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3서 1장 2절 설교 | 20021201 당신의 영혼은 강건한가?, 요한3서 1장 1~4절, 옥한흠 목사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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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1일 – 요한3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 주일 설교

2021.3.21_3월 셋째 주일 말씀 요한삼서 1장 2절<신 397>, v.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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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fgca.com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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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1

요한3서. 제 1 장 …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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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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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 03.19.2017 요한 삼서 1-2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요한 삼서 1장 1-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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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orrancelordschurch.com

Date Published: 1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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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설교 – 요한3서 1~4 당신의 영혼은 강건한가? / 옥한흠 목사

요한3서 1~4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님에게는 12제자가 있었습니다. …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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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ologia.kr

Date Published: 8/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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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삼서 1장 2절 만사형통의 길 – 다음블로그

정영진 목사> 만사형통의 길 (요한삼서 1장 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 라는 성도에게 보낸 한 편지의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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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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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기 쉽습니다. 요한3서 1장 2절 12절 – 김포상도교회

요한3서 1장 2절 12절 건강하기 쉽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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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esuskorea.kr

Date Published: 5/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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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강해

[1-2절]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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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ldfaith.net

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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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2절, 삼박자 구원의 근거인가? < 나의 ... - 코람데오닷컴

먼저 요한3서1:2절은 기원임과 동시에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당시 헬라 서신에 나오는 건강과 안부를 묻는 흔한 상투적 문안 구절이라고 주석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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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scoramdeo.com

Date Published: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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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1 당신의 영혼은 강건한가?, 요한3서 1장 1~4절,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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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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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1

인사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영접함과 내쫓음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03.19.2017 요한 삼서 1-2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요한 삼서 1장 1-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됨같이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특별히 사랑받았던 요한이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12 제자 중 가장 장수한 사람입니다. 이 요한 3서를 기록할 때에는 그의 나이가 거의 90세가 넘어가는 고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오늘 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이 요한 3서의 편지를 썼었는데 가이오는 그의 영적자녀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가이오는 늘 요한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가이오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쓰는데 얼마나 축복을 주고 싶었으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바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하고 싶어 하시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대할 때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이 잘 되길 원하시는 구나! 내 육신이 강건하길 원하시는구나!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성공하길 원하시는구나!”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서 우리의 육신도 건강하길 원하시고 세상에서도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 중에 있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된 사람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령이 된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겁니다.

동물은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과 결합된 영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 보면은 육신과 영혼을 잘 비교해서 설명해놓은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에서 몸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던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영혼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느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시편 42편 1절에 보면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혼의 건강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오직 육신의 건강이나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과 성공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신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저녁 자러 들어갈 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수고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은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 사람은 젊고 건강했습니다. 거기다가 손대는 일마다 일이 잘 되어 재산이 확 확 불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2-3배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는 쌓아놓을 창고가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났습니다. 가끔 창고 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할 정도로 부유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 영혼아”라고

스스로 말하긴 했지만 정작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면 영혼이 저절로 잘될 줄로 알았습니다. 몸을 잘 위하면 영혼은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모든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는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있는데…. 이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다가 나중에 죽을 때가 되어서야 엄청난 후회를 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죽어 있었던 영혼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 늘 관심을 기울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 영혼이 잘 되었는지 부실한지를 언제 알 수가 있느냐 하면은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내 영혼이 건강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25년전 마이클 플랜트라고 하는 요트 선수가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횡단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일주의 경력이 있을 만큼 요트 경주에 있어서는 베트랑이었습니다.

코요테라고 하는 중형급 요트를 주문 제작했습니다.

