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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3/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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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 | RNKS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창세기 26 · 1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는데, 이삭 때에도 그 땅에 흉년이 들어서, 이삭이 그랄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 · 2주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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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창세기 26장 [개역한글:새번역] ·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 …
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0/1/2022
View: 883
쉬운성경 창세기 26장
“우리가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으니, 우리 서로 맹세하고 언약을 맺읍시다. 26:29 우리는 당신을 해치지 않고 당신에게 잘해 주었으며, 당신이 평안히 …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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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9(금) “창세기 26:1-22” / 작성: 이창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가 창세기에 첫 등장하여 보여준 일은 참으로 놀라왔습니다(창 22장).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버지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2/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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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 요약 – 네이버 블로그
우물을 원상태로 보존하느냐, 아니면 흙으로 막히느냐, 이것은 성도들이 악한 영들과의 전쟁 승패에 달렸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의 우물을 보존할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0/24/2022
View: 4368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창 26) – 유평교회
본문: 창세기 26장 설교자: 이병권. 오늘 본문 26장은 주인공인 이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잠시, …
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7/17/2021
View: 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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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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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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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다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1)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2)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3)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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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삭이 그랄에서 살다
1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는데, 이삭 때에도 그 땅에 흉년이 들어서, 이삭 이 그랄 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 에게로 갔다. 2 주님께서 이삭 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 이집트 로 가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살라고 한 이 땅에서 살아라. 3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 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4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다.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다. 5 이것은, 아브라함 이 나의 말에 순종하고, 나의 명령과 나의 계명과 나의 율례와 나의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
6 그래서 이삭 은 그랄 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7 그 곳 사람들이 이삭 의 아내를 보고서, 그에게 물었다. “그 여인이 누구요?” 이삭 이 대답하였다. “그는 나의 누이요.” 이삭 은 “그는 나의 아내요” 하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이삭 은, 리브가 가 예쁜 여자이므로, 그 곳 사람들이 리브가 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8 이삭 이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산 지 꽤 오래 된 어느 날, 블레셋 왕 아비멜렉 은, 이삭 이 그 아내 리브가 를 애무하는 것을 우연히 창으로 보게 되었다. 9 아비멜렉 은 이삭 을 불러들여서 나무랐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의 아내인데, 어쩌려고 당신은 그를 누이라고 말하였소?” 이삭 이 대답하였다. “저 여자 때문에 제가 혹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0 아비멜렉 이 말하였다. “어쩌려고 당신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소? 하마터면, 나의 백성 가운데서 누구인가가 당신의 아내를 건드릴 뻔하지 않았소? 괜히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될 뻔하였소.” 11 아비멜렉 은 모든 백성에게 경고를 내렸다. “이 남자와 그 아내를 건드리는 사람은 사형을 받을 것이다.”
12 이삭 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두어들였다. 주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13 그는 부자가 되었다. 재산이 점점 늘어서, 아주 부유하게 되었다. 14 그가 양 떼와 소 떼, 남종과 여종을 많이 거느리게 되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이삭 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 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다. 16 아비멜렉 이 이삭 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서 떠나가시오. 이제 당신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17 이삭 은 그 곳을 떠나서, 그랄 평원에다가 장막을 치고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18 이삭 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이 우물들은, 아브라함 이 죽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 버린 것들이다. 이삭 은 그 우물들을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불렀다. 19 이삭 의 종들이 그랄 평원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솟아나는 샘줄기를 찾아냈다. 20 샘이 터지는 바람에, 그랄 지방 목자들이 그 샘줄기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삭 의 목자들과 다투었다. 우물을 두고서 다투었다고 해서, 이삭 은 이 우물을 # ‘다툼’ 에섹 이라고 불렀다. 21 이삭 의 종들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 지방 목자들이 또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이삭 은 그 우물 이름을 # ‘반대’ 싯나 라고 하였다. 22 이삭 이 거기에서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 때에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가 살 곳을 넓히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하면서, 그 우물 이름을 # ‘넓은 곳’ 르호봇 이라고 하였다.
23 이삭 은 거기에서 브엘세바 로 갔다. 24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 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나의 종 아브라함 을 보아서, 너에게 복을 주고, 너의 자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 25 이삭 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다. 그는 거기에 장막을 치고, 그의 종들은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다.
