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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 – 네이버 블로그
바벨론에 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생활을 보여주는 성경은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이다. 오늘은 에스더의 용기와 다니엘의 믿음을 알아볼게요.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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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 바빌론 포로 생활을 엿보다 | CGNTV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포로 삼아 현재의 이라크 지역 …
Source: m.cgntv.net
Date Published: 10/2/2022
View: 5958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은 위대한 섭리의 멍에였다” – 기독신문
(통독원)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징계, 교육, 안식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3월 31일, …
Source: www.kidok.com
Date Published: 1/6/2022
View: 4090
예레미야 25 KLB – 70년의 포로 생활을 예언함 – Bible Gateway
70년의 포로 생활을 예언함 – 요시야의 아들인 유다의 여호야김왕 4년, 곧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 살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모든 유다 백성에 관하여 말씀 …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2/24/2021
View: 7278
[스크랩]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과 역사이해 – 김성욱
둘째는 바벨론 포로의 70년이란 것은 상징적인 수로 인식하며 그 해석을 첨부한다. 이것은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에 토지가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2/13/2022
View: 3849
[김진규 연재 칼럼] 예레미야서의 포로생활 70년은 정확한 수치 …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7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
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9/11/2022
View: 7317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크릭 !]
성경 : 다니엘 9 : 1 – 7 / 제목 :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 2019. 3. 3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솔로몬이 그토록 …
Source: madridsarang.com
Date Published: 5/6/2021
View: 6794
[구약] 성경 속의 인물: 바빌론의 포로생활 – 가톨릭정보 – 굿뉴스
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기원전 538년에 끝난다.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포로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Source: maria.catholic.or.kr
Date Published: 7/23/2022
View: 2894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예언의 의미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이 연구의 목적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포로생활 70년(25:11-12; 29:10)의 의 미를 밝히는데 있다. 연구 방법론으로는 예레미야서의 70년을 직접 인용하 고 있는 …
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9/21/2022
View: 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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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바벨론 포로 생활
- Author: 토랜스제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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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12.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7ctz56mCM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
▣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
▣ 에4:15-17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끌려가는 도중에 죽기도 했고, 바벨론까지 간 자들은 바벨론의 동남쪽 닙플 근처에 있던 그발 강가의 델-아빕에 정착했다.
유대인 포로들은 바벨론 왕국의 식민지 보호정책에 의하여 노예처럼 살지는 않았다.
식민지 보호정책이란 반란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신분은 포로였지만 자유롭게 결혼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풍요로워도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고국으로 귀환 소망을 가졌다.
성전이 파괴되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도 없고, 절기를 지키려 성전에 갈 수도 없는 생활은 그들에게 지옥이었다.
바벨론에 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생활을 보여주는 성경은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이다.
오늘은 에스더의 용기와 다니엘의 믿음을 알아볼게요.
❶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에스더
아하수에로 왕은 바벨론을 정복한 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녀들 모두 첫 번째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했답니다.
왕은 잔치를 베풀고 자신의 신하들에게 그녀의 미모를 보여 주고 싶어서 그녀를 데려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와스디 왕비는 감히 왕의 명령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녀는 왕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왕비는 쫓겨나고 말았어요.
전국에 있는 예쁜 소녀들을 불러 모아 그 중에서 새 왕비를 뽑기로 했어요.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키웠어요.
물론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유대인 포로였어요.
모르드개는 자신의 아름다운 사촌 에스더를 데려다가 왕비 후보로 내보냈어요.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가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이 소녀를 내 왕비로 삼겠다” 라고 왕이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나라의 국무총리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들이 모두 죽게 되었어요.
왕비라도 왕의 명령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가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녀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왕이 기분이 좋으면, 그녀가 나아 갈 때 왕의 손에 잡았던 금홀을 내밀어 그녀에게 그것을 잡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생명을 살려주겠다는 표시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유대 백성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며 금식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왕비의 옷을 입고 왕 앞에 떨면서 나아갔습니다.
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에스더는 이제 무사하게 된 것입니다.
왕이 에스더 왕비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당신이 원한다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소”
“왕이여, 저는 저와 제 백성들이 죽지 않기를 원할 뿐입니다. 한 사람의 사악한 음모 때문에 저와 저의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에스더가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음모를 꾸민 하만은 나무에 달려 죽었어요.
하만이 이스라엘민족 말살의 계획이 진행되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하여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돕고계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하는 것만이 이스라엘의 살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알려주신다.
❷ 다니엘과 세 친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에서 끌려 온 청년들 중에 우수한 자들을 뽑아 교육시킨 후, 바벨론의 궁전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선택된 청년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과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치스런 생활을 원하지 않았고, 왕의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자랑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들은 채소만 먹고도 다른 소년들 보다 혈색이 훨씬 더 좋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네 명의 유대 소년들은 3 년 동안 채소만을 먹으며 하나님을 섬겼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주셨답니다.
어느 날 느부가넷살 왕이 내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잊어버렸다면서 박사들에게 내가 무슨 꿈을 꾸었으며 또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에게 알려 주어야만 한다.
박사들은 왕의 어처구니없는 요구 때문에 겁에 질렸습니다.
“왕이여, 왕께서 꾸신 꿈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그들이 다시 간청했습니다.