아주 멋 있게 생긴 날렵한 몸체를 가진 요트를 주문해서 나가게 되었는데 그 배안에는 최신 무전장비도 장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단독 대서양 횡단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을 출발해서 대서양을 횡단하고 있었는데 11일째가 되면서 그 요트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수색대가 여러 날 수색한 결과, 포르투갈에서 남쪽으로 720km 떨어진 바다 가운데 이 요트가 뒤집힌 채 둥둥 떠다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색대가 배에 가까이 가보니까 항해사 마이클은 온데간데 없어서 다시 몇날을 수색을 하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요트는 뒤집어져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게끔 되어 있는데 이 요트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뒤집혀 떠다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수색대원들이 그 요트를 자세히 조사를 해보니까…

중심을 잡기 위해 요트의 수면아래 용골부분에 4톤짜리 쇠붙이를 매다는데 그것이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위에 부딪친 일도 없고 도대체 어디로 용골 부분에 매달아 놓은 4톤자리가 가버리고 말았을까? 그래서 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마이클 선수가 자기 기술과 힘만 믿고 배를 만들 때부터 수면 위에 있는 보이는 부분은 굉장히 신경을 썼지만 수면아래 있는 이 용골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쓴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마이클 선수는 눈에 보이는 수면 위의 부분들,

곧 날렵한 몸체,

바람을 가득 안고 터질듯이 팽팽하게 뻗쳐있는 돛,

최신장비로 만든 무선 통신기기 등에는 엄청난 관심을 쓰고 잘 만들었지만,

수면 아래 용골부분은 등한히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때에는 아무 이상이 없이 잘 넘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풍랑이 불어 배가 파도를 타면서 요동하자 밑에 있는 용골 부분에 문제가 생겨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배는 뒤집혀지고 조종사는 그렇게 바다에서 실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육신의 건강에는 얼마나 신경을 씁니까?

눈에 보이는 성공에는 신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영혼에는 정작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내 영혼의 건강이 육신의 건강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풍랑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때에도 영혼이 건강하면은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먼저 환경이 잘 풀리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먼저 그 영혼이 잘 풀리게 되면 환경은 자연히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풀리고 잘 되게 되면은

1)그 마음 속에 기쁨이 오고 믿음이 꽉 자리를 잡습니다. 환경이 비록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잘 풀린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서

2)곧 하나님이 도와주시므로 어디에선가 도움이 오며 문제가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하나님과 더불어 기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영혼이 잘 되지 않아서 잘 풀리지 않게 되면 별 문제도 아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어디에서 터졌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몇날을 씨름을 하며 걱정을 하면서 안달복달하면서 그 문제는 점점 더 커져 갑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그 이유는 그 배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영에게 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눌려 있는데다가 삶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기 때문에 어두움의 동굴에서 헤매며 허우적 허우적 거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소한 문제는 점점 더 악화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환경에서 다가오는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강해져서 영혼이 잘 되면 다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문제든, 건강의 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다 영혼이 강해지면 다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에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네들의 삶의 문제가 저 악한 바로와 흉악하고 강력한 저 바로의 군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것들만 없으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것인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그게 아니라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을 지배하고 있는 애굽의 신들, 즉 악령들에 의해서 눌려 있었지… 환경이 아주 열악해서 강력한 병거나 군대가 그들을 못 살게 굴어서 그들이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의 문제가 강력한 무기와 이런 물리적인 것들 때문에 그들이 힘들게 사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칼과 창과 병거 그리고 다른 강력한 무기들을 보내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싸워서 이기도록 하게 해주셨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의 영혼의 회복을 가져오게 하시고 즉 영혼이 잘 되게 하시고 나서 그 모든 일을 해결하셨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나중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그들에게 와서 지도가 되었을 때 그들의 문제는 해결되어 가 는데…

모세가 돈이 많았습니까? 강력한 권력이 있었습니까? 강한군대와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과 교통하였고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고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수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재앙을 통해서 직접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령들을 박살을 내지 않았습니까?

출애굽기 12;12, “내가 그 밤에 애굽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애굽의 첫 태생을 다 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시겠다고…

애굽의 신들에게 벌을 내리겠다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이 악령들이 애굽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벌을 내리신 겁니다.

이렇게 애굽의 신들이 벌을 받고 무기력해지자 애굽 전체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더 이상 바로와 바로의 군대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배후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일 때 그것을 자녀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단을 치고 아니면 전문가를 만나고 해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들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순종하고 싶어도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묶어서 그들을 박살을 내어야 자녀들은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몰라서 부모의 영혼이 약하고 해서 그 악령들을 제압하지 못하므로 그 부모는 계속 그 문제에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자녀들이 아니라 부모들의 영혼의 힘이 약하고 영적분별력이 깜깜해서 그런 겁니다.

