스럽게 피어난다. 꽃 하나하나마다 어떤 흙을 좋아하는지, 물을 많이 먹는지, 햇볕을 좋아하는지 살펴서 잘 맞는 자리에 심고 수십 년 정성을 들인 결과다. 타샤는 여러 가지 꽃이 섞여 있는 것을 좋아했고 때로는 사람들이 잡초라 부르는 것도 예쁜 꽃이 피면 그냥 키웠다. 너무 인공적으로 잘 꾸며진 정원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느리고 소박한 삶에 깃든 행복
노년에 등이 살짝 굽은 타샤가 흰머리에 수건을 쓰고 낡은 옷을 입고 맨발로 그 정원을 돌아다니며 구근을 심고 물을 주고 꽃을 돌본다. 잡초 뿌리가 깊으면 수십 년 된 삽을 들고 와 제대로 파낸다. 몸은 작고 말랐어도 평생 일로 굵어진 팔뚝에는 근육이 아직도 좀 남아있다. 정원 가꾸기는 그의 삶이었고, 노동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보고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느끼기를 좋아했다. 행복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은 행복하게 살기에도 짧아요. 아름다운 세상에서 최대한 즐겨야죠.”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정원과 그림에만 열중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 맹목적인 무한경쟁의 흐름에서 타샤는 의식적으로 벗어나 살았다. “인류는 실수 투성이”라며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소박하게 살다간 이 할머니에게 지금 많은 사람이 감동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가꾸기, 동물과 교감하기,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하게 살기 같은 삶의 모습이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아닐까? 자연을 훼손해서 극심한 기후이변이 생기고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하고 우리의 삶 자체가 위협받는 이때 타샤 튜더 그리고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타샤 튜더(Tasha Tudor)
작가소개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는 30만 평의 대지에 천국 같은 정원을 일군 가드닝의 대가로 꽃과 동물, 자연을 존중하는 자연주의자이다. 타샤 튜더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선 기사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은 마크 트웨인, 소로우,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 걸출한 인물들이 출입하는 명문가였다.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던 타샤는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살기 시작한 타샤는 비로소 그림을 그리고 동물을 키우면서 화초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이 출간되면서 타샤의 전통적인 그림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 is One’, 등으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획득하며, 현재까지 약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남겼다. 쉰여섯 살에 인세 수익으로 드디어 버몬트 주 산골에 땅을 마련한 타샤는 18세기풍의 농가를 짓고 오랫동안 소망하던 정원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이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는 타샤 튜더는 골동품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수십 년간 모은 약 200여 벌의 골동품 의상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컬렉션으로 불리며 록펠러재단이 운영하는 윌리엄스버그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타샤의 또 하나 고풍스러운 취미는 인형 만들기로, 골동품 박물관 같은 타샤의 집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3층짜리 인형의 집에는 타샤의 분신인 엠마와 새디어스 부부가 살고 있으며 손톱만 한 책들과 골동품 찻잔들, 골동품 가구들이 빛을 발한다. 타샤가 여든세 살이 되었을 때, 타샤 튜더의 모든 것이 사전 형식으로 정리된 560쪽에 달하는 (타샤 튜더의 완전문헌목록)가 헤이어 부부에 의해 출간되었는데, 타샤의 모든 것이 담긴 소중한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2008년 6월 18일 92세의 나이로 별세,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떠나셨다’고 전하고 있다.
정원, 시간을 피워내는 공간
저마다 꿈꾸는 것이 다르지만 나는 ‘공간’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있는 것 같다. 늘 새롭거나 특별한 곳에 머무는 경험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여러 형태의 여행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더 멋진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편이다. 그런 소소한 열망들로 부동산, 이사,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더욱 커졌다. 일을 하며 브랜딩과 마케팅을 할 때에도 그 브랜드가 표현되는 공간을 어떻게 구현할지, 그 공간이 어떤 의미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요즘 좀 더 커진 꿈이 있는데,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다. 집이 넓어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크게 웃으며 식사를 하고, 마당에 꽃을 키우고 텃밭에서 채소를 따 요리를 할 수 있는 곳. 가끔은 꿈꾸는 집 정원에 구도를 짜고 빈 종이에 그려보기도 한다. 상상속에서 집을 지었다 다시 허물고 다시 짓는다. 구체적으로 공간 계획을 세우고 그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의 한적한 여유로움을 꿈꾼다.
