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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고전 명작이라는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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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임연정. \”니체와 헤세의 이분법적 두 세계의 중력에 대하여 – “선”과“악” 그리고 위버멘쉬.\” 니체연구 -.39 (2021): 10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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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줄거리 / By 헤르만 헤세 (작품 분석 포함) – 건축광장

리뷰해 볼 작품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우리나라의 10,20대가 가장 사랑하는 세계문학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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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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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등장인물 분석 – 네이버 블로그

데미안 등장인물 분석. 두 세계의 내용 중에서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구분해 보고, 이 두 세계에 대한 내 생각 정리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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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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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데미안’을 통해서 본 성장의 의미 – 글틴

헤세의『데미안』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낯선 이름으로 처음 발표 … 인간’으로 설정한 에바 부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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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een.munjang.or.kr

Date Published: 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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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데미안’, 이것만 알고 가면 된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로, 아직까지 많은 청년들에게 교과서처럼 추천되는 … 뮤지컬 <데미안> 역시 소설을 원작으로 재창작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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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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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헤르만 헤세)의 소년 시대 이야기

데미안은 죽었지만 내 마음의 내부에는 언제나 데미안의 모습을 닮은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2. 등장인물 분석. (1) 싱클레어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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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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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 – 줄거리부터 인물, 역사, 문학사조 모든 것

이때부터 헤세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 분석에 관한 책에 몰두했으며, 이해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를 출판했다. 1919년 42세의 나이에 <데미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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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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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데미안에 마음의 빚 느껴 마음의 벽 쌓는 …

저항은 환자가 정신분석 중에 잠들어 버린다든지 조목조목 의사에게 따지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나타난다. 진정한 자기인식을 회피하려는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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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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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데미안 줄거리 정리 및 감상문 – 윌리로만

헤르만 헤세 데미안 기본개요. 독일 출신인 스위스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이다 싱클레어가 친구인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정신착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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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dooone189.tistory.com

Date Published: 1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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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데미안 분석

  • Author: 너 진짜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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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9. 2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YPSViQ3AZgc

데미안 줄거리 / By 헤르만 헤세 (작품 분석 포함)

리뷰해 볼 작품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우리나라의 10,20대가 가장 사랑하는 세계문학이라고 하는 데미안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집필되어 1919년 출판된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입니다.

youtu.be/E0mzhrEZwL0

출판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가명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발표해서입니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작가로서의 명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작품성만으로 평가받고 싶었기 때문에 본명을 감춘 것이라고 하는데, 데미안에 드러난 문체가 너무나 헤르만 헤세의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기 내면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10, 20대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등장인물을 소개하면, 주인공은 “싱클레어” 라는 남자입니다. 그의 친구이면서 멘토가 되는 “데미안” 이라는 남자가 등장하고, 싱클레어의 멘토이자 동경의 대상인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 등장합니다.

어릴 때 싱클레어를 괴롭혔던 “프란츠 크로머” , 대학시절 싱클레어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피스토리우스” 도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인데 이렇게 다섯 명이 주요인물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열 살무렵일 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싱클레어는 한 소도시에서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의 자제들이 다닐 수 있는 라틴어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립학교를 다니는 프란츠 크로머를 비롯해 다소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그 아이들에게 세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허풍을 떱니다. 크로머는 그것을 악용해 사실을 알리겠다며 싱클레어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 시작합니다.

그의 괴롭힘은 도를 넘어서 싱클레어의 누나를 데리고 오라는 지경까지 이르고 마는데, 싱클레어는 자신이 가정이라는 밝은 세계를 떠나 크로머로 상징되는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싱클레어의 학교에 데미안이라는 학생이 전학을 오는데 그는 싱클레어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학 학년 위 상급생이었습니다.

또래와는 달리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데미안은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학생이었는데 데미안은 어느날 싱클레어에게 접근해오고, 그의 은밀한 도움으로 크로머는 더 이상 싱클레어를 괴롭히지도 접근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그는 싱클레어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붙은 표식에 대한 것인데 카인의 표식은 사실 특별한 사람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붙인 두려움의 상징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전하는데, 아버지는 그 이야기들이 과거부터 있었던 이단파들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이 견진례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다시 가까워집니다.

그렇게 데미안과 가까이 지내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멍한 상태로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하여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게됩니다.

그는 데미안을 따라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짐을 느낍니다. 싱클레어는 방학이 되면서 다른 도시의 기숙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그는 데미안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서 지냅니다.

그 학교에서 싱클레어는 “알폰스 베트”라는 상급생을 만나는데 그의 꼬드김으로 인해 싱클레어는 방탕한 생활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공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이름을 “베아트리체”로 명명하고 동경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싱클레어는 다시 과거의 모범적인 삶으로 돌아옵니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그리는데, 그리고 나니 그 얼굴이 데미안의 얼굴과 닮았다는걸 느끼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됩니다.

사실 방탕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겁니다.

싱클레어는 알에서 깨어나느 새 그림을 그려 데미안에게 보냅니다. 데미안은 답장으로 싱클레어에게 쪽지를 보내는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우고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의 이름이었습니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교외의 한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피스토리우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면의 성장을 해 나갑니다.

성장한 싱클레어에게 피스토리우스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 버리는데 어느 날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두 사람의 교분은 끝나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싱클레어가 대학에 진학해 다니는 중, 데미안과 재회하게 되는데, 그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데미안의 집에서 에바부인과 교분을 이어가며 이른바 “카인의 표식”을 가진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들은 내면의 자신을 발견하기 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싱클레어의 행복했던 시절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끝나버리게 되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각기 전선으로 투입됩니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후송된 곳에서 데미안을 최종적으로 목격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 됩니다.

이 작품이 내면의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만큼, 내면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작가는 내면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직면 해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첫 장에서 어린 싱클레어는 가정으로 대표되는 자신이 알고 있던 밝은 세계가 아닌 크로머로 대표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 다른 세계에 끌리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처음으로 만난 데미안은 모든 인간에게 두가지 세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싱클레어는 그 다른 세계를 외면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선한 세계로 도피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싱클레어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작점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세계가 있음을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소개한 “아브락사스”라는 신은 선한 속성과 악마적 속성 모두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존재를 소개하면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세상에는 두 가지 속성이 모두 있음을 인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스스로에게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직면하라고 알려 준겁니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시작점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성장이라는 것은 가혹한 외로움을 수반하는 것 이라는 점입니다. 작품속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 등을 적재적소에서 만나면서 내면의 성장을 거듭하게 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결국 혼자가 됩니다.

성장을 이루기 위새서 누구에게나 조력자가 필요하지만, 결국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을 보여주는 겁니다.

자기의 성장을 도왔던 피스토리우스를 떠나는 싱클레어의 심정은 가슴아픈 것이었지만,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한동안 나를 인도했지만,

나는 인도자인 그를 넘어 그를 두고 떠나야 했다.”

결국, 싱클레어, 피스토리우스, 데미안 모두 성장해야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나홀로 알을 깨야하는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음 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미안 등장인물 분석

데미안 등장인물 분석

두 세계의 내용 중에서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구분해 보고, 이 두 세계에 대한 내 생각 정리를 해보자.

-싱클레어가 처음에 생각한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의 구분은 간단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우리 집은 선의 세계를 상징하며, 집 밖에서 벌어지는 온갖 세상일들과 가는 불행 등은 악을 상징한다. 악의 세계는 크로머라는 소년이 대표하는 세상으로 그 소년은 가난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비열한 짓이라도 한다. 그러나 크로머와의 사건을 통해서 싱클레어는 악의 세계라는 것이 단순하게 집안/밖으로 구별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상 악이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번뇌에서 발생한다.

싱클레어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크로머처럼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악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정신 상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해있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도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로머 역시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쁜일을 하면서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이라는 것은 단지 부족함이 ㅇ벗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정신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라는 글귀를 성장 소설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기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새로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또다른 세상은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청소년도 알을 깨는 새와 같다. 미성숙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는 이전의 불완전한 지식, 불완전한 인격등을 파괴하고 진정한 삶의 목표와 진리를 찾아야만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알을 깨는 새처럼 의심없이 받아들이던 모든 생각들을 깨뜨리고 한 사람의 완벽한 성인으로 자라나간다. 이처럼 미성숙한 존재가 성숙한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훌륭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재목별로 전체적인 줄거리 요약하기

두 세계=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열 살의 싱클레어는 어느 날 불량스런 소년들과 어울리게 된다. 서로 자신의 악행을 영웅적으로 떠드는 분위기에 휩쓸려 싱클레어는 자신이 물방앗간 집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던 일을 꾸며서 말한다. 그 일을 빌미로 하여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낸다. 싱클레어는 저금통의 돈을 훔쳤지만 크로머가 요구하는 돈을 모두 채우지는 못하여 계속 크로머의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카인=나(싱클레어)는 새로 전학 온 데미안 덕분에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데미안은 성경속의 인물 카인에 대하여 이상한 얘기를 나에게 해 준다. 카인은 단순히 살인자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에 빠진다.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데미안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떄 양 옆에 있던 도둑들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한다. 죽기 직전 자기의 죄를 회개한 도둑보다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던 도둑 쪽이 훨씬 더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나는 집을 떠나 성00시의 김나지움에 진학한다. 나는 알폰스 벡이라는 학생과 어울려 술집 출입을 하는 등 타락의 길을 걷게 되고 퇴학 당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어느 봄날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에게 니체의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마음으로만 그리는 상태가 된다. 나는 종이에 소녀의 얼굴을 그리려 했지만, 그 그림은 오히려 데미안의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새로운 종이에 대지를 뚫고 나오려는 새(매)의 모습을 그린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다고 적힌 쪽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새가 날아가는 신의 이름이 아프락사스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는 아프락사스라는 신에 대한 자료를 찾으러 다닌다. 교회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아프락사스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야곱의 싸움=피스토리우스는 아프락사스는 신이면서 사탄이기도 하며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피스토리우스는 자실이 과거에 신학도였고 신부가 될 했으나, 결국은 아프락사스라는 이단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말도 해 준다. 나는 그와 함께 아프락사스에 대하여 탐구한다. 학생시절이 끝나고 피스토리우스와의 관계도 끝난다. 피스토리우스는 나에게 있어 운명으로 가는 한 구간의 길잡이였음을 깨닫는다.

에바부인=나는 H대학에 진학하고 어느 저녁 데미안과 우연히 재회한다. 나는 데미안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된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평소에 그리던 이상적인 여인이었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이마에 카인의 표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나는 에바 부인, 데미안과 함꼐 종교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종말의 시작=전쟁이 일어나 데미안은 장교로 참전하고 되고, 얼마 후 나 역시 전쟁에 참전한다.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던 어느 날 날아오는 폭탄 속에서 에바 부인을 닮은 여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상당해 누워있는 나의 옆에 데미안이 누워서 말을 건넨다. 데미안은 나에게 작별의 인사(키스)를 하고 떠난다. 의식을 찾은 나는 나 자신이 데미안과 완전히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등장인물의 성격 파악하기

싱클레어-어리고 순수한 소년에서 반항적이고 사색적인 청년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

데미안-싱클레어의 지적 성장을 도와주는 인물. 신비스런 분위기를 풍기며 소년이지만 성숙한 면모를 갖고 있다.

아프락사스-어둠과 밝음, 남성과 여성,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신

피스토리우스-원래는 신부가 되고자 했던 신학생이었으나, 카톨릭 교의에 의문을 품고 압락사스라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인물.

에바 부인-싱클레어에게 있어 여신과도 같은 존재, 이상적인 어머니상, 여인상을 보여준다.

베아트리체-싱클레어가 우연이 공원에서 마주친 소녀. 싱클레어는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지만 스스로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아직 성숙한 여신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분석

(1) 싱클레어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독심술에 빠져 인간의 영혼에 대해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소년이다. 소년 시절을 밝고 어두운 두 세계의 영향 밑에서 자라면서 자기 형성에 힘쓴다. 라틴어 학교 재학 시절에 불량 소년 프란츠 크로마의 유혹에 빠져 정신적인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비스런 학우 막스 데미안의 도움으로 그것을 벗어난다.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 음악가 피스토리우스의 영향으로 차차 확고한 자아의 길을 걷게 된다.

(2) 막스 데미안 – 에바 부인의 아들로 개성이 강하고 성숙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이상적 인간상이다. 매사에 신비스런 인력과 명철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으며 유혹에 빠진 싱클레어를 도와주고 그에게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아의 발견 등을 제시해 주어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에바 부인 – 데미안의 어머니로 한 여인의 몸으로 여성적인 매력과 원초적인 모성의 힘을 아울러 갖춘 신비의 여인이다. 이성에 눈뜬 싱클레어의 연모의 대상이 되나, 깊은 정신적인 예지를 발휘해서 잘못 빠지기 쉬운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4) 프란츠 크로마 – 하층 계급인 양복점 주인 아들로 태어난 불량소년으로, 성격이 거칠고 악의 상징 같은 소년이다. 어린 싱클레어를 유혹하여 악의 길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의 위협은 데미안의 출현으로 방해를 받는다.