자녀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안 된 사람은 항상 힘들고 어렵게 간신히 간신히 그러나 처참하게 아주 힘겹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야말로 지옥같은 삶을 사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그래서 보이는 것은 근원적인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의 배후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저기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몸이지만 그전에 먼저 그 사람 안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의 움직임이 먼저 있었고나서 그 후에 마음의 명령에 따라 사람의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눈에 보이는 환경의 문제만을 보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그 때 그 때마다 조금 해결되는 것 같다가도 도로 더 어려운 문제가 그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래서 다람쥐 체바뀌 도는 것과 같은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 되고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려면 우리는 부르짖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고 기도해서 우리에게 붙어 있던 귀신들이 먼저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지고 하늘에서 먼저 구원이 이루어지면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환경의 변화 이전에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안 보이는 세계에서 먼저 문제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부르짖을 때 하늘의 권세를 잡고 있는 악령의 세력들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고 그리고 나면 막혀 있던 현실과 환경의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누가복음 10:17-18)

제자들이 전도를 나갔다가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귀신을 쫓아내고 항복하는 것을 보고 하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있기전에 먼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세력이 떨어졌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땅에서의 승리가 일어나기전에 먼저 하늘에서 이루어졌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르짖고 기도해서 하늘 문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하늘 문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야 문제해결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직도 환경은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어도 부르짖어서 기도할 때 이상하게도 가슴은 시원하며 후련함이 임하면은… 이것은 하늘문이 열린 것이 되므로 곧 이어서 눈에 보이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에서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복음에서는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만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1장에서는 그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가장 좋은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즉 성령충만입니다. 즉 내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으면 내가 지금 구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기도제목 물질적인 것들, 직장문제, 자녀문제 여러 가지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이 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지 않고 다른 어떤 것을 혹시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 받지 않은 사람이 영혼이 잘 안 된 사람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인생은 끊임없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오기 때문에 결국은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사람의 영혼이 먼저 잘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영혼이 잘 된 사람에게도 물론 끝없이 다른 문제들이 찾아오겠지요! 그러나 그는 그 문제를 밥으로 삼고 더 크게 성장하고 더 크게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웠나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에 배 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가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노라”

그래서 우리는 영혼이 잘 되는 사람으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먼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 즉각 주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문제는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앞에서 올바로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먼저 신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범사가 잘 되고 내 몸도 건강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03.19.2017 from 토랜스주님의교회 on Vimeo.