이삭과 아비멜렉의 협약
26 아비멜렉 이 친구 아훗삿 과 군사령관 비골 을 데리고, 그랄 에서 이삭 에게로 왔다. 27 이삭 이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이렇게 쫓아내고서, 무슨 일로 나에게 왔습니까?” 28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당신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와 당신 사이에 언약을 맺읍시다. 29 우리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고, 당신을 잘 대하여, 당신을 평안히 가게 한 것처럼, 당신도 우리를 해롭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분명히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30 이삭 은 그들을 맞아서 잔치를 베풀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31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로 맹세하였으며, 그런 다음에, 이삭 이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32 그 날, 이삭 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나왔다고 보고하였다. 33 이삭 이 그 우물을 # ‘맹세’ 또는 ‘일곱’ 세바 라고 부르니,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그 우물이 있는 성읍을 # ‘맹세의 우물’ 또는 ‘일곱 우물’ 브엘세바 라고 한다.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
쉬운성경 창세기 26장
26:1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삭> 아브라함 때에 있었던 것과 같은 기근이 또다시 찾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 마을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찾아갔습니다.
26:2 그 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땅에서 살아라.
26:3 이 땅에 머물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에게 복을 주며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어,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지키겠다.
26:4 내가 너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 그들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26:5 그것은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명령과 가르침과 계명과 규율에 복종했기 때문이다.”
26:6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26:7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 곳 사람들이 이삭에게 그의 아내가 누구냐고 물어 보면 이삭은 “저 여자는 내 누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자기 아내라고 말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이 리브가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6:8 이삭은 그랄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 밖을 내다보니,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26:9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 여자는 네 아내인데 왜 우리에게는 누이라고 했느냐?” 이삭이 아비멜렉에게 말했습니다. “저 여자 때문에 제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6:10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에게 그런 일을 했느냐? 자칫하면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네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하여, 우리가 큰 죄를 지을 뻔했다.”
26:11 아비멜렉이 모든 백성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건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26:12 <부자가 된 이삭> 이삭이 그 땅에 씨를 뿌려 그 해에 백 배의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큰 복을 주시니
26:13 이삭은 부자가 되었고, 점점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26:14 이삭에게 양 떼와 소 떼가 많고 또 많은 종들을 거느리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질투했습니다.
26:15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들을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그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에 판 것이었습니다.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를 떠나라. 너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26:17 그래서 이삭은 그 곳을 떠났습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26:18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우물들을 다시 판 다음에 그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불렀던 대로 불렀습니다.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땅을 파서 샘물이 솟아오르는 곳을 찾았습니다.
26:20 그런데 그랄에서 양을 치고 있던 사람들과 이삭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랄의 목자들이 말했습니다. “이 우물은 우리 것이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 이라고 지었습니다.
26:21 이삭의 종들은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나 또 사람들이 와서 그 우물을 두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 라고 지었습니다.
26:22 이삭이 그 곳에서 이사해서 또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는 시비를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 이라고 짓고, “이제 여호와께서 넓은 곳을 주셨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6:23 이삭은 그 곳에서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26:24 여호와께서 그 날 밤에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해서 너와 함께 있겠고, 너에게 복을 주며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26:25 그래서 이삭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예배드렸습니다. 이삭은 그 곳에 장막을 치고, 그의 종들은 우물을 팠습니다.
26:26 아비멜렉이 그랄에서 이삭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아비멜렉은 그의 비서 아훗삿과 비골을 데리고 왔습니다.
26:27 이삭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미워하여 쫓아 내지 않았습니까?”
26:28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으니, 우리 서로 맹세하고 언약을 맺읍시다.
26:29 우리는 당신을 해치지 않고 당신에게 잘해 주었으며, 당신이 평안히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소. 그러니 당신도 우리를 해치지 마시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이오.”
26:30 그래서 이삭은 음식을 준비하여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26:31 이튿날 아침에 그들은 일찍 일어나 서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을 맺은 다음 이삭이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평화롭게 떠났습니다.
26:32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이삭에게 와서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 우물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26:33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세바 라고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 성을 브엘세바라고 부릅니다.
26:34 에서는 마흔 살이 되어서 헷 여자 두 사람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한 여자는 브에리의 딸 유딧이었고, 다른 여자는 엘론의 딸 바스맛이었습니다.