(5) 피스토리우스 –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목사 집안에 태어난 청년이나, 일찍부터 신비적인 사상을 체득하여 싱클레어의 친구가 된다. 싱클레어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6) 크라우어 – 싱클레어의 동급생으로 섹스와 금욕에 고민하다가 자살 미수까지 저지르는 인물이다.

(7) 아프락사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관례를 지니는 일종의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없이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 존재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한다.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서 본 성장의 의미 – 문학광장 문장 글틴

헤세의『데미안』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낯선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에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맞먹는 파문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멋진 말로 더욱 널리 알려진 이 성장소설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대략 열 살에서 스무 살까지 이르며 겪는 내적 방황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지요.

빛과 어둠, 두 개의 세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순진무구하게 자란 소년 싱클레어는 세상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인식합니다. 싱클레어가 파악하는 빛의 세계란 ‘가정’이자 곧 ‘질서의 세계’로서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관용과 선의, 사랑과 존경, 성경 말씀과 지혜”가 가득한, 약간은 따분하지만 평화로운 낙원입니다. 여기에서도 물론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죄악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수로서 회개와 용서를 통해 언제든지 다시 밝음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되는, 즉 ‘낙원추방 이전의 세계’이지요.

반면에 어둠의 세계란 ‘가정 밖’의 세계이자 하녀와 술주정꾼들의 세상, 곧 혼돈의 세계로서 “귀신, 추문, 끔찍하고 알 수 없는 사건, 도살장, 감옥소, 술주정꾼, 싸우는 여자, 출산하는 염소, 쓰러진 말, 강도, 살인, 자살자들의 세계”입니다. 그곳은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 올 수 없는 ‘낙원추방 이후의 세계’로서 여기에는 죄책감과 절망뿐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뭔가 설레고 피끓게 하며 유혹하는 마성의 힘이 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가 파악하는 이 두 세계를 헤세는 『데미안』 이후의 작품인 『싯달타』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더이상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 “이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서성이며 방황하는 것은 비단 싱클레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겠지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싱클레어도 “내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모든 삶과 사색의 문제”라고 고백합니다.

이야기는 싱클레어가 ‘어둠의 세계’에 속하는 프란츠 크로머라는 소년에게 단지 기죽기 싫은 마음에서 “사과를 훔친 적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싱클레어에게는 성서에서 뱀의 유혹에 의해 저지른 최초의 ‘원죄사건’(原罪事件)에 해당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빛의 세계에서만 사는 아버지보다 낫다는 기쁨과 희열도 싹트지요. 돈을 요구하는 크로머에게 시달리던 싱클레어는 하는 수 없이 저금통에서 돈을 훔치게 되고, 죽음과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이때 데미안을 만납니다.

데미안은 낙원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있던 싱클레어에게 “어른처럼 낯설고 성숙하며”, “너무나도 우월하고 냉정하고”, “의지에 가득찬” 상급생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강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 적어도 싱클레어에게는 – 결점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인간으로 보입니다. 데미안은 크레머로부터 싱클레어를 해방시켜주고 그의 ‘인도자’가 되지요. ‘어둠의 세계’에서 나온 뱀을 쫓아준 거지요. 그리고 세상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인정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칩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이 졸업을 하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고통스러운 내적 방황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요. 그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서 떠들며 영웅 행세도 하고, 독설가로 행동하며, 방탕한 생활로 빚을 지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위기에까지 놓입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어둠의 세계’에 속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아름답고 청순하며 “현명한 소년의 얼굴을 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를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빛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둠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갖게 된 거지요.

이즈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메시지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입니다. 아브락삭스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함께 소유하고 지배하는 신이지요. 이 메시지를 통해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반쪽만의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반쪽에 대한 동경과 함께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편협한 세계를 깨고,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이 함께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싱클레어는 꿈을 꾸는데, 이 꿈을 통해 아브락삭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꿈속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안긴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지요. 데미안과도 비슷하고 베아트리체와도 비슷합니다. 이것이 아브락삭스의 모습인데, 훗날에야 싱클레어는 그것이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임을 알게 되지요. 꿈속에서 그녀와 나눈 포옹은 “깊은 행복감이면서도 죽음의 공포, 무서운 가책과 끔찍한 죄가 섞인 것”이었습니다.

이 꿈을 통해 싱클레어는 아브락삭스의 본질을 깨닫는데, 그것은 빛과 어둠, 동물적 본능과 정신적 숭배가 뒤섞인 것으로서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것이며, 성스러운 것과 추한 것이 서로 얽히고, 깊은 죄악이 여린 순진무구에 의해 전율하는 것”이지요.

성장의 진정한 의미

우리는 여기에서 헤세가 ‘완전한 인간’ 또는 ‘성숙한 인간’으로 설정한 에바 부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하는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상으로 보면, 헤세가 창조한 에바 부인은 다분히 모성적이며 동시에 부성적인 존재이지요. 모성적인 것이란 감성적인 것, 곧 따뜻함이고, 음식이며, 만족과 쾌락, 자유와 안전이고, 부성적인 것이란 이성적인 것, 곧 지식이고 법률이며 질서와 책임, 훈련과 모험입니다. 따라서 『데미안』의 ‘에바 부인’, 곧 정신분석학에서 ‘성숙한 인간’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도 되고 동시에 아버지도 되어야 한다는 것, 즉 감성과 이성, 본능과 정신, 쾌락과 고통, 자유와 책임 그리고 안전과 모험을 동시에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그의 저서『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그들의 모습들을 자신의 내면에 간직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우리의 내면 안에 들어와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성적 양심”(父性的良心), 어머니의 모습을 “모성적 양심”(母性的良心)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성적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다시 말해 부성적 양심은 “……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모성적 양심은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자신에게 말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부성적 양심을 통해 복종, 성실성, 절제, 인내, 책임 등을 배우고, 모성적 양심을 통해서 자위, 자존심, 자유 등을 배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에 모성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부성적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성적 양심에 의해 내적으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종용하거나 꾸짖는 부성적 양심에 의해 외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거지요. 그 결과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고,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장의 진정한 의미’이지요.

“용감히, 그리고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음에 몸을 맡겨라.”

정신분석학적으로 ‘성숙한 인간’이란 에바 부인처럼 자기 내면 안에서 대립하는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룬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만이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 그 껍질을 벗겨서 진정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일’ 곧 ‘자기실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이 일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뱀이 허물을 벗고 성장하듯” 몇 번이고 주어진 자기를 부수고 죽을 것 같은 절망과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도 그러한 절망과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기실현을 완성해냈던 거지요.

헤세는 그렇다고 이러한 성장과 자기실현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분들에게 당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위로합니다. “신이 우리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시도 남겼습니다.

모든 꽃들이 시들듯이

청춘이 세월 속에 무릎을 꿇듯이

인생의 모든 단계는 지혜를 꽃피우지만

지혜도 덕망도 잠시일 뿐

영원하지 않다.

그러하니,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이별을 준비하고 새 출발하라.

용감히, 그리고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음에 몸을 맡겨라.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마술적 힘이

우리를 감싸, 사는 것을 도와주리니

<단계>, 『유리구슬의 유희』 中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데미안’, 이것만 알고 가면 된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데미안’, 이것만 알고 가면 된다! 올댓아트 김지희 인턴 [email protected]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고전 작품들은 종종 이름은 익숙한데,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로, 아직까지 많은 청년들에게 교과서처럼 추천되는 작품입니다. 방탄소년단이 의 설정으로 뮤직비디오를 구성한 것처럼, 은 현대적으로 활발하게 재창작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역시 소설을 원작으로 재창작된 작품입니다. 90분의 시간 동안 소설의 내용이 노래와 함께 무대에서 펼쳐집니다. 다소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두가 다 알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은 무슨 내용이지? 싱클레어의 자아 찾기 대모험

은 소년 싱클레어가 유년시절에서부터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주어진, 따뜻한 삶에 대해 싱클레어는 어릴 적부터 위화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세상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쯤, 싱클레어는 동네의 문제아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히고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크로머의 괴롭힘이 도를 넘을 때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신비함을 가지고 있는 어른스러운 소년,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도와주게 됩니다. 그 이후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친구가 되어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법칙들이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그 사이에 아름다운 베아트리체,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되고,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고찰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을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썼습니다. 소설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이미 유명한 작가였는데요, 이 작품을 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을 쓰고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상의 작가가 당선되는 일도 생겼습니다. 문체를 통해, 사실은 헤르만 헤세가 작가라는 것이 알려지자, 4쇄부터 헤세는 자신의 이름으로 을 출판했습니다.

헤세는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헤세는 전쟁포로 보호 센터를 설립하고, 전쟁 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출판사까지 만들어 를 출판할 정도였습니다.

◇작품에서 알려주지 않은 의 설정

소설과 뮤지컬의 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카인과 아벨’인데요. ‘카인과 아벨’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으로 여겨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인 카인과, 그의 남동생 아벨은 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하지만 신은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습니다. 카인은 화가 나 아벨을 죽이지요. 카인은 신의 저주를 받고, 영원히 떠도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카인은 죄를 깨닫고 후회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합니다. 신은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카인에게 표식을 줍니다.

학교, 부모님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을 죄인으로 가르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이 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왜 신은 그에게 ‘표식’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했는지 반문합니다. 데미안은 이런 식으로 싱클레어의 상반된 두 세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데미안이 추구하는 신 ‘압락사스’는 이러한 다면성의 결정체입니다. 압락사스는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과 수성,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입니다. 원래 압락사스는 그리스의 영지주의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종파 중 하나)에서 신의 비밀의 이름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압락사스를 악마로 여겼습니다.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압락사스는 새의 형상으로 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이 종교적으로 강한 색깔을 띄고 있다는 건, 등장인물의 이름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Eva) 부인’의 이름은 영어로 이브입니다. ‘데미안(Demian)’이라는 이름 역시, 독일어로 악마를 뜻하는 데몬(Damon)을 연상시킵니다. 반면, ‘싱클레어’라는 이름은 실존인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생의 후반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보냈던 독일의 천재 시인, 휠덜린이 의지했던 친구가 바로 싱클레어였습니다.

◇싱클레어, 데미안, 크로머,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이 모든 배역을 단 두 사람이 연기한다?

뮤지컬 은 젠더프리 2인극으로, 모든 배역을 전 캐스트가 돌아가며 연기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데미안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날에는 싱클레어를 맡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인물의 대사를 배우들이 외워야 합니다. 배우들은 모두 싱클레어와 데미안인 동시에, 모든 인물인 셈입니다.

소설 은 결말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하나로 합쳐지면서 마무리됩니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본 것입니다. 뮤지컬 은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로 결말이 납니다. 하지만 소설과 뮤지컬 모두 자아를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소설은 첫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싱클레어가 만나는 인물들은 싱클레어에게 타인이기도 하지만, 싱클레어와 연결된 자아이기도 합니다. 2인극으로,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맡으며 연기하는 것은, 사실은 이 모든 인물들이 싱클레어의 자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형식적으로 보여줍니다.

뮤지컬 은 원작만큼이나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관객들을 싱클레어의 여정에 초대합니다. 여러 인물을 연기하는 배역이 헷갈릴까 겁이 난다면, 원작 소설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싱클레어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있는 데미안을 찾으러 떠나볼까요?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헤르만 헤세, 전영애 옮김, 민음사)

(이케우치 오사무 외, 고필곤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뮤지컬

2020.03.07 ~ 2020.04.26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공연 시간 90분

만 7세 이상 관람가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김유영),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 출연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헤르만 헤세)의 소년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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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헤르만 헤세)의 소년 시대 이야기

데미안을 읽고나서(느낀점)

안정적이고 선한 가정에서 자란 싱클레어에게 프란츠 크루머에 의해 악의 길로 닿아 이러저런 방황을 하다가 막스 데이안에 의하여 새로운 이상을 꿈꾼다. 독일 문학이란 무언가 딱딱한 문장을 기대하며 어색하게 책을 잡은 나는 2번을 읽고 나서야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여린 싱클레어가 세상에 부딪치며 현실을 직시하고 데미안에 의해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신비의 여인이자 베아뜨리체인 에바 부인, 싱클레어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피스토리우스, 처음으로 거짓말 한마디에 악의 길로 이끈 프란츠 크루머 등 싱클레어인 헤르만헤세는 1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젊은이들을 열광으로 이끈 작가이다. 자전적 소설이라 쉽게 생각하기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는일이 바빠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계속 읽을수록 나 자신의 이상과 현실과 차이 및 독일의 시대적 모습까지도 뇌리에 남는 작품이었다.

