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낳아 잘 기르자 |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답을 믿으세요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you.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KTV국민방송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7,043회 및 좋아요 38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60년대
합계출산율이
6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정부는 강력한
산아 정책과 함께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합계 출산율이
1.05명에 불과한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땐 그랬지
6~70년대 산아 제한을
되돌아봤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6~70년대 산아 제한···’둘만 낳아 잘 기르자’ – KTV 국민방송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60년대 합계출산율이 6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정부는 강력한 산아 정책과 함께 캠페인을 …

+ 더 읽기

Source: www.ktv.go.kr

Date Published: 5/20/2021

View: 2978

시대별 표어로 살펴본 우리나라 출산정책 | click 경제교육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표어가 “딸 ·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또 여기에는 한 가정에서 두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표준모델’이 되는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eiec.kdi.re.kr

Date Published: 8/6/2021

View: 2547

[Behind Story] ‘둘만 낳아 잘기르자’의 역사! – 엠디저널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 내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되자 하루앞선 가족계획 십년앞선 생활안정 ▷ 1980~90년대 : 80년대는 평균 출산아 2.7명으로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mdjournal.kr

Date Published: 1/1/2022

View: 5049

‘둘만 낳아 잘기르자’에서 ‘많이 낳아 잘기르자’로 – 연합뉴스

1973년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흑백 홍보 영상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로 끝난다. 이 표어는 딸 둘, 또는 딸 하나,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6/4/2021

View: 3396

[사회]’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둘만 제발 낳아다오’ | YTN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 1976년에 우리나라 인구 증가율은 1.5%로 줄어들어…”

+ 여기에 보기

Source: www.ytn.co.kr

Date Published: 6/5/2022

View: 7369

‘둘만 낳아 잘 기르자’ 前 ‘3.3.35’캠페인의 뜻은? – 코메디닷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前 ‘3.3.35’캠페인의 뜻은?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③가족계획 성공의 배경과 과정. 코메디닷컴 …

+ 여기를 클릭

Source: kormedi.com

Date Published: 12/28/2021

View: 331

1980년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가 지금의 저출산 … – 전자신문

30대 초반 여자 인구 감소는 1980년대 정부가 주도한 가족계획 영향으로 풀이된다. 출산구호가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1980년대 ‘하나만 …

+ 더 읽기

Source: www.etnews.com

Date Published: 6/9/2022

View: 3663

[산아정책 흑역사] “하나만 낳자”에서 “셋이 행복하게”로 – 동아일보

도대체 얼마나 아이를 낳았기에 ‘거지꼴’이라는 극한 표현을 썼을까.… …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donga.com

Date Published: 1/29/2022

View: 2413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Author: KTV국민방송
  • Views: 조회수 7,043회
  • Likes: 좋아요 38개
  • Date Published: 2018. 12.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Bu3mTSk-94

KTV 국민방송

장현정 앵커>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60년대 합계출산율이 6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정부는 강력한 산아 정책과 함께 캠페인을 펼쳤습니다.합계 출산율이 1.05명에 불과한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는데요.그땐 그랬지, 6~70년대 산아 제한을 오옥순 국민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오옥순 국민기자>6·25 전쟁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한 가정에 자녀가 4~5명은 보통입니다.학교는 교실이 모자라고 식량까지 부족해지자 정부가 아이를 덜 낳자는 산아제한 정책을 펼칩니다.대한뉴스 454호, 1964년”앞으로 자녀들은 알맞게 낳아서 훌륭히 길러 알뜰한 살림을 이룩해야겠습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출산 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나오고 전국 곳곳에 보건소와 가족계획 시범 진료소를 설치해 무료로 피임 시술을 실시합니다.대한뉴스 854호, 1971년”우리 국민 가운데는 흔히들 제 먹을 것은 제가 타고 나온다고 하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아이를 너무 많아 낳아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대한뉴스 456호, 1964년”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표어와 포스터가 등장하고 세 자녀 이상을 불이익을 받습니다.인터뷰> 류수경 / 서울시 강서구”셋째는 의료보험이 안 됐거든요.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아기 낳을 때도 힘들었고요. 그리고 애들 셋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따가운 것 같고 그래서 좀 창피하고 그랬어요.”유엔이 세계인구의 해로 지정한 1974년, 한 여성단체는 임신 안 하는 해 캠페인까지 펼쳤습니다.대한뉴스 983호, 1974년”번영된 사회, 행복한 가정은 이상적인 가족계획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딸·아들 구별 없이 둘만 낳아 잘 키우는 것은 경제 수준을 높이는 문화 운동입니다.”지난 8월에는 한 달 출생아가 3만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1981년 월별 출생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가족계획 사업을 벌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불과 40여 년 만에 이제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 출산율 최하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육아 보육 수당에 이어 아동 수당이 지급되고 있습니다.지난해 10월부터 난임 시술 비용이 건강보험에 적용되고 있습니다.인터뷰> 백은찬 / 분당여성제일병원 불임 전문의”현재 난임 정책에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횟수 제한과 연령 제한이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촬영: 이홍우 국민기자)’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엊그제 얘기 같은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과 저출산 극복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국민리포트 오옥순입니다.