왕은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노리고 있느냐 ? 어서 내가 꾼 꿈을 말하고 해석해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몸을 여러 개로 찢어 놓겠다” 라고 왕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아무도 왕의 요구를 들어 주지 못할 겁니다” 라고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바벨론의 박사들을 모두 사형시켜라 !’ 고 느부갓네살 왕이 소리치자, 박사들은 재빨리 그 자리에서 떠났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곧 그 소식에 관해 들었습니다.
그들도 왕의 조언자들이었으므로 그들 역시 사형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형 집행을 내일로 미루어 달라고 요청한 뒤 세 친구를 찾아갔답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자. 하나님께 왕의 꿈과 그것의 의미에 관해 물어보면, 우리는 살 수 있을 거야” 라고 다니엘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갔습니다.
밤중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말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니엘은 왕이 꾼 꿈과 해석을 말했어요.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이 말을 마칠 때까지 아주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너의 하나님이 진실로 위대한 하나님이구나. 그는 예배와 찬양을 받으실 만한 분이다. 너만이 나의 꿈과 그것의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러고 나서 왕은 다니엘을 왕의 조언자들을 관리하는 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왕궁 내에 머물러 있게 했답니다.
그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도 또한 다른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
궁전에 있는 느부갓네살의 많은 신하들의 시기로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서 구원 받은 세 친구 이야기와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구원 받은 이야기는 다니엘서 성경에 나온답니다.
결론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징벌이었지만 동시에 신앙적 유익을 얻었어요.
유대민족의 바빌론 포로 생활을 엿보다
동영상 소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시기는 유대 민족이 포로 생활을 했던 다니엘과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처음 공개되는 유물을 통해 그 시대에 관해 배우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크리스 미첼이 보도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포로 삼아 현재의 이라크 지역으로 데려갔을 때 쓰인 시편 137편의 한 구절입니다. 바이블 랜드 박물관의 새로운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큐레이터 필립 유코사보빅은 ‘놀라운 퍼즐’이라고도 부릅니다.
필립 유코사보빅 큐레이터 / 바이블 랜드 박물관
“처음으로 바빌론 포로 시절의 완전한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땅에 왔던 BC 604년부터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가 바빌론을 점령하고
포로들을 풀어준 539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고대 설형 문자인 아카드어로 쓰인 이 점토판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공개된 점토판은 바빌론의 유대인 도시 알-야후두의 일상을 이야기해 줍니다.
아만다 와이즈 / 바이블 랜드 박물관
“사해 문서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서일 겁니다.”
아만다 와이즈는 유대인 역사의 중대한 한 장을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만다 와이즈 / 바이블 랜드 박물관
“우리의 선조와 묶어주는 끈입니다.”
점토판에 담긴 이야기를 설명하는 현대의 문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실제 사람들,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임대 계약부터 세금 문제까지 적혀 있습니다.
필립 유코사보빅 큐레이터 / 바이블 랜드 박물관
“이들 중 한 사람은 아히감의 아들 학개입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 했던 바빌론 망명 생활을 이야기하기 위해 학개를 선택했습니다.”
학개는 바빌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첫 번째 망명 시절을 이야기해 줍니다. 세 개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유코사보빅은 이 문서에서 학개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필립 유코사보빅 큐레이터 / 바이블 랜드 박물관
“그의 형제들을 알아요. 그의 아버지를 압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압니다. 그의 증조부까지 압니다.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텍스트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와이즈는 전시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알-야후두의 모형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만다 와이즈 / 바이블 랜드 박물관
“일상의 모습을 인터렉티브하게 보여 줍니다. 밭을 갈거나 운하를 저어 내려가는 모습, 저녁에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 낮에는 야자나무가 보이죠. 일상을 볼 수 있어요.”
점토판을 통해 망명자들이 풍성한 삶을 살며 예레미야의 명령을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필립 유코사보빅 큐레이터 / 바이블 랜드 박물관
“BC 539년 키로스 2세의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했고 키로스 2세는 유대인 포로를 풀어줍니다. 개와 그의 가족들처럼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족이 있었고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1952년에도 이스라엘이 건립되면서 이라크는 많은 숫자의 유대인을 추방했습니다. 빈손으로 갔던 것처럼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대 민족은 2천 년이 지나서도 추방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은 위대한 섭리의 멍에였다”
“하나님 예비하신 징계·교육·안식의 시간” 재조명
▲ <와우! 예레미야 70년>을 출간한 조병호 목사.
<성경과 5대제국> <성경과 고대전쟁> <성경과 고대정치> 등으로 교계는 물론 일선 문화계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조병호 목사(성경통독원 원장)가 또 다시 성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이번엔 예레미야다. <와우! 예레미야 70년>(통독원)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징계, 교육, 안식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월 31일, 서울 장충동 그랜드앰배서더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조병호 목사는 기자들에게 대뜸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챕터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역시 레위기. 조 목사는 그 이유를 “스토리가 생략되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대답은 센스 있게(?) 예레미야였다. 그는 “담고 있는 메시지가 애매해서”라고 설명했다.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 이사야까지 성경에는 승자 이야기가 많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한다는 명확한 교훈을 주지만 예레미야는 그렇지 않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레미야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을 때 세례요한, 엘리야와 함께 거론됐을 정도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각인된 존재였다. 대대적인 구국성회 중에 줄과 멍에를 들고 와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퍼포먼스’가 당대 사람들에게 매우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뜻하는 ‘징계’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멍에가 쉽고 가볍다는 것을 깨닫는 ‘교육’을 뜻하기도 한다. 조 목사는 “포로 생활 70년은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편지를 통해 받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시민 재교육’을 거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달게 받는 것은 쉽고 가벼운 나무 멍에를 메는 것이지만 저항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무겁고 힘든 쇠 멍에를 메는 것’이라는 진리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해석했다.