스스로 행복을 선택했던 타샤 튜더
전원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평생 그런 삶을 살다 간 동화작가 타샤 튜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미국의 버몬트주 어느 숲에 터를 깊이 마련하여 목가적인 삶을 살며 가족 생계를 위해 100여 권의 동화책을 펴낸 동화 작가이다. 타샤 튜더만의 그림, 정원, 집, 식탁, 손으로 만든 인형 등이 책으로 출간되어 그녀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타샤 튜더가 버몬트주 숲 속에서 광활한 정원을 손으로 일구며 평생 살았던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타샤는 1915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2008년까지 20세기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늘 19세기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고 한다. 타샤 튜더의 어머니는 일러스트레이터였는데 작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당시 열 살 정도의 어린 타샤 튜더는 엄마를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대신 엄마 친구 부부 가족들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실 타샤 튜더가 일찍이 친엄마와 떨어져 시골에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이유에는 타샤 튜더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내내 검게 드리운 가족의 잔혹역사가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원래 재력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였다. 서로 불륜관계였는데 남자의 본처가 이에 상처를 받고 자살한 다음에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화려하게 삶을 살지만 첫째 아들을 아버지가 직접 만든 요트를 타고 나갔다 잃게 되었고, 둘째 아들은 그로 인해 마음을 다치게 되었다고 한다. 부부는 이런 상황속에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식을 한명 더 낳았는데 그렇게 태어난 막내가 타샤 튜더였다. 자신이 만든 요트로 인해 큰 아들을 잃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타사튜터의 아버지는 결국 이혼을 하였고, 약물 중독과 복잡한 결혼과 이혼 생활을 다시 반복하며 피폐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타샤 튜더도 일찍 결혼해 남편 대신 동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며, 두 번의 이혼을 겪었지만 묵묵히 자식들과 정원을 키워냈다.
손녀와 함께 정원을 가꾸는 생전의 타샤 튜더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웰시코기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
전기없이 직접 모든 것을 만들어 생활하는 삶
한국의 정원, 천리포수목원
태안반도 만리포 해수욕장 근처에 너무 아름다운 수목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국적인 정원 풍경이나 다채로운 꽃들이 이루어내는 색감이 다른 한국의 정원과는 사뭇 달라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다양한 나무와 꽃이 어우러지는 숲을 여유롭게 산책하며 바다 풍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남겨두었던 그해 여름의 천리포수목원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사람은 ‘민병갈 원장’이라고 한다. 1970년대부터 이 땅을 사들여 수목원 조성을 시작했고 해외의 묘목을 적극적으로 들여와 그가 2002년에 죽기 전까지 한국의 자연과 한국의 섭생에 맞게 정원을 가꾸었다. 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인상은 꽃 품종이나 나무 품종 하나하나 전체 조화를 너무 잘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로 색이 강렬해서 색상을 서로 방해하는 느낌 없이 한 폭의 그림처럼 전체 수목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희귀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천리포수목원은 그 보존가치도 뛰어난 곳이다.
‘신의 비밀정원’이라고도 불렸던 천리포수목원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2009년이었다. 원래 식물 연구나 후원사만 출입할 수 있었는데 관리비용이나 직원 월급 등 전체 운영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져 일반인 공개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
민병갈 원장은 미 해군 장교로 1945년 한국에 온 칼 페리스 밀러라는 미국 사람이었다. 아마도 ‘칼’,’밀러’라는 본명과 비슷한 발음의 ‘민병갈’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은것이 아닐까 싶다. 칼 페리스 밀러는 한국의 자연 풍경에 끌려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고한다. 귀화한 외국인이 한국의 자연 풍경에 외국의 새로운 식물과 원예 품종을 접목하여 하나씩 심고 가꾸어간 정원이 40여 년을 거쳐 아름다운 수목원이 된 것이다.
개방 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수목원이 일부 몸살이 앓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소수가 즐기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을 열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천리포 수목원 풍경
타샤 튜더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가꾼 정원과 직접 집을 짓고 목가적인 삶을 살았던 그 곳은 이제 여러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가꾸고 채워나가고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일반인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삶의 공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단하지만 자급자족하는 삶을 통해 불편함을 능히 감수하며 실천해 간 자연 중심적인 삶이 지금 우리가 잃어가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타샤 튜더 할머니의 집과 정원을 찾는 일반인들
사색의 정원, 그리스 호케포스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가 세운 공동체 이름이 호케포스이다. 당시에는 귀족 남자만 시민의 자격을 가지고 모여 토론했다면, 호케포스에서는 자유롭게 신분을 뛰어넘어 정원에 모여 자유롭게 철학을 사유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정치적 토론에 집중한 스토아학파와 반대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개인의 삶과 행복에 더 집중하였다. 쾌락주의라는 단어로 여러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은 관능적인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한 철학이다. 그래서 활발한 정치 참여 대신 은둔형에 좀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고민하던 인간의 ‘행복’, ‘평온한 안정감’, ‘ 고통이 없는 상태’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질문이다.
나의 행복의 원천과 평온한 상태는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이다. 강화마루 바닥으로 인해 위, 아랫집 서로 층간 소음이 있는 빌라에 살다 보니 가끔은 손님을 초대하기 전에 많이 망설이게 된다. 그러다 미루고 미룬 다음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도 간혹 여려명우 목소리가 겹쳐 너무 커지면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꿈꾸는 독립된 집과 작은 정원은 내가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과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큰 바람은 아니지만 이 바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도시 생활 근로자는 오늘도 나만의 정원을 그리고 지운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타샤 튜더 정원
다음은 Bing에서 타샤 튜더 정원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 동영상
- 공유
- 카메라폰
- 동영상폰
- 무료
- 올리기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YouTube에서 타샤 튜더 정원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샤튜더 TASHA TUDOR , 타샤의 정원 | 타샤 튜더 정원,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