( KTV 국민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Behind Story] ‘둘만 낳아 잘기르자’의 역사!

▶ 1960년대 : 우리나라 여성 1명당 평균 출산아 수는 6명이었던 1960년대에는 구체적인 인원이 아닌 알아서 알맞게 낳자는 슬로건이 주를 이루는 시대였다.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많이낳아 고생말고 적게낳아 잘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적게낳아 잘기르면 부모좋고 자식좋다 3․3․35운동 ▶ 1970년대 : 70년대 평균 출산아 수는 약 3.3명으로 이때부터는 유명한 슬로건인 ‘둘만 낳아 잘기르자’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 내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되자 하루앞선 가족계획 십년앞선 생활안정 ▶ 1980~90년대 : 80년대는 평균 출산아 2.7명으로 둘도 많고 하나만 낳자는 슬로건이 등장했고, 90년부터 2000년까지는 숫자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차원의 슬로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낙태를 줄이기 위한 남아선호사상의 타파와 엄마젖 먹이기 등이다. 적게낳아 엄마건강 잘키워서 아기건강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가족계획 실천으로 복지사회 앞당기자 둘도많다 하나낳고 알뜰살뜰 무서운 핵폭발 더무서운 인구폭발 축복속에 자녀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여보! 우리도 하나만 낳읍시다 신혼부부 첫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훌륭하게 키운딸들 새시대의 주역들 하나로 만족합니다 늘어나는 인구만큼 줄어드는 복지후생 한가정 한자녀 사랑가득 건강가득 하나낳아 젊게살고 좁은땅 넓게살자 한부모에 한아이 이웃간에 오누이 지구가 두 개라면 해결될까요 엄마건강 아기건강 적게낳아 밝은생활 젊은꿈을 아름답게 이성교제 건전하게 사랑모아 하나낳고 정성모아 잘키우자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궁없는 우리세대 사랑으로 낳은자식 아들․딸로 판단말자 생명은 하나 선택이 아닌 사랑으로 ▶ 2000년대 엄마젖 건강한 다음세대를 위한 약속입니다

emddaily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둘만 낳아 잘기르자’에서 ‘많이 낳아 잘기르자’로

인구보건복지협회, 출산 장려 표어 공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엄마, 아빠와 어린 두 딸로 이뤄진 단란한 4인 가족이 공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1973년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흑백 홍보 영상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로 끝난다. 이 표어는 딸 둘, 또는 딸 하나, 아들 하나로 이뤄진 가족의 모습과 함께 1970년대 내내 협회의 홍보물에 등장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4인이 아닌 3인 가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표어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만 초만원’.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구가 늘어나면 2천년에는 인구가 5천만이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경고가 더해졌다.

광고

가족계획 수립을 장려하고 출산을 억제하기 위해 1961년 설립됐던 대한가족계획협회가 본격적으로 노선을 바꾼 것은 2000년을 전후해서다.

1999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2005년 다시 인구보건복지협회로 명칭을 바꾼 협회는 2000년대 들어 ‘저출산 대응 인구정책 표어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출산장려기관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후 10여년 동안 출산율이 하락세를 이어갔고 합계출산율은 1.19명까지 떨어졌다.