26:35 이 두 여자는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2016/08/19(금) “창세기 26:1-22” / 작성: 이창호
본문 창세기 26장 1-22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가 창세기에 첫 등장하여 보여준 일은 참으로 놀라왔습니다(창 22장).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단에 눕혀놓고, 칼을 들어 찔러 죽이려 할 그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버지에게 대항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도 대단했지만,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이삭도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장인 25장에서는 이삭은 결혼했지만 임신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계서는 이 부부에게 쌍둥이 형제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삭 부부가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다는 구절을 접하면서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26장은 이삭이라는 인물이 공식적으로는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 있었던 흉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왔지만 기근으로 인해 애굽까지 갔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때와 같이 심한 흉년을 이삭이 맞이했는데 그도 이 흉년을 피해 이동하던 중 블레셋 영토인 그랄에 이르렀습니다. 이삭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는 길에 그랄에 들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절)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가 이곳 약속의 땅, 즉 가나안 땅에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3-4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대해 책임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기에 그 후손들에게 이 땅과 후손을 주겠고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죄로부터 사면되는 복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다시 그 아들 이삭에게 언약하신 그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언약을 주셨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그랄에 정착하면서 이삭은 그랄 사람들에게 리브가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소개합니다. 이유는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7절) 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 그는 제물로 바쳐지는 죽음도 불사했던 이삭이었습니다. 또 지금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바로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랄에 정착하는 믿음의 소유자였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면 두려움에 휩싸여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비멜렉 왕이 이삭에게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10절) 라고 말할 정도이니, 이삭은 지금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부인 리브가를 만민들 앞에 내놓는 파렴치한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이 모습을 바라보는 부인 리브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치해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아비멜렉 왕이 보게 되고, 이에 왕이 이삭을 불러 자초지정을 물어 자칫하면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할 뻔했다고 꾸짖고, 백성들에게 리브가를 범하지 말 것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선대에도 동일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20장). 약 70년 전에 아브라함이 그랄에 거류할 때 부인 사라를 누이라 속였고, 이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갔으나, 하나님께서 현몽하셔서 사라를 가까이 하면 죽일 것이라고 하셨기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아들 아비멜렉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신앙인으로 우리가 보는 세계관은 일반인들과 다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아브라함을 위해서 그리고 이삭을 위해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과 비신앙인과의 차이점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현상만을 보면 두려움에 휩싸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두려워하고 좌절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데 있습니다. 두려움을 피해가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용기라고 하면, 진정한 용기는 나를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닐까요!
두 번째는 콩 심은데 팥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삭의 모습은 20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자녀들의 모습에서 과거 저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잘난 모습이 아니라 못난 모습이 나타나기에 참으로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이 더 조심스럽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야 제가 되돌리려고 해도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이라도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제 자녀들도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성경공부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아이들을 위해 늘 하는 기도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 제 아이들로 하여금 저와 같이 후회하는 전철을 밟게 하지 마시고, 설사 그들이 제 전철을 답습한다면, 저처럼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고 속히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동일한 언약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절)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 역시 목숨이 두려워 자기 부인을 누이라고 속였던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나약한 신앙인으로 주저앉아있지 않았습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아브라함은 인생의 굴곡에서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난 그는 하나님을 믿되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던졌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12절 이하에 나타나는 이삭은 신앙인이되 나약한 과거의 모습이 아닌 인내하며 감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삭은 그랄 땅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때에 파 놓은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리고 떠나라고 할 때 그는 과거 아브라함과 당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맺은 언약을 내세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이 흙으로 메운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선대 아비멜렉 왕에게 양과 소를 주고 구입하고 일곱 암양 새끼로 증거를 삼은 우물이었기에 얼마든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이 귀한 곳이고 따라서 우물에 대해 분쟁이 끊이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은 정식으로 왕으로부터 소유권을 보장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요청대로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옮겨서 우물을 파고, 이 우물에 대해 그랄 목자들이 시비를 걸자 양보하여 또 다른 우물을 파지만 또 분쟁이 생기자 미련 없이 그곳을 양보하고 더 이상 그들이 시비를 걸지 않을 때까지 다른 우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더 이상 우물로 인한 분쟁이 없자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우물의 이름이 다툼을 의미하는 “에섹”, 대적함을 의미하는 “싯나라”라고 할 정도로 분쟁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판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2절)
이삭은 새로 판 우물에서 분쟁이 더 이상 없자 그곳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부르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넓게 하셨다“ 라고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라는 고백을 통해 과거 목숨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만큼 나약했던 신앙인이었던 이삭이 시기와 질투로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대적해올지라도 그들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을 때까지 양보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3절) 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닌 신앙인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억울하게 시비와 다툼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 주실 것을 믿고 세상의 훼방과 간섭에도 좌절하지 않고 새 우물을 찾아 파던 이삭과 같은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르호봇”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삭의 삶을 통해 우리 각자가 깨달은 바를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접목시키는 여러 교우님들의 매일이 르호봇의 감사와 고백이 넘쳐나는 복된 시간들로 가득 채워질 줄 믿습니다.