또 이 70년은 그동안 죄악으로 마치 녹슨 가마와 같이 되어 버렸던 예루살렘 땅을 ‘안식’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벨론 군인들이 부수고 불태웠던 그 상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이 되어 땅은 완벽하게 휴식을 누린 것이다.
이쯤에서 조병호 목사는 예레미야에 대한 오해 한 가지를 꺼내들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는 점에서 그가 친바벨론주의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바벨론이 전쟁에 휩싸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알받이가 된다. 그것을 막은 사람이 예레미야”라며 “그는 제국이 세계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국을 도구로 사용하시며 온 세계를 경영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 위해 주변 제국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와우! 예레미야 70년>은 예레미야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 포로 생활 70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다시 귀환한 뒤 다니엘, 에스겔, 에스더, 느헤미야와 같은 열매를 맺는 기쁨까지 한 권에 연결한 책이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가슴 뛰는 이야기였는지 성도들에게 알리고 싶고, 우리 자녀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독자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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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 자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과 역사이해
김성욱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1. 들어가면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하자면, 천지창조, 아브라함의 소명, 출애굽, 다윗왕조의 흥왕(興旺)과 몰락 그리고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과 그 귀환 등이 될 것이다. 그 동안의 논의를 볼 때 많은 설교와 논의는 주로 앞부분에 관한 것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와 그 귀환의 역사적 의미는 그 중요성에 비하여 사뭇 간과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본 논고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와 그 의미에 관하여 잘 분석하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구약이해와 성경이해 더 나아가 역사이해를 위해서 귀중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건에 관한 이해나 평가가 단순치 않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 관한 자료들이 서로 혼합되어 있으며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것도 한 이유이지만, 더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정확하게 70년으로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 수차례 언급된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혹은 그것의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인 70년으로 수용하지 않고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심도있게 다루면서 더 나아가 한국교회와 관련하여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이스라엘의 포로기
이스라엘의 포로시기를 살펴보려면, 그 역사의 전후를 조사하여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 후(B.C.722년)로부터 남왕조 유다가 멸망당할 즈음의 역사가 간단치 않으며 또한 열왕기와 역대기 외에도 여러 선지서자들의 글들이 중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당시의 국제정세와 함께 그 정황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앗수르의 바니팔(오스납발, B.C.668-632, 대하 33:11-13; 스 4:10) 왕이 죽은 이후, 앗수르에서는 온 나라를 내란으로 몰고가는 큰 혁명이 일어났다(B.C.627-624). 그리고 이 혁명은 결정적으로 앗수르의 파멸을 초래하였으며 당시의 바벨론은 이러한 혼란 상태를 이용하여 독립을 되찾았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무너진 지 110년이 지난 후 유브라데스 강변의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결국 메데제국을 몰락시키고 세계 정세에 있어서 패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바벨론은 B.C. 612년에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함락시키면서 결국 구약성경의 중심 배경이 되는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 지역은 애굽과 바벨론의 세력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즉 고대로부터 계속이어져 오던 근동지역의 패자인 애굽의 세력과 신흥 바벨론의 힘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는 당시 국제정세를 흔드는 두 축이 되었다.
비록 예전의 최고 강국이었던 앗수르가 신흥 바벨론과 메데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였으나(B.C.612), 아직도 앗수르 지역에는 앗수르의 잔류군이 남아 있었으며 또한 바벨론도 아직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지는 않았다. 이 틈을 타서 고대 근동의 전통적인 강국인 애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회복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로 알아 앗수르의 나머지 세력을 치려하였다. 그러자 앗수르의 남은 백성들은 하란으로 모여서 전력을 재정비하였고 애굽과 대항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거점을 확복하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항거하며 하란을 탈환하려 하였다. 이 때 바벨론의 바포폴리살 왕은 이를 감지하고 군대를 이끌고 앗수르의 나머지 세력들을 쳤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마저 격퇴하였다. 이 전쟁을 통하여 세계 패권(覇權)의 윤곽이 완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 사건에서 남왕조 유다의 요시야 왕은 애굽 군대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나갔다가 전사하고 만다(B.C.609). 이러한 상황은 B.C. 605년까지 계속이어 오고 있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Carchemisch) 전쟁에서 애굽의 주력 부대를 완전히 격파하였고, 또 이스라엘 백성 중 일부를 포로로 잡아가고 애굽의 하수까지 남하하였다(왕하 24:7). 따라서 이 전쟁을 계기로 바벨론은 명실공히 고대 근동의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이스라엘 역사와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갈그미스 전쟁 중에 바벨론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1차 포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B.C.605년). 성경에서는 분명히 유다가 완전한 멸망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여러 징조들을 보이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B.C.605년의 제1차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씀하셨고 70년 동안 포로가 될 것이라 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계속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바벨론의 활동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의 세력 판도가 달라짐에 따라 애굽왕 바로느고의 봉신이었던 여호야김은 다시 메소포타미아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B.C. 601년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나(왕하 24;1), 이로 인하여 B.C. 598년 12월에 다시금 바벨론 군대가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해 왔다. 그 결과 유다의 여호야김 왕은 죽고, 이어서 18세인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계승한다. 그러나 여호야긴왕의 통치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가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유다 백성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으며(B.C. 597년), 시드기야(B.C. 597-587년)를 왕으로 세운다. 시드기야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으로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계속하여 바벨론에 항거하였는데, 결국 B.C. 586년에 느브갓네살의 친위 대장 느부사라단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되었다. 결국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온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각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 역사를 정리해보자면 B.C. 605년의 갈그미스 전쟁에서 바벨론은 유다를 치고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를 잡아갔는데, 이때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세 친구를 포함한 상류층의 인사들이 함께 끌려간 것으로 보는데(단 1:1-6) 이것이 이스라엘의 제1차 바벨론포로가 된다. 