1. 줄거리

(1) 작품 전체의 구성과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① 프롤로그 ② 제1장 두 세계 ③ 제2장 카인 ④ 제3장 고독 ⑤ 제4장 베아트리체 ⑥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⑦ 제6장 야곱의 싸움 ⑧ 제7장 에바 부인 ⑨ 제8장 종말의 시작

(2) 고향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10살 때로부터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때 나의 생활 속에는 희망의 길로 이끌어 주는 밝은 세계와 악으로 통하는 어두운 세계가 공존해 있었다. 희망의 길로 이끌어 주는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곳은 아주 좁은 세계였지만 미래로 통하는 곳, 선이 길이 있었다. 악으로 통하는 어두운 세계는 하녀와 견습 직공의 세계였다. 여기에는 장래를 내다볼 보는 눈과 욕구가 다른, 추악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어두운 세계에 끌려 프란츠 크로마와 만나게 되었고 그의 명령에 따라 집안의 돈을 훔쳐내기도 했다. 나는 여러 번 악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구원자로서의 데미안이 내게 나타났고 그는 나의 고민을 알고 나를 어둠의 세계로부터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데미안과 헤어져 상급 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 나는 어둠의 세계에 다시 빠지게 되었다. 데미안의 편지가 와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했고 대학에 진학한 후 다시 데미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이 나고 데미안과 나는 전쟁에 참여하여 부상을 당했다. 데미안은 죽었지만 내 마음의 내부에는 언제나 데미안의 모습을 닮은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2. 등장인물 분석

(1) 싱클레어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독심술(讀心術)에 빠져 인간의 영혼에 대해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소년이다. 소년 시절을 밝고 어두운 두 세계의 영향 밑에서 자라면서 자기 형성에 힘쓴다. 라틴어 학교 재학 시절에 불량 소년 프란츠 크로마의 유혹에 빠져 정신적인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비스런 학우 막스 데미안의 도움으로 그것을 벗어난다.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 음악가 피스토리우스의 영향으로 차차 확고한 자아(自我)의 길을 걷게 된다.

(2) 막스 데미안 – 에바 부인의 아들로 개성이 강하고 성숙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이상적 인간상이다. 매사에 신비스런 인력(引力)과 명철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으며 유혹에 빠진 싱클레어를 도와주고 그에게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아의 발견 등을 제시해 주어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에바 부인 – 데미안의 어머니로 한 여인의 몸으로 여성적인 매력과 원초적인 모성의 힘을 아울러 갖춘 신비의 여인이다. 이성에 눈뜬 싱클레어의 연모의 대상이 되나, 깊은 정신적인 예지를 발휘해서 잘못 빠지기 쉬운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4) 프란츠 크로마 – 하층 계급인 양복점 주인 아들로 태어난 불량소년으로, 성격이 거칠고 악의 상징 같은 소년이다. 어린 싱클레어를 유혹하여 악의 길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의 위협은 데미안의 출현으로 방해를 받는다.

(5) 피스토리우스 –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목사 집안에 태어난 청년이나, 일찍부터 신비적인 사상을 체득하여 싱클레어의 친구가 된다. 싱클레어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6) 크라우어 – 싱클레어의 동급생으로 섹스와 금욕에 고민하다가 자살 미수까지 저지르는 인물이다.

(7) 주제 : 자기 발견을 통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

3. 작품 해설

(1) [데미안]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재출발을 다짐한 헤세의 제2의 처녀작이다. 그래서 헤세는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싱클레어라는 익명을 썼다. 지금까지의 그의 명성에 기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의에서 낸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이 말한 것처럼 “우뢰와 같은 강한 감명을 주고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아, 무명 작가 싱클레어는 일약 베를린의 신인 문학상인 폰타네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헤세가 그 작가라는 것이 평론가 코로디에 의해 밝혀져 다음 해부터는 헤세의 작품으로 바뀌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싱클레어라는 이름은 헤세와 동향인인 광기의 천재 시인 휠더린의 친구로 독일에서 공부한 스코틀랜드계의 동명의 작가에게서 따온 것이다. 한편, “데미안”은 악령에 붙잡힌 것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마력을 지닌 데미안의 인도로 싱클레어 소년은 운명을 개척하고자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걸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신을 비롯해서 기성의 여러 가지 것, 특히 혼을 잃은 유럽 문명이 철저하게 비판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데미안]은 헤세 자신과 함께 유럽 문화가 거듭 나기 위해서 앓지 않을 수 없었던 진통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1919년 ‘싱클레어 어느 소년 시절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장편 소설이다. 데미안에 의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구축해 가는 과정의 상징적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교양소설(敎養小說)로, 한 인간의 자기 발견과정을 추구한 것으로 한 소년이 청년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내부에 두 개의 상반된 세계 속에서 괴로워한다. 신앙심이 깊고 예의 바른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은 선의 세계와 하녀·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주정뱅이·강도 등의 악의 세계가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내면에 상반된 두 개의 혼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지만 데미안으로부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는 메세지를 받고 자기 인식의 눈을 뜨게 된다.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운명의 목소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3) 아프락사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관례를 지니는 일종의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없이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 존재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한다.

(4) 성장소설에 대한 간단한 풀이

① 성장소설 –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을 가리킨다. 지적·도덕적·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 아이 혹은 소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가 자아의 미숙함을 닫고 일어서 자신의 고요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문화 인류학자들은 통과제의·통과의례·성인 입문식 등의 용어로 표현한다. 그 대표적 작품이 헤세의 <데미안>인 것이다.

②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소설 – 자아의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미성숙기의 주인공이 일련의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에서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젊은 주인공이 성숙한 세계에 도달하도록 상반된 세계가 흔히 전제된다. 신화적 낙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순진함과 성숙, 어둠과 밝음의 세계가 대립되며 선 – 악, 미 – 추, 삶 – 죽음 등이 중심이 된다.

③ 교양 소설 – 주인공이 유년기로부터 여러 가지 경험을 거쳐, 흔히 하나의 정신적 위기를 거쳐 성숙과 이 세상에서의 자기의 동일성과 역할에 대한 인식에 이르는 동안에 보이는 주인공의 정신과 성격의 발달을 다루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흔히 교양 소설은 교육 소설과 비슷한 용어로 사용된다.

4. 작품 <데미안>의 특징

(1) 내용의 측면 – 싱클레어는 10세 때 선과 악의 세계 속의 혼란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다. 이 때 구원자로서 데미안이 나타났고 그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과거를 깨고 보다 발전된 삶으로 각성하게 된다.

(2) 구성의 측면 – 서장(序章)과 8장으로 되어 있다. 제1, 2장에서는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상적으로 그려 먼 훗날의 인생의 흐름과 함축성 있게 암시하고 있고 제3장에서부터 독심술(讀心術)의 꿈의 해석이 수시로 인용되고 신비로운 환상적 여운이 전편에 흐른다.

(3) 표현의 측면 – 작가의 젊은 시절의 초상이라고 할만큼 영혼의 성숙과정을 자전적(自傳的)으로 그려냈다. 신비주의적 동양 정신이 엿보인다.

5. 작가 탐구

(1)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13세 때 선언하면서 그가 다니던 신학교를 뛰쳐나온 천부적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는 정신적 방황과 혼미를 거듭하면서도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와 글을 썼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수채화처럼 펼친 자전적(自傳的) 소설이다. 소년 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그의 고향 슈바벤을 배경으로 절실하게 묘사했으며, 엄격한 교육제도 아래서 희생되는 학생들의 창조적 개성을 폭로했다.

(2) 헤세가 이 소설에 대해서, “이 책에는 지난날 내가 체험한 어두운 생활의 한 조각이 숨겨져 있다.”고 고백했듯이 이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작가는 헤르만 하이르너와 한스를 1인 2역하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은 “지치면 안돼요, 지치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테니까”라고 친절한 체 하면서도 자기 잇속을 채우는 신학교 교장의 말에서 따온 곳이다. 이는 또한 최초의 연애 체험에서 엠마가 공격에 나서자 ‘수레바퀴에 깔린 달팽이처럼 더듬이를 감추고 껍질 속으로 파고들었다.’고 한 주인공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은 한편,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죽고 싶을 만큼 비참한 기분으로 하루 온종일 시계만 훔쳐보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조그만 톱니바퀴를 문질러 대는’데 이 톱니바퀴 또한 하나의 수레바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한스는 학교와 사회의 ‘수레바퀴 밑’에서 ‘죽음의 그림자에 점차 끌려가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 가련한 소년의 운명에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동양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작가

[데미안]의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는 동양인의 심성에 더 어울리는 작가다. 그의 부친은 선교사였고, 모친은 동양학자의 딸로서 인도에서 출생한 경건한 여인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동서양의 정신을 꾸준히 탐색하여 훗날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노자·공자·역(易)·선(禪) 등을 섭취하여 소위 ‘세계신앙’이라는 자신의 ‘도’에 도달했다.

그는 현대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에는 줄곧 인간 존재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이원성의 대결, 서유럽 문화의 몰락과 동양적인 신비에의 동경, 영혼의 자유와 인간성의 고귀함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추구한 것은 무엇보다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다 같이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통일과 조화로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지극히 서정적이며 전원적인 시풍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며 ‘내면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구도자적(求道者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삶의 내실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것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도정이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헤세는 내면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뜨겁게 침잠하며 지혜의 핵심을 예감한 사람이었고, 자기 영혼과의 대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후기에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는데, 이는 가정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인간의 삶을 자신의 내면의 성찰로 본 그의 인생의 목표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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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인물, 역사, 문학사조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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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 – 줄거리부터 인물, 역사, 문학사조 모든 것

데미안 국내도서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안인희역 출판 : 문학동네 2020.01.08 상세보기

1. 역사 ․ 전기 비평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독일 슈바아멘의 작은 마을 칼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북독일계의 러시아인으로 선교사였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영어, 프랑스어는 물론 산스크리트어, 벵갈어 등 30여 개 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분으로 헤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헤세는 어린시절부터 다루기 쉬운 조용한 성품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가 기록한 일기에 의하면, 3살 때부터 남다른 체력과 지력을 갖추고 있어서 부모들의 속을 태웠다고 한다.4살도 채 못 되어 오늘날의 유치원과 같은 어린이 학교에 들어갔으나, 이대 벌써 선생님과 충돌이 있었다. 헤세는 감독이니 권위니 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품을 갖지 못했다. 헤세가 학교를 싫어하게 된 것은 그의 고집스런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엄격하고 획일적인 교육의 탓도 컸다. 아무튼 학교라는 틀은 그의 성격에는 걸맞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늘 이상야릇한 충동이 악마처럼 맴돌았으며 그의 부모들은 그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해야 만했다. 마음 한 곳의 울적한 응어리를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 헤세가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히고, 나아가서 선생님에게까지 충돌을 일으킨 것도 천성적인 그의 맘속에 내재한 충동 때문인지도 모른다. 10살 때에 라틴어 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후 바올브론 신학교에 목사 지망생으로 입학했다.<수레바퀴 밑에서>란 작품에 거의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듯이 이 중세적인 수도원 학교는 감수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한 소년에게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신학교 특유의 엄한 규율과 분위기에 절망한 나머지 1년 만에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열중했으며, 동급생가운데서 시를 낭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존경하는 마을브론 식학교의 바우어 교장은 엄하면서도 유모가 있는 참다운 교육자로 헤세는 그를 존경했다. 단지. 그 마음속의 폭풍을 이기지 못해 신학교를 뛰쳐나오고 나서 그는 방황의 길로 들어선다. 15살 때 김나지움(인문 중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전 과목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얻었으나 수학과 물리학과 같은 과목은 따라갈 수 가 없어 교사들의 눈총을 받곤 했다. 학업에 흥미를 잃은 그는 밤늦게까지 놀아나기가 일쑤였고, 그 결과 빚을 지기도 했다. 이때 하이네와 투르게네프를 탐독하며, 시작을 유일한 구원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11개월 만에 여기서도 퇴학을 당했다. 그는 광자나 다름없었다. 교과서를 팔아 권총을 사는 등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하는 한 편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다. 결국 그는 퇴학을 당했으며 방황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당시 헤세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로 희망을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오직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만이 그를 지켜주고, 파멸에서 구해 주었다. 그는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17세 때 철공장의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 나이또래의 애들이 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국비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로 내 몰리게 되었다. 1895년 10월, 18세 대 대학촌 튀벵겐의 헤겐하우어 서점에서 일자를 얻었다. 남들처럼 마울브론 신학교를 졸업만 했더라면 튀벵겐의 신학부에 들어가 국비로 공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헤세는 그 속 학생들에게 책을 파는 하찮은 견습 점원의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 진종일 서서 책을 팔고 짐을 꾸리고 발송을 하는 하면 고서를 정리해야 했다. 그의 진지한 문학 수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누이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아버지의 서가에 꽂혀있는 세계명작을 읽기 시작했다. 헤세는 하루의 고된 일과가 끝나면 애써서 책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괴테의 책을 애써 읽었다. 작은 문학회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는 이 곳에 서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고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처녀시집 <로맨틱한 노래>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899년이다.