<정영진 목사> 만사형통의 길 (요한삼서 1장 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 라는 성도에게 보낸 한 편지의 구절입니다. 신약성경에는 가이오 라고 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 나옵니다. 하지만 누가 본문의 수신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가이오란 사람은 사도에게 인정받은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 영혼이 잘 됨 같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가이오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모범적으로 생활 했습을 짐작케 합니다. 사도요한은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진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영혼의 문제, 신앙생활이 우선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 축복 가운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참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범사가 잘되는, 가시적인 복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에 간다든지,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든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된다든지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셨다고 하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대게는 실망하거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중요시 하는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나야 믿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거듭나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믿어집니다. 구원과 영생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이 동정녀로 탄생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으며,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심을 믿어집니다. 성경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2장12-14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 사람이라도 심지어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라 할지라고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질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가시적인 세계보다 불가시적인 세계가 더 많습니다. 영의 세계는 3차원이 아닌 4차원의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일생동안 오직 이 땅의 일을 위해서만 살다가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실상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면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 보세요. 그 돈으로 죄 짓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영혼이 잘되지 못한 사람의 형통과 건강은 무익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두 번째는 영혼이 잘되려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려면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끊임없이 사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세상일을 더 좋아하고 우리의 관심이 주님보다 세상에 더 가까이 있다면, 지금 그 사람의 영혼이 매우 걱정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 상태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항상 열심을 품고 부지런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기를 즐겨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므로 마음이 기쁘고 평안합니다.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서 언제나 교회를 생각하고, 형제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상 영혼이 잘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세상 유혹에 빠져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늘 영적으로 깨어 신앙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주님과 교통함으로 건강하고 은혜로운 상태에 있다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와도 능히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보다 영혼이 잘되는 것에 중요성을 둘 때 반석위에 세워진 인생이 되어 비가 오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은 튼튼한 인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적을 시험하는 때가 있다고 고전 3장 11-15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예수 믿었느냐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집니다. 영혼이 잘되는 복을 우선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영혼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 때 모든 일이 잘됩니다.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우선이 아니고 영혼이 잘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게 옳은 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복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잘못되면 모든 복이 무위로 끝납니다. 가게를 해도 사업을 해도 먼저 내 신앙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주님의 교회에 봉사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지, 주일은 성수 할 수 있는지, 영적으로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가려서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은 생각하지 않은 채 물질적인 이익만을 앞세우면 하나님이 그 사업을 축복 하시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농부는 풍년을 기뻐하고 창고를 증축했습니다. 이만하면 일하지 않아도 몇 년은 잘 살겠다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오늘밤 네 영혼을 데리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해서 성공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잘못되면 하나님이 다 거두어 가십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잘되면 모든 일이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에서는 싹이 납니다.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삭은 흉년의 때에도 백배의 소출을 거두었고, 소와 양떼가 번창했습니다. 집을 팔아도 잘되고, 집을 사도 잘됩니다. 이 사람을 만나도 유익하고 저 사람을 만나도 유익합니다. 장사를 해도 잘되고 무엇을 해도 만사가 그야말로 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정치가로 과학자로 사업가로 예술가로 법조인으로 할 수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건 최선을 다해 노력함으로써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이 좋습니다. 돈도 벌 수 있다면 많이 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 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다른 축복은 넝쿨채 굴러들어 오는 것입니다. 1920년대 평양에 백선행이라는 이름의 과부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찍 시집을 가서 아들을 하나 낳고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녀를 모두 측은히 여겼고 특별히 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전도를 하여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은혜를 받아 일평생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하며 시어머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아들을 양육했습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성경말씀을 외우고 즐겁게 찬송을 부르며 바느질을 맡기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정성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들은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가내공장을 차릴 수 있을 만큼 돈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습니다. 어느 날 남의 산자락에 묻혀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묘를 이장할 생각으로 땅을 수소문한 끝에 거간꾼으로부터 아주 좋은 땅이라는 다짐을 받고 200냥을 주고 야산 하나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장을 하려고 땅을 파보니 온통 돌산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파보아도 좀처럼 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묘를 이장하고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내가 손해 보길 다행이지,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땅을 샀다면 마음이 상해서 어쩔뻔했노. 그저 나 하나 마음 상했으니 그것으로 됐구먼.” 하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좁은 동네에 “백 과부네 망했네! 돈 2백냥으로 돌산을 샀으니 이제 망했다네!”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백집사는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사람들이 도청 직원을 앞세워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시멘트 공장을 차리려는 사람들로 지질조사를 하던 중에 백집사네 산이 온통 석회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백집사를 찾아와서 1천냥을 줄테니 그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백집사는 깜짝 놀라 거절했습니다. 자기가 2백냥 주고 산 것도 잘못된 거래였는데 세상에! 1천냥을 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청 관리와 광산업자는 돈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얼마 만에 다시 찾아와 2천냥을 줄테니 제발 팔라고 졸랐습니다. 백집사는 더 놀라서 절대로 안되겠다. 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우리가 처음부터 너무 싸게 불러서 이렇게 되었다. 아무리 조선 사람, 그것도 과부의 땅이지만 돈을 제대로 쳐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뒤에 그들은 다시 백집사를 찾아와 그 산의 돌은 모두가 석회석이며 그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만들면 이렇게 저렇게 좋은 일이 되고, 조선 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백집사는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2만냥에 땅을 팔았습니다. 범사가 잘되었습니다. 망하는 줄 알았는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동네를 위해 다리도 놓고 학교를 짓도록 땅도 내놓고 선교사도 도왔으며 전 재산을 사회에 내 놓고 재단 법인을 만들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총독부에서 이 사실을 알고 표창을 하려 했으나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지역에서 사회장으로 지낼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강건해 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로 26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 그리하면 야훼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영혼이 잘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물과 양식에 복을 내리신다는 것 또한 범사에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구원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걷는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침 마라라고 하는 오아시스에 이르렀더니 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쓴물과 같은 우리 인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 영혼이 잘 될 뿐 아니라 우리 육신도 강건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건강이 제일입니다. 천하를 다 손에 넣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남의 것이 됩니다. 건강해야 공부도, 사업도, 직장생활도, 하나님의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건강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건강해야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교회에 부흥사가 부흥회를 하러 갔더니 그 교회의 재벌 장로님이 첫 대접을 하는데, 그분은 교역자 대접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좋은 것을 잘 차려 놓았는데, 맛도 다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속병이 있어서 그 맛있는 것을 맛도 보지 못하고, 미음만 조금 먹을 뿐이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음식 많이 차리면 뭐합니까,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것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도 먹어야 합니다. 비타민도 섭취하고 단백질도 섭취하고 야채나 과일 등 푸른 생선이나 항암효과가 있는 깻잎도 먹고 포도나 오렌지 사과 등 잘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숙면을 취하고 스트레스도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장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장수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120살이 되어도 눈이 흐리지 않했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85세에도 청년의 건강을 유지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교통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먼저는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영혼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늘 가까이하고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2011년 6월 5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설교>