제2차 바벨론포로는 B.C. 597년에 일어났는데, 이 당시에 끌려간 유대인 중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에스겔 선지자를 언급할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말과 관계되는 제3차 바벨론 포로는 B.C. 586년에 이루어졌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짓밟히게 되고 또한 예루살렘성전은 시드기야 9년에 포위되어 결국 시드기야 11년(B.C. 586년 7월)에 완전히 함락되고 만다. 이 때 시드기야 왕은 몰래 도망을 치다가 잡혀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갔으며, 자신의 아들들은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왕은 두 눈을 뽑히고 또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갔다. 이런 일련의 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400여년 전통을 이어온 솔로몬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포로생활을 하면서 이 때부터 디아스포라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한 기한이 차게 되어, 그들이 포로 잡혀간 지 약70년만에 이스라엘로 돌아오도록 허가를 받았다. 마치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이 세 차례(B.C.605, 597, 586)에 걸쳐 진행되었듯이 이스라엘이 포로에서의 귀환하는 것도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 제1차 귀환은 B.C.538년에 왕통의 후손인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그의 인도 하에 이루어졌으며, 49,897명이 귀환하였다(1:5-2:70). 일반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바로 이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제2차 포로귀환은 그로부터 약 80년 후인 B.C. 457년(아닥사스다왕 7년)에 일어났는데, 에스라의 인도 하에 1,754명이 귀환하였다(스 8:1-14). 그리고 제3차 귀환은 그로부터 13년 후인 B.C. 444년에 느헤미야의 인도 하에 귀환하였다.
3. 포로생활 70년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그 귀환에 관하여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서 9:1-2에서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라고 하여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70년으로 언급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는 에스라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1:1-2)
여기에 등장하는 고레스는 B.C.559-530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닦은 왕으로 B.C.538년에 조서를 내려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포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B.C.605-538년이므로 67년이다. 그리고 당연한 귀결로 제2차 혹은 제3차 바벨론 포로로부터 바벨론포로 기한을 규정한다면, 그 기간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란 것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에 관한 많은 글들을 살펴보면, 이 부분에 관하여서는 간과하고 넘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세가지 경향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고 지나간다. 첫째, 실제로 67년이지만 마치 70년으로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67년이나 70년 별 차이가 없고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작업인 듯이 보일지 몰라도, 이 부분을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연구에 있어서 자료의 빈곤과 풀리지 않는 다른 많은 문제들 속에 파묻혀 슬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벨론 포로의 70년이란 것은 상징적인 수로 인식하며 그 해석을 첨부한다. 이것은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대하 36:21).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이스라엘의 달력에 따르자면, 매 7년이면 안식년이고 또 이런 안식년의 10번(완전수)을 곱하는 것(7X10=70)으로 설명한다. 즉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를 통하여 충분한 안식을 취한 후에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세 번째의 설명으로는 그 동안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만큼 안식을 취하게 하였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근거와 타당성이 미흡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고 발전시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으로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심판 중에 가장 혹독한 심판으로 철저한 징벌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서 뽑혀 이방의 땅으로 그리고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권과 관련된 것으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사상과 관계된다. 두 번째 입장은 이것에 더 나아가 대하 36:21에서처럼 ‘안식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포로생활 70년은 심판의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건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의 자리에 영원히 버려두시지 않고 회복시키는 분명한 소망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황무한 토지가 70년 동안 안식을 누리며 새로운 경작을 준비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 심판을 통하여 정화되고 정결케되어 새로운 시대 메시아의 도래를 대망하며 소망을 가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동의를 표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분명하게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67년을 70년으로 주장하기에는 그 마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가능성을 다음 단락에서 다루고자 한다.
4.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의 사명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학개서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사실 ‘학개’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나 혹 그곳에서부터의 포로귀환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학개서를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다만 제2성전건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성경을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실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먼저 학개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포로이후의 역사에 관하여 여러 자료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B.C.539년에 고레스는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였고, 그 이듬해에 모든 유대인들은 고국에 돌아가도록 선포하였다. 당시에 약 5만 가량의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황폐한 땅에 돌아와 정착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면서 성읍들도 다 재건하여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만들고 또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수축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먼저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렸고(에스라 3장) B.C.536년에 이르러서는 성전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의 기초만 공사하고(B.C.534년)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흘러 B.C.520년이 되었다. 다리오가 왕으로 등극한 그 다음 해인 당시까지도 제2성전 공사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부호들은 안락한 대궐을 짓는데 많은 투자를 하지만 성전은 돌보지 않았고(학 1:4), 일반 백성들은 또한 여러 재해와 어려운 일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 공사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학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재난과 농사일에 대한 실패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며(학 1:10-11) 이것이이 주의 성전 건축을 게을리 한 그들의 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수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너무나 바빴다(학 1:9). 이 때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로 성전 건축을 하라고 명령하신다.