협회는 저출산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내달 15일까지 ‘출산장려 국민표어 공모전’을 마련한다.

손숙미 회장은 “과거 가족계획 시절의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임팩트 있는 표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번 공모전을 통해 저출산 대응과 출산장려 분위기 조성을 위한 대표적인 표어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둘만 제발 낳아다오’

[앵커]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포스터입니다.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다자녀 가정에게 각종 지원 혜택이 쏟아지는데요.

오늘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인구의 날’입니다.

하지만 80년대까지는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죠.

1950년대 중반 베이비붐이 일면서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이때는 자녀를 많이 낳으면 빈곤해진다는 점이 강조됐었는데요.

[인터뷰:방송진행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정부는 차량까지 동원해서 마을마다 찾아가는 이른바 ‘찾아가는 불임시술’까지 해줬습니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등장하고요.

[인터뷰:방송진행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 1976년에 우리나라 인구 증가율은 1.5%로 줄어들어…”

1983년, 우리나라 인구가 4천만 명을 넘어서는데요.

전광판에는 ‘우리나라 인구 핵폭발’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 보이시죠.

‘둘도 많다’는 더 엄격해진 표어가 나타납니다.

한 자녀 가정엔 혜택을, 다자녀 가정엔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까지 나옵니다.

[인터뷰:방송진행자]

“세 번째 자녀가 출생할 때부터 주민세와 의료보험료를 추가 부담시킬 방침입니다.”

하지만 201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초저출산국’으로 바뀌게 됐죠.

‘둘도 많다’던 출산 억제 정책이 불과 20여 년 만에 ‘세 자녀 기쁨 세배’라는 정 반대의 정책으로 완전히 방향이 바뀌게 된 겁니다.

저출산에 고령화 추세까지 겹쳐 우리나라 인구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노년층 부양 부담이 커질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2030년에 한국의 인구경쟁력은 OECD 29개 회원국 중 21위 사회 활력 경쟁력 지수도 21위로 주저앉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前 ‘3.3.35’캠페인의 뜻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前 ‘3.3.35’캠페인의 뜻은?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③가족계획 성공의 배경과 과정

지금은 세계 1위의 저출산이 문제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문제였다. 우리나라가 실시한 가족계획사업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이 사업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정의 명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가족계획사업은 국민소득이 100달러 즈음인 1960년대 초에 시작했다.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이었던 1970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보다 10년 일찍 시작한 것이다.

1960년 보건사회부는 의료정책관리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던 연세대 의대 양재모 교수(예방의학)를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원으로 지명해서 3개월 간 독일,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각국의 의료보장제도를 둘러보게 했다.

양재모는 귀국해서‘사회보장제도 창시에 관한 건의’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양재모는 유럽의 의료보장제도를 톺아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할 시기가 아님을 간파했다. 대신 런던에 있는 국제가족계획연맹 본부를 둘러보면서, 인구 문제가 선결돼야 함을 깨닫고, 귀국하자마자 가족계획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국제가족계획연맹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가족계획사업을 한다면 3년 동안 매년 3,000달러의 운영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양재모는 1961년 4월 대한가족계획협회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회장으로는 나균용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위촉했다. 사무실은 서울역 앞에 있는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에 두고, 보이스카우트 훈련소장을 지낸 연세대 의대 출신 김용완을 사무총장으로 선임했다.

양재모는 이듬해에 박정희 의장이 이끈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그해 11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인구성장 억제를 위한 가족계획사업 전개를 경제개발5개년계획 사업에 포함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경제발전을 강조한 박정희 정부는 “인구증가율이 3%를 넘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할 수 없으므로 가족계획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양 박사의 주장을 두 팔 벌여 받아들였다. 이때 보건사회부 산하에 가족계획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사업 추진 방향 자문, 심의 검토를 맡으며, 전국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실을 설치하는 등 기본방침이 세워졌다.