기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삭의 삶을 통해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두려움에 낙담하고 좌절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내 삶을 자녀들이 그대로 답습한다는 사실 앞에서 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바른 신앙인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시기와 질투로 분쟁과 다툼을 행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르호봇”을 예비해두셨을 믿고 인내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혜와 인내와 사랑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본문의 이삭과 앞장에서의 아브라함과 공통점은?
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어떤 언약을 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언약하신 이유는?
4. 이삭은 왜 우물들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나요 ?
5. 르호봇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작성: 이창호)
창세기 26장 요약
[그랄에 거주한 이삭과 우물 침탈사건]창세기 26장은 이삭의 인격과 삶을 알 수 있는 몇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언약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계승한 사건(1-5절)과 이삭이 아브라함과 동일한 실수를 범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6-16절). 그리고 우물 소유권을 둘러싼 가나안 족속과의 갈등과 그것을 계기로 동맹을 맺고 언약의 땅을 합법적으로 차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17-33절).
1. 이삭의 연약함
1) 가나안에 흉년이 듦
1절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라고 말한다. 창세기 12장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얼마 후에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긴 일이 있었다. 그런데 또 이삭의 때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다.
아브라함 때의 첫 흉년과(BC.2090년) 이삭의 때에 흉년은(BC.1990년) 약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100년 만에 가나안 땅에 대 기근이 든 것이다. 이와 같은 대 흉년은 야곱의 때에 다시 한 번 일어난다(창 42:5).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 세 사람은 모두 가나안 땅에서 한 번씩은 흉년을 경험한 것이다. 농경생활과 함께 유목생활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흉년은 생계에 큰 타격을 입히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게 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에게는 큰 시험이다. 물이 부족하여 농사도 못하고, 목축도 못하게 된다면 생계가 위협받는다. 불신앙인들에게는 재앙이요, 신앙인들에게 큰 시험이다. 그래서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시험당할 때 믿음의 진위가 판가름 난다. 진짜와 가짜가 드러나고, 믿음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드러난다. 평소에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자신의 생계문제로 시험을 당하면 자기가 스스로 속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왜 시험을 허락하시는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어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란 곧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이삭은 그동안 거주하던 브엘세바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인 “그랄”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곳은 다른 지역보다 농사할 수 있는 조건이 더 나은 땅이었다. 이삭은 그랄에 거주하면서 상황을 보다가 흉년이 지속되면 물이 풍부한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블레셋 족속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아비멜렉이 왕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라는 말은, 아비멜렉 왕이 다스리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흉년 때문에 이방인 왕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간 간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세상 왕의 다스림을 받게 될 때, 필연적으로 갈등과 대립, 부조화 현상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시험을 당하면 어떤 사람들은 애굽이라는 세상속으로 흘러가버린다. 세상 사람들과 섞여져서 그들과 한 통속, 한 무리가 되어 어울린다. 세상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변명도 늘어놓는다. 애굽은 물질적 풍요가 있지만 한편 그곳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우상의 땅이다. 애굽의 모든 것들이 우상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세상이 우상의 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우상이 없는 곳이 없다. 가정에서부터 직장, 사업장, 공공기관, 사회 곳곳에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우상들이 즐비하다. 만일 성도들이 우상의 땅인 세상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의 문화와 풍속에 젖어 살면 반드시 내적인 평안과 안식은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내적인 공허와 곤고와 약함과 방황을 거듭할 것이다. 세상과 성도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과 같다. 물과 기름이 함께 있더라도, 물과 기름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섞여지지 않는다. 이처럼 세상과 성도는 외관상 함께 있지만, 내적으로는 각각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과 마귀, 천국과 음부,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생명과 사망, 이와 같이 영적 소속이 다르다.