결국 학개와 스가랴의 권고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성전재건 공사는 다시 재개되었으며 결국 B.C.516년에 제2예루살렘 성전이 완공하게 된다. 새롭게 완성된 성전이 비록 예전의 솔로몬 성전과 같은 위용이나 웅장함이 없으나 더 영광스러울 것을 말씀하시며 이 부분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와 은혜와 감격의 말씀으로 부어주신다.
물론 학개나 스가랴 선지자의 등장이 B.C. 520년 이전이나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1-2) 그러나 여기에 나타나는 학개나 스가랴 선지자의 등장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권면하는 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개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우리의 사고를 더 확대해보자.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이라고 하였으나, 그 년수가 실제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보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무너지고 성전이 재건되기까지의 기간을 따져보면 공교롭게도 70년이 된다(B.C.586-516). 만일 이 문제를 우연에 의한 70년으로 보지 않고, 그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해하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성전이 훼파되고 성전이 재건되는 이 기간이 70년이 되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하여 들어가기 전에 먼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강조되는 개념 중의 하나가 “남은 자 사상”이기에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이전 혹은 이후의 역사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것은 혈연적 이스라엘이 혹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선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지역적으로 혹은 혈연적으로 한정되는 그룹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많은 본문을 볼 때,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본질과 관계된 것으로,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한 범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선포 등이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더 나아가 진정한 이스라엘로 등장하는 것을 많이 발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인 것이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진행된 나라의 백성으로 예배 공동체는 이스라엘 백성의 본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이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 그 이스라엘은 혈연이나 지연에 의한 이스라엘은 아니다. 물론 혈연과 지연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 즉 피를 물려받은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상으로서의 이스라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성전이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범죄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는 없지만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시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70년이 가지는 의미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이 문제가 이스라엘의 본질과도 밀접한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과 관계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즉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요 그분의 간섭과 인도와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인데, 이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절망의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이 기간은 성전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던 영적인 방황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이 바로 70년이다.
이러한 성전의 문제는 구약으로 끝나지 않고 신약에서도 중요한 논쟁으로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이 성전되심을 말씀하는 것과 사도행전 7장에 나타나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그것이다. 물론 신약시대에 와서는 보이는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구약시대의 사고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만나며 또 그분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성전이 있었던 것이다. 성전 개념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회막을 보아도 그것은 언제나 이스라엘 진중에 있었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회막은 평상시에는 이스라엘의 중앙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임마누엘사상) 또 그들을 다스리는 상징이기에, 결국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본질적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회막은 이스라엘의 이동시에는 온 백성보다 앞장서서 나가기에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아가는, 즉 이스라엘의 인도자 되신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이란 결국 이스라엘의 정체성과도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를 통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 개입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학 1:5-7)
5. 하나님의 영광으로서의 교회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지 약 100여년 후에 바벨론의 침입이 있었고 또 그로부터 약 20년 후에는 견고하던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훼파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이며 거룩하고 장엄하고 찬란하게 여기던 성전,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온 천하가 다 무너져도 살아계신 이 하나님이 계신 이 성전은 결코 무너지거나 패함이 없을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안전할 것이라고 하며, 수많은 선지자들이 외치며 확신하며 보증하며 보장했던 그 성전(렘 7:1-10)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무너져 버렸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용되던 그릇과 모든 것들은 이제 이방신들을 섬기는데 이용되게 되었고, 하나님을 대표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던 왕은 눈이 뽑히고 목배임을 당하였다. 그 동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그 이스라엘과 왕족들은 또 노예처럼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사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며 이방 사람들을 개나 돼지처럼 인식하며 대하였는데, 이제는 다 그들의 포로가 되어 세계 각 곳으로 흩어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 힘든 포로 생활을 끝내고,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하여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는 그 기간 역시 여전히 힘든 기간이며 시련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이스라엘 중심에 있어 그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며 이끌던 성전이 없어진 지 오래며 또 그 성전을 재건하자니 방해도 있고 또한 각자의 일들이 많아 그 일은 더욱 외면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시기에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깨우쳐 주었으며 또 그와 함께 활동하였던 스가랴와 함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의 회복 곧 성전의 재건을 무엇보다 먼저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분명히 하는 의미에서 학개의 등장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일 때문에 혹은 하나님께서 수차례 경고로 주신 어려움 가운데서 그 어려움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더더욱 성전 건축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그 진척 또한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시는 것이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70년 즉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곧 그들이 성전이 없이 지내야만 하는 70년의 기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 성전재건의 일을 담당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자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이것을 일깨우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제2성전은 구속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결국 이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학개 2:9에서의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는 예언과 축복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일은 옛 조상 다윗이 많은 돈으로 준비해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국가적인 정책으로 대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스스로를 자각하며 또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감당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이 백향목이나 은금과 같은 호사스러운 재료가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학 1:8a). 즉 그들이 순종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외형에 있어서 솔로몬의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의 말씀으로 은혜를 더하신다: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학 1:8b),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학 2:9).