1899년 그의 나이 22세 때 자비로 산문 소품집<한밤중의 한 시간>을 출판하고 가을 무렵에 바젤의 라이히 서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후 스위스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24세 되던 1901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25살 때 그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마리가 사망하면서 그는 큰 슬픔에 빠져 지낸다. 그 슬픔으로 그는 두 번째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다니던 라이히 서점을 그만둔다.1904년 그가 27세 땡에 발표한 <페터 카멘친트>라는 장편소설이 나오면서 그는 명실 공히 작가로서 등단하게 된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 큰 반향을 일으켜 신진작가의 선두에 서게 된다. 그 해 9세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리와 결혼하고 라인강변 근처에 있는 농가를 빌어 자연을 벗 삼아 창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부인과 사이가 나빠져 권태를 느낀 그는 싱가포르, 수마트라, 실론 등을 여행한 1911년부터 유럽 각지를 떠돌며 작품을 쓰는 다채롭고 험난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29살 때 피셔 서점에서 <수레바퀴 밑에서>를 출판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과거 신학교시절의 방황하던 자신을 한스라는 인물로 그려내었다.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헤세는 독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전과 함께 베를린 영사관에 출두하여 병역을 지원했으나 신체 조건상 군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말았다. 처음 그는 이 전쟁이 독일로서는 불가피한 전쟁이라고 보고 심적으로 독일 편에 섰으나, 8월에 들어서면서 독일 군이 벨기에로 침략해 들어가자 독일정부에 대해 비판적 자세로 돌아섰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9)]독일 학자와 작가들이 편협한 애국주의를 내세워 적국 타도를 선동하는 언동에 광분하는 자태를 보이자 헤세는 1914년 11월 3일 <새 취리히 신문>에 <친국이여, 제발 그쳐다오!>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자 독일 인문계는 헤세를 조국의 배반자, 얼치기라고 매도하고 비난과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독일 포로 위문 사업에 너무나 헌신한 결과 헤세는 과로하여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셋째 아들 마틴이 뇌막염을 앓아 수년간 그 간호도 겸해야 했고, 1916년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내 마리아의 정신 질환은 악화되어 1918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헤세 자신도 노이로제에 걸려 1916년부터 자주 루페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무면의 신인 싱클레어는 베를린 시의 ‘폰타네 문학상’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헤세가 실제 작자임이 밝혀지자 상은 회수되고 <데미안>은 헤세 작으로서 정식 간행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민이요, 조국을 배반한 작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나치스들의 집요한 박해와 추적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결국 그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23년에 영원한 스위스 국민이 된다. 35세가 되기까지 그는 중편<차안>,<돌아서 가는 길>,<이웃들>을 출판했으며 시집<도상>을 출판했다.

1912년 36살의 나이에 인도기행문 <인도에서>를 출판하였다. 이듬해 화가 소설 <로스할데>를 출판했으며 7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19년 종전될 때까지 베른의 독일 포로 위문 사업국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곳 체험을 바탕으로 신문에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여 저널리즘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출판금지 및 저서 판매 금지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몰렸다. 그는 같은 계층의 지식인들로부터 반역자, 변절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았으며 생활고와 정신적인 압박으로 몹시 허약해졌다. 1915년 38살의 나이에 소설<크놀프>와 소설집<길가>,시집<고독한 자의 음악>을 출판하였으며 절친한 교우 로망 롤랑의 방문을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 요한네스가 사망했으며, 막내 마르틴이 중병으로 몸져눕고 아내마저 정신병이 악화되면서 헤세는 극도의 정신적인 장애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 분석의인 랭의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헤세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 분석에 관한 책에 몰두했으며, 이해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를 출판했다. 1919년 42세의 나이에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했으며 이 소설에 주어진 폰타네 상을 사양했다. 수상집 <작은 정원>,동화집<메르헴>,평론<차라투스트라의 재래>를 출판했다. 이 해 가족과 헤어져 남스위스의 몬타뇨라로 옮겨 이후 그 곳에서 안주하면서 갑자기 화필에 손을 데기 시작했다. 그는 그 후 자신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1922년 45세의 나이에 <싯다르타>를 출판하면서 동양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게 된다. 그 이듬해 별거중인 마리아 부인과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 봄부터 정기적으로 취리히 근교에 있는 바덴 온천에 갔다.1924년 47세의 나이에 스위스 여류 작가의 딸인 루트 벵거와 결혼을 한다. 그 후 그는 토마스 만을 방문하거나 겨울엔 취리히에서 거처하면서 왕성한 창작을 한다.1933년 독일이 나치스 시대로 접어들기 전까지 그는 장편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동방 여행>을 출판했으며 단편집<작은 세계>와 시집<밤의 위안>평론집<세계 문학 안내>를 출판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헤세는 40세가 되면서 매일 그림을 그리다 시피하면서 소일했다. 헤세가 주로 그린 것은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스위스의 평온한 시골풍경과 몬테뇰라 근교의 자연 풍경이었다. 헤세의 그림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다. 그가 그런 대상을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인간에 지치고 인간세계에 염증을 느낀 그가 인간을 화면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묵묵히 다정히 서있는 나무며, 떠가는 구름이며, 파랗게 빛나는 호수를 그렸다.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독일 미술계를 풍미할 무렵 헤세는 당신의 시대상황과는 달리 동화나 유토피아적 꿈과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다. 헤세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잊었으며 현실을 극복하였다.

1934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그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굽히지 않는 전쟁에 대한 반대와 순수한 인간에의 사랑, 내면의로의 탐구,그는 결국 나치스에 의해 ‘바람직스럽지 않은 문학’으로 인정되어, 종이 배급을 정지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호구책으로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커다란 정신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50세 무렵 헤세는 이전의 생활에서 탈피할 전환점을 찾게 되었다. 헤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자신과 주위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그 가장 큰 동기는 리논 역사와의 결합이었다. 헤세로서는 세 번째인 이 결합으로 비로소 성실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룰 수 있었다.헤세는 몬테뇰라의 새집에서 은둔자 생활을 하며 이해심 많은 니논 부인의 따스한 애정과 배려로 테신의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노년의 안정을 찾아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살육과 학살과 전쟁의 포화로 유렵전역이 불타오를 때, 그는 은둔자로서 순수한 이상향을 구축한다. 전쟁의 포화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을 때, 그는 꽃을 심고 밭을 일구면서 조용히 순수한 인간성회복을 조심스럽게 갈구하였다. 이 암흑기에 그는 거작<유리알 유희>를 집필한다. 그의 필생의 대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유리알 유희>를 쓰면서 그는 매일 호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품에서 밭을 일구는 은둔자로서 대작을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1943년 그의 나이 66세에 대작<유리알 유희>를 출판했다. 이듬해 세계 2차 대전이 종전되었다. 1946년 작품이 독일에서도 출판되었으며 이 해 8월, 제 2 차 세계 대전 후 최초의 괴테 상을 수상,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베른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나이 75세 되던 해 곳곳에서 그를 위한 축하 행사가 열렸으며 그는 그간 자신이 쓴 책들을 집대성했다. 1962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몬타뇨라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루카노 호반의 성 아본티오 교회묘지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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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S. 프로이드, C. G. 융 등의 정신분석 및 심층심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데미안}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 {요양객} 등의 역작을탄생시키는 한편, 인도의 지혜에 심취하여 그 정신이 깃들인 {싯다르타. 인도의 시(詩)}와 같은 동양적 작품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작가는 밝고 어두운 두 개의 세계와 양극적 단일성에 관한 신-악마적인 상징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으니, 즉 선과 악을 함께 포괄하고 있는 새로운 신 “아브락사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에봐부인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싯다르타}에서는 영원한 변화와 통일의 상징인 물을 통하여 우주만물의 단일성을 투시하고 각성 하는 과정을 동양적 정신에 따라 구현하고 있다. 후기 현대인들의 성서가 되어 있는 {황야의 이리}에서는 동물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한 몸에 지닌 주인공 하리 할러가 환각제를 피우고 째즈음악을 들으면서 미친듯 춤을 춤으 로써 팽팽했던 정신적 긴장을 해소하게 되고, 마술극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일 성을 사징하는 [불멸인(不滅人)들]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음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양극적 대립성을 두 인간, 즉 정신과 이성의 대변자인 나르 치스와 자연과 사랑의 대변자인 골드문트에 구체화시켜 우주만물의 양극성을 나타내는 동 시에 이 대립적 존재가 합하여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조화로운 합일을 묘사하고 있다.

2. 심리주의비평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정신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을 선하게 하려고 하지만 크로머롤 인해서 쉽게 악의 길로 들어서서 자포자기하고 만다. 그후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된다. 하지만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악의 구원받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악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베아트리체를 자신의 여신상으로 만들어서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결국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얼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얼굴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인 데미안이었다. 그러면서 데미안을 그리워한다. 자신을 크로머로부터 구해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방황을 구원해줄 구세주로서 데미안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에바부인에게서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싱클레어는 다시 한번 진정한 여신상을 찾게 된다.

데미안은 개인무의식을 다루고 있다.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싱클레어는 중상층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집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의 집처럼 성결하지 못하다. 그것을 통해 싱클레어는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선과 악에 대해서 갈등하게 된다. 그로 인해 인간의 양면성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심성을 이분해 버리고 자신을 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나 에바부인처럼 자신의 여신상을 만든다. 이것을 통해 싱클레어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와 같은 증상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지켜주고 보듬어줄 여성을 찾는 것이다.

3. 형식주의비평

– 갈래 : 장편 소설. 성장 소설. 교양 소설

– 성격 : 자전적, 심리주의적, 종교적, 상징적, 신비주의적, 내면 탐구적

– 경향 : 헤세의 작품 경향은 전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기에서는 ‘페터카 멘찐트’,’사랑 의 3중주’, 등 서정이 넘치는 작품을 썼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그는 자아 탐구와 더불어 현대 문명의 준엄한 비판자가 되었다. 이 두 작품의 분기점을 이루는 문제작이 ‘데미안’이다.

– 문체 : 간결체

– 배경 : 시간(제1차 세계 대전 전후). 공간(독일)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제재 : 나의 성장 과정

– 주제 : 자기 발전을 통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

– 구성 : 서장과 8장으로 되어 있다. 1-2장에서는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상적으

로 그려 먼 훗날의 인생의 흐름을 함축성 있게 암시하고 있고, 3장에서부터 독심술의

꿈의 해석이 수시로 인용되고 신비로운 환상적 여운이 전편에 흐른다.

– 표현 : 작자의 젊은 시절의 초상이라 할만큼 영혼의 성숙 과정을 자전적으로 그려냈다. 신 비주의적 동양 정신이 담겨 있다.

– 줄거리 : 싱클레어는 신앙이 깊고 청결하며 예의 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장인(匠人)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주정뱅이·강도 등의 더러운 악의 세계가 자기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이때, 데미안이 건너 준 메시지를 받고 자기 의 식의 눈을 뜨게 된다. 싱클레어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유럽 문화를 철저하게 비판한다.

– 전체 줄거리 : 싱클레어는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아래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정은 말 그대로 밝은 세계이며 선의 세계이다. 또한 그 주위에 있는 아주 어두운 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놀이 집단에 끼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허풍을 프란츠 크로머에게 떨게된 다. 어두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어두운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데 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을 통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선과 악을 생각하게 되고, 데미안은 크로머를 만나 싱클레어를 옭아맨 올가 미를 풀어준다.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 속의 두 세계의 갈등으로 즉,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 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베크는 그런 싱클레어를 술집으로 유혹 한다.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 시궁창의 풍경은 금지된 구역에 들어서게 되고 자기 소외와 자기 부정에 빠져 사회와 이사에 대해 아예 부정해 버린다. 그 는 베크와 함께 카인과 아벨 신화의 이중성, 성의 금욕주의, 연애감정에 대 해 생각한다. 다시 데미안을 만나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타락한 모습에 우 려를 나타낸다. 싱클레어는 정신이 성을 갈망하는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 소용돌이치는 마음에 따라 그런 곳에서 벗어나게 된다. 싱클레어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아닌 남성 적이면서 여성적인 모습으로 변하여 마침내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 었던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어느새 데미안을 그리워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지구에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 고 데미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새, 먼저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온 새, 그리고 신 아프락사스에 관한 이야기 이다. 아프락사스는 빛과 어두움의 공존, 선신이면서 동시에 악신이라는 것 을 싱클레어는 알게 된다. 그는 데미안의 편지를 통해서 자기 내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싱클레어가 어느 교회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그는 연 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서 아프락사스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그에게 아프 락사스에 대한 가르침도 받게 된다. 싱클레어는 정신을 이끌어 줄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데미안을 길에서 다시 만난다. 데미안은 그의 어머니 와 함께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재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여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꿈, 운명, 탄생의 괴로움을 알려 준다.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정신적인 사랑 과 육체적인 사랑을 같이 느끼게 되고 정신적인 사랑으로 생각한다.