2) 그랄에 거주하는 이삭
2절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삭에게 나타나셨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남들이 하는 습관에 따라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성호를 부를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불러야 한다. 하나님도 그분이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도 모르고 무작정 “여호와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행위는 이방인들이 아무 약속도 없는, 그저 자기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왜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삭에게 나타나셨는가? 이어지는 3-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삭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시켜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언약에 대한 믿음을 견고케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다. 언약도 모르고 그저 “믿습니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술신앙이요, 사이비 신앙이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 속죄사역에 대한 언약을 믿기 때문이다. 그분이 자기 피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죄인의 “구세주”이시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면, 그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고, 마지막에는 영생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언약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맺은 언약은 알면 알수록 너무나 놀랍고 풍성하다. 그 언약을 믿고 시인하며 언약대로 신실하게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우리가 믿음이 약하여 세상으로 떠내려가서 세상 방법대로 살려고 계획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막으실 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이삭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이 지시하는 장소에 있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흉년이 든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에 거주한다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는 땅에 거할 것을 명령하셨다. 3-5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은 곧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맹세로 언약했던 가나안 땅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이 맹세한 언약 때문에 가나안 땅을 이삭에게 주셔야만했다.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시기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때는 야곱 때에, 즉 세 번째 가나안 흉년이 들 때에 작정된 것이었다(창 43:1, 46:3).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그랄에 거주했다(6절).
하나님이 그분의 언약을 지키신다면, 우리도 그분의 언약을 믿음으로 순종해야만 한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신뢰관계가 쌓이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진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란, 영과 생명과 인격에 있어서 연합됨으로 그분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성경의 목적이요, 하나님 경륜 안에 있는 영원한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환경에 유혹을 받아서 너무나 쉽게 하나됨을 떠나 우리 자신만으로 살 때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우리가 영으로 돌이킬 때만 그분과 친밀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4절에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서 ‘네 자손’이란 이삭의 혈통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삭 후에 그의 혈통적 자손인 야곱이 있지만, 하나님은 수천 년의 시간적 공간을 뛰어넘어 예수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야곱으로 인하여 혈통적인 이스라엘은 복을 받을지언정, 천하 만민이 복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는 자마다 지역이나 인종을 초월하여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속죄와 칭의와 영생을 받기 때문이다.
3)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그랄에 거하는 동안 이삭은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다(7절). 이는 그랄 사람들이 상당한 미모의 여인인 리브가를 가로채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인 자신을 해치울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삭의 거짓말은 이내 폭로되고, 언약의 계승자인 그는 결국 이방인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이삭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이삭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비멜렉 왕이 이삭과 그의 아내를 다른 사람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이방인들과 한 무리로 섞여 산다면, 이삭의 거짓말처럼 반드시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거슬린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경우, 그들로부터 인격적으로나 사회활동에서 손해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된 행동을 할 때마다 마음 깊은 속에서 영혼이 탄식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거듭나고 새로워진 영혼은 언제나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진정 거듭난 성도는 자기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에 범죄하기 어렵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혹여 실수할지라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왜냐하면 그 실수를 통해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삭은 자신의 거짓말과, 또 아비멜렉 왕에게 책망 받았다는 일로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다만 그의 약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약점 때문에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은 없다. 전도서 7장 20절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말한다. 실수와 실패는 자신의 약점이다. 그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덮어주시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2. 거부가 되는 이삭
1)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
12절에는 “이삭이 그 땅에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말한다. ‘백 배나 얻었고’는 직역하면, ‘백 배의 분량을 발견하다’는 뜻이다. 놀라움과 경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흉년의 때에 백 배의 소출을 얻은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이요 표적이다. 이것은 3절에서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이 말씀의 성취이다. 하나님은 이삭이 농사할 때 백 배의 소출을 얻게 하심으로, 그분이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은 이삭에게 번영의 복이 임했음을 말한다. 우리에게도 번영의 복이 임하도록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가정, 직업, 사업장에 번영의 복이 임하는 것은 성경에 합당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이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적일 뿐 아니라, 어떤 메시지가 함축된 표징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와 표적으로 가득하다. 그것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지 증거받았다. 그와 같은 원칙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와 표적이 있는 신앙공동체다. 특별히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께서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막 16:17-18).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경기록 완성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면서 이적의 시대는 종료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 자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의 이적 종료설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스스로 성경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특징은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신앙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초자연적인 그분의 이적과 기사와 표적은 따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은 그 증거로 이적을 체험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연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는지 분별을 가져다 줄 것이다.
2)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
그랄 땅에 거주하고 있던 이삭이 물질적, 재정적으로 소유가 늘어서 크게 거부가 되자, 그곳에 사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시기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삭의 집안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린 것이다. 아비멜렉 왕도 자기 세력보다 이삭이 더 크게 강성하게 되니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16절에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말한다. ‘떠나가라’는 말은 강제추방 명령이다. 이삭에게는 억울한 면이 있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하도록 환경을 통하여 인도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는 도구들이다.