이 성전의 재건이란 단순하게 무너졌던 솔로몬 성전의 재건의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무너진 옛 다윗 왕권의 회복이나 그 영화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간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솔로몬 성전과 같거나 비슷한 재료로 짓도록 명령하였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스가랴서나 신약성경과 연관하여 볼 때, 장차 도래할 메시아 시대에 대한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세워진 성전 곧 회복된 시온과 예루살렘에 그 나라를 다스릴 왕이 찾아오시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6. 적용: 한국교회사에서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교회사를 정리하다 보면 여러 사건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기간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포로는 아니지만, 이런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13세기 말부터 세속권력에 의하여 교황이 로마에 있지 못하고 프랑스에 체류한 ‘교황의 바벨론 유수’를 들 수 있겠다. 또 다른 유명한 예가 바로 루터에게서 발견된다. 루터는 1520년에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벨론 포로”와 “크리스천의 자유에 관하여”라는 세편의 작품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에 등장하는 제목이 바로 “교회의 바벨론 포로”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카톨릭의 성만찬론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세 가지 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바벨론 포로’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문맥을 같이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도록 하자. 현시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 혹은 “북한교회”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이 부분은 첨예한 주제여서 논자가 감히 화두를 던지기가 쉽지 않으나, 역사를 전공하는 자로서 역사이해에 관한 조심스러운 시도를 펼쳐 보이고자 한다. 우리는 북한의 실정을 여러 통로를 통하여 듣고 또 북한교회가 당하는 핍박과 고통을 안다. 이런 상황도 “교회의 바벨론 포로의 시기”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는가?
만약 이렇게 ‘한국교회의 바벨론 포로의 시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명명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그 원인 분석에 관한 것인데, 우리는 쉽게 북한의 공산당을 큰 원인의 하나로 설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타당성을 가지며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주된 관심이 ‘교회(敎會)’라는 것을 고려하면서 한국교회사를 다시금 짚어보고자 한다.
오늘의 논지와 관련하여 논자는 1938년 9월9일 평양의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제27회 총회를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당시의 상황을 말하자면, 삼엄한 경비 곧 193명의 총대들 틈에서 약 100명의 경찰들이 그 총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가운데 각본대로 진행된 총회였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한국교회는 교회 스스로가 신사참배를 국민의식으로 가결하고 말았다. 물론 일제시대에 일본의 핍박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관하여 아직도 시원하게 해결하지 않고 있다. 주기철 추모사업 등 여러 행사들이 있었음에도, 그 동안 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에 대하여 총체적이며 근본적인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에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물론 나중에 남북이 분단되고 공산당의 억압과 핍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라는 영적인 단체를 고려한다면, 교회가 교회의 정체성을 곧 교회의 교회됨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 사건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문밖교회에서의 신사참배 가결이 있은 지 벌써 66년이 지나고 있다. 얼마 후면 70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남북한의 문제 통일문제 등에 관하여 고려해야할 시기이며 또 여전히 북한을 위하여 여러 가지 물질로 혹은 다른 무엇으로 돕고 선교를 위하여 준비하며 실천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를 생각하면서 현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의 문제를 넘어서 마치 학개서에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처럼 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곧 “자신의 소위를 돌아보라”라는 말과 같이 우리의 모습과 과거사를 추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서기 위하여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고, 먼저 한국교회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 된 교회를 이루어가고자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평양에 대하여 “동방에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그 명성과 영화보다 더 큰 영광과 위로와 은혜로 한국교회 위에 부어주실 것을 확신하며 소망 중에 기다린다.
출처 : 비교적 젊은 개혁주의자들의 아지트!
글쓴이 : 하늘형상 원글보기 : 하늘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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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연재 칼럼] 예레미야서의 포로생활 70년은 정확한 수치인가, 어림수인가, 상징적인 수인가? (1)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7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리라는 예언(렘 25:11-12; 29:10)은 어떤 의미일까?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이스라엘(남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포로귀환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제1차 포로귀환은 주전 538년, 제2차 포로귀환은 주전 458년, 제3차 포로귀환은 주전 445년에 이루어졌다.
포로귀환 70년을 말할 때 귀환년도를 주로 제1차 귀환시기인 주전 538년으로 본다. 이때가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들을 귀환하도록 칙령을 내린 해이기 때문이다.
제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주전 538년까지 계산하면 67년이 되고, 제2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97년부터 계산하면 59년이 되고, 제3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86년부터 계산하면 48년이 된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서가 예언한 70년간의 포로기간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가? 상징적인 숫자인가? 어림수인가? 아니면 정확한 숫자인가? 정확한 숫자라면 어떻게 숫자의 차이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포로생활 70년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안한다.
1) 70년을 인간의 수명(시 90:10)이나 3세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로 본다(Keown, Scalise, and Smothers).
2) 구약을 넘어 고대근동의 신들의 진노로 도시들이 황폐한 기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에살하돈(Esarhaddon of Assyria)의 검은 돌에는 70년이란 기간이 마르둑이 바벨론에 대해서 불쾌함을 보인 기간으로 등장한다(W. L. Holladay; J. H. Walton, V. H. Matthews, and M. W. Chavalas).
3) 70년을 제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고레스의 칙령이 난 시기인 주전 538(혹은 539)년에 대한 어림수로 보는 견해이다(Duhm, Orr, Allen, Keil).