출처 : 정영진의 블로그

글쓴이 : 선한목자 원글보기 : 선한목자

메모 :

건강하기 쉽습니다. 요한3서 1장 2절 12절

건강하기 쉽습니다. 요한3서 1장 2절 12절

이지원 목사 2005.03.06 23:37:32 조회 4530

요한3서 1장 2절 12절 건강하기 쉽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지하철을 타고 가면 의례히 볼 수 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나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점수를 준다면, 자신의 건강에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100점을 주었다면, 괜찬겠습니다만, 50점 밑으로 주었다면, 조심스럽게 건강을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건강에 대하여 요한3서 1장 2절에서는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먼저 영혼이 잘 되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범사에 잘 되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건강하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은 이 세가지 측면 가운데에서, 하나라도 소홀히 할수 없는, 전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범사에도 건강하게 결정을 내리고, 활력있게 살아갑니다. 범사에 자기 관리가 분명한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게 되어 집니다.

영혼이 병들고 고민스러울 때에는, 범사에 바른 결정을 내리고, 활력있게 살아가기가 힙듭니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자기를 방치하게 되어, 건강이 나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 먼저 진리 가운데 행할 때 건강이 시작하게 되어집니다.

이렇게 영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강조할 때, 반대로 우리는 한 격언을 떠올리게 됩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겪언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건강할 때, 정신이 건강하게 된다고 하여, 체육을 장려하고, 육체적인 건강을 우선시 하는데 비유로 많이 이 격언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자신의 시에 쓴 구절입니다.

하지만 사실, ‘유베날리스’는 완전히 다른 의도에서 이 말을 사용 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격언의 원어는

\”오란둠 에스트 우트 시트 민스 사나 인 코르포레 사노\”(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 …

직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얼마나 바람직할까 ?\”

라는 풍자적인 싯구 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청년들을 볼때,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몸짱이요, 겉으로는 얼굴 짱이요. 겉으로는 패션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을 들여다 보니, 병들었고, 잘못되고, 썩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라는 나라의 사회 곳곳이, 각종 범죄와 병폐를 무너져 가고, 나라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소망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유베날리스는 그렇게 겉으로도 멋있는 육체 만큼이나, 정신적으로도 멋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 라고 하면서, 사회의 잘못을 꼬집으면서, 풍자시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어떻습니까?