그 때 전쟁이 터지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함께 참전한다. 싱클레어는 부상 을 당하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나란히 누워 있다. 데미안은 만약 언젠가 자신이 필요하게 되면 싱클레어 스스로의 내면 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키스를 그에게 전한다.

다음날 아침 데미안은 옆에 없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친구 이며 지도자인 데미안과 꼭 같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다.

– 등장 인물

싱클레어 : 독심술(讀心術)에 빠져 인간의 영혼에 대해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소년

막스 데미안 : 에바 부인의 아들로 개성이 강하고 성숙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다.

프란츠 크로마 : 양복점 아들로 성격이 거칠고 악의 상징 같은 존재

크라우어 : 싱클레어의 동급생으로 섹스와 금욕에 고민하다가 자살 미수까지 저지르는 인물

내용 연구

내가 그린 꿈 속의 새는 ∼ 친구를 찾아 냈다. : 꿈 속에서 준 새의 그림을 데미안에게 전해 주는 과정을 새가 여행을 떠난 것으로 표현하였다.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읽는 동안에 내 심장은 ∼ 오싹하게 움츠러들었다. : 읽은 내용이 자신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새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고, 알은 갇혀 있던 기존의 세계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 않으면 안 된다. :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는 자기가 전에 속했던 세계를 비판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었다. : 전대미문(前代未聞)

아프락사스 : 보다가 진보가 이루어진 세계로 이상 세계를 의미

헤로도투스를 읽고 있었다. : 헤로도투스(Herodotus)는 B.C. 484∼425년에 살았던 그리스의 사학자(史學者). 이 구절의 뜻은 헤로도투스의 저작을 읽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수사법은 대유법이다.

눈초리와 생각만으로도 – 느낄 수가 있었다. :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는 일을 의미

선생님의 말소리가 – 내리치는 바람에 : 스스로의 생각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갑자기 들려 왔다. 이것은 몰두하고 있던 대상 – 아프락사스 – 에 대한 일치 때문이다.

내 주의력도 다시 나 자신의 내부로 되돌아가 버렸다. :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나타낸 구절이다. 헤세 작품의 주인공들의 이와 같은 내면으로의 침잠은 무의식의 세계를 말한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는 심리학의 한 분야인 정신 분석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프락사스가 바로 그런 신인 동시에 악마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 없는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의 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 존재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하고 있다.

성장 소설

교양 소설, 발전 소설이라고도 한다. 젊은 주인공이 인간적,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고 또 그 환경과 싸우면서 자기를 완성시켜 나가는 성장 과정을 그린 소설을 말한다. 주인공은 노력과 방황을 통하여 작자 혹은 그 시대의 이상상(理想像)에 적합한 어떤 과정에 도달한다. 이런 류의 작품은 가장 먼저 독일에서 발달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는 가장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다. 또 켈러의 ‘푸른 옷의 하인리히’,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플로베르의 ‘감성 교육’ 등이 유명하다.

성장 소설은 주인공이 자기와 외계와의 관계를 서서히 깨달아 자기를 확립해 온 과정을 그린 것이지만 특히 주인공이 예술가인 경우에는 예술가 소설이라고도 한다. 로망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이 대표적이다.

데미안 역시 싱클레어의 성장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이분적인 구조에서 한가지를 선택하고 데미안을 통해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지주의(靈智主義/Gnosticism)

2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종교적 운동으로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그노시스’, 즉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서 유래했다. 학자들은 영지주의 세계관의 기원을 이란의 종교적 이원론, 중기 플라톤 철학자들의 알레고리적 이원론, 특정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의 묵시적 사상에서 찾는다. 최초의 영지주의자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몬 마구스이다. 그는 악이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겼다는 영지주의의 근본 개념을 소개한 1세기 유대교 이단자였다.

영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무의식적 자아는 신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타락했기 때문에 진정한 본질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에 던져졌다.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기원·본질·초월적인 운명을 알게 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이성의 힘을 가지고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계몽과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계시와도 구분되어야 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며, 성서에 의해서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 신비에 대한 직관이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름이나 설명을 초월하는 심연과 침묵이고, 절대자이며, ‘플레로마’, 즉 빛의 영역을 형성하는 선한 영들의 원천이다. 2세기 영지주의 분파들은 히브리와 그리스도교 종교 저서들을 사용하면서도, 영지주의의 의미들을 그것들과 구분하기 위해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영지주의 집단은 학파를 구성하여 권위 있는 가르침들을 전수하고, 해석하며 비밀을 보존한 듯하다. 의식도 분파에 따라 달랐다.

이니시에이션 소설(initiation story)

다른 말로는 성장소설(成長小說), 통과제의 소설이라고 하고 주인공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 과정을 형상화한 소설을 말한다. 소설의 발단은 대체로 주인공의 지적(의식적) 미성숙, 사회적 지위의 미천함, 애정의 결핍 등으로 인한 증세가 갈등의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다가 주인공이 이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의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아의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미성숙기의 주인공이 일련의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부르는 말로, 브룩스와 워런이 ‘소설의 이해’에서 ‘살인자들’, ‘나는 이유를 알고 싶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initiation’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소설의 한 유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원래 이 말은 인류학적인 용어로서 ‘통과 제의’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젊은이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생한 지식을 획득하기까지의 통과 과정을 다룬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발견과 관련된 삶과 사회에의 적응을 다룬 작품이다. 두 가지는 모두 새로운 사실이나 악의 발견을 통해 주인공을 성인 사회로 유도해 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헤밍웨이의 ‘살인자들’, 윤홍길의 ‘장마’, 이청준의 ‘침몰선’, 황순원의 ‘소나기’ 박완서의 ‘배반의 여름’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등은 좋은 예가 된다.

여기서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젊은 주인공이 성숙한 세계에 도달하도록 상반된 세계가 흔히 전제된다. 신화적 낙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순진과 성숙, 어둠과 밝음의 세계가 대립되며 선 – 악, 미 – 추, 삶 – 죽음 등이 중심된다.

‘데미안’에 대하여

독일 문학이라고 하면, 곧 괴테나 헤르만 헤세를 연상할 만큼 그들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다. 더욱이 현대 문학을 말할 때면 헤세를 두고서는 달리 얘기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의 작가적 생리가 깊이 동양철학에 바탕을 두고 그 심층에 인간의 생명을 구도하려는 데서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때문이기도 하고 또는 그의 문학적 생애가 나찌 독일의 비판자로서 감수해야 했던 추방·망명 그리고 반전논자로서 현대 문명의 몰락을 직시한 예언자로서 어쩔 수 없이 고독과 방황을 감수한 시대의 유랑인이기 때문이며 그의 작품이 풍겨주는 서정성의 향수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시절의 동경, 청춘시절의 꿈과 방황, 넘실거리는 구름을 바라보며 도시에의 환멸, 문명사회를 달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랑아 페터(《페터 카멘친트》의 주인공)의 낭만 같은 것 -그런 것이 난해하고 재미나는 줄거리가 없는 독일 작품이라 하여 비교적 소외당하고 있는 이 땅에서 헤세만이 예외로 널리 번역, 소개되고 읽혀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헤세의 문학은, 그러나 반드시 구름과 꿈이 단김 작품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계보를 전·후기로 구별하면 전기의 작품이 앞에서 말한 서정적 애상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대체로 그 대표작을 들어보면 《페터 카멘친트》(1904), 《차륜 밑에서》(1906), 《게르트루트》(1910), 그리고 《크놀프》(1915)로서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의 작품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벌써 1차 대전을 겪은 유럽은 그를 꿈의 작가로서 마냥 안락의자에 앉혀 두지 않았다. 그는 자아 탐구와 더불어 현대 문명의 준엄한 비판자가 되었다. 즉 자아성찰을 통한 《싯다르타》(1922)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유럽을 탄핵한 《황야의 이리》(1927), 그리고 두 영혼의 벗이 정신과 감각의 세계를 방황하다가 결국 어머니인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교적 승화된 세계를 그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1943)가 서구적 정신과 도양적 정신을 승화시켜 새로운 정신문화를 구상한 이상소설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한결같이 문명 비판과 정신의 실향, 영혼의 방황, 문명의 몰락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데미안》은 이 두 작품 세계의 분기점을 이루는 문제작이다. 헤세는 이른바 초기의 작풍에서 후기로 전환하는데 《데미안》의 다리를 건너간 것이다. 누구도 《데미안》을 읽고 얼핏 그것이 헤세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의 초기 작품만을 읽은 독자에게 있어서). 그만큼 《데미안》은 헤세의 인간과 문학에 획점을 던진 것이다. 그 까닭인지 발표 당시 1년간은 에밀 징클라르 작 《데미안, 어느 소년 시절의 이야기》라고 익명을 썼다. 그 후 이것이 헤세의 작품임이 알려지자 구판부터 개제하여 《데미안, 에밀 징클라르의 소년시절의 이야기》라고 했다.

《데미안》은 이른바 과도기적 작품으로서 그 구성이 뚜렷하다. 1∼2장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과 같이 소년시절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상적인 수법으로 그려 놓아 먼 훗날의 인생의 흐름을 함축성 있게 암시한 것이 퍽 인상적이라 하겠다.

헤세는 이 무렵 아들의 병으로 인하여 정신분석에 정통한 의사와 친하게 지냈다. 그 인연으로 헤세는 정신분석에 흥미를 얻어 그것이 《데미안》에 도입되었다. 3장에서 비롯하여 독심술의 꿈의 해석이 수시로 인용되고 신비로운 환상적 여운이 전편에 흐르고 있었다.

소년 징클라르는 밝은 세계에서 성장했다. 양친의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 속에 살면서 점차 또 하나의 세계, 어두운 세계에 눈을 뜬다. 뒷골목의 어두움, 시궁창의 살풍경-그는 금지된 구역에 눈을 주는 본능을 의식한다. 그리하여 강자 본능적이고 환락적인 인간에게 얼결에 동화되고 엉뚱한 거짓말을 하여 수난하고, 두 세계의 갈등으로 뒷골목에서 술을 마신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데미안을 생각한다. 데미안은 두 세계, 즉 카인의 세계와 아벨의 세계를 똑같이 알면서도 그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자아의 세계를 혼자 걸어가고 있다. 데미안은 그를 교도하려 한다. 그러나 언제나 깊은 자아성찰을 요구할 따름이다. (송영택)

4. 신화, 원형비평

베아트리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름이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제는 여신상이었다. 데미안에서도 베아트리제는 데미안의 여신상으로 나온다. 이름도 어떤 것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여신상으로 베아트리제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프락사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 이는 그노스틱파(영지주의파)의 종교관에서 유래한 말이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없는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 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全宇宙的)존재로 설명된다. 이 소설에서의 아프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한다.

5. 사회, 윤리적 비평

헤세(Hermann Hesse)는 자아의 모든 위기적 요인과 세계대전에서 체험한 인간의 잔인성, 쾌락추구, 질서혼란 등의 모든 외적인 것들을 자아내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이 길을 가게된 것을 그의 생의 제 2차적인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제 1차적 큰 변화는, 그가 13세 때 작가의 부름을 받고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것이라고 헷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내 고뇌의 원인이 자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미친 짓이나 야만인의 행동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비난할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권리는 신조차도갖고 있지 않은데 하물며 내게 속했을 리도 더더욱 만무하지 않은가. 무질서는 바로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헷세는 말하고 있다.

이같은 자아내면으로 가는 첫 시도로써 그는 『데미안 Demian』을 내놓았다. 헤세는 이 작품 발표로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어 많은 새로운 독자층을 얻게 되었다. 새로운 독자층, 즉 패전주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젊은이들에게 계속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데미안』은 발표된 이후 많은 세월 지난 지금에도 헤세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많은 관심의 대상인 화제작이다. 『데미안 Demian』이 작자 미상으로 세상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토마스 만은 출판사에 이 훌륭한 작품의 익명 저자로 되어 잇는 에밀 싱클레어 (Emil Sinclair)가 누구인가르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이 외에 여러 사람들이 은밀하게 『데미안』의 작가를 알아보려고 노력을 했었다. 헤세는 당시의 지식층들에게 감동적인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서 만(Thomas Mann)은 1947년에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곧 이어 신비스러운 싱클레어의 『데미안』이 발산한 충격적인 내용은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시대의 핵심을 꿰뚫었으며 …… 모든 젊은이들을 정말로 매혹시킨 작품이다.