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주전 586년으로부터 성전이 재건된 주전 516년으로 보는 견해이다(C. F. Whitley; 김성욱).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70년을 상징적인 숫자나 어림수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예레미야서가 수치를 사용할 때 문자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2년 만에 포로가 돌아오리라고 예언한 것은 맥락상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렘 28:11).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금년에 죽으리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씀도 마찬가지이다(렘 28:16).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문자적으로 그 해의 일곱째 달에 죽었다(렘 28:17). 70년이란 숫자를 어림수나 상징적으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예레미야서가 미래를 예언할 때 사용한 수치가 상징적이거나 어림수로 볼 수 있도록 장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견해가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
위의 견해 중에서 마지막 나오는 주전 586년에서 주전 516년 기간이 예레미야서가 예언하고 있는 포로생활 70년을 가리키는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본다. 위틀레이가 이 이론을 오래 전에 제안하였지만 그의 해석은 성경의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70년이란 숫자를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본다. 한국 역사신학자인 김성욱 교수는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성전이 무너져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기간으로 본다.
이번에 <성경과 신학>에 실린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에서 필자는 70년이란 숫자에 대한 구약성경의 내적 해석(스가랴 1:12, 7:5, 학개, 에스라 1장, 에스겔 8-11장, 역대하 36:21-23, 다니엘 9:2, 등)을 통해 70년이란 숫자가 성전이 파괴된 후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 버린 주전 586년과 성전이 재건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회복된 주전 516년 기간을 가장 설득력 있는 70년 기간으로 논증하였다. 이렇게 보면 포로생활 70년은 문자적인 70년을 의미한다. 사실 예레미야서는 묵시문학과는 달리 연도에 대한 예언이 문자적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있음을 앞에서 보았다(렘 28: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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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성경 : 다니엘 9 : 1 – 7 / 제목 :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 2019. 3. 3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솔로몬이 그토록 화려하게 지었던 성전을 무너뜨리고, 성전에 있는 금, 은, 보화들을 탈취해 갔으며, 왕자들은 죽이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을 뽑은 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 때가 바로 BC 587년입니다.
또한 유능한 인재들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무려 4,600여명(렘52:28-34)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다1:4)“소년”이라고 했는데, 오늘날로 하면 15살 정도라 생각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이 망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70여 년간 살면서 예레미야의 책을 읽고 연구하여 깨달은 말씀을 통해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
애국과 관련된 성경이 많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관련된 성경만 해도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무려 7권이나 되며, 이들 선지자들은 억압받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것을 가르치며, 위로하였습니다.
일부 이스라엘백성들은 포로가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여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5절)“우리는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니…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셨나이다.” 다니엘은 우리가 범죄 하므로 하나님이 징계하셨다고 말하면서 재를 덮어쓰고 슬퍼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이 분열 되어, 북이스라엘이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208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통치자가 한 명도 없었고, 남유다는 겨우 6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은 적대적인 관계에서 전쟁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우리가 언제까지 포로로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가운데 예레미야가 기록한 책을 통해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2절)“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생활의 기간이 70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를 잃고 난 다음에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방종함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고, 포로가 된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자신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우리 민족도 일본의 침략을 받아 36년간 나라를 잃어 버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은 재산을 빼앗고,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군대로, 여성은 정신대란 이름으로 인권을 말살하여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았고, 언어와 종교까지 빼앗고 인권을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그러했던 우리 민족이 해방과 자유를 맞이했습니다. 미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혁명 등은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리고 싸워서 쟁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얻은 8.15 해방은 우리 민족이 피를 흘리거나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패전함으로 우리는 덤으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은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풍요를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바로 사용하고 남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체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
현재 한국 외무부에 따르면, 한국인은 본국에서 5천2백만 살고 있으며, 170개국에서 712여만 명이 살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살면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생활 중 직면한 문제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자국 언어 문제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언어입니다. 즉 내가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할 때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자국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행동양식과 가치관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과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면서 자국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영국과 프랑스 또한 아프리카를 정복한 후에 자국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500년이 지난 지금도 브라질은 포르투갈을, 남미 여러 나라들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는 프랑스, 영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는 영국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 외국어입니다 . 다니엘 1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학문과 언어를 3년간 배웠습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외국에 살면서 힘든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유익한 것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현지 언어와 학문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스페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며, 외국 언어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페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고 더 많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개국이 모국어로 사용하며,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더 많습니다. 스페인어는 국제 연합의 6개국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미국에서 스페인어는 제 2외국어 이며, 전 세계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5억4천만 명이 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 또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이국땅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부모는 다니엘의 이름을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라고 지어 주었고, 하나냐는 “주의 은혜”, 미사엘은 “강하신 하나님” 그리고 아사랴는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이름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이었고, 그들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들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외국에서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용기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강제적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들은 본래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처럼 처신하라”고 충고합니다. 대체적으로 젊은이들이 고향산천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눈길에 벗어나면 자유분방해지기 싶습니다. 부모를 떠났으니 잠깐 자유롭게 살아봐야지! 이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항상 자문자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비록 우리가 외국 땅에 살고 있지만, 이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자녀교육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
오늘날 회당과 랍비와 서기관, 탈무드 등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중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자 회당 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회당은 두 가지 역할을 했는데, 안식일에는 예배를 드렸고, 평일에는 자녀를 교육하는 학교로 사용했습니다.
대개 10가정이 되면 회당 하나를 지어 랍비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투자였습니다. 그들은 돈은 벌었지만 그 돈을 쌓아 두지 않고, 자녀 교육에 투자를 하였습니다. 부모들은 모든 교육을 랍비에게 전적으로 의탁했고, 랍비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가진 소질을 점검해서 인문, 과학, 예능, 기능 쪽을 구분해서 진로를 정해주었습니다.