겉모습만 건강하게 치장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짱, 몸짱을 만들려고, 수십차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인성과 내적건강을 보지 않고, 학벌과 이력서 만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수 속에 아이들을 병들게 합니다. 또 기러기 아빠가 되어 가정이 오히려 고통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뉴스위크지가 대서특필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

영혼이 병들고 마음이 병이 든다면, 범사가 병들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이 병들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가 병들 수 밖에 없습니다.

3절에서 사도 바울은 “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기 위하여서는 진리 가운데로 행하여야 합니다.

진리 가운데로 행하지 않고서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진리가 참 많이 있습니다.

돈이 최고다.. 의리가 최고다. 조상님이 최고다.

그래서 돈에 영혼을 팔고, 돈을 쫓아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리에 영혼을 팔고, 주먹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상님께 영혼을 맡기고, 묘터를 잘 쓸려고, 이산 저산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 과연 이런 분들이 진리와 건강은 바른 진리요 바른 건강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진리 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건강의 근원이십니다. 아니 건강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소망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소망교회 상담실에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살펴보니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몇 주동안 씻지를 않아서, 온 몸에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어서 모습이 형편없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교회마다 돈을 구걸하러 다니는 홈리스가 아닙니다. 집이 얼마나 부유한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영혼이 병들고 정신적으로 잘못되어, 자신을 저주하며,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범사의 모든 일이 파괴되고, 건강이 파괴되고,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교회로 찾아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 말합니다.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들하나 두었는데, 이러니, 우리 가정은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망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가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모릅니다.

돈이 있다보니, 아이에게 무리하게, 과외를 시켰습니다. 중학교 때에 미국에 유학을 시켰습니다. 이 학생은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돈을 그렇게 부치는데, 왜 공부를 못하느냐고 하면서, 돈을 더 부쳐 주겠다고 합니다.

결국 청년이 되어서,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상담실에서는 부모님이 이 청년과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또 부모님과 청년이 함께 예배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또 부모님과 청년이 같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말문이 열리고, 분노를 쏟아내고, 회개를 하고, 말씀으로 치유가 되면서,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기대와 이기적인 사랑을 버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소리없이, 조용하게, 이 청년을 치유하셨고, 이 가정을 건강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찾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님께서는 나의 병든 부분을 치유해 주십니다.

나의 품성, 나의 생활자세, 나의 마음, 나의 영혼 깊숙한 곳에 왜곡되고 병든 부분을, 예수님께 맡길때, 예수님께서는 깨끗하게, 건강하게 해 주십니다.

2. 코이노니아(나눔)와 디아코니아(섬김)가 있을때 건강하게 되어 집니다.

유머입니다만…

어느날 아내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긴급 뉴스가 방송되었습니다.

“지금 승용차 한대가 고속도로를 역주행 하고 있습니다.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출장떠난 남편 때문에, 깜짝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보 여보, 지금 고속도로에 역주행하고 있는 승용차가 한대 있대요..조심하세요..”

그러자 남편이 다급하게 전화를 받습니다.

“누가 한 대 라고 해, 지금 고속도로에 정신나간 승용차들이 한두대가 아니야, 지금 바쁘니 끊어요 …! ” 딸깍 하고 끊어 버리더랍니다.

그 역주행하는 승용차가 남편 승용차 였다는 것이지요.

종종 어떤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건강의 주인공으로 두 명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와 ‘디오드레베’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이 데메드리오와 디오드레베는 나의 건강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메드리오는 대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나눌 줄 몰랐습니다. 섬기는데 인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만 높아지려고 하였습니다.

이 두사람 중 누가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데메드리오는 나누어 주고, 섬기기에, 자기에게 남는 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디오드레베는 나누어 주지 않고, 섬기지 않아서 남는 것이 많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건강은 관계성 속에서 있는 것입니다. 나 혼자의 건강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얼마나 건강한지 모릅니다. 소리 지르고, 항의를 잘하고, 말을 잘 하는 정치인들이, 혐의에 의하여 유치장에 들어갑니다.