세계대전 후 모든 것이 파괴되고 황폐한 땅에서 아무 것도 제시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데미안을 통해 전쟁으로부터 주어진 외부 세계의 비정상적성과 야만성 그리고 모든 무질서를 작가의 내면으로 받아들여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책임을 진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가 내면의 길을 보여주고 잇다. 이 자아의 길은 자아를 스스로 존립케 하는 것이며, 자기 고유의 길을 인식케 하는 것이고, 마치 숙명처럼 긍정해야만 하는 길이며, 외부 세계의 무질서한 오류를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찾겠다는 길이다. 헤세 스스로가 이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는 점에서 작품을 통한 그의 교육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데미안』의 머리말에서 익명의 저자로서 그는 이 길을 걷고 있는 “한 시도자였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인 그가 안내하고 있는 길은 헤세가 초지일관으로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인간됨의 길이다. 이 인간됨의 길은 헤세의 모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관제로서 자문하고 또 제시한 인간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헤세에 의하면 인간은 조화를 이루어 완성된 하나로 단순히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문시되어 왔던 문명세계의 현실은 그 본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이 현실의 본모습은 그에게 난폭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이 난폭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오랫동안 지켜왔던 규정들과 이상들은 거짓된 것으로 보였으며,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질서 정연했던 것들이 무질서화되었고 생의 현실은 절망적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혼돈된 상황에서 헤세는 자아 밖에서의 무질서의 원인에 대한비평이나 대책을 내세우지 않고 아주 격렬하게 자아 내면으로 심취하면서 전쟁 때문에 흐트러진 인간세상에 놓인 인간문제 내지 자아를 근본적으로 재검을 하게 된다. 이 재검의 길은 곧 그의 자아내면의 인간됨의 길이라 하겠다. 인간의 본질은 조화를 이룬 완성된 하나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과 감각 본능의 세계와 두 대립 속에서 엮어지고 있는 논쟁물로 보게 된다. 인간은 단순한 조화 완성된 하나가 아닌 이 하나에로 향해 내던져진 대자연의 초안이라는 그의 주장은 『데미안』의 익명 저자의 말이기도 하다.

헤세는 『데미안』이 나오던 해인 1919년에 이미 베른(Bern)을 떠나 있었다. 실은 1918년 12월에 벌써 그의 집안은 깨어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요양소에 입원해 있었으며, 회복된 후에도 그와의 생활은 불가능했으며, 자녀들은 기숙사나 친지들에게 맡겨졌다. 이즈음 헤세는 1918년에 발표된 「가을밤 (Herbstabend)」이라는 시에서 그 당시의 쓸쓸했던 그의 모습을 잘 알려주고 있다.

1919년 5월에 몬타뇰라(Montagnola) 왼쪽 편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한 아름다운 집을 발견했다. 이곳은 오랫동안 고독했던 그의 도피처로서 그는 또다시 은둔자가 되어 그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내면적인 세계로의 도피 속에서도 헤세는 자아 밖의 세계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아 밖 세상의 모든 무질서와 혼란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 밖의 물질문명 세계인 감각적 본능의 세계와 이와 반대되는 세계, 즉 정신 세계라는 두 대립된 세계를 받아들인 그의 자아는 자연적으로 내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들 두 대립 세계로 인해 주어지는 자아 내면의 갈등은 부정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긍정적인 면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때문에 헤세 자아의 내면적 갈등은 긍정적 조화 완성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며 이 내면적인 갈등은 곧 자아 인간됨의 길이다. 도덕적인 대립의 두 세계인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에 던져지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Sinclair)가 가고 있는 길은 다름 아닌 조화 완성된 하나에로의 길이다. 이 길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제는 자아 내면에 있는 두 상반세계의 대립관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며 이들 두 상반세계가 조하를 이루기 이해서는 이들 두 세계가 동시에 긍정되어야 한다. 이같은 동시동등 인정을 위해서 이들 두 대립세계를 포괄하는 힘이 존해해야 하는데, 이 힘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상반된 이들 두 세계 위에 군림한다. 이 동시동등이라는 자아 내면적 긍정의 길은 동양 음양학적인 측면에서 음양 두 극의 동시동등으 길이 되는 것이다. 악의 세계와 선의 세계에 던져진『데미안』의 싱클레어는 그의 자아 내면에서 이들 두 상반된 세계의 조화완성, 즉 인간 자아 완성이라는 과제를 더맡게 된다. 두 대립세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싱클레어에게 던져지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현실세계로부터 갖게 되는 자아의식이다. 이 자아의식은 그의 자아 밖에 존재하는 도덕적 가치의 두 대립세계, 즉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하는 양자 택일의 의식이다.

이같은 자아의식은 선과 악의 세계를 동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자아의식은 선도 좋고 악도 좋다는 판단의식이 결여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은 악으로써 선은 선ㅇ로써 판단되고 평가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립된 두 세계가 동시동등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입장에서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작품 처음부터 자아의 궁극적인 조화, 즉 이들 두 세계를 같은 정도로 수용하려는 어려움을 가진다.

싱클레어가 이들 대립된 상반세계를 대면하게 되는 경로는, 머저 그는선의 세계를 그의 가족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10세의 라틴 학생이던 그는 도덕적 가치 척도에서 이 선의 세계가 정신적으로 밝고 선량하며 모든 것이 분명하고 정결함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그는 악의 세계를 그의 주위에서 알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불결하고 선량하지 못하며, 이성적으로도 불손한 패들로 형성된 세계이다. 이 악의 세계로 어린 소년인 그는거짓으로 구며낸 도둑질 이야기 때문에 매이게 딘다. 즉 그는 어느 날 주위 불량배 어린이들에게 영웅심에서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이들 불량배 어리아이들에게 그가 이웃집 사과밭에 몰래 침입해서 사과를 따서 한 자루 가득 훔쳐 가지고 나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자기보다 두 살 위이고 가정적으로 불우하고 불순한 소년인 프란츠 크롬머(F. Krommer)에게 자신이 말한 것은 진실이라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그는 신의 이름을 걸고 이에 대해 맹세까지 한다. 크롬머는 이 맹세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음모를 꾸며서는 그에게 말하기를 과수원 주인이 사과 도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만약 싱클레어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주인에게 고발하여 경찰에 넘기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는 자기 아버지의 취직문제 알선, 싱클레어의 누나와의 데이트, 그리고 무리한 금전요구로 어린 그를 괴롭힌다. 이렇게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이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로 말미암아 더욱 악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이 궁지로부터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 외적인 줄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주어진 싱클레어의 마음에서 일게 되는 내적인 자아변화이다. 그는 거짓으로 꾸며낸 자신의 이야기로 인해 악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자아 밖에서 주어진 어떤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존재는 하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상태에서 자아내면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아내면 속에 있던 이 악의 일면에 충동이 가해짐으로써 극 거짓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내면에 숨어 있던 악의 면이 오직 가족적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던 선의 세계에 억눌려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써 그는 악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에 언제나 이 악의 세계를비밀히 동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와 같이 그가 악의 세계를 그의 자아 내면에서 부정하지 않고 선의 세계와 함께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 그는 이들 두 상반세계를 동시에 긍정하고 받아들이느 길에 서게 된다. 이 동시동등의 길, 곧 그를 자아 갈등의 기로 가게 하는 조력자로서 싱클레어의 연장자 친구인 데미안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데미안은 그에게 그노스틱(Gnostik)의 생각, 즉 신을 직관적인 체험의 세계에서 철학적인 인식의 사고로써 인식케 하려고 하고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의 자아 본체를 형성하려는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싱클레어 자아 내면에 있는 두 대립세계를 동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두 상반세계를 동시동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양요가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동시동등에로의 길을 인도하는 희랍명의 신 아브라삭스를그에게 제시하고 있다.

아브라삭스는 그노스틱(Gnostik)파의 신의 이름으로 일종의 주문으로 사용되며 싱클레어에게 이 신은 상징적인 임무를 갖고 있다. 전혀 상반된 두 세계, 즉 신적인 선의 세계와 악마적 악의 세계를 다같이 동등하게 인정하며 일치시킨다. 이때 어느 한편의 세계에 자의적으로 일방적인 우위가 주어지지 않고, 이들 두 상반되는 대립세계가 동시동등으로 긍정된다. 이것은 곧, 신 아브라삭스의 임무이다. 싱클레어에게 가르친다. 마침내 데미안은 그의 어머니인 에베(Eva) 부인을 싱클에레어와 대면시킨다. 에바부인은 싱클레어가 내면으로 추구하는 자아의 두 대립세계를 조화 완성에로 통하게 하는 사랑의 길로 그를 인도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큰 새의 모습으로 그에게 이 조화 완성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두 면이다. 아니 단순한 양자결합 이상이다. 그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천사이자 그림이고 또 악마이다. 남자와 여자를 한 몸에 담고 있으며,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가장 최상의 것은 선이고, 가장 최하의 것은 악이다. 이것을 체험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또한 나의 운명이다.” 라는 소리가 싱클레어의 내면을 향해 외쳐진다.

이처럼『데미안』의 싱클레어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조화 완성의 길은 후기 헤세 작품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면적인 자아발전의 준비과

정으로서 의의를 갖고 있다. 이 자아내면의 길은 결코 추상적인 잠꼬대 같은 길이 아니고 참된 자아인식의 길이며 현실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자아내면 발전의 길이다.

헤세가 제 1차 세계대전 후 내적·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의 작품 『데미안』 이후 가고 있는 자아내면의 길은 보르토(O. F. Bollnow)가 그의 저서 『불안과 은둔 Unruhe und Geborbenheit』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이 헤세 중니공들이 자아완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내면의 길’은 또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표현되기도 한다. 이 내면의 길은 독일 정신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내면의 길’에 관해서는 독일 신비주의의 초기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마이스터 엑하르트(Meister Eckhart)에 의해 이것이 깊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는무언의 형태로서 경건주의 (Pietismus)와 함께 독일의 정신 속에 흐르고 있다. 경건주의는 신의 체험을 신을 간절히 찾는 인간의 가슴 속에서 찾아서 종교적인 감정 유동의 개별화를 유도한다. 이 ‘내면의 길’은 독일 낭만주의로 다시 이러진다. 낭만주의 시대의 노발리스(Novalis)에 의해서 가장 우아하고도 수결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그의 미완성 작품에서 “비밀에 가득한 길은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헤세 또한 그의 작품에서 노발리스의 이 말을 마치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반복하고 있다. 노발리스는 그의 미완성 작품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 Heinrich von Ofterdingen」에서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중의적으로 “언제나 집으로”라고 대답하고 있다.

노발리스의 이 말은 대단히 의식적으로 『데미안』에서 언급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를 상징적인 사랑의 길로 인도하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베 부인에게 “얼마나 나는 기쁜가! …… 나는 지금까지 떠돌아다녔는데, 이제 집에 왔으니 ……”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싱클레어는 에베부인을 통하여 자아 내면의 조화에로 인도됨을 암시하고 있다.

후에 헤세는 이 자아 내면의 길을 1931년에 『내면에로의 길 Weg nach Innen』이라는 작품의 이름으로 표면화시키면서 그의 진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작품 『내면에로의 길』은 4편의 이야기를 헤세가 모아서 출판한 것으로 이 책에는 『데미안』 이후 쓰여진 『싣타르타 Siddhartha, 1922』, 『어린 아이들의 마음 Kinderseele』, 『클라인과 바그너 Klein und Wagner』와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 Klingsors letzter Sommer 』이 실려 있다. 『싣타르타』 이외에 세 단편들은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 이라는 책명으로 이미 출판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헤세가 가고 있는 ‘내면으로의 길’은 자아 밖의 시끄러운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고유한 심저로 되돌아가서 고요한 안전으로 향하는 걸인 동시에 외부세계의 불안 때문에 잃은 세상 깊은 곳과의 연관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은 인간의 본질, 곧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길이며, 지금은 떠나 있어도 오직 이곳에서만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인간 본향에로의 길이다.

내면에로의 길’에는 여러 차례의 전기가 있는데, 우리들 모두의 근본적인 자아의 길인 ‘내면에로의 길’이 헤세에게 있어서는 그가 처한 시대 사조와의 대결로 나타나 여러 단계로 나누어지고 있다.

『헤르만 라우쉬』,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와 『크눌프』까지를 헤세 젊은 청년시절의 발전과정으로 보고 있으며, 『데미안』,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싣타르타』, 『요양객』, 『짧게 요약한 이력서』, 『슈테펜볼프』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성숙단계를 보여주고있다. 여기서 자아 밖 현실세계와 대립하던 방황이 해결되는 과정이 보임으로써 이어지는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된다. 결국에는 자아 밖과 자아 내면의 공통으로 추구하는 해결점을 발견하였음을 헤세는 그의 후기 작품 『동방에로의 편력』과 『유리알 유희』로 나타내 주고 있다.