농경사회,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우물은 생존에 절대 필수다. 우물은 그들에게 생명수와 같다. 가나안 땅은 강물이 풍부한 애굽과는 달리, 천수답처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물을 얻을 수 있는 땅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만 절대 의존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 개인이 우물을 가졌다는 것은 생존보장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살림살이에 큰 재산이었다.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할 때, “우물”을 막고 훼방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이삭이 소유하고 있던 우물을 막았다. 물이 귀한 가나안 땅에서 생존과 직결되는 우물을 막은 행위는 사실상 전쟁도발이다.
영적인 방면에서, 가나안땅에 거주하고 있던 족속들은 모두 공중에 있는 마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상징한다. 이 악한 영들이 가장 먼저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은 생수가 나오는 우물을 막는 일이다. 우물은 성령의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사람의 영을 상징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성령은 거듭난 성도들의 영 안에 내주하시어 하나님의 생명수를 계속 공급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이 곧 생수가 흘러나오는 우물이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주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 배’(코일리아)는 문자적으로는 아랫배를 가리키는데, 이는 사람 마음속 깊은 부분인 영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의 영에서 생수가 흘러나리라고 하셨으니, 이는 믿는 자의 영이 곧 생수가 흘러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생수가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성도들의 영을 막는다. 영의 우물에서 생수만 흘러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얼마 후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여 영력이 약해지고 결국 영적인 죽임을 당한다.
블레셋 족속이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막았다. 이것은 악한 영들이 땅에 속한 육적인 것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여, 영적인 사람에서 육적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다. 비록 믿는 자들이라도, 땅에 속한 육적인 사람들은 악한 영들의 방해 때문에 모두 우물이 막혀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의 우물이 막혀있기 때문에 성령의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함을 느끼고 기도하려고 시도하지만, 기도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영적 우물이 막혀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땅에 속한 육적인 상태라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려고 시도하면, 자연스럽게 영으로부터 기도가 나온다. 신령한 기도언어인 방언이 저절로 나오며, 기도할수록 성령의 생수를 공급받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의 우물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우물은 더 많은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오게 될 것이며, 얕은 우물은 적은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다. 우물의 깊이가 곧 성령의 생수에 차이를 결정한다. 우물을 원상태로 보존하느냐, 아니면 흙으로 막히느냐, 이것은 성도들이 악한 영들과의 전쟁 승패에 달렸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의 우물을 보존할 것이요, 패배하면 영의 우물은 막힐 것이다. 공중의 악한 영들은 성도들이 복 받은 것을 몹시 시기한다. 그래서 이 땅에 속한 육적인 것들로 유혹한다. 그럴 때마다 우물을 막는 흙으로 알고 이기든지 피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3) 거처를 옮기는 이삭
17절에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라고 말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전쟁도발을 할 때,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우거했다. 그의 거처를 옮긴 것이다. ‘그랄 골짜기’는 물이 나올 수 있는 산기슭 아래쪽 평평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과거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물을 팠을 때, 그 우물의 이름을 아버지 아브라함이 불렀던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즉 아브라함과 이삭은 사실상 같은 우물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누가 팠던 우물을 갖고 있는가? 이삭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서 사용했다.
19절에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살아있는 물’이다. 이것은 새로운 물줄기가 있는 우물을 팠다는 뜻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매웠으나, 하나님은 이삭에게 새로운 우물을 얻게 하셨다. 그런데 또 소식을 듣고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서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여 다투게 되었다. 그 다툼을 인하여 우물을 이름을 “에섹”(억압하다, 강탈하다)이라고 불렀다. 블레셋 사람들이 강탈해버렸다는 뜻이다. 또 두 번째 우물을 팠는데 또 그들이 시기하여 다투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원수처럼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우물 이름은 “싯나”(적대감)라고 불렀다. 이삭은 끝까지 그들과 다투지 않고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른 우물을 팠다. 세 번째는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 이름을 “르호봇(장소가 넓음, 넓은 공간)”이라고 했다. 이삭은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절) 말했다. 드디어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삭은 원수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얻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소극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좋은 장소로 인도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온유함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된다(마 5:5). 악한 영들이 우리를 훼방하고 공격할 때, 우리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소극적인 방법일지라도, 온유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를 찾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땅을 차지하며 번성할 것이다.