1962년 보건사회부 주도로 가족계획사업을 펼치게 됐다. 전국 182개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실을 설치하고, 간호사 또는 조산사 자격증을 가진 가족계획요원을 배치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을 위한 예산을 책정했고, 보건소법을 새로 제정하여 보건소의 업무 중 가족계획의 지도와 계몽교육 등을 넣었다. 이듬해에는 보건사회부 보건국에 모자보건과를 설치했다. 1964년에는 시, 도 보건과에도 가족계획계가 신설되었다.

가족계획의 실무는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맡아오다가, 1963년 말에 보건사회부 모자보건과로 넘어갔다. 초기 가족계획 수립과 시행에는 미국인구협회(Population Council)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세브란스병원 부설 결핵특수클리닉 등록환자를 대상으로 가족계획 계몽교육과 상담을 담당케 했는데 김태봉 간호사의 자원 봉사가 큰 힘이 됐다. 보사부는 경기도 성남 창곡리에 건물을 지어 간호사를 채용하고 시범사업을 하였다.

한편, 연세대 의대 양재모, 방숙 교수는 미국인구협회의 지원으로 경기 고양군 원당면 주민을 대상으로 가족계획 관련 연구사업을 실시했고, 이듬해에는 서울대 의대 권이혁 교수 팀이 서울 성북구 금북동에서 도시형 가족계획연구사업을 펼쳤다. 미국인구협회 지원으로 임상의사인 윤영선, 송상환, 이상근 등 산부인과 전문의가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귀국해 가족계획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가족계획협회는 지방에 지부를 설치하고 상담소와 부속의원을 설립했다. 세 명의 자녀를 세 살 터울로 35세까지만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자는 ‘3.3.35’표어를 만들었다.

1965년 5월에 국제가족계획연맹 서태평양지역 총회 및 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는데, 오원선(보건사회부장관), 이동원(외무부장관), 홍종철(공보부장관), 김성진(국회의원) 등 국내 고위 인사들과 미국, 스웨덴, 캐나다, 일본 등 13개국의 가족계획 대표 70여명이 참가했다. 대한민국 보건의료계로서는 최초의 국제대회였는데,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이듬해부터 네팔, 일본,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터키 등 여러 나라 가족계획요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론 및 실기 교육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성공적인 가족계획 시범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1967년 국제가족계획연맹 총회에서는 양재모가 임기 2년의 총회 부의장 겸 실행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돼 세 번을 연임했다. 양 박사는 실행이사회 참석 차 영국에 다녀오면서 서양의 앞선 정책 노하우를 한국에 가져다왔다. 우리나라는 양재모의 활약으로 국제가족계획연맹으로부터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2,000만 달러가 넘는 지원을 받았다. 양재모는 인재를 선발해서 여러 영역에서 국제 활동을 하게끔 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에 진출시키는 것에도 힘썼다. 가족계획협회에서 사무총장을 담당한 이주현이 국제노동기구(ILO), 이여옥과 양웅철은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 방 숙 교수는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김택일은 세계은행(World Bank0에서 일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인구폭발은 세계적인 문제였다. UN은 1966년 12월 ‘국제연합 인구선언문’을 채택했고, 이듬해에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하여 30개국 국가원수들의 친필 서명을 받고 세계적으로 인구 캠페인을 펼쳤다.

정부는 1960년대에 보건소에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 등 3개 분야의 요원을 배치했다. 1972년에는 보사부 내에 모자보건관리관실을 신설해 모자보건과 가족계획, 그리고 국민영양 업무를 담당케 했다. 1973년에는 모자보건법을 입법화했다.

1970년부터 WHO와 공동으로 경기도 용인군에서 종합보건개발사업(K-4001)을 펼쳤는데, 사업을 평가 도중 3개 분야 요원을 묶어서 3,000명의 주민을 담당하는 방안을 도입해서 실시했다.

드디어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 출생률과 영아사망률, 인구증가율, 그리고 모성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표어를 ‘3.3.35’에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꿨다.

예비군 훈련 참가자 중 불임시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 줬고,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하는 등 가족계획 사업을 권장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돼 가족계획의 성공에 가속도를 붙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고등학교 가정과목 여교사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구와 함께 성에 대해 교육했다. 가족계획사업이 성공적으로 실시됨에 따라서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을 견학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에서 오게 되었다.