‘내면에로의 길’이 두 상반세계의 테두리에서 주어진 것은 『데미안』에서부터이다. 특히 동양 음양으로서의 이 내면적인 길 추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이 작품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데미안』을 기점으로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과 『싣타르타』에서 음양의 두 극, 동시동등의 길이 갈구되고 있다. 이어서 작품 『요양객』부터는 현실세계와 작품 주인공들의 자아 두 상반세계를 동시동등의 긍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이 방황의 내면적 갈등이 『슈테펜볼프』를 거쳐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 이르기까지는 고조되다가, 조화 융합의 안정된 길은 후기 두 작품들, 『동방에로의 편력 Die Morgenlandfahrt』과 『유리알 유희』에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작품 『데미안』을 분석해 보면 『데미안』은 헤세가 내면의 길로 들어섬을 보여주는 첫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헤세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시민사회의 질서의 무너짐과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붕괴를 보게 된다. 그는 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시대와 대결하였는데, 고뇌와 절망의 원인을 외부세계에서가 아니고 자기 내부에서 찾을려고 했다. 그 과제는 이 소설 서두에서 “어떤 인간의 삶도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위한 것이며, 그 길의 시험이다.”라고 한 소설을 기점으로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명랑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싱클레어가 친구 데미안과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존경하는 데미안의 어머니의 인도를 받아 괴로움 많은 청년시절을 극복하고 점차 자기의 사명에 눈떠 가는 과정이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 자아 ‘내면에로의 길’에 있게 된 헤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베른을 떠나 스위스 남쪽 외딴 곳에 거처를 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사람의 화가로서 생활한다.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이 집필될 때는 헤세가 테신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은 1919년 무더운 여름으로, 그에게 새로운 인간 지표가 주어진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병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나는 죽지 않았고 지구와 태양이 나를 위해 회전하고 있는 것 같다. …… 다시 한번 이 세상은 나의 것이다 …….

그는 새로 시작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며, 자연에 파묻혀 매일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많은 밤을 이야기로 지새우기도 했다. 테신의 자연과의 만남은 헤세에게 풍부한 언어 표현의 다양성을 주었다. 그는 자아 밖 생활에서 유쾌한 날들을 보내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인간들이 좌절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헤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몰락을 경고했는데 그런 대표적인 작가로 스펜글러(O. Spengler)를 꼽을 수 있다. 스펜글러는 그의 작품 『서양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에서 전후 암담했던 서양의 현실과 보다 나은 미래의 새로운 세계에 관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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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데미안에 마음의 빚 느껴 마음의 벽 쌓는 싱클레어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을 다시 읽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의 ‘신인류의 탄생을 지켜보는 아이’(1943).

인간은 왜 끊임없이 솔메이트를 찾는 것일까. 솔메이트는 천생연분과 다르다. 연인과 달리 솔메이트는 서로에게 열정과 집착이 아닌 우정에 가까운 형태로 다가간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항상 내 마음속에 은거하는 솔메이트. 비슷한 취향이나 관심사로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의 동질성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② 헤르만 헤세 『데미안』

솔메이트는 ‘쿵짝’이 잘 맞는 단짝친구라기보다 내 영혼을 자꾸 더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존재, 자꾸만 더 무거운 화두를 던져주며 “너는 거기 계속 안주할 거니?”라고 질문하는 존재다. 부모의 보호 아래 모범적으로만 자라온 소년 싱클레어에게 데미안 또한 그런 존재였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왠지 두려운 존재, ‘나’를 알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존재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가까이 가기 싫은 존재.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

심리학자 융이라면 바로 그 ‘누군가’가 무의식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는 자아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감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의 모든 측면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한다. 선악은 물론 젊음과 늙음, 미와 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안의 구루(guru), 내면의 스승이 있다. 그런데 그 내면의 스승을 불러 깨우는 존재가 바로 멘토이고 솔메이트이며, 때로는 심리학자가 그런 역할을 한다.

‘저항’은 진정한 자기 인식 피하려는 행동

싱클레어는 악동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고 협박당하면서 처음으로 어둡고 험한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만 들리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다 바쳐야 하는 노예생활에 지친 나머지 점점 삶의 의욕을 잃는다. 데미안은 그런 싱클레어를 구해줌으로써 그의 인생에 노크한다. 데미안은 마치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안녕, 난 너의 무의식이야. 낯설고 무섭고 귀찮겠지만, 그래도 난 너의 가장 좋은 친구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널 떠나도 난 네 곁에 남을 거거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동경하지만 자신이 데미안에게 ‘빚졌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를 멀리하게 된다. 데미안이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줄 솔메이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회피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저항(resistance)’이라고 한다. 저항은 환자가 정신분석 중에 잠들어 버린다든지 조목조목 의사에게 따지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나타난다.

진정한 자기인식을 회피하려는 모든 방어적 노력이 ‘저항’으로 나타나는데,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의 모든 잠재적 충동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느낀 후 의식적으로 데미안을 회피하게 된다. 저항은 환자와 의사가 모두 뛰어넘어야 할 자기인식의 강력한 방어벽이다. 싱클레어가 그 저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그림 그리기’다. 그가 데미안을 멀리하고 기숙학교에서 홀로 생활하는 동안 만난 두 번째 멘토가 바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다.

데미안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이 제기한 수많은 화두에 매달리던 싱클레어가 어렵게 완성한 그림이 바로 저 찬란히 날아오르는 맹금류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펼치는 새를 그렸다. 데미안은 그 새의 이름이 아프락사스임을 알려준다.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신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악의 세계와 가장 아름다운 선의 세계를 모두 합일시킨 전체성의 신 아프락사스. 피스토리우스는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알려주고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싱클레어를 훌쩍 성장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드높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안정된 삶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한 이중심리를 싱클레어는 꿰뚫어본다. 그리고 바로 그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함이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알게 된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이제 그 곰팡내 나는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진짜 당신의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요구하는 순간 싱클레어는 진정한 영혼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무의식의 바다에서 제멋대로 유영하는 수많은 가능성의 물고기들을 의식의 낚싯대로 얼마나 강하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의식의 낚시 솜씨를 기준으로 영혼의 성숙도를 체크할 수 있다면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가까워질수록,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더 깊이 사랑할수록 자신의 무의식과 가까워지고 내면이 한층 성숙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는 퇴화된 날개를 지닌 채 닭이나 칠면조처럼 야생의 몸짓을 박탈당한 삶을 살지만 진심으로 싱클레어가 창공을 박차며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피스토리우스는 화려한 날개를 지녔지만 끝내 제 힘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아름다운 공작새 같은 존재다. 데미안은 독수리의 날개와 매의 눈초리를 한 불사조다. 싱클레어는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어린 새였지만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을 거쳐 데미안과 다시 가까워짐으로써 언젠가 진정한 아프락사스처럼 찬란하게 비상할 것이다.

‘의식’의 끝없는 투쟁 겪어야 두 번째 탄생

영웅의 마지막 변신, 그것은 스승과의 완전한 결별을 통해 완성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전장의 용사로 변신한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다시 만난 것은 차가운 병상 위에서였다. 데미안은 마지막 길을 떠나며 싱클레어에게 속삭인다. 이제 내가 곁에 없더라도 내가 필요할 땐 날 부르지 말고 네 안에서 날 찾으라고.

항상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었던 데미안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싱클레어는 완전히 자기 안에 데미안을 갖게, 아니 스스로 데미안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제 힘들 때마다 데미안을 부를 필요가 없다. 조용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된다. 싱클레어는 외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대신 끝없이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피스토리우스에 저항하고, 아프락사스를 꿈꾸고, 에바 부인을 순수하게 사랑함으로써 마침내 데미안에 가 닿았다. 그의 내면 안에 데미안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은, 이제 더 이상 데미안을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그와 함께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멈출 수 없는 내면의 투쟁이자 의식이 무의식을 향해 자신의 완성을 부르짖는 초월의 몸짓이었다.

1차 대전의 포화가 데미안의 육신을 삼켜버렸지만, 우리의 영혼 또한 세파에 시달리며 부침(浮沈)을 계속하겠지만 우리 각자가 자기 안의 데미안, 내 안의 에바 부인을 찾는 몸짓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의 무의식과 진정으로 조우하기 위해서는 피스토리우스의 해박함과 총명함을 넘어 데미안의 불굴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거침없는 자유를 몸 속에 지녀야 한다.

데미안은 목숨을 걸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어린 나이와 미숙함에도 개의치 않고 그를 진정한 솔메이트로 인정해 주었다. 데미안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자유, 그리고 싱클레어의 순수함이 환상의 트리오를 이룰 때 우리 안의 피스토리우스, 아집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소시민적 안정을 버리지 못하는 연약한 에고가 마침내 자유를 향한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는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내면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 탄생은 오직 ‘의식’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또 다른 나를 새로이 잉태하는 그날까지. 의식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무의식의 희망, 아프락사스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그날까지.

정여울 문학 평론가 [email protected]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줄거리 정리 및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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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데미안 기본개요

독일 출신인 스위스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이다

싱클레어가 친구인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정신착란상태를 벗어나 ‘이 세상의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로지 내면의 길을 파고드는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으로 말미암아

혼미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의 청년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문학계에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줄거리 정리

두 개의 세계

작품의 시작은 한 작은 마을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10살 에밀 싱클레어로부터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신앙심이 깊고 밝은 가정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데 이런 싱클레어 자신의 밝은 세계 외에도 하녀나 장인들을 통해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가 있는 어두운 세계가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알고 내면적인 대립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 거짓말로 인해 프란츠 크로머라는 친구에게 약점을 잡혀 돈을 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여기서 크로머에 대한 묘사는 다른

급우들과 비교해 어른스러웠고 힘도 강하며 다크 포스가 풀풀 풍기는 존재로 묘사된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면서 결국 돈이 부족한 싱클레어는 가족의 돈까지 손을 대고 가짜 돈을 가져가는 등의 편법을

쓰며 자기도 모르게 어두운 세계에 빠져든다

카인

_인류 최초의 살인자

그렇게 어두운 세계에 빠져 생활하던 중 어느 날 반에 성숙해 보이는 막스 데미안 이라는 전학생이 온다

이 막스 데미안의 어른스러운 분위기에 그는 싱클레어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고 데미안도 그런 싱클레어와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간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첫 대화를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나오는 이마의 표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싱클레어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으며 “아벨을 죽인 카인이 이마의 표적을 받은 것은 그가 강자이기 때문에 신에게 보상을 받은 것”이라는 그의 말은 여태까지 알고 있던 상식에서 벗어났고, 좋든 싫든 그럴 듯한 거짓말을 속시원하게 하는 그를 점점 마음에 들어 한다 그렇지만 그 뒤로 싱클레어는 계속되는 악몽에 빠지면서도 여전히 크로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에 괴로워했으며 부모님으로부터 걱정을 산다

바로 이때 막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고민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에게 크로머에게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크로머의 기척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물어보지만 데미안은 그저 크로머와 한 차례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능력에 감탄하고 자신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며 가족에게 자신의 악행을 고백하고 용서받는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을 까맣게 잊는데 그 이유는 싱클레어 자신이 생각하기에 데미안은 이 밝은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

데미안 초판 디자인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죄인)

그렇게 몇년에 지나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막스 데미안은 예전보다 더욱 의젓했지만 선생님에게 아부보다는 오히려 맞서려 했고 그 결과 데미안은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싱클레어또한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에게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느끼기 시작하고 그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또 수년이 지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즈음에 데미안과 친해지게 되는데, 견진수업 중 카인의 표적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의 관련성을 또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매 수업 때마다 조금씩 싱클레어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고 결국에는 싱클레어 바로 앞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여기서 데미안이 싱클레어 앞에 앉은 이유와 더불어 주변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싱클레어는 자신의 신앙심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깨닫고 고민에 빠지게 되고 데미안은 수업 때마다 배운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싱클레어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자신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진실은 나중에 깨달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사상에 점점 젖어가던 중에 언변이 좋고 호의적이던 모습과는 또다른 차갑고 죽은 듯한 모습의 데미안을 보고 전에 없던 거리감과 고독을 느낀다 견진성사가 끝나자 싱클레어의 일상도 목석 같은 데미안의 모습처럼 뒤틀리고, 방학이 되자 답답함에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때 데미안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베아트리체

방학이 끝나고 싱클레어는 고향과는 멀리 있는 도시 김나지움에 전학을 간다 거시서 싱클레어는 선량하고 예민한 아이에서 무감각하고 시크한 소년으로 변질되어 있었고 지금도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고독을 느끼며 인생무상을 탐닉하던 싱클레어에게 유일한 낙은 알폰스 베크라는 기숙사 친구를 만날 때였는데 이 인물은 싱클레어보다 연상이며 툭하면 술을 권하며 어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점점 호기심에 빠졌들었다 그렇게 술에 점차 취해가던 싱클레어는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겼고 그 순간 자신에게 펼쳐져 있던 밝은 세계를 자신의 발로 짓밟았다는 생각이 들어 싱클레어는 자책감에 휩싸여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어두운 세상의 한복판에서 떠받들어지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무척 두려웠던 것.