이삭이 마지막으로 거처를 옮긴 장소는 “브엘세바”다(23절).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의 일곱 우물이 있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기념으로 심었던 에셀나무가 있다(창 21:33). 이삭은 그곳에서 자랐으니, 마치 고향 땅과 같이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이삭은 다시 브엘세바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러자 밤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삭에게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의 말씀을 재확인하시고, 임마누엘의 복과 자손 번성에 대한 언약을 말씀하셨다(24절).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으므로,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즉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거기에 장막을 쳤다. 종들이 거기에서도 또 우물을 팠다.
신앙생활 중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가 중요하다. 외관상 사람들은 화려한 교회건물을 보고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은 로마가톨릭 베드로성당일 것이다. 그곳에 과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지 의문이다. 크고 화려한 건물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삭이 그랄에서 브엘세바로 거처를 옮긴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그 기간이 15년 이상 걸렸다. 우리에게도 브엘세바가 필요하다. 우리가 오늘날의 브엘세바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하나님께 공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정착해야 한다.
3. 아비멜렉과의 화해
1) 평화를 제의하는 아비멜렉
이삭은 그랄 땅에 정착한 초기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유로 아비멜렉으로부터 비난받고, 우물로 인한 분쟁 때문에 쫓겨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세력이 아비멜렉을 압도하게 되었다. 이삭이 크게 번성하는 것을 관찰한 아비멜렉은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임을 인정하고 자진하여 그랄에서 찾아와 이삭과 동맹을 맺으려 하였다.
2) 평화 조약을 체결함
화해를 하기 위해 찾아온 아비멜렉에게 이삭은 처음에는 옛날 일을 생각해 그를 책망하였으나, 나중에는 잔치를 베풀며 환대하였다. 아비멜렉과 이삭은 서로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삭이 이웃과 평화할 수 있었던 근본적 힘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이삭과 아비멜렉이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아비멜렉과 그의 일행 등은 평안히 돌아갔다. 이삭이 그들을 보내자마자 이삭의 종이 우물에서 물이 나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하나님과 평화하고 이웃과도 평화의 관계를 맺은 이삭은 더욱 복을 받아 번성하였다.
4. 교훈
1) 본장에서는 이삭이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저질렀던 실수와 동일한 실수를 범한 사건이 나타나 있다. 즉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삭이 아비멜렉에게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이다. 성경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즉 동일한 죄를 거듭 반복하는 인간의 죄성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 속에서도 언약을 계승시키고 구원의 역사를 더욱 확고히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2)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 이삭까지도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있음을 본장은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결국 죄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일 뿐임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시험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창 26)
제목: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세기 26장
설교자: 이병권
오늘 본문 26장은 주인공인 이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잠시, 그의 이야기는 26장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26장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인 26장을 제외하면 이삭은 늘 조연으로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등장하든지, 아니면 야곱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26장에서 잠깐 주인공처럼 나오지만, 사실 앞뒤 큰 문맥에서 보면 이삭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부록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창세기의 저자는 왜 야곱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 중간에 잠시 이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삭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1) 이삭이 거하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흉년을 피해 그랄 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아마도 이삭은 그랄에 잠시 머무르다가 상황을 봐서 애굽에까지 내려가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 하나님이 이삭에게 그 땅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흉년 때문에 먹을 것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계속해서 약속의 땅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흉년이 든 가나안 땅에 있는 것보다는 나일 강이 흐르고 있는 애굽으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한 섭리와 뜻을 이루기 위해 이삭과 그의 가족을 그 땅에 계속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명령에 대한 약속과 그가 순종했을 때 얻게 될 복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3-5)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약속을 이삭에게 다시 말씀하시며 약속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약속하십니다. 땅에 대해 약속하시고, 자손에 대해 약속하시고, 복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이 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한 세대를 넘어서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끝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비록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있다하더라도 그 약속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5절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근거가 아브라함의 순종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5절에 나오는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라는 말은 율법을 가리키는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용어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 율법에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시내 산에서 구체적으로 제도화되어서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율법에 포함된 원리를 부분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이미 가인과 아벨의 때에 제사를 드렸고, 노아 때에는 짐승들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들로 구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할례에 대한 규례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부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율법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모세는 이것을 모아서, 새로 받은 계시와 함께 정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실한 삶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하나의 모델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고(15:6), 훗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부르기도 하십니다(사41:8).