특별히 정치인들에게는 편의를 위하여, 독방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가만히 있으면, 편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건강해 질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독방에서 몇 달 있다가 재판을 받으러 나오는데 보면, 하나같이 머리가 하얗게 세고, 당뇨에, 여러가지 합병증이 심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건강은 관계성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가 같아 있기에 건강한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이 있기에 건강한 것입니다.

아픈데가 없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때, 잘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님들을 잘 섬기고, 나눌 줄 아는, 가게와 기업들은 금방, 손님들의 좋은 평을 얻게 되어, 건강한 기업체가 되어 지는 것입니다.

나누기를 좋아다는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누기를 싫어하는 디오드레베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풍성한 건강의 비결은 코이노니아 즉 나눔 과 디아코니아 즉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내 안에 디오드레베는 버리고, 데메드리오가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선한것을 본받고 행할 때 건강하게 됩니다.

11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고 말씀합니다.

항상 사람은 악한것이 더 효율적일것 같고, 더 효과가 좋을것 같다는 유혹을 받는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 악한 방법, 악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될수 있겠습니까?

악하게 사람을 미워합니다.

악한 방법만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악하게 세상을 저주하며, 자기를 미워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건강할례야 건강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터도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마음이, 그리고 범사에, 또 육체적으로 건강하기 위하여서는, 선한것을 본받고,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물론 내 혼자서는 죄로 말미암아, 선을 알수도 없고, 행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선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선한 행동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을 본받고 행하게 될 때, 영혼과 범사에, 또 몸이 건강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건강은 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 가운데로 행할 때 건강하게 됩니다.

나눔때 섬길때, 건강하게 됩니다.

선을 본받고 행할 때 건강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한주간 동안도, 진리 가운데로 행하고, 나누고, 섬기고, 선을 본받고, 행함으로 더욱 건강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요한3서 2절, 삼박자 구원의 근거인가?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코닷 연구위원장, 미포 사무총장)

요한 3서 2절은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 때문에 널리 알려진 본문이다. 영혼 구원을 기반으로, 범사의 형통, 건강 축복으로 설명된다.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편지 초두에 덕담을 나누는 인사말을 가지고 삼박자 구원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치부한다. 그러나 주해적으로 이 본문을 다루면서 논의한 것을 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논박하기가 쉽지 않다. 요한 삼서 전체의 기록과 비교를 통해서 본문 2절이 가진 위치를 정리해 보자.

먼저 요한3서1:2절은 기원임과 동시에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당시 헬라 서신에 나오는 건강과 안부를 묻는 흔한 상투적 문안 구절이라고 주석들은 다룬다. 바울 서신이나 일반서신이나 처음에 안부를 묻는 방식이나 그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방식은 편지를 받는 대상자들의 현실이나 그들이 개선해야 할 과제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내가 간구하노라는(ευχομαι) 것은 기도가 분명하다. 따라서 기도는 단순한 형식의 문안을 넘어선다. 기도는 기도 대상자들의 상황과 과제와 연결된다. 특히 성경에서 기도는 나의 바람 혹은 인간적이고 욕구적인 바람과는 관계가 멀다. 주기도문이 말하듯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적인 기도이다. 가이오와 그가 속한 교회에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사도 요한의 입장이 기도 속에 담기게 된다.

기도의 참된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기도문의 기도를 다룰 때 문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는 산상수훈에서 다룬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예수님은 두 가지의 잘못된 기도를 제시한다. 첫째는 유대인의 외식하는 기도이다. 사람에게 보이며 인정을 받으려는 기도이다. 둘째는 이방인의 말을 많이 하는 기도이다. 둘 다 기도라는 신앙 행위가 철저하게 타락한 모습이다. 인간을 향한 기도, 인간의 탐욕을 요청하는 기도를 극복하고 참된 기도를 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은 크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과 이를 구현하는 용서(부채갚음)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인간적인 욕망과 바람을 넣은 자리가 없다.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공평과 의를 삶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다.

우리는 1:2절이 문안 인사이며 동시에 기도라고 할 때, 기도는 주기도문의 정신이 구현되는 하나님의 뜻이 실천되는 삶을 그 문맥으로 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인간적인 기대만을 충족시키는 기도가 성경에 있는지를 찾아보라. 하나도 없다.