모든 것을 떠나, 싱클레어는 이미 김나지움에서 퇴학당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무엇보다 간간히 생각난 데미안에게 편지를 써도 답장이 오지 않자 그에게 증오감마저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사감의 경고장을 받고 아버지가 찾아오는데 싱클레어는 화가 난 아버지에게 오히려 대들었고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온 싱클레어는 시들시들한 모습으로 가족을 놀라게 한다 밝은 세상으로 돌아온 싱클레어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데미안을 찾아가보지도 않은 채 겨울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싱클레어는 다시 도시로 나가 봄을 맞이하는데 그때 알폰스 베크와 첫만남이 있었던 공원에서 어느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며 남몰래 짝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술과 어두운 거리에서는 벗어났지만 반대로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은 광적인 감정으로 변질되어 갔다 싱클레어는 그녀와 단 한 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구원받았으며, 그 사랑은 온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었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매일 그녀를 생각하며 가장 이상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버릇을 들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전부 그리고 그 그림을 본 싱클레어는 놀라게 된다 그 그림 속 그 얼굴은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

“운명과 감정은 한 개의 개념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Schicksal und Gemüt sind Namen eines Begriffs).”

무의식 속에 데미안을 그린건지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에 대해 동경심이 다시금 피어오르게 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술과 가까웠던 과거 어느 방학 기간에 고향에 돌아와, 술집에 드나들다가 우연히 데미안을 마주쳤던 적이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는데 이때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두려워하는 과거 이야기 대신에 술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그가 술을 왜 마시는지를 돌이켜보라는 식의 충고를 했고, 싱클레어는 이 말에 더욱 화가 났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데미안의 말을 생각해 본 싱클레어는 자신의 굴욕적인 과거의 추억을 모두 들추어내며 그 말의 진위를 깨닫고 간밤에 뒤죽박죽

얽힌 기억들과 함께 데미안이 싱클레어네 집의 해묵은 문장을 언급했던 사건에 대한 꿈을 꾸게 된 싱클레어는 잠에서 깨자마자 그 문장을 더듬어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큰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생생한 매와 같았으며 싱클레어는 이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런 사건을 겪은 싱클레어는 다시 모범생이 되었고, 김나지움을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도 어느새 데미안의 그늘에 가려 싱클레어의 추억 속으로 사라진게 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데미안의 답장은 의외의 타이밍에서 온다 고향에 돌아온 싱클레어는 수업 쉬는 시간에 자신의 자리에서 종이 쪽지를 발견하는데 싱클레어가 자신이 그린 새에 대한 생각을 채 지우지 않았을 때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이 쪽지를 발견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보낸 쪽지임을 직감하고 아브락사스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게 의문을 갖던 중 싱클레어는 이브락사스에 대해 수업시간 도중 알게 된다 수업시간 중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부분은 바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하는 신과 같은 아브락사스.

이 아브락사스가 싱클레어 자신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갈구하던 중 어느 날 꿈에서 낯선 여인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데미안도 아니었다 이 낯선 여인은 키가 크고 힘이 강했으며 또한 여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포옹을 받은 싱클레어는 희열을 느끼고 이것을 아브락사스와 결부시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된 싱클레어 이제 곧 졸업이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이며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싱클레어는 또다시 데미안, 문장의 새와 아브락사스, 꿈속의 여인이라는 여러가지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특히 자신의 애인을 갈구하던 그는 날마다 상상 속의 그녀를 생각하며 배회하던 중, 교외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교회 문은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멜로디가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느느끼고 연주가 끝난 후 교회를 나오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통통하고 나이가 든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그렇게 연주를 듣다 그의 뒤를 밟아 술집까지 따라간다 싱클레어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테이블에 앉아 대화할 기회를 얻는데 대화의 주제는 어쩌다보니 아브락사스였고, 오르가니스트는 아브락사스에 대해 무언가 신중히 여기는 말투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싱클레어는 그의 집까지 찾아가 서재의 난롯가에서 말없는 탐구를 한다. 그의 집을 나올 때, 싱클레어는 그의 이름이 피스토리우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싱클레어는 이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지만 마치 끊임없이 단련시키는 것처럼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점점 더 사고가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야곱의 싸움

18살인 싱클레어는 주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에서 모든 것을 치유받는다 피스토리우스는 데미안과 같은 생각을 피력하며 싱클레어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지만 그도 자신의 개인적인 사고방식으로 종교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종교가 대세와는 많이 벗어나 있으므로, 거기에 대해서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싱클레어와 은근한 마찰을 빚는다. 피스토리우스는 친구이며 말이 잘 통하고 배울 점이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지식을 가지게 되고부터는 고리타분한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에게 대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는 악의는 없더라도 언성을 높였고 곧 이어 싱클레어는 바로 후회하지만 자신의 의견에 수긍해주는 피스토리우스에게서 굴욕을 느끼데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싱클레어가 도시를 떠날 때까지 만남을 이어갔지만 그 일에 대한 앙금을 풀진 못했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싱클레어에게 어떤 친구가 다가오는데 이 친구의 이름은 크나우어이며 작고 연약하다 이 친구는 싱클레어가 무언가 특별한 사람 혹은 강신술이나 접신술을 부리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의 고민을 싱클레어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크나우어의 고민은 대부분 금욕에 관한 것이었고 싱클레어는 정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에게 실망하고는 자리를 떠났고, 그 사건이 싱클레어에게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킨다. 그 역시 상상 속의 여인, 자신이 사귀고 싶은 여자 때문에 고민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여인의 그림을 다시 그려 걸어놓고 피스토리우스나 데미안에서 들었던 것 같은 ‘야곱과 천사의 싸움’ 이야기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그 그림을 태워버린 뒤 잠에 들었다 갑자기 파고드는 불안감에 잠에서 깬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무작정 골목으로 나오고 배회하다가 과거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빈 집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추위에 몸을 맡겨 자살하려는 크나우어가 있었고, 싱클레어는 그를 끌고 밖으로 나와 크나우어를 말린다 그 후로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신봉자가 되었고, 그가 가져온 고민은 때때로 싱클레어 본인의 고민을 풀 실마리가 되었다. 그렇게 매달리던 크나우어는 어느샌가부터 떨어져나간다

작가 헤르만 헤세

에바 부인

싱클레어는 마지막 방학 때 데미안이 살던 집에 갔는데 그곳에는 데미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그 사람에게 데미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 상태이다 여기서 이 사람은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의 어머니 사진까지 보여주었는데 싱클레어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만다 막스 데미안의 어머니 사진을 보니 그 여인은 자신의 꿈에 나타난 연인이었던 것이고 싱클레어는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하고 데미안의 어머니인 그녀를 찾기 위해 대학진학 전까지 여행을 떠났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지루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길거리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막스 데미안. 그래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동행자가 자리를 떠나자 데미안을 불렀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가 싱클레어에게 있는 표적을 알아보았고 그 표적이 더욱 선명해졌다며 뿌듯해한다 그리고 마침 자신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다며 싱클레어를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설레는 마음으로 데미안의 집을 찾아간다.

데미안의 어머니는 싱클레어를 반갑게 맞았다.

데미안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싱클레어 황홀함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들고

그간에 하지 못했던 과거의 얘기를 하고 데미안이 자신을 에바 부인에게 어떻게 소개했는지, 자신이 꾸었던 꿈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꿈이 계속될 수 없어도 현실이란 형태로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까지 싱클레어의 마음을 울린다. 에바 부인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싱클레어는 정원에서 일본인과의 결투를 위해 권투 연습을 하던 데미안을 만난다. 그 후에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을 자주 찾아와 에바부인과 많은 이야기를 했으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 옆에서 경청자의 역할을 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계속해서 에바부인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은 꿈만을 꾸고 에바부인은 그 꿈 이야기를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에바 부인은 어느 날 싱클레어에게 싱클레어 꿈에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해준다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을 정신을 이끌어주는 어머니로 생각하는 동시에 몸이 원하는 사랑의 상대로도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싱클레어의 상태를 진작에 간파한 에바부인은 어느 쪽으로든 극복하라며 싱클레어에게 진지하게 조언해 준다. 사랑은 부탁해서도 안 된다. 요구해서도 안 된다. 현재 싱클레어의 사랑은 에바 부인에 의해 끌리고 있지만,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끌게 된다면 갈 수 있다. 즉 선물을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끌려가고 싶은 것이다.

싱클레어는 겨울내내 에바 부인의 생각으로 지냈고 그렇게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을 찾아갔는데 데미안은 차갑고 죽은 듯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을 찾아갔지만 그녀또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와 말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비 오는 거리를 서성이다가 먹구름 속에서 큰 새의 형상을 발견하는데 그 새가 하늘로 날아가자 폭풍우가 크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풀리자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의 집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활기를 되찾은 데미안이 직접 현관에서 싱클레어를 맞았고 그가 조금 전에 새를 보았는데 그 새는 마치 운명의 전조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데미안은 자신이 전날에 꾼 꿈 이야기를 하면서 세계에 드리워진 죽음을 예견한다

종말의 시작

이제는 싱클레어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에바 부인을 보며 싱클레어는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대해 두려워하던 중 데미안이 싱클레어 집에 찾아온다 데미안이 찾아온 이유는 독일이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킬 것이고 자신은 영장이 날아오면 곧 전쟁터로 나갈 것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고 자신을 싱클레어에게 보낸 것은 바로 에바 부인이었다 하지만 싱클레어가 그렇게 찾던 에바 부인은 오지 않았고 곧 그는 그녀에게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불렀지만 그녀가 응답하지 않은 대신 데미안을 보낸 것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도 곧 징집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말을 남기며 떠나버리고 싱클레어는 그로 인해 에바 부인에 대한 마음과 자신이 여태까지 데미안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에 대한 정리를 한다. 데미안이 먼저 떠나고, 겨울에는 싱클레어가 뒤이어 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전쟁터에서 세계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전쟁이 진행되던 어느 봄날 밤 점령지에서 보초를 서던 싱클레어는 지금까지 살았던 자신의 인생 그리고 에바 부인, 데미안에 대해 회상하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폭격을 맞고 정신을 잃는다. 폭격을 맞은 싱클레어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으며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임시 병동의 땅바닥에 깔린 잠자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막스 데미안이 누워 있었다. 데미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싱클레어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마주 하고 마지막 말을 한다.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도 예전처럼 직접 가 줄 수는 없어. 그때는 너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싱클레어에게 불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에바 부인이 보내는 키스라면서, 데미안은 피가 흐르는 싱클레어의 입술에 키스한다. 그 순간 잠에 든 싱클레어는 깨어나자마자 데미안이 있던 곳을 찾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 일어난 모든 고통스러운 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저 데미안의 말대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거울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데미안은 사라지고 없지만, 이제 싱클레어가 곧 데미안이며, 자신 스스로 극복할 방법을 찾아나가게 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작품 데미안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 위기의 경험을 통해

이 위기에서 어떻게 절망하며,무엇을 통해 극복하는가를 중심으로 고찰하여, 인간의 실존에 있어 위기와

절망의 경험이 의미하는 바와 극복과정에서 경험하는 세계경험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타인은 내가 보고 느끼고 관계를 형성할 때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럴 때 타인은 은밀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수용하고 책임지며 자신의 행위를

떠맡으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즉, 유한한 시간과

제한된 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염려라는 사유를 통해 미래를 현실 안으로 밀어 넣고 자신을 달리 기투하면서 무한한 존재로 거듭나는데 바로 여기에 인간다움이 있는 것이며 이 세계가 인간이 추구해야할 본래적인 삶으로 볼 수 있다

작가 헤르만 헤세

하지만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면서도 자기 자신만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때론 우리를 고독하게 한다.

그리하여 독자적인 존재로서 우리가 겪는 고독을 피하고자 우리는 자신을 타자의 전체로 경험하게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기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존재하고자 하는 그곳에서 지금 무엇인 바가 아니라 어떤 것이 되기로 결심하고 되려고 노력하는 바에 의해 형성해나간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찾는 것이 아닌 자기 삶의 규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재능과 단점, 그리고 다른 특성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의미 있는 집합체이다.

그렇기에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을 판단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이미 주어진 형상이 되도록 우리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위기에서의 실존적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두렵고 힘들지만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이며,우리에게 부과된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대단한 기회가 된다. 위기는 우리의 시선을 세계에 대한 모든 외적 경험으로부터 전환하여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고유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통찰을 하게 한다.

즉,위기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절망에 결정적으로 맞서고,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내적으로 참고 극복할 때 최후의 절대적으로 의지할 곳을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며,그럴 때 더 이상 외부의 어떤 것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견고함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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