포로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느헤미야 같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직이나 상업이나 장사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가령 손재주가 있으면 보석 깎는 기술이나 기계를 만드는 쪽으로 지도했습니다. 지금도 보석 가공이 유대인이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어릴 때부터 전문 분야를 터득해 그 분야에 권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즉 장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노벨상의 30% 가 유대인들이 받게 된 배경입니다. 전문화된 기술은 바벨론 포로기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상업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장사의 필수적인 요소는 “신용과 정직”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국제 사회에서 가진 가장 큰 자본은 “정직과 신뢰”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 세계 경제를 장악하게 된 것은 포로기간 중에서 형성된 유대상론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수준은 세계 13 위며 , 기술력은 11 위입니다 . 대학 진학 율은 52%(미국53%, 일본42%, 중국7%), 문맹률이 세계에서 제일 적은 나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성은 세계 50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일본이 0.7%, 한국은 20% 이지만 법정에서 무고죄가 일본보다 2352배 높고, 위정 죄가 462배가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53년, 하멜의 표류기인데, 하멜은 당시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 사람은 거짓말 잘하고 도적질 잘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가 약해진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부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민족은 아직도 분단국가입니다. 이 말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얻은 자유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또한 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과제는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신앙교육”이며, “신뢰와 정직”입니다. “신앙교육과 신뢰와 정직”은 외국에 사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며, 우리 자녀의 장래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입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외국 땅에서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믿음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GoodNews 가톨릭정보
[성경 속의 인물] 바빌론의 포로생활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기원전 538년에 끝난다.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포로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차례에 나누어 바빌로니아를 떠났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남아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았다. 이들이 최초의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처음 끌려간 것은 BC 597년이다. 이 해에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여호야킨’ 왕을 사로잡는다. 그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약탈한 뒤 새로운 임금을 임명했다. 그가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다. 그리고 여호야킨과 그의 가족을 끌고 갔다. 대신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수천의 젊은이들 역시 포로로 끌려갔다(2열왕 24,14).
두 번째는 치드키야의 무모한 도전으로 이스라엘 왕조가 끝났을 때다. 화가 난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 성전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주민들과 싸움이 가능한 모든 남자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기원전 586년의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길게는 60년이고 짧게 잡아도 48년 동안이다.
유배 중 유다인들은 종교예절을 금지당했다. 수입과 노동력은 착취당했으며,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댈 언덕은 오직 ‘야훼 하느님’뿐이었다. 다행히 바빌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모여 살게 했다.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덕분에 유다인들은 개별적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괴로웠다. 왜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해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율법에 충실해야 다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 믿었다. 유배지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가족 중심의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현실만을 보던 시각에도 변화가 왔다. 비로소 사후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떠돌아 다녀야 하는 그들의 운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나고게’(유대교 회당)가 처음 시작된 것도 바빌론 유배 때다. 다윗 이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성전 파괴는 제사 드릴 장소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달래며 바빌론에서도 안식일과 축제일을 지켰다. 할례는 더 철저하게 시행했다. 이런 모임이 발전하여 시나고게가 된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 유다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뭉쳤다. 만남과 교육의 장소로 발전시킨 것이다. ‘회당장’에게는 엄청난 급료를 지급했다.
[2009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예언의 의미
이 연구의 목적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포로생활 70년(25:11-12; 29:10)의 의 미를 밝히는데 있다. 연구 방법론으로는 예레미야서의 70년을 직접 인용하 고 있는 스가랴서(1:12; 7:5), 다니엘서(9:2), 역대기하(36:21)와 간접 인용하고 있는 에스라서와 학개서의 해석을 비교하는 성경 내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 였다. 연구 결과 예레미야서의 표면적인 의미로는 제1차 포로기인 주전 605 년부터 고레스의 칙령이 내린 주전 538년이 설득력이 있으나 어떤 청중은 제2차 포로기인 주전 597년에 포로로 잡혀왔기 때문에 이 기간을 어림수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스가랴서를 필두로 다른 성경 들이 예레미야서의 포로 70년을 성전이 파괴됨으로 하나님께서 떠나버린 주 전 586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전이 재건됨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된 주 전516년까지로보는견해이다. 이는본연구에서성경내적해석을통해밝 힌 의미이다. 이런 이해는 70년이란 기간과도 일치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meaning of the 70-year exile in Jeremiah (25:11-12; 29:10). An inner-biblical exegesis is used as the main tool of this study: the meaning of 70 years is derived from comparing texts which directly quote the 70 years of Jeremiah (Zech 1:12; 7:5; Dan 9:2; 2 Chron 36:21) and which indirectly cite Jeremiah’s message (Ezra, Haggai). The text in Jeremiah 25:11-12 seems to indicate the exile period is from 605 BC (when the first captives were moved to Babylon) to 538 BC (when Cyrus issued his edict), but the text in Jeremiah 29:10 has diffi- culty in regarding the period as a round number because the recipients of the prophet’s message were brought to Babylon in 597 BC (when the sec- ond captives were moved to Babylon). Inner-biblical exegesis of the Book of Zechariah (and other texts) clarifies that the period of exile began in 586 BC (when God left the people of God by destroying the temple) and ended in 516 BC (when God came back to the temple at the time the second temple were rebuilt). This interpretation matches the 70-year period of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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