가족계획협회 양 이사장은 서울대 수학과 최지훈 교수를 초빙하여 연구와 자료 분석을 위한 빅 데이터 처리 수준을 국제화했고, 서울대 사회학과 이만갑 교수를 초빙해서 현지면접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사회학적 조사방법론이 자리를 잡게 했다. 또 연세대 경제학과 한만춘 교수를 영입하여 가족계획사업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 보건통계학, 의료사회학, 보건경제학이 자리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경제사회의 발전과 함께 가족계획사업이 전환기를 맞게 됐다. 인구증가율 감소, 교육 및 사회경제 수준 향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1971년에 설립된 가족계획연구원은 1976년에 설립된 한국보건개발연구원과 합쳐 1981년에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이 됐고, 이 연구원은 1990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됐다.

1996년 정부는 1962년에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인구증가 억제정책으로 시작한 가족계획사업을 35년 만에 폐지했다. 가족계획협회는 1999년에 대한인구보건복지협회로 전환됐다. 그리고 10년도 채 안 돼 저출산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시대에 들어갔다.

코메디닷컴 [email protected]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s://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1980년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가 지금의 저출산으로…“뾰족한 대안이 없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리 경제 활력을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요소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다. 인구구조 면에서 당분간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고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 정책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7일 통계청은 ‘2018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최악의 저출산 원인으로 △주출산 연령층 여자 인구 감소 △혼인 감소를 꼽았다.

통계청이 판단하는 주출산 연령층은 30대 초반(30~34세)이다. 지난해 30대 초반 여자 인구는 156만6000명인데, 이는 전년대비 5.0% 떨어진 수치다. 가임 여자인구(15~49세) 전체도 전년대비 1.7% 줄어든 123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30대 초반 여자 인구 감소는 1980년대 정부가 주도한 가족계획 영향으로 풀이된다. 출산구호가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1980년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이런 영향으로 당시 출산이 줄어들며 30년이 지난 지금 저출산을 야기했다. 현재의 저출산은 역시 30년 후에 같은 영향을 미친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현재 30~34세인 1984~1988년생 인구가 30대 후반이 되는 시기에는 (현재 20대 후반인) 30대 초반 인구가 소폭 증가하긴 할 것”이라며 “다만 20대 후반의 혼인율이 감소하고 있어 출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망자 수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라 수년 내 인구 자연감소가 예상된다.

지난해 사망자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원인으로 통계청은 고령화와 한파를 꼽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많아지면서 사망자 수가 늘었고, 작년 1~2월 기록적 한파로 호흡·심혈관·뇌혈관 질환에 따른 사망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출생에서 사망을 뺀 인구 자연증가는 최근 3년 동안 급락하고 있어 수년 내 자연감소가 현실화 될 전망이다. 전년대비 자연증가 증감률은 2016년 ­22.8%, 2017년 ­42.4%, 2018년 ­61.3%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2016년 장래인구추계에서 2029년 자연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음 달 발표되는 특별추계에서 이 시기도 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서 의료비·양육비 부담 저감 계획 등을 밝혔지만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획기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은 저출산·고령화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1%포인트(P) 감소하면 국내총생산(GDP)이 0.3%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가임 여자인구 전년대비 증감률(자료:통계청, 단위:%)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email protected]