아무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그대로 머무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셨고,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게 그랄에 거주하게 된 이삭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을 합니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7)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삭도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을 속입니다.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부전자전인 것처럼 아버지가 했던 일을 아들이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건과 지금 이삭의 사건에서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둘 다 그랄이라는 지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고, 둘 다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했고, 결국 둘 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책망한 아비멜렉과 이삭을 책망한 아비멜렉이 같은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마 두 아비멜렉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의 아버지는 왕’이란 뜻인데,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즉위한 왕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성경에서 애굽의 왕을 모두 ‘바로’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비멜렉’도 그 지역의 왕을 부르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삭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잘못을 범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지역에 거하는 동안 많은 부를 쌓게 됩니다. 그는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농사를 해서 100배의 수확을 올립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애굽으로 가지 않아도, 흉년이 든 땅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삭의 순종에 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축복은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허락하신 보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이삭이 애굽으로 갈려고 했던 이유가 흉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농작물을 넘치게 수확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이삭의 재산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삭이 사용하는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심보가 참 고약합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떠나 주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16)
그들은 이삭을 시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갑니다. 그곳에 거하며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 그리고 판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 번은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스스로 솟아나는 샘 줄기를 찾아냈습니다. 19절에 ‘샘 근원’이라고 하는데, ‘콸콸 솟는 샘 줄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고하지 않아도 물이 솟아나는 우물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얻었는데, 그 지역의 목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이삭의 우물이 자신들 것이라고 우깁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이삭은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납니다. 이삭은 떠나면서 우물의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인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의 목자들은 두 번째 우물에 대해서도 시비를 겁니다.
마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 나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서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그릇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이삭은 그들에게 다시 우물을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우물의 이름을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라고 지었습니다. 이 우물들의 이름은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이삭이 그랄 사람들에게 받은 대우와 그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삭은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우물의 이름을 넓은 지역이라는 뜻의 ‘르호봇’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번성할 수 있는 넓은 땅을 찾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22)
이삭은 우물을 얻은 그 지역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는 말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1:28)는 말씀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이삭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삭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다툼이 있었고 이삭은 계속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물을 파고 또 파고 또 팠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 주변의 모든 적대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환경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바꾸어 주실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분은 환경은 그냥 두시고 우리를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복입니다.
이삭은 다시 거처를 옮깁니다. 이번에는 브엘세바로 갑니다. 브엘세바는 옛적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도착한 날 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4)
하나님이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시면서 이삭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은 그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처럼 이삭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이삭에게 아비멜렉과 그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그랄에 거할 때 그의 번성함을 보고 그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부와 세력이 커져가는 이삭을 보며,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의 선조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도 이삭과 언약 맺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8-29)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심을 그들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세력이 커진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삶을 볼 때는 어떨까요?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나의 삶을 보고 어떤 결론을 내릴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을 찾아온 아비멜렉을 위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이들은 함께 먹고 마심으로 계약을 맺었고 확증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이삭이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더 높은 자로서 계약을 맺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당시 가나안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아비멜렉 보다 더 힘이 있는 자로서 그와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아비멜렉 일행이 돌아간 날, 이삭의 종들은 새 우물을 찾았는데 이삭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우물의 이름을 ‘세바’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계약을 맺었던 것을 기념한 이름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브엘세바라 부르는 것은 이미 아버지 시대 때부터 불렸던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나고, 26장 마지막에는 에서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합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의 두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는데, 이 일이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며 에서가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는 가나안 족속으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가 비교되는 점이고, 앞으로 있을 갈등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26장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을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창세기의 저자는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오늘 본문의 내용들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들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나타나셔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음을 기록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두 번이 있는데, 모두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떠올릴 수 있는 비슷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비슷한 실수를 했고 같은 아비멜렉이라는 왕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 아브라함처럼 예배했으며, 아브라함처럼 이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누리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저자는 이삭의 이야기를 아브라함과 병행해서 기록합니다. 그래서 26장 시작부터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오고 계속 그 이름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제 이삭에게도 연장되었으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것처럼 이삭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삭도 그의 아버지처럼 실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인정을 받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수 있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주저하게 하며,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그 말씀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도 동일하게 섬기고 있고, 우리도 그분을 따르고 있으며, 그분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믿음 안에서 강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고 그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을 신뢰할 때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두려움 없이 그분과 동행하게 만들지만, 두려움으로 포기하는 것은 그분이 허락하시는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날마다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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