둘째 기도의 내용을 본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이것은 편지를 받는 가이오의 현재 상태이다. “네가 잘하고 있는 것처럼” 영혼이란 말이 영육을 구별하는 표시로 읽힐 필요는 없다. “너 자신”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너의 삶을 잘살고 있는 것처럼이다. 이것을 요한 사도는 3~4절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음으로 판단한 것이다. 진리는 복음에 대한 대안적 표현이다(8, 12).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먼저 언급한 네 영혼이 잘됨을 기반으로 해서 네가 모든 일에 있어서 잘되고 건강하기를 사도 요한은 기도한다. 잘된다는 것과 건강하다는 것은 둘 다 부정사이다(ευοδουσθαι και υγιαινειν). 이 두 개의 부정사를 견인하는 것이 기도한다는 주동사이다(ευχομαι). 두 개의 부정사는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한다.

그런데 단순한 상투적 인사말만은 아니다. 현재 진리의 복음 안에서 잘 행하고 있는 것과 구별되게 모든 일에서 네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 첫째 기도의 내용이다. 둘째는 건강하라는 안부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잘못된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건강성을 말하는 의미도 있다. 소위 목회 서신에 자주 나타나는 바른 교훈이나 말(딤전1:10, 6:3, 딤후1:13, 4:3, 딛1:9, 13, 2:1-2)을 의미한다. 건전한 교훈이다. 잘못된 것으로부터 벗어난 건전하고 바른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기도의 내용과 문맥의 상관성

이런 해석을 요한3서 전체의 내용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5~8절은 자비량해서(7)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전송하는 일을 제시한다. 6절에서 그들을 잘 대접하여서 보내주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잘하는 것(καλως ποιησεις)은 실제로 앞서 2절의 잘되는 것과(ευοδουσθαι)는 병행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에 의미상 차이가 없다.

그리고 9-11절은 교만한 디오드레베를 고발하고 있다.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이고(9), 사도 일행을 비방하고, 나그네 된 순회 전도자들인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는(10) 악한 자다(11).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는 말은(μη μιμου το κακον) 바로 건강하라는 단어가 말하는 바이다.

결론

요한3서 2절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요한 3서의 기록 목적과 내용을 염두에 둔 사도 요한의 서론적 기도이다. 그는 가이오가 현재 복음의 진리를 잘 받고 행하고 있는 현실의 기반 위에서(네 영혼이 잘됨 같이), 이제 다른 일 즉 자비량하는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전송하는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잘하고(네가 잘되고),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일을 행하는 자를 본받지 않는 건강하고 바름이 있기를(네가 강건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적 결론을 고려해 본다면, 여기서 이 본문이 삼박자 구원의 근거 구절이 될 수 있을까? 신약 본문 어디에서 네가 돈을 많이 벌라고 가르치고 출세하라고 가르치는 본문이 있는가? 네가 건강도 돌보라는 말은 하지만 건강이 목적이 되어서 간구의 내용이라고 가르치는 곳이 어디 한 본문이라도 있는가? 기회가 되면 구약 본문의 축복이 가진 의미를 신약에서 적용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요한 3서 2절에 대한 시론적 성격의 글을 제시해본다. 함께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올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미래교회포럼과 함께 작년 한 해를 삼일운동을 대하는 기독교적 성격을 살폈다. 그때 1% 정도 되는 소수의 기독교인이 한국사회의 고통을 짊어지고 고통의 장정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개별적 신앙의 결단이었다. 당시의 신앙은 오늘날과 같은 기복적 신앙과 성공지향적인 신앙이 아니었다.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복으로 여겨지는 순교적, 종말적 신앙이었다. 희생과 섬김 그리고 고난을 복음의 증거로 보았다.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지 않아도 물질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성경이 오히려 경계하는 것을 복음이 주는 희망인 것 처럼 가르치는 가르침과 설교들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모른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극복하는 희생적 신앙,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신앙의 정수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요한3서 1장 2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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