[산아정책 흑역사] “하나만 낳자”에서 “셋이 행복하게”로

대한가족계획협회 관계자들이 ‘무작정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자전거 앞에 걸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1973년 12월 주부클럽연합회가 광화문지하도에서 ’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977년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주최한 가족계획 정책 발표 행사.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2000년대 등장한 출산장려 홍보 포스터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 한다’.1960년대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가족계획 구호 중 하나다. 도대체 얼마나 아이를 낳았기에 ‘거지꼴’이라는 극한 표현을 썼을까. 한 집에 아이가 5명이라면 지금은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당시엔 7~8명이 보통이었다.이처럼 아이를 많이 낳은 가장 큰 이유는 남녀모두 피임상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도 피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경 중심 사회에선 아이를 노동력으로 여기기 때문에 많이 낳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 열악한 위생상태와 영양실조 등으로 죽는 아이가 많았던 탓에 말 그대로 생기는 대로 낳았다.여기에 남아선호사상까지 일조했다. 여성들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무한도전’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딸만 7~8명인 집도 많았다. 그 시절 막내딸의 이름으로 많이 쓰인 끝순, 말순, 영순, 말자, 말숙 등에는 더 이상 아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운 좋게 아들을 얻는 경사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아들을 낳은 집은 대문 기둥에 금줄을 매달았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온 동네에 자랑하러 돌아다녔다. 딸을 낳으면 남편은 아이 얼굴도 보지 않고 동네 주막으로 달려가 술을 들이켰고, 시어머니는 갓 출산한 며느리 앞에서 손자타령을 해댔다.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들을 중시했다. 집안의 대를 잇고 조상을 모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든가, 아니면 남편이 첩을 둬 아들을 낳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결국 여성의 건강과 행복은 무시되고 오직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과 출산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다. 불과 10여 년 전인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법조차 아들과 딸의 상속권리를 차별하고 남자가 가계를 승계한다는 전통의식을 인정했다.정부의 가족계획은 이 같은 왜곡된 사회의식과 구조를 바꾸기 위해시작됐다. 정부가 내세운 가족계획 표어나 포스터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1961년 가족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표어는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였다. 대책 없이 닥치는 대로 아이를 낳을 것이 아니라, 경제적 능력에 맞게 적당히 낳아 제대로 키우자는 것.이어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 한다’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등 비슷한 취지의 표어들이 등장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습과 전통 등 국민의식 전환에 중점을 둔 것이다.1966년에는 ‘세 자녀 갖기 운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정부는 세 자녀를 3살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자는 취지의 ‘3ㆍ3ㆍ35 원칙’을 올바른 가족계획 방법이라고 소개하면서 홍보영화까지 동원했다.1970년대는 한 명이 더 줄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 정부는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가족계획을 실천하는 가정에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세 자녀 이하까지 세제혜택, 여성상속권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 두 자녀 불임수술가정에 공공주택입주 우선권 제공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었다.당시 독일에서 활약하던 축구선수 차범근 가족을 내세운 포스터도 등장했다. 차범근과 부인, 딸이 함께 나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어요’라면서 가족계획 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유명 스포츠 스타를 앞세운 이런 포스터는 어떤 강연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1980년대의 대표적 표어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고운 딸 하나 백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대가족 중심에서 소가족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남아선호사상이 급감한 것과 무관치 않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시대가 바뀌면서 인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구를 줄일 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니 산아정책도, 구호도 정반대로 바뀌었다.‘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이 행복합니다’ ‘하나의 촛불보단 여러 개의 촛불이 더 밝습니다’ 따위의 구호가 등장했다.엊그제까지 정부를 대신해 정관수술을 권장하던 필자에게 어느 순간 저출산대책을 위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가 아직도 생생한 데 말이다. 요즘 필자의 병원에 정관수술을 상담하러오는 남성이 있으면 반드시 자녀가 몇 명인지 물어본다. 만약 자녀가 한 명이라면 부인과 한 번 더 상의하고 오라며 돌려보낸다. ‘하나는 너무 외롭지 않느냐’고 이야기면서.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

키워드에 대한 정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다음은 Bing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KTV국민방송
  • KTV
  • 한국정책방송원
  • 국민리포트
  • 국민SNS
  • 정책SNS
  • 국민방송KTV
  • 국민방송
  • 문화가산책
  • 국민인터뷰
  • 국민마이크
  • 사람사람
  • 사람인사람
  • 워라밸
  • 정책인터뷰
  • 한국의 미
  • 그땐그랬지
  • 산아제한
  • 둘만낳아잘기르자
  • 출산율
  • 대한뉴스
  • 산아 정책
  • 6·25 전쟁
  • 산아제한 정책
  • 세계인구의 해
  • 합계출산율
  • 육아 보육 수당
  • 아동 수당
  • 건강보험
  • 난임 진료
  • 불임
  • 난임
  • 인구절벽
  • 저출산시대
  • 산아제한포스터
  • 고령화
  • 출생아수
  • 저출산문제점
  • 결혼기피
  • 저출산원인
  • 저출산정책
  • 고령화 그래프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YouTube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리포트] 그땐그랬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